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맑음 - 청소년과 함께 읽는 5.18 민주화 운동 이야기 창비청소년문고 33
임광호 외 지음, 박만규 감수, 5.18 기념재단 기획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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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연히 뉴스 기사를 읽고 경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019년 촛불 집회 당시 엄청난 군 병력과 탱크, 장갑차 등으로 무력 진압을 하려고 했던 문건이 드러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무력시위로 변질될 때를 대비한 병력이라고는 하지만 촛불을 들고 질서를 지키며 평화적인 시위를 했던 시민들에게 이런 ‘거리를 쓸어버릴 만한’ 군 병력이 가당키나 할까요. 그 이야기를 듣고 ‘만약’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어디에선가 작은 충돌이라도 일어난다면, 거리에 있는 수많은 시민들을 ‘폭도’로 만들어버리는 건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만약’을 상상하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것은 1980년 5월의 광주였습니다.

“열받아서 몰입이 잘 된다”는 이유로 근현대사를 열심히 공부했지만, 성인이 되기 전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후, 교과서보다는 문학이나 만화, 영화, TV 시사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알아갔지요. 식민 통치를 받고, 수차례 전쟁을 겪고,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기까지 대한민국의 역사는 아픈 역사 투성이지만, 가장 가슴 아픈 역사는 국가가 국민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건들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가까운 과거의 역사인 5.18은 너무나 깊게 새겨진 숫자였습니다.

<5월 18일, 맑음>은 그날의 기억을 사실대로 전달함과 동시에, 역사를 어려워하는 학생들과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친근하게 기술한 책입니다. 광주에서 벌어졌던 열흘간의 항쟁뿐 아니라, 운동이 발발하기 전 대한민국의 상황, 그리고 5.18 이후 현재까지의 노력 등을 꼼꼼하게 담았습니다. 또한, 각 장마다 민주주의, 국가 폭력 등과 같은 키워드를 조금 더 정확하게 설명하는 한편, 세계 속에서 5.18과 유사한 풍경을 그려낸 일들을 함께 소개하기도 했지요.

책은 어렵지 않게 편안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사소한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소해 보이는 일들은 5.18의 진실을 하나하나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최초 사망자가 우연히 길을 걸어가던 청각장애인이었다는 것과, 그해 공수부대에서 수개월 동안 강도 높은 훈련과 세뇌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당시의 상황이 눈뜨고 보기 힘들었던 무차별적인 폭행과 진압이었다는 점을 반증합니다. 영화 <택시 운전사>에도 등장했던 독일인 기자 ‘힌츠페터’는 “베트남 전쟁에서 종군 기자로 일할 때도 이렇게 비참한 광경은 본 적이 없다(82쪽)”고 말했다고 하지요. 어떤 설명을 하든 그때의 상황과 같을 수 있을까요.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만들어진 책은, 그 생생한 역사의 눈물 때문에 결코 편안하게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꾸만 몸이 떨렸습니다. 

“원망스럽다, 이런 것들은 별로 없었어요. 기왕에 나는 죽겠다고 생각을 했고, (……) 당신들은 살아서 다음에 제대로 이야기해 주겠지. (……) 10년이 갈지, 100년이 갈지. 그거야 모르지만은 언젠가는 이 얘기가 나오겄지, 그렇게 생각을 했죠. (122쪽, 양인화, 당시 시민군의 증언)”

하나하나 기억할 것들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들불야학’을 통해 노동자를 교육하다가 민주화운동을 이끌게 되었던 ‘윤상원’ 열사의 이름과, 생생하게 남은 증언의 주인공들, 시위에 참여하고 시위를 도왔던 사람들과, 남모르게 눈물 흘리며 현재까지도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유족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 ‘아픔의 연대를 향해’를 통해 기억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아픈 역사를 단지 역사적 사실로만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끊임없이 끌어올려 현재의 상황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갈 청소년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조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가의 그 누구에게도 국민의 인권을 마음대로 줄일 권리는 없습니다. 대통령일지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이 만든 법에서 나오고 국민은 누구나 그 법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역시 국민의 한 사람이며 그가 가진 권력은 국민들에게 잠시 위임받은 것일 분입니다.
유신 공화국에 살던 사람들이 바란 민주주의는 그렇게 추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권력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 같은 사소한 일부터 소신대로 신문 기사를 쓰고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것,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것 같은 작지만 소중한 자유와 권리를 지키고자 했지요.
- P35

