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손톱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1955년에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요즘처럼 기계적인 장치를 활용한 수사가 전혀 개입되지 않던 시기의 추리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도저히 성립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을 만들어 두고,

그 톱니바퀴들이 차근차근 맞아들어가서

드디어 그 큰 구조물이 기기긱~~~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기 시작할 때의 그 전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제목인 <이와 손톱>은 법정에서 다루어지는 주요한 두 가지 살인의 정황을 설명하는 증거물이기도 하지만,

영어로 tooth and nail...은

이로 물어뜯고 손톱으로 할퀴는 등 별짓을 다해서 <맹렬하게, 갖은 수단으로, 필사적으로>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은 두 가지 이야기가 나란히 달린다.

마치 기찻길이 종착역까지 만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도대체 어떤 점에서 공통점이 있을지 첫부분에선 상상도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결국, 소설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읽어야 할 노릇이다.

 

심지어는, 가장 결정적인 부분에서 그만 책을 봉해버린다.

그리고 봉한 부분을 읽지 않고 가져오면 책값을 돌려주겠다 하니,

그것은 '니가 이 책을 사서 요 부분을 읽지 않고 배기겠니?'같은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샀더라도, 읽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치밀하게 이야기는 전개된다.

 

가난한 두 남녀,

마술사와 무거운 가방을 든 여인의 사랑은 애틋하고,

그 가방이 엄청난 돈이 되는 것이어서, 결국 여인은 살해당하는데...

마술사는 원한을 갚기 위하여 범인을 쫓지만...

이미 전개되어왔던 법정 드라마에 따라...

우리는 마술사가 이미 살해되어 '이와 손톱'만 남기고 소각로에서 불타 없어져 버렸음을 알고 있다.

 

아, 이런 치밀함을 머릿속에서 궁그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엇나가는 톱니들을 빼버리고 다시 끼우는 작업을 반복했으려나... 생각하면, 작가가 존경스러워진다.

 

그런가 하면, 부분부분 베껴 적어두고 싶을 정도로 멋진 문장들로 이 책은 그득하다.

 

희곡  porgy포기에 나오는 대사를 살짝 바꿔치자면,

행복은 잠시 머물렀다 지나간다.

행복의 느낌을 -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 떠올리기 쉽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일시적인데다 손에 잡히지 않으며 거품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만족감을 행복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만족감이란 행복과 비참함 사이의 타협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수많은 순간들을 훗날 되돌아보면

완전한 행복의 순간을 정확히 집어 내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만족감이 지배하던 긴 기간을 기억해 내기는 꽤나 쉽다.(96)

 

가난함에 찌들린 삶을 하던 떠돌이 같은 그들에게 '행복'을 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족감이 지배하던 긴 기간>으로 명명함으로써

그들은 나름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누린 사람들로 그려진다.

 

마치 톨스토이 같은 작가들의 서술에서 만날 수 있을 법한 구절들이 툭툭 던져진다.

여느 추리물들이 스토리를 쫓아 좌르륵 달려가는 독서를 하게 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곱씹에 읽게 하고, 다시 보고 싶게하는, 그러니까 제법 독자를 손바닥에 두고 놀리는 작가다.

 

두 연주자들이 볼륨 조정을 헛갈리기라도 하면 마이크를 통한 하울링은

마귀할멈이 할복하는 소리 비슷하게 울려 퍼졌다.(99)

 

번역이 멋지게 된 덕도 있을듯 싶다.

 

세상 모든 바다의 해변을 때리는 파도들이 순간 그 자리에 멈추었다.

글더니 뭍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포개지더니

마침내 하나의 검은 파도가 되어 끈적이는 바다 밑바닥을 드러낸 채 밀려 나갔고

하늘의 태양조차 파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검은 파도의 한가운데에서 엄청난 울부짖음이 시작되었고,

커지고 점점 더 커지는 그 소리가 다른 모든 소리를 다 삼켜 버렸으며

검은색이 너무나 짙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133)

 

여자친구 탤리의 죽음 앞에서 루는 절망한다.

