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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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즘 켄폴릿의 '거인들의 몰락'을 읽고 있는데,

이언 매큐언 역시 영국인이라 그런지, 설명이 좀 장황하다.

켄폴릿은 스토리라인도 굵직굵직하고 전개가 빠른데, '속죄'는 지루하다.

 

1부에서는 '독선적 시선'의 불편함이,

2부에서는 '피해자가 겪는 참상'이

3부에서는 '자기중심적 속죄'가 중심이다.

 

모티브가 흥미로운데 반해 서술이 장황하고 지루해서

그 섬세한 부분까지 읽어내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문체의 특성과 상관없이 이 소설이 계속 찝찝, 불편한 것이 왜일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비슷한 불편함을 이야기한 것이 이창동의 영화 '밀양'이 아니었나 싶다.

유괴 살해당한 피해자 어머니가 고통끝에 용서를 하러 갔더니,

가해자 새끼는 하느님 앞에서 속죄하고 참회하여 사함을 받았다는 씨월렁을 남긴다.

피해자 어머니는 뺑 돌아서 '거짓말이야'로 교회를 평한다.

 

마치 이 소설은 밀양이란 소설을 그 '범죄자'의 입장에서 쓴 꼴이다.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방법'이 보이고,

해결하려는 마음이 없는 자에게는 '변명'이 보인다고 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일본은 변명으로 일관해 왔고,

그것을 대승적 견지에서 용서하겠다는 정부가 있었다.

그 자들도 역시... 가해자의 입장을 무지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피해자의 시선이다.

가해자의 시선으로는 어떤 '방법'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늘 '변명'만 가득한 악어의 눈물로 일관하게 된다.

 

이 소설의 불편함은 그런 데서 오는 것이다.

 

속죄란, 대속할 수 있는 정도일 때 가능하다.

그 대속은 하느님 앞에서 비는 마음이 아닐 때,

인간대 인간일 경우에는,

반드시 피해자 입장에서 그려져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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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환송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넬리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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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더러운 돈이라도 마다않는 저질 변호사인 미키 할러와

명형사 해리 보슈가 뭉쳤다.

 

미키 할러는 검사측이 되고 보슈가 멋진 파트너 수사관이 된다.

 

24년만에 새로이 드러난 증거로 <파기환송>된 사건.

증거나 증인들이 거의 인멸된 상황에서 스토리는 보슈의 멋진 스토리로 이어진다.

 

법정 드라마도 멋지게 써내는 코넬리의 능력이 돋보인다.

쌉싸래한 인생의 쓴맛을 느끼게하는 그의 소설은 언제 읽든 뇌에 착착 감긴다.

 

로이스는 다이빙 보트가 떠나버린 후

물속에 홀로 남겨진 사람 같았다.

물 위에 떠있으려 애쓰고는 있었지만

망망대해에서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이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468)

 

프로파일러 월링 요원의 연쇄살인 힌트는 소설을 더욱 쫄깃하게 만드는 맛이 있다.

갈수록 미궁으로만 빠지는 현실.

정의나 옳음은 늘 패배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정치현실에서,

정의가 승리하는 장르소설만한 대체물을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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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계절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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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장르는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겠지만,

원어 제목인 '더 시크릿 히스토리'처럼 비밀스런 역사의 한 장에 대한 골똘한 되돌아봄이다.

살인사건이 등장하니 장르소설이기도 하고,

청춘 남녀가 등장하니 청춘소설이기도 한데,

난 이 소설을 읽으며 나의 스무 살 시절로 잠시 되돌아가기도 했으니 청춘 학교소설이라 부르겠다.

 

프롤로그에서 이미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힌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필연적이지 않지만 시절인연을 따라 인과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이듯이,

필연적이지 않아보이지만 다섯 명의 매력적인 고전동아리를 흠모하던 평범한 주인공은 그들과 어울리게 된다.

 

나 역시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고 객지에서 살아보는 것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기에,

리처드라는 평범한 청년이 자기와는 레벨이 달라보이는 동아리원들과 줄리언 교수에 금세 동화되어버린 것에 실감을 느끼며 읽었다.

 

추위에 파르르 떠는 산능금꽃 위로 하늘빛이 유난히 짙던 그날 밤에 내렸던 눈이 한기가 되어,

하늘에 걸린 그 산 위에 머물게 될 것임을 예감했다.(19)

 

풍크툼이라고 했던가.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웠던 한 순간의 추억이었을 산능금꽃 위의 하늘빛이,

그에게는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을 풍경'으로 남는 것이다.

스스로는 볼품없다고 자격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소설은 참 부러움의 대상일 수도 있다.

이윤기 씨가 정성껏 번역을 했겠지만, 라틴어와 여러 가지 서양말들을 부려쓴 것들은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언감생심 불가능이다.

 

그때 처음 보았지만 헨리의 앞니 사이에 틈이 벌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틈이 그의 웃음을 더웃 돋보이게 했다.

어떤 사건이 생기고, 그 사건을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갑작스럽고 또 이상할 경우,

사건의 당사자는 기이하게도 초현실적인 느낌에 사로잡히게 될 때가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행동은 꿈에서 본 것인 양 하나씩 끊어져 보이게 된다.

그 경우 하찮은 것, 작은 것은 확대되면서 배경으로부터 선명한 초점으로 다가선다.(183)

 

다들 그랬을까?

열아홉까지 학교에 살았을 때는 가지지 못했던 경험을,

스물부터 가지게 되면서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남게 되는 추억들을 가지게 될까?

 

이 소설은 그런 스물 시절의 생생함을 전해주는데 그 묘미가 있는데,

부유하고 멋진 외모를 가진 세련된 그들 그룹과

평범한 리처드의 세계는 젊은이들의 상상의 세계를 그리는 데 뛰어난 은유인 듯 싶기도 하다.

