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향연」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라는 삶의 방식을 탐구함에 있어, '완전한 것, 이상적인 것에로 상승하려는 인간 영혼의 기본적 욕구'를 사랑이라 규정하고, 그런 사랑이 인간의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며 그런 인식을 구체적 행위로 옮기려는 끊임없는 노력의 원동력이 됨을 밝힌 책이다.
저작 연대를 B.C. 385년 이후일 것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이 추측하는「향연」은 플라톤의 35편의 대화록 중,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영향에서 서서히 벗어나 자신의 독특한 사상을 펼치기 시작하는 원숙기에 남긴 작품이다. 플라톤은 이 작품에서, 그의 형이상학적 이론인 이데아론에 대해 새로운 해석과 진리인식, 현실개혁 정신의 근원이 되는 사랑의 철학적 의미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견해를 피력한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명제를 인식하고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던 중세 초기,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죽음은 점차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심지어 해부학의 유행을 부르기도 했다.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자신의 죽음조차 사랑하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 바라보는 이들이 많았다. 이러한 현상들에 비해 현대의 죽음은 (비교적) 아름답던 죽음이 사라지고, 끔찍하고 가까이 하기에 어려운 것으로 변모돼 갔다. 이렇듯 죽음은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띠고 인간을 찾아왔다.
이 책은『사생활의 역사』의 저자가 탐구한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설명하고 있는데, 문학, 종교적 전례, 유언장, 묘비명, 도상 등 개인적이고 무의식적인 자료들을 통해 보다 생생한 죽음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죽음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변화는 근대성과 현대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담담히 받아들이던 시대에 우리들은 내일의 삶을 걱정하기 보다는 순간 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데 더욱 주력하였다. 그것은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앞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겠다는 사고의 표현이기도 하다. 반면 현대성은 세계를 합리적이고 의지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사고를 가르친다. 이것은 죽음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당연시되던 죽음을, 그것이 닥쳐오는 최후의 순간까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처럼 답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책에 실려 있는 많은 죽음들과 그것을 대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삶을 대하는 자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로 ‘건강’이 떠올랐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도 끝없이 장수의 비결을 찾고,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 스포츠 센터나 공원 등은 운동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소위 ‘웰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시대를 앞서가는 선도자처럼 되었다. 이렇게 건강과 장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애써 잊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신문이나 뉴스 보도 등을 통해 늘 죽음의 소식을 접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죽음의 장면은 넘쳐난다. 이렇듯 그 어느 시대보다도 죽음을 일상으로 접하는 오늘날이지만 삶에서 죽음을 가장 멀리 떼어놓고 있는 것이 또한 오늘날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보여주는 죽음은 죽음에서 현실성을 제거하고, 그리하여 TV나 신문에서 전달되는 죽음도 마치 픽션처럼 느끼게 된다. 수많은 죽음 속에서도 우리는 실제로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경제난과 실업 등으로 부쩍 자살 소식이 많은 요즘이지만, 자살이든 타살이든 혹은 사고사이든 죽음은 언제나 끔찍한 어떤 것이다. 죽음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가까운 이들과의 이별이며, 생의 종말이다. 예전에는 제 수명을 다한 사람의 죽음을 호상(好喪)이라 부르며 좋은 일로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좀더 오래’를 외치는 오늘날 더 이상 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때라도 죽음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이런 죽음의 부정적인 이미지들로 인해 우리는 죽음을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죽음을 애써 잊는다.
죽음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 혹은 죽어가는 사람도 우리 사회의 바깥으로 내몰려지기는 마찬가지이다. 조상을 잘 모시는 것을 가문의 중대한 업으로 생각해온 우리이지만 그 조상의 묘지는 먼 시골 벽지에 (물론 명당을 찾아서라는 좋은 명분이 있기는 하지만) 따로 떨어져 있다. 명절만 되면 성묘객들의 발길이 길게 늘어서 지극한 마음을 보이지만, 이것은 그만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죽은 이들은 우리의 생활이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져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중세의 유럽의 경우 묘지는 사람들이 일상 생활을 이어나가는 공공장소로서 늘 그들의 곁에 있었고, 고인의 묘는 성당 안에서 그곳을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도록 방치되었다. 죽어가는 사람은 오늘날처럼 사방이 막힌 병원 침대에서 쓸쓸히 임종을 맞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친척들, 친구들, 심지어 임종을 맞는 순간 그 집 앞을 지나가는 낯선 이까지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이쯤 되면 현대인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일종의 결벽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죽음에도 역사가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금기시하는 이러한 태도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을 읽으며 당혹감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1,120페이지에 이르는 이 방대한 저작에서 저자는 죽음에도 역사가 있어 매 시대마다 사람들은 죽음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또한 다르게 죽어갔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출간과 함께 ‘아리에스 쇼크’를 불러일으킨 <아동의 탄생>(새물결, 2003), 조르주 뒤비와 함께 편집한 5권의 <사생활의 역사>(새물결, 2002)를 통해 익히 알려진 필립 아리에스는 공적 영역의 그늘에 가려졌던 사생활이나, 근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발명된 아동 등 지금까지 역사에서 다루어오지 않았던 주제에 천착하여 인간의 삶과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시켰다. 역사 연구의 주제뿐 아니라 방법에서도 그는 개인 서신, 가정 일지, 판화나 그림 같은 도상 등 그 동안 역사 연구 대상에서 배제되어온 사적이거나 무의식적인 기록들을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 역사학의 자료를 확대시켰다.
<죽음 앞의 인간> 역시 기존에 역사 서술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을뿐더러 모두가 두려워하고 금기시해온 ‘죽음’이라는 화두를 주제로 삼은 아리에스의 역작으로, 문학, 종교적 전례, 유언장, 묘비명, 도상 등 역시 개인적이고 무의식적인 자료들을 통해 중세 초기에서부터 현대까지 인간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고찰한다. 아리에스에 따르면 서구 기독교 문명에서 죽음은 다섯 가지로 그 모습을 바꿔가며 변천해왔다. 그것은 중세 초기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명제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죽음, 중세가 끝나갈 무렵 개인주의와 함께 찾아온 ‘자신의 죽음’, 바로크 시대 죽음을 거부하면서도 시체의 관능성에 빠져들던 ‘먼 죽음과 가까운 죽음’, 자신의 죽음조차 사랑하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 바라보던 낭만주의 시대 ‘타인의 죽음’, 전 시대에 그토록 아름답던 죽음이 갑작스레 끔찍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역전된’ 오늘날의 죽음 등이다. 이렇게 죽음에도 역사가 있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 역시 ―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 아니라 ― 이 다섯 가지의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서 변천 가능한 패러다임일 뿐임을 보여준다. 

 노발리스는 18세기말 독일의 초기 낭만주의 대표적 시인이요 작가였다.
그는 불행히도 29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1795년 대학을 마친 후 23세에 '조피'라는 소녀를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져서 약혼까지 했지만, 2년후 그녀가 돌연 병사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그녀의 무덤 앞에 엎드려 아침부터 밤까지, 때론 밤을 새워가며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현실의 절망을 체험해야만 했다.
그녀에 대한 이러한 절절한 추모의 정을 이 책에 실린 <밤의 찬가>에서 그는 장시로 노래하고 있다.
노발리스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애독하곤 했든데, 이 작품이 시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음에 불만을 갖고 <푸른 꽃>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진정한 시적 세계는 동화 속에 있으며 주인공을 통해 푸른 꽃을 찾으며 편력하여 갖가지 체험을 쌓아 점차 마술적인 동화의 세계로 들어간다.

 서구 현대시의 시조 보들레르, 그리고 『악의 꽃』
낭만주의 정신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낭만주의의 결점을 뛰어넘었던,
이후 오게 될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현대시에 길을 터놓은 것으로 평가되는 보들레르 유일의 시집
보들레르는 많은 시집을 남긴 시인이 아니다. 소산문 시집 『파리의 우울』을 제외하고는 단 한 권의 시집, 『악의 꽃』을 남겼을 뿐이다. 그는 단 한 권의 시집 속에 그의 삶의 경험의 정수를 쏟아놓았고, 이 시집으로 후에 ‘현대시의 시조’로 불리게 된다. 『악의 꽃』은 삶의 어느 특정한 시기에 씌어진 것도, 짧은 시간의 산물도 아니다. 『악의 꽃』의 역사는 보들레르의 삶의 역사와 겹쳐진다. 오랜 시간에 걸쳐 끈질긴 인내와 정성으로 갈고 닦여졌다는 점에서나, 한 인간의 삶의 역사를 동반했다는 점에서도 매우 깊은 의미를 가진다. 문학 활동이 지속되었던 근 이십오 년 내내 그는 이 한 권의 시집에 집착하며, 그 완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1857년 보들레르가 『악의 꽃』을 발표했을 때 그 시대의 누구도 이 시집의 놀라운 독창성을 주목하지 못했다. 이 책에 담긴 기이하고 대담한 주제들, 빅토르 위고가 말한 ‘새로운 떨림’과도 같은 신선하고 파격적인 감수성,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영혼의 전율, 그리고 매혹적인 음악성……
그 시대는 이 모든 감동을 같이할 감각을 갖추지 못했다. 시대적 감수성이라는 점에서 『악의 꽃』의 시인은 한 세기를 앞질러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보들레르는 실로 오랜 세월 ‘저주받은 시인’으로서의 불행을 벗어나지 못했고, 『악의 꽃』은 열광적인 소수의 독자들에게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우여곡절을 거친 후 『악의 꽃』은 ‘소수의 행복한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은 채 독자층을 한껏 넓혀갔고, 후세는 이 책을 ‘현대시의 복음서’라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악의 꽃』은 연금술사가 용광로에 집어넣은 수많은 재료로부터 귀중한 금속을 추출해낸 것처럼,
그가 문학과 예술의 세계로부터 얻은 풍부한 체험으로부터 정수만을 뽑아낸 것이다.

