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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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은 그 장르를 불문하고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한다. 듣고자 하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리에서도 누군가 켜놓은 사무실 라디오를 통해서 휴대전화의 벨소리, 음악은 우리의 귀를 자극한다. 아침에 메일을 확인하고 개인 블로그에 음악을 켜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 날 그 날 컨디션에 따라 선곡하는 음악도 다르다. 또한 특정한 음악을 들을 때면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쯤 누구나 있을 것이다.

 저자 올리버 색스는 오랜 기간 환자들과의 교류를 책으로 발간하여 화제가 되곤 했다. 그 중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를 만났다. 이번에 그가 쓴 <뮤지코필리아>라는 책은 음악을 통해 발견한 놀라운 사실들의 기록이다.  음악으로 치유되고 음악으로 고통받고 결국 음악으로 하나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음악 때문에 겪는 여러가지 상황들은 결국 뇌로 이어지고 우리의 뇌는 정말 미지의 공간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남에게 들리지 않는 음악이 시도 때로 없이 자신에게만 들리는 사람, 어제까지 즐겨 들었던 음악이 오늘은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 열심히 연주하던 악기를 연주 할 수 없게 된 음악가, 치매로 인해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게 되는 사람들, 음악에만 놀라운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들. 결국 그 환청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그 고통들을 끌어안는 법,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사는 그들에게 음악은 어떤 존재일까?

 보여지지 않는 드러나지 않는 환청에 시달리는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세상과의 단절이며 세상과 고립된다는 느낌일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특이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올리버 색스라는 의사에게 증상을 호소하고 의견을 구하는 것은 올리버 색스가 그들에게 지닌 기본적인 의사로써 갖춘 그 외의 열정과 애정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전문서적에 가까운 이 책이 궁금했던 이유도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에서 느꼈던 저자에 대한 믿음때문이다. 더구나 뇌에 관한 질병을 가진 사람들은 가족과 지인들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을 받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치료를 위해 자신의 피아노를 병동으로 가져다 놓는 의사는 얼마나 든든한 존재이겠는가.

 음악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다. 다리 수술 후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특정 음악을 듣고 걷기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 싫어증에 음악치료의 접근이 효과적이었다는 것, 파킨슨 병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 이 모두는 뇌가 어떤 음악적 흐름에 움직인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외도 일반적으로 우리는 음악을 통해 지친 마음을 위로받고 음악을 통해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린다.  

 지금도 음악을 듣는다. 내게도 상한 마음을 위로해주고 불안에 휩싸여 있을 때 나를 지켜준 노래가 있다. 장시간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 입은 뗄 수 없었을 때, 숨을 쉴 수 없어 중환실에 산소 마스크를 달고 있을때에도 내 머리속에는 흐르는 노래가 있었다. < 축복송 > 이라는 가스펠송인데, 이상하게 그 노래를 듣고 있거나 마음으로 부르고 있으면 큰 위안이 된다. 아마도 나의 뇌는 < 축복송 > 이라는 음악적 신호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앞으로도 지금처럼 음악은 우리의 곁에 존재할 것이다.  즐거울 때 흥을 돋어주고, 슬플 때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또한 그 음악으로 인해 여전하게 고통받는 사람들 역시 음악과 함께 할 것이다. 

 올리버 색스를 통해 새로이 알게 되는 뇌질환 환자들의 이야기,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특별한 시선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가 참으로 고맙고 그의 또 다른 시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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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8-07-28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자목련님!
여기서 만나니까 무지 반가운걸요~^^

자목련 2008-07-29 14:20   좋아요 0 | URL
아, 뒷북소녀님..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주시고, 저도 반가워요.^^*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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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책>이라는 주제에 답을 부탁한다는 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선뜻 '이 책이다' 하고 떠오르는 책이 없었다. 책을 좋아한다고 책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나의 책읽기는 수많은 활자를 읽음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어 무척 부끄러웠던 마음을 기억하고 있다. 내게 책이란 일상이 되었지만 정작 나를 흔든 책은 무엇이었을까?  