공수 부대는 한층 더 잔혹하고 무차별적이었습니다. 이성을 잃은 듯 사무실이나 주택, 여관까지 마구 들어가 곤봉으로 때리고 대검으로 찔렀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잡혀 오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속옷만 입게 한 채 마치 군대에서 하듯 ‘뒤로 취침’ ‘앞으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등을 시키며 기합을 주었지요. 따라 하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구령에 늦을 경우 여지 없이 곤봉을 휘둘렀습니다. 가톨릭 사제조차 "옆에 총이 있었다면 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라고 느낄 지경이었습니다. 공수 부대와 함께 시위 진압을 맡은 경찰 간부마저 시위대에게 "제발 집으로 돌아 가라, 공수 부대에게 걸리면 다 죽는다"라며 울먹였지요. - P56

"몸이 약해서 보기에 그 헌혈허시면 안 되겠다고 그러면 막 화를 낸 거예요. 내가 죽어도 이럴 때 피 한 방울도 안 주면 내가 시민이 아니지 않냐. (……) 그때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슬펐고, 또 가장 인간으로서 감동적인 순간들을 너무 많이 체험을 한 거죠."
헌혈 행렬에는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던 가정주부나 젊은 여성들이 특히 많았습니다. 그 와중에 안타까운 일도 생겼습니다. 전남여성 3학년 박금희 학생이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총을 맞고 사망한 것입니다. 박금희 학생은 헌혈했던 병원으로 다시 실려 오고 말았습니다. - P98

만약 어느 도시에서 치안이 사라진다면, 즉 경찰이 모두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할 사람이 없다면? 남의 집 담을 넘는 도둑들, 은행마다 들이닥쳐 자루 한가득 돈을 실어 나르는 강도들, 내키는 대로 거리에 불을 지르며 화를 푸는 이들로 도시는 큰 혼란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계엄군이 시 외곽으로 철수한 21일 이후부터 다시 진입해 들어온 27일까지 광주는 사실상 치안이 사라진 ‘무정부 상태’였습니다. 군인도 경찰도 없었지요. 하지만 광주는 혼란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였습니다. 도시는 무척 안전했습니다. - P107

"도청 정문을 나설 때, 한편으로는 비겁하게 나 혼자만 살기 위해 빠져 나가는 것 같은 심정과, 또 한편으로는 저 많은 젊은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잃는 운명의 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닦아도 닦아도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많은 시민이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었지만 남아 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도청 YMCA 건물에 있다가 집으로 가라 하면 도청으로 가고 도청에서 가라 하면 다시 YMCA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도청에 남은 그 누구도, 돌아가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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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 우리가 몰랐던 출산 이야기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7
전가일 지음 / 스리체어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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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기 전 출산에 대해서 알고 있던 것은 얄팍한 성교육으로만 접했던 간단한 사실들뿐이었다. 되돌려 생각해보니 우리는 학교에서 임신과 출산에 대해 세세하고 정확하게 배워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세포가 어떻게 아기가 되고, 아기가 어떻게 자라는지에 관해서는 열심히 배운 기억이 있는데 출산의 과정에 관련해서는 기억나는 것이 미비했다. 아기가 엄마의 몸속에서 거의 빠져나올 때쯤 의사가 회음부 절개를 한다는 것도, 출산 후 한 달까지도 ‘오로’라 불리는 분비물을 배출할 수 있다는 사실도, 제왕절개 출산도 엄청난 고통이 있다는 사실도 성인이 돼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임신과 출산의 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했다. 그러니 무지한 비경험자인 나로서는 이 제목을 보고 의아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출산은 분명히 여성이 주체가 되는 것인데 도대체 어떻게 소외받는다는 것인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또 어떤 식으로 여성의 인권이 뭉개지고 있는 것인가.

