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용어의 탄생 - 역사의 행간에서 찾은 근대문명의 키워드
윤혜준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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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는 학자들이 때로는 ‘근대성’이라 부르는 대상, 즉 근대적 의식, 담론, 사상 등과 부분적으로 일치한다. 그러나 그것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근대’는 ‘담론’이기도 하지만 시대와 공간이기도 하다. - P7

이 책은 근대 문명의 키워드가 된 ‘말’의 역사를 다룬다. business, constitution, democracy, president, project, revolution, university… 현대에도 사용되는 이 말들의 기원이 되는 단어는 무엇이고, 이후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의미로 변화되었는지를 들여다본다. 한 마디로 말의 유래를 살피고 그 변화 과정을 확인하는 것이다. 말의 탄생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차례도 알파벳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America’는 첫 챕터이기도 하면서 우리와도 관련이 깊어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America’는 청나라 시절 아메리카’에 대한 중국어 소리 ‘메이’를 표현한 글자로 한자, 아름다울 미를 써서 ‘미국’이 되었다. ‘아메리카’는 피렌체 공화국 지도자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에서 따온 것이다. 그가 함선을 타고 신대륙을 향해 갔으나 독일어 지리학 연구자인 발트제뮐러가 세계전도에 그의 이름을 넣지 않았다면 아마도 ‘아메리카’가 아닌 다른 이름이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된 ‘자본주의’는 ‘capitalism’의 번역어다. 원어는 라틴어 ‘capitals’인데 머리를 뜻하는 ‘caput’에서 따 왔다. 지금의 ‘자본’이라는 의미는 원래 ‘stock’을 주로 쓰다가 1880년 이후 경제사회체제 개념으로 ‘capitalism’이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이것이 사회주의에 대응하는 정치적 용어로도 확장되었다.
이처럼 키워드의 의미가 시작부터 지금까지 같은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번역어와 영어의 의미가 서로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경쟁competition’도 라틴어 어원으로는 ‘함께 노력하다’라는 의미였는데 이것이 ‘다툼이나 경쟁’으로 변화한 것이다.
통화로 쓰이는 ‘currency’의 한자어의 부수는 책받침 부수로 ‘쉬엄쉬엄 간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면 ‘currency’는 ‘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서로 연결되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currency’는 18세기 이후 화폐 경제에 의한 경제 활동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지금의 돈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영어 ‘revolution’이나 프랑스어 ‘revolution’은 원래 어원적 의미만 따지면 획기적인 정치적 격변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라틴어 어원 ‘revolutus’를 그대로 따른다면 ‘원래 자리로 되돌아갔다’는 뜻이다. 앞으로 ‘전진’하는 혁명과는 오히려 정반대다.
‘industry’는 원래 ‘근면’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가 기계 산업 시대 이후가 되면서 지금의 ‘산업’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reform’은 ‘되돌리다’라는 의미로 종교 개혁 시기에 ‘과거로 되돌리다’라는 의미로 변화했다가 현재의 ‘(사회 경제적인) 개혁’이라는 의미로까지 변했으니 상전벽해가 된 경우다.
물론 ‘소비consumption’은 ‘다 가져가다’로 애초부터 지금과 같은 부정적 의미로도 쓰인 경우도 있다.
또, 번역어 ‘프로젝트’, ‘리뷰’, ‘유토피아’ 등은 이제 완전히 우리말처럼 되어 버린 경우도 있어 흥미로웠다.

대부분은 기원어가 라틴어가 많았는데 ‘민주주의democracy’는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리스가 기원이라는 점도 주목이 되었다. 기원어의 의미는 ‘평민, 인민에 의한 지배, 통치’로 직접 민주정을 가리켰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이 되면 알렉시 드 토크빌이 주장한 기회의 평등, 지성의 평준화에 의한 미국식 민주주의의 의미로 보편화된다.

키워드와 내용을 확인하면서 눈에 머무는 것이 있다면 관심이 가는 주제일 것이다. ‘헌법constitution’도 그런 경우다. 영국이 헌법에서 말한 바와 달리 그들은 식민지를 만들고 노예를 부리며 그들의 인격을 강탈했다. 워런 헤이스팅스의 말에 분노하며 도자기 회사에서 만들었다는 저 문구를 보니 더 착잡함이 일 수 밖에 없었다.

