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2010년) 추석에는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왔다. 이 손님들을 본 것은 삼 주 정도 되어가는 듯. 그런데 추석 음식장만 때문에 냄새가 멀리까지 솔솔 퍼졌나보다. 잠시 지나쳐가는 손님들이 아니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5분 대기조 마냥 기다린다. 보통은 늦은 밤 잠시 보는 것 정도. 그러면 집에 있는 몇 가지 먹을거리를 내놓곤 했다. 이 손님들은 길고양이들이다.

내 얼굴도 익혔나보다. 내가 마당에 나오면 자기들 왔다는 듯 얼굴만 쏙 내밀고 저쪽 구석에 가서 자리 잡는다. 어서 음식 내놓으라는 압박.

뭐 먹고 있으면 5센티미터까지 접근해도 그리 상관하지 않는 듯. 하지만 음식이 없다면 1미터 정도만 접근해도 슬그머니 일어나 뒷걸음친다. 나 도망가는 거 아냐. 그냥 뒷 자리가 더 편해 보여.라는 듯이 군다. 슬그머니 능글맞게 뒤로 물러난다. 내가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면 끄~~악@@. 온 털이 곧추 서고 눈은 뚱그런 해지고, 몸은 각목처럼 순식간에 굳어버리는 듯하지만, 여전히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알면 별 일 아니다는 듯이 다른데 쳐다본다. 뭔 일 있었는감ㅡㅡ; . . .

첫 만남은 랑이였다. 마당 한 켠, 쓰레기 봉투 있는 곳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길고양이였다. 흰 바탕에 노랑털로 감싸있는 노란 고양이. 아직 성묘는 아닌 듯 했다. 어린티가 났고, 나 배고파요 라는 애처로운 눈망울에 매혹당했다. 그래서 냉장고에서 마른 포가 있기에 가위로 잘라주었다. 그것을 노랑이는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킁킁거리며. 먹을것에 관심은 가지만 나 때문에 오지 않는 듯 하여 저 멀리 한 7~8미터 떨어져서 쭈그리고 앉았더니 그제야 나와서 온 사방을 경계하며 아작아작 씹는다. 쫑긋한 두 귀는 여전히 레이더 가동 중. 두 귀는 서로 다른 방향의 음파를 경쟁하듯이 잡아내려는 듯, 휙 돌아갔다 멈추고 다시 다른 곳을 향해 쫑긋거렸다.

          

그래 가끔 와라. 가끔 와서 들렀다고 알리면 내 먹을 것을 주마. 하지만 개미들 때문에 먹을 것을 미리 줄 수는 없다. 이렇게 나름 노랑이와 계약을 맺었다. 뭐 노랑이는 내 목소리에 관심도 주지 않았지만...

           

다음날. 오라는 노랑이는 안 오고 더 어려 보이는 검은 색 무늬가 들어간 고양이가 찾아왔다. 오 이런...너무 어리고 말똥말똥 거리는 그 녀석의 눈빛에 또 홀렸다. 그래 너도 챙겨주마. 먹을 것을 내왔다. 이 녀석은 노랑이보다 더 순해보였다. 어느 늦은 밤 담배 피러 마당에 나갔더니 인기척이 났다. 이 녀석 검은 고양이가 저쪽에서 흘끔 나를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니...아...부끄럽고만...다시 먹을 것을 주었다. 이번에는 한 3미터쯤 떨어진 거리에 놓았다. 나와 마른 포 사이가 한 3미터, 녀석과 마른 포 사이가 한 2미터 도합 우리 사이의 거리는 5미터쯤. 그렇게 모기에 피 바쳐가며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제야 슬금슬금 먹을 것을 향해 온다. 10여분 되었을 듯. 처음엔 나도 쪼그리고 앉았는데 다리가 저려 그냥 맨 바닥에 철푸덕하고 앉아버렸다.

            

한동안 오질 않았다. 물론 왔을 수도 있다. 녀석들이 온지 어떤지 나만 모를 뿐. 어느날 저녁 두번째 고양이인 검은 고양이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먹을 것을 1미터쯤 떨어쳐 놓았다. 5분 정도 지나니 낮은 포복으로 오다가 잠시 멈추고 그러고 1~2분 얼음장처럼 멈추었다 다시 오기를 몇 번 반복하였다. 결국 나와 1미터쯤 떨어진 거리에서 그 녀석 게걸스럽게 오독오독 씹는다. 모기에 물린 자리가 가려워, 내가 뒤척이면 모든 동작이 올 스톱. 눈은 커진 상태로 나를 주시. 귀는 여전히 다른 곳을 향해 레이더마냥 쫑긋 쫑긋.

후딱 먹어치우더니 휙하고 사라졌다. 그런데 저쪽 마당 구석 나무들 사이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 호.. 거기에 있었군. 플래시를 비쳐보니 어딘가 묘하다. 검은 고양이이긴 한데 표정이 왠지 낯설다.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옆에 방금 그 검은 고양이가 식빵을 굽고 있었다. 그럼 이 고양이는 무엇? 앗!! @.@ 검은 고양이 두 마리다.

