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 진짜 여행에 대한 인문학의 생각
정지우 지음 / 우연의바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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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지은이) | 우연의바다 | 2015-12-05

 

 

남겨진 생각들  

현실의 벽에 부딪혀, '과감히 떠날 용기'는 잃게 된 나에게, 여행의 가치를 묻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호기심과 새로운 경험에의 의지는 편안함 속에 묻혀 버렸고, 장소에 대한 갈망에는 두려움과 "언젠가는"이라는 말이 끼어든 지 오래다. 하지만 몇 번 되지 않은 나의 여행 중에 정말로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기억이 있다면, 대학 초년생 때 친구와 떠난 일주일의 국내여행이었다.

 

 처음으로 긴 여행을 떠나기로 했기에, 친구와 나는 떠나기 위한 계획을 '떠나는 기간'보다도 더 오랫동안 준비했고, 그만큼 기대와 두려움도 크게 부풀어 올랐다. 친구는 긴 여행의 경험이 많은 편이어서, 설렘이 어떤 설렘인지도 모르는 어리숙한 나를 이끌었고, 새로운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즐거웠다고 묻는다면 1초 만에 답할 수 있지만, 순탄했냐고 묻는다면 100%라고 답할 순 없다. 어쩔 수 없는 '여행지의 우연'이 항상 끼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계획했던 장소가 없어져 버린 '우연', 생각했던 시간이 어긋나버린 '우연', 마냥 즐거울 거로 생각했던 걸음이 꽤 힘들게도 여겨졌던 '우연'. 그러나 그 우연들은 그것을 회상하는 지금도, 그 당시에도 호탕하게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재미난 우연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랬다. 몇 년 후 새롭게 떠난 패키지여행에서 (나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친구가 "그때처럼 즐거워 보이지 않아."라고 했던 이유는, 편한 여행의 행복감과는 또 다른, 우연으로 가득한 여행의 활력을 나의 첫 여행에서 듬뿍 받았기 때문이었다. 해 질 녘 노을이 지기 위해 올라갔던 산기슭의 공원에서 태풍을 만나 두려움에 떨면서도 (결국, 운 좋게 히치하이킹에 성공했지만) 소리 지르고 실실 웃음이 나왔던 것은 아마도 그 활력과 풋풋함 때문이리라.

 

 인문학자 정지우 작가는 이 책에서, 내가 느꼈던 활력과 즐거움을 보다 체계적이고 이론적으로 설명하고, 인문학적인 감성으로 풀어낸다. 떠나기를 선택하기부터 떠나고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여행 과정을 상세하게 말이다. 그가 말하기를,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고. 벗어남을 통해 우리 인생 전체를 쥐고 흔들고 있는 어떤 추상적 존재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다. 떠나는 사람에 따라 여행의 의도도 방식도 그에 대한 만족도도 다르지만, 작가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여행'은 여행지를 걷고 수많은 우연을 만나면서 자신의 마음속을 걷는 것이다. 갈 곳 없이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내면, 쓸모없는 몰입과 허영으로만 치부되는 내면에 대한 성찰, 그것을 통해 마치 '번뇌'처럼 내 삶과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내 몸을 표백시키는 여행이 되고, '자기만의 삶'과 '이미 정해진 현실' 중간쯤에서 두 가지를 조율하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한다.

자유를 얻은 여행자는, 이제 '성숙한 여행자'가 된다. 여행을 통해 자유를 얻고, 자유를 통해 '현실에 적응할 힘'이 아니라, '현실에 맞설 힘'을 얻는 '삶의 혁명으로서의 여행'을 진정으로 즐기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작가는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라는 책에 녹여놓았다.

"여행은 현실 속에서 무뎌진 세상과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그 회복이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감격하며, 이 순간을 사랑하고, 또 눈물겹게 슬퍼하는 상태를 되찾는 것이다. 여행자는 그렇게 얻은 능력을 가지고 또 새로운 도시로 향한다. 그는 여행 속에서 최선의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여행은 삶이 되고, 삶은 여행이 된다"

 어느 날 우연히 읽게 되어 빠져들었던 『삶으로부터의 혁명』부터 『청춘인문학』, 『분노사회』,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인생의 지침을 얻었다. 정지우 작가의 글은 언제나 냉철하면서도 감성적으로 나의 마음을 강하게 죈다. 때로는 머뭇머뭇대면서, 혹여는 외면하고 있는 진정한 나 자신을, 그와 맞닿은 삶의 자세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건드리는 탓이다.

