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신문을 손에 집어들긴 하지만 안팎으로 '좋은 소식'을 접한 지 오래된 듯하다. 특히나 쇠고기 파문과 관련한 기사들을 읽노라면 매번 기가 차고 어이가 없다(다른 얘기를 늘어놓을 기력마저 다 빼놓는다). 귀갓길에 듣자 하니 라디오의 9시 뉴스에서도 언급이 되던데, 이번 협상은 한마디로 '판타스틱'한 협상이었다. 다만 우리 입장이 아니라 미국 정부와 축산업자들의 입장에서. 아침나절에 읽고 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던 기사를 옮겨놓는다. 대국민 담화문이 내일인가 발표된다고 하는데, 한겨레의 내일자 칼럼 제목을 빌면, '저 꼼수들을 어찌할 것인가' 심히 우려되고 걱정된다. 누구 말대로 '정권 교체'가 이렇게 대단한 건지, 이렇게 통제불능인 건지 새삼 놀랍다...

경향신문(08. 05. 21) 24개월 미만도 “멕시코 아쉽다”…30개월 이상도 “한국 환상적”

미국 축산협회가 지난 3월 멕시코가 24개월 미만 미국산 송아지만 수입을 재개하기로 결정하자 아쉬움을 표시했다가 한국 정부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허용하자 “환상적인(fantastic) 합의”라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을 앞세운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정부는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원칙을 지킨 반면 한국 정부가 ‘백기 항복’한 데 대해 미국 축산협회가 대조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대만·일본에 앞서 멕시코와의 형평을 요구하며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요구를 거절할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20일 경향신문이 미 축산협회의 소식지를 확인한 결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지난 4월18일 미국 축산협회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한국 쇠고기 시장의 개방에 박수를 보낸다”고 밝혔다. 특히 축산협회는 “이처럼 ‘환상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까지 협상대표단은 물론 조지 부시 대통령과 의회 지도자들의 노력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를 ‘환상적’이라고 표현했다.

앤디 그로세타 축산육우협회장은 “지난 2월 (이명박 대통령 경축사절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얼마나 많은 한국 소비자들이 양질의 미국산 쇠고기를 슈퍼마켓이나 음식점에서 접하고 싶은지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멕시코가 미국과 협상을 벌인 끝에 지난 3월27일 24개월 미만 사육용 미국산 송아지만 수입하기로 한 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미 축산협회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은 2003년 멕시코 정부에 의해 수입이 중단된 이후 오랫동안 계속된 민감한 이슈”라며 “멕시코가 OIE 가이드 라인을 조만간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밝혔다. 멕시코보다 우리 정부가 먼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한 데 대해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우리는 언제까지 2등만 할 것이냐. 멕시코와 우리 정부는 입장이 다르다”고 말했다.(강진구기자)

한겨레(08. 05. 22) 저 꼼수들을 어찌할 것인가

지난 석 달이 십 년처럼 느껴지게 했다는 이명박 정권은 역시 딴 나라 정권인가 보다. 압도적 다수의 우리 국민이 아무리 거부해도 소수의 미국 축산업자 이익을 위해 실제론 달라진 게 없다는 ‘추가협의 서한 교환’ 이벤트까지 벌이니 말이다. 사실 추가협의는 하나의 외교 이벤트였을 뿐, 근본적 문제 해결은커녕 합의문의 글자 하나 바꾸지 못했다. 국제통상 전문가, 시민단체 그리고 야당이 ‘이명박 정부는 끝내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고 국민을 기만하며 우롱했다’고 평가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얻을 건 다 얻었다’고 당당하니 꼴사납다.

미국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광우병 발생 국가다. 인간광우병 환자도 발생했다. 광우병을 일으키는 원인물질 프리온은 소의 뇌와 척수 등 특정 부위에 집중된다. 또한, 프리온은 소의 나이가 많을수록 더 많이 축적된다. 광우병 걸린 소의 나이는 대부분 30개월 이상이었다. 광우병 걸린 소의 증상 가운데 하나는 잘 서지도 못해 주저앉는 ‘다우너’이다.