 『스트레스 받는 사람을 위한 괴테』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이 책은 독일 인젤 출판사에서 같은 제목으로 출판된 것을 번역한 것이다. 괴테를 어려워하는 독일인을 위해 그의 방대한 작품 세계 가운데서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러나 작품성도 떨어지지 않는 것들을 모아 놓은 이 작은 책은 한국인들에게도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권말에 붙어있는 작품 해설은 친절하게 작품의 출전을 알려주고, 간단한 설명도 해준다. 사소한 것 같아도 독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이다.
<삶 속에 행복하게 머물러라!>라는 제목 아래 추려놓은 20편 가량의 시들은 괴테의 방대한 시세계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초기시에서 후기시까지 두루 아우르려는 편집자의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머리와 가슴이 혼란할 때면>이란 제목과 <성격이 아니라 성품을 가꾸십시오>라는 제목 아래 선별한 잠언들은 대시인의 노년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는 촌철살인의 구절들이다. 잠언까지가 책 전체의 절반을 이루고 나머지 부분은 괴테의 작품 여기저기서 뽑은 몇 편의 단편과 『파우스트』의 <천상의 서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   축복받은 동경

 그저 남녀간의 사랑이야기인 트리스탄과 이즈(이졸데)가 프랑스 중세문학의 고전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속의 많은 의미에 대해 후세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정리하고 분석해 주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들은 공부의 수고를 많이 덜은 대신 쉽게 감동의 열매만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죠제프 베디에는 프랑스의 언어학자이자 문학사가로서 이야기를 통해 의미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인습타파를 위한 투쟁이라는 해설은 특히 고전에 적용하기엔 너무 진부하지만 근친상간적 정염이라는 소재로 인해 약점을 많이 덜었다.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없어야 할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사랑의 미약'이라는 것을 내세워 필연성을 부여했다는 것은 참신할 정도이다.

바그너의 오페라로 이름을 얻었지만 시작이 그러했을 뿐, 트리스탄과 이즈(이졸데)라는 자체의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읽혀질 책.


■ 작품의 기원과 특징

『트리스탄과 이즈』는 중세의 장중하고도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후세의 시인이나 작가의 흥미를 불러일으켜 극과 이야기 등으로 널리 쓰였다. 트리스탄과 이즈의 사랑 이야기는 간절하되 고요하며, 뜨겁되 악착스럽지 않은, 한 편의 긴 노래로, 기사도 소설이나 무훈 서사시, 풍자 소설, 성자전 등이 거센 주류를 이루던 12세기 중엽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켈트인의 전설을 소재로 하여 12세기 중엽에 프랑스에서 이야기로 엮어졌는데, 그 사랑과 죽음의 강렬함과 아름다움 때문에 거의 전(全)유럽에 보급되어 서구 연애 문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또 처음 노래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이야기 속에 아서 왕이 등장하고, 또 그와 마크 왕이 우호적인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묘사된 점을 볼 때, 남부 스코틀랜드의 여러 켈트 부족을 규합하여, 앵글로색슨 족에게 저항하였다는 아서 왕의 치세기(대략 4-5세기) 이야기로 추측될 뿐이다.

이 책은 프랑스의 언어학자이자 문학사가(文學史家)로 유명한 죠제프 베디에가 토마스, 베룰, 아일하르트 등 12세기 음유시인들이 노래한 트리스탄과 이즈의 사랑 이야기 중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편린들을 모아 현대 프랑스어로 재구성했는데, 중세시인들의 정감을 가장 생생하게 되살려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작품의 줄거리

로누아의 왕자 트리스탄은 태어나기 이전에 아버지를 잃었고, 이에 상심한 어머니는 그를 낳고 얼마 안 있어 죽었다. 코온월의 왕인 백부 마크 밑에서 지용(智勇)을 겸비한 젊은 기사로 성장한 그는 아일랜드의 거인 모르홀트를 쓰러뜨리고 나라를 구했다. 백부의 아내가 될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 아일랜드에 가서 용을 퇴치하고 왕녀 이즈를 데리고 개선하는 도중, 배 위에서 시녀의 실수로 마크와 이즈가 마셔야 할 '사랑의 음료'를 마심으로써 트리스탄과 이즈는 불꽃 같은 사랑에 빠진다. 이즈는 마크왕의 왕비가 되었으나 연인인 트리스탄과 남몰래 계속 만나게 된다.

어느 날 그들의 사랑이 마크왕에게 발각된 후 두 사람은 처형을 피하여 깊은 숲속으로 도망쳤으나 3년 뒤에 왕과 화해를 하고 이즈는 궁정으로 돌아오고 트리스탄은 추방된다. 트리스탄은 이즈를 사모하여 브르따뉴에서 이즈와 같은 이름의 아내(흰손의 이즈)를 얻었으나, 연인을 잊을 수 없어 병상에 눕게 되며, 연인을 데리고 올 사자(使者)를 보내놓고 그녀의 도착을 기다리면서 마침내 숨을 거둔다. 그가 죽은 직후에 이즈는 도착하지만 그녀도 슬퍼한 나머지 곁에서 죽고 만다.

■ 오페라, 소설…… 다른 장르로 되살아나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트리스탄이 이즈를 데리고 오도록 보내는 과정에서 이즈를 데리고 오는 데 성공하면 흰 돛을 달라 하고, 그렇지 못하면 검은 돛을 달라고 한다. 하지만, 마침내 이즈를 태운 흰 돛의 배가 들어오는데, 브르따뉴 공주인 하얀 손의 이즈는 절망적으로 금발의 이즈를 기다리는 트리스탄에게 배에 검은 돛이 달려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 순간 트리스탄은 절명하고 트리스탄의 시신을 마주한 이즈는 그의 몸에 자신의 몸을 눕히고 그와 입을 맞춘 뒤 조용히 숨을 거둔다. 이 장면은 가장 비극적인 사랑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유명한 가수인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도 이 장면을 두고 <검은 돛배>라는 제목의 애절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바그너의 오페라로 잘 알려져 있다. 중세의 시인 스트라스부르크가 노래한 서사시를 소재로 바그너가 직접 대본을 쓴 이 작품은 오로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사랑이 그려나가는 내면의 자취를 음악으로 진지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고뇌가 전편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 작품에 나타나는 문학적 상징

"아름다운 여인이여, 우리의 운명 역시 그러하니, 나 없이 그대 없고, 그대 없이 나 또한 없도다!", "이즈 나의 연인, 이즈 나의 사랑, 그대 속에 나의 죽음 있고, 그대 속에 나의 삶 있나니!" 이상 두 구절이 집약하고 있는 트리스탄과 이즈의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전설에는. 각박한 나무람이나 영악스러운 풍자가 없다. 오직 다정함과 섬세함, 자애로움과 슬픔, 그리움 등이 이야기의 전편에 끊임없이 감돌며, 슬픔과 아쉬움의 절정에서 표출되는 죽음 저 너머를 향한 몽상이 펼쳐질 뿐이다.

이들의 전설은 정염과 인습 간의 투쟁에서 정염이 승리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승리는 죽음을 수반하며, 오직 죽음에 의해서만 확인된다. 또한 인습 혹은 세속과의 불가피한 갈등관계에 처하여 고통을 감내해야 하니, 두 연인의 몽상은 필연적으로 미지의 세계를 지향한다.

아름다운 연인은 서로의 품에 안겨 영원히 늙지 않고, 어떠한 적도 그 성벽을 깨뜨리지 못하는 곳, 그들이 꿈꾸는 이상향은 곧 죽음의 나라이다. 트리스탄과 이즈의 전설은 삶과 죽음보다도 강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데, 이는 동시에 죽음의 노래이다. 또한 그 죽음은, 다정다감하고 섬세한 심정에서 영원한 숙명적 사랑의 불가피한 귀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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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 지킴이 오동환 씨의 우리말 어휘에 관한 7번째 책 <오동환의 우리말 생각>은 우리말의 어디가 틀렸다, 무엇이 맞다 등 단순하고도 삭막한 논거와 논란 차원을 넘어 언어학자 안목의 풍부한 설명과 예거, 예화를 곁들여 관심과 흥미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평소 이렇게 말하는 전직 언론인이 있다.
“모든 법은 지켜야 하고 따라야 한다. 설사 악법(惡法)이라고 해도 그렇다. 하물며 하늘 아래 가장 고상하고도 선량한 우리말 ‘어법’이며 ‘문법’이랴. 따라서 ‘40년 동안 학생들을 가리켜왔다(가르치진 않고)’고 말하는 대학 총장은 우리말 법정에 세워져야 마땅하고 지당하다. 그래서 ‘우리말 어법 문란죄’와 ‘가르치진 않고 손가락으로 해와 달만 가리켜온 직무유기 죄’를 물어 땅땅땅… 적어도 40년 징역형은 선고해야 타당하다.
또한 태풍 매미의 홍수로 온통 물난리가 난 지역을 가리켜 ‘불에 타 재만 남았다’(초토화됐다)고 말하는, 그야말로 물과 불, 물불도 가리지 못하는 TV뉴스 앵커에게도 우리말 어법 문란 죄 내지 심각한 우리말 오도 죄를 걸어 최소한 10년 징역형은 때려야 한다.”
그는 95년 출판, 베스트셀러가 된 <개나라 말 닭나라 국어>를 비롯해 <한국인은 한국말을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우리말 죽이기 우리말 살리기> 등 우리말 관련 서적을, 다시 말해 우리말을 바로 쓰자, 아끼고 사랑하자, 찬양하자는 뜻의 우리말 지키기, 우리말 살리기 책만도 7권이나 지어낸 전직 언론인 오동환 씨(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시인)이다.
이번에 낸 7번째 우리말 관련 저술인 <오동환의 우리말 생각> 또한 한 마디도, 두 마디도 우리말을 바로 알고 바로 쓰고 사랑하자는 취지에서다. 저자는 이번의 책 서문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지구인 연합군과 외계인이 전쟁을 하다가 맞닥뜨린다면 영어로 꾸짖고 영어로 싸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영어는 지구인의 대표적인 언어다. 그런 만큼 영어를 안 할 수는 없고 해도 썩 잘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영어는 세계 최대 언어이지 결코 세계 최고 언어는 될 수 없다.
세계 최고의 언어란 두 말 할 것도 없이 각국의, 각자의 모국어일 수밖에 없다.
영어가 언어제국주의의 ‘황제어(皇帝語)’라면 각국의 언어는 왕국언어, 제후국 언어로나마 변방에 존재할 것이고 그 민족이 지구상에 잔존하는 한 영원할 것이다.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를 ‘지저스 크라이스트’로 영어 발음할 수는 없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팝 잔 폴 투(Pope John Paul Ⅱ'로 영어 발음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영어는 영어, 폴란드 말은 어디까지나 언제까지나 폴란드 말인 것이다. 가장 소중하고도 자랑할 만한 우리 대한민국 언어, 우리말도 마찬가지다. 어휘 하나, 말 한 마디도 올바로 알아야 하고 올바로 써야 한다. 특히 영향력이 큰 언론인과 문필가들이 모범이 돼야 하고 시범을 해야 한다.”
특히 이번의 <오동환의 우리말 생각>은 우리말의 어디가 틀렸다, 무엇이 맞다 등 단순하고도 삭막한 우리말 논거와 논란 차원을 넘어 언어학자 안목의 풍부한 보충설명과 예거(例擧), 예화(例話)를 곁들여 관심과 흥미의 깊이를 더했고 언어의 문화사적, 철학적 해석까지 쏟아 부어 도대체 어휘 하나, 말 한 마디와 관련해 얼마나 많은 지식과 학문의 깊이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가의 바로미터, 그러한 모범을 보인 하나의 대표적인 예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  학부모는 모두 '자웅동체' '남녀추니'들인가?