  

 

 

인간은 모순적이게도, 변덕스럽게도, 용납하고 싶지 않게도 자유와 안락이라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을 모두 원한다. 인류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성취하기 위해 역사를 발전시켜 왔지만, 현대 기술력의 궁극점인 도시조차도 그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사람은 도시의 안락에 파묻혔다가도, 도시를 떠나는 자유에 몸을 맡기고 싶어 한다. 반대로, 지나치게 자유에 노출되면 다시 돌아가 안락해지길 갈망한다.

세상은 인간의 모든 욕망과 충동을 어떻게든 충족시켜 주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 시대 여행의 유행 역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갈망인 `자유`에 대한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인간은 어쩌면 영원히 자유와 안락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23쪽)

여행의 묘미에는 분명 `우연`이 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낯선 땅을 돌아다니다 보면 불운의 사고든, 행운의 인연이든 어떤 만남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우연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여행에 뛰어드는 이들은 기꺼이 온갖 고생을 각오한다. 무슨 일이든 정해진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면 그만큼의 고생이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우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을 좋아하고 부러워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이 대체로 우연보다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기획 속에 처음부터 끝까지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특별한 우연이 가득한 것이기보다는, 정해진 현실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고, 심각한 불운을 겪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그리 특별한 일이 없는 `안정된` 인생을 갈구한다.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길 바라며 하루하루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한편에는 이 영원히 틀지어진 인생 루트를 벗어나고 싶은 갈망도 있다.(47쪽)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도 없고 신경 쓸 사람도 없던 유럽의 낯선 도시를 걷다가, 나는 `그런 나`란 씻은 듯 사라지고 걸음 그 자체가 되는 경험을 했다. 그 순간의 나를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나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걷고, 그저 보는 하나의 동물이나 생명체 덩어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 모든 걸 경험하고 있는 `또 다른 나`가 있었다. `그 나`는 걷고, 보고, 만나고, 경험하는 그 모든 것들을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보고 있었다. 내 안에 들어오는 모든 감각들을 끌어안고, 종합하며, 간직하는 그런 나, 어떻게 보면 내 인생 전체를 관장하는 그런 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91쪽)

여행에서 우리는 새롭게 표백된 자기 자신과 새로운 시간성을 발견한다. 나의 세계를 지배하는 건 나의 시간관과 장소성이었다는 것, 결국 내가 어떤 시간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내 삶도, 내가 느끼는 세계도, 나의 생각도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속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배우는 것은 이 반복적인 성실성에 적응함으로써 내 삶이 새로운 양식으로, 창조적이며 건강한 양식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사실이다. (162쪽)

여행자가 이별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이별에 무뎌진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여행의 끝에 다가갈수록, 여행자는 각 도시의 일몰에서, 도시를 떠나는 버스 밖의 노을에서 더 깊은 슬픔을 느낀다. 그는 자신에게 도래하는 감정의 깊이를 승인한다. 일상적 삶에서 너무 깊은 감정은 용납되지 않는다. 깊게 느끼게 되면, 삶은 감정에 의해 중단되고 우리가 현실에서 수행해야 할 일들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에서는, 특히 한 도시에서 모든 일정이 끝나고 그저 다음 도시로 실려 가는 일만 남은 상황에서는 그 깊이가 용인된다. (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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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 KBS <TV, 책을 보다> 선정 도서
미겔 앙헬 캄포도니코 지음, 송병선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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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 미셸 앙헬 캄포도니코 / 21세기북스

 우리도 이런 대통령이 절실합니다

 

 

 

 

  ▒ 책을 읽고 나서.

