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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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씌어있는 문구, 젊은 날 슬프고 감미롭고 황홀한 사랑의 이야기, 를 크게 공감할 수는 없다.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일관되는 분위기는 있었지만, 연애소설이 아니라 성장소설에 가깝게 느껴졌다. 17세에서 시작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주변 인물들의 죽음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이미 삶에 깊숙이 들어와 앉아 있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시종 냉소적인듯 하다가 따스하고 이성적인듯 하다가 충동적이다. 우울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다. 우리의 젊은 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여러 사람들의 죽음이 나열되면서 마치 제목의 '상실'이 시사하는 것이 죽음인가 하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이 두꺼운 고백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는 상실감'을 외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 내 존재의 미확인, 군중 속의 고독감으로 젊은 날은 방황을 거듭한다. 사랑한다는 건 어쩌면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픈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것을 찾아 주인공은 거리를 헤매고, 여자친구를 만나고, 육체적인 접촉을 하고, 많은 책을 읽고, 죽어가는 분의 침상에서 오이를 와삭와삭 먹는다.

살아있음은 죽음을 보았을 때 더 생생해진다. 우리는 무수한 죽음을 딛고 생을 꾸려가며 행복하게 살아가려 애쓰고 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채. 미도리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혼란에 빠지는 마지막 장면은 꽤 인상적이다.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랄 것도 없이 걸음을 채촉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아무데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의 삶이 그대로 혼란이 아닐까? 무엇하나 확실한 것도 정확하다할 것도 없이 애매모호한 시간의 연속이다. 상실의 시대는 젊은 날의 특권이 아닌 것 같다. 주인공은 미도리에게 '온 세계에서 너말고 내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너와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라며 전화선을 타고 간절히 목소리를 흘린다. 전화를 걸고 싶은 나만의 '미도리'가 있다면 상실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서로 위안이 되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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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6 16: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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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6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뇌 - 전2권 세트
열린책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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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 <최후 비밀>은 '우리의 행동을 끊임없이 유발하는 동기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다. 그것은 인간의 뇌 중, 정중전뇌관속이라는 미세한 부분이다. 이것은 쾌감의 중추이며 고통의 중추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 또한 아이러니하다. 이 쾌감의 중추에 지속적인 자극을 주기 위해 우리는 행동하고 결국 그것들의 연속으로 우리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을 풀어내기 위해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빠른 템포로 엇갈리게 이어가는 구성으로, 엽기적이라할 수 있는 신경의학분야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특정 뇌 부위에 미세전극을 삽입해 사람의 동작에 대한 뇌의 계획을 탐지하게 하는 컴퓨터 시스템은 장애인들을 위한 장치로 머지않아 실현 가능한 분야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분야는 쾌감의 중추를 전극을 통해 자극하여 현재를 최대한 즐기려드는 행위가 인간 의지의 소멸을 예고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마약과도 같은 것이며 그 자극의 강도는 점점 더 강해져야만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인간 행동의 열쇠를 찾아가는 과정에 뤼크레스와 이지도르가 정리한 것들 중에는 고통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생존의 욕구, 인간존재에 대한 의무감, 안락의 욕구(돈), 분노, 성애, 습관성물질(담배, 술, 마약) 그리고 개인적인 열정과 사랑의 감정 같은 것이 나온다. 그러나 인간이 갈망하는 절대적인 보상은 최후 비밀에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숨가쁘게 전개된다.

시공을 활발하게 넘다들며 두 남녀가 발견한 최후비밀, 즉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는 모든 동기를 아우르는 최상위의 동기는 '의식의 확대'이다. 이것은 우리 내부의 세계를 발견하는 순간이며, 과학과 시, 좌뇌와 우뇌, 감성과 지성의 결합이다. 우리는 시공간적 의식의 확대로 우주의 현이 연주하는 오묘한 음악을 들울 수 있다. 이 때의 느낌은 '나'의 자아를 초월하여 활짝 열리는 온화하고 선량한 그것이다.

