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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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정은 표현해야 한다.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아낌없이 말이다. 좋은 소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애정은 무조건 좋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아쉽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걸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도 애정이다. 관심이 없다면 아예 읽지도 않을 테니까. 7회를 맞이하는 젊은작가수상작품집은 매년 구매하면서도 매년 성실히 읽는 건 아니다. 읽다가 만 단편도 있고 나중에 소설집으로 나왔을 때 읽은 경우도 있다. 이번에는 온전하게 읽었다. 7편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지 확인하게 되었다. 그것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상 수상자인 김금희, 정용준, 최정화, 김솔의 소설이 좋았다. 김솔의 소설은 아마도 다시 읽었을 때 더 좋을 것 같다. 뭐랄까, 처음에는 맛을 모르고 먹었지만 자꾸만 기억되는 맛이라고 할까. 기준영, 오한기, 장강명의 소설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좋고 나쁨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만 내게는 아직 어렵거나 친근하지 않다는 말이다. 오한기의 소설은 독특했지만 나 같은 독자에게는 불편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나는 타인을 이해하려는(조금 쉽고 친절한 다른 말로 대신하고 싶은데 그런 말을 모르겠다) 작가의 흔적이 역력한 소설을 사랑한다. 김금희의 단편「너무 한낮의 연애」는 묘한 감정을 불러오는 소설이었다. 주인공 필용은 대기업 영업팀장에서 시설관리팀원으로 좌천된다. 직원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사내식당 대신 근처 종로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십육 년 전 대학시절을 회상한다. 그 시절 필용의 곁에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재미없는 시나리오를 쓰는 양희라는 후배가 있었다. 양희가 고백을 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관계가 아니었다. 그런데 양희의 고백은 좀 이상했다. 지금 오늘은 필용을 사랑하고 있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양희의 고백은 생각해보면 가장 솔직한 고백이었다. 시시때때로 모든 건 변화하니까. 그러니 김금희의 이런 문장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어떤 그리움과 알 수 없는 감정과 맞닿는다. 시간이 지나야만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하면 맞을까.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너무 한낮의 연애」, 43쪽)

 

 정용준의 단편「선릉 산책」에서 화자인 나는 자폐을 앓은 발달장애 청년 한두운을 돌보는 아르바이를 한다. 단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일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무엇을 해야 좋을까. 대화가 통하는 사이도 아니니 그저 근처 선릉을 산택할 뿐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한두운을 관찰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세상을 보는 그에게 연밀을 느끼면서 나와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경계를 두었던 나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사력을 다해 살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데 삶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걸 말이다. 

 

 과거의 인터뷰 사건으로 모든 걸 잃고 다시 재기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내면의 갈등과 불안을 섬세하게 포착한 최정화의 「인터뷰」는 무엇이 삶을 흔들고 균열시키는지 보여준다. 최정화는 불행을 통해 삶을 환기시키는 소설을 쓰는 것 같다. 제목 그대로 알바생을 자르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그린 장강명의 소설은 가독성과 흡입력이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내게는 이제 그의 소설이 특별하지 않다.

 

 김금희와 정용준의 소설 속 화자는 우리의 일상과 가장 닮은 사람이다. 그래서 마음이 더 기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 어제같은 오늘을 살지만 결코 어제와 같지 않은 오늘을 그렸다고 할까. 여하튼 나는 그 둘의 소설이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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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9-1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하루되세요.^^

자목련 2016-09-19 11:17   좋아요 1 | URL
긴 연휴가 끝났는데 게으름은 여전합니다, ㅎ
서니데이 님, 즐거운 한 주 시작하세요^^

보물선 2016-09-1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두편이 좋았슴다!

자목련 2016-09-19 11:18   좋아요 0 | URL
^^*
 

 

 여름은 사라지고 싶지 않은가 보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지만 낮에는 여전히 뜨겁다. 아파트 주변에 고추를 말리는 풍경이 정겹다. 햇빛과 만나면서 반짝이는 붉은 색이 참 예쁘다. 언제부터 그 빛깔들을 보고 예쁘다, 생각했던가. 맵기만 한 고추, 긴 겨울에 뿔을 따느라 손이 아렸던 기억밖에 없던 고추가 예쁘다니. 달라진 건 나였다. 내가 달라져야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지만 곧이 듣지 않았던 시간이 지났구나, 혼자 생각했다.

