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김영민의 공부론
김영민 지음 / 샘터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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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공부란 자기 자신의 생각들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사뭇 뼈아프게 깨치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공부를 좋아하고 즐긴다. 그러나 평소 내가 하는 독서와 글쓰기가 '공부'로 제대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다 보면 선명해지는건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모호해지고 질문조차 할 수 없을 때가 찾아오면 불안감과 회의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 김영민은 작년 <생각의 요새>에 언급되어서 처음 알게 된 뒤로 언젠가 한 번 그의 저작을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그는 '동무공동체'로 이름이 알려져있기에 핵심 저작을 읽는다면 <동무론>, <동무와 연인>이나 <비평의 숲 공동체>를 읽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보다 먼저 관심이 가는 주제인 공부와 관련된 이 책을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마침 전자책도 나와 있어 주저않고 바로 읽을 수 있었다. 에필로그 보고 피식 웃었는데 저자의 글을 읽는 이는 모두 다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자폭이지만 솔직해서 좋았다. 실제 읽어보면 그럴만 하다 싶기도 한데 바탕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로 이 책을 읽는다면 말 뜻 자체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대체 나는 왜 공부를 좋아하고 계속 이어갈까 질문한 적이 있다. 보복 심리 같은 것일까. 어릴 적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한다고 여겨서 그런 것인가 싶은 생각도 있다. 대학 전공을 취업을 위해서 선택한 탓도 있는 것 같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매일 조금씩이라도 공부한다. 공부는 내게 읽고 사유하는 과정이다.


'공부는 실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다.' 변화를 하려면 질문해야 한다. 그런데 질문을 하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질문해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어느 순간 내가 안정적으로 아는 관념과 틀 안에서 질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탄력적인 변화가 중요한 것일텐데 같은 방식을 답습한다면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저자의 '자기체계의 안정화'라는 말에 너무나 공감했다. 더 이상 긴장 상태에 들어가려하지 않음은 공부가 아닐 것이다. '문제는, 관념과 그림자의 거울방을 깨고 나가서 실전으로 공부하는 방식을 묻는 일이다.' 


책이 잘 안 읽히고 공부하면서 어느 순간 돌파구가 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머리를 비우고 잠시 내려놓는 것이 방법인가 고민한 적이 있다. 저자는 '책을 읽다가 싫증이 생기면? 계속해서 책을 읽어라!(覺懶看書, 則且看書.)'고 말한다. 왠지 희망적이지 않나. 희망 섞인 말이라도 믿고 싶어지는 주문 같은 말이었다. 


글을 쓸 때 늘 나의 문제점만 보인다. 왜 나의 글은 특색이 없을까 고민한다. 저자는 글쓰기와 관련하여 자신만의 고유적인 글쓰기를 하라 주문한다. '관념을 회집, 운용하는 재주만으로 그칠 게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박자에 맞는 사유와 글쓰기의 개성을 창조하는 게 관건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서로 겹치고 헤어지는 리듬이 박자라고 했듯이, 글쓰기의 개성적 박자 역시 각자의 삶의 양식과 그 무늬가 글과 겹치고 헤어지는 오랜 연성(練成)의 과정 속에서 가능해지는 것. 그러므로 오직, ‘사는 일’ 속으로 다 불러들일 것!' 나의 삶과 철학이 글에 녹아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내 글에 삶(구체성)은 있어도 철학(이론이나 관념)은 없거나 철학은 있는데 삶이 없다면 고민해보고 변화시켜 적용해보면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는 오롯이 '자신'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갈 수 없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발을 맞추어야 한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공부를 위한 만남은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 몸과 몸이 부딪치는 경험은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넓히는 기회가 된다. 