 정헤윤, 그녀가 다시 나를 유혹하는 책을 들고 나왔다.  작년에 <침대와 책>을 통해 책에 둘러싸인 침대를 부러워하게 하더니 이번에는 표지 속 그녀는 멋진 서고를 꿈꾸게 한다. 이제 정혜윤은 내게 책, 그 자체이다. 나아가 내가 쉽게 책냄새를 맡을 수 있는 도서관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이 더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부제, <정혜윤이 만나 매혹적인 독서가들>가 소개하고 있듯 책속에서 나를 기다릴 그들이다. 그들은 진중권, 정이현, 공지영, 김탁환, 임순례, 은희경, 이진경, 변영주, 신경숙, 문소리, 박노자11명의 독서가들이다. 

 익숙한 이름들, 보여지는 그들의 내면을 채워준 보석들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꿈꾸던 그들은 어떤 어린 시절 어떤 책을 품었을까, 어떤 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을까.  방송이나 글을 통해 만났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로의 만남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으며 그 것이 책이라서 더 즐겁다. 그들 각자가 풀어놓는  책읽기의 추억은 달콤한 솜사탕처럼 다가오고 자꾸만 녹아 들어 아쉬움을 남긴다. 비슷한 세대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같은 테두리의 세대라서 그들이 소개하는 책들 중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 책을 만날 때면 이상하게도 '휴' 하는 안도의 숨소리가 새어나온다.

  지금은 모두 유명 인사가 되어 각자의 활동 분야에서 엄지손가락으로 지칭되지만 그들 역시 힘든 시간을 지나왔고 심한 방황의 끝도 보았을 순간 그 곁에 책이 있었음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또 그 책들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 어린 시절, 사춘기 시절, 아름다운 소설 속 주인공을 꿈꾸었듯이 이제 삶의 나침반을 제시하는 그 책들을 꿈꾼다.

 오직 책만을 사랑한 진중권. 독일로 일본으로 더 큰 세상을 만나고 돌아올 때 온 몸 가득 책을 데리고 온 그의 책에 대한 사랑은 그가 책을 쓰는 근본적인 힘이 되었다. 평범하지 않는 삶이 잘못된 삶이 아님에도 불고하고 항상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자책하고 고민하던 공지영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길을 열어준 책 중 <오스카 와일드의 옥중기 중 "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타인에게도 일어나리라." 74쪽 > 아, 가슴에 바람이 분다.
 
 ' 책은 견디기 힘든 시간을 지나게 해줘요' 235쪽  라고 말하는 문소리, 순간 나는 가슴 한 편이 찡해옴을 느낀다. 내게 있어 책은 그랬다. 견디기 위한 방법, 나를 견디기 위한, 타인을 견디기 위한, 그런 시간의 강을 거슬러 가게 했다.  한국이 좋아 한국인 된 박노자가 좋아하는 장자(268쪽)를 소개하며 말하는 '쓸모있음'과 '쓸모없음' 은 많은 생각의 문을 두드린다. 주변을 둘러본다. '쓸모있음' 과 '쓸모없음' 나는 혹 후자에 속하면 어쩌지. 

 책에서 책을 만났다. 책이라는 아름드리 나무는 다시 책이라는 잔 가지를 뻗어 나게 하고 책이라는 열매를 맺게 한다.  몇 몇 작가의 작품과 문학에 편중되어 있는 나의 책읽기에 이처럼 강력한 자극이 또 있을까. 사실, 이 책 속에서 만난 11명의 인물들에 집중하기도 했지만
정작 나를 가장 달뜨게 한 것은 정혜윤의 글이다.  

 그녀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소개하면서 ' 살아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꿈꾸게 하고 우리를 살게 한다는 말이 얼마나우리를 강하게 하는 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292쪽 아, 나는 이 책을 읽지 못했기에 이 말이 간직한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음이 안타깝다. 또한 그녀가 소개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쓸쓸함보다 더 큰 힘이 어디 있으랴> 에 대해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 어떤 사람들이다른 삶이나 죽음에 끌린다 해도 그건 절망이 아니라 애착 때문인 경우가 많은데 그들에게 사랑과 반항은 일치한다. 결국 사는 동안 중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세계와 자신을 이어주는 어떤 단서와 끈을 찾느냐 마느냐의 문제같이 느껴진다. ' 293족

