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고요히
김이설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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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을 만큼 힘들다고 말한다. 죽을 만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습관처럼 내뱉는다. 내게 주어진 삶이 가장 힘드니까 남들이 어떻게 살든 관망할 여유도 없다. 그게 산다는 일이다. 하지만 때때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새로운 삶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령 헛된 꿈이라도 말이다. 돌아보면 그곳의 모든 흔적은 내가 만든 것인데 왜 그렇게 살았나, 후회가 밀려온다. 김이설의 소설에는 후회라기보다는 한탄에 가까운 외침이 있다. 아니, 그것은 비명일지도 모른다. 더 비참해진 삶, 더 잔혹해진 사람들, 소설의 인물들은 지독한 세상을 닮아가듯 비루한 생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그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 어깨를 짓누르는 절망에 지지 않고 말이다. 그게 삶이니까.

 

 결국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슬픔을 대신 덜어줄 수 없다. 대신 앓을 수 없고, 대신 살아줄 수도 없듯이, 온전히 자기 혼자 버텨내야 했다. (「폭염」, 89쪽)

 

 김이설의 소설은 불편하고 힘들다. 폭행이나 폭력에 대한 묘사의 등장 때문이 아니다. 소설이라는 세계의 끝에 현실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해자에게 대들지 못하고 자라 아버지의 폭력을 그대로 답습하는 「미끼」의 아들이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교사 아버지의 교묘한 폭언과 자신의 아들의 교육을 위해 재혼한 새어머니의 삶을 받아들일 수 없는 「부고」속 딸에게 작은 기쁨이나 바람은 존재할 수 없었다. 윤리나 도덕이 배제된 게 당연한다. 그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 남편 실직과 빚 때문에 모텔 청소를 하며 버티는 「흉몽」의 아내와 남편과의 불행했던 결혼생활과 이혼 사실을 비밀로 간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비밀들」 의 ‘나’의 부도덕한 행동을 탓할 수 없다. 판단도 그들의 몫이다. 비난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을 함부로 위로할 수도 없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삶이 타인의 그것이라 우리는 크게 안도하고 쉽게 잊는다.

 

『나쁜 피』를 시작으로 김이설이 직시하는 건 불행한 삶이다. 누구나 알고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애써 살피지 않는 삶 말이다. 이 소설집에서 주목할 점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걸 말하고자 한다는 거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열심히 일하고 정당한 대우를 주장한 파업의 대가로 회사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남편의 자살 후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어린 자녀를 둔 여자의 슬픈 독백 「아름다운 것들」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지고 답답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거대한 행복의 궁전으로 들어가기를 바란 게 아닌데.

 

 그런가 하면 아내 정미의 자살에 대해 감당할 수 없었던 남편 윤철의 조금씩 안정을 찾고 오히려 편안해하는 「복기」와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집을 장만했지만 오히려 이전보다 더 불안한 일상을 이어가는 「빈집」은 인간의 욕망과 심연을 투영하는 거울과 같다. 윤철은 정미가 죽고 나자 결혼 전 자신 때문에 다리를 절게 된 정미에 대한 자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행복으로 꾸며진 집의 일부가 될 수 없었던 수정의 슬픔이 멈추기를 바라는 건 나만의 바람일까.

 

 ‘윤철은 정미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것이 윤철이 꿈꿨던 이상적인 남편의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취향의 차이, 입장의 차이, 결국 타인이기 때문에 절대 합일될 수 없는 관계의 한계일 뿐이라도 여겼다.’ (「복기」, 257쪽)

 

 ‘수정은 그 순간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행복해서가 아니라,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낀다면 바로 이 순간에 느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햇볕이 꽉 찬 실내는 따뜻했다. 집안은 깨끗했다. 그런데도 뭔가 허전했다. 무엇이 더 필요한 걸까.’ (「빈집」, 317쪽)

 

 모두에게 완벽한 삶은 어디에도 없다. 저마다 자신의 기준에 도달하려 안감힘을 쓰는 거다. 거기에 작은 격려와 응원이 더해진다면 조금이나마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니 절망에 지지 않는다는 건 그것과의 단절과는 다른 말이어야 한다. 예측은커녕 상상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지는 삶에서 절망을 끊어낼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우선은 절망에 지지 않고 대등해져야 한다. 설령 절망과 나란히 걷더라도 말이다. 걷고 걷다 보면 그 끝에 절망이 아닌 그 무언가(희망이면 좋을)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버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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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 -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 당선작
금태현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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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망을 갖는 일은 뭔가 잘 될 거라는 주문을 외는 것과 같다. 그것은 지금과는 다른 삶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뤄질 수 없는 소망은 키우지 않은 게 좋을지도 모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소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남들처럼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때때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지만 삶은 멈추지 않는다. 그렇기에 『망고스퀘어에서 우리는』속 화자인‘ 나’ (코피노 청년)가 하루하루를 용케 견디는 게 대견하게 여겨질 정도다. 그 길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도(正道)가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세월은 우리를 대책 없이 성장시키고 있었다. 일년에 키가 10센티미터 자라기도 했다. 또 새해가 다가왔다. 새해 들어 우리는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12쪽)