에드먼드 버크가 워런 헤이스팅스를 기소하는 연설에서 ‘constitution’은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 워런 헤이스팅스는 탄핵 재판장에서 자신이 통치한 인도 지역의 토착 ‘constitution’이란 원래 다수의 민중을 소수의 지배자가 “저급하고 미천한” 상태에 머물도록 억압하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반면 에드먼드 버크는 고유의 억압적인 정치문화가 아니라 영국인 지배자 워런 헤이스팅스가 주도한 “부패”가 “그 나라헌정질서의 모든 이득을 상실하게 한 진정한 원인”이라고 단언했다.

18세기 내내 북아메리카 및 서인도제도(카리브해) 영국 식민지에 아프리카인 노예들을 파는 노예무역은 영국의 중요한 ‘기간산업’ 중 하나였다. 워런 헤이스팅스를 탄핵하던 시기인 1780년대 후반에는 온갖 사업자와 투자자가 관여하던 영국의 노예무역을 법으로 금지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의회 안팎에서 터져나왔다. - P67~68


웨지우드 도자기 회사에서 만든 ‘폐지론자’ 메달에 새겨진 메시지는 “나도 사람이고 (당신의) 형제 아닌가요?”다.


노예무역 페지론자들 중 한 명인 토머스 쿠퍼는 ‘consumption’이란 말속에 인간 생명의 ‘소모’와 설탕의 ‘소비’를 다음과 같이 연결하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900만 명의 노예가 유럽인들에 의해 소비되었다. 이러한 통계도 이미 한 10년 전 것이므로 한 100만 명은 더 추가해야 한다. 노예 하나를 포획하기 위해 열 명씩은 살육해야 한다는 계산을 해보면 그렇다. 그중에서 5분의 1은 배에 실려오는 도중에 죽고, 3분의 1은 농장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죽는다는 점을 감안하자. 전혀 과장하지 않은 계산을 해보아도 유럽인들의 탐욕이 보여주는 악마적인 게걸스러움은 무려 1800만 명의 우리와 같은 동료 인간에 대한 살인을 통해 채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 맙소사, 그들은 도대체 무슨 목적에서 그렇게 하는가? 깜짝 놀란 독자는 이렇게 말할 법하다. “유럽의 신사 양반들이 마시는 차에 설탕을 타기 위해서!” 독자에게 해줄 답은 이것이다. - P84

‘계몽’이라는 단어에서도 비슷한 감상을 받았다. ‘빛’에서 기원한 이 개념은 점차 서구중심주의의 문명사적 개념’으로, 시대 정신이자 사상으로 확장되었으나 과연 그들만이 문명인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계몽’은 이전의 ‘가르침, 훈육’에 의미에서 이제는 너무 변질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메이지 시기 일본에 의해 번역된 ‘president’의 대응어인 대통령’도 의미가 너무 변질된 경우다. 미국의 정치 체제의 의장에서 온 것으로 ‘위임 받은 권위를 행사하는 대리자’라는 의미가 대한민국에서는 ‘권력자’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삼권 분립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도 사실 의문이다.

이처럼 이 책은 역사의 흐름에서 근대 문명의 키워드를 확인할 수 있다.


‘민주주의’로 번역한 말은 ‘-ism’으로 끝나지 않는데도 그렇게 번역되고 고착되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이 ‘demokratia’에 부여한 기능은 무슨 ‘-주의’가 아니라 특정 유형의 정치 체제를 지목하는 것이었다. 원리와 본질을 중시하던 플라톤이었지만 그가 법률에서 ‘demokratia’와 관련한 다음과 같은 발언은 ‘-주의’와는 관련성이 적다.
정치 체제에는 두 개의 모형이 있고 나머지는 다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이 둘 중 하나는 왕정이고, 다른 하나는 공화정(demokratia)이지요. 전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페르시아의 정치 체제고, 후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아테네입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 이 둘을 조정하고 배합한 것일 뿐이지요. 어떠한 체제 속에서 자유와 박애를 지혜와 배합하려면 이 둘 중 하나의 형태를 채택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 P101

