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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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에서의 조제, 그 흥분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그리고 이제 영화 속 조제가 아닌 소설 속 조제를 만났다. 또 다른 조제가 등장하는 영화를 그려본다. 등장인물은 조제,베르나르,니콜,파니,알랭, 에두와르,베아트리스,자크,졸리오 모두 아홉 명이다. 배경은 프랑스 파리이다. 문학과 사랑의 삶이 함께하는 곳에서 사랑에 대한 그들의 고뇌를 엿본다. 조제는 과거의 베르나르를 기억하지만 현재는 의대생 자크를 사랑한다. 니콜은 잘 때도 베르나르가 들어올 문을 향하여 잠을 자며 그를 기다린다. 베르나르는 여전하게 조제를 사랑하고 있다. 현명한 파니와 살고 있지만 알랭은 베아트리스를 사랑한다. 연극배우인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졸리오에게 향하고 그런 베아트리스를 사랑하는 에두와르는 절망하게 된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랑들이 이 곳에 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우선은 설명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한국소설도 등장인물이 많으면 정리가 안 되는데 익숙치 않은 인물들을 파악하고 나니 한결 수월하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 그 사랑을 원하고 소유하려 한다. 과거의 사랑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기도 한다. 사강이 그려낸 아홉명의 사람들의 관계는 아주 평화롭게 보이기까지 한다. 파니와 알랭 부부가 주최하는 모임에서 글을 쓰는 베르나르와 조제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본다. 사랑은 이렇게 예고없이 그리고 소리없이 온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뜨거움이 영원하게 지속되지 않는다. 베르나르와 니콜은 서로가 바라보는 방향이 너무 다르다. 니콜은 무조건 베르나르를 이해하고 기다린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주어지는 무언의 고통을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모두에게 그것은 잔인한 현실이다. 

사강은 소설 속에서 한 여름의 뜨거운 사랑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감정이 흐르는 대로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정말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시간이 있는 사람은 결코,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눈(目)을 찾는다. 그것으로 자신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77쪽 ] 우리는 서로를 향해있기 때문에 나를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인지 모른다.

[난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하려 했죠? 그래요, 그건 근친상간이죠. 우리는 '같은 '사람들이니까요. 89쪽 베르나르가 조제에게 보낸 편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함으로 서로를 닮아가다가 한 순간 그것이 너무 끔찍하게 다가올 때도 있다. 그런 것일까? 소설 속 인물들은 적절치 못한 관계를 지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냥 그럴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끔 사강이 독자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 소설은 1957년에 발표된 소설이라고 한다. 그 시대의 파리는 이런 모습이었을까? 사강이 꿈꾸는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맹목적 사랑, [한 달 후, 일 년 후] 에도 그 열정이 남아있는 사랑, 아니 그 시간에 소멸될까 두려워 흐르는 대로 그렇게 맡겨버리는 사랑이 아닐까 싶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내게 사강의 글은 그렇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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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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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큰 언니와 나는 '이청준'작가에 대해 이런 저런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이청준'이라는 작가를 직접적으로 알게 된 것은 큰 언니때문이었다. 암투병중이라는 소식과 이번에 소설 집을 냈다는 대화를 나누며 얼른 병을 이겨내길 바란다는 소망을 함께 했다. 그의 소설에는 섬이라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 소설 중에 섬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어려운 소설임을 알지만 그래도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더 큰 생각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서 내심 뿌듯함이 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한 평생을 살아오는 사람들은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적지 않은 부담감을 안고 있을 꺼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왜냐하면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허구로 꾸며진 이야기라고는 하나 그 안에 살고 있는 기구한 삶의 모습을 실제로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글이라는 것이 사회를 반영하고 사회를 담고 사회를 향한 거울이기에 작가로써의 소명의식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이 책에서 만난 글은 나에서 시작하여 우리를 만들어내고 동네와 지역사회를 만나 나라로 확장되어지고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다. 여태껏 살아낸 삶들이 꾹꾹 눌러 담은 밥그릇처럼 소북하게 담겨있다고 보면 맞을까.  '이청준'님이 한 평생 써놓은 이야기를 추억하는 듯한 4편의 에세이 소설도 담겨있어 독자로써도 무척 의미있는 책으로 남을 것이다. 그 안에서 '이청준'님이 쓰고 싶었던 글들과 써야만 했던 글들을 차례로 만나니 더욱더 '이청준'님의 어려운 글을 더 많이 읽어내지 못한 사실이 죄송스럽다.

