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요일은 모르겠지만 매주 꼬박꼬박 메일함에 들어오는 저널에 '창비주간논평'이 있다. 시의성 있는 주제들이 다루어져 가끔씩 읽어보기도 하고 나 자신도 인문서 번역문제와 관련하여 한번 기고한 적이 있다. 발행 2주년을 맞아 창비주간논평이 단행본으로 묶여 나왔다. 아직 책은 받아보지 못했지만 선정된 56편 가운데는 내가 쓴 것도 포함돼 있다. 소개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8. 05. 15) 우리사회 진보지식인들의 '세상 프리즘'

창비가 인터넷과 블로그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겨냥해 매주 온라인으로 발행하는 ‘창비주간논평’이 발행 2주년을 맞아 라는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왔다. 무게있고 진지한 칼럼들이 외면당하는 현실에서 내로라 하는 한국사회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각종 정치ㆍ사회ㆍ문화적 현안을 매주 3,000매 안팎의 글로 짚어낸 인터넷 칼럼 연재가 2년 이상 지속돼 온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적지 않다.
2006년 5월2일 시작된 칼럼에 동원된 필자는 백낙청, 한홍구, 유지관 임형택 등 113명으로 167편이 실렸다. 이번에 나온 단행본은 지금까지 게재된 컬럼을 정치, 경제, 국제, 교육과 사회, 생태와 여성, 문학과 문화 등 6개 분야로 나누어 56편을 정선(精選)한 것이다.

다양한 쟁점들이 감당하기에는 호흡이 한 박자 느린 계간지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시작한 주간논평의 취지에 걸맞게 지난 2년간 한국사회의 쟁점이 됐던 각종 이슈를 빠짐없이 다뤘다. 한미FTA, 미국산 쇠고기수입과 광우병파동, 대통령선거, 이랜드사태와 비정규직 문제, 인수위의 영어교육안, 한반도 대운하, 삼성비자금 의혹, 조기유학, 고교평준화, 저출산현상, 대학가의 표절,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 세계곡물가 폭등 등 사회 현안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비판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가령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한반도 대운하 테스크포스 구성 시점에 맞춰 게재(2008년1월8일)한 박창근 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의 ‘공학적 관점에서 본 한반도 대운하’는 정치적 논쟁으로 변질된 대운하 논쟁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순식간에 11만건 이상의 조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한반도 대운하의 모델인 독일 대운하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을, 강수량의 계절적 분포차에 따른 주운용수(舟運用水)확보라는 관점에서 비교함으로써 대운하 찬성론자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정치권에서 밀어붙이면 공학적 근거는 당연히 따라온다는 묵시론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치적 집단사이에 서로 힘겨루기가 애처롭게 진행되고 있다. 전문기술자의 영혼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박 교수의 경고 후 각계 전문가들은 대운하 반대운동으로 힘을 결집시키고 있다.

2007년 8월21일 게재된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의 칼럼 ‘미국산 쇠고기수입과 광우병의 위험’에서는 한미FTA 타결의 경제적득실과 피해대책에만 주목하던 당시상황에서 10개월후 발생할 광우병 논쟁을 예고한 통찰력을 확인할 수 있다. “광우병 위험물질인 등뼈가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오히려 미국의 눈치를 보며 국민을 설득하는 관련 고위공무원들의 태도는 현장에서 열심히 방역에 힘쓰는 검역 실무자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들 뿐이다.” 그의 지적은 정권은 바뀌었으나 여전히 보신과 ‘말바꾸기’에 연연하는 요즘 당국자들의 모습과 그대로 포개진다.

이밖에도 이 책에서는 만연한 대학가의 표절문화를 꼬집은 김명환 서울대 영문과 교수의 ‘표절하는 교수, 표절하는 학생’(2006년10월31일),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성장제일주의의 프리즘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는 황정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칼럼 ‘성장주의에 갇힌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을 바꿔라’ (2007년5월29일) 등 게재 당시 네티즌들의 화제가 됐던 읽을거리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다. 모든 칼럼들은 창비주간논평 블로그(weekly.changbi.com)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구독신청을 할 수 있다.(이왕구기자)

08. 0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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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5-14 23:2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과 함께 읽으면 좋겠네요.그런데 다루는 쟁점들을 보니 이걸 화제로 이야기하다간 서로 목소리 높이고 얼굴 붉힐 사안이 많네요.

로쟈 2008-05-14 23:50   좋아요 0 | URL
빙고이십니다.^^
 

우리에게 5월은 무엇보다도 '80년 광주'의 5월이지만, 유럽인들, 특히 프랑스인들에게 5월은 '68년의 5월'이다. 올해 40주년을 맞이하여 그곳에서도 '기억의 전쟁'이 뜨거운 듯하다. 이에 대한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모처럼 지젝에 관한 언급도 있기에 '로쟈의 지젝'으로 분류해놓고. 사실 그의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의 한 장을 며칠전 읽기도 했다. 적어도 내가 읽은 대목(10장)에서 국역본은 차라리 '오역서'에 가깝다. 예전에 대충 넘겼던 것일까? 혁명은 다가오되, 저만치 비켜가는 듯하다...  

경향신문(08. 05. 13) [문화수첩]누가 ‘68혁명’을 끝났다 하는가

13일은 프랑스의 ‘1968년 5월혁명’에서 꼭 거론되는 날이다. 낭테르대 학생들이 대학당국의 권위주의에 대항해 3월22일 대학본부를 점거하며 시작된 학생운동에 노동자들이 총파업으로 가세한 날이기 때문이다. 80만명의 인파가 파리 시내에서 드골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경찰의 가혹한 진압에 맞서 싸웠다. 이후 68혁명은 미국, 독일, 일본 등으로 확산되며 전 세계를 변혁의 열기로 가득 채웠다.