 

알고 보니 책은 의료화된 출산의 문제점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자는 세 아이를 출산할 당시 모두 조산 ― 요즘 흔히들 이른둥이라 부르는 ― 이 되었고, 날짜를 꽉 채운 일반적인 출산보다 더욱 긴장되고 다급한 순간들 속에서 의료화된 출산의 폐해를 경험했다. 그는 출산 당시 생생한 감각을 전달하기 위하여 ‘일화적 내러티브’ 형식으로 책을 기술했고, 다양한 방식을 비교하기 위하여 지인과의 인터뷰도 수록했다.

 

저자는 처치실에서 홀로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었던 두려움의 시간을 회고하며, 지극히 의료화된 출산의 과정에서 느꼈던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다양한 문제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출산을 하는 산모의 ‘주도권’은 없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당연하고 일반적이고 정상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현대의 출산 과정에서, 산모는 아기를 품고 있는 주체가 아니라 단지 빠르게 아이를 빼내야 하는 ‘환자’가 된다. 아기가 나오기 좋은 자세보다는 의사가 처치하기 좋은 자세로 오랜 진통을 견뎌야 한다. 의학적인 지식 앞에서 어떠한 질문과 협의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빠르고 신속한 출산을 위해 원하지 않는 의료적 처치를 감내해야 하고, 때로는 조금만 기다리면 아이가 나올 수 있는 상황에도 의료진 입장에서 ‘비교적 간편한’ 제왕절개 수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이러한 문제점 속에서 중요한 것은 모두가 ‘산모의 두려움을 볼모로 하고 있다(67쪽)’는 것이다.

 

“여성이 출산 과정에서 자기 몸의 주인이자 출산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비로소 “분만을 당하는 delivery” 것이 아니라 “출산을 하는 give birth to” 것이 될 수 있다. (106쪽)”

 

아울러 각자의 상황 속에서 다른 방식의 출산을 경험한 세 여자의 대담이 이루어지는데 이 부분도 굉장히 흥미롭다. 외국의 출산’과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다양한 출산 경험을 전해줌과 동시에, 성숙한 토론을 통해 한국의 출산 의료화와 임산부의 소외 문제에 관하여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하게 한다. 이는 의학이라는 학문의 지향점과 의료계의 현실,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의료 시스템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며, 무엇보다 ‘출산’ 자체를 받아들이는 임산부의 자각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듯 감정적인 배려가 어려운 의료 시스템 하에서도, 인간적으로 배려해주던 의료진도 있었다며 좋은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책의 분량 내에서 미처 다 다루지 못한 생각들을 꺼내놓으며, 의료화 출산을 무작정 피하기보다는 조금 더 실질적인 시스템을 위해 고민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한다.
 
이 모든 것이 단번에 바뀌긴 힘들지라도 다양한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 자체로 선택의 여지가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출산을 앞둔 여성들이 이 책을 포함하여 많은 정보를 접하고 대비하며, 어떠한 두려운 상황에서도 최대한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바란다.

 

 

● 52쪽,
그들 모두에게 나는 지극히 도구화된 대상이었다. 활짝 깬 의식으로 떨고 누워 있는 나를 직접 소독하면서도 옆에 있는 동료에게 내 배에 대해 묻고 있는 그 인턴에게 나는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 여성, 인간, 현존재가 아니라 아기를 담고 있는 배 그 자체였다. 나의 신체는 그들에게 배로 환원되고 있었다.