 

 우루과이의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유명합니다. '가난'과 '대통령', 누군가에게 붙은 수식어가 이렇게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은 처음입니다. '가난한 대통령'이라, 현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상적인 인물이어서 말이죠. 그러나 무히카 대통령은 그 위화감 느껴지는 수식어를 백 번이고 붙여줘야 할 듯한 멋진 인물입니다. 그는 대통령 임기 동안 국가에서 제공되는 대통령 월급의 90% 이상을 각종 사회단체에 기부하고, 재임 중에 대통령궁을 노숙인에게 내주고 자신은 농장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한 달 전, 그가 퇴임할 때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27년 된 비틀을 타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죠.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소신과 가치를 지키며 농부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퇴임 당시 국민들의 지지도가 65%에 육박했던 무히카 대통령의 행보와 어록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에겐 특별한 이력이 있습니다. 책 속의 구절이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설명해주고 있죠.

 

 

호세 무히카가 하원에서 일하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의심 많은 농부의 분위기를 풍기며 사무실에서 천천히 말하면서 줄담배를 피워대는 그 하원의원이 그토록 극적인 순간을 살아야만 했으며,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섰고, 몬테비데오의 하수도를 통해 도망쳤으며, 중상을 입고 거의 죽을 지경에 처했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기적처럼 목숨을 구했고, 푼타 카레라스 감옥에서 두 번이나 도망쳤으며,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13년이나 감옥생활을 했고, 조직적인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181p)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는 무히카의 탄생부터 정계에 진출하기까지의 그의 인생을 그대로 담아낸 인물 평전입니다. 무히카 대통령의 어록과 인터뷰 내용 또한 풍성하게 담겨 있어 마치 자서전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책이죠. 또한, 인생의 전환점과 같은 사건, 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게릴라로서 사회운동을 하는 과거에 대한 회상 그리고 자신이 몸담았던 '좌파'에 대한 가감 없는 비판과 의견, 혁명가의 '사랑' 이야기, 그가 생각하는 정치 인생과 우루과이 사회에 대한 모든 내용이 빽빽이 담겨있습니다. 사건 등이 차례대로 나열되는 형식이라 읽기에 쉬운 편은 아닙니다. 정치적인 이야기도 한몫하고 있죠. 하지만 이 책은 무히카의 '목소리'와 저자의 상세한 설명과 평가가 아주 조화롭게 구성된 최초의 전기로서,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인생에 빠져들게 됩니다.

 

<무히카 어록> 중에서.

- 나는 가난의 옹호자로 비쳐지고 싶지 않다. 나는 다만 낭비와 불필요한 지출과 에너지 고갈과 무엇이든 탕진하며 사는 삶을 견딜 수 없을 따름이다.

- 정치에서 첫 번째로 요구되는 것은 지적인 정직성이다. 지적으로 정직하지 않다면 나머지는 아무 소용이 없다.

- 국가가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내가 끌리는 것은 자치적인 경영이다. 중요한 기관에서 이것이 시도될 때 수반되는 위험까지 고려해도 그렇다. 어떤 것을 관리하는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민중이 되어야 한다.

- 나는 집 구석에 틀어박혀 자서전이나 쓰고 있는 늙은 연금수급자로 살아갈 생각이 없다. 절대로!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무히카 전 대통령의 삶과 그의 언행들을 보고 있자면, 사실 잘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상적이고, 뜻밖의 행동들을 일궈낸 진정한 리더니까요. 그의 정치적인 업적도 놀랍습니다. 그가 재임하고 나서 우루과이 사회의 불평등을 줄어들었고, 경제는 반대로 성장했고, 빈곤율과 실업률이 감소했으며, 남미에서 가장 부패지수가 낮은 나라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나눔의 가치를 끊임없이 어필하며 우루과이라는 국가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주기도 하였죠. 진정한 리더, 언행일치의 모습을 여기저기서 보여주는 참된 리더의 모습 ……. 우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그런 대통령의 모습이기에 괜히 더 착잡해지는 순간입니다. 우리에겐 가난한 척하는 29만 원 대통령이나,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대통령밖엔 없지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어쨌든, 우리에게도 이런 대통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괜히 부러운 마음만 앞서는 오늘입니다.