20대 후반부터 독서 모임, 동호회, 커뮤니티를 통해서 여러 사람을 만나 공부했다. 혼자 공부할 때는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타인과의 부딪침 속에서 착각이었음을 여러 차례 느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앎으로써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 서재는 또 다른 공부의 기회가 되지 않나 싶다. 시간을 들여 다른 분들의 글을 읽고 사유하는 것만으로 좋은 경험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댓글까지 달면서 소통한다면 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몸이 좋은 사람’이라는 개념은 우선 이 몸의 사실에 대한 인식, 그 몸의 정치성에 대한 체감에 근거한다. 그것은 그 몸의 주변자리로 내 감성과 인식을 넓히는 일이다. 내 몸을 내 이기주의의 텃밭이자 진지로 삼기보다 타인과 세상의 메커니즘을 알아 가는 촉수이자 매개로 삼는 일이다. 그 누구도 쉽사리 체계의 바깥으로 외출하지 못한다고 하듯이 그 누구도 임의로 자신의 몸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몸의 주변자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삶의 전체를 헤아리고 따질 수 있게 될 때 마침내 우리의 몸은 작고 견결한 실천들을 통해 외부성의 확보에 나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인식의 전체성+실천의 일관성=외부성). 그러므로, 몸이 좋은 사람의 이념에 있어서, 약빠르고 반지빠른 영악과 변덕은 영영 비각이다. 내가 지원행방(知圓行方)이라는 숙어를 곧잘 호출하곤 했지만, 지원이란 곧 주변자리에 스며든 전체성의 인식을 가리킴이요, 행방이란 자신의 생활 속에서 선택한 작은 실천의 일관성이며, 체계와의 창의적 불화를 위해 소용되는 외부성이란 바로 이 인식과 실천의 병진에서 가능해지는 결과인 것이다.


‘만남’이 주는 비대칭의 체험은 물질의 문제, 무엇보다도 피와 살의 문제이기 때문에 무사들, 혹은 몸공부하는 이들은 대체로 ‘모른다’. 아니, 차라리 몰라야만 한다는 게 옳다. 반복하지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몰라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고쳐 말하자면, 무사들은 모든 ‘타자’의 대접에 (그들의 실력과 운신을 전혀 ‘모르는 듯’) 극진할 때라야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것!


저자는 우리 사회의 지식인층과 문화에 대해 비판하는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 사회의 대화문화에 대한 비판은 이미 수위를 넘은 지 오래다. 그중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의 말에 먹통인 남성 기득권자들의 체계적 반(反)대화성은 우리 사회의 농축·급속·편파의 남성적 근대화나 군사주의와 맞물리는 현상으로 이른바 심층 근대화의 과제에서 우선순위다. 각종의 통계는, 특히 남자들의 비(非)대화성과 이와 관련된 여자들의 불만을 지목한다. 나는 1990년대에 일반 대중을 상대로 인문학운동을 벌이면서 ‘여자의 말을 배우기’라는 화두를 내걸고 생활인문학적 실천의 진장(振張)에 미력을 보탠 적이 있는데, 이것 역시 대화문화의 파행을 속으로부터 고쳐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가령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지식인들의 다수는 "언제 언제면 이런 글을 쓰겠다"거나 "이런저런 일을 끝내면 저 책을 읽겠다"는 따위의 말을 자주 하면서 버릇처럼 연기하는데, 내가 실천해 오고 또 후학들에게 권한 방식은 오직 현재 속에 직입하는 것으로 공부의 실천을 쉼 없이, 곧장, 당장 하는 데에, 그리고 그 버릇을 자신의 몸(무의식) 속에 기입하는 데 있다.


몇 번이고 읽어도 좋을 만한 내용들이 많다. 곱씹을수록 우러나오는 뭉근한 말들이 녹아 있어서 재독, 삼독해도 좋을 만한 책이라 생각했다. 

기성의 체제를 확인하고, 그 네트워크 속에서 안돈(安頓)하고, 그 교조(敎條)를 복창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아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만남과 사귐이라는 것조차도 거친 술어들(차이들)의 순치나 체계내적 사회화를 위한 알리바이로 저락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동이불화(同而不和)가 아니라 굳이 화이부동인 것. 그러므로 불화는 진정한 불화이어야 하며 차이는 진정한 차이(real differences)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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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열이 없는 공부’는 신체와 정신, 무의식과 의식, 육감과 오감, 지혜와 지성, 그리고 의욕과 욕심의 근대적 분화와 물화를 깨고 새로운 몸(삶의 양식과 버릇)을 얻고 길러 인간의 통전적 성숙을 위해 그 몸을 경첩으로 삼아 갖은 이치들을 융통케 하는 데 있다.

