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도종환의 산에서 보내는 편지
도종환 지음 / 좋은생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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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당신'으로 세상을 물들였던 시인, 도종환. 그가 깊은 숲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음은 작은 월간지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가 들려주는 짤막한 산골 이야기를  만난 적이 있다. 그렇게 써내려간 맣은 글들이 이제 우리를 시인이 살고 있는 숲으로 향하게 한다. 그가 들려주는 자연의 소리 자연의 향기, 그리고 그숲에서 만나는 일상, 산짐승들과 새들의 노래들과 텃밭에 심은 쑥갓, 상추와 대화를 하고 자신을 정좌하는 그곳으로 초대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이 가지고 있는 그만의 색을 시인의 눈으로 보고 시인의 감성으로 써내려간 글들은 마음을 맑게 한다. 그의 말처럼 청안하게 한다. 맑다는 느낌, 그리고 샘물같은 느낌. 그리고 둘러본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내 곁에 있는 자연. 그리고 내 모습,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중요한 목표요 이유이기도 하지만 고통의 원인도 거기 있습니다.내가 벗어나야 할 것도 바로 그 안에 있습니다. 영원히 내 것은 없습니다. 52쪽, 다른 사람을 만나는 날 그를 위해 신경썼던 것처럼 나를 만나는 날은 나를 위해 시간을 보냅니다.139쪽] 바쁜 세상, 어지러운 세상을 그 밖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말하고 있다. 조금 천천히 조금 더디게 그리고 조금 자세히 살면 어떨가 하고 제안한다. 세상 모든이에게 주는 편지이건만 마치 오롯이 내게만 보내는 편지인양 읽는 내내 즐거움이 함께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잠시 멈춤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또 세상속으로 돌아올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봄을 안겨주는 책이라 소개하고 싶다. 물론 책속에는 사계가 담겨있다. 그러나 연두빛이 고은 표지에서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숲에서 삶의 터전을 가꾸고 사는 삶은 타인의 눈에는 욕심을 버린 것 처럼 보이고 세상을 버린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세상에 시를 뿌리던 그가 그 숲에서 새로운 씨를 뿌리게 되었을때 갖었던 수많은 상념들이 글속에서 흐르고 있다. [옳은 것은 옳게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조급한 게 탈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은 서서히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183쪽, 많이 읽고 아는 것만큼 마음이 그렇게 깊고 맑게 바뀌는 일은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을 조금이라도 바르게 실천하며 사는 일은 휠씬 더 중요합니다. 200쪽] 시인이 조근조근 들려주는 말은 인생의 선배로써 인생의 교수(敎授)로서 곧 강의, 그 자체이다. 

싱그러운 봄날, 아침을 여는 청아한 이슬같은 시인의 모든 글이 이제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같다. 그리고 또 숙연해진다, 이것이 시인의 세상에 전하고 싶은 말들일 것이다. 그러니 도종환, 그는 그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에 마음이 가 있으면 하나를 제대로 볼 줄 모르게 됩니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보지 못합니다. 많은 것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적은 것을 깊이 있게 만나는 일은 더 중요합니다. 적게 많날때는 가까이서 자세히 보게 됩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산국화 한 송이도 가까이서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향기롭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적은 사람을 가까이서 만나는 일도 필요합니다. 깊이 있게 알아가노라면 분명히 그 사람의 향기를 느끼게 됩니다. 316쪽] 시인이 숲에서 전해주는 향기가 세상으로 점점 더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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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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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내가 전경린의 책을 선택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제목 때문이다. 오래 전에 만난 책의 제목도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 이라는 책이었다. 그 향이 너무 짙어서 전경린의 책은 알게 모르게 거리를 두었었다. '엄마의 집' 이라는 책도 '엄마' 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아마도 그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의 집' 이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도 엄마인데 내 집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집이 아닌 엄마의 집이라는 것은 엄마의 공간이라는 뜻일까. 그런데 참 이상하다. 문학에도 유행이나 흐름이 있는 것일까? 전경린황진이를 쓸 당시도 또 다른 황진이가 시선을 받고 있었고 이 책 역시 얼마 전에 만난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두 작가의 작품을 내맘 대로 꼬집어 볼 수 있어 내심 쾌재를 부른다.