 

 주말에는 H를 만났다. 출장 다녀오는 길에 시간을 내어 내게로 왔다. 어느 시절에는 밤을 꼬박 새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잠을 자야만 하는 내가 되었다. ​잠들기 전까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다. 계획된 일정에 대해, 소소하지만 거창하다 말할 수 있는 삶의 일부에 대해 말했다. 감사를 느끼는 순간에 대해, 두려움을 이겨냈던 순간에 대해, 화가 나고 속상했던 일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순간에 대해 말이다. 좋은 밤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말하는 사이가 된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채울 수 없는 욕심을 버릴 수 있는 용기와 그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숭고한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만남, 이별, 그리고 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흐르는 강에 다리는 놓은 일은 아닐까. 그냥 건너뛸 수 있는 물에는 다리는 놓지 않는다. 젖어도 괜찮다고 여기니까. 그러나 깊고 넓어지는 강에는 반드시 다리가 필요하다. 깊고 넓다는 건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난 관계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리는 놓은 일은 수고스럽다. 많은 왕래에도 튼튼한 다리, 갑자기 쏟아지는 비, 바람을 견딜 수 있는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 정성으로 상대를 대하는 마음, 진실을 보여주는 행동, 어렵지만 꼭 필요한 것이다. 피곤을 안고 먼 길을 가야하는 H를 배웅하며 산다는 건 별게 아닌데, 그런 생각도 들었다. 만남을 기약하는 이별은 따뜻하다. 문자나 메신저, 전화로 수많은 다짐과 약속을 반복하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짧은 순간처럼 온전한 감정의 교류는 없다. 그러니까 H를 만나서 나는 너무 좋았고 행복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런 책도 즐겁다. 드디어 『악스트 Axt 8호에서 김연수를 만난다. 이번 호는 정말 많이 팔릴 것 같다. 류근의 두 번째 시집 『어떻게든 이별』, 구병모의 장편소설『한 스푼의 시간』, 강영숙의 단편집『회색문헌』​. 9월의 리스트다. 강영숙의 소설집은 5년 만에 나오는 것이다. 명절연휴에 읽어도 좋겠다. 긴 연휴, 스트레스는 날려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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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9-13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자목련 2016-09-14 07:4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도 건강한 명절 보내세요. 언제나 다정한 안부 고맙습니다^^
 
-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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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에 방법이 없기 때문에.’ (11쪽)

 

 단정한 흰 양말, 유난히 빛났던 교복 칼라, 하얀 고무신, 마당에 핀 흰 수국, 짧게 잘려나간 손톱, 작은 리본 머리핀, 그리고 병원 침대 시트. 흰 것을 생각하자 떠오른 것들이다. 중요한 의미를 지녔거나 특별한 것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적고 보니 소중한 것들이다. 쓰기 전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부서졌던 말들이 자신의 이름을 듣고 모여 나를 바라보는 듯하다.

 

 시와 소설의 경계를 오가는 듯한 목소리. 그저 어떤 읊조림으로 다가오는 글이다. 아무에게도 들려주고 싶지 않은 목소리, 그러나 누군가 한 사람쯤은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처럼. 한 번도 화를 내 적 없고 한 번도 크게 울지 못한 소리 없는 통곡처럼. 그래서 어느 글에서는 슬펐고 어느 글에서는 짧은 손편지를 받은 것처럼 답장을 써야 할 것만 같아서 머뭇거렸다. 괜찮다고, 나도 당신과 같다고, 잘 지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한강의 글을 통해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상하게 그랬다. 여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삶과 죽음 안에 거하는 모든 흰 것들을 말하고 싶었을 마음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궁금해졌다. 소설 속 그녀와 어머니, 그리고 나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면서도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존재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보고 평생을 지우고 못하고 기억하며 살아가는 삶. 사람들은 하얀 비누 거품처럼 후 불어버리라고 말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시간이라는 약도 소용없는 불치병을 앓는 이들과 그 곁에서 눈처럼 녹아버리는 존재들에 대한 애도로 삶의 일부를 내놓은 삶은 우리는 알고 있다.