 

 

 

 

 

Written by. 리니

인물 평전, 전기/ 우루과이 대통령, 무히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가제본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우리는 그런 자연의 일부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뿐입니다. 오로지 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몇몇 식물은 그 자리에서 수백만 년을 살아남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스쳐지나가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럼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 나는 이런 일들을 전혀 모른 채 화분 하나를 사서 식물을 심는 어느 여자를 바라봅니다. 자연이라는 세계와 연결되고픈 마음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나는 꽃을 꺾으면 감전된 것처럼 느끼는 식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식물들은 꽃을 꺾는 사람이 오기만 해도 감전 현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나는 키가 큰 동물에게 먹히는 나무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가령 기린이 다가오면 나무는 공격할 수도 있다는 느낌을 전달합니다. 자기방어의 한 형태로 독을 품는 나무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무와 식물들은 감각이 없지 않느냐고, 또 그들의 감각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화학적 활동을 비롯해 그 모든 것을 알게 되면, 멍해집니다. 나는 초보 지식만을 가진 아마추어에 불과합니다. 내 앞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무한히 펼쳐져 있기 때문에 그런 지식을 통해 거의 성스러운 기분에 잠깁니다. 흙덩이는 완벽한 실험실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정교해서 인간이 도저히 흉내낼 수도 없습니다. 흙은 글을 쓰거나 읽을 줄 모르기 때문에 성스러울 수 잇습니다. 인간도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성스러운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141p)

내가 `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나는 `충돌`과 `대치`라는 차원에서 말합니다. 실질적인 적은 우리 앞에서 우리를 죽이거나 파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적은 우리가 "토호세력의 핵"이라고 부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존재 이유를 부여해주었고, 조직의 이름을 `민족해방운동`으로 붙이게 만든 장본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루과이가 저개발 국가이자 종속된 국가라는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종속이란 대부분 국내 권력을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중심을 토호세력으로 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국가의 부와 경제를 거의 독차지하는 주인들이자, 권력에 있어 국가가 취하는 중재나 결정의 실질적인 주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180p)



혁명가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혁명가는 별에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예요. 혁명가들도 보통 사람들처럼 두려움을 느낍니다. 물론 그 두려움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만 하겠지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혁명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욕구들이 아주 다른 환경에서 표출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199p)

일상적 삶에 통용되는 규칙을 항상 거슬러야만 하는 삶, 즉 게릴라로서의 무질서한 삶을 견디기 위해서는,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커다란 확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하조직 전투원 고유의 특징인 극단적인 고독의 무게감이 지나치게 클 수도 있다. 조그만 방에 스스로 유폐된 채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과 싸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다음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순간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당시 이렇듯 적막한 고독 속에서, 일상적인 삶의 주변부로 내몰렸다고 느끼다 보면,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이 무너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직의 명령을 기다리는 동안 자기 자신과 외부의 감시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신념을 포기하고 잃어버린 일상성을 회복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201p)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과학적 방법을 취해야만 합니다. 시민의 참여와 책임감을 끌어내고, 소수의 결정권을 분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부여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민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잇는 위치로 올라가면 반드시 변화할 것입니다. 계급사회가 언제나 고수해 온 것이 있다면 바로 결정권입니다. 하지만 민주사회는 결정권에 기대는 사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결정권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에 기대고 있습니다. (3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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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알아야 할 관계 심리학
수잔 존슨 지음, 박성덕 외 옮김 / 지식너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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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수잔 존슨 / 지식너머

 사랑의 본질과 속성에 대하여

 

 

 

 

 ▒ 책을 읽고 나서.

 