그 날로부터 꼭 40년. 역사가 되기에는 너무나 가깝지만 이 사건은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기억’의 전쟁터가 되고 있다. 시발점은 지난해 프랑스 대통령이 된 니콜라 사르코지다. 그는 당선 직후 “68년 5월 이래 좌파들은 ‘성과’와 ‘노력’을 거부하고 ‘노동’의 가치를 내던졌다”며 68 청산을 주장했다. 올 들어 프랑스에서는 68과 관련한 책이 수십 종 출간됐다.



68 당시 주역인 다니엘 콩방디 현 유럽의회 의원처럼 “두 번 이혼한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된 것도 68의 유산 덕”이라고 68을 옹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68 때 공산당원으로 참여했으나 대선 때 사르코지 지지선언을 한 철학자 앙드레 글뤽스만처럼 “68은 파묻어야 할 유물”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국내에서도 판박이 기억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언론들이 68혁명 40주년 특집에서 68세대와 한국의 386세대를 연결지으며 이들의 시대는 끝났음을 공언하고 있는 반면, 또 다른 쪽에서는 ‘68혁명을 매장하려는 시대’ 등의 칼럼으로 이를 반박한다.

68년 5월 ‘거리의 정치’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드골이 곧 권력을 회복했고,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갔으며,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감으로써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간 듯했기 때문이다. 유일한 성과인 프랑스 대학 국유화는 지금 신자유주의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게다가 긴 관점에서 68혁명은 신자유주의의 출현을 촉발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영국 BBC 월드 라디오가 지난 7일 방송한 ‘거리의 철학(Philosophy in the Streets)’을 들어보자. 23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는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질 들뢰즈, 기 드보르 등 68이 낳은 당시로선 ‘차세대’ 철학자들의 육성 강연·인터뷰와 지금 활동 중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등의 목소리를 담아 “68이 기획했던 거리의 정치는 실패했지만, 거리의 철학은 성공했다”고 말한다. 오늘날 전 세계의 철학과 미학, 정치,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새로운 혁신과 변화를 이끈 68세대의 뒤에는 철학이 있었던 것.



바디우는 “68년 5월의 의의는 새 가능성의 실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 가능성의 창조에 있다”며 “사르코지가 68이 끝났다고 했지만, 철학은 68이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줄 정치적인 의무를 갖고 있다”고 했다. 지젝은 “68년 5월의 메시지는 절대적으로 생생히 살아 있다”면서 “우리는 여전히 급진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했다. 방송은 지젝이 인용하는 68혁명의 슬로건과 당시 거리의 함성을 오버랩하며 맺는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동시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다시듣기 http://www.bbc.co.uk/worldservice/aboutus/2008/05/080501_philospophy_streets.shtml )(손제민기자)

08. 0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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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5-13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법처리한다는 협박이 드디어 공식적으로 터졌습니다.

로쟈 2008-05-14 00:1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70-80년대로 회귀하는 모양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13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드레 글뤽스만은 70년대 말부터 우익으로 전향했는데 이제 아예 사르코지를 지지했군요.
우리나라 대학생들은(하기야 유치원 때부터이지만)선후배 따지며 위계질서 세우는 악습 좀 고쳐야 합니다.그리고 대학 안나온 사람도 있다는 걸 알고 처음 본 사람에게 학번 좀 묻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분위기 진짜 개판됩니다.우리나라 민주화운동엔 68혁명과 같은 문화혁명이 없으니까 진보니 뭐니 떠드는 인간 중에서도 나이 따지고 여성차별하고...아이고...말하기도 싫어...우리나라 학교가 최소한 중국이나 일본 정도의 선후배관계만 되어도 좋겠습니다.우리나라 사람들이 선배한테 예의지키듯 부모를 대하면 모두 효자효녀가 될걸요.

로쟈 2008-05-14 00:17   좋아요 0 | URL
신입생 얼차려도 여전한 걸 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군사문화의 잔재라고들 하는데, 꽤나 오래가는/오래갈 듯싶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14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상봉 씨가 서경식 씨에게 형님이라고 하겠다고 말하니 서경석 씨가 그러면 안된다고 했다죠.서경식 씨 말이 맞습니다.그런데 저는 김상봉 씨같은 분도 형님 병에 걸렸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방정환 선생이 어린이에게 존대말을 써야 한다고 했죠.이 예절만 지켜도 우리나라 특유의 폭력적 위계문화는 완화될 겁니다.
그리고 386이니 475니 하는 용어 안쓰기 운동이라도 해야지 원...특히 70년대에 대학물 먹은 이들이 전인구의 몇%나 되었다고...그리고 운동선수가 신인이면 신인이지 고졸신인... 꼭 학력을 표기해야 하는지...

로쟈 2008-05-14 23:21   좋아요 0 | URL
저도 <만남>에서 그 대목은 읽었습니다.^^;

섬나무 2008-05-1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에서 김호기 교수가 이번 사태로 등장한 세대를 2.0세대라고 했는데요 어쩌면 서경식씨는 이런 우리의 모습에서 다시 희망을 보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프랑스가 68세대 이후 '68세대를 매장하려는 시대'를 살고 있다면 말입니다.
'2.0세대는 불편한 것은 참지 않는다 그들의 촛불집회는 쇠고기에 앞서 4.15 학교 자율화 조치가 있다는 걸 간과하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말은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동시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라는 68혁명의 슬로건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느낌입니다. 하여간 일반인인 저에게도 이번 현상은 매우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로쟈님 전 요즘 애들이 독서랑은 거리가 먼 애들이란 점에 특히 필이 꽃혀 있습니다.ㅎㅎ

로쟈 2008-05-14 23:01   좋아요 0 | URL
요즘 20대는 절망적이라는 설이 많은데, 자라나는 10대들은 좀 다른가 보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5-14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하튼 중년 이상 세대보다는 10대 20대들이 순수한 것은 사실입니다.문제는 이미 청소년 연령대 쯤이 되면 학교체벌을 통해 부당한 폭력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는 거죠.
우리나라에 68혁명 같은 것이 일어나면 학생들은 먼저 학교체벌을 상징하는 존재(각 학교에 한두명 씩 있다는 미친 개...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들을 조리돌림해야 합니다.물론 선배가 후배를 체벌하는 관행 없애기도 빼놓을 수 없죠.

