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생명 이야기 아우름 1
최재천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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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최재천 / 샘터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유, 알면 사랑한다

 

 

  최재천 박사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한 강연회를 통해서였다. 과학자, 생태학자, 이화여대의 석좌교수 등의 다양한 타이틀 중, 과학이라면 너무도 지겨운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관심을 끌 소지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리고 그때는 동물에 대해 각별한 마음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큰 관심이 생겼던 것은 '시인의 마음을 가진 과학자'라고 자신을 표현하는 문구에서였다. 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가졌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생물학을 공부하고 있었다던 최재천 박사. 그래서 그런지 그의 강의는 왠지 모르게 새로웠고, 따뜻하게 들렸고, 과학이라는 주제 안에서도 낯설고 지루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통섭의 식탁』이라는 저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가 말하는 모든 것들은 '통섭'으로 연결된다. 뼛속까지 문과생인 내가 그의 저서를 읽게 된 것도 '통섭'의 역할이었고, "알면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그의 주장도 '통섭'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또한, 이 세상의 통섭을 꿈꾸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는 묻는다.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또 묻는다. "인간은 동물일까요?"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에 부정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인간은,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조금 더 특별하지만 역시 동물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자연계에서 두뇌가 제일 뛰어난 동물인 것은 맞지만, 현명하지 못한 동물"이다. '공생'하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생명은 자연스럽게 종마다 손을 잡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생명은 모두 짝을 짓고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지 못한 채 탯줄과도 같은 자연을 하루하루 파괴하고 있다. 공생할 수 없는 삶의 끝은 무엇일까, 최재천 박사를 포함한 많은 생물학자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책 속에는 생명을 경시하는 우리가 다르게 생각할 방법과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일깨워주는 내용이 나와 있다. 그리고 뒤쪽에는 시인의 꿈을 가지던 시골의 한 아이가 어떻게 생명과학을 공부하고,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어있는지를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뜻밖의 길이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어 행복해 보이는 최재천 박사. 그리고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공부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어느 학문보다 '기다림'을 요구하는 학문이라는 '동물 행동학'. 더불어 살아가는 삶과 공생에 관한 마음을 세상의 많은 사람이 모두 깨우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알면 사랑한다."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그 마음이 언젠가는 정말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 <아우름> 시리즈의 첫번째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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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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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시대가 오면 아무도 탈락하지 않고, 도태되지 않을 수 있는데, 우리는 왜 지금까지 금메달이 아니면, 1등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을까요? 이 모든 것은 `적자` 생존이 아니라 `최적자` 생존이라고 우리가 다윈을 곡해한 데서 벌어진 일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다윈이 자연을 이렇게 설명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자연의 생존 경쟁은 치열합니다. 자원은 유한한데 그것을 원하는 존재들은 많으니까 경쟁이 불가피합니다. 우리 모두 경쟁하며 삽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의 정원은 정해져 있고, 거기에 들어가려면 경쟁해서 이겨야 합니다. 하지만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그저 남을 짓밟고 제거하는 것일까요?

생태학자들도 자연은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쟁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미움, 질시, 권모술수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새롭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자연도 사랑, 희생, 화해, 평화 등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팽팽하게 경쟁만 하면서 손해 보지 않으려 하는 사회에서 서로 도우며 함께 잘 사는 방법을 터득한 생물이 뜻밖에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58p)

이 지구 생태계에서 무게와 수로 가장 막강한 두 생물 집단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진화의 역사에서 어느 순간에 곤충과 현화식물은 꽃가루받이라는 공생 관계를 만들면서 양쪽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자연계의 가장 기가 막힌 성공 사례 하나만 보아도,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무조건 서로 물고 뜯고 상대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계의 모든 동식물을 다 뒤져 보면 손을 잡지 않고 살아남은 동식물은 없습니다. 꽃과 벌, 개미와 진딧물, 과일과 먼 곳에 가서 그 씨를 배설해 주는 동물처럼 살아남은 모든 생물들은 짝이 있습니다. 손을 잡고 있습니다. (59p)