‘마음이 일면 만물이 따라 인다(心生則種種法生)’는 식의 사유는, 이른바 존재 중의 존재인 신을 초월적으로 대상화하는 유일신교적 태도와 달리, 이른바 해석학 너머의 해석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반방편주의의 한 극처(極處)를 보여 준다. 부정성의 반방편주의에 의하면, "도를 닦아 얻는 열반이 진리가 아니라 마음이 본래부터 고요한 것임을 알아야 참 열반(修道證滅,是亦非眞也. 心法本寂, 乃眞滅也)"이다.

가령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지식인들의 다수는 "언제 언제면 이런 글을 쓰겠다"거나 "이런저런 일을 끝내면 저 책을 읽겠다"는 따위의 말을 자주 하면서 버릇처럼 연기하는데, 내가 실천해 오고 또 후학들에게 권한 방식은 오직 현재 속에 직입하는 것으로 공부의 실천을 쉼 없이, 곧장, 당장 하는 데에, 그리고 그 버릇을 자신의 몸(무의식) 속에 기입하는 데 있다.

정중동, 동중정을 윤환(輪環)시키며 안팎을 동시에 융통하는 기술은 내가 오래전부터 ‘수동적 긴장’이라고 이름붙인 심신의 조율방식과 유사한 것이기도 하다. 긴장이 강직으로 흐르지 않고 유연한 탄력성을 얻어 가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수동성’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의 수동성이란, 긴장된 집중이 직절한 법식으로 빠지지 않으며 지속가능한 생산성을 얻는 ‘준비 없는 준비’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노자가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살 것(柔弱者, 生之道)"이라고 했을 때, 그 유약자의 ‘태세 없는 태세’와 닮은 것이기도 하다.

"무엇이나 박자라는 것이 있는데, 특히 병법에서는 박자가 중요하다"(오륜). 이것은 앞서 말한 대로 ‘사물을 선용하는 것 속에 선비의 길이 있다’는 이치와 그 넓은 맥락을 같이 나눈다. 박자라는 것은 결국 타감(他感)의 상호작용 속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이 서로 겹치고 헤어지는 리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칼이 글에 비해 ‘냉혹한 실용주의’로 흐를 것은 자명하다. 포퍼 식으로 말하자면, 글의 경우 문장이나 이론은 작가의 잘못을 대신해서 한량없이 죽어줄 수 있기에 거꾸로 작가는 영영 죽지 않을 수 있는 반면, 병법자의 실수는 곧 자신의 생명을 내놓아야 하는 냉혹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고래로 문사의 논쟁이 지리멸렬하게 흐르는 것은, 잘라 말해서, 글에 자신의 목숨을 의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식적으로 평하자면, ‘글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야말로 대화와 논쟁이 그 정당한 권위와 가치를 회복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나는 이 이치의 일단을 ‘죽어주기로서의 인문학’이라는 개념으로 해명한 바 있다

관념을 회집, 운용하는 재주만으로 그칠 게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박자에 맞는 사유와 글쓰기의 개성을 창조하는 게 관건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서로 겹치고 헤어지는 리듬이 박자라고 했듯이, 글쓰기의 개성적 박자 역시 각자의 삶의 양식과 그 무늬가 글과 겹치고 헤어지는 오랜 연성(練成)의 과정 속에서 가능해지는 것. 그러므로 오직, ‘사는 일’ 속으로 다 불러들일 것!

‘낯설게 보기’가 불가능해질 때에는 이른바 ‘비평적 거리(critical distance)’를 잃게 되면서 타성의 기계로 변신하거나 죽음에 이른다는 말은 글이나 칼, 어느 쪽의 이치에서도 확인된다. 특별히 철학적·인문학적 사유와 글쓰기야말로 낯설게 하기의 미덕이 십분 발휘되어야 하는 마당이라는 점은 재론할 나위도 없다.

책을 읽다가 싫증이 생기면?

계속해서 책을 읽어라!(覺懶看書, 則且看書.)