 1967년 쌍둥이로 태어난 한 사내아기가 포경수술 중에 페니스를 잃는 사고를 당한다. 당황한 부모는 고민 중에 존스 홉킨스 병원의 성 정체성과 성전환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아이의 성을 바꾸고, 이렇게 길러진 쌍둥이 케이스는 남성이나 여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어떤 성으로 길러지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잇다는 살아 있는 증거로 지난 30년 동안 현대 의학과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에 의해 반복 인용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여자 호르몬과 여성의 기대역할을 강요받으며 자랐던 쌍둥이는 14세가 되던 해, 자신의 강요된 성 정체성에 저항했고 마침내 다시 남자로 살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되찾기까지의 한 남자의 생존기를 그린 감동적인 휴먼 다큐멘터리로, 존 콜라핀토라는 기자에 의해 증언 기록 되었다. 책에 등장하는 대화는 모두 상담기록이나 혹은 당사자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으로 소설적 분위기를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대화나 장면은 하나도 없다고.인간의 성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성은 타고나는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가? 이러한 성의 천성 결정론과 환경 결정론에 관한 문제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학자들의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그런데 이런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의학과 사회학계에서 성 환경 결정론을 증명하는 사례로 오랫동안 인용되어온 ‘쌍둥이케이스’다.
이 케이스는 존스 홉킨스 병원의 성 정체성 및 성전환 전문가인 존 머니 박사가 제시한 것으로, 유아기 때 생식기를 잃은 쌍둥이 사내아이의 성을 여자로 바꾸고 정신과 치료와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였더니 아무 문제없이 여자로 자라났다는 것이다. 이 사례를 근거로 성의 환경 결정론이 득세하게 되었으며, 이후로 이 케이스는 성 정체성 결정에 관한 모든 논란을 불식시키는 유일무이한 케이스로 인정받아왔다.
그렇다면 정말 환경이 성을 결정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케이스에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숨겨진 사실들이 있음을 폭로한다. 그것은 한 인간의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인 동시에, 의학계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감춰지고 왜곡돼 왔던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1967년 캐나다 위니페그에서 일란성 쌍둥이의 형인 브루스는 생후 8개월이 되던 어느 날, 포경수술 중에 의료사고로 페니스를 잃는다. 브루스의 부모, 론과 재닛은 불완전한 생식기를 가지고 태어난 신생아들의 경우, 수술과 호르몬 치료를 통해 적합한 성을 부여하면 된다는 성전환 전문가 존 머니 박사의 권유로 아이의 성전환수술을 결정하게 되고 브루스는 여자아이 브렌다로 길러진다.
페미니스트 운동의 시금석이 된 이 ‘쌍둥이케이스’는 사고를 당하지 않은 쌍둥이 동생은 남자로 자라났기 때문에 보다 더 큰 평가를 받았으며, 완벽한 의학적 성공 사례로 손꼽혔다. ‘쌍둥이케이스’는 현대 의학과 사회학에서 가장 유명한 사례가 되었으며, 남성이나 여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성으로 길러지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살아있는 증거로 지난 30년 동안 반복해서 인용되었다. 또한 유사한 사고나 비정상적인 생식기를 가지고 태어난 수많은 신생아들에 대한 치료 기준으로 사용되어 성전환의 관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 케이스는 완벽한 실패로 드러났다. 유명한 쌍둥이는 처음부터 자신의 강요된 성 정체성에 저항했다.
성전환수술을 받은 브루스(브렌다)는 매년 정기적으로 존 머니의 연구실이 있는 볼티모어의 존스 홉킨스 대학으로 가서 상담을 받아야 했다. 여기서 존 머니 박사는 자신의 연구 업적을 위해 브렌다는 물론 브렌다의 남동생 브라이언까지 자신의 명령에 철저하게 따르도록 강요하면서 연구를 진행한다.
머니 박사의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되던 브렌다는 14세가 되던 해에 자신이 남자로 태어났다는 사실과 사고로 페니스를 잃고 여자로 성전환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뒤 브렌다는 남자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데이비드 라이머로 이름을 바꾼 뒤에 페니스 재건 수술을 받는다. 그리고 두 번의 자살 시도라는 정신적 공황을 겪은 뒤에 마침내 지금의 아내 제인 폰테인과 결혼한다.
데이비드가 브렌다였을 때 그는 자신이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주위에서는 끊임없이 여성성을 강요한다. 이런 정신적인 공황 속에서 데이비드는 사고로 페니스를 잃은 육체적 고통보다도 스스로가 느끼는 정체성대로 살지 못하는 정신적 고통이 더 컸다고 고백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성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관한 천성 결정론이나 환경 결정론에 관한 첨예한 논쟁을 벗어나, 한 인간이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상처를 극복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과 ‘강요받지 않는 선택의 중요성’을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에게 제시한다.
성 정체성 논쟁을 넘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으로
브렌다로 살아온 데이비드 라이머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성 정체성에 대한 담론이나 논쟁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성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관한 논쟁을 넘어서서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주목한다. 그는 발문에서 다음과 같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다.
“그(데이비드 라이머)는 단순히 성 정체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놓고 고민했던 인물이다. 그의 경험담은 독특하기는 하지만, 비웃고 억압하는 세상에 맞서서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 헤맸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론 라이머가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 브렌다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이 ‘왜 그런 수술을 받게 했느냐’가 아니고 ‘예전 이름은 무엇이었냐’였다는 말을 듣고 가장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누구냐’에 해당되는 이 질문을 통해서 데이비드는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과감히 뛰어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존중받아야 할 인간성’에 대해 논한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성적 특징을 모두 지닌 ‘양성’에 대해 이 책의 후반부에서 상당부분 언급되고 있는 점과, 저자가 그들을 성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그들의 인간성이 어떻게 억압받아 왔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저자는 성기의 구조나 성적 특징에 따라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인간성을 데이비드 라이머의 삶을 통해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그가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든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를 가지며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데이비드 라이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 담론을 뛰어넘는 발언을 하는 것에 주목한다. 그의 말에서 우리는 남자나 여자로 살아가는 것 이상으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저는 아내를 존중하고 가족을 위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게 남자다워지는 길이라는 걸 아버지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런 게 섹스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말입니다. 존 머니는 우리 아이들의 친아버지를 진정한 남자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저는 친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아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게 바로 진정한 남자입니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
비록 이 책은 성과 성 정체성을 다루고 있지만 단순히 성은 ‘타고나는 것’이라거나 ‘환경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는 식의 단정을 내리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한쪽 견해에 일방적으로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성은 한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자신의 생각을 이 책에 등장하는 라이너라는 의사의 말을 통해 제시한다.
“아이의 생각을 존중해야죠. 어느 쪽 성이 맞는 것 같은지 결정해야 할 사람은 본인 아닙니까.”
페니스를 잃는 사고를 통해 데이비드는 브루스, 브렌다, 데이비드라는 세 가지 인생을 살아야 했다. 사고를 당한 아이에게는 자신의 성을 선택할 어떤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았으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성 심리학 권위자인 머니 박사는 양성으로 태어났거나 사고로 성기를 잃은 경우, 의도적으로 남성이나 여성으로 성을 정해주고 정신과 치료와 호르몬 치료를 병행하면 주어진 성에 따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근거없는 믿음으로 그는 주어진 성에 저항하는 브렌다의 태도와 반응을 자신의 연구에 유리하게 해석했고, 결국 그의 이기심 때문에 한 인간의 삶이 철저하게 재단되었으며 가족들까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 저자는 아무리 완벽하게 성을 바꾸거나 치료를 한다 해도 당사자의 의사가 배제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고통과 절망만을 안겨줄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분히 선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성, 그것도 성전환을 경험한 인물의 삶을 통해 이 책의 저자는 오히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인간성에 대한 첨예한 질문을 제기한다.

 이 책은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를 포함한 성에 관한 다수의 논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는 '꿈의 해석'과 더불어 인간의 삶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독창적인 작품의 하나로 꼽히며, 1905년 처음 발표된 이후 약 20여 년에 걸쳐 수정 보완되면서 판을 거듭한 유명한 작품이다. 성적 충동이 인간의 심리 현상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며, 유아에게조차 성욕이 존재한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은 당대의 사회에 충격을 몰고 왔다.

 

 천부경에 대한 완전한 입체적 해석이 담겨 있다. 천부경은 물론 삼일신고, 다물홍방가 등에 대한 자세한 해설이 실려 있고, 도덕경, 팔쾌 등을 천부 사상에 입각해 풀이하고 있다. 게다가 고대의 천부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감하기 위해 우리나라와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신화를 총망라했으며, 우리나라 고대 유물, 유적을 통한 고증이 따른다. 이 밖에도 그 동안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던 격암유록의 핵심적 부분들을 천부 사상을 통해 밝혀 놓았다. - '복희-여와도'는 동양식의 '남녀추니(양성 일체, Androgyne)도'이다.