세상이 변했습니다. 세상 문제가 모두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서 여러 분야가 함께 풀지 않으면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님이 첼리스트 장한나에게 덕담으로 들려준 우리 옛말이 있습니다. "우물을 깊이 파려거든 넓게 파라." 나는 21세기의 학문 중 어느 것도 다른 학문의 도움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심연에 이르려면 깊게 파야 하고, 그러자면 넓게 파기 시작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평생 동안 파도 표면조차 제대로 긁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예전 같은 만능 엔터테이너는 될 수 없어도, 적어도 자기 전공 분야 우물 옆 동네는 넘나들 정도의 소양은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넘나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통섭`입니다. (73p)

한참 원숭이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원숭이들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웬 `털 없는 원숭이` 한 마리가 나타나 자기들의 담 안을 기웃거리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는 늘 인간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가늠합니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동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순간이었습니다. (1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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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관한 7가지 거짓말
존 제이콥스 지음, 김명식 옮김 / 학지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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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관한 7가지 거짓말』 John W. Jacobs / 학지사

언제나 행복할 수 있을거라는 환상보다는 현실을 볼 것

 

 

   해마다 많은 부부들이 이혼을 한다. 거의 모든 사유는 성격차이. 행복하게 끝까지 살 사는 부부들도 많지만, 주위에는 결혼생활을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그러다 보니 '결혼'이란 것에 대해 신뢰감은 조금씩 떨어져, '꼭 필요한가?'하는 생각도 들게 되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도 않았고, 결혼을 할 거라는 예정 자체가 없지만, 한 사람과 함께 평생을 다짐하고 산다는 것이라는 게 역시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은 든다. 아마도 결혼을 다짐했을 때의 초기(신혼)와 진짜로 가족으로서 몇십 년 살게 되는 경험에서, 환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로 다가오는 것 같다.

 

  『결혼에 관한 7가지 거짓말』은 사람들의 결혼생활 위기를,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분석하고 있다. 생존으로 인해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였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사회가 참 많이 변했다. 남성에게 오로지 의존하는 여성들이 아니라, 여성이 자신의 일을 가지고 (혹은 남성 = 일하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은) 있는 부부들도 많으며,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인해서 부부가 함께 맞추어 살아가야 할 기간이 현저하게 늘었다.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결혼에 대한 오해와 거짓말, 환상을 만드는 사회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노력을 하며 '생존'을 위해서 (이렇게 말하면 조금 진지하지만)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대한 환상 같은 것들로 결혼생활을 온전히 영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마도 수많은 이혼 부부들의 존재하에서도 사람들이 결혼을 결정하고 좋은 삶을 꿈꾸는 것이 바로 이 이유 때문이 아닐까.

 

  책은 '결혼에 대한 거짓말' 즉,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결혼에 대한 고정관념을 안고 있는 부부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피하거나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거짓에 가려진 진실을 파헤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결혼의 조건'에 관한 우리가 알고 있는 '거짓'은 "사랑은 당신에게 필요한 전부다."라는 공식이며,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은 "사랑은 결혼의 한 조건일 뿐이다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사랑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라는 냉철한 시선이다. 그 밖에도 소통, 변화, 육아,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다.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들, 혹은 결혼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을 가지고 있는 예비부부들에게도 현실적으로 좋은 조언이 될 부분들이 많다.

 