            

다시 먹을 것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한참 떨어진 곳에서 역시나 쭈그리고 앉았다. 두번째로 만났던 고양이가 먹을 것 있는 곳으로 오더니 잠시 멈추고 그 옆에 후미진 곳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세번째 검은 고양이는 나와 두번째 고양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지켜보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다음날 당연히 그릇은 비어 있었다. 옆에 물그릇도 상당량 줄어있었다. 짜식들~~

             

또 며칠후에 검은 고양이가 찾아왔다. 세번째 고양이였다. 이제는 이름을 지어줄 필요가 있었다. 처음 본 노란 고양이는 처음엔 그냥 길고양이로 불렀다. 그러다 두번째 검은 고양이가 등장하자마자 노랑이로 이름을 바꾸었다. 검은 고양이는 그냥 검은 고양이였다. 세번째로 또 다른 검은 고양이가 등장하자 두번째 검은 고양이 이름이 애매했다. 그래서 이름을 다시 바꿔 주었다. 두번째 만난 검은 고양이는 눈 한쪽이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하록이로 부르기로 했다. 세번째 고양이는 세번째로 만났다하여 단순하지만 정감어린 그리고 엘레강스한 삼식이로 부르기로 했다. 지금은 첫째 노랑이는 노자를 빼버리고 랑이라 부른다.

             

그 뒤, 가끔 이 고양이들은 우리집을 스쳐 지나갔다. 나와 만나면 먹을 것도 좀 얻어먹고 갔다. 고맙다고 인사도 하고 갔다. 내 상상...지금은? 왔다간 표시 확실하게 한다. 마당에 있는 물건들 지네들 취향대로 제정비하고 간다. 나는 밤에 와서 다시 내 취향대로 해놓고. 뭐.. 그렇다고 심하게 어질르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역시나 거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다만, 누워 있을 뿐.

이렇게 해서 추석날이 왔다. 아니, 녀석들 입장에서는 냄새 풍만한 그런 날이 왔다. 얼마나 냄새가 났는지 바람 통하라고 열어놓은 현관문으로 당당히 들어왔다. 방에 있다 거실로 나갔더니 꺄~~~악...하며 우당탕 묵직하게 소리내며 마당으로 쏜살같이 날랐다. 삼식이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방에서 인터넷하고 있는데 뭔가 뒷목이 써늘한 적이 있었다. 모니터보다가 웬지 섬뜩했다고 할까? 그래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더니 랑이가 당당하게 침대위에까지 올라갔다 막 내려오는 참이었다. 그리고 우리 둘이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머리속이 비었다. 그냥 순간 멍했다. 랑이는? 마찬가지였다. 똥그란 눈만이 내 눈에 들어왔다. 1초 후, 상황파악을 한 뒤에 일어서자마자 안녕~~하시고 자시고도 없이 온 몸의 털을 날리며 순간이동으로 사라졌다. 밖에 나가보니 어느 틈에 저 담장 위에서 망보고 있었다. 아무튼 친하지도 않을 때 그런 적도 있었다.

            

요즘 삼식이가 제일 많이 들른다. 다음으로 랑이. 하록이는 거의 못본다. 가끔 셋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도 보긴 하지만 그런 장면은 좀체 보기 힘들다. 그런데 추석때는 하루종일 거의 셋이 붙어 다녔다. 냄새가 그들을 묶어준 듯. 처음엔 음식 먹을때 순서가 있는지 차례차례 먹었다. 불고기도 줘보고, 오징어도 줘봤다. 이제는 지들끼리 펀치 날려가며 먹는다. 오..미안... 너희들의 그 얇은 우정을 내가 만들어줬구나.

            

그래도 랑이가 제일 큰 애고, 다음은 삼식이, 막내가 하록이인 듯하다. 그런데 랑이와 삼식이는 한 형제같고, 참... 나는 그들이 암컷인지 수컷인지는 모른다, 하록이는 그냥 동네 꼬마인 듯. 어울릴때 보면 잘 어울리지만 왠지 하록이는 왕따같이 한 쪽 구석에 혼자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애는 잘 오지도 않는다. 와도 늦은 밤에서 새벽쯤에 들리는 듯. 먹을 것을 잘게 쪼개어 그릇에 놓지 않고 손에 쥐고 있다가 녀석들이 다가오게끔 앞에 하나씩 던져주면 랑이와 삼식이는 슬금슬금 내 앞으로 전진하는데, 하록이는 멀거니 뒤에서 지켜만본다. 그러다 내가 하록이쪽으로 먹이를 던져주면 랑이는 순식간에 순간이동을 하여 하록이꺼를 빼앗아 먹는다. 불고기의 경우 하록이가 열받았는지 랑이에게 주먹을 날린다. 물론 삼식이도 랑이에게 주먹 날린 것도 봤다.

            

암튼...그렇게 손님들이 왔다 갔다 한다.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것이 인간인 나의 생각이다. 한가지 소망이 있다면 떨어지는 낙엽들좀 운동삼아 모아놨으면 좋겠다. 마당에서 낙엽쓸면 이것들이 슬슬 기어나와 구경만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 지켜본다. 음...

          

ps...

