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키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 / 창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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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히가시노게이고의 마력은,

신선한 스토리의 발단 이후로,

이야기가 냅다 내달리는 글의 힘에 있다.

 

그런데, 이 책 역시,

참신한 스토리로 시작하지만,

실종된 여친을 찾아 나서는 찌질한 남자의 이야기부터는

내가 읽기 싫어하는 류의 지지부진함이 이어진다.

 

웃을 일이 아니야.

쳇, 기왕에 피를 나눈 사이라면 어디 부잣집 도련님으로 나타났으면 좋았잖아.(94)

 

미래에서 온 아들이라는 설정에,

아버지라는 작자가 내뱉는 언사는 철부지다.

아들은 얼마나 실망했을까.

 

남에게 빌붙을 생각만 하고,

한심하지 않느냐고 묻는 거예요.

내가 보기에는 한심해요.

멋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남의 음식까지 훔쳐 먹다니 들개랑 다를 게 없잖아요.

그래. 나는 들개야.

개나 고양이랑 똑같은 인생이야.(130)

 

이런 아버지의 인생에 주는 아들의 교훈.

 

어머니가 될 레이코에게

달려온 도키오가 들려준 말은...

 

계속 열심히 살아 주세요.

분명히 훌륭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470)

 

도키오라는 이름은,

때 시, 살 생... 時生.... 시간을 살아가는 아이다.

 

삶이란, 시간을 살아가는 일인데,

자칫하면, 도키오의 아버지 다쿠미처럼 되는대로 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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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자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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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자 가가 형사가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탐문을 다닌다.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들은 각자 독립적이면서,

서로 조금씩 공통인수를 가지고 있어서 재미있다.

 

문제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인가 싶어 좇다 보면,

사실은 결정적 살인 사건의 단서이기보다는,

인간 관계의 꼬인 지점에서 가가 형사의 인정이 돋보이게 되는 소설.

 

가가씨는 사건 수사를 하는 게 아니었나요?

물론 하고 있죠.

하지만 형사가 하는 일이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잡니다.

그런 피해자들을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278)

 

유추가 되는 사물들도 예사롭지 않다.

 

삼각기둥 시계의 구조는

스승님네 가족과도 같다.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있다.(188)

 

사소한 소재들 하나하나도

뒷이야기의 복선이 되고,

신선한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전 말이죠.

이 일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게 있어요.

사람을 죽이는 몹쓸 짓을 한 이상 범인을 잡는 것은 당연하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철저히 파헤쳐 볼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걸 밝혀내지 못하면 또 어디선가 똑같은 잘못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 알아낸 진상으로부터 배울 점도 많을 겁니다.(426)

 

가가의 이런 말은 그저 훈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 또 하나의 매듭을 풀게 하는 것이다.

결자해지의 방식으로...

 

이야기와 이야기가 조금씩 연쇄적으로 겹치는 기법도 재미있고,

사람간의 갈등을 미묘한 감정의 동요를 통해 녹여내는 스토리텔링도 은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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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과 영혼의 경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송태욱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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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책의 제목은 '사명과 혼의 리미트'이다.

여기서 '사명'은 어떤 일에 대한 철두철미한 소명의식을 갖는다는 이야기일 터이고,

그것은 주인공 히무로 유키의 아버지 경찰관의 사명,

 그리고 신경외과 의사 니시조노의 사명,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의혹에 대한 유키의 사명,

또는 여친의 죽음에 대한 조지의 사명,

범인을 잡아야 하는 형사 나나오의 사명,

그리고 온갖 혼선 앞에서도 최선을 다했던 의료 관계자의 사명... 등으로 형상화되어 등장한다.

 

그러나, '타마시이'는 번역처럼 '영혼'이나 혼령의 의미보다는,

여기서는 '양심'에 가까이 쓰였다.

좋아하는 여자의 남편의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의 양심,

여친의 죽음의 책임을 묻는 사나이의 양심,

그리고 대기업  CEO의 양심...

 

그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소설이 주요 내용이다.

 

수련의 신분인 유키는 아직 배우는 중이라 어정쩡한 신분이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야하는 자신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보호자들의 모습에서 '사명감'에 대한 위로를 얻는다.