● 90쪽,
출산 시의 여러 가지 변수와 복잡한 분만 상황에서 제왕절개술이란 의료진에게 통제가 용이한 방법이다. 즉, 의료화 출산 과정에서는 위험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편리’하고 ‘깔끔’한 분만을 위해 수술이 선호될 수 있다. 특히, 류정미는 대부분의 제왕절개 수술은 산모나 아기에게 위험하고 꼭 필요해서 행해진 의료적 처치이기보다는, 기다리면 자연 출산을 할 수 있었던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102쪽,
그러나 그러한 배경과 구조적인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협의 가능성이 희박한 한국의 병원 출산 문화는 출산권을 위협하는 매우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의료진이 산모인 여성들의 질문을 무시하거나 터부시하는 것은 일종의 전문가적 폭력이다. 이러한 의료진의 태도는 훈련받은 의료적 지식만을 과학적이고 ‘귀한’ 유산이라고 여기는 지식의 배타적 권력화의 산물이다.

● 109쪽, (면담 중에서)
안타가운 게, 우리는 보통 의사를 사람으로 잘 안 봐요. 한국 사람들 인식에 의사는 신이거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능력 없는 사람’이에요. 우리가 바라는 의사는 모든 걸 해결해 주고 포용해야 하는 존재인 건데, 의사도 사람이잖아요. 우리는 인간적인 대우를 받길 원하면서, 과연 의사는 인간으로 보고 있는가 하는 지점은 좀 의문이에요. 의사의 근무 환경은 되게 비인간적이에요. 그리고 그 자리에 오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였는데, 정작 우리가 내는 비용은 그에 비하면 되게 적죠. 저는 이 부분도 같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131쪽,
의료화 출산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한 답이 곧바로 탈의료화로 이어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의료화 출산의 문제는 곧 의료 권력화에 대한 문제 제기인데, 이것을 곧바로 탈의료화로 귀결하는 것은 비약이다. 탈의료화가 여성에게 더 큰 자유를 줄 것이라는 전제의 위험성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자칫하면 탈의료화가 의료적 시선을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더 많이 침투시키면서 기존에는 의료 시스템이 고려하지 않았던 더 많은 영역을 의료화하는 역습을 초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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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느 독일인의 삶 - 괴벨스 비서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브룬힐데 폼젤 지음, 토레 D. 한젠 엮음, 박종대 옮김 / 사람의집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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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이 있었는데 난민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 SNS에 난민 관련 정보를 검색했다. 해외에서 일어난 일부 난민들의 폭행, 강간 사건을 다룬 기사와 사진이 뜨고, ‘이슬람이 국가를 정복해나가는 과정’ 등의 정보를 무분별하게 긁어모았다. 최근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다 보니 제주도에 여성 실종자가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들려 화가 났다. 어느새 머릿속엔 ‘난민 = IS’라는 정보가 입력되었다. 걱정은 거의 병적으로 커졌다. ‘난민이 무서워’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사실 IS와 관련한 공포와 거부감은 당연한 일인데, 이번 난민의 문제는 일단 표면적으로는 언론 보도와 난민 분별을 도맡아 하는 관리들에 대한 불신, 이방인을 향한 불안감에서 오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두려운 동시에 스스로가 무서워지기도 했다. 어느 쪽도 아닌, 갈팡질팡하는 중도라는 이름으로 나는 은연중에 차별과 배척을 하고 있진 않을까.

 