아.. 이것을 포스팅 하기 전에 애들이 있나 하고 마당에 나가봤더니...처음 본 턱시도 고양이가 한마리 있고, 랑이가 몸을 한껏 부풀린채 그 놈 앞에서 하악질 하고 있다. 더 이상은 안돼..... 하록이는 여전히 숨어있고, 삼식이는 고개만 빼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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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호킹이 책 한 권을 냈다. 제목은 『The Grand Design. 우리말로는 '위대한 설계'내지 '대단한 설계'쯤으로부를 수 있겠다. 또는 책 내용에 따라 '위대한 배열'이라 해도 무방할 듯 하다.(물론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

  사실 호킹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뭐랄까, 좀 가벼워보인다고나 할까. 천 년안에 인류의 문명이 멸망할 개연성이 있으니 서둘러 지구형 행성을 찾아 인류를 이주시킬 수 있는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는 둥, 호전적인 고등생물체가 지구로 쳐들어와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으니 외계인 찾기 노력을 그만두어야한다는 둥 이런 발언을 가끔씩 매체를 통해 듣곤 하였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호킹 박사의 발언을 가볍게 실은 언론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어진다.

 호킹은 외계인은 확실히 존재한다는 발언을 종종 해왔었고, 가끔 내가 헷갈렸던 것은 시간여행에 관한 것인데, 호킹은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고 했다가, 언제는 또 가능했다고도 했다가 조금은 애매하게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는 물론 내가 대충 기사를 읽었던 이유도 있겠지만,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불가능하고, 미래로의 시간여행은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아무튼 어떤 과학적 이론에 대한 것보다는 인류나 외계인과 같은 '존재'에 관한 물음을 많이 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설전해 오고 있다. 이 존재는 다름아닌 신이다. 사실 신의 존재보다는 신이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관여를 해왔느냐 아니었느냐가 주된 논쟁거리이다. 대표적인 것이 진화론과 창조론의 충돌인데, 이 두 이론은 과학과 종교라는 집안의 자식들이지만, 사실 진화론은 생물학에서 주로 거론하는 이론이고, 창조론은 개신교에서 주로 거론하는 이론이다. 즉, 진정으로 과학과 종교의 전방위적인 매치는 사실상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봐도 될 듯 하다. 과학과 종교의 전방위적인 매치가 붙기 어려운 것이 방대한 지식이나 이론들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지극히 사소한 것을 다루어야 한다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을 듯 싶다. 그래서 우리들 의식속에서 생물학과 개신교의 다툼이 애써 다른 쪽으로 번지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감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가령,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일상속에서 신이 비를 뿌린다고 하지는 않는다. 태풍도 마찬가지이다. 신이 노여워해서 세찬 비와 바람을 지상에 내려보냈다고 하지 않는다. 아마 종교인들도 마찬가지 일거다. 하지만 과학과 종교의 다툼은 이런것까지도 시비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너무나 자명한 현상이기에 종교계든 과학계든 이런 것으로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건들어봤자 손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신은 여전히 하나의 메타포(은유)로서 우리 일상을 지배한다. 비가 한 차례 오면 신경 쓰지 않지만, 몇 날 며칠동안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불러온 비가 내렸다면 정치적 문제로, 사회적 문제로 비화시키곤 한다. 정치가 잘못돼서 사회가 썩어빠져서 신이 내린 일침이라는 둥 말이다. 이렇듯 신은 우리 세계에서 항상 결과론적이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인식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거니와 과거의 어떤 사건이 미래에 어떤 사건으로 나타날지 우리는 그리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현재를 살고 있고, 항상 현재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종교를 흔히들 현세구복 신앙(종교)이라고도 한다. 현세구복 신앙(종교)속에서 일상으로 불러들인 신은 항상 현실에서 결과를 표방하는 일종의 메타포가 된다.

호킹은 『The Grand Design에서 이렇게 말했나보다.

   
  It is not necessary to invoke God to light the blue touch paper and set the universe going. 
  • STEPHEN HAWKING,
  • physicist and author of the new book The Grand Design, saying God wasn't needed for the creation of the universe
Read more: http://www.time.com/time/quotes/0,26174,2015654,00.html#ixzz0zIypnT2h

해석은 대충 이렇다.
 "우주를 진행시키기 위해 심지에 불을 붙였다는 신을 끌어들이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좀 애매하다. 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내린 코드로 태초의 우주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까 신이 있든 없든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신이 우주를 가동시키지는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학계는 어떨까. 과학계나 종교계 말이다. 일상과는 달리 결과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처음이라는 '태초'라는 단어에 신경을 쓴다. 즉, 세상의 모든 원인을 궁금해한다. 종교계에서는 앞서 말한 창조론을 태초의 원인으로 놓고 싶어하고, 과학계에서는 빅뱅을 태초의 원인으로 놓고 싶어한다(물론 빅뱅 이전은 또 무엇이냐라는 질문도 당연하겠지만).