 "탱고를 추려면 둘이 필요하지만 스텝을 바꾸기 위해서는 한쪽만으로 충분하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결혼 생활을 잘 이끌어나가기 위하여 부부들은 끊임없는 협상 또는 대화, 재협상을 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한쪽의 노력이 다른 한쪽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 포기보다는 더욱더 노력하기 위한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혼생활이 진정으로 잘 되길 바란다면, "결혼생활의 현실에 대해 용감하고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최종적인 관점이다. 개인적인 성격 차이, 그리고 그것을 넘은 사회적인 영향들을 위해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의 문제는 책 속에 소개된 것들보다 복잡하고 더욱 해결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위기에 봉착한 부부들에게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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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결혼의 종결이 개인적 심리나 성격 탓이라고 자주 이야기하면서도 결혼을 황폐화하는 사회적, 역사적 영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 심지어 이 사실을 부정까지 하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아마도 우리는 엄청난 사회적 영향을 극복하기보다는 개인의 성격을 바꾸는 일이 더 쉽다고 생각하여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 모든 결혼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회적 영향을 부인하는 것은 부부간에 서로를 지나치게 비난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이렇게 되면 결혼생활이 잘못되거나 불공정하게 되기 쉽고, 문제 해결 또한 어렵게 된다. 또한 복잡한 세상을 잘 이해함으로써 결혼 전과 후에 우리가 여러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의 개발도 제한된다. 선택만 잘한다면 부부관꼐는 극적으로 변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35p)

`무조건적 사랑`의 개념은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든 조건 없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더구나 무조건적 사랑의 미덕을 높이 칭송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든, 특정한 한 사람이 나를 영원히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고 터무니없는 일이다. 무조건적 사랑은 어떤 정서적 역동을 나타내야 한다. 나는 무조건적 사랑에 대한 우리의 소망은 버림받는 것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두려움에 대한 신화적 해결책을 반영하는 것이라 믿는다. (75p)

만약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기원이 깊은 무의식에 있고, 어린 시절부터 뿌리 깊게 박혀서 변화할 수 없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시도해 볼 모든 동기를 잃기 쉽다. 변화해야 할 사람은 최초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은 한쪽 배우자가 결혼생활의 문제에 대한 모든 비난을 받거나 다른 배우자에게 비난을 떠넘기도록 강요한다. 그들은 상호적인 인간관계나 서로 간에 분노를 강화하는 관계의 특성에 대해서는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1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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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 서울대생 1100명을 심층조사한 교육 탐사 프로젝트
이혜정 지음 / 다산에듀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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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이혜정 / 다산에듀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 혁신이 필요하다

 

 

 

  제목이 훼이크다. 만약 이 제목을 보고 책을 집어 들었다면 예상과 다른 내용을 만나 실망할지도 모른다. 제목은 '서울대에서 A+를 받는 방법' 즉, 공부 잘하는 방법을 얻으려는 사람들의 기대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책은 우리나라 최고의 학교 '서울대'와 '공부 잘하는 법'을 넘어서 한국 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고 있다. 만약 앞에서 말한 기대를 안고 책을 본다면, '공부 잘하는 법'이라는 애매한 벽에 먼저 부딪힐 것이다. 그리고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다. 학점에 경쟁에 뛰어들 것인지, 정말 진정한 배움에 뛰어들 것인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문턱을 넘어야 갈 수 있는 서울대에서, 학점의 꼭대기에 서는 학생들은 어떤 성향을 갖고 있을까. 저자는 그들을 조사했다. 어떻게 공부하는지, 수업방식은 어떤지, 생활 습관은 어떤지. 그들은 역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수업시간에는 교수님의 말 (농담과 웃음까지) ​ 모두를 받아 적고, 여력이 안될 경우에는 녹음기까지 대동하고, 팀 과제 때에서는 남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역량을 충분히 다하면 되며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희생 또한 자처한다고 했다. 내가 상상하던 서울대 학생들 - 소위 공부 잘하는 우리나라의 인재들 (?) - 은 창의적이고 비판적으로 수업을 하고, 상상력이 가득하고, 누구보다도 공부를 즐기면서 행복한 대학생활을 그려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치열한 경쟁이 있었고, 멋진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여겼던 서울대 학생들은 다른 대학생들처럼 그저 치열하게, 대학생활을 견디고 있었다. (감정까지도 관리한다는 말에 적잖이 놀랐던.)