하나인 ‘몸이 좋은 사람’이라는 개념은 우선 이 몸의 사실에 대한 인식, 그 몸의 정치성에 대한 체감에 근거한다.

그것은 그 몸의 주변자리로 내 감성과 인식을 넓히는 일이다. 내 몸을 내 이기주의의 텃밭이자 진지로 삼기보다 타인과 세상의 메커니즘을 알아 가는 촉수이자 매개로 삼는 일이다. 그 누구도 쉽사리 체계의 바깥으로 외출하지 못한다고 하듯이 그 누구도 임의로 자신의 몸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몸의 주변자리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삶의 전체를 헤아리고 따질 수 있게 될 때 마침내 우리의 몸은 작고 견결한 실천들을 통해 외부성의 확보에 나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인식의 전체성+실천의 일관성=외부성). 그러므로, 몸이 좋은 사람의 이념에 있어서, 약빠르고 반지빠른 영악과 변덕은 영영 비각이다. 내가 지원행방(知圓行方)이라는 숙어를 곧잘 호출하곤 했지만, 지원이란 곧 주변자리에 스며든 전체성의 인식을 가리킴이요, 행방이란 자신의 생활 속에서 선택한 작은 실천의 일관성이며, 체계와의 창의적 불화를 위해 소용되는 외부성이란 바로 이 인식과 실천의 병진에서 가능해지는 결과인 것이다.

그들에게 ‘만남’이 주는 비대칭의 체험은 물질의 문제, 무엇보다도 피와 살의 문제이기 때문에 무사들, 혹은 몸공부하는 이들은 대체로 ‘모른다’. 아니, 차라리 몰라야만 한다는 게 옳다. 반복하지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몰라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고쳐 말하자면, 무사들은 모든 ‘타자’의 대접에 (그들의 실력과 운신을 전혀 ‘모르는 듯’) 극진할 때라야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것!

기성의 체제를 확인하고, 그 네트워크 속에서 안돈(安頓)하고, 그 교조(敎條)를 복창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아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만남과 사귐이라는 것조차도 거친 술어들(차이들)의 순치나 체계내적 사회화를 위한 알리바이로 저락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동이불화(同而不和)가 아니라 굳이 화이부동인 것. 그러므로 불화는 진정한 불화이어야 하며 차이는 진정한 차이(real differences)여야 한다.

모든 계몽이 결국 무지로 드러나는 자기부정의 경험은 공부론이 뿌리내리고 있는 터전의 범위와 그 중층성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한다. 지혜와 용기는, 공부의 밑절미 아래 지옥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그 무토대를 버텨야 하는 위기 속에서 비로소 하나의 합체를 이룬다. 근현대적 전문성의 놀라운 성취에 가려진 허영 속에서 학(學)이 배각(排却)한 술(術)을 잊어버리고, 관념이 배각한 몸을 잊어버리고, 지성이 배각한 영혼을 잊어버리고, 하늘이 배각한 땅을 잊어버리고, 남성성이 배각한 여성성을 잊어버리고, 논리가 배각한 미립과 지릅을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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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4-05 0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계속해서 책을 읽어라‘는 말을 음미해 봅니다. 싫증이 생기는 이유도 여럿 있을텐데 난해에서 그런 마음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돌아가신 어버님 말씀 중에 자꾸 하다보면 ‘물미가 트인다‘는 가르침이 있었는데 나중에 배우다 보니 ‘독서백편의자현‘이란 말에 와 닿았지요. 이런 깨달음이 지금도 내가 고전을 즐겨 읽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4-04-05 08:27   좋아요 0 | URL
저도 저 문장은 유독 기억에 남았어요. 책이 잘 안 읽히는 경우에는 슬럼프인가 해서 좀 쉬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계속 읽으라니...! 읽고 쓰는 것이 결국 사유를 만들어내는 길인가봅니다.
 

3월에는 총 12권의 책을 완독했다. 월초에 여행을 다녀오고, 복귀하자마자 바빠져서 주말이 아니면 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다. 다행히 3월은 평년보다 우중충한 날들이 많았고 꽃도 피지 않아서 주말에는 대부분 집에서 보냈기에 중후반 힘을 내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심적인 스트레스를 거두지 못했을 것 같다. 책에 빠져 있는 시간만큼은 오롯이 현재의 일을 내려둘 수가 있었다.