 

 이것은 괴이한 책이다. 이 책의 지은이는 진정 누구인가
17-18세기 비밀출판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악명 높은 문헌!
근대이성을 통해 낱낱이 파헤친 종교의 실체, 몇 세기에 걸친 금서의 완역
세계 3대 종교의 본질을 묻는 희대의 불온서
때는 17세기 말. ‘사상(思想)도 얼어버린다’는 북구의 나라 스웨덴 스톡홀름 궁전에서는 당대 제일의 지성적인 군주로 유명한 크리스티나 여왕이 이제나저제나 희소식이 당도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데카르트를 개인교수로 초빙할 만큼 학예와 철학에 조예가 깊은 여왕은 근래 들어 부쩍 유럽 전역을 들쑤시듯 떠돌고 있는 흉흉한 괴소문에 여간 호기심이 쏠리는 게 아니었다. 도무지 진원(震源)이 파악되지 않는 괴소문은 어느 한 정체불명의 문헌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서슬 시퍼런 검열을 피해 오로지 수사본(手寫本) 형태로만, 그것도 유럽의 극히 제한된 지식인 그룹을 중심으로 웬 끔찍한 내용의 문헌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에 크리스티나 여왕은 문제의 수사본을 단 한 부라도 구해오는 사람에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거금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소문만 무성할 뿐, 아무도 대령하는 자가 없었다. 그 당시 그 문헌을 구한다는 것은 결국 목숨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생을 마치는 1689년까지 여왕은 문제의 괴문헌을 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23년이 더 지난 1712년, 자유의 나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사상 최초로 문제의 수사본이 『스피노자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서적으로 출간되었고, 그 부수는 고작 일흔 부였다. 다시 그로부터 9년이 더 지난 1721년 재판을 찍으면서 몇 가지를 좀더 치밀하게 수정, 보완한 텍스트를 주 텍스트로 삼아 30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프랑스 막스밀로 출판사가 2001년에 출간했다. 생각의나무에서 출간하는 이 책은 이 텍스트를 근간으로 하여 한국에 최초로 선보이는 희귀한 문헌이자 세계적인 금서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기꾼들에 의해 정교하게 조작된 거짓일 뿐
이 책은 18세기 내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전 유럽에서 출판되었고, 십여 차례에 걸쳐 거듭 필사되기도 했다.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이 책을 구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하기도 하였고, 실제 저자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문제를 놓고 끝없는 논쟁이 이어졌다. 심지어 숨은 저자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일 거라는 추측이 나돌기도 하면서, 결국 초긴장 상태의 파리경찰이 직접 나서 이 책을 유통시키는 서적상을 일제 검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그 이유는 단순했다.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필경 스피노자의 사상에 정통했음이 분명한 저자의 주장이 너무나도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즉, 세상의 모든 종교는 사기꾼들에 의해 정교하게 조작된 거짓일 뿐이며,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민중을 폭압하는 목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이 도발적인 책은, 유럽 전역에 계몽사상이 만연하기 한 세기나 앞서 이미 인간의 사고를 해방하려는 극단적 시도가 발화했고, 그 파괴적인 화력이 결국 프랑스 대혁명에까지 고스란히 이어갔음을 웅변으로 증명한다. 이 책은 일단 역사적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을 뿐더러, 온갖 종교적 갈등의 서슬이 시퍼런 현재에도 생생히 살아서 종교에 관하여 꼼꼼히 검토할 만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유난히 온갖 종교들이 성한 우리나라에서도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다른 관점에서 종교를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30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놀라울 정도로 쉽게 읽힌다. 필자의 정치한 논리와 위트, 유머가 섞인 문체를 따라가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문헌적 가치와 당대와 맞물리는 시사적인 가치를 고루 갖춤으로써 인간과 세상에 두루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읽을 만한 책이다. -  아울러 안드로귀노스(Androgynos: 남녀추니)의 이야기야말로, 「창세기」에서 말하듯 아담의 늑골로부터 이브를 만들어내는 것에 비해 얼마나 근사한 발상이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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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시대 히틀러와 함께 한 여인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히틀러의 정부 에바 브라운을 비롯하여 제 3제국을 살았던 여성인물들의 삶을 다각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당대를 살았던 독일 상류사회 여성의 삶과 정신세계를 함축하고 있으며, 흥미롭고 신선한 내용으로 감추어진 역사의 이면을 색다르게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눈과 마음을 자극한다.영혼을 저당 잡힌 히틀러의 여인들! 그녀들은 히틀러를 위해 저택, 고급 자동차, 값비싼 보석은 물론 식탁보에 이르기까지 아낌없이 바쳤을 뿐 아니라 히틀러를 위해서라면 절대적인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1923년 4월 3일, '뮌헤너 포스트' 지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히틀러의 연설에 귀를 기울이는 여인들에 대한 기사를 실으면서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히틀러에게 바치는 여성 골수 신봉자들을 신랄하게 비꼬았다. 물론 나치는 폭력집단을 동원해서 이 신문사를 박살내버린다.
지금 독일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의 과정에서 가정에 충실하고 헌신적인 희생자로 묘사되었던 독일여성상을 뒤집고 나치정권의 열렬한 협력자로 독일 여성을 그리고 있는 TV 다큐멘터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독일 민족을 파멸로 이끈 배경에는 히틀러를 숭배한 많은 여성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히틀러는 여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연설을 할 때는 맨 앞줄에 열광적인 여성을 배치하는 등 독일 여자들이 자신에게 '메시아적 매력'을 느끼도록 유도했으며,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남자보다는 여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작 히틀러의 여성상은 정치나 사회에서 여성이 지도적인 위치에 올라서는 것을 절대로 용납치 않았다. 여성은 물레 앞에 앉아 실을 뽑거나 우월한 게르만인을 생산하는 도구로서의 역할만 인정되었을 뿐이다.
물론 이런 여성상에서 벗어나는 여자들도 있었다. 바로 핵심 권력층 주변에 있던 여인들이다. 이 책은 핵심 권력층 여인들의 삶을 통해 이들이 당시 일반 여성들과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당시 이 '우아한' 여인들의 생활은 철저한 베일 속에 가려져 있었다. 입 소문으로 흘러 다니는 이야기도 잘못 입에 올렸다가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이 책에서는 모두 여덟 명의 여성들을 증언대에 세운다. 사진관 점원으로 히틀러를 만나 1944년 총통 관저 방공호에서 결혼반지를 끼고 함께 자살하기까지 숨겨진 정부情婦 노릇을 해야 했던 에바 브라운, 삼촌 히틀러의 정부라는 소문과 함께 의문의 권총 사살로 삶을 마감했던 겔리 라우발, 세계적인 여성 영화감독으로서 히틀러와 염문을 뿌렸던 레니 리펜슈탈, 남편을 버리고 전설적인 전투기 조종사인 헤어만 괴링과 사랑에 빠진 스웨덴 귀족 카린 괴링, 여섯 명의 자식과 함께 히틀러를 따라 자살로 생을 마친 막다 괴벨스 등이다.
사랑의 광기로 죽어간 여성들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캐나가는 흥미로움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수전 손택의 세 번째 에세이 모음집
“수전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뉴욕 지성계는 그녀를 만들어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평을 받았던 수전 손택은 작년 12월 28일 뉴욕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기념 암센터에서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전후 비평의 전통적 태도를 버리고 예술 연구의 급진적 관능주의를 지지하며 내용이 아닌 형태를 중요시하고 고급과 저급의 경계를 “가장 파괴적으로 허물었”다는 그녀 특유의 날카롭고 시원스런 목소리는 이제 그녀의 남겨진 유작으로 만나보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손택에 뒤따르던 숱한 수식어가 말했던 것처럼 그녀에게는 특유의 풍부한 교양과 박식함으로, 때로는 거만하고 거침없이, 때로는 인간적이고 순수한 시선으로 소외되고 절망적인 것들에 따뜻한 시선을 담아 되살려내는 비범함이 가득했다. 수전 손택은 1960년대 미국 문단에 등장한 이후 철학과 예술, 문학 비평부터 영화, 연극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영역을 넘나들며 그녀만의 독자적인 안목과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을 선보여 뉴욕 지성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에세이 모음집으로는 세 번째 책인 이 책 ''우울한 열정 Under the Sign of Saturn''(1980)은 1972년에서 80년 사이, 손택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정신적 절정기에 쓰인 글들이다.
앙토냉 아르토, 엘리아스 카네티, 레니 리펜슈탈, 발터 벤야민, 그리고 한스''위르겐 지버베르크, 거기에 더해 폴 굿맨과 롤랑 바르트와 같이 문학, 연극, 영화, 사진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우울함과 광기, 고통, 천재성 사이를 배회했던, 그리고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일곱 명의 서구 아방가르드 지식인들에 대한 인물 평전이자 수전 손택 자신의 정신적 자서전이다.
'우울한 열정'이 담고 있는 글과 특징
첫 번째 에세이집 '해석에 반대한다'(1966)로 뉴욕 지성계에 스타덤에 오른 수전 손택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진 작가들을 오로지 “광기와 그릇된 소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하고, 그들의 예술을 옹호하기 위해 집필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거기에는 우울과 고독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발터 벤야민도 있었으며, 오만하지만 순수한 윤리적 열정의 소유자 폴 굿맨, 치열한 광기로 시대와 불화한 앙토냉 아르토와 병적 아름다움 집착하는 레니 리펜슈탈도 있었다.
이 에세이들은 발표되는 족족 당시의 문화 지형을 상당히 바꿔놓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일곱 명의 인물들은 서구 현대예술사의 다양한 물결에서도 가장 ‘얄궂은’ 유형에 속한다. 그야말로 “학계와 전문가들의 용(龍)”이 지키는 지적 전문 분야에서 “학술적 무단침입자”로 살아온 사람들이자, 뿜어져 나오는 광기와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재료 삼아 자유와 예술, 그리고 삶의 진실에 관한 현란한 수완을 발휘한 예술가들이다. 하지만 동시대 대중과 문화예술계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워, 아방가르드적 난해함과 그노시스적인 광기로 이해될 뿐인 사람들. 그러한 그들을 손택은 그녀 특유의 냉정하고도 합리적이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이들의 언어를 예술의 영역에 포함시키려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손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열정’이 베인 아방가르드적인 언어의 확장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로도 사용된 발터 벤야민에 관한 에세이 '토성의 영향 아래'는 사실 이 책에 시종일관 흐르는 기조이자 주제적인 글로 벤야민의 삶과 글을 작가의 ‘기질’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한 독특한 글이다. “나는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가장 느리게 공전하는 별, 우회와 지연의 행성……” 벤야민이 (심리학적 개념을 경멸하여 쓴) 점성술적 개념으로 동원해 스스로를 규정하듯 자신을 우울한(saturnine) 사람으로 생각했고, 향후 그의 모든 주요 연구와 글쓰기 과제에 그런 그의 기질은 투사된다. 벤야민은 프루스트, 카프카, 칼 크라우스 등과 심지어는 괴테에서도 토성적(우울한, 혹은 음울한) 기질을 발견하게 되는데, 특히 벤야민은 보들레르의 “구체화된 산책자(flneur) 상에 19세기적 감성을 결부시키면서, 자기 자신의 감성도 도시와의 몽환적이고 예민하고 미묘한 관계에서 대부분 이끌어”내게 된다.
초현실주의라는 그릇으로 담아내기가 어려울 만큼 버거운 인물 앙토냉 아르토에 관한 글(이 책에서 가장 긴 글인) 아르토에 다가가기는 원래 아르토 저작 선집의 소개 글로 쓰인 글로 아르토에 관한한 가장 권위 있는 글로 손꼽힌다. “연극이라는 예술 분야에 아르토가 미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어서, 요즘 서유럽과 미국에서 상연되는 진지한 연극의 줄기를 아르토 전과 아르토 후 이렇게 둘로 나눌 수 있을 정도다.”라는 손택의 평가는 아직까지도 연극에서의 아르토의 성과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만큼 유명하게 인용되는 문장이다. 손택은 이글에서 “작품에서나, 삶에서나” 아르토의 “결과로서의” 모든 것들을 실패했다고 규정하지만 “완성된 예술 작품이 아닌 독특한 존재, 모종의 시학, 사고의 미학, 문화의 신학, 수난의 현상”과 같은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문학적 모더니즘이라는 영웅적 시대의 마지막 위대한 본보기”로 칭송한다. 난해하기 그지없는 아르토를 그에 버금가는 난해한 문체로 해설한 것은 손택 자신이 글에서 주장하고 있듯, 읽을 수 없는, 본질적으로 흡수할 수 없는 작가를 본질은 무시하고 제멋대로 먹기 좋게 요리해 피상적으로 다루는 현대 비평의 경향을 비난하며 아르토가 “문학과 역사에 엄청난 분량의 고통을 남”겼듯 독자들에게도 일정한 분량의 고통을 전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레니 리펜슈탈에 관한 글인 '매혹적인 파시즘'과 한스''위르겐 지버베르크에 관한 ''지버베르크의 히틀러''는 한때 우리 사회를 달궜던(그리고 현재까지도 의미 있는) ‘우리 안의 파시즘’의 원형적인 논의로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글들이다. '매혹적인 파시즘'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이질적인 두 개의 제시물, 즉 수단 남부의 마지막 부족에 관한 리펜슈탈의 유명한 사진집 ''누바족의 최후''와 “공항 잡지 판매대나 ‘성인’ 서점에서 살 수 있는 값싼” 포르노 사진집 ''SS 제복''을 병치해 비교하면서, 이들 제시물이 갖는 공통적 근저에는 “아름다움을 병적으로 추구”한 파시즘적 탐닉이 숨어있다고 분석한다. 손택은 그 증거로 리펜슈탈의 나치시대의 작품(영화 ''신념의 승리''나 ''올림피아'' 등)의 근저에 흐르는 “영웅에 대한 대중의 복종”과 찬양이 전후 누바족에 대한 사진집 근저에 담겨 있는 “육체적 기술과 용기를 드러내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는 것이 공동체 문화의 통합의 상징인 사회, 싸움에서의 승리가 ‘사람의 인생의 주요한 열망’인 사회를 찬양”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더 나아가 ''SS 제복''에서 드러나듯이 나치식의 제복과 가죽 채찍에 숨은 “제복에 대한 환상, 즉 공동체, 질서, 정체성, 능력, 정당한 권위, 정당한 폭력”의 상징도 전혀 다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지버베르크의 히틀러'는 “충성을 유고하고 강요하는 고귀한 명작의 범주에 속”하는 1인극 영화 ''히틀러, 독일 영화''를 다룬 글이다. “우리가 없었다면 히틀러가 어떻게 있을 수 있었겠는가'”라는 도발적인 내레이터의 반복을 발견되듯이, 지버베르크는 나치즘을 독일의 악마성에서 기원된 것으로 보는 토마스 만의 관점을 수용한다. 손택에 따르면, 지버베르크는 히틀러가 야기한 수천만 명의 살해가 역사적 괴물의 등장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보며, “히틀러 사후에 여전히 살아있는 일종의 히틀러적 본성, 현대 문화에 유령처럼 존재하는 것, 현재를 가득 채우고 과거를 재구성하는 변화무쌍한 악의 원칙을 환기”시킨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버베르크의 영화는 결코 이러한 ‘실재’에 기반해 “정보의 표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치유적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밖에도, 사회와 대립하는 개인 및 군중심리를 탐구한 ''군중과 권력''의 저자이며 “은둔하는 기인의 상으로서, 20세기의 상상력 속에서의 삶에서나 문학에서나 가장 큰 성취이자 순교자의 모습을 한 진정한 영웅” 카네티에 관한 글 '열정의 정신'도 주목할 만한데, 특히 손택의 이글이 발표(1980)된 바로 다음 해,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머지 짧은 글인 '폴 굿맨에 대하여'와 '바르트를 추억하며'는 고인들의 부고를 접하고 고인의 생전 모습을 회상하며 쓴 애정과 애도, 존경이 어우러진 우아한 감상의 표본과도 같은 글들이 포함되어있다. 이들은 모두 손택의 말처럼 “최후의 심판에서, 최후의 지성인, 현대 문화의 토성적 영웅, 잔해, 반항적 시각, 몽상, 억누를 수 없는 우울함, 내리깐 눈을 지닌 인물들로 자기가 여러 ‘위치’를 가졌음을 설명하고 최대한 공정하고 비인간적으로 지성인의 삶을 그 최후까지” 옹호받아 마땅한 우리시대의 지성이다.