로쟈 2008-05-14 23:22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조리돌림'^^

노이에자이트 2008-05-14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리돌림한 뒤에 학교 나무에 묶어놓고 자아비판시킨 뒤에...음...그 다음엔 뭐할까요?

로쟈 2008-05-15 00:08   좋아요 0 | URL
내빼야 하지 않을까요?..

노이에자이트 2008-05-15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에 묶어놨으니 못 내뺍니다.아...칠성판에 묶어놓고 그동안 학생들을 때린 도구-밀걸레 자루,각목,골프채,야구 방망이_등으로 되갚아 주면서 이렇게 외치도록 해야 합니다.이건 사랑의 매야!!! 퍽!!! 이건 사랑의 매야!!!퍽!!!

심술 2008-05-16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두 분 다 너무 웃기십니다. 코미디언 하셔도 되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08-05-16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심각한 이야기만 하는 것도 재미없어서 웃겨봤어요.하지만 아직도 구타,체벌이 있다는 현실은 슬퍼요.
 

지난주 시사인의 특집기사 중 한 꼭지를 스크랩해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94#). '육류를 먹느냐 마느냐' 혹은 최소한 '어떤 육류를 먹느냐'를 고민하는 데 자료로 삼을 만하다.

시사인(08. 05. 07) 참혹하게 사육해 잔혹하게 죽이는 인간아, 인간아

5월2일 밤. 조류 인플루엔자(AI)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파에도 불구하고 서울 중심가의 고깃집들은 여전히 복작거렸다. 고소하고 담백한 육즙과 쫀득쫀득 씹히는 맛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탓이리라. 회사원 이 아무개씨도 일주일에 두세 번 고깃집에 간다. 메뉴는 돼지고기·쇠고기 가리지 않는다. “입을 즐겁게 하고,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고,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서 자주 먹는다”라고 이씨는 말한다. 고기의 안전에 대한 두려움? 그런 것은 이미 외면한 지 오래다. 맛만 좋으면 고기 메뉴는 언제든지 OK!

이씨같이 열심히 육류를 먹어대는 사람 덕에 지난 1~3월에만 우리나라에서 가축 1억5300여만 마리가 도살되었다(한우 14만4895마리, 젖소 1만7176마리, 돼지 352만6749마리, 닭 1억3807만7093마리, 오리 1158만1800여 마리). 지금도 전국의 축산 농가에서 약 2억5000만 마리의 가축이 사람 입속으로 들어가려 ‘대기 중’이다. 2006년 현재 우리나라 사람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33.6kg(돼지고기 18.1kg, 닭고기 8.6kg, 쇠고기 6.8kg).



돼지는 5개월, 소는 3년, 닭은 100일 되면 도살
문제는 맛있는 고기를 생산하려 각다귀같이 가축을 착취한다는 점이다. 사육장에서 닭이나 돼지 등은 이미 동물이 아니다. 공장화하면서 고깃덩이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다. 돼지는 좁고 더러운 우리에서 생활하며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이 뒤섞인 사료를 먹고 뒤룩뒤룩 살만 찌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자료에 따르면, 법적으로 사용 가능한 항생제만 350종이 넘는다. 운동? 그런 호사 따위는 없다. 태어나서 5개월 남짓 꾸역꾸역 먹은 뒤 체중이 110kg가량 되면 가차 없이 도살장행이다. 수퇘지는 고환에서 나는 웅취(雄臭)라는 냄새를 제거하고, 고기 맛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거세까지 당한다.

비육우도 별로 다르지 않다.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이 뒤섞인 사료를 먹고, 고기 맛을 더 고소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50%가량이 거세당한다. 수명도 과거에는 20년 가까이 되었으나, 지금은 길어야 3, 4년이다. 닭이나 오리의 일생은 더욱 비참하다. 사육장은 마치 강냉이 자루를 연상시킨다. 외모도 달라졌다. 병아리 때 ‘야성’을 순화시키려 진통제 없이 볏과 부리를 잘라낸 탓이다. 부리가 뾰족하면 모이가 사방으로 튈 확률이 높다. 사료 값도 아끼고 ‘닭싸움’도 줄이려 그악스러운 방법을 시행하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 하나. 육계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길어야 100일이다. 알에서 부화한 지 두세 달 만에 도계장(屠鷄場)으로 직행하는 것이다(그나마 암탉들만 그렇다). 재래종에 비해 세 배나 빨리 죽음을 맞는 셈이다. 산란 능력도 생기기 전이니까, 사람으로 치면 열 살 남짓. 반면 성장 속도는 1970년대 닭보다 세 배나 빠르다. 문제는 뼈의 성장 속도가 근육과 지방의 증가 속도를 못 따라잡는다는 점이다. 그 바람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거나 다리를 절거나 고질적인 뼈 관련 질환을 앓는 닭이 부지기수이다.

사육장에서만 비극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가축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지라 할 도축장에서도 재연된다. 현재 우리나라 도축장 수는 모두 88개(닭은 도계장 4곳과 각 양계회사에서 따로 도축한다). 지난 4월 말, 그 가운데 한 곳을 찾았다. 한우를 일고여덟 마리씩 실은 차가 분주히 오가는 입구에 들어서자, 역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피비린내와 가축의 오물이 뒤엉킨 냄새.

도축장 안쪽에 있는 쇠고기 경매장으로 가는 오른편에 갓 잡은 돼지가 수천 마리 걸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핏물이 번져 있었고, 사방에서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진동했다. 10분도 안 되어 온몸이 얼얼하고, 머리가 띵했다. 경매장 옆에는 하루 전에 잡은 500여 마리의 소 도체가 걸려 있었는데, 대가리와 네 발을 자르고 껍질을 벗긴 탓에 더없이 참혹해 보였다. 랩에 먹음직스럽게 싸여 있던 백화점의 고기와 이 고기가 전혀 다른 것 같았다. 도축장 관계자는 이곳에서 경매된 고기가 “전국의 정육점과 음식점으로 출하된다”라고 소개했다. 



