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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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름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는 이름을 가지고 다른 개를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개들의 의름을 외우고 다니는 것도 아니잖아,

개는 냄새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또 상대방이 누군지도 확인하지,

여기 있는 우리도 색다른 종자의 개들과 같아.(85쪽)

 

독서토론대회 도서로 이 책이 선정되었고,

논제는 <집단을 위한 이익은 개인의 이익에 우선한다>이다.

 

아이들이 오늘은 전체적으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다양한 이야기들이 등장했다.

 

우선 '눈먼 자들'과 '그들의 도시'가 상징하는 알레고리에 대하여...

그리고 눈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의 존재.

 

국가가 행하는 공익이라는 이름의 <정치>는 사회적인 합의이므로 가변적이라는 것.

거기에는 반드시 '정의'라는 <눈뜬 자들의 개입>이 들어가서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 소설 내에서 물음표가 없는 문장들과,

이름이 없는 존재들의 세상.


이름도 눈뜬 자들에게나 구별의 표식으로 필요하다는 것도 새로운 깨달음이었고,

<모든 이름들 -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에서도

이름 없는 존재들의 미미함에 대하여 등장하듯,

주제의 관심은 이 풍진 세상 한 가운데 있다.

 

차라리 보지 말 것을...

 

차라리 눈 멀어 보지 못한다면 이렇게 속상하지 않았으려나...

이런 일이 흔한 세상이다.

 

뉴스도 보기 싫고,

페이스 북의 소식도 듣기 싫다.

의문의 죽음(유병언이나, 이번 국정원 사태나) 앞에서는

쏜살같이 <물음표 없음>의 확실한 결과가 공표된다.

물음표 없어야 함! 의 억지 주장이 참 가관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랑시에르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로 말하는 것도 이런 것일 게다.

폴리스와 폴리티크...

 

‘치안(police)’과 ‘정치(la politique)’를 구별하는 일에서 출발한다.

‘치안’이란 쉽게 말해 통치행위 일반을 의미한다.

치안은 어떤 자리나 기능을 분배하거나, 혹은 몫의 분할과 관련된 행위들을 수행한다.

나아가 그런 분배나 분할에 대한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를 통해 체제를 유지하고 정당화하는 행위가 바로 치안의 기능이다.

그리고 이러한 치안의 기능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랑시에르가 소환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치안의 체제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들,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자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랑시에르에게 정치란 이와 같은 치안의 작동을 교란시키는 행위다.

 

아마 눈먼 자들을 고립시키는 폭주자들의 횡포가 갈수록 추해져서 그럴 것이다.

토론 도중에 <설국 열차> 역시 마찬가지 알레고리라는 이야기도 등장했다.

 

집단 지성은 같은 책을 읽고도 눈 뜨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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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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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일이 있을까?

홍콩이라고 하면 홍콩 영화로 익숙할는지는 몰라도, 홍콩 소설은 드물다.

 

중국이면서 중국이 아닌 홍콩.

중국인이 살면서 중국인이 아닌 사람들의 홍콩.

그곳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범죄와 얽힌 이야기들을 경찰 탐정 관전둬와 함께 풀어간다.

 

여섯 편의 단편 소설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가 여섯 편을 거꾸로 배열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인생은 돌아보자면,

시간 순으로 배열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인생은, 지금의 나의 시점에서 가까운 과거부터 놓여진 사건들의 기억이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잡는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듯,

아마도 홍콩 작가 찬호께이는 삼국지를 무지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관전둬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

그에게는 이미 훌륭한 제자이자 파트너십을 가진 뤄샤오밍이 있다.

판타스틱한 주인공의 죽음으로 소설이 마친다면 얼마나 쓸쓸하랴.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시작한 소설은 아쉽지 않다.

뤄샤오밍이 그 인생의 유한성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의 뒷골목,

복잡한 몽콕 거리와 침사추이의 번화가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화 접변에 맞닥뜨려 살아간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중국도 영국도 모두 모국이면서도,

중국도 영국도 조국이 아닌 '홍콩' 시민으로 살아가게 하는 현실에서,

67 문화 대혁명의 시류를 타기도 하고,

영국의 문화를 상류 문화로 인정하기도 하는 세상.

 

새로운 질서보다는

혼란과 혼돈이 그냥 익숙한,

지금의 홍콩 거리처럼 마천루가 매일 하나씩 솟아나듯 번화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또 만우절에 죽어간 장국영의 죽음처럼

홍콩의 삶은 정체성을 부여하기 힘든 변화의 도중에 남아있다.

 

2014년의 우산 시위가 말해주듯,

아마도 양극화가 가장 심각한 공간이 홍콩인 것이다.

면적이 좁을수록 압력은 커지게 마련이다.

 

홍콩의 삶을 광뚱어로 풀어내는 새로운 소설을 기대한다.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고 싶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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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5-07-16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기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 책을 읽고 홍콩을 한번 여행해 보고 싶네요.
 