 

 필리핀 세부에서 살고 있는 ‘나’는 고아는 아니지만 고아처럼 산다. 한국인 아빠는 병에 걸려 죽었고 엄마는 일본인 할아버지를 만나 일본으로 떠났다. 엄마는 아주 가끔 연락을 할 뿐이다. 지역의 특성상 세부의 삶은 관광객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부모의 돌봄 없는 코피노 청년은 공부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닥친 일을 헤쳐나가야 한다. 이제 곧 성년이 되는, 온전한 어른이라 할 수 없는 나이에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러니 세부 유흥가 망고스퀘어에서 사람들이 프러포즈를 할 때 관광객의 지갑을 훔치거나 한인 박사장의 마약 운반 심부름을 한다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에게 열 살도 훨씬 많은 한국에서 온 누나의 연락은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엄마처럼 살갑게 아픈 나를 보살피고 연인처럼 안아주는 누나야말로 가족과 다름없었다.

 

 필리핀에서 코피노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코피노를 떠올리면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과 겹쳐진다. 물론 이 소설이 코피노 청년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저 평범한 듯 특별한 자신의 삶을 사는 누군가의 이야기로 닿을 수 있으니까. 그건 어디에서 살든 많은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가족이 아닌 이들과 살고 있으며 불확실한 내일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으니까. 어쩌면 ‘나’가 유튜브에 실패한 영상을 올리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건 타인의 실패에 우리가 작지 않게 위안을 받고 있다는 증거 인지도 모른다. 성공한 누군가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누군가도 나처럼 실패의 삶을 살고 있다는 위로 아닌 위로 같은 것이랄까.

 

 실패를 딛고 성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언제나 최악이다. 마약 운반의 발각으로 도망자 신세가 된 ‘나’에게 그 일을 시킨 박사장은 피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미인대회 출신으로 박사장의 가게에서 일하던 베렌을 찾아오라는 일이다. 베렌의 고향에서 베렌의 어머니와 동생을 만났지만 베렌을 찾는 단서는 얻지 못한다. 좋아하는 여자를 박사장에게 대령해야 하다니. 박사장과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고 놀랍게도 베렌과 연락이 닿는다. 베렌을 박사장에게 인계하는 대신 ‘나’는 엄마가 있는 일본으로 함께 떠나기로 한다. 먼저 일본에 도착해 베렌을 기다리면서 ‘나’는 일본에서 이방인임을 확인한다. 일본의 유흥가에서, 호텔에서, 망고스퀘어를 떠올린다. 세부에서 코피노로 살아가는 자신과 일본인 할아버지와 살아가는 필리핀인 엄마, 박사장을 피해 고향과 가족을 떠나 일본에 온 베렌, 모두가 그러했다. 간절히 정착을 원했지만 부유하는 삶을 이어갔다.

 

 ‘나는 우리 네사람이 가족이라는 둘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베렌과 엄마가 나란히 주방에서 밥을 짓고, 나는 고등어를 굽는다. 지금처럼 할아버지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는다. 음식이 식탁을 구성하는 게 아니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식탁을 규정한다. 가족 중 누군가 잔소리를 하거나 참견할지 모른다.’ (169쪽)

 

 소설은 사실 단순하면서도 평범하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이야기, 내가 모르는 삶의 방식, 그 안에서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에 끌리는 건 주인공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절망이 아닌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소망 말이다. 한 공간에서 밥을 먹고 서로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봐 주는 일, 소소한 하루 일과를 나누고 내일을 기대하는 보통의 일상. 세부에 돌아가 망고스퀘어에서 베렌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상상으로도 행복하다.

 

 ‘시간은 느리게 느리게 잘도 갔다. (253쪽)

 

 잔인하게도 현실은 상상에 닿지 못한다.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망은 소망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니 누군가는 소망을 갖는 게, 주문을 외는 게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소망도 없는 삶은 황량하고 적막한 사막과도 같다. 사막을 건널 수 있는 힘이 오아시스라는 소망에 있듯 ‘나’에게는 엄마와 베렌이 있기에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어떤 시간을 보내고 어떤 소망을 키우냐에 따라 성장의 크기와 미래는 달라진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도 그 시간 안에 그들이 함께 있으면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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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꺼번에 5통의 알림 문자와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그러니까 관심 작가의 신간에 관한 것이다. 짐작한 이도 있겠지만 문학상 수상작의 경우가 그러하다.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했지만 책으로 나오면 한 번 더 기쁘고 반갑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의 수상 소식에 말이다. 후보가 아니라 수상작이었다. 이미 다른 작품집에서 읽은 단편이지만 좋은 소설은 다시 읽어도 좋지 아니한가.