도살장 안의 풍경은 어떨까. 도축장 관계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도축장은 보여주지 않는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대신 살풍경한 도축 과정을 또 다른 관계자로부터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축의 ‘생애 마지막 날’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일단, 축사에서 출하된 소나 돼지는 트럭에 실려와 계류장에 부려진다. 계류장은 가축이 이송 중에 받았을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곳.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어주지 않으면 물퇘지(살이 창백하게 물러지면서 고기 맛이 떨어지는 돼지. 도축 돼지의 약 8%에서 발생한다) 같은 부작용이 나타난다.

그런데 기자가 찾아간 도축장의 계류장은 오히려 스트레스 지수를 더 높일 것 같았다. 우리가 비좁았기 때문이다. 돼지 수십 마리가 엉덩이와 머리를 맞댄 채 눈을 끔벅이고 있었다. 소 계류장도 협소했다. 도살장의 문이 열리면 가축은 제 운명을 예고하듯 구슬픈 울음소리를 토해낸다. 소의 경우 과거에는 주로 (혹처럼 가운데가 툭 튀어나온) 쇠망치를 이용한 ‘타격법’으로 도살했다. 그러나 지금은 ‘화약 피스톨’을 이용한다. 피스톨 안의 손가락만 한 쇠뭉치로 쏴서 정수리를 강타하는 것이다. 이때 소는 죽지 않는다. 기절해서 픽 쓰러질 뿐이다. 소가 죽으면 피가 굳어서 방혈(防血)을 할 수 없으므로, 기절시킨 뒤 멱(경동맥)을 따는 것이다.



도축하는 소 가운데 겨우 1%만 검역
방혈한 상태에서 소가 해체되는 시간은 의외로 짧다. 거꾸로 매단 뒤 대가리를 자르고, 가죽을 벗긴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장을 적출하고, 하루 정도 ‘숙성’시킨다. 이후 반으로 절단한 뒤 경매에 부치면 우리가 먹는 상품이 된다. 600kg짜리 수소에서 나오는 순수 고기는 약 360kg. 체중의 약 60% 정도다. 

돼지의 최후는 소보다 더 끔찍하다. 도살 방법은 가스법과 전살법(電殺法) 두 가지. 전살법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떠올리게 한다. 일단 돼지를 커다란 엘리베이터에 태워 지하 가스실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산화탄소(CO₂)를 뿌려 질식시킨다. “질식시킨 뒤의 작업은 소와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부 돼지는 ‘오겹살용’으로 팔기 위해 껍질을 벗기지 않는다는 점이다”라고 도축장 관계자는 말했다. 잔인하기는 전살법도 마찬가지다. 돼지를 깨끗이 씻긴 뒤 무빙 도로처럼 생긴 에스컬레이터에 세운 채, 전기로 기절시켜 도살하는 것이다.

더 안쓰러운 것은 ‘1차 충격’에서 기절하지 않는 소나 돼지이다. 도축사는 그들의 의식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기절한 소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소나 해체해야 할 원자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도축장에서도 그같은 일이 빈번하다. 도축법에서 “식육용으로 도축하는 포유류를 도살 전에 기절시켜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지키는 도축장이 드물다. ‘인도적 도축’을 사찰하는 담당관이 입회해야 하는데, 지켜지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이다. 

고기의 안전을 점검하는 검역은 어떨까. 서울 가락동 도축장의 경우 서울시환경연구원에서 파견 나온 수의사가 일부 소의 뇌를 추출해 광우병 여부를 검사한다. 그러나 그 수는 미미하다. 도축 소 8만~9만 마리 중에 겨우 1100마리만 한다. 1%가 조금 넘는 수준. 일본의 전수(全數) 조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다. “2002년에만 소 150마리가 폐기되었다. 그러니 지금은 농가에서 관리를 잘해서 문제 소가 별로 없다”라고 김은 검역관(수의사)은 말했다.



닭의 최후도 안쓰럽다. 트럭에 실려온 닭은 모래처럼 전기가 흐르는 수조에 부려진다. 일순간 닭은 전기에 감전되어 기절하고, 그 순간 발목에 차꼬가 차이면서 곧바로 컨베이어 벨트에 거꾸로 매달리고, 대가리와 몸통을 잡아 늘여서 털을 뭉텅 뽑아내고 대가리와 내장을 제거한다. 기계화한 도살 라인은 그같은 작업을 분당 90여 건씩 해치운다(<죽음의 밥상> 피터 싱어 외 지음). 한 시간 만에 7200마리가 먹기 좋은 고기로 포장되는 것이다. 몇 년 전 ‘닭 공장’을 견학한 적이 있는 박 아무개씨는 “닭털을 뽑고 내장을 처리하는 과정이 얼마나 끔찍한지, 이후 몇 달간 닭고기를 입에 대지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도축사가, 아니 우리 인간이 흔히 간과하는 일이 있다. 동물의 감정과 지능이다. 피터 싱어에 따르면, 놀랍게도 가축은 인지 능력이 있고 고통을 느낀다. ‘새대가리’라 불리는 닭도 다른 닭을 90마리까지 구분하고, 누가 (모이를) 쪼는 순서에서 위인지 밑인지 구분한다. 게다가 신경계가 인간과 비슷해, 누군가 자기를 해치려 하면 인간과 비슷한 행태적·심리적 반응을 나타낸다.



돼지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사회성이 뛰어나다. 영화 <베이브>에 나오는 양 치는 돼지는 결코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이처럼 존재감이 뚜렷한 가축이 고깃덩이로 전락한 데는 인간의 욕심 탓이 크다. 더 많이, 더 맛있게, 더 값싸게 육류를 섭취하려는 욕구가 가축을 고깃덩이 혹은 원자재로 전락시켰다.