 모계 사회로의 흐름이 느껴지는 21세기에도 대한민국에는 호주제가 건재하고 여성을 학대하는 인간의 잔악성은 동물들 안에서 유일하다. 경제권을 확보하고 발언권이 커졌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불평등 속에 고스란히 노출된 여성들은 그 스스로도 모른채 이런 현실에 젖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잘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현실 중에 하나인 것이 바로 여성의 위대성. 이 책은 9년 동안 자료를 모은 역자의 노력으로 탄생하였다. 삶의 치열함, 사회적 성취 등으로 일세를 풍미한 20세기의 여성 35명을 중심으로 여성사의 도도한 흐름을 잡아내었다. 여성 역할 모델의 한 조각을 찾아낸 기쁨이 크지만 이것으로 만족하면 안된다는 경각심마저 느껴진다.
1권은 사회운동가와 예술가 20명을 소개한다. 1993년 『불멸의 여인들』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던 책을 수정, 보완한 내용이다. 형형하고 맑은 눈빛의 흑백 사진 속 여성들과의 만남이 반갑고 가슴 뿌듯하다. - 영상의 미술사 레니 리펜슈탈

 『역사를 이끈 아름다운 여인들』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50여 명의 여성인물을 소개한다. 이 책에 소개된 50여 명의 여성들은 역사를 이끌어간 여성들의 극히 일부분이지만 남성들에 비해 빛나지 않는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담당해온 수많은 여성들의 이름을 대변해 준다.
1부는 남자 못지않은 정치력과 카리스마를 보여준 선덕여왕이나 엘리자베스 1세와 같은 여성 정치인들을, 2부에서는 인류를 감동시킨 예술에 자신의 일생을 바친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3부는 세상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약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4부에는 여성과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독자들은 흥미로우면서도 진지한 그녀들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인류 역사의 반을 담당해온 여성들의 위대한 업적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지난 일년여 동안 간 주간한국에 「역사 속 여성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칼럼을 하나로 모은 책이다.이 책에 실린 여성들은 저자가 1여 년 간 주간한국에 「역사 속 여성이야기」라는 칼럼을 연재하면서 만났던 여성들이다. 저자는 역사 속에 그 흔적을 아로새긴 이들 여성들과 만나면서 그녀들의 인생과 업적, 또 그녀들의 여성으로서의 고뇌들을 재발견하고, 공감하고 영향받았다. 그녀들로 인해 한 개인으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역사를 이끌어가는 한 축인 여성의 위치와 입장, 그리고 앞으로의 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여러분도 함께 생각해보면 어떨지.
이 책에 실린 50여 명의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빛나지 않는 자리에 서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담당해온 수많은 여성들의 이름을 대변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녀들로 인해 인류 역사의 반을 담당해온 여성들의 위대한 업적의 흔적들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들 여성들은 때론 남성들보다 더한 카리스마로 세상을 바꾸어가기도 했고, 여성의 섬세함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때론 세상의 가장 그늘지고 낮은 데에서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지기도 했다. 남성들과 더불어 함께 역사를 만들어간 여성도 적지 않다.
역사 속에 그 흔적을 아로새긴 이들 여성들과 만나면서 그녀들의 인생과 업적, 또 그녀들의 여성으로서의 고뇌들을 재발견하고, 공감하고 영향받았다. 그녀들로 인해 한 개인으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역사를 이끌어가는 한 축인 여성의 위치와 입장, 그리고 앞으로의 가야 할 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 책에 소개된 50여 명의 여성들은 역사를 이끌어간 여성들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더 많은, 더 다양한 분야에서 역사를 이끌어가는 축이 되고 힘이 되고 도화선이 되는 많은 여성들이 있다. 기회가 닿는다면 그녀들의 인생도 만나고 싶다. -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버린 천재 레니 리펜슈탈 