 태초의 우주에 대해 어느것 하나 진실로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지구는 우리은하(나선형 은하)의 어느 변두리쯤에 위치해있고, 또 태양이 이끄는 일종의 시스템속에서 세번째 위치해있는 행성이라는 점이다. 더군다나 세번째 행성인 지구만이 생명체가 풍부하다. 물도 풍부하고, 산소(공기)도 풍부하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또 다시 이런 사실을 선점하기 위한 말장난이 펼쳐진다. 신이 골디락스 존에 지구를 놓았다고 말이다. 지구가 태양쪽으로나 목성쪽으로 조금만 위치 이동을 했더라면 아마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이다. 또 어떤이는 태양계의 절묘한 행성들 궤도가 마치 지구를 위한 배열이라고들 말한다. 가령 목성과 같은 크기의 행성이 태양계에 목성 말고도 하나 더 존재한다면 이 역시 태양계 배열이 흩어질 뿐더러 우리 지구는 태양계 밖으로 튕겨져 나갔을 거라고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주가 지금의 구조를 가지게 된 몇가지 이유가 있다고 설명하는 책도 있다. 원서 제목은 『Just Six Numbers』이고. 우리말 번역서 제목은『여섯 개의 수』이다. 그러니까 6가지 숫자가 우주라는 우연, 혹은 위대함을 설명한다. 그 숫자들은변수이지만 거의 고정되어 있는 상수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범위안에 수 중에서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수, 상수를설명한다.

1. 오메가=1 :  오메가는 중력이나 우주의팽창과 관계있는 수로 그 수가 너무 크면 이미 옛날 옛적에 우리의 우주는 충돌해서 사라졌을 것이며, 만약 작다면 행성들,가스들, 암흑물질들이 산산히 흩어져 은하 조차도 생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 즉, 한마디로 '점성도'와 같은 의미로 생각하면된다.

2. 엡실론=0.007 :엡 실론이 가리키는 것은 핵력이 강하냐 약하냐는 의미이다. 따라서 원소의 구성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물분자는 수소 원소 둘과산소 원소 하나가 뭉친 것인데 약하면 이 역시 흩어질 것이다. 물론 지구와 같은 행성도 이룰 수 없는 것이고. 엡실론이0.006이나 0.008 정도였다면, 이 역시 우주는 없다.

3. D=3 : D는 다름아닌 차원을 의미한다. 우리의 우주는 시간을 포함한 11차원인데,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은 3차원이다. 만약2차원이었다면 우리는 ...음...암튼 재밌을 것이다 다른 사물도 2차원이기에 항상 줄(혹은 '선' line)만 보일것이다(눈이라는 것이 있다면..). 4차원이었다면 잘 모르겠다. 막 왜곡되고 그럴 듯. 얼짱이나 얼꽝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없을듯.

4. N =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  N 이 의미하는 바는 전자기력과 중력의 비율로 생각하면 된다. 그만큼 중력은 전기력보다는 엄청약하다는 의미. 어떻게 보면 크기의 과학을 의미하는 말일 수 있다. 만약 N=0에 근접한다면, 그러니까 중력이 전기력에 비해엄청 크다면 생물체는 곤충보다 훨씬 작을 것이고, 심지어 하루살이의 일생을 가질지도 모른다. 따라서 진화론적 관점에서 진화는엄청 느리게 작동한다. 물론, 우리가 이런 세상에 존재함을 가정했을때.

5. Q = 1/100,000 : Q는 지금의 별들과 은하, 은하군들의 구조를 의미하는데, Q가 가리키는것은 사실상 현재의 우주의 구조가 아니라 빅뱅으로 생겼을 순간 씨앗 상태의 원시 우주의 값을 의미한다. 원시 우주가 이 Q값을가졌기에 지금의 우주와 같은 구조를 유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Q값이 다르다면 현재의 우주의 모습은 상당부분 달라졌을 거라는의미. Q값이 훨씬 작았다면 우주의 요동이 없다라 할까, 아무튼 비활성적인 모습의 우주만을 담았을 것이다. 반대로 컸다면 너무나요동적인, 그래서 서로 집어삼켜버리는, 그런 거대 블랙홀이 지배하는 우주가 되었을 거란 의미. 한마디로 우주의 노령화 현상을얘기하는 듯.

6.  lambda = 0.7 : 람다는 우주 팽창과 관련있는데, 암흑에너지라는 일종의 반중력과 관련한 상수로 우주의 팽창을 가속시키는 작용을 한다. 결국 현재 우주의 크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상수이다. 그러니까 중력이라함은 간단히 말해서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력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암흑에너지는 우주에 브레이크가 걸렸음에도 척력으로써 우주를 급속히 팽창시키고 있는 것으로 본다.

 마틴 리스의 『여섯 개의 수』는 이런 최종적으로 조율된 숫자를 통해 다중우주를 표현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어쨌든 수많은 법칙이나 규칙으로 우주를 규정지을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 과연 우리의 우주가 다중우주속에서 '오아시스'일까라는 질문을.