  이 책의 제목이 된 '서울대'는 책의 첫 부분에 등장하며 문제로 제기하는 사례였다. 이후 미국의 사례가 서울대와 비교해서 등장한다. 그들은 우리나라와 정반대다. 치밀하게 심층조사한 연구결과 속에서 그들은 서울대 학생들보다 비판적이고 창의적이며, 청출어람의 교육을 제대로 실행하고 있었다. 결국 이 책의 중요 포인트인 '교육은 어때야 하는가'가 등장한다. 서울대 학생들의 능력이 미시간대 학생들의 능력보다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사회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생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은 '구조' 때문이다. ​ 교수들 각각의 방식 또한 잘못된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너무도 세세하게 정해 놓고 교사에게 이를 따르도록 강제하고 있는 구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교육의 단계에서 학년마다 통일되는 진도 (선진국에서는 통일된 공부'진도'가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너무나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교육의 창의성과 진취성을 막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사례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발언은 안 하는 것이 낫고, 다소 엉뚱한 발언을 하면 튄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라는 부분이었다. 이것은 국제회의 같은 중요한 자리에서도 해당되며 학교라는 작은 공간에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 우리가 가장 우러러보고 있는 최고의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다를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 생각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왔을 때, 서울대가 아니라 어떤 대학이든, 역시 치열한 삶을 살고 있을 거란 상상과 함께 왠지 소름이 끼쳤다. 교육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 학생, 학부모, 교사, 누구든지 읽어본다면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을 낱낱이 바라보면서, 교육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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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최우등생들의 자기조절 대상에는 감정까지 포함되었다. 감정의 기복에 의해 공부가 방해받지 않도록 늘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게 감정 조절에도 신경 썼다. 특히 설문조사 결과에서 학점이 높을수록 스스로 행복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더 행복한 것인가? OECD 국가 중 우리 나라가 학생들의 행복지수에서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는 사실과 배치되지 않는가? 서울대 최우등생들의 이러한 응답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에 대한 실마리는 바로 이 사실에서 찾을 수 있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경향이 학점에 비례한다는 사실이었다. 즉, 서울대 학생들은 학점이 높을수록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도 더 많이 하는 것이다. (84p)

46명의 서울대 최우등생들을 인터뷰하면서 내가 느낀 점은 한마디로 이들이 뜨겁지 않다는 것이었다. 인생에서 최고로 뜨겁고 열정적일 나이임에도, 이들은 대단히 절제되어 있고 완벽하게 자기조절을 하며 체력도 시간도 감정도 철저하게 관리하는, 대단히 차분하고 이성적인 사람들이었다. 좋아하는 것에 혼신을 불태우는 열정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랑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20대의 대학생, 이 때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불태울 시기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들은 뜨겁지 않았다. 대부분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이성친구 때문에 공부에 지장이 있다는 응답은 거의 없었다. (88p)

서울대와 미시간대의 상반된 결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각 대학의 교수들이 무엇을 평가하는가를 역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수업 시간에 교수와 최대한 가까이 앉아서 교수의 모든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적고 이것을 시험 전에 다시 2차 필기로 정리하는 방식이 고학점에 유리하다는 사실은 명백히 교수의 생각을 최대한 그대로 흡수하고 기억해 내는 것이 평가 기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으로 미시간대에서 이러한 전략이 학점에 전혀 영향이 없다는 사실은 서울대와 평가 기준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다른 평가 기준이 두 대학의 학생들을 대조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13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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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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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서은국 / 21세기북스

 지금까지의 통념을 엎어버리는 새로운 방식의 '행복론'

 