과거 독일인의 삶을 다룬 이 책에서 느닷없이 난민 문제를 언급한 이유는, 이 책이 독일 내에서 출간될 당시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국민들의 불안감과 극우파들의 반대, 난민 테러가 격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엮은 정치학자 ‘토레 D. 한젠’은 이러한 모습이 마치 나치의 집단적 애국주의와 닮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익 포퓰리스트들의 증가, 난민들에 대한 공격, 시리아 전쟁 같은 최악의 상황에도 젊은 세대의 상당수는 마비되어 있거나, 좌절과 체념에 빠져 있거나, 아니면 정치나 사회 문제에서 관심을 돌린 것처럼 보인다.” 또한, 문제를 대응하는 현 세대의 모습에서 이 책의 주인공 ‘브룬힐데 폼젤’의 일부를 목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브룬힐데 폼젤은 나치가 국가를 장악하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면에서 국민을 선동하던 ‘괴벨스’의 비서다. 이미 한차례 전쟁을 겪었지만 그래도 형편이 나았던 동네에 살았던 폼젤은 엄격한 가정에서 순종과 무지를 배웠다. 오로지 부와 출세를 원했던 폼젤은 오전에 유대인 골트베르크 씨 사무실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나치당원 불프 블라이 밑에서 일하게 된다. 그 무렵 독일 사회의 불안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경제적으로 결핍되어 있었으며, 유대인들은 점점 사라져갔다. 상대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폼젤은 다양한 인맥을 접하면서 결국 나치의 핵심 인물인 괴벨스를 만난다. 그의 밑에서 일하게 된 폼젤은 ‘모든 게 선택받은 기분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폼젤의 인터뷰에서 독자는 그의 증언이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나치의 고위 관직이었던 괴벨스의 밑에서 일했는데 어떻게 모든 걸 알지 못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는 유대인들을 가스로 대량 학살한 샤워기 밑에서 샤워를 하며, 그들이 그렇게 학살 당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고 말한다. 자신은 유대인을 향한 반감도 없었고, 유대인 친구도 있었고, 단지 ‘이리저리 출렁이는 바다와 같은 민족’에 휩쓸렸을 뿐이라고. 오로지 의무감과 성실함으로 자신의 일을 했고, 의지와는 무관하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근시안적이고 무관심했던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듯하면서도, 정당화와 합리화로 회피하거나 당시 나치와 맞서 싸웠던 사람들의 노력을 평가절하시키기도 한다.

 

“나는 늘 타인들을 조심하면서 살아 왔는데,그러는 나는 내 속의 보통 사람입니다. 그 보통 사람 속에는 군대 전체의 배반과 폭력을 조장하기에 충분한 관성적 부조리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다들 얼마씩 품고 있는 폼젤을 늘 조심해야 합니다.” - 잡지 <VICE> 파울 가르불스키 (엮은이의 말 중에서)

 

역사의 가해자 편에 섰던 브룬힐데 폼젤의 진술을 보면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누구나 마음속에 폼젤의 일부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나치즘이 국가를 장악했던 이유를 단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정치에 대한 수동적 태도와 무관심, 소비 지상주의와 이기주의 등 모든 복합적인 요인이 모여 벌어질 일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거의 한 세기 전 과거 독일의 상황,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은 완전히 다르고 시대에 맞는 대응책은 늘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폼젤의 삶과 증언, 그것을 바라보는 독일인의 반성적 태도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멀리 떨어진 땅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일부의 사람들이 살기 위해 이 땅으로 밀려들어 오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까.

 

 

 

우리는 사실 별 걱정 없이 즐겁게 사는 편이었어요.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좋았죠. 모든 사람이 잘 벌었어요. 떵떵거리며 살지는 못했지만, 자잘한 것들은 별 어려움 없이 구입할 형편이 됐고 우리끼리 만족하며 살았어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늘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생각해 봐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매일 하고 살겠어요? 요즘 바다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는 불쌍한 시리아 난민들도 우리가 불쌍하게 여기지만 매일 생각하면서 살지는 않잖아요? 그렇게 살 수는 없죠. 다만 텔레비전 앞에 앉으면 다시 그 생각이 떠오르죠. 어떻게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될 수 있느냐는 거죠. 하지만 그건 가능한 일이에요.

나는 내 인생에서 많은 것을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당시엔 그런 부분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저 난 항상 의무감이 투철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줬어요. 그만큼 성실하게 잘했고, 항상 정확했어요. 어떤 자리에 있건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충실히 완수했어요.