           
                 출처: http://www.neatorama.com/2010/04/11/seti-turns-50-years-old/

  흔히 말하는 '외계인 찾기 프로젝트'가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오즈마 계획'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외계인을 찾는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이 '오즈마 계획'의 책임자는 '프랑크 드레이크' 박사였는데 사실 오즈마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 계획은 일명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프로젝트의 서막이었다. 드레이크 박사는 1960년 미국 동부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그린뱅크에서 열렸던 '지구밖 생명체에 관한 그린뱅크 회의'에서 조금은 사이비 같은 공식 하나를 발표한다. 이름하여 <드레이크 방정식>이라 불리는 공식인데, 공식에 여러 숫자들을 대입하면 우리 은하내에서 우리 인류와 동일한 문명의 수는 수개에서 10만개가 넘는 수가 도출된다. 사실 해답은 없다. 몇가지 숫자를 달리하면 터무니없는 수도 나온다. 가령 우리와 같은 문명의 수가 0.00001개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벌써 지구라는 문명을 지닌 행성이 존재하기에 소수점은 말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비율을 조절해서 도출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외계 문명의 수가 0.1개에서 백만개 사이라면, 최소 지구라는 문명이 1개 존재하므로 비율을 조절하여 1개에서 십만개 사이로 그 값의 오차를 줄이는 식이다.

드레이크 방정식 :  N = R* fp ne fl fI fc Lc


Where,

N = number of technical civilizations in the Milky Way Galaxy with whom we might expect to communicate.
(
N은 전파교신능력을 갖춘 혹은 전파를 검출할 수 있는 우리 은하내의 문명체의 수)

R* = average rate of star formation in the Milky Way, in units of stars per year.
(R은 우리은하 내에서 1년에 몇개나 별들이 생성되는지를 나타내는 수)

fp = fraction of stars with planetary systems.
(
fp는 별 중에서 행성을 가지고 있을 확률, p는 planet을 의미)
 

ne= number of planets per system with suitable ecologies (liquid water...)
(
ne는 행성계 내에 생명이 살 수 있는 행성수)

fl = fraction of such planets on which life actually occurs
(
fl은 생명이 탄생할 확률)

fi = fraction on which intelligent life arises
(fi는 생명체가 지적문명체로 진화할 확률)

fc = fraction where intelligent beings develop capability for interstellar communication
(
fc는 지적문명체가 다른 별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릴 통신기술을 가질 확률)

Lc = mean lifetime of such communicating civilizations
(
Lc는 기술문명이 존속하는 기간, 단위 : 년)

* 출처 : http://earthguide.ucsd.edu/virtualmuseum/litu/12_1.shtml

참고로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은 드레이크 방정식을 토대로(자신이 정한 숫자를 방정식에 집어넣어) 지구밖 문명의 수를 백만 개로 발표한 바 있다.

  글을 쓰다보니 길기만 하지 별로 알맹이는 없다. 그래도 새로 나온 스티븐 호킹의 책을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글을 적게 되었다. 전반적인 의문은 이런 것들이다. 정말로 신이 이런 저런 숫자들로 우주를 디자인했을까? 일일이 하나하나 목록을 옆에 놓고 입력했을까? 그래도 신이 최소한 어떤 수 하나를 입력해야 한다면 과연 어디에 무슨 숫자를 집어넣었을까? 뭐, 이런 것이 현대 과학의 고민이다.

과연, 질량은 어디서오는 것일까? 랄까...

참고로 질량을 언급하기 위해선 뉴턴과 아인슈타인, 그리고 중력, 에너지, 다시 차원, 끈이론, 초끈이론, M-이론등등을 그에 앞서 언급해야 한다. 후와....

PS.

우주론에 호기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 보기 쉬운 책들을 몇 권 소개해본다.

흔히, 많이들 보는 책으로는 '미치오 가쿠'의 『평행 우주』,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와 『우주의 구조』를 많이 봤겠지만, 좀 쉬운 책(내 생각)도 있다.

'다케우치 가오루'의 『한 권으로 충분한 우주론』, '마커스 초운'의 『현대과학의 열쇠, 퀀텀 유니버스』, '폴 데이비스'의 『코스믹 잭팟등이 있다. 참고로 한 권씩 읽는다기 보다는 이 책 저 책 찾아가며 읽는 것이 더 좋을 듯....
 
            



   
                                     
      
  







덧붙임...2010. 09. 25.

벌써 번역본이 나왔다...역시나 '까치글방'... 번역본도 같이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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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좋아하지만 소장하며 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예전엔 만화책도 꽤 가지고 있었는데, 언젠가 싹 버렸다. 남들에 비하면 쥐알탱이만한 양이지만, 다른 책 버릴때(책 값으로 화장지 몇 롤 받았었다.) 덩달아 빠이빠이했다. 그 뒤로 만화는 거의 사질 않는다. 가끔 책방 같은데서 빌려 보았는데, 요즘 들어서 왠지 모르게 소장 욕구가 강해졌다.

오늘 알라딘에서 문자가 한 통 왔다. 다른 책 구매하면서 만화책 몇 권을 같이 샀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무더기의 책들을 두 번 나눠 배송하겠다고 말이다.

'그럼 그러셔요...'라고 무지 관대한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같은 만화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 먼저 배송 오고 첫 번째 책이 이틀 더 지난 뒤에 배송된단다. 알라딘의 굉장한 친절에 눈물이 옹기종기...알콩달콩...오순도순...엎치락 뒤치락....

'고객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사정상 두번째 책을 보다 빨리 보내드리오니 먼저 읽으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항상 고객님을 생각한답니다.' 뭐 이런식은 아니겠지만...