  
  '행복'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책들 중에서, 이 책은 가장 쇼킹한 책이 아닐 수 없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간단하지만 막연하고, 생각해보면 또 철학적이기도 한 질문. 이전에 내가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뭐라고 답했을까? 아마도 행복한 이유를 구구절절 말했겠지만, 대표적으로 한 가지를 골라보자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사실, 이 질문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정말 막연하고 답도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그 답은 아마 수천 개, 수만 개가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의 기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암, 당연 그렇겠지, 수긍이 간다. 하지만 뒤이어 내 눈에 들어온 문장.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이럴 수가, 행복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세상의 많은 책, 힐링 책들은 조언한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 "마음을 바꾸라", "고정관념을 깨라." 일단 딱, 들어보면 괜찮은 말인 것 같기도 하고, 다시 활기차게 살아갈 힘도 난다. 하지만 갑자기 의문이 든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바꿔야 할 일이 왜 이리 많은지, 하고. 『행복의 기원』의 저자, 서은국 교수는 이런 의문에 대하여, 수많은 '행복 관련 책'들의 함정을 잡고 재밌는 해답을 제시한다.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며, 모든 생각과 행위의 이유는 결국 생존을 위함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행복의 기원』에서 말하는 행복은 다윈의 '진화론'에 바탕을 둔 정의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에게 박힌 생각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이고 최종 종착지"라는 것이였다. 의미 있는 삶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행복론'이었다. 저자는 그의 생각을 '도덕 책 방식의 행복론'이라 칭하고, 또 다른 갈림길에 있는 '과학 책 버전의 행복론'을 주장한다.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에 살고 있으며, 자연의 법칙에 따라 존재하고 살아온 생명체이고 많은 동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생존을 위해 먹고, 투쟁하고, 도구를 만들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쯤에서 질문을 던진다. "행복 또한 생존에 필요한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결국 우리는 본성, 즉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으로 생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행복은 그 안에 있으며,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삶의 목적지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아마도 정말 자주) 지나치는 코스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결국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을 느낀다. 특히나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은 사회에서 있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 만약 나에게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같이 슬퍼해줄 한 사람이라도 없다면 얼마나 가슴 아플까. 사람, 그리고 사회성 이것은 내성적인 사람이든 외향적인 사람이든 간에 요구되는 양은 같다. 그리고 행복, 즉 생존을 위한 삶에서 유리한 사람은 유전, 그리고 성격 상으로 외향성을 타고난 사람이다. (살짝 아리송하지만, 수긍이 가기도 한다. 내성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의 사교성을 부러워할 때가 많다.)
  『행복의 기원』은 책의 첫인상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더욱 발칙하고 쇼킹한 책이었다. 우리가 이제까지 행복으로 가기 위해 '어떻게 (How)' 하냐고 항상 물어왔다면, 이 책은 우리가 왜 (Why) 행복을 찾는지를 묻는 책이다. 지금까지의 통념을 깡그리 엎어버리는 이 놀라운 책의 '행복론'. 이 '행복론'만이 진짜라고 무지막지하게 우겨대기는 어렵지만, 행복에 관한 색다른 시각을 살펴보는 흥미로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인간의 심리, 인간 본연의 모습을 파악하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다.
 
 
 
- 사실 이렇게 잘 읽힐 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저자가 참 글도 맛깔스럽게, 익살스럽게 씁니다.
과학과 관련되어 무거운 얘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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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하고 있는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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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성적 사고 대 동물적 본능, 무엇이 진짜 모습일까? 인간은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성의 역할을 상당히 과대평가하고 있다. 역으로 본능의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얼마나 움직이는지는 과소평가 한다. (...) 행복에 대한 책에서 왜 이성이나 본능 같은 주제를 굳이 다루느냐고? 이런 비유가 도움이 될 지 모르겠다. 행복을 소리라고 한다면, 이 소리를 만드는 악기는 인간의 뇌다. 이 악기가 언제, 왜, 무슨 목적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지를 알아야 행복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우선 이 악기의 주인, 즉 인간에 대한 심층적 파악이 필요하다. 생각은 그의 모습 중 아주 작은 일부다. 그는 보면 볼수록 동물스럽다. (28p)

우리는 이런 기이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자들의 후손이 아니다. 호모사피엔스 중 일부만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는데, 그들은 목숨 걸고 사냥을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짝짓기에 힘쓴 자들이다. 무엇을 위해? 삶의 의미를 찾아서? 자아성취? 아니다. 고기를 씹을 때, 이성과 살이 닿을 때, 한마디로 느낌이 완전 `굿`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상이 된 자들은 이 강렬한 기분을 느끼고 또 느끼기 위해 일평생 사냥과 이성 찾기에 전념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게 된다.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거창한 포부 때문이 아니라, 개가 새우깡을 통해 얻는 쾌감을 인간도 최대한 자주, 많이 느끼기 위해 고기와 이성에 몰두한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읽고 있는 우리에게 성공적으로 유전자를 전달했다. (70p)