 어느 순간부터 소설보다 전기를 읽는 것이 더 재미있어졌다는 저자 최애리는 그동안 ‘여자와닷컴’에 연재했던 여성들의 전기를 엮어 《길 밖에서》 《길을 찾아》라는, 각각 독립된 책이면서 두 권이 하나가 되는 특별한 책을 출간하였다. 중세 문학 번역가로 더 잘 알려진 저자가 여성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의 첫 작업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웹사이트에 실릴 <오늘의 인물>이라는 짤막한 연재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날그날 태어난 인물들 중에서 한 명을 골라 짧게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던 저자는 인물 선정의 답답함 - 그날 태어난 유명한 인물을 다루다보니 여성 인물들을 고를 기회는 잘 오지 않았고, 모처럼 적당한 여성 인물을 발견해도 편집진의 권고로 남성으로 바꾸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다 - 과, 시작과 끝을 생략하고 중간 이야기만을 다뤄야 하는 데서 큰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새로 시작한 것이 ‘여자와닷컴’의 새 칼럼 <세기의 여성>이었다.
그렇게 1년 넘게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내기까지는 다시 3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말았다. 미흡하다 싶은 원고들부터 고쳐보자고 한 명, 두 명, 전기를 읽기 시작한 것이 거의 모든 인물의 전기를 다시 읽게 되었고,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전 세계 서점과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몇 페이지로 압축해서 담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따라서 한 인물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수십 권의 원서를 읽어야 했고, 때로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때로는 주인공 자신이 되어 그녀들의 삶을 갈무리해야만 했다. 결국 저자는 몇 해를 여성들의 전기 속에 파묻혀 살았고, 그런 고단한 과정을 거쳐 태어난 책이 바로 《길 밖에서》 《길을 찾아》이다.
여자, 길 밖에서 길을 만들다
이 두 권의 책에는 중세에서 현대까지 수많은 여성들의 삶이 담겨 있다. 저자는 왜 하필이면 그녀들을 선택하였고, 왜 그녀들의 삶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까.
여성에게는 오직 순결과 무지와 겸허한 순종을 강요하던 시대를 살면서 평범한 여성의 길을 거부하고 작가의 길을 걸었던 조지 엘리엇은, 여성에게 주어진 길을 벗어난 삶에 대해서 “영혼의 길은 황야의 가시밭 가운데로 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 길은 고독하게, 피나는 발로, 도움을 찾아 흐느끼며,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한다.”고 표현하였다.
이 책에 수록된 여성들의 공통점은 이처럼 ‘상식적인 삶의 길을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찾은 여성’이라는 점이다. ‘역사를 뒤바꾼 여성들’처럼 무슨 대단한 업적을 이루었던 여성들이 아니라 여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살고자 했고, 그랬기에 ‘보이지 않는 험한 길’을 가야했던 여성들이 바로 그 주인공인 것이다.
여자에게 주어진 길 밖으로 나가 새로운 길을 찾았던 여인들, 그래서 피나는 발로 가시밭길을 거어야 했던 여인들, 역사 속에 숨겨져 있던 그녀들의 이야기가 이제 저자의 손을 빌어 세상에 나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나의 도전이 당신에게는 길이 되길
이 책에 수록된 여성들은 우리와는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 살았던 여성들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이 우리와 동떨어져 있지 않은 것은 그녀들이 걸었던 길이 지금 우리들이 걷고 있는 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1928년 여성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하며 푸른 하늘에 새로운 길을 열었던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여성들도 남성들이 하려 하는 일을 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만일 그녀들이 실패한다면, 그 실패는 다른 여성들에게 도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길 밖의 길, 길이 아닌 길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면 대로가 된다. 그녀들이 수없는 도전으로, 한걸음씩 가시밭길을 걸어가주었기에 현대 여성들에게는 수많은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녀들의 삶을 되짚다 보면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예전보다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많은 장벽에 막혀 있는 현대 여성들에게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면 뛰어넘지 못하는 장벽은 없을 것이고, 설령 실패하더라고 나의 도전이 다른 여성들에게 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특징
한 권이면서 동시에 두 권인 책
1권인 《길 밖에서 : 가둘 수 없는 바람처럼》에는 라인강의 예언녀로 불린 힐데가르트 폰 빙겐에서부터, 아내라는 안정된 구속보다 자유로운 사랑을 원했던 엘로이즈, 여성의 선거권도 없던 시절에 대통령 후보로 나선 빅토리아 우드헐, 자유롭게 날고 싶었으나 인습과 편견의 벽에 갇혀버린 카미유 클로델, 그림 속의 여인이 아닌 자신의 손과 영혼으로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쉬잔 발라동까지, 황무지에 살지언정 바람처럼 자유롭고 싶었던 여성들의 초상이 담겨있다.
2권인 《길을 찾아 :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에는 여성으로 두 번의 노벨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이상을 양보하지 않았던 로자 룩셈부르크, 옥죄는 무용화를 벗어 던지고 영혼의 자유로움을 표현하고자 했던 이사도라 덩컨, 푸른 하늘에 새로운 길을 열고자 했던 아멜리아 에어하트, 아프리카의 우거진 숲 속에서 야생 고릴라와 평생을 함께한 다이앤 포시 등, 가시밭길을 갈지언정 꿈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여성들의 초상이 담겨있다.
1권은 1100년에서 1850년대 인물을 다루고 있고, 2권은 1860년대에서 1930년대 인물을 다루고 있다. 업적 위주로 인물을 고른 것이 아니기에 ‘작가’ ‘음악가’ ‘미술가’ ‘사상가’ 등 활동 분야에 따른 분류나 국적별로 엮는 것은 책의 균형을 깨뜨렸다. 그렇다고 몇 가지 주제에 따라 인물을 분류를 한다는 것은 그 인물에 대해서 미리 재단을 해버려 인물에 대한 또 다른 오해를 줄 수 있어 애초 기획 의도와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연대순 구성이었다. 연대순 구성으로 만들어진 덕분에, 각 여성들의 삶의 배경을 이루는 시대 분위기가 좀더 잘 드러나게 되었고, 비슷한 시기를 산 여성들의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비교하며 볼 수 있을 뿐아니라, 여성들이 지나간 궤적이 그대로 그려진다는 장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원고의 분량 때문에 두 권으로 나누었지만 묘하게도 1권과 2권의 성격이 구분되어졌다. 1권에 수록된 여성들은 여성에게 주어지는 사회의 장벽 속에서 ‘가둘 수 없는 바람처럼’ 자유를 갈망했던 여성들이었다. 그리고 2권에 수록된 여성들은 이전의 여성들이 피나는 발로 만들어낸 길들 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자신의 열정을 살랐던 여인들이었다. 이렇게 구성된 이 두 권의 책은 ‘길 밖에서 길을 찾아’ 나선 여성들의 초상이라는 공통점을 지니면서 ‘길 밖에서’ 자유롭고 싶었던 여성들, 자신의 원하는 ‘길을 찾아’ 열정적으로 살았던 여성들이라는 차별점을 지니게 되었다. 이런 성격을 더 부각시키기 위해서 두 권이 각각 독립된 책이면서 둘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제목과 표지 컨셉트를 부여하였다.
역사 속에 숨겨진 여인들의 삶을 복원하다
2008년에 힐러리 로댐 클린턴이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여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도 여성에게 선거권조차 없었던 1800년대에 말이다. 1869년 ‘검은 금요일’에 일어난 금시장 폭동에서 엄청난 이익을 거둔 빅토리아 우드헐은 끊임없이 여성의 평등권을 주장하였고 1872년에는 대통령 후보로 정식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혼 경력과 아내가 남편의 동침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거나 애정이 식은 결혼은 파기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결혼관으로 기득권 계층의 비난을 받았다. 자신을 모함하는 반대파의 우두머리 격인 비처의 분륜 사실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해서 외설물 유포죄로 투옥된 그녀는 결국 선거 당일 철창 신세를 져야 했다.
두 권의 책에는 잔 다르크, 예카테리나 여제, 클라라 슈만, 카미유 클로델, 마리 퀴리, 로자 룩셈부르트, 애거서 크리스티, 시몬 드 보부아르, 마릴린 먼로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들도 다루고 있지만 앤 허친슨, 마리아 미첼, 루시 스톤, 해리엇 터브먼, 빅토리아 우드헐, 이사크 디네센, 나디아 불랑제, 레니 리펜슈탈 등 우리에게 생소한 인물들도 다루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의 경우 하나의 이미지로 정형화되어 있는 그녀들의 삶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하고, 남성 중심의 역사 기록 속에서 숨겨져 있고 악녀로 왜곡되어 있던 그녀들의 삶을 새롭게 복원했다는 데 이 책의 의의가 있다.
백의의 천사로만 알려져 있던 나이팅게일이 군의 위생 상태를 향상시키기 위해 싸웠던 저돌적인 행동가였다든가, DNA의 이중나선 구조 규명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의 저서 《이중나선》에서 퉁명스럽고 고집불통의 노처녀로 묘사된 로슬린드 플랭클린이 실은 그의 연구의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던 DNA의 방사선결정 사진을 찍은 장본인이었다든가, 수많은 흑인 노예들을 도피시켜 흑인들의 모세로 불리던 사람이 작은 체구의 해리엇 터브먼이었다는 사실 등 역사 속의 숨겨진 여성들의 삶이 두 권의 책에 빼곡히 담겨 있다.길을 찾아 -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여성인물탐구 2)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인물을 평가하고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물읽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저자 김진애 박사는 그 기본 출발점을 “사람을 좋아해야 하는 것”으로 두고, 다음 단계는 해당 인물의 “매력”과 “쓸모”를 찾는 일이라고 한다. 김진애 박사는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바라볼, 추구할, 지양할, 지향할, 참조할, 이끌리는 어떤 인물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 쌓여 드디어 글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녀는 역할 모델이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한 인간의 성장에는 특정한 역할 모델보다는 수많은 인물들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는 것. 실제 지향할 사표적인 인물에서 얻는 것만큼이나 지양할 반면교사적인 인물에서 얻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인물들에 자신을 비출수록 자신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은 풍요로워진다는 논리. 그래서 ‘위인전’ 이상으로 ‘인물전’이 필요한 것 아닐까하고 묻는다. 그만큼 사람들은 우리 자신의 거울이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괜찮은 인물들이 많은가를 알면 살맛이 더해진다. 또한 인류의 역사 속에 얼마나 괜찮은 인물들이 많은가를 알면 인간에 대한 신뢰도 더해진다.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알면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도 피어오른다. 물론, 우리는 그 인물들처럼 될 수도 없거니와 꼭 되어야 할 이유도 없고 또한 전혀 되고 싶지 않아도 좋다. 다만 인물들의 가치에 우리가 눈을 뜬다면, 이 흥미롭고 즐겁고 끌리는 인물들에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 삶은 그리 무료하지도 그리 지루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기를 통하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출판일을 하고 있는 서른한 살 먹은 여자다. 지난 수년간 무수한 일들을 벌이고, 수습하고, 매진하고, 버리고 취하기를 반복하며, 다큐멘터리PD, 잡지기자, 방송작가, 대학강사, 출판기획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지내왔다. ‘한결같은 방황’ 속에 지내온 시절이라고, 도대체 이 복잡한 시절은 언제쯤 끝나는가 라며, 나 자신에게, 때로는 세상에 화를 냈다가, 화해했다가 하며…. 그러던 어느날 건축가이자 칼럼니스트인 김진애 씨의 글을 만났다. “30대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잘 보낸 여자들이 비로소 매력적인 여성이 된다. 물론 그 팽팽한 긴장감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여자 30대는 흔들리는 게 아니라 중심을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라는 즉, “너 잘 살고 있는 것이다”는 요지의 글이었더랬다. 갑자기 힘이 솟았다. 김진애, 그녀가 궁금해졌다.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고, 언제나 그렇듯, 서른한 살 출판인 구모니카, 일을 벌인다.
늘 일관되게 불안한 채로 흐르는 내 마음, 도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품은 지 올해로 31년 째. 그 의문을 쪼개고 또 쪼개고 쪼개 보니,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들 사이에는 위인도 있었고, 타인도 있었고, 지인도 있었고, 가족과 친구도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을 유영하는 내가 있었다. 내 주변에 인간이 없었다면, 난 결코 방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김진애 박사를 만나고 난 후에, 그녀의 원고를 받아 든 후에, 긴긴 방황을 끝낼 답을 찾았다. “인간에 대해 제대로 알자”는 것! 그래서 <남녀열전 : 파트너일까, 라이벌일까?>, 바로 그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관심과 탐구”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만들게 된다. -
레니 리펜슈탈 vs. 미켈란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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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1894.5.27~1961.7.1]