우리의 시대는 이만큼 변화하고 있다는 것일까. 이혼녀, 재혼, 별거, 한 부모 가정, 이제는 쉽게 만나지는 단어들이지만 여전하게 그 단어를 만날때 마음이 편치 않음은 나의 보수적 성향 때문일까. 이혼을 한 엄마가 자신의 집을 갖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이제 그 집에서 자신의 전부인 딸과 뜨거운 해후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아빠의 딸이 등장한다. 과연 핏줄이 섞이지 않은 승지와 호은과 엄마는 한 집에서 살 수 있을까? 책에서 만난 유쾌한 호은과 냉소적인 승지는 보색의 관계처럼 그렇게 두드러진다. 그러면서도 그 조화가 아름답다. 세상을 모두 껴안고 싶은 아빠와 나만의 세상이 곧 세상의 전부라 믿고 있는 엄마의 모습도 호은과 승지와 비슷하다. 여기서 나는 작가 전경린머리 속을 궁금해했다. 도대체 이런 글을 어떻게 쓸 수 있었을까, 아니 그녀는 왜 이리 따뜻해지고 평범해졌을까? 내용은 물론 평범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내 생에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의 미흔도 엄마였건만 미흔과 미스 엔 사이에는 몇 번의 변화가 있음을 느낀다.

엄마라는 것은 세상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의 집이라는 것은 가족이 아닌 타인도 미움이 가득했던 상대도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아주 큰 공간이다. 그리고 그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는 것이다. 아, 전경린. 나는 그녀에 대한 색안경을 벗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녀 역시 세상에 대한 문을 열어둔게 아닐까. 가족이라는 것은 이제 점점 그 의미를 정의하기 어려워진다. [일상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존재적 고뇌를 가족과 나누는 것은 무리이다. 일상과 존재의 경계에서 가족간의 절망이 생겨나는 것이다.95쪽] [가족 공동체의 내부는 다정과 간섭이 넘치지만 사실, 한 치만 건너서 들으면 또 얼마나 이기적이고 흉한 공모인가. 96쪽] 가족이니까라는 이유로 쉽게 행한 말들과 행동으로 우리는 더 큰 상처를 만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것, 보듬어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존중해주어야 하는 기본적인 사회인 것이다.

혈연만을 중시하던 우리네 사회에서 다양한 가족의 구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데 나는 개인적으로 식구라는 말을 가족대신 쓰고 싶다. 공지영이 그려낸 집이라는 것이 화해의 공간이었다면 전경린이 그려낸 집은 공유의 공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공지여의 글이 지극히 감정적이었다면 전경린은 이성적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엄마의 집'이라는 것은 아빠의 부재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우리 사회를 꼬집는 것도 같았다. 곁에 있어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아빠의 부재, 그 부재가 가족을 위한것이고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 하지만 그 부재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집을 갖는다는 것은 또 다른 자신을 갖는다는 생각이 든다. 