 내가 속한 세계에 닿는 끈을 나는 찾았을까. 수없이 많은 물음표가 머리속을 헤엄치기 시작하며 하나의 답으로 내게 있어 정혜윤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소중한 책이라는 끈임에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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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마음을 놓다 -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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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씩 우울한 날들을 겪는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제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때를 만난다. 세상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잘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이고 나만 홀로 그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게 아닌가 수많은 생각이 스친다.  그럴  때마다 책을 만났다.  < 사람 풍경 > 과 < 따귀 맞은 영혼 >은 내게 많은 위로를 주었지만 나는 내내 삶에 대한 두려움만이 가득했었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기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어쩜 나 혼자만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 요즘도 내심 앞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뒤로 하고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힘들 때에는 가까이 있어주고, 자기편이 되어주고, 일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15쪽,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을 '제대로' 비추지 못한다고 느낄 때 상처를 받는다. 나만큼 나에게 집중해주지 않기 때문에 섭섭하고, 나보다 나를 하찮게 취급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다. 65쪽]

 내 주위를 둘러보며 이런 사람들을 다섯 손가락을 넘겨가며 꼽을 수 있는가 의문이 든다.  때때로 가족, 친한 친구들은 언제나 내 편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만나게 되면 그 실망감과 절망은 이루 다 설명할 수 없기에 더 절망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런 내 마음, 아니 모두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저자 이주은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사람이 마음을 다치는 일은 실은 아주 사소한 감정 때문인데, 그림을 통해 그 마음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시에서 받는 그 느낌과는 조금 다른 듯 하다. 나와 같은 마음의 이미지를 그렸던 그 당시의 화가의 마음도 그러했을까. 생각해본다.

 책 속에는 낯익은 그림들도 많고 이미 일반화된 마음을 달래는 흔한 구절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그리 식상한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저자가 자신의 일상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일상, 그 안에서 숨쉬는 욕구, 욕망은 누구든지 형태만 다를 뿐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자가 가진 그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점도 이 책이 가진 평안함이라 할 수 있겠다.

[ 아름다움도 환상이고 사랑도 결국엔 환상 일 수 있다. 인생이라는 현실도 많은 부분은 환상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53쪽, 한 순간 한 순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의미가 된다. 생은 유한해서 덧없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소중함을 모르는 채 엉뚱한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다. 165쪽]

조각 조각, 모자이크를 만들 듯,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 꿈이었으면 싶은 날들, 때로는 꿈이라면 깨지 않았음 하는 날들, 그것이 인생이라고 나 또한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조각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누군가 명쾌한 답을 줄 수 있다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나만의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많이 알려진 그림이 아닌 숨겨진 그림을 만나는 즐거움도 큰 책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좋은 친구가 또 있을까 싶다.

참으로 시간라는 것은 이상한 것인가 싶다. 앞서 만난 두 권의 책을 읽을 때는 읽고 있으면서도 내 안에 숨쉬는 슬픔, 분노, 화는 그대로 웅크린채 살아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편안한 느낌이다. 시간이라는 약이 그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가진 고단하고 단단한 감정들이 그림을 통해 조금은 부드러워 지고 있는걸까. 여하튼 내게는 그 크기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위로가 되는 책이니 그것으로 족하다.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 말을 거는 그림.  존 슬론 < 일요일, 머리를 말리는 여자들 >

너무도 슬픈 그림, 자꾸 눈이 가는 그림. 마리안 스토크스 < 지나가는 기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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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 안경원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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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납 기일을 두 번이나 연장하도록 한 게으름과 동시에 욕심을 낸 책이다.  쉽게 읽히지도 않았으며 번쩍하는 빛이 보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 권 한 권 조경란의 소설을 읽어가면서 책 속에 감추려 했던 아니, 드러내려고 했던 조경란의 모습을 찾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수없이 많은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낸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는 것은 나뿐일까. 

 10편의 소설, 어느 하나 즐거운 엔딩을 보여주는 소설은 없다. 시를 위한 소설처럼 낮은 읊조림으로 들린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을 만나기 어렵다. 어쩔 수 없는 강한 힘에 끌려 인생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결코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운명적 관계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 운명적인 관계, 그것은 사랑의 관계, 핏줄의 관계이다.  그러나 완전하게 완성된 관계는 찾을 수 없다. 죽음으로 인한 어머니의 부재, 힘없고 나약한 가장들의 존재들로 인해 삶의 끈을 놓고 싶은 딸, 아내들은 모두 힘겹다. 

