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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죽였다 ㅣ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런 노래가 떠오르는 소설을 읽었다.
패티 김의 '초우'라는 노래는 초딩 시절 듣던 노래인데,
그 가사가 가슴을 저미는 서늘함을 가지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막상 '초우'라는 단어의 의미를 '풀잎에 내리는 비'거나 '처음 내리는 비(이른 봄비)' 정도로 형상화하고 있던 내가,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고는 그 가사가 더욱 깊이 새겨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가슴 깊이 파고드는 고독에 몸부림 칠 때
갈 곳 없는 나그네의 꿈은 사라져 비에 젖어 우네
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
마음의 상처 잊을 길없어 빗소리도 흐느끼네
빗소리와 함께 이별의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비가 내리는 배경은 맞지만, '초우(初虞)'는 사전에 '장사를 지낸 뒤 처음 지내는 제사'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 곡은 사랑하는 사람을 땅에 묻거나 화장하고, 그날 비에 젖어 우는 사람의 고독을,
빗소리도 흐느낀다는 감정이입의 절창으로 부른 노래였던 모양이다.
겉으로는 항상 명랑하게 굴었지만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오래된 우물같은 어둠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22)
우리는 무서울 만큼 똑같은 마음, 똑같은 생각 아래 행동했었다.
우리의 마음 속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고독' 이었다.(24)
미와코와 다키히로 남매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15년만에 만나 다정하게 가정을 꾸려가지만,
미와코가 호다카 마코토라는 작가와 결혼하게 되면서 심적 갈등을 겪는다.
그 고독의 분위기가 소설 전반부에 물씬 풍긴다.
헤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남매라는 설정에서
두 사람의 심리적 투명도가 비슷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무서울 만큼 똑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는다면...
그 '고독'을 함께 나눌 수 있어
마치 '대숲'을 지닌 것처럼 마음 든든하지 않으려나?
그런데 이 소설 역시 이전 작 '누군가 그를 죽였다'와 같이,
소설만 읽어서는 범인이 명시화되어 있지 않다.
결국 추리를 해야하는데, 내가 빌려온 책은, '봉인' 부분을 어느 녀석이 도려내 버렸다. ㅠㅜ
'범인은 당신입니다.'로 마치는 황당한 소설이라니...
김전일도 할아버지 이름을 걸고 '당신이 범인이야.'를 외치고 나면,
그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거늘...
그렇지만 가가 형사가 마지막에 설명하는 부분과 연관되는 부분을 찾으면 범인을 어렴풋이 추리할 수 있다.
이 고양이와 지금의 나, 둘 중 누가 더 고독할까.
나는 생각했다.(106)
역시 고독의 소설답다.
스포츠로 단련된 호다카 마코토의 건장한 육체는 이미 하얀 뼈와 재로 변해 있었다.
그 양이 너무도 적다는 것에 나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인간의 본질을 지켜본 듯한 기분이었다.
나 역시 태우고 나면 이것과 똑같이 되는 것이다.(208)
독살당한 피해자는 독자가 읽기에 죽어도 싼 녀석이다.
그리고 살인의 심증이 가는 인물이 셋이나 등장한다.
그리고 살해 동기를 가진 준코는 먼저 시신이 되어버리는 셈판이니...
히가시노게이고의 심리 게임이라고나 할까?
이 소설은 아리송한 결말을 재미있게 이끄는 작가의 구성과는 별개로,
인간의 '고독'에 대한 문제를 평행선으로 탐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