그 묘사를 비유한 하늘과 바다, 온 세상의 빛과 소리, 감각적 혼합은

독자 역시 깊은 심연으로 삼켜지게 한다.

 

마술사가 만드는 눈속임과 착각의 세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마술사가 보여주기 전까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주인공의 직업이 마술사이지만,

스토리의 숨은 부분,

그러니까 법정에서 다루어지는 '보이는 부분' 사이에 마술사가 숨기고 보여주지 않는 부분을

엇갈리는 스토리로 슬몃슬몃 보여주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생명의 마술은 지속된다...

(탤리는 죽었지만) 발자국 소리에서... 누군가의 옆모습에서... 맑은 웃음소리에서...

누군가의 예쁜 다리에서... 아직도 마술은 계속되는 중이다.

어제는 아직 오늘이 되지 않았다.

오늘은 결코 내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내일은 너무 늦기 때문이다.

희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겨울이 오기 전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마지막 부드러운 바람결에,

침묵이 오기 전 마지막 음악 한 소절에,

실망감에 마지막 가짜 꽃다발이 시들 때까지,

죽음이 검은 벨벳 커튼을 드리우기 전까지, 희망은 머무른다.

끝나지 않는 밤의 비참함 속에서,

다음 날의 슬픔 속에서,

희망은 사라져 간다.

그때야말로 마술이 완성된다. 왜냐하면 그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영원히 사라지기 때문이다.(152)

 

여자친구의 죽음 앞에서

<당신은 갔지마는 나는 당신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의 패러독스는 이어진다.

마술사에게 그녀의 죽음을 인정하는 날은,

그녀를 보내주는 날은, 마술을 완성하는 날이다.

 

가장 위대한 마술이란

사람들이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이 똑같이 결합된 것이다.

내가 연출하는 마술은 실제로 벌어진 살인,

거의 흔적이 지워진 살인에 관한 것이어야 했다.(269)

 

도대체 어떻게 '프롤로그'에서 말한 '성취'가 가능하다는 것인가?

 

첫째, 그는 살인범에게 복수했다.

둘째, 그는 살인을 실행했다.

셋째, 그는 그 과정에서 살해당했다.(6, 프롤로그)

 

결국 <역설>이란 <모순처럼 보이지만 모순이 아닌> 어떤 감춰진 비의가 있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모순'처럼 여겨지는 <살인했고, 살해당했다>는 상황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술사의 마술에 의해 그 트릭이 드러나는 것이다.

 

기막히게 정밀하고 정교하게 짜여진 스토리는 작가의 뛰어남을 증명한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죽은 사람을 보낼 수 없는 이들의

한이 가득한 울음 소리를 들으면서... 이 소설처럼 현실에서도,

사필귀정, 깔끔하게 죄인은 해치워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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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나무 1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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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이 너무 티난다.

원제는 시캐모어 나무의 열... sycamore row 인데, 그편이 훨씬 함축적이다.

시캐모어 나무들이 줄지어 선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왜 이 부자는 시캐모어 나무에 목매달아 죽었는가...

그걸, 대놓고, 속죄나무...라고 제목을 붙이니,

아, 속죄한다고 죽었구나...

이런 거다.

제목이 스포일러인 셈이다.

 

무지 부자인 백인 남자가,

시캐모어 나무에 매달린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장례 방식과 유서까지... 유산 분배 변호사 지정까지 착착 되어있는데,

놀랍게도, 두 자녀가 아닌 돌보미 흑인 여자에게 수천만 달러의 90%를 주라고 했다.

나머지 5%는 교회에, 또 5%는 실종된 동생에게...

 

결국 이 두꺼운 소설 총 820페이지의 600페이지가 넘도록,

본격적인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 걸로 보아,

이 소설은 흑백 갈등의 재판이 일어날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타임 투 킬'과도 유사한 주제이다.

타임 투 킬이 훨씬 본격적인 갈등이라면, 여기서의 갈등은 한 세대 건넌 차원이다.

 

흑백의 갈등이 배경으로 물러서긴 했으나,

그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존 그리샴의 소설이 편안한 이유는,

주인공들이 선인이고, 선한 사람들은 심하게 고통받지 않는다.

