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육장 쪽으로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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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보여지는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보여지지 않고 숨겨둔 그 어떤 것을 제대로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반대로 완연하게 드러나는게 전부이라고 진실되게 말하지만 이 진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도 없다.언제부턴가 또 다른 나를 만들고 이중적인 나로 살아가는지 나조차 알 수 없지만 본연의 나를 보이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 역시나 찰라의 짧은 시간임을 알게 되는게 산다는 것에 주어지는 선물이자 연륜이 아닐까 싶다. 그 연륜을 향해가는게 목표라면 너무 거창하지만 아무튼 그곳를 향해 살고 있는지 모른겠다.

사육장 쪽으로 라는 제목부터 평범치 않은 8편의 소설 모두 껍질을 깨고 본질을 드러내라는 암시를 주는 것 같았다.암울한 기운이랄까? 그 기운을 걷어내면 저 멀리서 떠오르는 새벽의 빛이 있을꺼라는 기대도 갖게한다.문학계의 주목받는 다른 신인작가의 소설과는 그 느낌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다. 물론 기준은 내게 있음을 말해둔다.

소풍 - 오래된 연인인 남과 여는 오랫동안 꿈꿔온 여행을 떠나게 된다. 출발부터 그들을 만나는 건 짙은 안개뿐이다. 남자는 안개가 끼면 날씨가 맑아질꺼라 하지만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 오래된 연인이 지금 피걱꺼리고 있음을 암시한다.근교에서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음을 알지만 여행이라는 이름은 항상 멀리 떠나야하고 또 좋은 데서 숙식을 해야한다는 의식을 심어준다. 출발부터 시작된 안개는 끝내 걷히지 않는다. 오래된 여인은 계속 부딪힌다. 서로를 배려하기엔 너무 멀리왔는지 모른다. 그들이 목적지를 가리키는 이정표앞에는 남과 여자는 함께 하지 못한다.
소풍이라는 제목으로 예상되는 즐거운 설렘은 어디에도 없다. 안개로 뒤 덮힌 것은 여자와 남자 사이의 괴리감을 나타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서로를 안다는 것은 보여지는 것만을 보고 안다는 얄팍한 것인지도 모르리라.

사육장 쪽으로 - 예쁜 전원주택단지,도시로 출근하기에 멀어도 근처에 개 사육장이 있는게 흠이지만 멀리 있으니 하며 주인공 나는 가족을 데리고 이사를 한다. 무엇에 이끌렸는지 빚을 내어 이 곳으로 이사왔는지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도시의 중심지에 도시인으로 살고 싶었지만 변두리에서 살아야만 했던 그것이 이유였을까? 사람들은 번듯한 도시인이고 싶어한다. 번듯한 집에 번듯한 차에 직장에 그 안에서 진실로 행복을 느끼며 사는지는 직접 그 속에 들어가봐야 알 것이다.

빚을 갚으라는 붉은 색의 독촉장은 누구에게나 형태는 다르지만 날아온다.
전원주택단지지만 그들의 모습은 성냥갑같은 아파트의 삶과 다르지 않다. 웃는 낯으로 인사를 할 뿐 속내를 드러내며 손을 내미는 이웃은 어디에도 없다.독촉장은 가족을 불안에 휩쓸리게 하고 판단을 흐리게 한다. 어디서 쏟아졌는지 모르는 험악한 개들이 아이를 물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육장쪽에 있다는 병원을 찾아 헤메다가 결국은 그들에 떠나온 도시속으로 달려간다.그들이 원하던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전원주택이라는 허상에 사육되고 있었던건 아닌가.