 누구나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소개팅 등 만남의 장을 마련하기도 하고, 운 좋게 우연한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할까?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결혼한 많은 사람은 왜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하며, 어떤 이들은 짝이 있음에도 정서적인 고립 속에 살고, 사랑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로 끙끙 앓고 있을까? 우리는 정말,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랑을 풀어낸 이 책을 읽다 보면 묘하게 '과학적'인 사랑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정서 중심적 부부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저자 '수잔 존슨'은 일시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지속적인 사랑의 본질을 깨우쳐주기 위해 이 책을 펴냈는데, 흥미로운 점은 '팀 보울비'의 애착을 중심으로 자신이 만나본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 '패턴'을 분석하여 말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애착 이론'은 아동기와 관련한 성격 발달 이론인데, 이것은 성인이 돼서도 여전히 유효하며 사랑에 대해 마주하는 우리의 모습도 이 '애착 이론'을 중심으로 패턴이 나뉜다는 것이다. 이는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지만, 사랑을 필요로 하는 모습들은 대부분이 공통적이다. 첫 번째,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정서, 신체적으로 유대감을 원하며, 둘째, 불확실하고 흥분된 상태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다가가려 하며, 세 번째, 사랑하는 사람이 멀어질 때 그리움을 느끼고 심한 흥분 상태에 빠지며, 네 번째, 사랑하는 사람이 정서적으로 자신을 지지해주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언제나 시험대에 오른다. 우리 모두는 질병이나 외도 같은 우연적이거나 의도적인 잔인함이 주는 시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바라고 원했던 일들조차 우리의 사랑에 엄청난 도전을 준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저자에 의하면, 사랑은 생존전략이며, 타인과의 유대 또한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시 이 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신선한 '행복론'이라고 느꼈던 『행복의 기원』(서은국 저)이라는 책에선, "사랑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도 행복은 일종의 '생존 전략'이라고 말했다.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붙잡는다."라는 말은 즉, 사랑도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정서를 풀어놓을 대상을 찾는 것이 아닐까? 주변에 짝이 없으면 답답해하고 항상 외롭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결국엔 어떤 이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위안과 생존을 위해서가 아닐까? 엄연히 그렇다고 말할 수 없더라도, 인간의 자연스러운 패턴일지도.

  원래 '사랑'만큼은 일반화가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개성도, 출신도 다른 사람이 모여, 맞춰가면서 가지각색의 모습을 보이는 '사랑'을 어찌 몇 가지로 규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사랑에 가려진 우리의 마음 혹은 관계를 끝까지 이어나가게 하는 방법만큼은 비슷한 경계에 서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실시한 다양한 실험들과 통계들로 사랑의 형태를 확립한 『우리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론적인 강의서 느낌이라 읽기 쉽지는 않으나 사랑에 관련하여 고민해본 사람들에게, 혹은 시시각각 사랑에 마주 서야 할 우리에게 '공감의 기초가 되는 정서에 집중하라'라는 조언을 건네고 있다.

 

 

 

Written by. 리니

인문학/ 관계심리학/ 사랑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서평입니다.

 

사랑은 수천 가지 방식으로 시작될 수 있다. 한 번의 눈길에도, 긴 눈 맞춤에도, 속삭임과 웃음에도, 칭찬과 심지어 욕이 난무하는 순간에도. 사랑은 포옹과 키스, 또는 불만과 다툼 속에서도 계속된다. 또한 침묵과 슬픔, 좌절과 분노, 눈물 그리고 가끔은 기쁨과 웃음으로 끝나기도 한다. 사랑은 몇 시간 또는 일주일 만에 끝이 날 수도 있고, 죽을 때까지 간혹 죽음 이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을 찾아 헤매기도 하지만 사랑이 우리를 찾아오기도 한다. 사랑은 우리에게 구원이 되기도, 멸망이 되기도 한다. 사랑의 존재는 우리를 강렬하게 하고, 사랑의 부재는 우리를 황폐하게 한다. (21p)

과거 소중했던 사람이 지금 이방인이나 적군처럼 멀게 느껴져서 화가 날대, 애착의 작동 원리를 알면 고립감에 빠지지 않는다. 이때 이별로 인한 불안과 상처는 성인 역시 어린아이와 동일하게 경험하는데, 거절당하고 버림받았을 경우 화를 내면서 쫓아다니고 매달리면 오히려 절망감에 빠져든다. 보울비는 사랑의 관계에서 "존재와 부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은 육체적으로는 존재할 수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부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정적으로 결합하려면 유아와 성인 모두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접근과 반응이 필요하다. 연인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나 여기 당신 곁에 있어, 나 보이지? 내가 당신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 알지?"