유쾌하게 문제가 진행되고 이끌려나가다가 해결된다.

악인들은 쉽사리 무능하고 우스꽝스럽게 무너진다.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지만, 소설 속에서나마 픽션의 힘으로 평범한 선이 이겨서 좋다.

 

"칼 리 헤일리 사건(주인공 변호사 제이크가 맡아 이긴 흑인 소송)은 인종문제였지만,

  이 사건은 돈 문제예요."

"미시시피에서는 모든 사건이 인종 문제야."(1권, 164)

 

건물주면서 전직 변호사인 루시엔.

난 그가 술꾼이란 점도, 슬슬 농담을 던지며 레티의 딸과 일하는 점도 다 좋았다.

결국 그가 한 건 한다.

 

레티 랭이 죽어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상속을 변하게 하는 재주가 있을지 모른다는 점도 계속 흥미를 끌게 하는데,

800페이지는 좀 심했다. ^^

 

이 소설에서 '생선 파일'이란 말이 등장했다.

<한쪽 구석에 처박아두고 쳐다보지도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선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고 해서 생겨난 사건 파일>을 일컫는다.

살다보면, 그런 업무들이 있다. 훌륭한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생선파일을 몇 개 쌓아두고 있다.

좀 있으면 냄새를 진동할게 뻔한...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을 배제시키는 참여재판 '배심원 제도'는 아무리 봐도 신기하다.

 

변호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법정, 그리고 배심원 앞이야.

물론 경쟁은 치열하지, 위험도 크고.

온갖 꼼수가 난무하는 것도 사실이야.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갈리게 되어있잖아.

매번 배심원들이 들어와 자리에 앉을 때마다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기분이야.(2권, 353)

 

나도 법조계로 들어갔을지도 모를 희망을 가졌던 시절도 있었다.

과연 그 아드레날린을 즐길 수 있었을까?

내가 즐기는 분야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멋쟁이 아트리 판사는 형평법에 따라 법원을 운영하는데,

아트리 판사처럼 명쾌한 판사가 아니었다면,

이 소설의 운명은 사뭇 달라졌으리라.

 

"다음에도 자네가 이길 거야.

왜냐하면 이겨야 하니까.

내가 앤실의 비디오를 채택한 이유가 바로 그걸세.

그것이 옳은 일, 정당한 일이었으니가."(2권, 414)

 

법원에서 옳은 일, 정당한 일이 승리하는 세계...

진정 그 세계는 픽션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먼먼 옛날 바라본 시캐모어 줄선 나무들이

오늘 바라본 나무 하나의 사진에 오버랩 되듯,

비극의 역사는 반추되고 반복되는 듯 하지만,

정의는 그 속에서 하나하나 진실을 밝혀나가기 마련이라는,

사필귀정을 외치는 소설이다.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노라니... 더 비참함이 대비되어 두드러지게 슬프다.

대법원에서는 끊임없이 뒷걸음질치는 판결을 내리고,

차벽으로 현실을 부정하는 가진자들의 권력과,

그 앞에서 울부짖는 유족과 경찰간의 갈등으로 비화하는 더러운 언론과,

힘없는 헌법 아래서 살아가는 가엾는 사람들이 비쳐서...

과거의 잘못에 목매달고 속죄하는 넘 하나 없는, 더러운 현실에 치가 떨리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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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드 문 - 달이 숨는 시간,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7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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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실에서는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아 미치겠는 일이 너무도 흔하다.

비극적 한국 현대사의 숫자로 된 역사의 아이러니는

그 간결함의 미학이 품고 있는 비극의 크기를 도저히 가늠하기 힘들다.

 

5.18, 4.19, 5.16, 8.15... 이제 4.16

 

마이클 코넬리의 이 소설에서는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연일지, 운명일지를 고뇌하게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전문 절도범 캐시 블랙과 파트너 맥스,

맥스의 죽음과 얽힌 의문들은 사건이 전개되면서 인과관계가 드러난다.