배송때문에 이 글을 쓰는것은 아니고 요즘 만화책 본다는 이야길 꺼내고 싶어서다.

앞서 말한 만화책은 '요코야마 미스테루'의 『만화 삼국지』이다. 양장본으로 나왔는데 작년(2009년) 7월에 10권까지, 그리고 작년 12월에 30권까지 나옴으로써 완결되었다. 개인적으로 책 살때마다 같이 껴묻어 사려고 하는데 한 달에 두 권씩 사더라도 15개월 걸린다. 구매하는 와중에 설마 품절 뜨는 것은 아니겠지. 이게 좀 걱정거리. 한두 번 나눠사기엔 금액이 크고...

                                    
                  

예전에(2006년도에) 같은 작가의 다른 이야기를 읽어 본 적이 있다. 그 책 제목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총 13권 짜리이다. 처음엔 그림체가 이게 뭐야하고 좀 심드렁했는데 읽다보니 나름 매력을 느꼈고, 또 이야기에도 금세 빠졌다. 다 읽고나서 "이번엔 『대망』에 도전이다" 라고 외쳤으나 그게 어언 4년전의 일... 시간이 흘러 만화만을 봤지만 왠지 소설로도 읽은 기분이 든다.
     
  
                                                                                 
                  











암튼 그때 그 기분을 다시금 느껴보고자 이렇게 『만화 삼국지』에 도전을 해본다.

참, 이번에 같이 구매한 또 다른 만화책은 언젠가 영화로도 나왔던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란 만화이다. 이번에 반값 행사로 3권을 세트로 팔고 있어서 같이 구매했다. 역시나 반값 행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영화는 보지 않았는데 기회되면 만화부터 보고 나서 도전...




얼마전에 소장하기로 마음을 먹고 샀던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는 우선 첫 번째 책만 구매상태. 마음엔 드는데 너무나 정적이라 그게 약간 흠. 무슨 스틸샷 모음같기도...

               

또한 소장할지 말지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교양 만화 시리즈가 있다. 이름하여 『다른만화 시리즈』. 처음 눈여겨 봤던 책이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였는데 얼마전에도 시리즈의 세번째 이야기가 출간되었다. 왜 이름이 '다른만화'인가 봤더니 출판사 이름이 '다른'이었다. 그런데 알리미를 시켜 놨는데 작동 하지 않고 있다(놓쳤을리는 없는데...). 혹시나 해서 봤더니 7월에 시리즈 세번째 책이 「나는 왜 저항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자본화된 권력 혹은 권력화된 자본과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쯤? 이 시리즈에 대한 고민은 좀 더 진행...


                                      


만화만 보다 편안하니 날로 먹을 생각만 들지도....'책같은 것은 필요없어...' 하며..

PS> 책들 구매는 7월 31일, 1차 배송은 8월 5일, 2차 배송은 8월 7일...아...쪼금은 조급증이 스믈스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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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8-04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저도 구매를 고민중인데,,,어때요???더구나 반값이라고 하니,,,

쿼크 2010-08-04 01:08   좋아요 0 | URL
그게 아직 배송이 안왔어요..8월 7일날 온다고 하네요...근데 평이 좋아서..저도 구매 했네요...(다른책 때문에 늦어지는 것 같기도 하구요..)

마노아 2010-08-04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영화보다 원작이 훨씬 좋았어요. 저는 옛날 버전으로 갖고 있는데 옛날 표지가 더 분위기 있어요. 호홋^^ㅎㅎ

쿼크 2010-08-04 12:55   좋아요 0 | URL
역시 마노아님은 옛날 버전으로 가지고 계시는군요.. ~~

쉽사리 2010-08-07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박흥용 작가 강추입니다.
구르믈도 좋고,그분의 초기작이 좋지요. 개인적 생각으로 그림은 별로지만 (특히 인물등의 표정?)이야기가 좋지요. 연출도 뛰어나고, 독특하고,,

쿼크 2010-08-07 16:18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기회되면 다른 만화도 보고 싶네요... 그림체야 이야기에 빠지면 그리 상관하지 않게 되더군요. 아직 배송중(?)이라 월요일쯤 도착할 듯 싶어요. 왜이리 늦어지는지... 방문 감사드립니다.~~
 

** 실은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끄집어 내기 위해 적은 글이긴 하지만 작성해 나갈 수록 히말라야를 등반해버려 삭제하고 다시 작성.

Xbox Lips Lily Allen "The Fear" music video from FIELD on Vimeo.


영상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광고이긴 하지만 상품은 드러나있지 않다. 사실 영상에 제목이 있지 않았다면 광고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까 메타정보(여기서는 영상 제목)가 모든 것을 가리키고 있으며, 주가 될 수 있는 정보, 그러니까 한 조각 클립 영상은 오로지 즐거움, 함께함, 음악만 보여준다. 뭐랄까. 덩어리가 빠져 있다라고 할까. 무거운 기업의 이미지는 없고 대신 감성과 창조성만이 넘실댄다고나 할까. 그리고 고전적이기까지 하다.

고전적인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 (이미지는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광고판...아마 여가수일 듯..기억이 가물가물...)




