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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뒷모습 ㅣ 태학산문선 401
주자청 지음, 박하정 옮김 / 태학사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은 온갖 이미지와 추억과 향기로 이루어진 집합체이지만, 남자들을 터프한 남자, 느끼한 남자, 쪼잔한 남자, 괜찮은 남자, 그리고 담백한 남자 들로 나누는 게 내 마음이다. 내 마음대로 특별한 기준 없이 정하는 거지만, 난 쪼잔한 남자를 제일 싫어한다.
쪼잔한 남자들은 자기 줏대 없이 윗사람의 지시에 <예스맨>으로서 충성을 다하는 듯하지만, 사실 조직에 와서는 아랫사람들에게 상사로서 횡포를 부린다. 히스테리컬해지기는 예사고 약자에겐 언어적 폭력도 자주 일삼는다. 그리고 특히 돈문제에 있어서 추잡하기 짝이 없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식의 자아도취에 빠져서, 자기가 저지르는 부정에 대해서 문제 의식을 전혀 못 느끼는 인간형이다. 이런 남자 상당히 많다.
다음은 터프한 남자인데, 난 이런 자들도 싫어한다. 간혹 술자리에서나 사소한 감정상 수틀리는 점이 있으면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고성을 지른다. 터프한 것은 점잖지 못한 면을 상당히 함유하고 있는 속성이기 때문에 인간적이지 못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철부지 계집애들은 이런 터프함에 현혹될 수도 있을지 모르나, 결코 동반자로서, 직장 동료나 상사, 부하직원으로서 바람직한 인간형은 아니다. 터프함을 누르는 것은 그 사람을 인정해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느끼한 남자가 있다. 느끼남들의 공통점은 쪼잔하지 않다는 것이다. 돈 쓸 데를 알고, 점심 살 줄을 안다. 인심 잃지 않는 법도 알고, 동료 위할 줄도 안다. 일도 나름대로 효율적으로 처리하며, 상사들에게 인정적인 부하로, 부하직원들에게 능력있는 상사로 행동할 줄 안다. 단 한가지 단점이라면, 이성을 대하는 면에서 그야말로 마가린 버터 삼세쯤 되는 매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을 바라볼 때, 특이하게 편협된 이들이 있다. 정말 왜곡된 사유 구조다. 우리 나라의 장남들이 그렇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괜찮은 남자도 있다. 위의 단점들이 별로 없는 사람. 쪼잔해서 욕먹지 않고, 터프해서 짜증나지 않고, 느끼하지 않은 남자. 그래서 괜찮다고 하지만, 실상 괜찮은 남자는 우유부단하다. 속으로 쪼잔하고, 드러내지 못하지만 은근히 터프하고, 내면이 굴절된 의식으로 가득할 수도 있다. 괜찮다는 말은 그럭 저럭 봐줄 만 하긴 하지만, 데리고 살긴 힘들다는 뉘앙스를 담은 말이다. 아무래도 단점은 적지만, 매력 또한 적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로는 담백한 남자가 있다. 나도 담백한 남자가 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쪼잔한 남자에 가깝다. 터프할 능력은 못 되고, 느끼한 생각으로 가득하지만 느끼할 재주가 부족하고, 남들은 괜찮다고 느끼지만, 내가 보는 나는 모순덩어리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간절하게 담백한 남자가 되고 싶다. 인간으로서 따스한 마음을 가진,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감성을 가진, 늘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 그런 남자 말이다.
내가 아는 담백한 남자가 몇 있다. 그 중의 한 선배는 이미 칠년 전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내가 삼십 년 넘게 살면서 만난 가장 담백했던 남자였는데... 그 선배와 나는 두 해를 같이 하고 영원한 이별을 맞고 말았다. 그리고는 윤오영 선생님의 글이 참 담백하다. 치옹 선생의 글을 읽으면 그 분의 담백한 인격의 향취가 가슴으로 전해온다.
정말 오랜만에 담백한 남자를 만났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던 <아버지의 뒷모습>으로 유명한 주쯔칭(주자청)의 수필집 <아버지의 뒷모습>.
그의 글은 풍류와 낭만, 멋으로 흐드러진다. 그러나 그의 선 자리는 결코 부유하여 고급 요정으로 돌아다닌 삶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일상인으로서 공원을 산책하고, 친구와 배를 타고 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감방에 들어간 죄수라도 한 명은 바깥 길의 진흙탕을 내다보며 불평을 씹는 사이, 다른 한 명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는 이야기와도 같이,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아취는 그의 인격에서 배어나오는 옅은 한지와도 같은 빛깔이다.
그의 글에는 <수퍼 에고>가 살짝살짝 쉬고 있다. 그 사이사이로 <에고>가 자유로이 헤엄치며 세상을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밀크 캬라멜처럼 녹여내는 재주가 있다. 이 재주는 글을 다듬어 나타낸 글재주가 아니라, 수퍼 에고가 억압함으로서 세상 보는 시각을 굴절시키는 우리에 비해, 자유로운 감정이 메마르지 않고 촉촉하게 젖은 상태 그대로 드러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아하>에 대한 아쉬움, 죽은 아내 '겸'에게 보내는 편지 들을 읽으면서 담백한 남자 주자청의 순수한 눈으로 나도 세상을 느끼는 가벼운 자유로움을 함께 느껴 본다.
햇살 내려앉은 갈색 잔디밭엔 눈길을 오래 머물리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는 연둣빛 새순들이 가느다란 머릿칼처럼 비죽거리고 앉은 봄날 오후, 시공을 초월하여 담백한 남자의 영혼을 마시는 마음은 싱그럽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