사실 그런 격동의 시절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혹시 나는 이런 이유에서 이렇게 했고, 저런 이유에서 저렇게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몰라도요. 우리는 그저 시대에 끌려다녔을 뿐이에요!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치 시절에 강제 수용소가 있었다는 건 나도 일찍부터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거기서 사람들을 독가스로 죽여 불태운 건 전혀 알지 못했어요. 나 자신이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그런 가스가 나왔던 샤워기 아래 서 있었다는 상상을 하면…… 같은 곳에서 샤워를 했다는 상상을 하면 …… 그래요, 나는 목욕탕 건물에 들어가면 옷을 벗어 47번 갈고리에 걸어뒀어요. 내 고유 번호였죠. 내가 샤워를 하는 동안 옷은 빨아 다른 방에 걸어 뒀어요. 같은 번호 밑에요. 그러면 나중에 그걸 다시 찾을 수 있었죠. 그 사이 나는 15분 정도 타일이 깔린 커다란 목욕탕에서 샤워를 했어요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던 책임에 대한 문제만큼은 스스로 답을 일찍 찾았어요. 그래요, 난 책임이 없어요. 어떤 책임도 없어요. 대체 뭣에 책임을 져야 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 져야 할 책임도 없죠. 혹시 나치가 결국 정권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일 민족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요. 그래요, 그건 우리 모두가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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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 없는 직장 - 갑을노동의 사회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22
류문호 외 지음 / 스리체어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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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 날들이다. 언론을 통해 회자된 것들은 일부분일 뿐, 밝혀지지 않거나 꾹 참고 입을 닫아버린 일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사용자와 근로자의 비대칭 관계가 당연시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디까지가 근로자의 인격 침해에 해당하는지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14쪽)” 재벌, 임원들의 폭언, 상사나 동료의 괴롭힘, 성희롱, 임금 착취를 당하는 근로자들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어느 정도까지 참아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워 상황에서 벗어날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한 백화점에선 진상 고객이 근로자에게 험한 욕설과 폭행을 하는 사건도 있었다. 공개된 영상 속에선 어느 누구도 적극적으로 진상 고객을 말릴 수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이처럼 인권을 무시당하는, 수직적 상하 관계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디서나 존재한다.

 

<인권이 없는 직장>은 실제 한국의 노동 속에서 ‘갑을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한다. 다양한 노동 형태만큼이나 갑을 노동의 모습도 다양한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직장 내의 괴롭힘, 직장 내의 무례함, 직장 내의 성희롱, 비공식 고용과 열정 페이, 진상 고객의 갑질, 노동 감시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의 현실을 파악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 존재하긴 하지만, 피해자의 고통 정도와 별개로 법적 규제와 처벌의 판단은 애초에 수직적인 관계로 이루어진 직장 내에서 애매모호한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책 속에서는 다양한 케이스와 그에 따른 해결책을 알려주는데, 일단 중심이 되는 주장은 근로자 인권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서 포괄적인 접근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 내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경우,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조직적 문제로 파악할 것, 사용자가 근로자의 교육을 담당할 것이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경우 과잉 친절을 방지한 세심한 인사 관리가 요구된다. 결국 고통을 주는 ‘가해자’의 처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구조, 조직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전체적으로 딱딱한 문체와 나열식으로 쓰인 글이 읽기에 쉽지는 않았지만, ‘올바른 노동’에 대해 고민한다는 측면에서 좋은 영향을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특히, 직장 스트레스로 자살한 사람의 ‘심리적 부검 (자살로 사망한 사람과 관련해 수집된 포괄적 정보를 분석해 자살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방법)’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사회적 타살로 인해 한 사람의 생명이 스러지기 전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슬프지만, 그 사람의 마지막을 정리해주는 것이 조금이나마 인권을 보듬어주는 것이라 여겨졌다. 아,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일하는 어떤 곳이나 스트레스는 있겠으나,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 괴롭힘은 부디 없어졌으면 좋겠다.