‘계몽’이 형용사englighten로 ‘교육받은, 지식인의, 문명화된’으로 주로 쓰이던 18세기가 지나고 19세기가 된 이후로 시대정신이나 사상을 지칭하는 칸트식의 용례가 영국에서도 ‘계몽시대’ 같은 표현에 종종 등장한다. 이 단어가 이러한 뜻으로 사용될 경우 단어의 머리글자 ‘E’를 대문자로 구별했다. 대문자로 시작하는 일종의 고유명사가 된 ‘Enlightenment’를 ‘계몽주의’로 옮기지 않을 이유는 물론 전혀 없다.
‘계몽주의’를 이어받은 과학기술문명은 “가장 무지하고 야만적인 시대”와 “잔혹함과 부당함”을 놓고 여전히 경쟁했다. 종교적 양심의 ‘계몽’에서 해방된 근대과학과 “인류의 무한한 진보를 위해 이성의 힘”을 숭상하는 ‘계몽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에 권력욕 및 “저급한 탐욕”과 결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 P130~131

미국 헌법이 규정한 ‘아메리카의 주 연합 의장’을 ‘미합중국 대통령’이라 부르는 순간 삼권분립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해낸 온갖 거추장스러운 제약과 견제 장치들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이러한 오역의 과정을 거쳐 통용되는 ‘대통령’이라는 말에는 ‘대권’을 휘두르는 권력자의 모습이 중첩되어 보이기 마련이다. - P200

“합리적인reasonable” 사람이라면 “쓸모없는” 질문에 매달리지 않는다. 삶의 유익한 바를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존 톨런드가 인정하는 ‘합리성’의 내용이기에 존 로크가 말하는 ‘reasonableness’와 유사하다.
‘합리적 의심’은 윌리엄 블랙스톤, 에드워드 쿡 경, 존 로크, 존 톨런드가 이해한 신축적인 실천성과 실무적 감각을 법정에 적용한 법 원칙이다. 그러한 ‘합리성’은 상식의 또다른 이름일 뿐이다. 한 피고인의 권리와 심지어 생명에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는 형사 판결을 비전문가 일반 시민들의 상식에 근거한 판단에 맡기는 것이 배심원 재판이다. 법률 전문가들의 뒤틀린 말장난과 정치판의 편싸움에 끼어드는 기괴한 논리에 따라 사법 정의가 왜곡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대한민국에서 이 표현이 나온 배경을 충분히 이해할 자세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법하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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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04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담아가요~~
리뷰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4-04-04 11:06   좋아요 1 | URL
도움을 드렸다니 저도 감사합니다^^
 
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 - 인도, 문명의 나무가 뻗어나가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동양미술 이야기 시리즈 1
강희정 지음 / 사회평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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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의 영역은 폭넓어졌다. 그러나 지금도 전시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회화가 압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서양화다. 그러다보니 미술 하면 뭔가 모르게 나와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미술은 결코 회화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으며 조각, 서예, 전각, 일상 용품 등 다양하다. 이처럼 미술품은 결코 특별하지 않으며 눈 닿는 곳에 모두 존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릴 적 보고 자랐던 옛 장롱, 베개 자수, 한복의 무늬 등이 지금은 미술품이 되었던 걸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싶다. '평범한 것이 위대하다’ 라는 챕터의 제목은 평소 내가 생각하는 바와 맥락이 닿아 있어서 더 공명했던 것 같다.


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권은 인도의 미술 이야기다. 


인도에 대해서는 책의 질문자처럼 나도 IT가 발달된 곳, 바라나시, 소, 갠지스 강(에서의 목욕) 정도 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인도는 불교가 시작된 곳이니 불교 관련 미술이 있을 거야 하는 생각 정도를 갖고 읽기 시작했다. 


인도는 파키스탄의 지명인 ‘신드’에서 유래한 말로 짐작할 수 있듯 인도 미술의 범위는 오늘날의 ‘인도’만이 아닌, 아프가니스탄 일부와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미술까지 포함한 지역이다. 과거에는 인도가 이 모든 지역들을 커버했기 때문이다. 