오프라인이 엔터테인먼트라 한다면 온라인은 어뮤즈먼트 정도라 할까? 우리 표현으로는 어떻게 나타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엔터테인먼트가 일회성의 감성을 폭발시킨다면 어뮤즈먼트는 다시 되돌아가 감성을 재발산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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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영상도 처음 봤을 때 뭔가 울림을 주었다. 좋은 광고다. 첫번째 영상이 즐거움이라는 감성을 느꼈다면, 이 두번째 영상은 먹먹한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끝까지 영상을 보고 무슨 기업(혹은 브랜드)의 광고라는 것까지 안다면 약간 웃음이 난다.
이 광고는 그것까지 노렸을까? 일단 감성을 울리고 또 뭔가를 깨닫고, 살며시 웃음 짓고 다시금 영상을 본다면 방금까지 느꼈던 그 감성만큼 얻기는 힘들 것이다. 마치 나의 감성, 감정이 증발한 것처럼..
물론 개인에 따라 차이는 분명 있을 것이다.

머...광고이기에 가볍게 즐기고 나면 그만이지만, 한 번 생각해 본 것이 포스팅까지 해보게 되었다.
두번째 영상에서 가장 격정적인 부분을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것으로 뽑는다면 감동보다는 재치가 드러나는 광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어뮤즈먼트와 엔터테인먼트 ... 그것은 creativity와 (hi)story의 차이일까?

Lily Allen - The Fear (유튜브 링크 : 소스코드가 비공개..)를 들어보자.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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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힘과 기술의 축구를 인정한다. 물론 한국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아르헨티나가 운이 좋았음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한국이 먹은 모든 실점은 우리팀의 실책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불운을 탓하기 보다는 역시 실력 부족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아르헨티나전을 다시 한번 복기해본다.

4:1이라는 대패의 요인은 한국 선수 개인에 있기 보다는 우리의 허술한 팀 자체로 돌리고 싶다. 아르헨티나의 모든 슛은 강력한 슛도 아니었고 특별히 상대팀 개인 플레이어의 기술이 먹혀 들어간 것도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모든 골이 우리 수비수와 상대 공격수가 똑같은 위치에서 이루어졌다는데에서 실망감을 가진다. 아르헨티나는 전진이었고 우리는 후진이었다. 특유의 끊어먹기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상대는 오히려 거의 골대와 일직선상에서 골들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우리 수비수의 위치가 아쉽다. 골대쪽에 밀려있더라도 수비의 포메이션을 유지만 했다면 머리로든 다리로든 충분히 끊어 놓을 수 있었는데 포메이션이 정착되지 못했을때 상대의 골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우리 수비의 백코트는 예전 90년대 축구와 다를 바 없다. 한가지 다행이라는 점은 육탄방어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작게나마 의미를 찾아본다. 육탄방어는 수비수들에게 있어서 엄청 체력소모가 요하는 수비이다. 또 육탄방어는 지역방어 대신 개인방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운에 기댈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육탄방어가 없다는 점은 최소한의 수비가 팀플레이로써 가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문제는 우리의 공격에서 수비로 전환될 때 그물망 수비가 아예 무너졌다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나이지리아전에서는 완벽한 지역방어로써 끊어먹기가 통해야 할 듯 싶다.

또 다른 대패의 요인은 역시나 수비 진영인데 특히 우리의 오른쪽 윙백이 지워졌다는 점이다. 차두리보다 좀 더 개인기가 좋은 오범석을 넣었지만, 공격에서 딱 한 번 뒤로 돌아간 것 빼고는 오범석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 그리스의 경우 차두리는 최소한 우리가 인지할 정도로 위치 선정이 괜찮았다. TV를 통해 차두리가 어디에 있었는지 어느때고 확인 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전의 경우 오범석은 그냥 우리 수비수 한 무더기안에 있었다라고 추정할 뿐 그가 TV화면에 잡힌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윙백은 공격 성향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중앙으로 볼 배급을 막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영표의 경우 오버래핑을 자제하긴 했지만 중앙으로 볼을 배급하는 상대를 어느정도 잘 막았다. 하지만 오범석의 경우 오른쪽에 위치해야 했지만 그가 어디있었는지 지금으로서는 기억 조차도 없다. 오범석이 가령 지워졌다면(그가 오른쪽 위쪽에 위치했다면) 그 자리를 메꾸는 사람은 윙어 이거나 최소한 중앙 수비수가 될 수 밖에 없다. 만약 그 자리를 중앙 수비수가 메꿀 수 밖에 없다면 이는 매우 위험하다. 최소한 보란치는 중앙 수비수 위치에 들어와야 하는데, 오른쪽으로 너무 쏠려 있는 바람에 중앙에 위치한 선수는 왼쪽 윙백인 이영표 선수 였다. 그 말은 이영표 뒤쪽으로는 아무도 없다는 의미이다. 어느 누구도 달려 든 사람이 없었다. 물론 천천히 달려온 선수는 있었다. 그 선수가 염기훈이다. 하지만 그는 공격수 이기에 전력을 다해 들어오진 않는다. 다만 지역 방어 위주로 설렁설렁 들어 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자리에서 있을 선수는 김남일이어야 하지만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추정을 해보자면 그는 끊어먹을 위치 즉, 페널티 박스 쯤에 있었을 듯 싶다. 결국 중앙 수비수는 이영표가 되었을 수 밖에...