 

 

● 20쪽,
우리나라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업무 수행 과정에서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 또는 상급자의 지휘, 명령 과정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하곤 한다. 근로자에게 괴로움을 줄 수 있는 상급자의 언행이 정당한 지휘, 명령권의 행사라는 명목으로 합리화되는 경우가 더 많다. 직장 내 괴롭힘을 집단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따돌림이라는 지엽적 문제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 40쪽,
조금 쉽게 표현하자면 직장 내 괴롭힘은 쇠망치로 때리는 행위로, 직장 내 무례함은 뿅망치로 대리는 행위로 비유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쇠망치로 때리는 행위는 누가 보더라도 가해자가 상대방에게 위협, 폭력을 가하려는 의도와 행위, 피해자의 피해 상처 등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으로 사회 통념 상 또는 법률상으로 금지되는 위법한 행위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뿅망치로 때리는 행위는 가해자의 의도, 피해자의 피해 양상, 위법성이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다. 즉각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피해자는 결국 스트레스와 괴로움이 쌓이고 일상, 직장 생활에 지장을 받게 된다.



● 73쪽,
일부 기업에서는 "무급 인턴이라도 하겠다는 대학생이 수십 명씩 밀려들오 오는데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도 모자라 돈까지 줘야 하느냐"며 억울함을 표하기도 한다. 인턴에게 순수하게 교육만 시킬 것이냐고 반문하면 ‘일을 시키는 것도 교육’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인사 실무자도 있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공급자와 다수의 수요자 사이에서 갑의 위치를 활용 혹은 남용하는 공급자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다.




● 126쪽,
직장 내 괴롭힘과 무례함, 직장 내 성희롱, 열정 페이, 진상 고객, 스트레스와 자살 등의 문제는 분명 근로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노동법적으로 규율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이는 노동법이 노동의 현실에 제공해야 할 일정한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한 ‘노동법의 공백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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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세월호 추모관까지
김명식 지음 / 뜨인돌 / 201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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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공간에 스며든다. 어떠한 과학적 이유를 댈 것 없이, 기억은 선연히 공간 속에 남거나, 공간을 통해 기억을 추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건축물이나 문화재를 방문하고 직접 발로 걸을 땐 온몸으로 기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기온은 적당한데 소름이 돋는 것 같고, 반대로 울컥해 열이 올라올 때도 있다. 건축은 소중한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우리 사회에 작용하고 있을까.

 

 건축은 잘 모르지만 제목에 쓰여 있는 ‘건축’이라는 단어보다 ‘아픔’이라는 단어에 조금 무게를 실어 미리 겁먹지 않고 읽어보기로 했다. 건축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만큼 쉽고 세심하게 건축을 가르쳐주려는 저자의 노력이 초반부터 돋보인다. 건축가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공간, 건물과 건축물의 차이, 예술과의 관련성에 관하여 짚고 넘어간다. “건축은 건축물의 내부성과 도시의 공간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이중성을 지닌 형태를 만들어 사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서도 작동하는 삶의 장치를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3쪽).” 건축은 예술성과 미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내부에서 공간을 활용하는 사람과, 외부에서 비치는 모습을 동시에 고려한다. 때로는 도시의 상징물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고통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건축물을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한다. 이러한 주제에서 거의 빠질 수 없는 공간은 군사정권 대표 건축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던 김수근의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1980년대 후반, 그때 그 시절을 영상으로 재현한 매체들을 볼 때 가장 잔인하게 생각했던 내용들이 담겨 있다. 고문을 받는 자가 뛰어내릴 수 없게 완전히 축소한 창문, 몇 층이나 올라가는지 알 수 없게 하는 계단참이 없는 나선형 계단, 소리를 흡수함과 동시에 벽면 너머로 전달되게 하는 타공판으로 만든 벽…… 그리고 어느 하나 치밀하게 계산되지 않은 것이 없는 ‘의도에 걸맞은’ 완벽한 건축 형태. 이런 무시무시한 공간을 만든 건축가의 또 다른 건축물인 ‘경동교회’를 걷는 저자는 선과 악이 혼재하는 건축가의 아이러니한 행보에 관해 생각한다.