 

 이제 그 작가에 대해 말하려 한다. 소설집『가나』로 처음 만났다. 블로그 이웃이기도 했다. 지금은 블로그 활동을 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만난 문장은 슬펐고, 아름다웠다. 장편소설 『바벨』과 단편소설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그리고 곧 장편소설도 나올 예정이다.

 

 문단의 상황이 좋지 않다.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독자의 바람은 좋은 소설과 시를 읽는 것,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함께 성장하고 애정을 키우는 일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2016 제16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선릉 산책』을 많은 이가 읽기를 바라는 마음의 포스팅이다. 물론 수상작 외에도 김숨, 권여선, 최은영, 최진영,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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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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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하다는 건 무엇일까? 모두 똑같다는 획일화의 뜻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무서운 말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폭력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평범하다는 건 ​보통의 사고로 타인과 공감하고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상대의 슬픔에 마음이 아프고 성공에 질투를 느끼지만 축하해 줄 수 있는 마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2016년 제15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무라타 사야카『편의점 인간』속 주인공 게이코도 그런 부류라 할 수 있다.

 

 서른여섯 살 게이코에서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일한다. 대학 입학 후 시작한 일이 졸업 후까지 이어진 것이다. 직원은 아니다. 아르바이트생이다.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았고 고향을 떠나 혼자 생활한다. 게이코는 자신의 생활에 만족한다. 편의점의 매뉴얼 대로 손님에게 인사를 하고 지정된 물건의 판매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날짜가 지났지만 상하지 않은 편의점 음식을 먹는다. 처음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살아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면접을 보고 직장에 나가는 일이 게이코에게는 영 맞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회 부적응자라 할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는다. 친구들은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고 편의점은 그만두고 직장을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결혼은 언제 할 건지 재촉한다.

 

 편의점에서는 일하는 멤버의 일원이라는 게 무엇보다 중요시되고, 이렇게 복잡하지도 않다. 성별도 나이도 국적도 관계없이, 같은 제복을 몸에 걸치면 모두 점원이라는 균등한 존재다. (50쪽)

 

 연애도 한 하고 결혼에 생각도 없고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살면 안 되는 것일까? 그래도 된다고, 선뜻 답을 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사실 게이코가 친구를 만나는 것도 평범한 삶을 흉내 내기 위한 것이다. 친구들이 나누는 육아, 결혼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도 없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여동생의 조언으로 예상 질문에 답변을 하는 정도일 뿐이다. 게이코는 편의점에 있을 때 가장 완벽하고 손님을 대할 때 가장 편안하다. 규칙대로 행동하면 된다. 이상한 손님을 만났을 때, 물건이 떨어졌을 때, 모두 정해진 답이 있으니까. 그러나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친구와 가족조차 어려운 존재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 이상한 시선들로 힘들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편의점에서도 그곳의 매뉴얼을 지키지 않으면 그들의 세계에 속할 수 없다. 지각에 근무태만인 시라하 씨가 편의점에서 쫓겨나 잘 곳도 없다는 걸 알게 된 게이코는 자신의 집에서 지내도 괜찮다고 말한다. 시라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고 싶다. 의도하지 않았던 동거가 시작되자 게이코의 동생은 언니의 연애를 반기고 시라하에게 남자 친구, 혹은 남편의 의무를 은근히 강요한다. 시라하의 제수도 빌려 간 돈을 갚으라며 게이코를 추궁한다. 시라하와 게이코는 연인 관계가 아닌 단순 동거인일 뿐인데 세상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자리에서 즐겁게 열심히 일하고 생활하는 이를 우리는 평범이라는 잣대로 비정상으로 분류하는지도 모른다. 정상과 비정상,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편의점에서 나왔지만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가는 게이코. 그 안에서 게이코는 가장 빛나는 것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해야 할 시대에 『편의점 인간』은 많은 질문과 생각을 안겨준다. 우리가 속한 사회가 삶의 가치와 개인의 행복에 대해 지정하고 강요하는 건 아닐까.