<속자치통감 12권에서 15권은 송이 주변의 10국을 통합하고, 송-거란 간의 전투(기구간/서하 전투)와 협상 과정이 그려진다. 더불어 송은 내치를 통해서 안정을 추구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모든 것의 이야기>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을 바탕으로 그려진 소설들이어서 눈길이 갔다. 차별과 혐오가 비일비재한 세상에서 작가는 기본적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기와 장소의 폭이 넓어서 읽는 재미도 있었고 특히나 작가의 역사적 이해에 바탕한 접근이 특징적이었다.

<캠브리지 중국사 10>은 19세기 초중반까지의 중국의 대내외적 역사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 눈에 띄는 사건은 아편전쟁과 태평 천국의 난, 중국과 러시아 간의 국경 분쟁, 종교 수입에 의한 갈등 등이 있겠다. 특히 개인적으로 아편 전쟁 전 광저우 무역에 대한 진행 과정과 종교와의 갈등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은 청나라의 역사에 대한 큰 흐름을 알고 있을 때 특히나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은 개인적으로도 읽고 싶은 책이기는 했으나 독서 모임 책으로 선정되어 급박하게 읽었다. 좀 여유를 두고 세세하게 읽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다. 평전이라 개인의 역사를 담고 있으면서도 현재 북한에서 사용하는 조선어에 대한 이론의 기초의 전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주시경, 김두봉이라는 인물만이 아닌 김수경이라는 언어 학자를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다.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역시 도나 해러웨이 책은 쉽지 않다. 3장의 내용은 <사이보그 선언문>, 현대의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전반적인 전개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 그나마 읽을만했지만 마지막 장도 어려웠다는 건 함정. 과학과 자연을 반대로 두지 않고 잘 이용하자라는 접근 정도만 확인하고 간다.

<세계철학사 1>은 지중해를 둘러싸고 고대부터 중세까지 서양 철학의 원류를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그리스 아테네 철학부터 자연 철학, 신 플라톤주의, 스토아 철학, 스콜라 철학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의 서양 철학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이 이 때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삶을 중요시여기는 철학들에 눈길이 아무래도 더 가는 것 같다.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역사와 지리, 인물에 대한 이해와 더해져서 이루어져야함을 재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근대 용어의 탄생>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들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을 확인한다. 처음 만들어질 때와는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쓰이는 용어도 있는 반면 비슷한 의미지만 조금씩 덧붙여가며 확장된 경우도 있었다. 같은 용어라도 한국에 들어오면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은 인도 미술을 다루고 있다. 무른 돌을 이용하여 토기나 석상을 만들기 시작했던 그들은 석가모니 이후 마우리아 제국의 아쇼카 왕과 쿠샨 제국의 카니슈카 왕은 인도의 불교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스투파로 대표되는 인도 미술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탑 등의 다른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스투파 전시회를 가기 위한 사전 작업차 읽었다.


읽고 있는 책들이 점점 많아지지만 전집 종류가 많아 그렇지 단행본은 몇 권 없다. 그렇지만 신경 안 쓰면 계속 쌓일테니 등한시하면 안 될 것 같다.
특히 멈춤 상태인 도스토옙스키 시리즈를 다시 시작해야지.

이번 달에도 독서 모임이 예정되어 있는데 이를 위해서 읽어야 할 책은 브뤼노 라투르의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다. ‘행위자 네트워크’라는 용어가 처음이라 읽기 전 영상으로 간략하게 확인하고 책에 뛰어들어야할 것 같다.


이번 달은 꽃도 피고 날도 좋아 아무래도 책을 덜 읽을 것 같지만 그래도 최대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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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4-04-04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역시 어마어마한 화가님의 독서목록!
Three keys도 끝나가시죠? 저도 4 월엔 크리스틴 델피 도전~!