 

 가만히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을 응시한다. 파도, 달, 모래, 눈, 서리, 안개, 상복, 언니. 그녀에게는 온통 흰 것으로 남은 것들이 내게는 도무지 하얀 빛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무섭고 검푸른 파도를 본 기억, 나무를 잡아먹을 듯 쏟아내렸던 눈의 공포, 자동차 불빛에 의지해 벗어나야만 했던 안개, 너무 커서 자꾸만 밟히던 상복, 하얀 원피스의 슬픔을 남긴 젊은 큰언니.

 

 상처를 감싸고 고통을 지워줄 것 같은 깨끗하게 새하얀 흰 것. 무엇으로도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흰 것. 그러나 흰 것들과 함께 나가야 할 삶은 흰 것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혼과의 마지막 이별의식으로 땀과 눈물로 얼룩진 수의를 모두 벗어 태워야만 하고 태어남을 증명했던 기쁨의 흰 종이가 영원한 부재를 증명하는 비통의 종이로 바뀌므로.

 

 그러니 한강이 보여주는 흰 것은 온전히 희다고 말할 수 없는 색을 지닌 것이리라. 흰 것들을 통과해야만 볼 수 있는 어떤 빛들에 대해 생각한다. 얼음, 눈, 눈보라, 서리, 성에처럼 차가운 기운이 아니라 뜨거운 온기를 지닌 흰 것들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흰 것에서 슬픔과 죽음을 본다. 그리고 버티며 살아 내는 삶을 본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그리움의 공간을 채워야 할 숙제를 내주고 떠난 누군가가 있는 거기,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흰 것들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빛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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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 행복한 죽음을 위하여
박예슬 외 지음 / 엔자임헬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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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두려움으로부터 분리해야 하고, 죽음이 삶의 정상적인 과정임을 인식해야 한다.’ (59쪽)

 

 노후를 준비하듯 죽음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겨우 오늘을 살아내기도 바빠서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염려할 시간이 없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적확한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장례식장이나 추도 예배를 드릴 때에나 죽음과 만나고 죽음을 확인할 뿐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죽음을 볼 수 있다면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인식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1년 2개월 동안 쿠키뉴스 기자들이 만난 죽음의 순간에 대한 기록인 『해피엔딩』이 죽음에 대한 변화를 안겨주지 않을까 싶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을 맞이하는 방법은 다양한다. 죽는 순간까지 죽음을 인정하지 못해 힘겨운 마지막을 보내는 이도 있고 남은 삶을 정리하며 행복하게 마무리하는 이도 있다. 어떤 죽음과 만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해도 그 선택의 몫은 오로지 스스로의 몫이다. 책은 다양한 죽음의 과정을 보여준다. 천천히 삶과 이별하는 사람, 준비 없이 갑자기 마주하는 죽음, 치료를 거부하고 세상과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 아무도 모르게 쓸쓸히 고독사로 발견되는 사람. 죽음이라는 걸 생각하면 무섭고 두렵기만 하지만 죽음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삶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 죽음은 결국 삶이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한다는 건 삶을 산다는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걸 항상 생각하고 산다는 건 끔찍하다. 그렇다면 죽음을 만지는 일이 직업인 장례기사는 불행한 사람일까. 아니다.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 자원봉사, 의사,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법의학자들, 그리고 장례기사에게 죽음은 숭고하고 삶도 그러하다. 책에서 다루는 죽음은 단순히 생을 마감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통한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이다. 장기기증,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논의, 시신기증, 의료 사고 등 사회적 이슈를 다루며 죽음에 대해 현실적인 문제의 해법을 제시한다. 영정사진을 찍고, 유서를 쓰고 직접 관에 들어가 누웠다가 다시 나오는 과정의 죽음 체험은 읽는 것만으로도 경건하고 엄숙해졌다.