자, 여기서 좀 황당한 상상을 한번 해보자. 어떤 최신형 동전탐지기가 등장해 동전에 접근할 때, `삐`라는 신호음 대신 중독성 있는 음악을 들려준다고 하자. 혹시 이런 경우 동전을 찾게 해주는 신호(음악) 자체에 매료되는 사람은 없을까?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음악 대신 아예 뇌에 미세한 쾌감을 준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탐지기 주인이 자기의 원래 목적(동전)보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한 신호(쾌감)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 말이다. 황당한 상상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행복을 좇는 우리 모습이 어쩌면 이같은 주객전도의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표현한다면, `becoming(~이 되는 것)`과 `being(~으로 사는 것)`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재벌집 며느리가 되는 것과 그 집안 며느리가 되어 하루하루를 사는 것은 아주 다른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화려한 변신의 순간에만 주목하지, 이 삶을 구성하는 그 뒤의 많은 시간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공하면 당연히 행복해지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 큰 행복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살면서 깨닫게 된다. 그제야 당황한다. 축하 잔치의 짧은 여흥만을 생각했지, 잔치 뒤의 긴 시간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17p)


행복을 정육점에서 판다면, 현재 시중의 고기들은 기름이 너무 많이 붙어 있다. 오컴의 칼날이 필요하다. 그 칼날로 기름기를 제거하고 나면 행복의 살코기로 남는 것은 주관적인 즐거움과 기쁨니다. 행복하기 위해 쾌락주의자가 되자는 말인가? 다소 그럴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에서처럼 자신을 집단의 일부로 생각할수록 행복의 쾌락적 부분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내일이 없이 즐겁게 사는 여름 베짱이를 한심하게 생각하도록 세뇌받고 살았다. 두 가지 염려 때문에. 첫째, 쾌락주의자들의 즐거움은 저급하다. 둘째, 그런 삶의 말로는 한심할 것이다. 둘다 근거 없는 염려다. 세상 모든 베짱이들이 루저가 된다는 증거는 없다. 수많은 최근 연구들에서 나오는 결론은 오히려 그 반대다. (1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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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 철학자와 심리학자의 인생질문 20 Art of Lving_인생의 기술 4
줄리언 바지니.안토니아 마카로 지음, 박근재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줄리언 바지니, 안토니아 마카로 / 글담(아날로그)

철학과 심리학의 아주 적절한 만남

 

 

 

 
 