"근데 나는 왜 이렇게 외롭지?" (71p)

열정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한가? 그럴 수 있다. 안정적으로 결합을 유지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감각적이고 회피적인 성만을 추구하게 되면, 열정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성적 감각과 행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것에 집중하려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자극을 찾아야 한다. 이 경우 부부가 서로 익숙해지면 성적 흥분이 사라진다. 하지만 애착적으로 안정된 부부일수록 성적 황홀감을 지속적으로 경험한다는 다양한 연구와 조사 결과가 있다. 이런 황홀감은 콩깍지가 씐 상태의 격한 열정이 아니라 서로 깊이 알아가면서 느끼는 유쾌한 흥분을 의미한다. (167p)

인생은 전이와 변화의 연속이다. 어느 날 당신은 작년에는 그저 친구였던 이 남자오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결혼 7주년 기념일에 남편과 싸우고 있는 당신을 발견한다. 어느 날 당신은 임신했다는 소식을 가지고 집에 달려온다. 그리고 갑자기 당신의 아기는 청소년이 되어 있고, 다음 날 결혼한다. 어느날 당신과 당신의 남편은 은퇴자들이 사는 아파트로 이사하고 둘만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음 날 당신은 남편이 어린 손녀를 안고 있는 것을 본다. 어느 날 당신은 신혼 때 싸웠던 것들을 다 기억해내고, 또 양말을 마루에 던져 놓고, 바보 같은 언쟁을 하던 이 사람과 여전히 함께하고 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놀란다.

우리가 이 모든 변화의 과정에서 가장 바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꼬옥 안아주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꼬옥 안아주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의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면서 과거에 결함했던 방식은 시험대에 오르고, 우리의 유대는 새로워지길 요구받는다. 이것이 바로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과정이고, 인생의 중요한 단게로 넘어갈 때마다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2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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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옛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 아우름 3
신동흔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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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신동흔 / 샘터

옛날 이야기 속의 참된 교훈, 나 자신으로 살기

 

 

 

 

 무조건 유쾌하고 즐거운 책들보다는 파란만장하게 고난도 겪는 책들이 끌리고, 조언을 주는 방법이라면 위로보다 채찍으로 가르침을 주는 책들을 좋아한다. 편안함에 안주해있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이다. 그나마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 문장으로 맞는 채찍은 즐겁고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책도 그랬다. 작가의 이름부터가 생소했지만, 여태껏 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잔뜩 숨겨져 있었고,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나의 마음을 조금 흔들어놓았다.

 

  다음 세대를 위한 '아우름' 시리즈의 세번째 책은 옛날 이야기에서 찾는 삶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옛이야기는 참 재밌지 않은가. 어린이 동화책에서 나오는 것들도,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그래서 나는 더 자라서도 전래동화를 읽어보고 싶어 기웃기웃했던 것 같다. 이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야기의 교훈인 '권선징악'만을 생각했을 뿐, 그런 이야기들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일단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고, 단지 재밌게 보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랬으니 이 책에서 작가가 엮어놓은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을지도 모르겠다. 난쟁이 집을 만나 정말 천진하게도 침대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는 '백설공주' 이야기에, 작은 몸을 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까 두렵기만 하겠지만, 아주 스펙타클한 인생을 사는 '주먹이' 이야기에, 귀신이 되어 원수를 갚는 '장화홍련' 이야기에 이렇듯 큰 뜻이 숨어 있었는지 누가 알았겠는가!

 

  작가가 친절하게 구연해주는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이것을 다 말로 전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 유물>이라는 이야기를 하나만 뽑아내 본다. 언뜻 보면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세 개의 유산 - 지팡이, 맷돌, 장구 - 을 가지고 떠났던 삼 형제는 그 물건 하나만 가지고 각자 성공을 업은 채 돌아온다. 첫째는 지팡이로 여우를 때려잡아 사례금을 받고, 둘째는 맷돌을 갈아 도깨비들을 달아나게 하고, 막내는 장구를 쳐 호랑이를 춤추게 한다. 작가는 이들이 가지고 떠난 유산을 비유적으로 풀어내는데, 지팡이는 '여행'으로, 맷돌은 '노동'으로, 장구는 '예술'을 가리킨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교훈을 주는 이 이야기는 작가를 통해 멋진 말로 변신한다. "나는 왜 이렇게 가진 게 없느냐고 앉아서 불평하고 한탄하는 대신 아무거라도 가지고서 훌쩍 길을 나서면 성공할 수 있다"고.