식량난·온난화·물 부족 몰고 오는 육식
자료에 따르면, 인류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전 지구로 확산 중인 광우병과 조류인플루엔자도 공장식 사육의 결과물이다. 어디 전염병뿐인가. 잃는 것도 많다. 동물을 더 빨리 살찌우기 위해 쏟아 붓는 곡물이 전세계 생산량의 40%나 된다. 그같은 곡물을 입에 대지 못해 굶어죽는 사람이 한 해에 수천만명이나 되는데도 말이다. 가축을 풀로만 키우면 4억 명을 먹여 살릴 양(1억3000만t)의 곡물을 아낄 수 있다.



채식을 하는 것에 비해 육식이 지구상의 식물을 10배 이상 파괴한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가축이 만들어내는 배설물도 인간을 괴롭힌다. 소는 인간의 20배, 돼지는 4배의 배설물을 내놓는다. 지구 온난화의 한 원인으로 꼽히는 매탄가스의 약 15%가 그같이 어마어마한 가축의 배설물 때문에 생겨난다. 물 소비량도 엄청나다. 독일의 ‘사회생태학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쌀 1kg과 밀 1kg을 생산하는 데 각각 3000ℓ· 1000ℓ의 물이 들어간다. 그런데 돼지고기 1kg을 얻는 데는 무려 5000ℓ나 들어간다.

가축에 대한 잔혹한 착취, 육류가 안고 있는 여러 불안과 문제를 생각하면 채식이 가장 인간적일지 모른다.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도 지난 22년 동안 육류와 생선은 물론 우유와 벌꿀조차 입에 대지 않는 베건(vegan)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껏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처럼 먹으라는 소리는 할 수 없지만, 내 기준으로는 고기가 건강에 전혀 영양을 미치지 않는다”라고 이 대표는 말했다. 적극적인 채식주의자들은 육류가 암이나 심혈관계 질환의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당뇨나 고혈압, 비만이나 순환기계, 암 전문의도 과도한 육류 소비를 주요 발병 인자로 꼽는다.
 
그렇지만 영양을 걱정하는 사람은 고기를 끊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 의사나 영양학자들은 육류 섭취를 권장한다. 한국영양학회 자료에 따르면, 성인에게 필요한 1일 단백질 양은 ‘5분량’이다. 1분량은 육류 60g이나 생선 50g, 달걀 1알, 콩류 20g, 두부 80g(약 4분의 1모) 정도를 말한다. 그러니까 하루에 고기 60g(1분량), 생선 50g(1분량), 달걀 1개(1분량), 두부 80g(1분량) 등을 먹으면 필요 단백질이 충족되는 것이다. 문제는 균형이다. “쇠고기를 1인분(200g·3분량) 먹고, 달걀 두 알로 충족시키는 식은 곤란하다. 골고루 조화롭게 섭취해야 이롭다”라고 장영애 박사(한국보건산업진흥원 수석연구원·영양정책지원센터)는 말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지금 미국산 쇠고기 탓에 특별한 교차로에 서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은 농림수산식품부 관료들이 믿는 것처럼, 유령 아니면 환상 혹은 착각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류는 이미 에이즈나 광우병 등을 유령처럼 여기다가 큰코다치는 경험을 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모든 위험을 국민에게 떠안기고 있다. 결국 고민과 선택은 햄릿처럼 우리 자신이 해야 한다. “육류를 먹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오윤현기자)

08. 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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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5-12 14:02   좋아요 0 | URL
미래의 어느 날, SF드라마 'V'의 파충류 외계인과 같은 뛰어난 과학기술을 지닌
육식성 외계인이 인류를 단백질 공급원으로 삼아 도살, 냉장 보관할 때..
무어라 항변할 것인가? 싱어가 그랬던가요?


Sati 2008-05-12 20:15   좋아요 0 | URL
저는 그런 날이 좀 왔으면 좋겠어요. 농담반진담반.

로쟈 2008-05-12 20:22   좋아요 0 | URL
이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옥화'가 더 가속화되지 않을까 싶어요...

가넷 2008-05-12 17:45   좋아요 0 | URL
정말 무시무시하네요...;;;

육류를 즐기지는 않지만, 이걸 보니까 그다지 먹고 싶어지지 않네요. 그렇다고 채식주의자가 될 자신은 없는데, 어쩌나 싶네요.ㅎ;

로쟈 2008-05-12 20:27   좋아요 0 | URL
현재 인류사의 어느 시대보다 더 많은 육식을 하고 있고 문제는 그러한 과다육식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굳이 채식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먹는 고기의 '경로'를 확인하는 것이 작은 실천이 된다고 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5-12 21:00   좋아요 0 | URL
덩치 키우기 위한 품종개량으로 비육우는 1톤 넘긴 것은 예전에 나왔구요.들소보다 더 커요.
투견 피 섞은 우리나라 식용견은 수컷이 60킬로까지 나가는데 이런 개가(투견 피를 섞은)달려들면 무시무시하죠.

로쟈 2008-05-13 20:03   좋아요 0 | URL
사실 2년, 3년동안 최대 중량으로 '생산'해낸다는 것 자체가 비인도적인 처사죠...

Arch 2008-05-13 08:37   좋아요 0 | URL
전 글 읽다가 눈물 나와서 혼났어요. 평소에 냄새나지 않고, 육질이 좋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미식가랍시고 설치고 다닌게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동물도 고통을 느끼고 인식할 수 있는데. 제 탐욕이 역겨웠습니다. 왜 이 시대는 '적당히'란게 없는지.

로쟈 2008-05-13 20:04   좋아요 0 | URL
문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특히 미국식 문명) 회의를 갖게 됩니다...

드팀전 2008-05-13 09:17   좋아요 0 | URL
<사육과 육식>은 서점에 가서 잠깐 보다가 왔어요. 다른 책들에 밀려서 내려놓고 말았지요.