 
내 사랑 클레멘타인
 
 든든한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갑자기 알츠하이머 병에 걸리고 만다. 숨쉴 수 없는 시간들이 시작되고 가족이라는 이름뿐 모두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유학을 핑계로 떠나버린 남동생,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병든 아버지를 원망하고 질책하는 여동생, 점점 비대해지는 몸으로 병든 아버지를 수발하는 어머니, 그 사이 사랑은 떠나버리고 가장으로써 남은 그녀. 소리내어 악을 쓰고 싶은 현실,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그녀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한 이는 아무도 없지만 그녀는 이 울타리를 떠날 자신이 없다.

 
사소한 날들의 기록

 제목처럼 사소한 일상일 수 있는 날들의 기록이다. 심리 치료 워크숍에 참석한 사람들의 3일 간의 기록이다. 8명의 인물 하나 하나의 닉네임과 외부 묘사를 통해 그들을 이미지화한다. 참석한 모두 내면에 자리잡은 상처를 치료하고 싶어하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믿었던 사랑에 대한 배신, 불륜을 일삼는 아버지, 이복동생과의 갈등. 그리고 남편과 자신과의 속내가 두려운 화자. 3일이라는 기간을 통해 변화의 시작을 원했던 그들. 그러나 화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중독

 이 단편은 마치 조경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듯 보인다. 스물 여섯의 대학 입학, 소설을 쓰고 있고 신춘문예에 당선한 소설 속 권재경은 조경란과 흡사한 인물이다. 시를 쓰고자 했지만 결국 소설가가 된 재경과 같은 학과 동기인 완희 언니, 두 여자의 이야기.  자신의 자살을 재경에게 확인하게 끔 편지와 열쇠를 보낸 그 섬뜩함은 소설의 제목인 중독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같은 듯 다른 두 여자, 서로에게 속하지 않았다고 믿었지만  완희가 남긴 노트를 통해 재경은 완희와 자신이 닮아있음을 발견한다. 이야기를 이끄는 화자인 재경의 글쓰기와 소설 속 완희가 남긴 글을 비교하며 읽게 하는 짜임은 이 단편의 특징이라 하겠다.

 불란서
안경원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이름의 안경원이다. 그만큼 평범한 이름처럼 평범함을 가장하며 살고 있는 때로는 음융하고 때론 속물적이고 절망적인 우리의 모습의 단면을 보여준다. 주인공 나는 불란서 안경원의 안경사이다. 단정한 외모에 친절한 미소를 띄고 있다. 그러나 지친 일상에 마음은 찌들어 가고 있다. 그녀가 볼 수 있는 세상은 오직 12자,8자인 안경원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세상뿐이다.

' 세상을 12자, 8자 통유리로 들여다보고 이해하기까지...... 지나치게 많은 시간들이 필요했다. 그것은 어쩌면 삶과의 전의(戰意)을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중략 나에게 삶이란 단지 오늘을 견디는 것, 바로 그것뿐이다. 아직 더 견뎌야 했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내게 삶을 견디는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없다. 304쪽'

 그 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과의 형식적인 관계가 전부이다. 안경원을 시작하고 평범한 삶을 꿈꾸게 했던 남자는 그녀를 떠나고 자신을 향한 세상의 눈은 온통 경계의 대상이다. 자신의 생계를 이어주는 자신들의 안경은 누구에게는 사치이고 세상을 보는 절실한 것이다. 유리창을 통해 보는 세상, 그 유리창을 깰 날이 그녀에게 올까?

 소설 속 그녀들은 나이에 따라 민감한 반응을 보여준다.  서른 한 살( 내 사랑 클레멘타인 ), 스물 아홉( 푸른 나부 ), 스물 여덟 살( 천국 보다 낯선 ), 서른 셋( 사소한 날들의 기록 ), 서른 하나(불란서 안경원) 등등 소설 속 그녀들은 서른 전후의 나이들이다. 작가 조경란이 갖는 나이에 대한 의미가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 하나 소설 속 전화가 갖는 의미도 크다. 