  사람, 즉 인간과 삶을 연구하는 것이기에 철학과 심리학은 그 기본적인 맥락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심리학 뿐만이 아니라 과학과 정치학 등의 많은 학문들이 과거의 철학에서 빠져나왔고, 심리학조차도 과거에는 철학자들의 업무 중 하나였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르고 학문들도 세분화되어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심리학과 철학적 사유는 많은 부분 달라져온 것 같다.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는 어떤 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심리학자와 철학자 각자의 시선으로 통찰한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하는데, 20가지 질문에 대한 심리학자와 철학자의 답이 같은 듯, 다른 듯 여겨져서 꽤나 흥미롭게 만드는 책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이었을 것이다. 각 학문에 따른 답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삶에 대한 질문들. 그 질문들은 어느 정도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었지만 흥미로운 것들도 많았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거짓말, 자기기만", "이성이 아닌, 직관에 의지해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도 될까?"하는 질문, 그리고 "외모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라는 질문까지. 그런 질문들에 대한 심리학자와 철학자의 답, 그 공통점을 인식하는 것보다는 차이점을 인식하는 게 이 책을 읽는데 더한 재미를 주는데, 예를 들면 "외모에 대한 질문"에서 심리학자는 외모를 가꾸는 것을 어느 정도 옹호하면서 그 정도와 의미에 대하여 더욱 생각하기를 바라는 반면, 철학자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은 '외모 가꾸기'가 일종의 딜레마라고 언급하며, 철학적으로 '실재'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겉모습의 진실까지도 음미해야 된다는 결론을 내놓는다.
 한가지 주제에 대하여, 각 학문이 내놓는 답은 정말로 다양하다. 만약 철학과 심리학, 그 너머의 다른 학문까지 끌어들였다면 책의 내용은 걷잡을 수 없이 포화될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담백하게 선택한 두 학문의 만남은 적절하고도 효과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방면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에 대한 조언을 얻을 수 있다면 약간은 품격 있는 '자기 계발서'로 읽을 수 있거나 혹은 심리학과 철학의 차이에 대하여 인식하고 각 학문의 맛보기 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심리학과 철학에 둘 다 관심 있는 나로서는, 이 두 학문의 차이점에 대해 더 집중하면서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심리학자의 생각이 더 진국이라 느껴졌달까. 아무래도 나한테는 진지한 철학보다는, 넘어갈 건 넘어가주며 따뜻하게 마음을 울리는 심리학이 마음에 들었다. (각 저자의 문체 차이일지도 모른다. ^^;)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뜬금없이, 심리학을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Copyright ⓒ 2014. by Rinny. All Rights Reserved.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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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고 자신의 행복에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주목하기 시작한다면 모종의 패턴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어떤 즐거움은 금방 지나가거나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는다. 다른 어떤 즐거움은 오래 지속되며 그것이 끝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우리를 계속 행복하게 한다. 우리는 이러한 패턴으로부터 배움을 얻을 수 있으며, 강렬하지만 얕은 매력을 지닌 것들에 동요되지 않고 우리의 에너지를 보다 꽉 찬 만족을 주는 것들에 돌릴 수 있다. (심리학자,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기보다 행복해질 이유를 찾을 것, 39p)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그럴듯한 이유가 없는 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 예컨대, 한 남자가 급작스런 소아성애적인 충동을 보일 때 그 이유가 뇌종양 때문인 것으로 밝혀지지 않는 한 그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이 결정한 인생의 중요한 판단들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관점의 적절성을 갖춘 상태에서 행동을 실행해야 하며, 모든 면에서 공정하게 책임을 평가할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된 전후 맥락에 유념하는 것과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용서하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썬은 희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경계선은 너무도 중요하다. 우리는 책임의 경감이 책임의 방면으로 이어지지 않게끔 늘 주시해야 할 것이다. (심리학자, 과도한 책임감도 책임회피만큼 심각한 문제다, 128p)

소중한 시간이 낭비되고 있는지 여부를 항상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다. 겉보기에 일상의 틀을 못 벗어나는 사람 같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넘쳐나는 삶을 영위하고 있을 수도 있다. 모험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이런 면이 결여돼 있을 수 있다. 몇 안 되는 경험들로만 이루어진 삶이라 할지라도 그 경험들이 깊이를 가지고 이루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풍요로운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얼마나 많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지는, 그리고 어떤 종류의 것을 얼마나 자주 경험하게 될지는 개개인의 성격과 가치,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지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고 매일매일을 음미하며 사려 깊은 마음을 간직해야 한다는 충고는 필히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번지점프와 같은 버킷리스트는 부차적인 선택사항일 뿐이다. (심리학자,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33p)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찌만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행동에 생각이 병행되어야만 그 행동에 대한 느낌도 분명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신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라 기대되는 것을 욕망한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그것이 즐겁지 않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면 갈망의 느낌도 이내 사그라진다.

비슷한 경우의 예로, 만약 어떤 사람에게 몹시 화가 나 있는데, 확인 결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사람에 대한 화는 가라앉는다. 어쩌면 플라톤은 마부보다는 말을 잘 다루고 돌보는 `승마치료사`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편이 나았을지 모르겠다. 승마치료사는 마부와 달리 채찍을 들지 않고 부드러운 말과 손짓만으로도 흥분해 날뛰는 종마를 진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머리와 가슴의 유익한 동맹 맺기, 1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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