비록 현실에서는 밝혀지지 않는 것들 투성이지만 소설에서는 명쾌하게 밝혀지는 구성이어서

힘들 때일수록 장르소설을 읽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상징적인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제목인 '보이드 문(달이 숨는 시간)' 역시 그러하다.

인간의 운명에는 명쾌하게 인과관계가 드러나는 일도 많지만,

캐시의 삶에서처럼 그 인과관계가 거의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다.

레오는 보이드 문 시간에 움직이지 말라고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시간에 거길 가지 않았더라면... 하고 후회해도 소용 없는 일들이 흔하다.

 

맥스를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났다.

캐시는 언제나 그 만남을 서로 잘 어울리는 영혼들의 우연한 마주침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이 세상에서 자주 일어나지 않는 일.

캐시 자신에게는 결코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일.(146)

 

조디의 엄마이면서 엄마일 수 없는 캐시의 슬픈 삶도,

맥스와 알콩달콩 콩을 볶으며 단란하게 살 수도 있었지 않았나 생각하면 아련한 마음 금할 길 없다.

 

벌새는 왼쪽으로 휙 날아가더니

갑자기 수영장을 향해 급강하했다.

잔잔한 수면 위 30센티미터 지점까지 내려갔다.

거기에서 수면에 비친 자기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더 내려가 수면에 몸을 부딪쳤다.

날개를 정신없이 팔락거렸지만

날기에는 몸이 너무 무거웠다.

물이라는 덫에 걸린 것이다.(274)

 

그렇게 수영장에 둥둥 떠있는 벌새보다 인간이 나은 게 무얼까?

물이라는 덫에 걸린 벌새나

돈이라는 프레임에 걸린 인간이나...

 

마술사 아버지의 아들인 카치는

인간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의 달인이다.

물론, 거기서 '사라지게 하는'은 눈속임이 아니라 '살인'이 되지만...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마술사들은 관객의 눈을 가리고 자유의 여신상도 사라지게 한다.

잠시 후 커튼을 걷으면 사라진 여신상을 확인하며 관객은 환호한다.

자신들의 좌석이 돌아가도록 만들어진 구조임을 모르고...

 

카치는 '동시성'을 이야기한다.

 

겉으로는 별개로 보이지만 서로 관련된 일이 시간차를 두고 일어나는 것. 동시성.(404)

 

눈속임은 잠시 가능할 수도 있지만,

영원히 속이는 일은 힘들다.

별개로 보이는 일들도 지나고 나면 연관성이 맺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그래서 사막같은 삶이라도 착하게 살아야 한다.

 

사막이 바다가 되는 곳...

 

이야기는 사막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 욕망의 도시에서

인간다운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를 만나는 사람도 있다.

엄마 캐시가 딸 조디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며 눈물흘리는 시간은

아무리 팍팍한 세상이라도, 사막이지만은 않다.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 돈을 뿌리고 내려오는 캐시와 조디의 대화.

 

"저 아저씨들 뭐하는 거예요?"

"자기들의 진짜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거야."(448)

 

인간의 진짜 마음은 추하다.

자기 욕심을 위하여 곧 들통날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 사람을 사라지게 하는 마법도 흔히 행한다.

 

사막이 바다가 되는 날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 기다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지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312, 경동맥이 절단된 왼쪽에서 피가 졸졸 흘러나왔다...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한 지점 아닌가? 경동맥인데... 졸졸이라니...

 

361. 침대에서 베갯잇을 집어 들고 베갯잇을 뜯어낸 다음 ... 베갯잇을 벗겨낸 다음...이 좋겠다. 뜯어내는 건 좀 억세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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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소년 탐정단 오사카 소년 탐정단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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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우치 시노부(25세)

  독신녀. 단기 대학을 졸업하고 어릴 적 꿈이던 교사가 됐다.

  오사카 오지 초등학교 6학년5반 담임. 대학 시절 소프트볼 4번 타자.

  동글동글한 얼굴의 미인이지만 말도 빠르고 손도 빠른, 말하자면 얌전한 것과는 거리가 먼 말괄량이 타입.