 
' 내가 걸고 싶은 전화와, 내가 걸지 못한 전화와, 내가 걸었던 전화와, 내가 끊었던 전화와, 내가 기다렸던 전화 때문에. 그 전화들 사이로 흘러간 추제할 수 없이 안타까운 시간들 때문에... ... 129쪽 '

 새벽에 걸려오는 낯선 전화, 자신이 잠든 사이 공중전화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남편,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어머니, 부재 중 전화를 통해 확인하는 자신의 목소리. 가족이 아닌 상대를 갈구하는 사람들, 낯선 이를 통해서라도 막연한 소통을 기대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결핍된 것은 무엇일까?

 삶은 자신에게 찾을 수 없는 결핍을 끊임없이 발견하게 한다. 우리는 그 결핍 그대로인 삶을 끌어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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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1 2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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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4 0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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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5 1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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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5 2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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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7 0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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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연인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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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하건대 정미경의 소설을 무척 기다려왔다. 두툼한 책을 한 장 한 장 쓰다듬으며 아껴가며 책을 읽었다. 앞서 만난 기존의 소설보다 우리에게 더 가깝고 조금 더 편안하며 속물적이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이 소설집 현실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또한 작가 정미경이 가졌던 삶에 대한 촘촘하고 단단한 자신만의 생각뭉치를 넉넉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하게 쉽게 풀어놓지 않았다. 바로 그런 점이 정미경의 소설이 가지는 힘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연인을 이용해 경제적 안식을 취하려 했지만 결국 사랑하는 연인은 아무리 사랑한다고 소리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관계가 되버리고 마는 소설 < 너를 사랑해 >, 현실과 이상은 남편과 애인으로 대두되고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힘든 고난의 현실은 사라졌지만 결코 이상적인 삶을 만날 수 없음을 알게 된 < 들소 >, 아이만 있다면 둘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꺼라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결국 남편과 자신의 문제는 아이가 아닌 본질적인 다름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 바람결에 >, 아들의 가난한 연인을 통해 자신의 젊은 날을 돌아보며 추억하지만 사랑이 아닌 현실을 선택한 자신의 부유하고 넉넉한 삶을 후회하지 않는 주인공 나, 아들의 선택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지만 아들이 현실을 선택해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 내 아들의 연인 >.

 소통의 부재속에 살고 있는 내게 다가온 한 여자를 통해 새로운 소통의 대상을 확신하지만 결코 그녀가 이명(耳鳴)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그녀 역시 삶의 굴레에서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자신과 닮은 사람이었음을 말하는 < 매미 >,  믿고 싶지 않은 것, 보고 싶지 않은 것, 그리고 자신만의 방법의 사랑을 이해받고 싶어하는 모습을  색을 통해 풀어낸  < 시그널 레드 >, 과거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열정을 쫓았지만 현실은 열정의 허무와 껍질뿐임을, 그저 과거의 기억은 그렇게 기억속에 존재할 때 의미가 있다고 소리치는 < 밤이여, 나뉘어라 >.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소설,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 적당한 짐 하나를 내려놓는 소설, 쉽지 않은 소설들, 읽는 동안 불편한 마음을 불러오기도 했다. 한편으로 한 문장 한 문장 끊임 없이 메모를 하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도 했다.  소설에는 지금의 우리가 있었다. 정미경이 소설을 쓸 당시의 2007년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두 편의 소설을 제외하고 소설속 화자나 등장인물은 모두 Y, K, P,M 로 나타난다. 그 영문자 대신 나의 이름, 혹은 당신의 이름을 넣는다면 그것은 바로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이런 소설을 쓰기에 정미경의 소설이 독자에게 기대감을 주는게 아닐까 싶다.

 현실과 이상,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 이상이라 믿었던 세상은 한낱 꿈처럼 허무하고 불편한 세계일까? 선택의 몫은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본인뿐이기에 우리는 꾸준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열심을 내는 대로 계획하는 대로 살아지는 것이 삶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기억한다.

 이래도, 이래도 , 하며 삶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툭툭 던져놓는다. < 들소 -  69쪽 >
 ....... 이제 누구도 내게, 넌 무얼 원하냐고 묻지 않지만, 늙고 시든 채로, 손에 쥔 먼지만큼의 날들을 살아내야 할 무녀처럼 생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내게도 있다. 158쪽 < 내 아들의 연인 - 158쪽 >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내 객관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얼굴을 갖고 있는지, 영원히 변치 않는 건 다만 이 초라하고 지리멸렬한 삶 그 것뿐이란 것도.  < 매미 - 19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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