인도는 흔히 4대 문명 중 하나인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인 1974년 인더스 강 유역에서 메르가르 유적이 발굴되면서 인더스 문명보다 더 앞선 문명이 존재했음이 밝혀졌다. 나도 앞선 문명이 있었음을 미처 알지 못했었는데 충격적이었다. 선인더스와 인더스 문명의 유적을 통해서 사실적인 신체 동작과 살의 촉각을 생생하게 표현하려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인장을 저렇게 입체적으로 새긴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특히 ‘춤추는 소녀’는 당시 어떻게 저런 아름다움을 갖춘 조각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밀하고 사실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BC 322년 인도에 마우리아 제국이 세워진다. 마우리아 제국의 세 번째 왕이었던 아쇼카 왕은 인도 남단을 제외한 대륙 전체를 정복했다. 그는 불교를 국교로 지정하고 석가모니를 의미하는 사자 조각을 통해 석가모니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작업을 한다. 현재 인도를 대표하는 공식 국장에는 네 마리 사자가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아쇼카 왕이 세운 석주의 사자 조각에서 기원한 것이다. 


불교는 인도의 아쇼카 왕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기독교가 들어오기는 했지만 불교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기본이 되는 종교 중 하나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용어 중에서도 불교에서 온 용어가 많다고 하는 것에 놀랐다. 예를 들어 ‘기특하다’, ‘불가사의하다’ 같은 말이나 관념, 대중, 살림, 심지어 지식이라는 말이 인도에서 왔다고 한다. 또 ‘주인공’이라는 단어는 불교 경전에서 깨달음을 가리키는 용어였다고. 왠지 ‘주인공’이라는 단어가 달리 보이지 않나.  


아쇼카 왕은 스스로 ‘전륜성왕’이라고 칭했어요. 성왕은 성스러운 왕, 전륜은 구를 전(轉)에 바퀴 륜(輪)을 써서 바퀴를 굴리는 성스러운 왕이라는 뜻입니다. 이때 바퀴는 당연히 법륜이죠. 아쇼카 왕은 석주를 통해 자기가 우주의 진리이자 불교의 법을 전파하는 위대한 왕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주장하는 겁니다. 

이후 전륜성왕이란 이름은 불교에서 이상적인 군주의 대명사가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진흥왕이 6세기에 한강 유역을 정복하고 불교를 수용해 나라를 정비하면서 자신을 전륜성왕이라 칭했습니다. - P242


일찍부터 마연한 조각과 토기를 만들다가 마우리아 제국 때 와선 돌이 들어가는 데는 모조리 마연하죠. 궁전 기둥도 그랬고요. 

우리나라 돌은 대부분 입자가 거칠고 단단한 화강암이거든요. 세밀하게 조각하기 어려운 돌이죠. 하지만 ‘석탑이 마멸되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거의 못 들어봤을 거예요. 화강암이 조각하긴 어려워도 내구성 하나는 끝내줘요. - P254~255


인도의 조각은 굉장히 사실적이고 세밀한 게 특징인데 이는 무른 돌을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만큼 바람에 잘 날아가기 때문에 형태 보존이 어려워 ‘마연(갈고 닦아서 반질반질하게 하는 것)’을 한 것이라고. 우리는 화강암을 쓰기 때문에 단단한 대신에 상대적으로 세밀한 조각은 어려웠던 것 같다.


석가모니는 당시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감흥을 주었다. 석가모니 사후 여덟 개 나라의 왕들이 유골을 팔 등분 한 다음에 각각 돌아가서 스투파를 세운 것이 스투파의 시작이었다(근본8탑). 그러나 보통 사람이 그 탑들을 직접 찾아가기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아쇼카 왕은 사리를 나눠 전국 곳곳에 8만 4천 기에 이르는 스투파로 확장하기에 이른다. 8만 4천기라니, 지금도 그 정도의 숫자가 세워진다고 하면 놀랄 만한데 당시에는 진짜 어마어마한 숫자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석가모니의 복음의 위세가 강했다고 보아야 하겠다. 거기에 독실한 불교 신자인 아쇼카 왕이 있어서 스투카가 곳곳에 세워질 수 있었다. 