거리의화가 2024-04-05 08:23   좋아요 1 | URL
Three Keys 매일 한 챕터씩 읽고 있어서 4월 마지막 날 끝날 것 같은데요? 크리스틴 델피 받았는데 책 사이즈는 엄청 작지만 안에 글씨는 나름 커서 다행이었던! 얇은 책이 더 어려울 것 같아 쫄립니다ㅋㅋ 괭님도 이 달 즐독하세요^^

자목련 2024-04-04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 님이 읽으실 4월의 책도 기대가 되지만 산책에서 만날 하늘과 꽃들의 사진도 궁금합니다!

거리의화가 2024-04-05 08:24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도 꽃을 만날 수 있는 4월을 좋아하시죠? 이 곳에 벚꽃이 만개했는데 하필 어제, 오늘 날이 흐려서 아쉽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오며 가며 찍고 있어요. 이 계절에 만날 수 있는 행복과 즐거움이죠^^ 공유하겠습니다. 봄날 일상도, 독서도 응원합니다^^

희선 2024-04-05 0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으로 안 좋은 마음을 달래셨다니, 사월에도 책 즐겁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거리의화가 님 사월 건강하게 잘 보내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4-05 08:26   좋아요 1 | URL
닥치면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긴 한데 스트레스를 뿌리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걷기와 독서가 있어 힐링이 되네요. 희선님도 행복한 4월 되시길 바라요!

새파랑 2024-04-05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철학 역사 미술 하면 화가님~!!
3월에 12권이니 4월에는 16권?

도스토예프스키 저 전집도 소장하고 싶네요 ㅜㅜ

거리의화가 2024-04-05 15:58   좋아요 1 | URL
ㅋㅋ 4월에 16권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할 것 같아요. 꽃구경도 하고 놀기도 하고 하려면?ㅎㅎ
그나저나 도스토옙스키 마니아시라 전집 장만하셨어야하는데 제가 다 아쉽습니다ㅠㅠ 새파랑님 4월에도 독서 생활 즐겁게 이어가셔요^^
 

비록 1840~1860년 사이의 시기에 미미하게나마 서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긴 했지만 서구와의 관계에 대한 중국인들의 견해는 여전히 오해와 사상적·제도적 타성으로 인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외국의 현실을 고려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한 충격이이 세계의 중심에 있는 왕국을 아연실색게 할 때까지 중국은 전 국민적인 절박감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하여 결국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근대적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에서 20년의 세월을 완전히 ‘허송해버리는 결과가 빚어지고 말았다. - P263

서구와의 관계에 대한 중국의 관점은 1840~1895년 사이에 계속변화했는데, 1860년 이후 그러한 변화는 한층 더 가속화되었다. 일반적으로 말해 대외 정책에 대한 견해는 1840년대의 쇄국‘ 정책에서1860년대에는 유가의 성과 신에 기초한 ‘수신‘ 정책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근대적 외교술, 특히 국제법 사상은 이후 20년 동안 계속강조되었다. 1880~1890년대에는 권력 정치, 특히 세력 균형론과 강대국과의 동맹론이 한때를 풍미했다. 다른 한편 1860년대 중반에는민족의식이 등장해 날로 강력해져갔다. 1840~1860년 사이에는 상업을 이용해 오랑캐들을 견제하자는 원칙이 인기를 끌었으나 1860~1870년대에 그것은 ‘상전‘이라는 좀더 역동적인 관념에 자리를 내주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대외 정책에 대한 견해에서 나타난 이러한 변화들은 유교의 이상주의적 태도에서 실용주의적 태도로의 전환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 P327

근대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서구화를 의미했다. 많은 사대부들이 ‘양무‘ 운동에 찬성했던 것은 그것이 근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중국을 망국의 위기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는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그것이 서구적이라는이유로 ‘양무‘ 운동에 반대했다. 그것이 유가 학설을 대체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중국을 구하는 동시에 중국 고유의 방식을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직면한 그들은 모순적인 태도를 가질수밖에 없었다. - P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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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은 민족주의를 통해 정부와 국민이 하나의 목표로 굳게 단결해 근대 국가를 건설하려던 나라와 정부와 백성이 전체적으로 완전히 따로 놀았던 나라 사이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전쟁에 나선 일본은 거국적인 역량을 총동원한 반면 청의 일반 백성들은전쟁과는 거의 동떨어져 있었으며 조정은 거의 전적으로 북양 함대와이홍장의 회군에게만 의지했다. 둘째, 청은 명확한 지휘 체계가 서 있지 않아서 명령이 일사불란하지 못했고 거국적인 동원도 없었다. 총리아문, 지방 당국, 무책임한 청류파 관료들의 상충된 건의들은 청조의 우유부단함만 초래했을 뿐이다. 조선의 외교와 군사 업무를 관장하고 있던 이홍장은 정책 결정권이 없었으며 자기 관할 밖에 있는 전함과 군대에 대한 통제권도 없었다. - P188