동물원의 탄생 - 도심속 동물원에서 늑대가 탈출하고 돔형태의 높은 새장속에 있던 새떼들도 사라지고 만다. 늑대와 새들은 도시를 혼란에 바뜨린다. 늑대를 보았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늑대에 의해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도 많고 알지 못했던 구석진 더러운 곳에서 새들은 시체를 발견하기도 한다.세상은 늑대를 연상시키는 옷들이 유행이 되고 늑대를 잡는 명목으로 총을 소유하는 것도 자유로워진다. 사내는 드러나지 않는 사회 구성원이다. 어디에서도 부각을 나타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지하에 살고 사내의 고향도 저 깊은 시골이다. 사내는 늑대를 잡고 싶어졌다. 총을 구입하고 늑대를 찾아 나선다.총구에서 순식간에 뿜어져나간 총알은 이전까지의 사내의 삶에 찍는 요란한 종지부 같았다.82쪽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누구나 한자루의 총을 소유하고 싶을 것이다. 점점 모든게 늑대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늑대가 아닌 부랑자를 쏟고 마는 사내. 그러나 두려움은 어디에도 없다. 사내는 점점 늑대가 되어간다. 모두가 잡고 싶어하는 늑대는 무엇이었을까.내 안의 또 다른 나였을까?

밤의 공사는 읽어내기 참으로 힘든 소설이었는데 메마른 시선으로 시작되지만 과감함을 벗어나는 섬뜩함이 있다. 거대체구의 아내와 쥐를 키우는 아이. 방관자처럼 살고 있는 남편이 허물어져가는 담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에게 나타날 수 있는 극단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집에는 유독 동물들이 많이 나온다.사육되어지는 개,탈출인지 모르는 늑대와 새떼 ,사람을 이겨내려는 쥐,달리기 하는 코끼리,튀겨지는 닭.
동물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사회의 실상이고 실재였을까. 나는 누구로 살고 있을까.사육되어지는 개일까 달리기하는 코끼리일까. 어쩜 그 모두인지도 모르겠다.
찬찬히 다시 읽어보면 이 소설들은 근래 몇 년간의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의 어디에선가 벙커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기억한다. 동물원에서는 수시로 동물들이 뛰쳐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금요일의 안부 인사 분실물은 물과 기름처럼 살고 있는 이웃과 직장동료의 이야기를 냉소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첫번째 기념일 퍼레이드 점점 존재를 잃어가는(변화라고 사람들은 말할지도 모를) 사회구성원들의 허기진 모습을 이야기한다.

사육장 쪽으로라는 소설에서 겉으로 보여지는 세상과 만난다. 화려한 고층 빌딩숲에서 빛나는 불빛,깊은 속을 보여주지 않는 또같은 아파트,소리질러 화를 내고 싶지만 짐짓 웃고 있는 모습들, 깨트리고 싶은 세상을 깨트리지 못하는 우리를 만난다.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틀을 깨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이 세상에 이렇게 살게 될꺼라는 두려움이 드는 것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내가 존재하기 때문일까? 그래도 언제가는 미세한 틈을 발견하고 틀을 깨는 시도도 계속되고  나 역시도 틀을 깰 것이고 어슴푸레 드러나는 새벽도 보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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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찾아서
이순원 지음 / 문이당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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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이 시골을 무척이나 떠나고 싶었던 나는 엄마의 가슴에 앙칼진 못을 박고 고등학교를 외지로 나와버렸다. 집안 형편을 알았지만 모른채 하였고 내심 왜 나만 안되냐는 오기도 가득했는지 모른다.
대학졸업을 하던 해 엄마가 갑작스레 돌아가지 않았다면 재작년 고교진학을 앞둔 조카에세도 어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라고 부측였을 것이다. 나를 품어줄 고향에 엄마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고향의 의미가 없다.허나 아이러니한 운명은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이 시골로 나를 다시 데려다 놓았다.
손을 뻗으면 여기 저기 많은 바다가 잡힐 듯 하지만 내가 가본 바다는 몇 안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나는 동창녀석들을 통해 내가 느끼는 거리감과 동질감은 책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그것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말을 찾아서]라는 책에는 이순원님의 은비령이 있다. 그 언젠가 눈내리던 한계령에 이창훈과 이영애가 있었던 드라마. 그래서 더 기억이 되는 이름 은비령. 내가 즐겨보았던 TV문학관은 종종 이렇게 그 이미지의 원본인 책을 궁금하게 만든다. 은희경의 '내가 살았던 집' 김탁환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두 작품의 영상도 여전하게 내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은비령은 그 이미지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기대만큼 나를 충족시켜 주지 않았다.
[말을 찾아서] [시동에서] [강릉 가는 옛길][은비령] [영혼은 호수로 가 잠든다] [매듭을 이은 자리 ] 이렇게 6작품이 수록된 이 소설집은 은비령외의 다른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말을 찾아서 - 자식이 없던 작은 집으로 양자를 가게 된 주인공 수호의 성장소설로 읽혀졌다. 나귀를 끌던 양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과 가기 싫은 양자로 살아야하는 두 아버지를 모시고 살게 되는 수호의 내적 갈등을 잘 드러나 있다. 양아버지의 나귀가 끄는 수레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부분은 이효석의 메일꽃 필 무렵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작가의 고향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릉 가는 옛길 - 내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소설속에 등장하는 작은 시골 초등(국민)학교의 모습과 선생님이라는 권력자와 그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식으로 겪었던 경험이 무척이나 와 닿았다. 교실바닥과 복도를 양초를 바르고 문지르며 청소하고 특별활동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요즘 말하는 특기적성을 하던 장면에서 나도 글짓기반이었었지 하는 생각을 웃음짓게 되었다. 내 어린시절과 유난하게 학교에 자주 오던 엄마를 둔 아이가 전인상(지덕체를 겸비한 아이에게 주는 상이었다)을 탈 때 단 한 번도 학교에 오지 않았던 엄마를 원망했던 어린시절의 나를 보게 되었다. 물론 주인공 수호형제처럼 우리집이 아주 가난한 건 아니었지만 다 알아서 잘 하리라는 엄마의 믿음을 철이 든 다음에야 헤아릴 수 있었다고 할까?