로쟈 2008-05-13 20:04   좋아요 0 | URL
두툼하고 그런 만큼 비싸죠.^^;

섬나무 2008-05-13 10:19   좋아요 0 | URL
내가 육식을 즐기지 않는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 세상에 빚을 덜 진다니 기뻐해야하는 일인지 슬퍼해야하는 일인지 모르겠네요. 우리 식구들이 몽땅 육류최소섭취주의?가 된 건 타고난 식성이나 기질 탓인지 모르지만 고기반찬이 전무한 밥상에 길들여진 부분도 있는 듯합니다. 아들이랑 딸이 늘 그렇게 말합니다. 엄마는 우리가 토낀줄 알지? 음식의 영양가나 맛 멋에 별 관심 없는 주부걸랑요..ㅎㅎ 최대한 자연에서 받은 걸 감사히 먹자 주의입니다. 하여간 먹을 게 넘치는 시대에 살면서 그놈의 영양 타령 듣기 싫습니다. 영양학자의 말이란 내가 일순위로 무시하는 말이지요. 티브이프로그램들 맛있는 음식 소개하는 게 한창 유행이었는데
짜증 엄청 느꼈습니다. 요샌 아예 음식 나오는 장면만 봐도 돌립니다.
젠장 어디선 굶어죽어가고 있는데...

로쟈 2008-05-13 20:05   좋아요 0 | URL
탐식자들이 '지옥'에서 어떤 고통을 받는지 어릴 때부터 주입을 좀 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2008-05-15 0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15 0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털세곰 2008-05-17 05:22   좋아요 0 | URL
90년 이후로 처음, 가두시위 내일 여의도로 나갑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지 않나요? 앉아서 키보드 워리어로 있기에는 이젠 상황이 너무 중차대한 것 같습니다. 이럼에도 오늘 강의나가는 학교의 자유게시판들은 허탈하더군요. 그래서 어쩌라고??? 가 대세였습니다. 우리도 공부 안 할때는 쉬고 싶지 그런곳에는 가고 싶지 않다나...? 언감생심 오는 것 까진 바라지 않지만 생각이라고 그렇게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을...
오늘 학교에서 홍세화 선생의 <그대는 무식한 대학생>이라는 주제의 특강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 붙어있었습니다. 옆을 지나던 학생들 왈, "우리가 무식해?" "그렇다네, 깔깔깔..."
알아야 질문을 하고 뭐가 무식하다는지 모르니 깔깔댄다 싶어 정말 할 말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찌하야 이런 때가 왔는지...

로쟈 2008-05-18 22:35   좋아요 0 | URL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대학축제마다 원더걸즈 공연이더군요. 요즘 촛불시위에 나서는 10대들은 좀 다르다고 하니까 그들에게나 기대를 걸어봐야겠습니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서울에서도 확산되는 모양이다. 미국산 쇠고기 파문에다가 유전자변형 옥수수까지 들어오는 판에 가금류조차도 주의식품이 되어 가고 있다. 기억엔 나도 지난 두어 주 동안 탕종류나 곱창 등을 먹지 않았다. 개념도 없고 도덕도 없는 정부 덕에 육식을 덜하게 됐으니 건강이라도 챙겨두어야겠다(하지만 요즘 컨디션은 왜 이리 저조한지. 기력이 다 증발하여 요양이라도 가고픈 심정이다). 오래전에 쓴 시가 생각이 나서 옮겨놓는다. '닭곰탕'이 소재인데, 잠깐 분식점을 하던 때 우리집의 주요 메뉴이기도 했다(흠 당분간은 먹을 수 없는 것인가?).

닭곰탕을 먹으며
                            닭은 조류이다, 명목상.
                           - <닭의 닭에 의한 닭을 위한 사전>에서

무가 빠진 닭곰탕을 먹는다, 나는 “무가 빠졌어요!”라고
속으로 외친다. 항의한다. 항거한다. 속으로. 그러나

다 먹는다. 내게 주어진 밥, 내게 주어진 닭, 살, 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肉化된 닭의 언어들. 내일은 찜이 되거나 죽이 될, 아니면
또 탕이 될 소망들, 희원들, 목놓아 새벽을 부르던-
부르다 지쳐 쓰러진 닭도 있었다, 그러다 죽어간 닭도 있었다, 미처 
닭인 줄도 모르고 죽어간 닭도. 그러나
그걸 기억하는 닭이, 동족의 울음과 통곡이 새벽을 가져오리라
믿는 닭이 어디에 있으랴!

무가 빠진 닭곰탕은 무가 빠진 닭곰탕일 뿐이다.
빠진 건 빠진 거고 있던 건 닭곰탕. 이젠
그마저 밥상에 없다.
“없는 건 없는 거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젠 목젖이 붓는 소리
들리지 않고 새벽은 조용조용히 온다.
새벽은 조용조용히 항의하며 조용조용히 항거한다.
덕분에 그날이 그날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닭고기를 먹은 것일까?)

08. 05. 12.

P.S. 사진은 작년의 6월 항쟁 20주년 범국민대행진 행사의 한 장면이다. 20년전 가두시위 현장을 재연한. 1987년 6월 부산에서 학생과 시민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찰을 향해 한 시민이 "최루탄을 쏘지말라"며 달려가는 모습을 찍은 아래의 유명한 사진은 AP통신이 1999년 발표한 '20세기 100대 사진'에 선정된 바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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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무 2008-05-1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중고생들의 촛불을 보면서 항거 세대와 항거 이유가 세대교체되는 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용조용한 항거로 그날이 그날인 절망적인 사태지만 현정부의 공이 없는 건 아닙니다. 시멘트바닥 속엔 어김없이 흙이 있다는 증거를 표면화시켜주었다는 점에서...
학생들 배후의 불순세력 조종론을 펴던데 난 고2 아들에게 촛불집회 나가라고 권고했습니다. 잡아가려나? 요즘 일을 그런 식으로 해결하던데...
참 놀랍기 그지 없습니다. 어떻게 딱 그렇게 그만큼 그런 모습을 이렇게 쉽게 드러내는지... 너무 절망적입니다.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 돈에 눈이 먼 대통령을 뽑고 다시 그 당을 선택하는 걸 보면서 이제 우린 망했구나 싶었는데... 최소한 그 대통령을 견제할 당을 선택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었으니까요.-다른 지역은 제외하고 눈길을 끌던 서울의 몇 몇 곳-
누군가 대중은 우매하다고 했던 말을 줄창 곱씹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의 냉소주의도 우매하긴 마찬가지 같구요.