  하지만 제자들과는 터놓고 지내는 화끈한 성격에 다정다감하고 추리력과 관찰력이 뛰어나다.

  한마디로 쿨한 성격. 단점은 먹는 것에 약해 잘 낚인다는 점.

 

제목은 '나니와 소년 탐정단'이다.

'나니와'는 오사카 땅에 있던 옛 도시라고 한다.

지금도 오사카에는 '난바'라는 이름이 쓰이는데, 한자를 읽은 것이다.

 

제목은 '소년 탐정'단인데, 명탐정 코난처럼 꼬마들이 활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시노부 선생님이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에 기여한다는 스토리이다.

다섯 편의 단편들이 쾌활하게 전개되는데,

오사카 출신의 작가가 마치 자기네 골목이나 공원 수풀을 잘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도시에 대한 애착이 드러난다.

 

번역 과정에서 간사이 지방의 사투리는 읽을 수 없어졌지만,

제목에서부터 '오사카'라고 하지 않고

우리 오사카 사람들은 아는 이름 '나니와'라고 써서 지역성을 강하게 드러낸 것으로 보아,

간사이 사투리가 적절하게 구사되었을 것을 미루어 볼 수 있다.

 

미스터리의 해결뿐만 아니라

신도 형사의 풋풋함도 재미있는 독서 포인트다.

단편이고 작가의 초기작이라 술술 읽을 수 있다.

그의 장편에 중독된 이라면 좀 싱거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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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시계장치
마티아스 말지외 지음, 임희근 옮김, 박혜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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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판타지 동화다.

마녀의 성같은 공간이 등장하고,

버려진 아이들이 등장한다.

그곳은 마치 안데르센의 '겨울 왕국'의 마녀 같다.

 

그렇지만, 여기서 버려진 꼬마아이의 심장에 부착된 시계장치.

그 꼬마는 어느 날 아카시아라는 여자아이에게 마음이 꽂히고,

급기야 학교엘 가게 되는데...

사랑이라는 문제에 맞닥뜨린 꼬마는 이제 '돈키호테'가 된다.

 

내 심장은 꿈의 낟알을 빻아 진실을 생산해 내는 풍차.

미스 아카시아, 내가 간다.(101)

 

사랑 앞에서 인간은 돈키호테가 된다.

두려움을 생각하기보다는,

구세대의 생각에 얽매이기보다는,

자기의 생각을 밀고 나가는 힘.

남들은 무리라고 비웃지만, 돈키호테는 거인같은 풍차로 돌진한다.

 

넌 그게 약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연약함을 감수하고 네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심장시계 덕분에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어.

네 남다른 점이 널 매력 넘치는 존재로 만들어줄 거라고.(105)

 

이 책은 사랑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자는 '유혹'의 단계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무엇인지...

 

유혹의 핵심은 지금 네가 유혹하려는 게 아니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거야.(111)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을 보여줘.

그녀를 웃기거나 울려야 해.

, 친구가 되고 싶은 척하면서.

미스 아카시아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

그녀 엉덩이만 뚫어져라 바라보지 말고.

엉덩이에만 관심을 두고 쫓아다니는 녀석은 깊은 감동을 줄 수 없어.(113)

 

사랑은 몸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얻는 일이다.

그러나 청춘의 사랑은 몸과 마음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건 호르몬이 조종하는 강한 본능의 결과일지 모르지만

청춘의 부글부글 끓는 피는 사랑에서 몸의 돌진을 저지하기 쉽지 않다.

 

우리 둘의 입술은 잠시 쉬었다.

세상에서 가장 말랑말랑한 휴식.

곧 두 입술이 강렬하고 섬세하게 다시 섞여들었다.

그녀의 혀는 내 혀 위에서 부화하는 한 마리 참새였다.

신기하게도 그녀의 혀에선 딸기맛이 났다.(134)

 

우리는 살아있는 두 성냥개비처럼 사랑했다.

우리는 침묵 중에 활활 타올랐다.

우리가 나누는 사랑은 화재였다.

내 몸은 지진이 되었고,

내 심장은 감옥 같은 허물을 벗고 동맥을 통해 두개골 바로 밑까지 날아가 뇌가 되었다.