사실 스투파는 납골당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불교의 위세가 커지자 석가모니의 무덤만을 가리키게 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스투파는 나중에 투파, 탑파, 솔도파 등으로 불리다 중국을 거치면서 우리가 아는 ‘탑’이라는 명칭으로 바뀌게 된다.

스투파는 차트라(산개), 야슈티(찰주), 하르미카, 안다(복발), 토라나(문), 베디카(외곽 울타리)로 구성된다. 복발의 둥근 형태는 알을 뜻하며 생명의 순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스투파는 다양한 조각을 끼워넣을 수 있도록 울타리나 문에 홈을 내어 놓는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조각에는 석가모니의 이야기가 포함되면서 자연스레 그의 생애와 불교의 교리가 전파될 수 있었다. 


불교가 인도를 넘어 아시아에 전파되면서 스투파가 곳곳에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다만 인도와 거리상으로 교류가 쉽지 않았던 동북아시아의 국가들은 인도의 스투파의 형태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제작되었다. 처음에는 목탑부터 시작되었다고.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목탑을 본떠서 만든 석탑이라고 하는 것이 신기했다. 입구가 있는 것, 찰주, 배흘림 기둥, 처마처럼 높이 올라간 지붕 모서리에서 스투파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 문을 만들었다는 게 바로 목탑을 본떴다는 증거예요. 동북아시아의 탑은 애당초 목조 건물을 본떠 만들었으니 오히려 문이 없으면 더 이상하지요. 이 문만 봐도 우리나라 탑이 인도 스투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인도의 스투파는 바깥 울타리에 문이 있긴 해도 복발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없습니다. 석가모니를 화장해 몇 겹짜리 사리함에 넣어 꽁꽁 싸맨 다음 묻었는데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달 이유가 없지요. - P419

돌을 툭툭 쌓아 올린 돌기둥이 보일 겁니다. 이 돌기둥이 야슈티, 즉 찰주예요. 인도 스투파에도 찰주가 있었습니다. 우산처럼 생긴 산개가 있고, 그걸 받치는 우산대 같은 게 찰주였지요.

스투파에서 찰주는 특별한 기능이 없었어요. 그냥 복발 꼭대기에 꽂은 기둥 정도였죠. 동북아시아에서는 탑 층수가 높아지면서 찰주가 중심을 잡아주는 축이 돼요. 쉽게 샌드위치에 꽂은 이쑤시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찰주의 존재는 동북아시아 목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에요. - P420


신장위구르 지역에 모여 살던 월지족은 흉노족의 강성함에 밀려 인도 북부 지역까지 이동하였고 기존에 있던 그리스-박트리아 제국을 물리치고 1세기 경 쿠샨 제국을 세운다. 쿠샨 제국의 영토는 지금의 인도 북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일부에 걸쳐져 있었다. 통일을 이룩한 인물은 3대 왕인 카니슈카 왕이다. 그도 마우리아 제국의 아쇼카 왕처럼 불교에 귀의하였다. 그는 최초로 불상을 탄생시키면서 지금의 불상의 표식을 정형화시켰다.    특히나 쿠샨 제국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북아시아에 불교를 전파하였다. 한반도에는 삼국 시대 불교가 수입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새삼 놀라게 된다. 




이 책은 장점이 많다. 우선, 질문자와 대답자가 말을 주고 받으며 궁금증을 풀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독자가 자연스레 그 과정에 동참하게 한다. 두 번째로, 챕터별로 핵심 정리를 해 놓아서 독자로서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세 번째로, 시기별로 역사를 도표상으로 나열하고 이를 미술품과 같이 배치함으로써 그림과 도표로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다. 