로쟈 2008-05-12 11:22   좋아요 0 | URL
너무 절망적이시면 '지옥'과 다름없는데요.^^; 이번 사태로 언론도 너무 분명하게 편이 갈라졌기 때문에 '교육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민갈 수 없다면 어떻게든 두눈 부릅뜨고 버텨봐야죠...

시비돌이 2008-05-12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닭곰탕 사진은 홍대 앞 다락투에서 찍은 것 아닌지요? ^^

로쟈 2008-05-12 20:28   좋아요 0 | URL
그저 가져온 이미지라.^^; 집에서 먹던 건 감자와 당면이 조금 더 들어가야 합니다.^^

시비돌이 2008-05-12 22:02   좋아요 0 | URL
제가 거길 가끔 가는데, 그릇 모양, 깍두기 그릇, 테이블 색깔 등이 다 같아서요. 괜히 반가운 마음에,,, ㅋㅋ
 

새로 출간된 책들 가운데 아서 단토와 반룬의 미술 관련서와 함께 눈에 띄는 건 자본주의 분석/비판서이다(이 정도면 리뷰를 읽어야 하는 부담도 줄어든다).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자본주의>(김영사, 2008)와 앤드루 그린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필맥, 2008)가 후자에 해당하는 두 권의 책이다. 며칠전에 읽은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슈퍼자본주의의 태동에 대한 라이시의 설명은 음미해볼 만하다).

한겨레(08. 05. 08) '대량해고 가해자’ 당신, 시민으로 돌아가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에게 익숙한 ‘신자유주의’ 체제를 미국 빌 클린턴 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버클리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슈퍼 자본주의’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의 책 <슈퍼 자본주의>(슈퍼캐피털리즘)(형선호 옮김, 김영사 펴냄)에서 말하는 슈퍼 자본주의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급속히 미국화한 한국 경제에 적용해 보더라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라이시가 꼽은 슈퍼 자본주의의 특징은 권력이 ‘시민’의 손에서 ‘소비자’와 ‘투자자’ 쪽으로 이동하면서 민주주의가 쪼그라들었다는 점이다. 그는 이를 “민주주의적인 자본주의를 슈퍼 자본주의가 대체했다”고 했다.

2차대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미국은 독점적인 소수 거대기업들과 거대노조, 정부간 협상을 토대로 적절한 통제 속에 높은 생산성과 수익을 달성했다. 그리고 그 성과를 비교적 골고루 분배함으로써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되고 예측 가능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대기업 독점 탓에 신참들의 진입장벽은 높았고 여성들과 소수민들은 여전히 2등 시민 대우를 받았으며 매카시 의원의 공산주의 마녀사냥도 상처를 남겼으나 ‘황금기에 가까운 시대’였다. 슈퍼 자본주의는 이를 승리한 자본주의, 패배한 민주주의로 해체해 버렸다.

이 슈퍼 자본주의로의 전화를 설명하는 라이시의 시각이 독특하다. 그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나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정권이 주도한 신보수주의나 신자유주의, 또는 워싱턴 컨센서스, 신고전파 경제학 등이 슈퍼 자본주의를 낳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미 시대상황이 그렇게 변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들은 변화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그것을 합법화시켰을 뿐”이라는 것이다. 탈규제는 레이건이 1981년 백악관에 입성하기 10년 전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라이시는 슈퍼 자본주의의 시초를 냉전시기 미 국방부가 주도한 전쟁기술 개발에서 파생된 신기술의 민간전용에서 찾았다. 인터넷, 반도체, 컴퓨터, 광섬유, 인공위성, 자동변환장치 등이 대표적인데, 컨테이너의 사용도 베트남전 때 본격화했고 보잉 707여객기나 747점보제트기는 각각 폭격기와 군수송기 기술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이들 신기술이 탈규제, 세계화를 촉진하고 동시에 서로 결합되면서 생산과 운송비용을 급격히 낮췄고, 전지구를 커버하는 통신망이 그 효과를 증폭시켰다. 비용절감을 통한 경쟁력 높이기 무한경쟁이 시작돼 싼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부품·서비스의 전지구적 공급체계가 등장했다. 오로지 최저가주의로 성공한 월마트가 말단을 이루는 이 전지구적 공급체계가 신참들이 틈입할 수 있는 구멍들을 만들어 주면서 난공불락의 거대기업 독과점체제가 축을 이룬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를 근저에서 무너뜨렸다. 이것은 유럽·일본의 재건과 함께 미국 경제의 절대우위가 무너진 데 따른 결과라는 따위의 시각과는 다르다.

어쨌든 승자 독식의 슈퍼 자본주의는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했으며 투자자에게는 더 나은 수익을 가져다 주었다. 여기서 대다수 서민들까지 투자자·투기꾼으로 나선 슈퍼 자본주의의 위선과 딜레마가 발생한다. 예컨대 월마트가 싸게 팔려면 물품 공급자에게 가격인하를 압박하고 직원들 임금을 깎아야 한다. 이는 저임금과 해고를 일상화하고 자원남획에 따른 환경파괴를 부른다. 대량소비에 길든 소비자는 환경파괴를 걱정하면서도 스포츠실용차(SUV) 구입을 주저하지 않는다. 저물가 혜택을 누리는 소비자는 이렇게 해서 장기적으로 자신의 존립근거인 사회 전체의 자산을 파괴한다.