이제는 근육 하나하나, 손가락 끝까지 모두 심장이었다.

사방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이었고, 붉은 빛을 발하는 장밋빛 병이었다.(140)

 

그들의 사랑을 묘사하는 부분은 시와 같다.

사랑은 '동사'보다는 '형용사'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동사'라고 하더라도 '타동사'보다는 '자동사'에 가까운...

그래서 사랑은 동작의 기술보다는 심리와 상황의 묘사에서 더 근사한 심리를 얻게 되는지도...

 

결국 넌 나라는 존재를 열 수 있는 열쇠니까.

그리고 이제 네가 날 온전히 신뢰하게 되었으니 너도 안경을 쓰고,

내가 렌즈 너머의 네 두 눈을 볼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어.(154)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주고 싶어한다.

상대가 자신을 파괴할지라도,

사랑이 자신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해도,

열쇠를 상대방에게 건넬 수 있는 마음, 그 용기.

 

꽃, 이라는 유심론/ 김선우

 

  눈앞에 열명의 사람이 잘빠진 몸매로 웃고 있어도

  백명의 사람이 반짝이는 선물을 펼쳐 보여도

  내 눈엔 그대만 보이는

 

  그대에게만 가서 꽂히는

  마음

  오직 그대에게만 맞는 열쇠처럼

 

  그대가 아니면

  내 마음

  나의 핵심을 열 수 없는

 

  꽃이,

  지는,

  이유

 

김선우가 시에서 그리는 마음 역시 이런 것이지 싶다.

꽃이 지는 이유는

이미 자기의 핵심을 그대에게 이양해버린 후이기 때문.

꽃은 나무가 자손을 번식하려고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피워올리는 결과다.

그 꽃이 지는 것은,

자신의 핵심을 그대에게 넘겼다는 것.

 

심장 보철장치를 달고 있는 내가 지금 하는 짓은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슈크림과 초콜릿을 폭식하는 당뇨병 환자의 행동만큼이나 위험했다.(161)

     

그녀의 입술에선 농익은 과일 맛이 났다. 그리고 미스 아카시아는 멀어져 갔다.

꿈같은 시간이 부서지는 동안 내 시계의 톱니바퀴들이 점점 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나는 그녀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182)

 

이청준의 <줄>이라는 소설에서

줄광대 운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긴 후,

줄에 오롯이 몰입하던 자신이 흐트러짐을 깨닫고 결국 줄에서 추락한다는 스토리가 나온다.

 

아픔을 두려워할수록 아플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법이란다.

줄타기 광대들을 보렴.

그들이 외줄 위를 걸어갈 때

떨어지면 어쩌지, 하고 생각할까.

아니야. 그들은 위험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감수함으로써 즐거움을 맛보는 거야.

어떤 일에도 상처받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평생을 보내면,

사는 것이 끔찍하게 지루할 거다.

내가 알기로 무모한 것보다 더 재미있는 건 없어.(92)

 

삶은 스펙(career) 만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줄을 잘 타는 것은 남들에게 멋진 경력으로 드러날 것인지 모르지만,

줄타기 광대에게 줄타기는 온몸이 겪어야 하는 체험이고 과정이다.

공포에 져서는 결코 줄타기를 할 수 없다.

공포를 넘어서서 공포를 잊어야 줄타기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사랑 역시 그런 것 아닐까?

어떤 일에서도 모두 A+를 받고자 하는 모범생은

사는 일에서 행복을 잊고 살지 모른다.

 

어린 시절 매시멜로우를 먹지 않고 견뎠던 아이들이

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더 높은 지위를 취득한다 하더라도,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처음 사랑을 시작했으나 어찌할지 모르는 친구,

또는 사랑의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친구,

모두에게 권해줄 만한 동화처럼 쉽게 읽을 수 있는 판타지다.

 

편집자의 위트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페이지 아래 심장에 시계장치를 단 왼편의 남자아이와

화려한 오른쪽의 여자아이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가까워진다.

결국 둘은 책갈피 사이에서 만나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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