 

  수많은 사람을 통해 가다듬어진 옛날 이야기는 이렇듯 자연스럽게 의미를 전달하면서 교훈을 주고 있다. 작가가 매혹된 옛날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삶의 진실을 오롯이 담아낸 이야기"이며, 이것은 "기술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밑바닥으로부터 흘러나와 응축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 있다면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세상에 흐르는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자신이 만들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나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 <아우름> 시리즈의 세번째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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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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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심봉사는 그 상황에서 주저앉지 않고 일어섭니다. 우는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가 더듬더듬 마을을 다니며 아낙들에게 동냥젖을 얻어서 어린 딸을 키우지요. 아이가 배불러 웃으면 좋아라 어르면서 얼른 자라 엄마처럼 크라고 덕담도 많이 해줍니다. 그렇게 일 년 삼백 예순 날을 한결같이 움직여서 딸을 예쁘고 착한 아이로 보란 듯이 키워낸 아버지가 심봉사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그야말로 `장한 아버지 상`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봉사의 일은 하나의 극적인 변화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 안에 머물러서 보살핌만 받는 무능한 존재에서 한 생명을 키우는 존재로 탈바꿈한 일이었으니까 말이에요. 그런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느냐 하면 심봉사가 아이를 안고서 길로 나섰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 같았지만, 무작정 밖으로 나서고 나니까 마침내 길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바깥세상으로 나서는 일은 아이들한테만이 아니라 모두한테 다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78p)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꼭 그러합니다. 품 안의 자식이란 뜰 안의 화초일 뿐, 그를 통해 자기 삶이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자식은 부모와 다른 세계로 나아가 그들 자신의 길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삶을 실현하는 일일 뿐 아니라, 그들을 세상에 낸 부모의 존재를 확장하고 실현시키는 일이 됩니다. 요컨대 길 떠난 자신의 비극적 죽음을 전하는 이 이야기는 `그러므로 떠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더라도 떠나는 것이 답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입니다. (88p)

중요한 건 세상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세상이 크고 무섭다고 숨어서 피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마치 주먹이가 아버지 호주머니 속에 갇혀 잇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편하고 안전할지 모르지만, 지루하고 따분한 일이지요. 또 작은 주머니 속이니까 꽤나 어둡고 답답할 거예요. 맞습니다. 주머니 속이라고 꼭 안전한 것도 아니에요. 그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보면 오히려 큰 병이 날지도 몰라요. 누가 주머니를 짓누르거나 꽁꽁 봉하면 그 속에서 찌그러지거나 질식할 수도 있지요. 기억나나요? `집`이 지니는 빛과 그림자, 저 주머니가 꼭 집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99p)

길 떠남과 돌아옴은, 또는 떠남과 머무름은 서로 뗄 수 없는 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떠남만 있고 돌아옴이나 머무름이 없다면 그건 무척 스산하고 고단한 일이겠지요. 떠날 때는 떠나고 돌아올 때는 돌아오는 것이, 머물 때는 머무는 것이 인생사의 순리라 할 수 있습니다. 낮에는 길을 떠나도 밤에는 머물러 쉬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움직이지 않고 내내 머무르는 게 함정이 되는 것처럼, 뿌리 뽑힌 상태로 끝없이 떠도는 것도 하나의 함정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1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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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 문학에서 찾은 사랑해야 하는 이유 아우름 2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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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장영희 / 샘터

 그대들이 몸담고 있는 일상을 열렬히 사랑하라

 

 

 

  "어떻게 보면 아주 큰 의미에서 모든 문학 작품은 다 연애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문학의 궁극적인 주제는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이니까요. 삶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99p)

 

 이 책을 읽고선, 수많은 문학작품이 결국엔 '사랑'으로 연결된다는 말에 살짝이 놀랐달까요. 사랑이면 이성 간의 사랑, 연애 소설만이 해당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우리가 읽는 문학은 거의 사랑을 기본 소재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의 모습에 일종의 고통과 갈등의 장면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고, 문학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겠지요. 우리 삶에서도 '사랑'은 정말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포함하여 그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로서의 사랑은 많은 문학작품들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부르고,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것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문학은,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요.