그리움을 먹고 자란 돛단배는 전설이 되어 후세에 그 배(천년의 돛배)에는 꽃이 피고, 머나먼 타국의 바다에서 이어져 우리의 바다로 연결되는 그곳(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에도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들은 모두 전설적인 힘들을 품고 있다. 자신 스스로의 전설(지하실)이나 마을의 전설(이상한 선물), 나아가 나라의 알려지지 않은 아니, 제대도 알리지 않은 역사(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역시도 전설이 되어 신화가 되어 우리에게 전해짐을 느낀다.  

소설들을 읽어 내려오면서 나는 잠깐 잠깐 우리나라의 역사를 거슬러 기억해야만 했다. 88올림픽당시 깨끗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고속도로 옆으로 보이는 비닐하우스 촌을 무작위로 철거했다는 그런 내용이 왜 떠오르는 것일까? 상대의 눈이 아닌 직시의 눈이 아닌 내 눈으로만 보았기에 그러할지 모르겠다. [내 우정 자네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 눈길을 바꿔 보면 세상 일이란 사람 따라 세월 따라 다 그렇게 달라보이는 법이여! 지난 일이 그리 소중하다면 내일 또 지난날이 될 오늘 일이 우리한텐 더 소중하니께 말여. [지하실]137쪽 ] 우리는 왜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사실들을 소설로 풀어 내려하는 작가 '이청준'님을 우리는 너무 잊고 있는게 아니었던가. 제목으로 쓰인 [그곳을 다시 있어야 했다]와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 두 소설에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있다. 나라를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의 한과 슬픔을 우리는 이제 끌어안아야 한다. 비단, 소설 속의 멕시코나 우즈베이크 끝이 아니다. 세상 곳곳에서 내 나라 내 조국을 그리며 숨 쉬고 있을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후세에도 전해야 한다.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 그것은 순리이며 진리인 자연일 것이다. [섬들은 저희끼리 밤 이야기 위해 서로 다가앉는 것뿐이다. 섬들 가운데에 나는 없다...... . 그 섭리와 경이 앞에선 나 역시 숨죽이며 자신의 존재를 지워 없애야 했으니까. 그렇듯 차라리 절망스럽기까지 했으니까.[조물주의 그림] 263쪽]  임권택 감독과의 인연을 글로 담은 소설 [조물주의 그림] 속에서의 이 말이 제대로 내 안으로 들어와 박힐 날은 아마도 내가 몇 십 년을 더 살아낸 후가 되지 싶다. 

[신화를 삼킨 섬]을 출간할 당시에, 이 작품이 내 생의 마지막이라 했다는 말을 언니에게 전해 들었다. 이 책을 내면서도 어쩜 '이청준'님은 이 책이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르리란 생각이 스친다.  [혼자 가는길, 앞을 알 수 없는 길, 믿음이 없는 길...... .[귀항지 없는 향로] 279쪽] 문학에 대한 길을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혼자가 아닌 많은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길, 신념으로 글을 쓰시는 그 길을 동행하고 싶어하는 많은 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조금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괜찮으니 계속해서 '이청준'님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신이 들어주시길, 하루 빨리 병상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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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9-03-12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선물하려고 사요... 땡스~^^