 

당직실에 드러눕고 나서도 가벼운 흥분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수술 직후에 느끼는 고양된 기분과는 전혀 달랐다.

기쁨과 상쾌함이 가슴속을 채우고 있었다.(356)

 

어떤 목표를 이루거나 사업에 성공했을 때의 쾌감과는 전혀다른 흥분...

이것은 어떤 보수나 결과로 갚아질 수 없는, 그런 '사명'의 완수에서 오는 흥분이다.

 

당신이 특정 인물의 목숨을 노리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병원에는 그 외에도 많은 환자가 있다.

양심이 있다면 지금 당장 이런 무모한 범행을 중단하라.(449)

 

잔인한 사람이라면, 또는 자살테러범이라면

이런 정도의 멘트에 마음을 바꾸진 않는다.

 

양심이나 '타마시이(혼, 마음)'의 한켠에서 물결지는 소리가 세상을 바꾼다.

 

직업에 대하여 타성에 젖게 되는 이즈음,

월급쟁이로서의 생활 외에도,

누구나 가져야 할 사명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사명과 양심이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그 마찰하는 지점이나 경계에서 사랑도, 추억도 돋아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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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8-31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부가 될지도 모르는 남자와 아버지의 죽음 ㅡ사이에서 그갈등은 신파가 되기 좋은구조임에도 어찌나 감동있게 빠져나가던지 !
 
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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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라는 직장 여성이

친구 가나코가 맞고 산다는 걸 알고 남편을 살해한다는 정도는 알고 읽었다.

 

일본 내의 중국인들 살아가는 모습도 재미있게 묘사되고 있다.

다소 뻔뻔스러운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담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재미도 있다.

 

뒤로 갈수록 조마조마... 아슬아슬하다.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은 상상속에서만 존재한다.(56)

 

앞의 절반은 나오미의 시선으로, 뒤의 반절은 가나코의 시선으로 전개되는데,

온갖 막장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독자의 심장을 죄어 오지만...

 

역시 오쿠다 히데오다.

 

결말을 어떻게 할지

작가도 마지막까지 망설인 소설입니다(493)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통쾌한 부분도 있다.

 

실제 인생에서는 씁쓸한 결말이 흔하지만,

아슬아슬한 결말이 짜릿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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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이브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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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시리즈의 2탄.

매스커레이드 호텔이 장편이라면, 이 책은 단편이 4편 실려 있다.

 

형사 닛타와 호텔리어 나오미가 주연인데,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탄탄함을 기대하기보다는,

흥미로운 인물들의 개성이 돋보이는 연작이다.

맛을 더해주는 인물로 '호즈미 리사'라는 여형사가 새로 등장하는 일도 재미있다.

 

매스커레이드(가면)은 인간이 혼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쓰게 되는 '탈(페르소나)'이다.

그 가면은 형사나 호텔리어처럼 공식적인 직업으로서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호텔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정식 자기 이름을 잘 쓰지 않는다거나,

감추고 싶을 때는 카드를 사용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잘 꿰뚫은 단어다.

 

그 '이브'는 전야제나 전주곡 정도가 되겠다.

 

살다 보면

누구나 가면을 쓰게 되지만

그 표정은 어느덧 제각각의 모양으로 일그러진다.

세월과 사람과 상황에 부대끼면서 제각각 일그러졌기에

더욱 추하고 더욱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애써 지켜주려는 영웅의 가면이 있는가 하면

이기심으로 그것을 이용하려는 추한 가면이 있다.

선량한 가면 밑에 감춰진 추한 민낯을 똑똑히 봐버렸는데도

그것을 미처 다 파헤쳐내지 못하는 분함도 있다.

소설의 성공을 위해 씌워준 복면과

소중한 가족을 위해 뒤집어쓴 가면,

열광하는 자들이 쓴 위장의 가면이 뒤얽히면서 흥미로운 추리의 공간이 펼쳐진다.(342, 옮긴이의 말)

 

단편들이 연작으로 네 편 묶여 있고, 에필로그까지 쳐도 다섯 편이라,

마음 편하게 읽어갈 수 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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