 

그리고 뒤이어 그는 평화의 소녀상 옆을 걷는다. 평화의 소녀상이야말로 “타자의 비극이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되어 만들어진 가장 명료하고 시각적인 조형물 (97쪽).” 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외진 곳에 숨어 있듯 지어져 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방문한다. 소녀상보다 대사관을 더 보호하는 듯 보이는 국가권력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박물관의 위치와 기능에 관해 의아함을 내비친다. 저자의 세심한 관찰력은 다음 공간에서도 이어진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복원된 여옥사가 국내 유일의 여성 독립기념관으로 개관된 것을 보며, 우리가 어떻게 아픔의 기억을 다루고 응시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책의 마지막을 장식한 세월호 추모관도 마찬가지다.

 

“도열해 있는 지상의 묘비를 보면서 일종의 부러움이 생깁니다. 가장 숨기고 싶은 치부, 들키고 싶지 않은 과거, 인류 역사에 있어 이보다 더 잔인한 적이 없었던 독일의 역사를 수도 베를린 한가운데에 ‘명료한 시각적 상징’으로 현실화시키고, 가해자인 자신을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그들을 위로하며, 전 세계에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의무를 다짐하는 명쾌한 이 선언이 어찌 부럽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209쪽, 유럽의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 - 독일 베를린)

 

역사의 아픔을 다양한 형태와 상징으로 재현한 건축물들을 꼼꼼하게 설명하여 전해주는 글 뒤편에는 실제로 저자가 강의를 통해 시민들과 토론하고 의문점을 나눈 내용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책 자체가 일방적이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여정으로 느껴졌던 것은. 고통의 기억을 명료하고 효과적으로 재현하고, 그곳을 걸으며 공감하고

 

 

● 94쪽,
이 소녀상보다 더 강력한 상징과 의미 전달자는 없을 것입니다. 예술의 형태로 등장하는 비극과 고통의 구체적인 형상 앞에서, 돌아오지 못한 소녀의 빈자리에 누구든 앉아 함께 하자는 소녀상의 소리 없는 외침을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행은 힘겨운 투쟁과도 같습니다. 비정상이 종종 정상으로 여겨지는 한국에서는 이곳의 풍경 또한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아님을 직접 방문해보면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 119쪽,
발 아래 밟고 있는 얼굴들이 내는 소리는 은유적이지 않고 직설적입니다. 대번에 의미를 알아차리게 되니까요. 한 발자국 옮길 때마다 들리는 울음소리는 벽을 타고 솟구쳐 끔찍한 비명으로 바뀝니다. 함께 걷는 이가 있다면 소리가 겹치면서 더욱 증폭되어 절규와 아비규환의 공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닥에 깔려 절규하는 얼굴은 어느덧 기차나 수용소 혹은 가스실에서 죽어간 유대인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 세상은 악마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살기에 위험한 곳이 아니라, 그것에 맞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대문에 위험한 곳이라고 했던 했던 아인슈타인의 말이 귓전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처음에는 이웃이 가고 다음에는 친구가 가고 이윽고 내 가족의 차례가 찾아오는 순간,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위로하기 위해선 우리 모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 226쪽,
고통을 기억하려는 것에서 출발하는 기억의 형태화는 사랑하는 존재의 상실, 그 새로운 부재에 대한 아픔을 딛고 만들어진 추모 공간 혹은 기념비입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찬양이고 기억입니다. 예술의 한 분야로 형태화된 고통의 공간을 통하여 아름다움의 근원을 헤아려보려는 것은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삶, 그리고 각자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한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으면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 249쪽,
옆 동료는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자 "지겹다, 그만하자. 그만하면 많이 했다"라며 불편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그는 아이를 사교육 시장에 내몰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게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고, 직원들에게 비타민을 챙겨주며 "약 드실 시간입니다"라고 농담을 건네 웃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세월호를 향한 그의 태도는, ‘악의 평범함’ 같은 거창한 말을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조금만 방심하여 생각의 시간을 늦추면 내게도 당도할 일상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저라는 인간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여진 경비원 감축 표결에 대한 안내문을 읽으며 왜 머릿속에 계산기를 눌러보지 않았겠어요. 방금 현관에서 그분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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