배를 엮다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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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제목은 'Fune-o amu'다.

아무...는 옷감을 짜다, 책을 엮다...등에 쓰이는 동사인데,

배를 엮는다는 말은, 이 소설의 중심 소재인 '대도해' 사전을 만드는 일을 비유한 말이다.

 

일본인들의 소설 소재라고 해도 참 특이하다.

특히나 자신들의 언어를 갈무리하는 사전.

그 사전을 '언어의 바다를 건너는 배'로 비유하고,

<언어의 바다를 건너는 큰 배>라는 의미로 '대도해'라는 사전을 엮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심야 식당'같은 만화에서도 잘 드러나듯,

일본 사람들의 경쾌한 터치가 이 소설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오타쿠같은 장인의 기질에 대한 경탄으로 이 소설은 가득하다.

주인공의 이름은 그야말로 '진지함'의 대명사, 마지메(眞面目)다.

우리말로는 진면목이고, 일본어로는 진지함(성실함)의 뜻이다.

 

십여 년의 시간을 사전 만들기에 바치는 사람들의 순정을,

가벼운 이야기들 속에서 녹인 이야기.

한국 소설에서 만나기 힘든 소재가 아닐까 싶어,

한켠 부럽기도 하다.

 

언어의 바다에 떠오르는 작은 빛들을 모으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망막한 바다를 앞에 두고 우두커니 서있는 사람들의 고군분투 스토리,

재미있는 한 편의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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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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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가 아닌,

백 년 만에 다시 탄생한 앤터니 호로비츠의 셜록 홈즈, 그 두 번째 책.

 

폭포에서 실종된 셜록 홈즈와 모리어티.

그들을 뒤쫓는 런던 경시청의 존스 경감과 체이스.

 

그들의 재미있는 추리와 위기를 따라가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책갈피를 넘기게 된다.

 

깜짝 놀랄 결말의 반전 역시 셜록 홈즈의 광팬인 작가답다.

 

경감님이 홈즈고 제가 왓슨이다, 이 말씀이죠?

뭐 괜찮군요.

어쨌든 그 두 사람이 남긴 공백을 채워야 하니까요.(258)

 

소설에서 창조한 인물 중,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형상화에 성공한 인물이 셜록 홈즈가 아닐까...

 

올 여름엔 셜록 홈즈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야금거리며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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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대산세계문학총서 62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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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노벨문학상이든 이상문학상이든 별달리 찾아 읽을 만한 감흥이 없는데,

여기저기서 가끔 쉼보르스카의 시가 인용되는 걸 보고 사 두었다가 몇 년에 걸쳐 야금거리며 읽었다.

 

그이 시의 주제는 인생 전체다.

인생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고,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원어로 읽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시'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과 시작... 역시 그렇다. 원어로 발음한다면 훨씬 다른 뉘앙스를 얻는 단어일 것이다.

 

그이 시를 읽는 일은,

삶에 대한 간단한 수필을 읽는 것과 같다.

시적 감수성을 살린 수필.

 

사실상 모든 시에는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다.

 

바스락거리고, 반짝거리고,

흩날리고, 흘러가는 것들이

단어에 실려 온다면.

움직이는 그림자를 가진

가상의 불변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433)

 

인생은 모든 순간을 모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모든 삶은 순간의 적분이고, 모든 시 역시 '순간'의 모음이다.

 

시를 좋아한다는 것-

여기서 '시'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여러 가지 불확실한 대답들은

이미 나왔다.

 

몰라, 정말 모르겠다.

마치 구조를 기다리며 난간에 매달리듯

무작정 그것을 꽉 부여잡고 있을 뿐.(어떤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부분)

 

재미있는 비유다.

왜 꽉 부여잡고 있는지 스스로 모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시를 좋아하고, 쓰게 되는 이유.

내가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이유 역시 그러니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서서히 이 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리.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그보다 더 알지 못하는

결국엔 전혀 아무 것도 모르는 이들에게.

 

원인과 결과가 고루 덮인

이 풀밭 위에서

누군가는 자리 깔고 벌렁 드러누워

이삭을 입에 문 채

물끄러미 구름을 바라보아야만 하리.(끝과 시작, 부분)

 

인터넷에서 '너 늙어 봤냐, 나 젊어 봤다'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나이 먹어 보면 보이는 지점이 있는 것.

그러나 모든 걸 알지는 못한다는 것.

그런 생각들을 글로 잡아내는 시인이다.

 

인생이란... 기다림..

리허설을 생략한 공연.

사이즈 없는 몸.

사고가 거세된 머리.

 

내가 연기하고 있는 이 배역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잘모른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역할은 나만을 위한것이며,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

 

무엇에 관한 연극인지는

막이 오르고, 무대 위에 올라가야 비로소 알수 있다.

 

인생의 절정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늘 엉망진창이다.