인간이 위대함은 컴퓨터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웃음...꿈...어리석음'은 인간만이 지니는 미덕이랄 수 있다. 꿈을 꾼다는 것. 이것은 우리 자신을 다시 format하는 일이라고. 꿈을 통해 과학의 발전도 가능하며 문학을 위한 이미지들과 관념뿐만 아니라, 모든 속박으로부터의 일시적인 일탈을 꾀할 수 있다. 지식을 축적할 뿐인 컴퓨터는 인간의 미덕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이에 작가는, 쾌감의 중추를 끊임없이 그리고 적절히 자극하여 오늘을 즐기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열쇠는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뇌의 정중전뇌관속에 전극을 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로도 깊고 넓은 인식의 쾌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우주적 존재로서의 '나'를 인식하는 것이다.

'나'는 나 이상의 깊고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소중한 존재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나'의 존재의미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 나의 감성과 지성 그리고 육체까지도 하나가 되는 합일의 순간에 우리는 더할 수 없는 쾌감을 맛보며 진일보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받는다.

지금 이 순간, 숨쉬고 있는 공간, 함께 하는 사람들,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에 집중하고 그것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 행복의 최후비밀을 정복하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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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 개정판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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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은 여성 2위에 뽑힌 적 있는 저자의 매력은 한마디로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의 냄새였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자신이 찾고 있는 행복의 본질을, 우리 땅을 갈라놓고섰는 철조망 위의 푸른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오르는 새에게서 발견한다. 그리고 저 미지의 세계를 향해, 더 높이, 더 멀리,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고 싶다고 한다. 6년에 걸쳐 세계의 오지를 두루 돌아다니고, 우리 땅 해남 땅끝마을에서 통일전망대까지를 두 발로 밟고도 그에게 밟아야할 미지의 땅은 끝도 없는 듯하다.

그런 열망과 정열, 자신감에 찬 씩씩한 기상이 그가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미덕과 함께 닮고 싶다는 바람을 더 강하게 한다. '강박'은 '자유'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틀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회적인 통념에의, 자신에게 거는 완벽에의, 이미 짜맞춰져있는 발상에의, 몸과 마음에의 모든 '강박'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바람이 한비야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만의 속도로 내 마음과의 보조를 맞추어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인생의 여행에서 강박의 옷을 훨훨 벗어버리고 싶어진다.

이 책은 저자의 발걸음처럼, 그저 가볍고 경쾌하게 읽히는 장점이 있다. 좀더 심도있는 여행견문기를 읽고 싶은 분은 다른 책을 찾는 편이 나을 것이다. 여행을 떠날 때는 되도록 배낭을 가볍게 하기 위해 몇번의 점검을 한다는 저자가 빠뜨리지 않는 것은 일기장이다. 1999년 3월 2일으로 시작하는 저자의 일기장을 따라가면서 웃다가 화나다가 때론 진지하다가, 저자와 함께 잊고 있었던 우리의 참모습과 솔직하게 만나게 된다. 걷기의 힘든 여정에서도 시종 발랄함을 잃지 않는 저자의 거침없는 모습과 정도 눈물도 많은 여린 모습이,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긴다.

좁은 땅에 15평이나 되는 땅을 차지하고 있는 죽은 자들의 땅을 보며 저자는 장기 기증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토박이말이었던 우리 땅의 예쁜 이름들이 뜻도 이상한 한자어로 바뀌어 있는 것들을 발견하며 우리 땅에 원래의 이름을 찾아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도시의 소위 배운 사람들이 시골에 와서 함부로 버리고 가는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땅과 그곳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저자는 억울하게도 '무식한 아줌마'가 된다. 그리고 여행자의 주머니 사정이나 다른 형편을 전혀 고려할 수 없는 천편일률적인 우리나라 여관방에 대한 보고서도 웃지 못할 수준이다.