미스 엔은 책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아이의 엄마라는 것이다. 그녀가 딸 호은에게 하는 말은 모든 엄마가 그들의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사랑이든 삶이든, 난 그게 내 몫의 강물을 헤엄쳐 건너는 일 같아. 그 물은 내 존재로부터 솟아나와 큰 강을 이루어. 누구에게나 혼자 건너야 하는 강이 있는 거야. 263쪽]  [사람이란 관계 속에서 가장 사람답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누구나 일 년에 한 달쯤은 완전히 혼자 지내보는 것도 좋을 거야. 여행을 가라는 게 아니야. 자신의 일상을 그대로 하면서 가능한 지인을 만나지 않고 묵묵히 홀로 생활을 해보는 거야. 자신의 원형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이곳과 자신을 만끽하면서. 270쪽]
함께 하면서 자신의 공간을 나누며 살고 있는 우리의 집, 나도 집을 꿈꾼다. 진정한 화해와 소통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꿈꾼다. 엄마라서 참 좋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꿈꾸는 집, 그곳에 행복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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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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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에서의 조제, 그 흥분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그리고 이제 영화 속 조제가 아닌 소설 속 조제를 만났다. 또 다른 조제가 등장하는 영화를 그려본다. 등장인물은 조제,베르나르,니콜,파니,알랭, 에두와르,베아트리스,자크,졸리오 모두 아홉 명이다. 배경은 프랑스 파리이다. 문학과 사랑의 삶이 함께하는 곳에서 사랑에 대한 그들의 고뇌를 엿본다. 조제는 과거의 베르나르를 기억하지만 현재는 의대생 자크를 사랑한다. 니콜은 잘 때도 베르나르가 들어올 문을 향하여 잠을 자며 그를 기다린다. 베르나르는 여전하게 조제를 사랑하고 있다. 현명한 파니와 살고 있지만 알랭은 베아트리스를 사랑한다. 연극배우인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졸리오에게 향하고 그런 베아트리스를 사랑하는 에두와르는 절망하게 된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랑들이 이 곳에 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우선은 설명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한국소설도 등장인물이 많으면 정리가 안 되는데 익숙치 않은 인물들을 파악하고 나니 한결 수월하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 그 사랑을 원하고 소유하려 한다. 과거의 사랑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기도 한다. 사강이 그려낸 아홉명의 사람들의 관계는 아주 평화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파니와 알랭 부부가 주최하는 모임에서 글을 쓰는 베르나르와 조제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본다. 사랑은 이렇게 예고없이 그리고 소리없이 온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뜨거움이 영원하게 지속되지 않는다. 베르나르와 니콜은 서로가 바라보는 방향이 너무 다르다. 니콜은 무조건 베르나르를 이해하고 기다린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주어지는 무언의 고통을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모두에게 그것은 잔인한 현실이다. 

사강은 소설 속에서 한 여름의 뜨거운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감정이 흐르는 대로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정말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시간이 있는 사람은 결코,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눈(目)을 찾는다. 그것으로 자신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77쪽 ] 우리는 서로를 향해있기 때문에 나를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인지 모른다.

[난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하려 했죠? 그래요, 그건 근친상간이죠. 우리는 '같은 '사람들이니까요. 89쪽 베르나르가 조제에게 보낸 편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함으로 서로를 닮아가다가 한 순간 그것이 너무 끔찍하게 다가올 때도 있다. 그런 것일까? 소설 속 인물들은 적절치 못한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냥 그럴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끔 사강이 독자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 소설은 1957년에 발표된 소설이라고 한다. 그 시대의 파리는 이런 모습이었을까? 사강이 꿈꾸는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맹목적 사랑, [한 달 후, 일 년 후] 에도 그 열정이 남아있는 사랑, 아니 그 시간에 소멸될까 두려워 흐르는 대로 그렇게 맡겨버리는 사랑이 아닐까 싶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내게 사강의 글은 그렇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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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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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큰 언니와 나는 '이청준'작가에 대해 이런 저런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이청준'이라는 작가를 직접적으로 알게 된 것은 큰 언니때문이었다. 암투병중이라는 소식과 이번에 소설 집을 냈다는 대화를 나누며 얼른 병을 이겨내길 바란다는 소망을 함께 했다. 그의 소설에는 섬이라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 소설 중에 섬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어려운 소설임을 알지만 그래도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더 큰 생각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서 내심 뿌듯함이 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한 평생을 살아오는 사람들은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적지 않은 부담감을 안고 있을 꺼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왜냐하면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허구로 꾸며진 이야기라고는 하나 그 안에 살고 있는 기구한 삶의 모습을 실제로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글이라는 것이 사회를 반영하고 사회를 담고 사회를 향한 거울이기에 작가로써의 소명의식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이 책에서 만난 글은 나에서 시작하여 우리를 만들어내고 동네와 지역사회를 만나 나라로 확장되어지고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다. 여태껏 살아낸 삶들이 꾹꾹 눌러 담은 밥그릇처럼 소북하게 담겨있다고 보면 맞을까.  '이청준'님이 한 평생 써놓은 이야기를 추억하는 듯한 4편의 에세이 소설도 담겨있어 독자로써도 무척 의미있는 책으로 남을 것이다. 그 안에서 '이청준'님이 쓰고 싶었던 글들과 써야만 했던 글들을 차례로 만나니 더욱더 '이청준'님의 어려운 글을 더 많이 읽어내지 못한 사실이 죄송스럽다.