이 단편에는 학교라는 또 다른 사회를 보여주고 있다. 자율적인 사회가 아닌 독재에 가까운 사회를 연상시키는 학교로 쓰여졌다. 그 안에서 상처받을 어린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거의 없다. 누가 옳다 그르다 애기가 아니라 누구를 마음속에 잊을 수 없는 스승으로 둔다는 건 그것 자체로 순수하고 아름답다 196쪽 어른이 되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작가의 마음을 알거 같다.
나머지 네 편의 소설은 삶에 대한 존재의 이유로 허덕이는 사람들의 이야기속에 작가 스스로의 내면적 갈등과 피동사로 보여지는 삶의 흐터진 조각 조각이 잘 묻어 있는 듯 하다.이 소설집의 단편들은 강원도,강릉,설악산 한계령,경포대등 배경으로 쓰여졌는데 작가의 어린시절 기억 중 일부를 꺼내서 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보이지 않는 줄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강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주인공이 모두 남자이며 드러내고 있는 이름은 이수호 라는 점으로 남자나 선생님으로 표현된 드러나지 않은 주인공 역시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또 하나의 이수호라고 짐작하게 한다. 이 이수호라는 인물은 작가이순원의 그림자가 아닌가 싶다. 40대를 접어들때 쓰여진 이 책은 남자들의 연령도 40대이고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의심은 주의를 두고 읽지 않아도 책의 곳곳에서 나타난다.

영상의 은비령을 기억하지 않고 책으로 먼저 은비령을 만났더라면 은비령에 대한 신비감을 잃지 않았을꺼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책이나 작가에게서 느껴지는 선입견을 버려야함을 알지만 아직 내게는 그 정도의 눈이 없다. 매번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여류작가의 책을 만났던 내게 눈을 맞추고자 기다리는 이윤기님의 나비 넥타이를 만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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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뜰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4
오정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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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함박꽃(작약)이 피어있고 커다란 향나무 옆으로 탐스런 수국이 있던 내가 태어난 허름한 작은 시골집의 비오면 질퍽거리던 작은 마당. 내 어린시절,막내딸이라는 위치로 퇴근하는 아빠에게 두 언니들을 대신하여 맛난 과자나 사탕을 사달라고 전화를 걸어 애교를 부리는 애교쟁이 이기도 했었다. 그때의 전화체계는 전화교환수가 있던 때인데 때마침 아빠는 우체국에 근무하셔서 바로 통화할 수 있었다. 그저 즐겁고 욕심많던 내 어린시절.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나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웃음이 사라지는 사춘기를 겪어냈다.