 

  故 장영희 교수님의 에세이,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에는 특히나 사랑 시들이 많습니다. 영문학자이기도 했던 작가님이니만큼 영시의 원문을 직접 싣기도 했는데, 직접 번역하신 그 시들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요.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주세요." 하는 브라우닝의 시, "한 번도 사랑해 본 적 없는 것보다 사랑해 보고 잃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을" 하는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는 오직 '사랑'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제 마음도 강하게 울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동화 속의 사랑, 고전 속의 사랑,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불혹의 나이를 넘길 즈음 썼다는 글 한 귀퉁이에는 '삶을 관조하는 구경꾼으로 자리바꿈했다'라며 조금의 아쉬움을 내비치고 있는데, 그 아쉬움 속에는 뜨겁게 사랑했던 젊은 시절에 대한 묘한 그리움이 스며들어 있기도 하지요.

 

  지금까지 읽은 수많은 책 중에서 어떤 책에선 뭘 배웠고, 또 어떤 책에선 뭘 배웠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책 속의 한 줄 한 줄이 인생에 무언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학이 나의 삶과 연관되고, 하나의 문학작품에서 또 다른 문학작품을 찾아가고, 그 작품을 읽은 많은 사람과 연결되었다는 것을 행복해하지만, 확실히 무엇을 배웠다고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책 속 한 구절을 빌려 말해보자면, 지금 몸담고 있는 일상을 조금이나마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작가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여,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짝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저 푸른 나무 저 높은 하늘을 사랑하고, 그대들이 몸담고 있는 일상을 열렬히 사랑하라. 사랑에 익숙지 않은 옹색한 마음이나 사랑에 '통달'한 게으른 마음들을 마음껏 비웃고 동정하며 열심히 사랑하라. 눈앞에 보이는 보상에 연연하여, 남의 눈에 들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사랑의 거지가 되지 말라." (155p)

 사랑했던 날들, 무언가에 헌신했던 날들, 미친 듯이 갈구했던 날들, 비록 고통이 있더라도 온몸을 내던져 사랑을, 삶을, 일상을 보냈던 날들. 지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저도, 무덤덤했던 지금까지의 삶을 반성하고, 조금 더 열렬히 많은 것을 사랑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

 

-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 <아우름> 시리즈의 두번째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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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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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가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하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내 홈페이지 대문에 걸려 있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입니다. 시인의 말처럼 손톱만큼이라도 내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겠지요. (47p)

연구실의 쪽창 밖으로 보이는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저녁놀이 눈부십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음을 5분 남겨 두고 1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쓰고자 했다는 자연도 이제는 서서히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 삶도 중간을 넘어 내리막길을 가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눈물의 열정으로 대지를 사랑하지 못하고 내 마음의 싸움터에는 치열한 싸움만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요? 앞으로 나는 몇번이나 더 이 아름다운 저녁놀을 볼 수 있을까요? (115p)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는 세상은 이전과 다릅니다.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들이 이렇게 키가 작았었나....... 여름날 밤하늘에 이토록 별이 많았었나....... 어쩌면 사랑은 시력을 찾는 일인지 모릅니다." <연애 소설> 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즉 사랑과 꿈을 잃어버린 세상은 아름다움을 보는 시력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답던 장미가 괴기스럽게 보이고, 찬란하던 햇빛이 생경하고, 하늘조차 낯설어 보이는 이상한 세상입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를 사랑한 개츠비의 종말은 그래서 더욱 비참하고 슬픕니다. (119p)

따지고 보면 누구의 삶이든 그 나름대로 다 극적이고 파란만장합니다. 누가 이야기하는가,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는가, 그리고 왜 이야기하는가에 따라 아주 평범한 사람의 일생도, 겉으로 보기에 지리멸렬한 삶도 용감무쌍한 무용담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싸움을 용감하게 치러 내는 영웅들이니까요. 삶의 진실을 아버지의 입을 통해 단도직입적으로 듣고자 하는 아들, 하지만 끝내 농담으로 일관하는 아버지. 죽음의 순간에도 아버지는 유머와 위트가 넘칩니다. 이는 어쩌면 아버지가 삶이라는 불가해한 것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삶이란 재미있고 가볍기보다는 심각하고 무거운 것이지만,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마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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