나 또한 그러했으니까. 나 역시 리처드였고, 그들을 부러워하며 쫓아다닌 시절이 있었으니까.

 

인생이란 살기에 따라

국면국면이 이렇듯이 극적일 수도 있는 법이야.

그래, 인생은 어찌 보면 소설 같아.(하, 140)

 

인생이 소설 같지만, 소설도 인생같기도 하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 위안도 받고, 반추도 하면서 사는 것이다.

 

섬세하면서도 구역질이 나는 수백마리의 지렁이

맹목적으로, 그리고 비에 씻긴 판석 위에서 절망적으로 뒤엉겨있는 수백 마리의 지렁이...(하, 372)

 

인간의 모습이 그러하다.

엉겨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들처럼, 맹목적으로 살아간다.

이런 은유를 들이미는 젊은 작가라니... 참 신비롭기도 하다.

 

그는 왜 이 이야기를 요즘말로 심장이 쫄깃할 소설로 썼을까?

아마도 <칼레파 타 칼라> - 아름다움은 공포다 - 라는 말에 매혹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장르 소설의 그 공포스러움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되는 데 공감하게 되었을지도.

 

이 소설은 하이틴 로맨스와 장르소설이 조금씩 비치기도 하지만,

그 비밀스런 역사 속에는 삶의 단면들이 그윽히 배어나기 마련이어서 젊은 작가의 공력을 느끼게 한다.

지난 번에 읽은 '황금방울새'에 비하면 이 소설이 내겐 나아 보였다.

 

파장과 에너지가 아니라면 죽음은 대체 무엇일 수 있는가.

아득한 옛날에 사멸한 별에서 지구로 날아오는 별빛같은 것이 아니면 대체 무엇일 수 있는가.

 

유령은 우리 꿈을 통해 나타난다. 왜냐.

꿈을 통해서만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아득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날아온

사멸한 별빛이 투사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477)

 

삶은 그리하여 꿈이고,

죽음이라는 관념이나 현실 역시 사멸한 별빛의 투사에 불과한 것.

이런 상념을 골똘하게 해주는 이 책은,

젊은 날들을 좀 곱씹어볼 만한 나이가 되어 읽으면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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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가공선 창비세계문학 8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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蟹工船(카니고오센) - 당 생활자...

 

게공선은 러시아 혁명 직후,

일본의 홋카이도 지역에서 벌어진 '게잡이 배' 안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일본의 공산주의 문학의 수작으로 일컬어져,

1980년대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읽히곤 하던 책이다.

 

일본-조선의 식민 지배는 우리가 아는 바 그대로지만,

일본 국내에서도 자본-노동의 관계는 철저하게 착취하는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나 혼슈가 아닌 홋카이도 지역을 어떻게 차별하는지도 읽을 수 있다.

 

일본에서 젊은이들에게 게공선이 다시 읽히고 있다고 한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다시 혁명의 시대가 도래할지 모를 일이다.

 

게공선은 러시아 대게를 잡는 이야기이므로, 게를 가공하는 배라기 보다는 게를 잡는 배에 가깝다.

예전 번역본은 '게공선'인제 '게 가공선'이라는 제목이 좀 어색하지 않나 싶다.

 

그리하여, 그들은, 떨치고 일어났다. - 다시 한 번...

 

이런 유명한 마지막 구절은 다시 읽어도 짜릿하다.

 

바닥 계층의 저질스러운 욕설이나 비루한 말들도 재미나게 번역을 잘 했다.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노동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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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 라플라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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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주년 기념작,

지금까지의 소설을 깨부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호객을 했으나... 글쎄다. 읽어보니 평범하다.

히가시노게이고는 사람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그리기도 하고,

범죄 심리를 날카롭게 파헤치기도 해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몰입하게 되는 작가인데,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처럼... 그의 전작들에서 이런저런 부분들이 짜깁기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주제를 강조하려는 말도 작위적이다.

 

이 세상은 몇몇 천재들이나 당신 같은 미친 인간들로만 움직여지는 게 아니야.

얼핏 보기에 아무 재능도 없고 가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중요한 구성 요소야.

인간은 원자야. 하나하나는 범용하고 무자각적으로 살아갈 뿐이라 해도 그것이 집합체가 되었을 때,

극적인 물리법칙을 실현해내는 거라고.

이 세상에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어, 단 한 개도.(497쪽)

 

물리학적 원리를 이용하여 미래를 추측하는 것은 <탐정 갈릴레이>와 비슷하기도 하다.

그가 드디어 뇌과학까지 파고 들었으니,

앞으로 더 흥미로운 소설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 이성부의 시가 생각났다.

산길을 걸으면서,

힘들어도 한 걸음씩 걷는 일의 소중함을 생각하던 시.

이 길을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를 나는 안다
이렇게 길을 따라 나를 걷게 하는 그이들이
지금 조릿대밭 눕히며 소리치는 바람이거나
이름 모를 풀꽃들 문득 나를 쳐다보는 수줍음으로 와서
내 가슴 벅차게 하는 까닭을 나는 안다
그러기에 짐승처럼 그이들 옛내음이라도 맡고 싶어
나는 자꾸 집을 떠나고
그때마다 서울을 버리는 일에 신명나지 않았더냐
무엇에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도
힘이 다하여 비칠거리는 발걸음들도
무엇 하나씩 저마다 다져놓고 사라진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나는 배웠다.
그것이 부질없는 되풀이라 하더라도
그 부질없음 쌓이고 쌓여져서 마침내 길을 만들고
길 따라 그이들 따라 오르는 일
이리 힘들도 어려워도
왜 내가 지금 주저앉아서는 안되는지를 나는 안다  (이성부, 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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