이 책은 단편을 묶어낸 소설집이라는 느낌보다 유년을 거처 사춘기를 지나고 사회로 나가고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중에는 빈 겁데기만 남게 되는 슬픔의 간직하는 우리의 어머니로 이어지는 그런 한 여자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또한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다시 읽는거 같기도 했다.

우선 소설의 주인공이 모두 여자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여류작가의 여류 주인공을 좋아하는 편이다. [유년의 뜰] [중국인 거리] [겨울 뜸부기] [저녁의 게임] [꿈꾸는 새 ][비어 있는 뜰] [별사(別 辭)] [어둠의 집]을 하나씩 만나본다.

유년의 뜰중국인 거리는 말그대로 유년의 시간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이라는 공통적인 소재를 다루며 여자 아이를 빌어 삶의 고통과 내면의 세밀함을 그 암울했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있는그대로 드러내려고 한다. 유년의 뜰 의 내가 말없는 아이로 등장하는 반면 중국인 거리의 나는 데바라진 아이로 살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가족의 흐터짐과 동시에 가족이라는 응집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느껴지며 이제 유년기의 여자 아이가 아닌 여자로 태어나는 모습을 담아낸다.

겨울 뜸부기저녁의 게임은 어른으로 성장한 여자의 이야기로 오빠라는 숨겨진 존재가 나타난다. 엄마에게 너무 큰 보물이었던 오빠는 결국 엄마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가져가고 그 엄마의 곁에는 나만 남겨지고 소소한 반복의 일상속에 담담함이 묻어있는 겨울 뜸부기와는 달리 저녁의 게임에서 오빠는 목소리만을 남긴채 사라진 신비한 존재이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고 주인공 나와 당뇨병을 앓고 있는 아빠도 무척이나 모호하고 몽환적이다.

꿈꾸는 새비어 있는 뜰과 별사에서는 결혼을 한 여자들의 이야기로,완벽할 정도로 행복하게 보여지는 일상의 뒷편의 보여지지 않은 또 다른 일상속의 외로움에 쉴 새 없이 말을 하는 꿈꾸는 새의 나를 만나게 되는데 무척 안쓰럽다. 시대가 지난 지금의 여자들은 왠만해선 모두 일을 가지고 있거나 바쁜 생활을 살고 있게지만 공허한 내면을 달래려 주인공인 나처럼 어디선가 그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있을지 모른다. 누구가를 기다리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는 글로 시작되는 비어 있는 뜰의 나 역시 남편과는 소통하지 못한다. 별사에서도 남편은 먼 거리에 있다, 그것을 죽음을 빌어서 나타내고 있지만 비어 있는 들과 별사는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지키려는 안간힘 같은게 내게로 전해졌다.그러나 작가 오정희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어둠의 집은 커다랗고 낡은 집에 혼자 남아있는 중년 여자의 모습이다. 비가 와서 방수공사를 하고 페인트칠을 하고 식구들을 기다리지만 이제 각자의 세상을 꿈꾸는 가족들의 귀가는 점점 늦어진다. 그러는 사이 여자는 낡은 낙엽처러 부서지기 시작한다.
 
소설속의 주인공에게는 아버지,오빠,남편으로 이어지는 남성의 부재가 있다. 시대적인 배경이라하기에도 그 부재는 우연 치고는 너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런한 인물을 심어놓은 구성으로 작가가 하고 싶은 메세지는 무엇이었을까? 혼자서도 아름다운 뜰을 가꿀 수 있다는 걸까? 아니면 그들과 다시 소통하고 사랑하라는 것일까? 전자이든 후자이든 그 부재에 관해서 한 번쯤 깊게 생각해 볼만하다.