그리움을 먹고 자란 돛단배는 전설이 되어 후세에 그 배(천년의 돛배)에는 꽃이 피고, 머나먼 타국의 바다에서 이어져 우리의 바다로 연결되는 그곳(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에도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들은 모두 전설적인 힘들을 품고 있다. 자신 스스로의 전설(지하실)이나 마을의 전설(이상한 선물), 나아가 나라의 알려지지 않은 아니, 제대도 알리지 않은 역사(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역시도 전설이 되어 신화가 되어 우리에게 전해짐을 느낀다.  

소설들을 읽어 내려오면서 나는 잠깐 잠깐 우리나라의 역사를 거슬러 기억해야만 했다. 88올림픽당시 깨끗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고속도로 옆으로 보이는 비닐하우스 촌을 무작위로 철거했다는 그런 내용이 왜 떠오르는 것일까? 상대의 눈이 아닌 직시의 눈이 아닌 내 눈으로만 보았기에 그러할지 모르겠다. [내 우정 자네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 눈길을 바꿔 보면 세상 일이란 사람 따라 세월 따라 다 그렇게 달라보이는 법이여! 지난 일이 그리 소중하다면 내일 또 지난날이 될 오늘 일이 우리한텐 더 소중하니께 말여. [지하실]137쪽 ] 우리는 왜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사실들을 소설로 풀어 내려하는 작가 '이청준'님을 우리는 너무 잊고 있는게 아니었던가. 제목으로 쓰인 [그곳을 다시 있어야 했다]와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 두 소설에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있다. 나라를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의 한과 슬픔을 우리는 이제 끌어안아야 한다. 비단, 소설 속의 멕시코나 우즈베이크 끝이 아니다. 세상 곳곳에서 내 나라 내 조국을 그리며 숨 쉬고 있을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후세에도 전해야 한다.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 그것은 순리이며 진리인 자연일 것이다. [섬들은 저희끼리 밤 이야기 위해 서로 다가앉는 것뿐이다. 섬들 가운데에 나는 없다...... . 그 섭리와 경이 앞에선 나 역시 숨죽이며 자신의 존재를 지워 없애야 했으니까. 그렇듯 차라리 절망스럽기까지 했으니까.[조물주의 그림] 263쪽]  임권택 감독과의 인연을 글로 담은 소설 [조물주의 그림] 속에서의 이 말이 제대로 내 안으로 들어와 박힐 날은 아마도 내가 몇 십 년을 더 살아낸 후가 되지 싶다. 

[신화를 삼킨 섬]을 출간할 당시에, 이 작품이 내 생의 마지막이라 했다는 말을 언니에게 전해 들었다. 이 책을 내면서도 어쩜 '이청준'님은 이 책이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르리란 생각이 스친다.  [혼자 가는길, 앞을 알 수 없는 길, 믿음이 없는 길...... .[귀항지 없는 향로] 279쪽] 문학에 대한 길을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혼자가 아닌 많은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길, 신념으로 글을 쓰시는 그 길을 동행하고 싶어하는 많은 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조금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괜찮으니 계속해서 '이청준'님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신이 들어주시길, 하루 빨리 병상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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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9-03-12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선물하려고 사요... 땡스~^^