분량이 많았다 싶었는데 쉽게 읽혀서 이틀이면 너끈히 다 읽을 수 있었다. 아시아 문화권은 불교 문화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만큼 인도 미술의 이해는 필수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는 동양 미술을 더 자주 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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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4-03 0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도 미술 범위가 넓네요 석가모니, 부처가 태어난 곳이라는 것만 알지도... 그런 것도 거의 잊고 사는군요 불교가 태어난 곳이기도 한데, 중국이나 한국하고 다른 느낌이 드는 건 왜인지... 불교는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온 걸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4-03 08:57   좋아요 1 | URL
같은 불교권 문화라도 유물이나 유적의 형태가 달라서 다르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맞아요. 불교는 중국을 통해 한반도에는 삼국 시대 무렵 들어왔죠. 벌써 천 년 넘게 이 땅에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종교라기보다는 마음의 수양을 쌓는 하나의 방편이 된 것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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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주년기를 맞아 지금까지의 기록, 인터뷰집, 낭독집을 담았다. 10대였던 아이들이 20대가 되었지만 ‘이미 10년이나 지난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음을 절감하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차별과 낙인은 여전히 계속되고, 또 다른 사회적 참사는 계속되기에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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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4-03 0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로 열해라니, 시간이 참 빨리도 가네요 다섯해 지났을 때도 벌써 그렇게 되다니 했는데...


희선

거리의화가 2024-04-03 08:56   좋아요 1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시간이 벌써... 그런데 여전히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다보니 마음이 여전히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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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세기의 물질문명, 물질문명과 모순되거나 이를 보충해주는 경제문명을 일상성의 공간 속에서 살펴본다. 무엇보다 일상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역사로 간주했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일상사는 반복되고 또 반복되면서 일반성 혹은 구조가 된다,‘ 다만 단순화하면서 생긴 이슈는 감안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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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3-31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산 사람이… 역쉬 역덕화가님…😭

거리의화가 2024-03-31 18:30   좋아요 0 | URL
ㅎㅎ 쟝님^^ 철학사를 읽고 있어서 연결지점이 많더라고요. 바로 읽게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CH25]

미아는 엄마의 카드를 받아낸 사건을 Kids for Kids 멤버들과 공유했다. 그러다 Ms. Steincamp 선생님이 뭐하냐 묻더니 나무에 기대 그들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하나 둘 떠나고 대화는 중단되었다. 

Bethany는 책상에 앉아 있다가 바퀴벌레를 발견하고 "아악!"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은 혼비백산이 된다. Mrs. Welch 선생님은 벌레를 잡을 줄 알았는데 자신의 책을 보호하는 동작만 했다. 결국 미아가 바퀴벌레를 신발로 때려잡는다. Stuart는 대단하다며 엄지척을 일으켜세우지만 정작 Bethany는 "쟨 바퀴벌레 모텔에서 사니까." 한다. 미아는 Bethany에게 앞으로 자신을 가정부라고 다시 부르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다.


[CH26]

에반스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 모두에게 다음주 금요일 다 함께 모여 친절, 배려, 관용의 가치를 promoting하는 이벤트를 열기로 했다고 전했다. 야외에서 요리도 해 먹기로 했는데 요리하기를 즐겨하는 제이슨이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집에 갔더니 모텔 식구들이 엄마의 신용카드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 축하하고 있었다. 미아는 모텔 방문 아래마다 “USA NOT USI (United States of America NOT United States of Immigrants)”라고 인쇄된 flyer를 발견한다. 가족들은 이번에는 경찰에 신고했다. 다행히 모텔 투숙객의 소행은 아닌 것 같다고 경찰은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모텔 홍보 문구는 내리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말했다. 지금 혐오 발언이 늘어나는 추세고 할로윈도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소동이 벌어질 소지가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미아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 말했다. 


[CH27]

다음 날 아침 미아는 손으로 쓴 메모가 모텔 사무실 아래 있는 것을 발견한다. 메모의 주인공은 존슨 여사로 80년 전 이 땅에 이민을 와 정착을 했는데 이민자를 환영한다는 모텔 홍보 문구를 보고 무척 감사함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미아는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토요일에 Uncle Zhang이 찾아왔고 존슨 여사의 메모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전기 기사 자격증에 통과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빠는 main road에 들어섰다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미아는 요리책을 빌리기 위해 아빠와 함께 도서관에 갔다. 아빠는 “English Made Easy and Lab Technician Certification Study Guide”라는 제목의 책을 보는 듯했다. 미아는 아빠가 이민을 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겨울에 추운데도 모텔 방 청소를 하는 일을 생각했고, 아빠가 이야기했던 main road라는 단어에 꽂혔다. main road에 진출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