쉽게 읽혀지는 글이 아니라서 어쩜 더 집중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낯선 단어는 검색을 하기도 했다. 초판이 1981년이라는 것을 보고 소설속의 여자들은 지금쯤 진정한 자기만의 뜰을 가지고 있을꺼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며 유년의 뜰 이라는 책으로 저 멀리 잠자고 있던 나의 유년의 모습을 꺼내보고 그 곳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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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슴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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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더운 요즘 나는 나를 달래가면서 검은 사슴을 읽게 되었다.
이 여름날 꽃가루처럼 날리는 눈을 떠올리며 깊은 골짜기의 울림에 귀기울이며 책장을 넘기고 넘기고 또 다시 주춤하다 그렇게 읽었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답답한 먹먹함 이랄까,그것이 맞는 답일까?
한강의 검은 사슴.

초반에는 너무 어렵게 다가왔다. '내 여자의 열매'라는 단편들로만 그녀의 글을 접한 내게 검은 사슴은 긴호흡을 필요로하기에 내심 두려워지기도 했다. 이러다 책을 덮어버리면 어쩌지? 그래서 더 열심히 들어오지 않는 책장을 넘기도 또 넘겼다.
검은 사슴을 만난다는 것은 어쩜 꿈이었는지 모른다.

검은 사슴,북한에 서식하고 있다는 검은 털을 가진 사슴. 막장속에서 광부를 만나게 되면 뿔을 잘라주면서 빛을 보게 해달라고 했다는 검은 사슴.
깊은 막장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 터널을 빠져나오는 광부들이 검은 사슴이리라.
그네들이 보는 막장을 뚫고나와 만나는 그 눈뜨지 못할 빛이 바로 삶이리라.

잡지사 기자인 인영,기억을 잃고 사라진 의선,의선을 사랑하는 명윤,그리고 황곡에서 만나는 사진작가 장, 임씨와 그의 아내
의선을 흔적을 찾아 헤매는 명윤과 인영은 강원도 황곡에서 장이라는 사진작가를 취채하게 된다.
왜 사진을 찍는지 잃어버린 남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장은 자신을 떠나간 아내를 끌어안고 산다. 그러나 그녀를 잡지 못했다.
취재를 핑계삼아 떠나왔지만 인영은 사실 의선을 찾아야하는 이유를 말할 수 없다.간절하게 의선을 찾아 헤매는 명윤도 사실은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얽힌듯 엮긴 그네들의 만남에는 어떤 필연이 있었을까? 인영과 명윤이 찾고 있는 의선이라는 여자가 사진작가 장이 떠올리는 임씨의 딸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닫게 되었다.

눈발이 가득한 겨울이  눈 앞에 그려진다.
밝음과 멀리있는 사람들이 있다. 짐짓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는데도 흐림으로 보이는 사람들.
실은 나도 잘 웃지 않는다. 소설속의 인물이라도 어쩐지 닮은 꼴 성향의 사람을 발견하면 주춤하게 된다.
엄마와 언니를 잃고 세상에 홀로남은 인영에서 가녀린 손가락으로 머리를 매만져주던 의선이 가족같은 존재였다는 걸,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던 명윤에게는 의선은 또 다른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의선은 곁에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 지쳐가고 있을 때를 만나게 된다. 나에게 향한 따뜻한 시선을 알지 못하기도 하고 주변의 지인과 가족들에게 마음과는 달리 무뚝뚝하기도 하다. 한줄기 빛을 향해 달려나오는 검은 사슴처럼 우리가 갈망하는 빛을 알아가는 과정이 산다는 것일까?
인영도 명윤도 의선도 사진작가 장도 모두 검은 사슴이었겠지. 잘라줄 뿔은 없지만 세상의 빛을 향해 이제는 눈을 크게 뜰거라는 걸 안다.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것을 멈출 때 비로소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251쪽

인영이 너무 일찍 깨달은 것을 나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그 깨달음을 얻을때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혼잣말로 중얼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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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열매
한강 지음 / 창비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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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밤 눈이 아닌 귀로 들려오는 낭독의 소리는 언제나 나를 매료시켰다. 그런던차에 만난 목소리의 주인공이 소설가임을 알았다. 한강이라는 너무 예쁜 이름. 나는 중얼거렸다.음,필명이 너무 멋지네. 작가 한승원씨의 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이름이 본명이라는 것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야 알게되었다.