자목련 2009-03-12 21:28   좋아요 1 | URL
좋은 분께, 좋은 선물이 되겠네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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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나는 어떤 소설을 기대했던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를 잘 듣기는 했을까? 소설을 좋아하는 나지만 이 책은 내 리스트에 없었다. 김연수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지도 못했거니와 내가 좋아하는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 정복]이란 책의 역자인 줄도 몰랐다. 세상에나 요즘 소설가들은 번역도 잘하고 이렇게 끔찍할 만큼 긴 호흡의 글을 쓰는 재능도 있다니, 하느님은 너무 한거 아냐, 나의 투덜대는 소리는 아마도 하느님의 귀에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 책에 무엇이 있기에 그리도 흥분하면서 이 책을 말하는 건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그 뒤에 어떤 말이 나오면 좋을까?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네 편이다. 우리는 하나이다. 김연수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음, 나는 사랑한다를 예상했었다. 애절한 사랑의 밀어를 기대했다. 한 참을 읽어내려가도 나는 종잡을 수 없는 미로에 빠진 기분이었다.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또 다시 만나지는 처음의 그 길,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또 다른 길.. 그랬다. 그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헤메다 보니 멀리 그 끝이 보이는 듯 하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나와 한 사람의 관계의 다리를 건너다 보면  저 외국 누군가와도 관계가 닿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프로를 본 적이 있다,아마도 스펀지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경험을 하기도 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꺼라 여겼던 사람이 내 친구의 친척이거나 지인이 되는 경우, 좁디 좁은 지역사회에 살다보니 사실 그런 두려움에 나에 대해 말하기 꺼린 적도 있었다. 이 책엔 그러한 관계의 지속이 클립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끝없는 이야기의 시작은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태워지지 못한 한 장의 누드 사진으로 시작되는데 그 사진은 정말 시작일 뿐이었다. 그 사진의 출처를 찾아 나서며 정민과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그 이야기는 광대한 우주를 채울 것만 같다. 정민의 삼촌과 정민의 이야기, 나의 할아버지의 이야기,그리고 광주의 한 복판에서 자신의 전부였던 사람(한기복)의 죽음을 지켜보게 된 이길용과 그 이길용이 강시우로 다시 존재하여 살기까지의 이야기, 90년대 운동권 학생의 대표로 독일로 날아오게 된 내가 만나는 베르크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그 이야기들.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설명하기 어렵다. 그들의 관계가 쫌쫌하게 짜인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같고 또 그 그물을 낚아 올린 누군가와도 같다고 할까? 그리고 기대지 않던 사랑과 존재의 외침이 있다.

[인생이 이다지도 짧은 건 우리가 항상 세상에 없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173쪽] 소설 속 많은 인물들이 갈망했던 것은 민주주의도 아니며 자유도 아니며 자신의 존재,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거짓으로 위장한 많은 사람들의 삶은 우리가 살아온 80~90년대,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6.25전쟁과 일제 식민지까지 이어진다.
[지금 네가 느끼는 그 세상이 바로 너만의 세상이야. 그게 설사 두려움이라고 하더라도 네 것이라면 온전히 다 받아들이란 말이야. 더이상 다른 사람을 흉내내면서 살아가지 말고.254쪽] 살아가면서 느끼는 크고 작은 두려움, 두 팔 벌려 환영하지 못하지만 내 것으로 만들려면 그것과 친해져야 할 것이다. 그런 것이 삶이겠지.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378쪽] 누드 사진은 아무 것도 아닌 그저 흔한 한 장의 사진 일 수 있었다. 그 사진을 통해 이어지는 수많은 너와 나 그리고 저 먼 우주에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내가 있을 뿐이다[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384쪽] 삶이란 진정 그런 것일까? 내가 살아온 기쁨과 슬픔의 날을 기억하는 것이고 그 날들을 감정을 배제하고 내가 너에게 잘 설명하는 것. 그것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네가 존재하는게 너무 다행이다' 라는 보이지 않는 어떤 소리를 듣는 듯 했다, 그리고 또한 나와 어떤 형태로든 닿아있을 누군가가 있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슬퍼할 때 그 누군가도 어쩜 함께 슬퍼할지 모르고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그 누군가는 들을 것만 같았다. 설령 그게 신이라도 괜찮다. 아니 영광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이런 글을 쓰는 김연수는 아마도 작가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기 위해 수억년 저 멀리 어떤 별에서 지구로 날아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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