자목련 2009-03-12 21:28   좋아요 1 | URL
좋은 분께, 좋은 선물이 되겠네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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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나는 어떤 소설을 기대했던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를 잘 듣기는 했을까? 소설을 좋아하는 나지만 이 책은 내 리스트에 없었다. 김연수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지도 못했거니와 내가 좋아하는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 정복]이란 책의 역자인 줄도 몰랐다. 세상에나 요즘 소설가들은 번역도 잘하고 이렇게 끔찍할 만큼 긴 호흡의 글을 쓰는 재능도 있다니, 하느님은 너무 한거 아냐, 나의 투덜대는 소리는 아마도 하느님의 귀에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 책에 무엇이 있기에 그리도 흥분하면서 이 책을 말하는 건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그 뒤에 어떤 말이 나오면 좋을까?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네 편이다. 우리는 하나이다. 김연수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음, 나는 사랑한다를 예상했었다. 애절한 사랑의 밀어를 기대했다. 한 참을 읽어내려가도 나는 종잡을 수 없는 미로에 빠진 기분이었다.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또 다시 만나지는 처음의 그 길,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또 다른 길.. 그랬다. 그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헤메다 보니 멀리 그 끝이 보이는 듯 하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나와 한 사람의 관계의 다리를 건너다 보면  저 외국 누군가와도 관계가 닿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프로를 본 적이 있다,아마도 스펀지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경험을 하기도 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꺼라 여겼던 사람이 내 친구의 친척이거나 지인이 되는 경우, 좁디 좁은 지역사회에 살다보니 사실 그런 두려움에 나에 대해 말하기 꺼린 적도 있었다. 이 책엔 그러한 관계의 지속이 클립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끝없는 이야기의 시작은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태워지지 못한 한 장의 누드 사진으로 시작되는데 그 사진은 정말 시작일 뿐이었다. 그 사진의 출처를 찾아 나서며 정민과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그 이야기는 광대한 우주를 채울 것만 같다. 정민의 삼촌과 정민의 이야기, 나의 할아버지의 이야기,그리고 광주의 한 복판에서 자신의 전부였던 사람(한기복)의 죽음을 지켜보게 된 이길용과 그 이길용이 강시우로 다시 존재하여 살기까지의 이야기, 90년대 운동권 학생의 대표로 독일로 날아오게 된 내가 만나는 베르크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그 이야기들.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설명하기 어렵다. 그들의 관계가 쫌쫌하게 짜인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같고 또 그 그물을 낚아 올린 누군가와도 같다고 할까? 그리고 기대지 않던 사랑과 존재의 외침이 있다.