225mm의 작은 발에 가벼운 배낭 하나를 맨 저자를 따라 신발끈 바짝 매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그녀와 함께 떠나보니, 신난다. 그리고 결코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나를 되돌아보고 나를 친친 감고 있는 강박관념들 중 한가지라도 떨쳐버릴 수 있겠다. 당장! 생각만 하고 있을 시간에 저지르고 보자. 그러고 나서 후회해도 크게 손해는 아니다. 인생을 배우는 수업료라 생각하자. 벌써 한비야식 생각으로 물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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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중국견문록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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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한비야의 책을 이제 손에 들었다. 왜냐하면 매스컴이 떠드는 책은 한번쯤 의심을 하고 보는 습관이 있어서이다. 소문난 잔치집 먹을 것 없더라는 실망을 하기 싫어서였다. 그래서 나는 소위 베스트셀러들 중에서는 몇몇, 그것도 아주 나중에야 읽게 된다. 최근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감명을 깊이 받고 자신감을 얻었다기에, 그래 어떤 책이든 나름의 경험과 인식에 따라 다른 종류의 얻음이 있으리라, 기대하며 기꺼이 책을 펼쳤다.

처음부터 눈치보지 않고 톡톡 튀는 어휘로 써 내려가 쉽고 흥미롭게 읽혀지는 장점이 있다. 1년 과정으로 중국을 가게 된 목적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오늘을 사는 목표가 불처럼 명확하다는 점이 나로선 부럽기까지 하다. NGO에서 일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도 필요해서 중국어를 배우려한다고 하면서, NGO에서 일하는 것이 인류애나 뛰어난 봉사정신에서라기 보다는 그것을 통하여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니, 참 솔직하고 당당하다.

이 책은 관념이나 상상력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며 발로 뛰고 경험한 것들로 쓰였다는 점이 강점이다. 기행문 형식을 띈 책들 중에서도 유려한 문체와 수채화 같이 아름다운 관념의 언어들이 즐비한 것과는 달리, 배낭을 챙기는 방법에서부터 현지의 언어를 보다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까지를 철저히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베이징의 인산인해나 불난 호떡집 같은 풍경이 눈으로 보는 듯 재미있게(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중국인들의 삶에 접근하는 식에도 편견없이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친화되어 울고 웃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중국생활 1년에서 부족했던 대인관계에 대해서 솔직하게 아쉬워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좀더 현실적인 안목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음을 예리하게찌르기도 한다.

사람은 자신만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 세상의 계획표에 맞추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계획표에 따라 나만의 속도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그리 조급할 것도 없을 것 같다. 마흔을 넘은 나이라는 점을 따져본다는 것 자체가 고루한 생각이겠지. 한비야는 정말 오늘을 즐기며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나이란 어떤 나이인가, 어제 우리가 그렇게 하루 빨리 오기를 바라던 날이며, 내일 우리가 그렇게 되돌아가고 싶은 날이 아닌가' 저자는 이런 말로 나이 탓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고 한다. 지금 나의 나이에 가지고 있는 것들을 고마운 마음으로 충분히 누리고 즐기자.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나는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를 연상했다. 한비야가 다름아닌, 그 책에 나오는 빅토리아 공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 시작하는 길, 이 길도 나는 거친 약도와 나침반만 가지고 떠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지도란 없다.......중요한 것은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늘 잊지 않는 마음이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오늘도 한 걸음씩 걸어가려 한다. 끝까지 가려 한다. 그래야 이 길로 이어진 다음 길이 보일 테니까.' 그리고 그 길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동시에 찾기를, 살짝 귀띔한다. 낯선 것과의 만남을 두려워하는 본성을 조금씩 벗어버리길, 오늘을 충실하게 즐기며 자신감 있게 내일을 맞이하기를, 유쾌하게 다짐해 볼 수 있는 책을 만났다. 아니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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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고의 숲
로버트 홀드스톡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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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 적이 있다. 어느 숲, 이름 모를 침엽수들이 싸늘한 하늘을 찌를 듯 빽빽한 그 곳에서, 나는 방향을 잃고 돌아가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수레바퀴를 돌리듯 그러고 있었다. 도대체 그 곳에서, 무엇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을까? 나의 꿈이 지극히 개인적이라면, 이것이 종족의 집단적이 꿈으로 확산되면 신화가 된다. 전자가 다분이 Freud의 무의식을 보여주고 있다면, 후자는 Jung의 집단 무의식과 연결된다. 꿈과 신화는 보다 복잡한 현실을 비교적 단순히 반영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신화는 현실보다 더 깊은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신들이 등장하는 초현실적인 이야기인 신화에 인간들을 대입하면 문학이 된다. <미사고의 숲>은 Mythago라는 작가의 합성어가 내포하고 있듯이, 신화의 이미지 안에서 집단무의식의 원형을 그리고 있다.