[CH28]

Mrs. Welch가 지난 주 수학 퀴즈 결과를 알려줬다. 루페와 미아가 A를 받았다. 선생님은 간 밤에 TV에서 Wilson과 Brown의 선거 토론을 봤냐고 물어보셨다. 이에 몇몇이 손을 들었고 Stuat는 “Girls just aren’t tough enough.” 라는 말로 미아를 열받게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학교 수업 뿐 아니라 집에 가서 모텔 매니저로 일을 돕고 부모님 일도 돌보면서 바쁘게 생활한다고. 이 정도면 힘든 일 아니냐고 언성을 높였다. 교실은 정적이 흘렀고 이 때 선생님은 그만하면 됐다며 억지로 끝냈다. 미아는 자신이 한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러워했고 용기를 냈다. Mrs. Welch는 미아를 따로 불러 아이들이 불쾌해할 말은 가급적 안하는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미아는 선생님께서 계속 이민자 이야기를 꺼내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이 때 미아는 Mrs. Welch의 책상에서 학위증을 언뜻 발견했다. 그녀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나는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교수진 선발이 있을 때마다 남자들이 계속 나갔지요. 인생이 그렇게 원하는 대로 되는 건 아니에요.”  


PhD: 박사 학위

faculty selection: 교수진 선발


[CH29]

학교는 대규모 요리의 날을 맞아 다채롭게 꾸며졌다. 가족들이 참석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준비되었다. 제이슨은 삼겹살을 구워 맛보라 했는데 먹어본 삼겹살 중 최고로 맛났다. 야오씨가 나타나서는 미아의 아빠, 엄마가 모두 여기 와 있으면 모텔은 어쩌냐고 물었다. 엄마가 준비해온 fried rice와 mein을 야오씨가 먹고는 자기 스타일의 중국 음식이라며 좋아했다. 루페 가족은 tamale, guacamole, chips를 준비해온 모양이다. 미아는 루페를 이끌고 제이슨 쪽으로 데려갔다. 제이슨의 삼겹살을 맛보기 위해 줄이 한참 서 있는 걸 보고 다들 놀라했다. 미아는 야오씨가 혼자서 엄마의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제이슨 음식은 안 먹어도 되냐고, 오늘 그가 이 구역의 최고의 셰프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제이슨이 앞으로 전진해야지 뒤로 물러서면 안 된다고 했다. "You used to be employees, and now you're owners." 경영자 마인드가 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미아는 한참을 생각했다. 


[CH30]

작년 할로윈 때 우리 모두는 미이라 분장을 했었다. 올해는 행크의 제안에 따라 커다란 빈 상자를 이용해 테트리스 블록을 만들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에반스 교장 덕분에 우리 클럽은 쉬는 시간에 앉아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회원 수도 늘어서 22명이 되었다. 

우리는 제이슨의 요리를 입에 마르게 칭찬하며 칭찬 감옥에 가두었다.


[CH31]

점심 식사 후 Mrs. Welch는 자유 작문을 하게 했다. 이번에는 주제도 없었고 점수 매기는 것도 없었다. 미아는 루페의 어머니가 사막을 건너는 이야기를 썼다. 그러다 시간이 다되었을 때 Mrs. Welch가 이 이야기를 읽는다는 생각에 미아는 썼던 이야기를 황급히 칠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볼 때쯤에는 완전히 검게 칠해졌다.

모텔에 출근한 미아는 엄마와 아빠의 일과를 물었다. 이민자들이 이제는 모텔에 황금 고객이 되었다. 부모님도, 미아도 쉬고 있는데 갑자기 주차장에서 고함 소리가 들리더니 루페가 시뻘건 눈으로 달려왔다. 루페는 아빠가 엄마를 찾으러 국경으로 갔는데 the Immigration police에 잡혔다는 소식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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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3-31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화가님 진도 쭉쭉 나가시네요! 전 이제 시작입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4-03-31 18:18   좋아요 1 | URL
한 챕터 당 분량이 얼마 안 되어서 2~3 챕터씩 읽어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괭님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