[인생이 이다지도 짧은 건 우리가 항상 세상에 없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173쪽] 소설 속 많은 인물들이 갈망했던 것은 민주주의도 아니며 자유도 아니며 자신의 존재,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거짓으로 위장한 많은 사람들의 삶은 우리가 살아온 80~90년대,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6.25전쟁과 일제 식민지까지 이어진다.
[지금 네가 느끼는 그 세상이 바로 너만의 세상이야. 그게 설사 두려움이라고 하더라도 네 것이라면 온전히 다 받아들이란 말이야. 더이상 다른 사람을 흉내내면서 살아가지 말고.254쪽] 살아가면서 느끼는 크고 작은 두려움, 두 팔 벌려 환영하지 못하지만 내 것으로 만들려면 그것과 친해져야 할 것이다. 그런 것이 삶이겠지.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378쪽] 누드 사진은 아무 것도 아닌 그저 흔한 한 장의 사진 일 수 있었다. 그 사진을 통해 이어지는 수많은 너와 나 그리고 저 먼 우주에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내가 있을 뿐이다[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384쪽] 삶이란 진정 그런 것일까? 내가 살아온 기쁨과 슬픔의 날을 기억하는 것이고 그 날들을 감정을 배제하고 내가 너에게 잘 설명하는 것. 그것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네가 존재하는게 너무 다행이다' 라는 보이지 않는 어떤 소리를 듣는 듯 했다, 그리고 또한 나와 어떤 형태로든 닿아있을 누군가가 있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슬퍼할 때 그 누군가도 어쩜 함께 슬퍼할지 모르고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그 누군가는 들을 것만 같았다. 설령 그게 신이라도 괜찮다. 아니 영광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이런 글을 쓰는 김연수는 아마도 작가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기 위해 수억년 저 멀리 어떤 별에서 지구로 날아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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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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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세상에 강하게 드러낸 소설 '몽고반점'을 나는 읽지 않았었다. 그 몽고반점이라는 제목이 묘한 거리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단편집 '내 여자의 열매'와 '검은 사슴'을 만나고 다시 그녀의 책을 서성이고 있었지만 아직 다른 책을 읽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신간의 소개에 한강의 새로운 소설 집을 냈다는 글을 만났을 때도 그저 기웃거리고 있었던 내 마음을 자극한 것은 단편 '그 여자의 열매'연상 선에 있다는 소개 글 때문이었다. 사실,한강의 글은 유쾌한 재미가 있거나 가슴 찡한 감동이 밀물처럼 달려오는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그러한 점이 내가 그녀의 글을 읽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이 소설을 연작이라는 이름으로 구성하거나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 여자의 열매를 만나고 더구나 몽고반점을 읽지 않는 내게 이 책은 그녀가 치밀하면서도 계획적인 구도로 차례로 글을 썼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 불꽃으로 이어지는 이 책은 크게는 인간이라는 테두리를 두고 볼 수 있으며 작게는 아니 근본적으로는 가족간의 욕망과 상처를 다루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 안에 속하지 않기에 더 강한 욕망을 불러오는 것들이 있다. 지극히 평범하기에 아내와의 결혼을 선택시 주저하지 않았다는 채식주의자의 화자인 나는 지극히 평범하여 결국은 나와 다른 아내(영혜)를 이해하지도 이해하려하지도 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아내를 배제시킴으로써 나를 지키게 된다. 어느날 꿈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게 된 납득하기 어려운 아내의 변화는 가족간의 마찰로 이어지고 결국 자살을 시도하고 정신병원의 신세를 지게 된다. 알 수 없지만 왠지 영혜는 숨을 쉴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잠깐,아니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삶의 시작이었다. 영혜는 홀로 지내게 되고 그녀를 지켜내야만 한다고 믿는 언니의 가족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몽고반점은 이 연작소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절정부분이라 하겠다. 처제(영혜)에게 남아있다는 몽고반점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처제를 욕망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내와 또 다른 모습을 가진 아내의 동생 처제. 그녀를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키게 되고 결국은 욕망의 경계를 무너뜨리게 된다. 남편과 동생의 괴이한 상황을 목격한 아내는 자신의 욕망을 절제시킨다. 그 욕망이라는 것은 남편을 그리고 동생을 죽이고 싶었을지 모를 분노 가득한 욕망이리라. 결국 동생(영혜)는 정신병원으로 다시 향하게 되고 그리고 남겨진 그녀의 이야기는 나무 불꽃에서 그녀만의 절망과 슬픔 그리고 남아있는 삶을 쓰고 있다

어느 누구도 영혜를 이해하지도 이해하려도 하지 않는다. 나무 불꽃의 화자인 그녀는 말한다. (시간은 흐른다.182쪽 시간은 여전히 흐른다. 190쪽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197쪽) 어떠한 경우에라도 어떠한 상황이라도 삶이라는 것은 지속되어지고 있으며 어린 시절 그녀도 영혜도 자신의 욕망대로 삶을 살아오지 못한 상처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결혼과 동시에 자매는 그 상처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왔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들의 남편은 그녀들을 통해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 하고 정작 그녀들은 삶을 거부하는 모습으로,삶을 견뎌내는 모습으로 그렇게 살아간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 내어 웃기까지 한다. 204쪽 나무가 되고 싶었던 그래서 거꾸로 서 있고 싶어했던 영혜, 나무가 부르기에 나무가 있는 숲으로 걸어갔다는 영혜를 만나면서 동생이 그토록 나무가 되고 싶어했는지 이제는 조금씩 이해할 수 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연한 초록빛의,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진화 전의 것,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101쪽  소설 속 영혜도 그리고 그녀를 지켜주고자 마음을 쓸어내리던 그녀가  바란 것은 아마도 태고적의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햇빛을 받고 물을 먹고 사는 자연 그대로의 삶을 원했는지 모른다. 