미국은 도축하는 모든 소에 대해 광우병 검사를 하지 않는다. 소 2천 마리 중 한 마리꼴로 표본 검사를 할 뿐이다. 1년에 도축 된다는 3500만 마리 가운데 3498만 마리는 검사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에선 광우병이 의심되는 ‘다우너’까지도 학교 급식용으로 납품됐다. 광우병 위험을 줄일 사료정책은 축산업자의 반발에 밀려 시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은 20개월 미만만 수입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도 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 수입했다. 미국 쪽의 반복된 협약 위반 때문에 지금까지 수입을 중단하고 있었던 터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안을 단순화하고 쉽게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그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보고받고 어떻게 결론을 내렸을지는 분명해 보인다.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려 했던 정부는 어느 날 졸지에 ‘30개월 이상’과 ‘위험부위’는 물론 ‘검역주권 포기’까지 선택했다. 이제 그 과정이 조속히 그리고 소상하게 규명돼야 한다. 이와 유사한 시행착오가 빚어져선 안 되기 때문이다. 대운하, 수돗물 민영화, 미국식 건강보험제도 도입, 시장주의 교육정책, 재벌 위주 경제정책, 수도권 중심의 국토개발정책, 공기업 민영화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실패할 가능성이 큰 정책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파동을 통해 국민은 깨닫고 있다. 그동안 눈과 귀를 막고, 건강한 판단능력을 마비시킨 것이 누구인지, 어떤 정치 세력과 어떤 언론이 진실로 국민 건강과 안전과 권익을 생각하는지를. 그리고 자신의 권리를 되찾고자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도 터득하고 있다. 인터넷 댓글, 촛불집회, 펼침막 설치, 탄핵서명 등. 가시적으로 드러난 서명 숫자만도 130만명을 넘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상대방은 꼼수에 능하다. 그건 ‘재개발 헛공약’은 남발하면서 불리한 ‘대운하 사업’과 ‘쇠고기 협상’은 꼭꼭 감추는 선거 전략에서 이미 드러났다. ‘물류’에서 ‘관광’을 거쳐 ‘치수’로 대운하 사업 목적도 그때그때 바꾸듯 쇠고기 수입조건에 대한 변명도 눈치껏 바꿔가며 그 순간만 모면하려 했다. ‘진정성’은 실종되고 스스로 ‘못 믿을 정부’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 모든 문제를 단순히 ‘소통’의 문제로 치부하려 든다. 꼼수에 동원할 인적·물적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더욱 그립다.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과 ‘진실을 오도하지 않는’ 언론이.(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08.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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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8-05-22 13:37   좋아요 0 | URL
이번에 언론에 제기능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언제까지 2등 할거냔 소린 정말. 어쩌라구요.ㅡ,.ㅜ

로쟈 2008-05-23 00:23   좋아요 0 | URL
이들이 5년간 대한민국을 끌고 간다니까 공포스럽기까지 합니다...

털세곰 2008-05-25 16:59   좋아요 0 | URL
그래서 하루빨리 저들을 결단내야 합니다. 어떤 아는 사람은 블라디에서 나욤느이 우비짜 한 명 고용해 오는데 천 불 미만이라며 경비 모으자고 하더군요. 물론 극단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글쎄요... 전 심정적으로는 지지합니다. 한 명이 희생해 대한민국 절대다수 국민이 살 수 있다면 전 지지합니다.

털세곰 2008-05-25 17:04   좋아요 0 | URL
물론 작금의 사태는 우리의 영도자이신 불도저 '그 분' 혼자만의 생각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주변엔 수많은 인의 장막이 쳐저있고 또한 그 분께 경제적 이윤관계, 정치적 득실관계로 얽힌 수많은 또 다른 사람들이 있겠지요. 심지어 물건너에도. 그런 세력 모두의 표징이 바로 츠키야마 아키히로이지요. 5천만 국민을 상대로 한 일상적인 기만, 독선, 거짓, 비양심, 국가와 민족, 국토를 배신하는(또는 준비중인) 일련의 작태... 최소한의 보즈메지예라도 절실합니다.

로쟈 2008-05-25 21:45   좋아요 0 | URL
'나욤느이 우비짜'에서 웃어야 할지 참.^^; 갹출한다면 저도 보태겠습니다...