프랑스의 소설가.
원어명 Louis-Ferdinand Céline
본명 데투슈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프랑스 파리
주요저서 《밤의 종말에의 여행》(1932), 《분할불 방식의 죽음》(1936), 《기뇨르즈 밴드》(1944), 《전쟁》(1949), 《성에서 성으로》(1959), 《북부》(1960)

본명 데투슈(Louis Ferdinand Destouches). 파리의 변두리에서 출생하여 가난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독학으로 의사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여 중상을 입고 아프리카와 미국을 편력한 다음 프랑스로 돌아와 빈민을 상대로 의사개업을 하였다.
1932년에 자서전적인 소설 《밤의 종말에의 여행 Voyage au bout de la nuit》을 발표하여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으며, 속어와 비어(卑語)를 곁들인 노골적인 문체로 일반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후로도 강렬한 허무적인 사상을 바꾸지 않고 반체제·반유대의 입장을 관철하여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친독일적인 경향이 있다고 판단되어, 전범 작가라는 낙인이 찍혔기 때문에 덴마크로 망명하였다.
1951년에 특사로 귀국하기는 하였지만 궁핍과 불우 속에서 여생을 마쳤다. 《분할불 방식의 죽음 Mort  crédit》(1936), 《기뇨르즈 밴드》(1944), 《전쟁 La guerre》(1949), 《성에서 성으로》(1959), 《북부 Nord》(1960) 등의 소설이 있으며, 사후에 작가로서 재인식되었다.

밤의 끝까지 여행을

 이 책은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광인' 혹은 '천재'라 불리며 시대와 불화한 예술가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들은 보편적 시대정신에 반하여 산사람들이며, 니체의 '광기에 반대되는 것은 건강이 아니라 길들여진 두뇌다' 라는 말에 비추어 보면 시대에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들이다. 여기에 기록된 예술가들은 영화 감독이자 시인이며 소설가였던 피에르 파졸리니,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3번의 자살 시도 끝에 31세로 생을 마감한 시인 실비아 플라스, 20세기 음악게의 이단적 존재 작곡가 에릭 사티, 사진의 아버지 스티글리츠, 세계를 돌아다니며 시를 쓴 프랑스 시인 상드라르, 스페인의 영광과 상처가 된 시인 페데리코 로르카, 난쟁이와 거인등 '비정상적' 인물들을 피사체에 담았던 다이안 아버스, 무용의 신 니진스키 등 모두 17명이다.
이 책은 1998년 박가서장에서 출간되었다가 출판사의 운명과 함께 절판되었던 책이다. 이 책을 그린비에서 재출간하는 이유는 17명의 예?換湧?삶이 지금에도 여전히 큰 울림을 갖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자가 이들의 삶의 궤적을 기록하되 단순한 연대기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감성적인 문장으로 그들의 고뇌를 드러내 보이는 방식을 택하여, 자신의 시대와 불화하며 현재에 미래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삶이 마치 지금 여기의 삶인 듯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흔히 볼 수 없는 280여 장에 이르는 사진 자료도 빼놓을 수 없는 재출간의 이유다. 국내에서 흔히 보기 힘든 이 사진들만으로도 17인의 예술가들의 삶과 사상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15. 루이 페르디낭 셀린, 밤의 끝으로 간 고독한 나그네

 미국 여성 작가가 쓴 독서론. 단계별로 인생을 변화시킨 책들을 그 당시 정서와 유행상품과 출판상황을 절묘히 결합시켜 소개하고 있다. 미국적인 정감과 시대적 소양을 좀 갖추고 있다면 눈에 더 착착 달라붙을 듯.독서에 대한 책들은 이미 여러 권 발간되었다. 우리가 기억하기에도 오래 전에 출간된 김현의 책읽기, 장정일의 독서일기 이외에도 최근에 출간된 이권우의 책과 다치나바의 책들이 있다. 이 책들은 나름대로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지만 목적론적 책읽기, 혹은 실용적인 책읽기라 말할 수 있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물론 이 책들의 저자들 또한 엄청난 독서광들이기는 하지만, 이 책들이 담고 있는 내용들을 보면 직업적이거나 실용적인 독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 책 속에는 어린 시절의 책읽기가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거나 언급되어 있다 하여도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1. 이 책은 체험론적 독서론이라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린 시절의 독서가 성인이 되어서도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어린 시절 살던 도시의 분위기, 가족 이야기, 학교 생활 등 자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들이 자신의 독서와 어떻게 조합을 이루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그 때에도 언제나 마음 속에는 자신이 사는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는 책을 통해 끊임없이 세상을 배회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과 같은 구축함은 없나니/우리를 땅 저 멀리 데려가노니/페이지와 같은 강좌는 없나니 /활기찬 시위."와 같이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인용하기도 하다.
이런 이러한 이 책의 체험적인 독서론은 저자가 미국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 사회는 목적 없는 독서에 대해 적대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발전의 도구 이상으로 간주하는 독서를 의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로 윈프리의 예를 들면서 독서는 혼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미국사회에서 혼자라는 것은 고독한 자로 연결되고 고독한 자는 패자로 연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말한다. "나는 우월감이나 발전을 위해, 심지어 배우기 위해 책을 읽지 않았다. 나는 이 지상에서 그 어떤 행위보다 책읽기를 사랑했기 때문에 읽었을 뿐이라"고
2. 이 책은 여성이 쓴 독서론이다. 이 점이 이 책이 앞에서 언급한 책들과 다르다. 그리고 대단히 문학지향적 독서론이다. 여성의 독서론과 문학지향적 독서론이 서로 연관성이 있다면 여성들은 문학지향적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데, 함부로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여성이 쓴 독서론과 문학지향적 독서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부분은 문장이 대단히 섬세하고 감성적이다는 사실이다. 이 책 속에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나는 어린시절 여행을 꾸몄던 방식대로 오늘날 여행한다. 비행기 안에서 혼자 행복하게 책 읽는 것, 그런 것이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여행이다. 어린시절의 내 자아가 날개를 가질 수 있다면 오직 그녀의 영혼만이 높이 솟구쳐오르게 하고 싶다. 책이 비행기이며, 기차아며, 길이다. 책은 행선지이며 여정이다. 책은 집이다"처럼. 그래서 읽기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누구나 쉽게 책읽기에 빠져들게 한다.
게다가 문학지향적이기 때문에 이 책 속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는 데 이러한 사실 또한 이 책이 전혀 낯설지 않다.
3. 이 책 속에는 간략하긴 하지만 출판과 독서의 역사도 있다. 다시 말해 고대에서 현대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것도 나열식이 아니라 작가의 비판적 안목을 곁들여서. 소크라테스에 대한 저자의 비판을 한번 보자.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독서를 시간의 낭비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책은 기껏해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상기시켜 줄 따름'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이후 2500년 동안 그가 보낸 경멸이 활자화된 페이지 위에서 다시 불붙는 것을 보았다면 -소크라테스의 말을 읽은 일군의 독자들이 그들이 이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것을 독서를 통해 배웠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그 위대한 사상가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을 것이다."라고 쓰면서 종이책의 미래에 대해 단호하게 말한다(3장)
"책의 죽음은 불가능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책이 어려운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분명하다..... 우리가 단지 정보를 알기 위해 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맛보고 싶고 그것을 가지고 다니고 싶고 우리의 팔 아래서 책의 무게를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라고.
4. 이 책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저자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계기를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애너 퀼들런은 독서가 마치 두 개의 막대기를 비벼서 불을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독서 행위와 전혀 그럴 듯하지 않은 단조로운 과업이 열과 빛을 가져다준다. 어린아이의 행동을 지켜보면 이점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멈춤이라는 신호판, 요리 비법, 동일한 문구로 복제된 편지, 포장할 때의 지침서와 같은 것의 신비에 수 년 동안 망해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어려운 일인가를 선명하게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 상징이 단어를 만들고 단어가 문장을 만들고 문장이 감정과 장면을 만들고 마음의 눈으로 상상된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라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동화 작가인 로이스 로우리의 말을 인용한다.
"나는 그 때의 흥분된 느낌을 지금도 기억한다. 각각의 글자가 소리를 가지고 있고, 그 소리들이 모여 단어를 만들며, 그 단어들이 문장이 되고 문장이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최초로 깨달았을 때의 그 흥분된 감정을 말이다"
그러면서 책이 드물던 시절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사람들을 회상한다. 그 사람들은 책을 그나마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로푸르노 부인), 어머니가 좋아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 축약본 이야기, 책을 빌려보았던 도서관 등에 대해 언급한다. 특히 로푸르노 부인의 지하서가에서 책을 빌려가도 좋다는 허가를 받은 것이 열 살 무렵이었다고 밝히면서 그 곳에서 독서를 통해 키워갔던 꿈을 아름답게 펼쳐보인다.
5. 마지막으로 저자는 독서의 기능에 대해 언급한다. 그녀는 독서의 기능에 대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암시한다.
"책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바로 그 책 자체였으며 또 다시 읽을 수 있고 변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가 변했을 따름이다. 바로 이점으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책을 우리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그 책의 유용성과 사회성 등등을 크게 다르게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든다. 이 책은 미국에서 가장 논란을 많이 불러 일으킨 책으로,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한 세대간 입장의 차이를 통해 독서의 기능에 설명한다. 이 책에 대해 사춘기 세대들은 그들 스스로를 보다 인간적으로 느끼도록 해주고, 스스로를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처럼 느끼지 않도록 해준다. 이러한 사실은 이 작품이 많은 사람의 엄청난 찬사를 불러일으켰던 사실을 대변한다. 이와는 반대로 이 책이 미국의 도서관 협회의 학교 도서관 금서 목록에 늘 올려져 있는 사실을 통해 독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한다.
이뿐 아니라 저자는 교육 받은 자들의 독서에 대한 편견(독서에도 올바른 방법과 그릇된 방법이 있다는)과 문학비평가들의 역기능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며, 대학에서의 목적성만을 위한 독서도 신랄하게 비판하다. 이와는 반대로 독서의 긍정적 기능에 대해서도 말한다. 독서의 경이감의 하나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주며(교육의 관점에서나 사회의 정신사회적인 측면에서나), 고독을 줄여줄 수 있다고도 한다. 책의 기능이 무엇이든 결론적으로 저자는 말한다.
"멋지고 훌륭하게 짜여진 이야기 속에서 사회적 행위와 영적인 -
"소설은 자동차ㆍ영화ㆍ텔레비전ㆍ술과 경쟁할 수 없다"고 프랑스 작가인 루이 페르디낭 셀린이 1960년대 토로했다.