셋째, 조정과 북양 함대 사령부의 부패는 처음부터 청의 노력에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서태후가 여름 별궁인 이화원 건축을위해 해군 기금에서 수백만 냥을 전용한 것, 그녀의 환관 총애, 사회전반의 도덕성 타락도 패전의 원인이 되었다. 이홍장이 정직성보다는개인적 충성심과 복종심에 따라 인선한 북양 함대의 사령부에서 특히부패가 만연했다. 많은 군관들이 태감 이연의 환심을 사려고 애썼으며 공금을 빼돌려 그에게 선물을 보냈다. 그러면 그는 이들의 불법 행위를 비호해주었다. 외형적으로는 엄청난 규모였지만 북양 함대는 사실상 약체였다. 이홍장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으로 번지기 전에 먼저 외교적 수단을 총동원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홍장의 외교는 국제 정치에 대한 이해 결여, 개인의 협상 능력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구태의연한 이이제이 정책에의의존 등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러시아의 중재가무산되자 이홍장은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구했으나 양쪽 다 일본을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없었다. - P189

의화단 운동은 만주 조정의 보수파, 보수적인 관료와 신사들, 무지몽매하고 미신을 믿는 민중의 힘이 결합해 전개된 것이었다. 이 운동은 외국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완전히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폭발한 것으로, 내재적으로는 애국적인 요소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일부 다른 역사가들은 이 운동을동기는 타당했으나 방법은 부적절했던 일종의 원시적인 애국적 농민봉기로 간주하고 있기도 하다. - P219

1905년 일본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영국과 좀더 긴밀한 동맹 관계를 재설정한 것은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에서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었다. 그것이 중국에서의 열강들 간의 경쟁을 종식시킨 것은 아니지만 1895년부터 빈사 상태의 청 제국을 위협해온 영토 분할 위협을제거한 것만은 분명했다. 러시아가 승리했다면 거의 틀림없이 만주그리고 아마 몽골까지 합병했을 것이고, 다른 열강들로 하여금 영토배상을 요구하도록 부추겼을 것이다. 그러나 패전한 러시아는 발칸반도로 눈을 돌렸고, 이 지역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독일과•충돌해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할 장을 마련하게 된다. 이제 남만주에•확고하게 자리 잡게 된 일본은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독립과 영토 보존까지 위협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1905년 만주에 대 - P238

한 청의 통치권 회복은 비록 일본과 러시아가 소유한 특권에 의해 제한된 것이기는 했지만 만주가 여전히 중국 땅으로 남을 것임을 보증해주었다. 1907년 4월 20일 조정은 만주족의 발상지라는 만주 지역의특별한 정치적 지위를 종결시키고 그곳을 정식 성으로 개편하기 위한조치를 취해 쉬스창을 총독 겸 흠차대신으로 임명하고 펑톈, 지린, 헤이룽장 3성에 각각 무관 순무 대신 문관 순무를 파견해 총독을보필하도록 했다. 100)아울러 주목할 만한 것은 러일 전쟁의 충격으로 인해 중국에서 입헌 운동이 등장한 것이었다. 학자 출신으로 뒤에 기업가로 변신한 장젠은 "일본의 승리와 러시아의 패배는 입헌주의의 승리와 군주제의패배를 의미한다"고 선언했다. 1906년 9월 1일 조정은 마지못해 입헌정부를 세우겠다는 의향을 발표했으나 결코 그것을 진지하게 고려하지는 않은 탓에 조정은 한층 더 백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으며, 혁명 운동은 새로운 동력을 얻어 가속화되었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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