팀의 패배를 한 선수에게 뒤집어 씌울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가 최소한의 욕을 먹어야 한다면 그는 염기훈이 될 것이다. 염기훈은 엄연히 공격수이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이 그를 계속 기용한 이유는 그의 왼발 능력을 추켜세우는 것도 있지만 공수를 넘다드는 체력일 듯 싶다. 이는 염기훈에게 수비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의 수비적 능력은 거의 빵점이다. 또 그의 드리블 실력은 역대 최악이다. 그는 우리 플레이의 맥을 끊어먹는 일등 공신이다. 이것은 여러차례 평가전에서도 들어났고, 심지어 그리스전에서도 어느정도 보였다. 우리 공격의 맥을 끊는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앞서 나온 수비수들에겐 지옥이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개인기가 좋은 아르헨티나 선수를 지역방어로써 막기엔 너무 늦어지게 된다. 준비도 없이 역습을 맞는다라고 할까. 암튼 나는 염기훈이 월드컵에 나왔다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코너킥 혹은 프리킥을 위해 그를 기용했다면 정말 개도 웃을 일이다. 우리에게는 최소한 기성용이나 박주영이 있지 않은가. 암튼 허정무의 최대 실수는 염기훈의 지속 출장이다. 그것도 선발로.

이번 아르헨티나전은 너무 구멍이 많았다. 특유의 그물망 수비도 없었고 심지어 숏패스 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우리의 숏패스 실력은 우리가 안다. 사실 허접이다. 하지만 숏패스는 삼각편대나 압박을 통해 이루어진다 봤을때 숏패스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허겁지겁 걷어내기에 바빴다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우리가 여유롭게 공격할때 상대 선수가 조금만 압박이 들어와도 허둥지둥 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거의 모든 선수들에게 통용된 이야기이다. 너무 성급했다. 최소한 점유율이라도 높여야 했는데 그것마저도 실종됐다.

우리에게 가장 이상적 공격은 후반 초반이었다. 최소한 그때는 우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압박 수비가 어느정도 통했다. 하지만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후반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확실히 체력적으로 힘든 기색이 역력했고 긴급한 백코트 순간에도 그 자리를 매운 선수들은 수비수 3명 뿐이었다. 나머지는 위에 위치했다는 의미이다. 수비수가 어느정도 지연시킬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역시나 아르헨티나는 운이 좋았다. 4골 중 2골이 하나는 자책골이고 하나는 골대 맞고 튀어나온 장면임을 상기하면 역시나 스위퍼로서의 역할을 골기퍼인 정성룡에게 떠넘긴 꼴이 되었다. 정성룡은 그 몫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운이 없었을 뿐.

앞으로 있을 나이지리아전에는 역시나 염기훈이 들어가면 안된다. 그가 놓친 골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 경우에 뭐라고 책망할 수는 없다. 다만 그는 여전히 우리 공격과 수비의 구멍이라는 것. 특히 공격. 한 두번 잘했다고 나는 그를 좋게 평가할 수 없다. 그는 공격수이지만 보이지도 않고, 수비를 한다고 해서 또 특출나게 막는 것도 아니다. 안타깝지만 염기훈은 아웃이 되어야 한다. 16강에 올라가더라도 그는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아르헨티나전의 4:1은 사실 쪽팔린 점수이다. 하지만 차라리 이게 낫다고도 생각되어진다. 3:2나 2:1로 진 경우보다 차라리 원점에서 다시 재고할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뭐가 문제인지는 확연히 들어났다. 우리 특유의 장점은 상대의 압박이지만 또 우리의 단점은 상대의 압박이다. 우리는 압박을 할 순 있지만 압박을 당했을 경우 빠져나오기 상당히 어렵다. 압박 당하면 숏패스 조차도 되어지지도 않고 의미없는 롱패스만 양산할 뿐이다.

나이지리아전은 우리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뭐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압박에서 상대의 공을 차단하고 그게 역습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상대가 수비 위치에 모두 들어섰을 때 우리는 거의 골을 넣어본 적이 없다. 우리의 단점은 상대에서도 단점이다. 수비수 위치가 정해지기전에 압박해서 볼을 차단하고 역습한다는 것. 수비수 위치가 정해지면 우리의 최상의 공격수 박주영마저도 지워지게된다.

개인적으로 이번 경기는 안타깝지만 차라리 배수의 진을 칠 기회가 있다는 자체에 감사한다. 지난 독일 월드컵때 토고를 승리하고 프랑스에 비기면서 한층 기운이 살아나긴 했지만 스위스전에서 첫 실점하면서 무너진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나이지리아전에 배수진을 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나이지리아전은 역시나 뒷공간이다. 뒷공간 뿐이 없다. 우리의 단점은 상대에게도 단점이며 우리의 장점은 상대에게 굉장한 압박이다. 확고한 포메이션을 유지하며 한 발 한 발 전진해야 할 듯 싶다.

나이지리아전은 2:0 승리를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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