엽기적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또한 한강을 떠올리면 도저히 연상시키지 못할 글이라 고개를 젓는 이도 있으리라. 그녀는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다고 했다. 그녀가 쓰고 싶어도 쓰지 못했던 날들의 이야기들은 또 언제 내 손에 올까. 그 전에 나는 아직 만나지 못한 그녀의 책들을 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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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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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로 쓰인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라는 말이 참으로 매혹적으로 들린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속해있던 곳은 침대,바로 그곳이다. 책을 들고 있는 긴 손가락이 나를 부르는 듯 그랬기에 나는 주저없이 책을 선택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저자가 읽은 많은 책의 내용으로 엮인 다소 진부한 책 일꺼라 예상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바람은 불어 오듯이 그 예상을 깨고 이 책은 이제 저자가 책 속에서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했던 책들처럼 내게도 그런 존재로 남을 것이다.

침대의 프레임에 책을 가득 담아두었다는 저자의 침대가 너무 부럽다. 손을 뻗으면 책이 있고 그 책을 나만을 위해 읽어내려 간다는 저자의 말이 너무 황홀하다. 내 침대에도 책이 있다. 그러나 나의 책은 저자의 그것과 같지는 않다.  책에 대한 열정은 삶의 또 다른 이름으로 내게는 기억된다.

들어보지도 못한 책과 작가의 이름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얼마나 많은 책들이 세상이 있을까?  지금 나는 그런 생각에 빠져들고 있다. 책이라는 이름으로 글이라는 것을 쓰고 있을 작가들은 지금도 고뇌할 것이고 그들의 책을 접하고 읽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나처럼 마음의 새겨둘 준비를 하고 있으리라. 더불어 이 책을 통해서 만난 많은 책들의 제목을 검색하면서 나는 도대체 어떤 책읽기를 했나 싶어 조금 마음이 우울해지고 있기도 하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 슬프고 사람들과 작은 스침에  있어 그 어떤 떨림이너무 강해 멍한 시간속에 머물러 있고 새벽시간 홀로 세상에 깨어있는 듯한 느낌을 저버릴 수 없을 때 나는 이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실,이 책을 읽는 도중 어떤 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책에 빠져들어 그 책을 읽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았다. 

침대와 책은 어떤 이에게는 정말 필요조건이 된다. 반대로 어떤 이에게는 불필요조건이 되기도 한다. 내 경우는 전자의 경우에 속한다. 침대 속에서 나는 책을 읽는다. 침대에 앉아서 침대에 누워서 침대에 책을 쌓아두고 침대에 책을 정리하며 책을 읽는다. 책이라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저 이야기가 좋아서 책을 만났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야기가 좋아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책속에 빠져들고 싶어 책을 읽기도 한다. 또한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숨쉬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인간에 대한 예의] 를 읽으면서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품고 [어린 왕자]를 통해 소통과 관계를 되뇌이며 [사람풍경]을 읽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책 속의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있음을 꼭 기억하고 나도 저자처럼 나만의 책 사연을 먼 훗날 기록하고 싶어진다. 

나는 나이 들면 쉼보르스카 할머니처럼 되고 싶다는 웅대한 꿈을 품고 그녀의 책을 덮는다. 사랑이 끝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녀의 [끝과 시작]이란 시의 첫 문장에 나와 있다.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하리!' 자기만의 전쟁을 치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지금은 청소를 해야 할 시간이다. 135쪽

'지금은 청소를 해야 할 시간이다.' 아,이렇게 멋진 말을 내 목소리를 빌어 누군가에게 전해줄 그 순간을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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