주가에 울고 웃는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대량해고를 주저하지 않았던 제너럴일렉트릭의 잭 웰치의 예에서 보듯 주가를 올리지 못하는 기업이나 최고경영자들은 설 자리가 없다. 주식을 사서 차액을 남기려는 투자자는 결과적으로 대량해고의 가해자가 되고 다수 서민들의 희생으로 고수익을 누리면서 사회적 비용을 키운다. 게다가 문제는 그 소비자와 투자자가 바로 ‘나’요 ‘당신’이라는 점이다.

모두가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회에서 ‘공익’은 어디로 가나? 라이시는 슈퍼 자본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게임의 규칙을 바꿔 강자들을 규제하고, 규칙에 따른 손해는 각자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안의 ‘소비자’나 ‘투자자’가 아니라 ‘시민’에게 더 큰 발언권을 주자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업들한테 수익 추구의 자유를 보장하되 “그들이 룰을 정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한승동 선임기자)

한겨레(08. 05. 08) '정부의 손’ 벗어난 시장 양극화 질주

“1970년대의 마르크스경제학 르네상스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이론가 중 한 사람”이라는 앤드루 글린(1943~2007)의 <고삐풀린 자본주의-1980년 이후(Capitalism Unleashed: Finance, Globalization and Welfare)>(필맥 펴냄)는 최근 30여년간 전지구적 현실이 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했으며 어떤 문제에 봉착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글린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쓴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의 후속작이다.

1980년 이후를 고삐 풀린 자본주의라 하면, 전작이 담고 있는 45년부터 80년까지의 자본주의는 고삐에 매인 자본주의라 할 수 있을까. 고삐란 이윤을 좇는 자본과 기업에 대한 사회공동체, 노동자, 국가, 국제사회의 규제와 통제다. 고삐에 매여 있던 시기의 자본주의는 고성장과 저실업, 고용안정, 번영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하지만 고삐풀린 뒤의 자본주의 성적은 좋지 못했다. 고삐가 풀리기만 하면 더욱 높은 경제효율성과 생산성을 달성하고 더 나은 삶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던 신자유주의자들의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90년 이후 1인당 생산성 증가율은 1973~79년보다 더 낮아졌다. 자본과 기업의 힘이 커지고 노동자의 힘이 졸아든 양극화시대에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나빠져 불만이 커지고 있다. 대안이 있을까? 저자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복지제도가 생산성을 위축시킨 증거가 없고 영미권에 비해 평등하며, 전반적으로 평등주의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강하다는 점에 주목한다.(한승동기자)

08. 05. 11.

P.S. 라이시와 글린의 구분을 따르자면 현단계 자본주의는 '슈퍼자본주의'이고 '고삐 풀린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 원론이나 '고삐에 매인 자본주의'론만 가지고 이해하기에는 양상이 좀 다르다는 얘기겠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공역자 중 한 사람은 김수행 교수인데, 이미 글린이 필립 암스트롱 등과 함께 쓴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동아출판사, 1993)을 우리말로 옮긴 적이 있다. 현재는 절판됐고 알라딘에서는 '앤드류 그린'으로도 '김수행'으로도 검색이 되지 않는 책이다(저자 '필립 암스트롱'만 표기돼 있어서). 나는 IMF 때인가 '자본주의를 알아야겠다' 싶어서 사두고는 몇 페이지 안 읽은 기억이 있다(그래서 여전히 '적응'을 못하고 있는지도).

로버트 라이시의 책으론 <미래를 위한 약속>(김영사, 2003), <부유한 노예>(김영사, 2001) 등이 '최근'에 소개된 것들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각인시켜준 책은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국가의 일>(까치글방, 1994). 비록 <미국경제의 제3의 선택>(한국노동연구원, 1993)이란 책도 나왔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지만 나는 못 본 책이다. 어쨌든 두 저자의 책 두 권을 겹쳐 읽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그 사이에 15년이 흘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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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5-11 12:30   좋아요 0 | URL
게시글과는 관계업이 궁금한게 있어서 댓글 남겨요.
이번에 헤겔의 '법철학'도 나왔던데. 오래전 출간됐던 '논리학'과 '역사철학강의'는 혹 복간 일정이 잡혀 있을까요?
혹 아는 바 있으면 귀뜸 부탁드릴게요 : )

로쟈 2008-05-11 22:18   좋아요 0 | URL
저한테 무슨 '줄'이 있는 건 아니고요, 직접 출판사에 문의하시는 게 빠를 듯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11 22:54   좋아요 0 | URL
지식인이 대기업의 머슴이 되는 게 고삐풀린 자본주의의 특징이죠.그러면서도 부끄러운줄도 모르고...군대에 전경련에서 만든 경제교과서를 무료 배포하기 시작했더라구요.필맥이 색깔있는 책을 많이 내더군요.
소비자나 투자자 이전에 시민이 되어야죠.건전한 민주정신을 가진...

로쟈 2008-05-11 22:55   좋아요 0 | URL
한줄로 잘 요약해주셨습니다.^^

섬나무 2008-05-12 10:26   좋아요 0 | URL
그런데 건전한 민주정신을 갖는 시민을 키우는 일을 책이 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묻고 싶어집니다. 내 생각은 부정적입니다. 그냥 방법이 없다는 거지요. 왜냐면 훌륭한 시민보다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기가 훨씬 간단하니까요. 아마 로쟈님이 그 책들을 다 읽었어도 적응이 힘들것처럼 말입니다. 하여간 요즘은 부쩍 절망적입니다.

로쟈 2008-05-12 11:20   좋아요 0 | URL
방법이 없다면 쉬이 냉소주의로 빠지지 않을까요? 책이 모든 걸 할 수는 없지만 교육은 많은 걸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아직 '계몽주의'의 편을 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