 

 부모님과 큰언니를 떠나보내고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그 시간은 줄어든다. 매일 죽음을 전하는 뉴스를 들으면서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의 마지막에 무엇을 해야 할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삶을 마감한 베티 조 심슨 할머니처럼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병원이 아닌 집에서 죽음을 맞고 싶어 했던 큰언니가 생각난다. 말기암 가정 호스피스가 시범사업을 큰언니가 받을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 제도가 온전하게 시행되기를 바란다.

 

 ‘생명은 마지막까지 고귀한 것이고,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기억돼야 할 존재이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삶의 가치를 찾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다. 따라서 죽음을 준비하면서 우리 모두의 삶은 의미가 있고, 현재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삶은 소중하다.’ (162쪽)

 

 행복하고 아름다운 죽음은 우리가 만들 수 있다. 마지막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보낼 것인가. 죽음을 직시하는 순간 죽음이 편안하게 다가올 것이다. 마지막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순간의 소중함을 놓쳤을 때 이 책은 잊고 있던 감사를 불러올 것이다. 애도의 시간에 이 책을 펼쳐도 괜찮다. 어쩌면 눈물은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것은 소중한 삶의 일부며 그것은 현재를 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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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6-09-19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례식장에서 우리가 슬프게 우는 것은 아마도 거기서 부모의, 사랑하는 이의, 그리고 나의 죽음을 미리 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자목련 2016-09-20 16:03   좋아요 0 | URL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장례식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 속 가족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잠깐, 했으니까요. 나와같다면 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벽녘에 반가운 소리에 눈을 떴다. 비가 오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기다렸던 비다.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침대 구석에 내팽개졌던 이불을 끌어당겼다. 여름과의 온전한 이별이 남았지만 가을이 오는 것만 같았다. 말복도 지나고 처서도 지났으니 조금씩 생활이 달라진다. 아침에는 뜨거운 커피와 함께 부드러운 단호박을 먹었다. 선명한 단호박이 나를 보고 웃는 듯했다. 빗소리는 잦아들었다. 곧 비가 그칠 것이다. 길어진 가뭄의 갈증을 풀어줄 비를 또 기다리겠지.

 

 하나의 계절이 가고 하나의 계절이 오는 날들의 감정은 선명할 수가 없다. 계절의 변화는 어떤 시간을 소모했는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떠난 큰언니의 추도예배를 드리며 나눈 대화가 그러했다. 큰언니의 냉장고 속 유통기간이 지난 양념을 정리하면서도 1년이라는 시간에 담긴 일상의 조각을 떠올렸다. 큰언니가 아꼈던 나무는 더위를 견디지 못했고 나는 그것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가 야자수라 부르는 나무만 건재했다. 잘린 줄기에서 자란 잎이 너무 예뻤다. 다음에 만날 때는 또 얼마나 자라있을까. 고마운 나무였다. 청소를 하고 필요한 물건을 메모하고 우편물을 챙겨 돌아왔다. 큰언니의 집에 다녀오면 더욱 빈자리는 커진다. 

 

 냉장실에는 여름 과일인 복숭아가 사라지고 사과와 포도가 들어왔다. 순환하는 중이다. 책장도 순환한다. 알림 문자가 반가웠던 김혜진의 첫 단편집 『어비』와 백수린의 두 번째 단편집 『참담한 빛』,삶과 죽음을 말하는 두 권의 책『해피엔딩』『숨결이 바람 될 때』, 남겨진 여름을 위한 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지난했던 여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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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8-26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아이스 라떼를 마시니 이제 따뜻한 커피를 마셔야겠구나, 했어요. 아웅, 가을결이 느껴지니 또 마음이 좀 그래요.

자목련 2016-08-29 10:41   좋아요 0 | URL
기척도 없이 가을이 다가오니 저도 마음이 살짝 이상해요. 가을이 온다는 건 겨울도 멀지 않았다는 일이니... 그래도 더위가 물러가니 한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