'라이호프'라 불리는 미사고의 숲은 종족의 집단 무의식이 추구하는 원초의 숲이다. 이 숲은 와륜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숲이 오라에 깃든 고립감은 강한 전염성을 지녀, 아버지의 육체를 통해 형,크리스찬에게로, 다시 나(스티브)에게로 전해진다. 그러면서도 숲과 '나'는 서로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숲은 야생의 힘을 지니며 태초의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섬뜩하고, 의미심장하며, 모호한......' 아버지의 미사고인 '우르스쿠머그'는 미사고의 원형들 중 하나이다. 언제나 무감동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자식을 바라보았다고 생각한 아버지에 대한 '나'의 인식은, 그의 일기를 들추어보는 과정에서 무너진다. 인식의 불확실성이란! 숲의 와륜의 틈을 잘 찾아 들어 온, 아웃사이더의 혈족, 스티브를 결정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우르스쿠머그였다. 숲의 중심에는, 밀어내기도 하며 동시에 강하게 끌어당기기도 하는 아버지의 미사고가 있었던 것이다.

<미사고의 숲>은 시종일관 그려지는 오묘한 이국 숲의 전경이 마치 한 편의 장편 영화를 보는 듯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에서 중세시대로, 청동기를 거쳐 불을 다루는 사람이 등장하는 신석기 그리고 저 태고의 빙하기까지. 각 시대를 거슬러 가면서 현란하게 변하는 숲의 모습과 나무들의 종류까지...... 활엽수림이 상록의 침엽수림으로 변하는 장관이 눈앞이 펼쳐진다. 떡갈나무는 개암나무와 산사나무로 대치되고, 숲의 심장부로 깊어질수록 원초적인 야생의 에네르기가 주위를 압도한다. 싸아한 숲의 정기가 코끝에 와 닿는 느낌이다.

나무는 일반적으로 '우주의 생명(life of the cosmos)'을 암시하고 있다. 쉼 없는 생명력을 그 속에 품고 영원과 불멸을 상징하고 있다. 우르스쿠머그가 귀네스를 그의 안전한 품으로 안아 올리고는 불을 향해 들어갈 때, '섬뜩할 정도로 인간을 닮은 새까맣게 탄 나무'를 스쳐 지나간다. 나무는 산산조각이 났지만, '다음 순간 불길이 또다시 밝게 타올랐고, 나는 홀로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나'를 통해 그 모든 원초의 꿈은 영생하고 멸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강박증과도 같이 숲에 매달린 아버지의 꿈이자 '나'의 꿈이다.

'아버지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던 어둠과 고통이 자아낸 한 타래의 실에서' 만들어진 여인, 귀네스에 대한 스티브의 사랑은 무의식에 가깝다. 모든 걸 감싸는 아버지의 과묵하며 위대한 사랑 앞에서, '나'는 존재에 대한 감사함을 느낀다. 현실에서 가졌던 아버지에 대한 피상적인 인상과 감정들이 환상의 공간에서 환하게 걷히는 순간이다. 숲의 심장부 라본디스(환상의 공간)에서 '나'는 현실에서 억압되어 있던 것들에 날개를 달고, 내면에 귀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보다 원초적이며 본능에 충실해진다. 이 곳은 인간의 영혼이 계절에 얽매이지 않는 곳이다. 귀네스에게 한 마지막 입맞춤의 기억과,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을 보았다는 기쁨과 함께, '나'는 오늘을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몇 천년이 흐른 후, '나'는 또 다른 시대에 신화로 깨어나, '아버지' 못지 않은 사랑의 힘으로 '영원'의 나무 한 그루를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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