 책은 누구나 읽지만, 어떻게 읽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미국 문학 비평계의 거목으로 40여 년간 문단의 중심에 서 있는 저자 헤럴드 블룸은 이 책에서 우리에게 수많은 문학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영국 BBC 방소에서 발표한 '세계 문학 100선'의 대부분이 저자에 의해 새롭게 읽혀진다. 창조적 읽기란 곧 '책읽기의 즐거움'과 통하는 듯하다.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열정 넘치는 이 책 서두에서 독서의 즐거움과 효용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블룸은 40여 년 동안 문학을 향한 자신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올바른 독자가 되는 방법 등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쳐 왔다. 빠르고 손쉬운 전자 매체에 의해 독서 행위가 빛을 잃어가는 오늘날, 그는 비평가와 교수의 입장을 떠나 많은 책을 섭렵한 독자의 한 사람으로 자신의 경험을 빌어 지혜의 원천이 되는 작품들을 탐구했다.
모든 논쟁을 떠나서 블룸은 외로운 독자들에게 다가가 가장 순수한 목적, 즉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삶을 보다 더 확대하기 위해 책을 읽으라고 한다. 그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문학적 연관성을 이끌어 냄으로써 독자들이 다양한 문학 양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몰두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블룸은 이 책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 어니스트 헤밍웨이, 제인 오스틴,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 찰스 디킨스, 윌리엄 포크너 등 인기 작가의 작품들을 심도있게 논의하면서 단편, 시, 희곡, 장편 등 각각의 장르를 통한 다양한 지적 즐거움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지침뿐만 아니라 독서의 미학적인 즐거움, 개인의 확대 및 자아에 대한 인식, 그리고 흥미롭고도 복잡한 등장 인물과의 교류 등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독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블룸의 문체와 통찰력은 오래된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되살리는 한편,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는 기쁨을 줄 것이다. -
21 루이 페르디낭 셀린, 『밤의 끝으로 여행을』

 타자를 통해 자아에 이르는 길
‘타자성’의 문제는 현대 서구 철학이 직면하고 있는 최대 스캔들 중의 하나이다. 근대 서구 사상사와 주류 문화를 이끌어왔던 합리적 ‘이성’의 신화, 즉 타자를 자기 안으로 흡수시키고 동화시켜온 동일자의 신화가 무너지면서, 늘 이성의 그늘로 황급히 모습을 감추어야 했던 ‘타자’가 해명해 내야 할 수수께끼로 당대 사상사의 무대 전면에 당당하게 등장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리처드 커니는 타자성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우리 인간들이 정상성(normality)을 구성하고 그 범주 안에 ‘나’와 ‘우리’를 포함시키기 위해 어떻게 ‘그들’, 즉 타자를 만들어내고 배제시켜왔는가를 추적해 들어감은 물론, 현대 주요 사상가들의 타자성에 대한 연구성과를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서구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신화 및 종교, 인류학, 문학, 철학의 영역을 종횡무진 넘나들면서 20세기의 대표적인 사상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레비나스 · 데리다 · 리오타르 · 크리스테바 · 지젝 · 하이데거 등이 수행한 타자성 연구의 성과를 보여준다. 여기에 이들 사상가들의 선배 격인 칸트와 프로이트도 등장한다. 커니는 타자성 연구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이들 독창적이며 이질적인 사상가들을 매우 능숙하고 노련하게 다룬다. 현대 대중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와, 우리로 하여금 타자가 재현되는 방식을 가장 자극적인 방식으로 몸소 체험하게 해줬다고 할 만한 미국 뉴욕에서의 9 · 11 테러 사건도 그의 날카로운 시선을 벗어나지 못함은 물론이다.
서사적 이해의 필요성
저자는 우리가 제대로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히 ‘서사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서사, 즉 ‘이야기’는 인간의 실존 근거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한자로서의 스스로의 한계를 아는 존재이자 선과 악, 신성과 악마성의 경계에 선 자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경계에 서 있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재구성하고 설명함으로써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왔고,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저자는 특히 타자성의 주요 키워드로 이방인 · 신 · 괴물을 드는데, 그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 우리 인간 안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모습들의 투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로 완전히 다른 외양을 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다른 의미를 부여받고 있는 이방인 · 신 · 괴물의 모습을 서사적 이해의 방식으로 접근하여 그 이면에 감추어져온 타자성의 ‘진실’을 해석학적으로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타자성의 수수께끼를 풀어 바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사적 이해는 서로 적대적인 양극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사닥다리를 얻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고자 저자는 고대 신화와 종교에서부터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와 <지옥의 묵시록>, 셰익스피어의[햄릿]과 제임스 조이스의[율리시스]등 고대와 현대의 희생양 서사들을 망라하며 자신의 논의를 이어간다. 이것은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중도의 길로서의 ‘판별의 해석학’
타자 혹은 타자성에 대한 접근방식에는 크게 레비나스 등으로 대표되는 절대적 외재성과 크리스테바 등의 접근방식인 완전한 내재성 둘로 나눠 볼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 극단적인 양자 사이에 제3의 길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 길을 통해 타자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중도의 길로 제안하는 것이 바로 판별의 해석학이다. 저자는 고대 미노타우로스에서 중세의 괴물, 그리고 포스트모던한 이방인들까지 흥미로운 예들을 통해 인간의 자아 그 자체가 자주 기괴한 요소들을 담고 있음을 논의한다. 책 전체를 통해 저자는 이방인과 신, 괴물이 단지 신화나 판타지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문화의 무의식의 중심부를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그는 우리가 우리 내부에서 타자가 어떻게 깊이 반향하는지 더 잘 이해하기 전까지는, 우리 자신의 가장 기본적인 공포와 욕망이 외부 세계에 어떻게 명백하게 드러나는지 이해할 수 없고, 또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배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열쇠는 우리의 괴물들을 죽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에 있다는 말이다. 거기에 괴물들이 결국 스스로와 화해하고 타인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멈추게 만들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누구라도, 그 싸움의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아포리즘에 동의하면서도, 그러나 동시에 괴물을 포용한다는 것이 그들을 우리의 평온한 저녁식사에 초대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환대’할 필요가 있는 괴물들도 있지만, 그 괴물들은 다른 이들의 투쟁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타자가 무조건적으로 환대해야 할 대상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거부해야만 하는 악은 분명 존재하며 따라서 그러한 악을 판별해 내는 것은 타자성을 다루는 모든 연구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차이’는 계속해서 논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와 루이 페르디낭 셀린(Louis Ferdinand Celine)은 현대문학을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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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2006-03-01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의 서재는 읽을거리가 많아서 좋아요. 좋은 하루되세요...

물만두 2006-03-01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추리소설이나 SF와 함께 괴기소설 걸작선이 출판되어 널리 읽혀 지고 있다. 이 책은 우리 나라에서 첫 발매된 본격 걸작선으로, 찰스 디킨스가 천하의 기서라고 격찬했던 『와일더의 손』의 작가 르 파누를 비롯하여 블랙우드, 러브크래프트, 매컨 등 근대 괴기소설 거장들의 대표작을 빠짐없이 수록했다. 이차원 세계의 괴물, 요괴, 원령 혹은 운명의 공포를 그린 이야기들은 환상과 전유르 초자연의 세계로 이끌어갈 것이다.

 

1.유령저택 / 불워 리턴
2.에드먼드 옴경 / 헨리 재임스
3.포인터 씨의 일기 / M.R 제임스
4.원숭이 손 / W.W 제이콥스
5.위대한 목신 / 아서 매컨
6.유충 / E.F.밴슴
7.비서의 기이한 이야기 / 알제논 블랙우드
8.염천 / W.F.하비
9.녹차 / 조지프 셰리던 루 파누

 이 책에 소개되는 무서운 이야기들은 공부하다 지쳤을 때나 너무 더워서 짜증나고 지루할 때 읽으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통해 모험심과 용기를 길렀으면 한다.

1. 도망가는 가구
2. 얼룩무늬 끈의 비밀
3. 검은 고양이
4. 어두운 거울속에
5. 바다를 떠도는 유령선
6. 가시나무 울타리
7. 원한을 갚은 고양이
8. 천년 묵은 여우
9. 원숭이 손

 로즈메리와 그녀의 남편 거이는 고대하던 브램퍼드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꿈에 부푼다. 장밋및 환상 때문에 불길하고 끔찍한 사건이 끊이지 않아 걱정된다는 친구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꿈속에서 폭행당한 로즈메리는 실제로 임신을 하게 된다. 그들 부부의 평온하고 행복했던 나날은 바로 그때부터 불길한 그림자 속에 싸여 기괴한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로 군림하였으며, 영화로도 제작되어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아이라 레빈은 본토박이 뉴욕 태생으로 거대한 도시의 부조리를 개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도시에 무한한 애착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무대도 뉴욕이 되는데, 여기에서는 맨해튼의 웨스트사이드에 위치한 오래 되고 고풍스러운 아파트를 등장시켰다.

이 작품은 음침한 악마숭배(Satanism)의 뿌리가 어떻게 한 복된 신혼생활에 파고들어가는가를 그리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구성이 아주 특이하다. 초반부에서는 도대체 이 작품이 미스터리 소설인지 가정소설인지 구분이 안 되고 의아할 정도로 밝고 경쾌하고 명랑하다. 너무나 평범하고 단순해서 어둡고 범죄적인 구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뒷부분으로 가면서 그 양상은 급속하게 달라진다. 즉, 이 소설의 주인공인 로즈메리 자신과 그녀의 태아를 중심으로 죄어드는 악마적인 음모와 그 치밀한 진행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영화는 품절이라 영화대신 책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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