주어진 극의 템포를 나는 힘겹게 쫓아가는 중.

즉흥 연기를 혐오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임기응변으로 상황에 맞는 즉석 연기를 해야 한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사물의 낯설음과 부딪쳐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내 삶의 방식은 언제나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려 있다.

내 본능은 어설픈 풋내기의 솜씨.

 

긴장 탓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그럴수록 더 큰 모멸감이 되돌아올 뿐.

정상 참작을 위한 증거들이 내게는 오히려 잔이하게만 느껴진다.

 

한번 내뱉은 말과 행동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법.

밤하늘의 별들을 미처 다 헤아리지도 못했다.

서두르고 덤벙대다가 잘못 잠근 외투의 단추처럼

갑작스레 찾아온 우연이 빚어낸 안타까운 결과.

 

어느 수요일 하루만이라도 미리 연습할 수 있다면,

어느 목요일 하루만이라도 다시 한번 되풀이할 수 있다면!

하지만 금요일이 되면 벌써 새로운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어김없이 나를 찾는다.

그러곤 묻는다. - 자, 모든 게 이상 없죠?

(잔뜩 쉬어 터진  거친 목소리로

막 뒤에서 헛기침으로 미리 귀띔을 해주는 일조차 없이.)

 

지금 이 상황을 임시로 마련된 무대 위의 간단한 오디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는 정교한 무대장치 아래 서서

모든 사물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배치되었는지를 똑똑히 보고 있다.

구석구석 놓여 있는 소품들의 정확성과 견고함은 가히 충격적이다.

무대를 회전시키는 장치는 벌써 오래 전부터 작동 중이다.

저 멀리서 성운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아, 이것은 틀림없는 개막 공연이다.

이 순간 내가 시도하는 모든 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저지른 나의 행동, 나의 말, 나의 동작으로 영원히 굳어져 버린다.(인생이란... 기다림, 전문)

 

인생이란 늘 낯설고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이면서도,

때때로 비참하거나 슬프지만은 않다.

그 '경이로움'을 찾아내는 시인이 쉼보르스카다.

 

무엇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한사람인 걸까요.

나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요.

어째서 내 생은 단 한번뿐인 걸까요.

모든 시간을 가로질러 왜 하필 지금일까요.

모든 수평선을 뛰어 넘어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요.

나 자신을 나로 채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왜 하필 여기 앉아서

어두운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독백을 읊조리고 있는 걸까요.

마치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으르렁대는 성난 강아지처럼.(경이로움, 부분)

 

삶의 우연성.

그것은 비참함과 겹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한다.

 

너는 살아남았지, 맨 처음이었기 때문에

너는 살아남았지, 제일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혼자였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만일의 경우, 부분)

 

아, 만일의 경우...

삶에서 이런 경우란 얼마나 많았나...

돌아볼 시점이 되면, 내가 어디 서있었던지를... 생각하지 싶다.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나는 바란다. 그것이 하나의단어로 표현되기를.

지금 내가 듣고 쓰는 것, 그것으론 충분치 않다.

터무니없이 미약하다.

우리가 내뱉은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어떤 소리도 하찮은 신음에 불과하다.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저란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단어를 찾아서, 부분)

 

인생의 경이로움은 불확정성에 있다.

모든 인생이 다르다.

선재동자가 찾아다닌 보살은 수십 명에 불과하지만,

세상을 꽃처럼 뒤덮고 장엄하고 있는 <화엄>의 세상의 주인공은, 모든 인류여야 한다.

그 꽃이 금세 지고 만다.

그리고 유전자만 남길 뿐, <두 번은 없다>

 

 

 

 

 

아마 그의 시 중, 가장 자주 회자되는 시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유한성, 그래서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는, 카르페 디엠~

 

1923년에 태어났으니, 그이 젊은 시절은 그대로 2차대전의 지옥이었을 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살아 있는 자를 포옹하는 것, 감싸 안는 것

그를 붙잡을 수 있는 건

오직 심장의 박동 뿐

 

시효가 만료된 죽음과의 포옹 속에서

그는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다.(살아있는 자, 부분)

 

극한 앞에서 '실존'은 가냘프다.

한 떨기 풀잎처럼 흔들거리는 실존은 아름답지도, 향기롭지도 않다.

그저,

거기서 흔들거리며 피어있을 따름인데,

 

간혹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풀잎은 꺾이고, 짓밟힌다.

 

그걸 보면서, 낱말을 찾아내려 애쓰는 시인의 글을 읽는 일은,

인간으로 태어나 누리는 작은 호사라고나 할까?

 

거미줄에 매달린 이슬 방울들을 탐닉하는 왕거미처럼...

 

<여기>라는 그의 시집 표지에서는

'지금'을 붙잡은 왕거미의 행복한 한때가 포착되어 있는 것 같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말따위나 하는 '담뱃값인상론자'는

저 '지금'에 대해서 거미 똥만큼이나 이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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