 

 “이제 깨달았어요. 나는 인간인 것 이상으로 편의점 점원이에요. 인간으로서는 비뚤어져 있어도, 먹고 살 수 없어서 결국 길가에 쓰러져 죽어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내 모든 세포가 편의점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요.”(188~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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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오래된 일이다. (사막 - 이문재)

 

 내가 단단히 결속되어 있다고 믿는 한 사람, 당신의 마음은 어떤가요? 당신은 어떻게 느끼는지 묻고 싶습니다. 오래된 일이에요. (62~63쪽)

 

 책장을 전부 시집으로 채우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시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깊이를 잴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한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허울뿐인 사랑은 사랑이 아님을 안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알리고 더 많이 지켜봐 주어야 하는 사랑임을 안다. 최근 SNS를 시작으로 #문단_내_성폭력에 대한 진실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소장한 시집, 밑줄 긋고 옮겨 적은 시가 있었다. 시에 대한 애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시를 알고 싶었던 때, 시인이 시를 통해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찾고 싶었던 때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흐트러진 애정을 응집시켜야 한다. 부서진 사랑을 모아야 한다. 깨어진 사랑에 베일지라도 말이다. 안부가 슬픔을 깨운다는 김소연 시인의 시처럼.

 

 잘 지내냐는 안부는 안 듣고 싶어요. 안부가 슬픔을 깨울 테니까요. 슬픔은 또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그래서 - 김소연, 72쪽)

 

 그래도 시, 시를 읽는다. 시인이 고른 시, 시인이 속삭이는 시를 듣는다. 『시시하다』는 진은영 시인이 고른 92편의 시와 함께 시인의 짧은 감상(해설)을 만날 수 있다. 좋아하는 시도 있고 처음 만나는 시도 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외국 시인의 이름도 있다. 짧은 시도 있고 아주 긴 시도 있다. 詩時하다를, 시가 있는 시간이라고 읽는다. 시가 필요한 시간, 시가 있어 좋은 시간도 괜찮겠다. 한 편의 시를 읽는 시간은 길지 않으니 잠깐의 여유 혹은 잠깐의 바람이 통하는 시간이라도 할까. 가만히 시를 읽는 동안엔 시와 하나가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다. 천천히 시를 읽는 동안에는 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도 좋다.

 

 검은 옷의 사람들 밀려 나온다. 볼펜을 쥔 손으로 나는 무력하다. 순간들 박히는 이 거룩함. 점점 어두워지는 손끝으로 더듬는 글자들, 날아오르네. 어둠은 깊어가고 우리가 밤이라고 읽는 것들이 빛나갈 때. 어디로 갔는지. 그러므로 이제 누구도 믿지 않는다. (금요일 - 유희경)

 

 너무 아파서 혼자만 깨어 있는 밤, 거울을 보면 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찡그린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게 문득 우스워지곤 했어요. 그게 위로가 되었어요. (112~113쪽)

 

 유희경의 시는 금요일에 읽지 않아도 혼자 깊은 밤을 견디는 이라면 진은영의 감상처럼 충분히 위로가 될 것이다. 무리에 속하지 않고 ​밤의 무리에 스며드는 시간, 더 이상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겠지. 불안한 세상, 어디에서도 소소한 기쁨과 작은 위안을 얻지 못하는 우리에게 불어오는 날카롭고 시린 바람을 막아줄지도 모른다. 때로는 우연히 만난 한 편의 시가 전하는 뜨거운 온기가 오랫동안 우리를 데워주기도 하니까.

 

 마치 죽음이 끝장을 낼 수나 있는 거처럼. 마치 삶이 승리할 수나 있는 것처럼. 마치 긍지가 응수가 되는 것처럼. 마치 사랑이 원군이나 되는 것처럼. 마치 실패가 무슨 허락이나 되는 것처럼. 마치 산사나무가 무슨 예언이나 되는 것처럼. 마치 신들이 우리를 사랑이나 했던 것처럼. (마치 뭐나 되는 것처럼 - 앙드레 프레노, 182쪽)

 

 최근에는 그림과 함께 읽는 시, 사진과 함께 읽는 시, 테마가 있는 시가 많다. 어떤 시를 읽어야 할까, 어떤 시가 좋을까. 92편의 시 가운데 맴도는 시가 나는 좋은 시라 생각한다. 어딘가 기록하고 싶은 시, 좋은 이에게 이런 시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은 시. 뭔가 내 마음을 더하고 싶은 시. 그냥 끌리는 대로 읽는다. 슈퍼문의 밤이 지나고 단단한 얼음처럼 곧게 뻗은 밤, 당신의 지친 영혼에 시가 내려앉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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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6-11-15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인의 성폭력,성추행 사건을 접한 이후로 시집을 넘긴다는 것이 꺼림칙해졌고 괜한 결벽증?이 생겨 시집을 읽는다는 행위가 두렵단 생각이 들더군요
어서 떨쳐버려야 할텐데~~~읽을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빨리 생기길 바랄뿐입니다^^

자목련 2016-11-16 10:34   좋아요 1 | URL
저 역시 그랬어요. 사건의 가해자인 시인의 시집을 모두 과감하게 정리했어요. 좋아했던 시인, 작가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나니 이제는 여류 시인의 시집만 읽어야 하나, 생각까지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