그 날 한강이 낭독한 구절이 이 소설집에 있었다. [어깨뼈]라는 아주 짧은 글이었는데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내게로 온 그녀의 글이 너무 슬퍼서 나는 몇 번이고 다시보기를 눌러 그 목소리를 기억하곤 했다.그녀의 목소리만큼 이 소설은 단아하고 낮은 음색으로 쓰여졌다. 적당하게 행복하거나 적당하게 웃음이 묻어나거나 적당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글이다. 단편 하나 하나 사실 즐거움으로 밑줄을 그을 만한 곳은 없었다.적어도 내게는, 그렇지만 뭐랄까?겨울을 뚫고 먼저 봄을 데려온 목련의 수줍은 듯한 은은함이 있었고 베란다를 통해 달려드는 장마철 굵은 빗줄기같은 힘이 있었다.

단편들을 보면 제목에서 내용이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어느 날 그는] [철길을 흐르는 강] [해질녘의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흰 꽃]이 소설들은 인간의 내면의 충동과 갈등을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과 또 어디론가 회기하고픈 인간의 본능을 읽을 수 있었다.현재와 과거를 함께 서술하여 가끔 혼돈이 되기도 한 부분도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결국 그들의 사랑은 소통되지 못한 몸짓에 불과하고 여자도 남자도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내면의 또 다른 그네들과는 전혀 다르다. [아기 부처]나 [붉은 꽃 속에서]는 사찰에서의 풍경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짙은 향내가 가득하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내가 그 상처를 낸 주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고 깨닭음이라는 이름으로 또 그 생을 꾸역꾸역 살아가게 되는지 모른다. 속세를 떠나지 않아도 우리는 보살이 되고 속세를 떠나고 그 안에서 맴돌기도 한다. ......지나가는 아픔 하나 견디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아기 부처 중 111쪽] 

이 소설집의 제목으로 붙여진 [내 여자의 열매]는 어느 날 부턴가 식물로 변해버리는 아내의 이야기로 소재가 무척이나 특이하다.점점 초록의 식물로 변해가는 아내에게서 강렬한 생명력을 발견하는 남편. 아내가 남기고 간 열매는 아내이고 그 열매는 계속해서 싹을 띄울꺼라는 희망이 있다. 인간으로써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었던 아내. 그 아내가 시들어가는 것을 모른척했을지 모르는 남편.그렇치만 아내를 놓아 줄 수 없을 만큼 외로웠던 남편이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우리는 이처럼 언제나 외롭고 애처롭기만 하다.

[아홉 개의 이야기]는 아홉 개의 아주 짧은 글들이 있는데 마치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진거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하나 하나가 모두 다른 목소리를 낸다.그 중 [어깨뼈] [목소리]가 내겐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당신의 마른 어깨와 내 마른 어깨가 부딪힌 순간. 외로운 뼈들이 달그랑,먼 풍경(風磬)소리를 낸 순간.-[아홉 개의 이야기 중 어깨뼈 - 251쪽]

그녀가 선택한 어휘는 무척이나 고급스럽고 단단하며 투명하기까지 하며 귀를 귀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그녀의 목소리처럼 읽는 내내 집중하게 된다. 맑은 떨림으로 만들어내는 그녀의 소설을 다음엔 눈이 아닌 내 몸에서 올리는 나만의 목소리로 소리내어 읽고 싶은 충동이 인다. 반짝이며 별처럼 빛나는 글속에 보이지 않는 달과 해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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