털세곰 2008-05-27 02:09   좋아요 0 | URL
최소 비용은 10불입니다. ㅋㅋㅋ

2008-05-29 1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직도 피해가 다 집계되고 있지 않은 중국 쓰촨성의 대지진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말이 없다. 부실로 지어진 학교건물 때문에 학생들의 희생이 더 커졌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이번 참사는 자연의 대재앙을 미리 예견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관련되는 게 아닌가 싶다. 희생자들에게는 그저 애도의 뜻을 표할 따름이다. 이번 지진과 무관하게 중국에 대한, 그리고 중국소설에 관심을 점차 갖게 되는데, 최근에 눈길을 끄는 중국 현대소설들이 소개되어 오랜만에 소설에 대한 독서욕을 부추긴다.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으로 나온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와 <화장실에 관하여>가 그 책들인데, 한겨레21에서 읽은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참고로 말하자면, 줄거리도 소개되고 있다). 나는 칙릿 따위가 아니라 이런 소설들이 소설다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한겨레21(08. 05. 15) 혁명보다 섹스

소설 시장이 시들하다. 몇 년째 상종가를 치던 일본 소설마저 매물이 줄어든 모양새다. 하루키와 류를 제치고 현해탄을 넘어오던 일본 신세대 작가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그래서인지 최근 중국 소설 출간이 늘어나는 추세는 출판사들의 고뇌를 떠올리게 한다.

섹스를 통해 깨달은 혁명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중국 소설은 문화혁명 이후의 작가들, 특히 위화, 쑤퉁, 모옌 등을 중심으로 소개돼왔다. 올해부터는 이들을 벗어나 ‘알려지지 않은’ 중국 현대작가들이 소개되고 있다. 웅진지식하우스는 5월부터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을 내놓기 시작했다(일반적으로 중국의 ‘당대문학’이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즉 사회주의 체제가 수립된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문학을 말한다). 일단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1만원)와 <화장실에 관하여>(예자오옌 지음, 조성웅 옮김, 1만1천원)가 나왔고 한동, 왕강, 판샤오칭, 마위웬, 류전원 등의 작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출판사 쪽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 위주로 선별했다고 밝혔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2005년 광저우의 문예지 <화청>에 발표된 직후 중국 당국에서 판금 조처를 당하며 유명해진 책이다. 중국 문단에 꽤 큰 충격을 몰고 왔는데, 문화혁명을 과장된 언어로 비꼬는 ‘괴탄문학’의 대표작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소설의 내용은 판금당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 마오쩌둥의 명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성애의 최음제 역할을 하는 아이러니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혁명기에 인민해방군의 모범 병사 우다왕은 사단장 사택에서 취사를 맡는 공무분대장으로 임명된다. 이 자리는 우다왕에겐 간부가 되는 출세의 사다리다. 그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신조를 철썩같이 받들고 마오 주석의 어록을 줄줄이 외우며 사단장을 위해 일하는 것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가지 방해물만 없었다면 우다왕은 계속 이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그가 채소를 따거나 계란탕을 끓일 때 땀에 젖은 등을 은밀히 쳐다보는 사단장의 젊은 아내, 류렌만 없었다면.

류렌은 우다왕에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글이 적힌 팻말이 식탁이 아닌 다른 곳에 놓여 있으면, 침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오라고 명령한다. 팻말이 계단 아래에 올려져 있던 날, 우다왕은 얇은 잠옷이 바람에 날릴 때마다 드러나는 눈부신 허벅지의 기습을 받는다. 이때부터 우다왕은 류렌에 끌리는 자신의 본능을 혁명 의지로 이겨보려는 승률 제로의 전쟁을 시작한다. 마침내 류렌이 자신을 사단장 막사에서 내치려는 날 밤, 우다왕은 류렌의 아름다운 몸을 끌어안는다. 용서받지 못할 두 연인은 사단장이 베이징에 가 있는 동안 모든 문을 잠그고 알몸으로 섹스를 거듭하며, 마오의 모든 ‘성물’을 때려부수는 기행을 벌이게 된다.

홍보 카피처럼 <색, 계>보다 위험하고 <화양연화>보다 매혹적인지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이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작가는 혁명의 구호를 성애의 구호로 타락시키면서 그것이 얼마나 텅 빈 기호인지를 폭로한다. 혁명은 시대의 가해 행위였다. 우다왕이 매일처럼 외우고 다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중국 민중의 빈곤과 계급 문제를 은폐하고 있다. 우다왕이 혁명을 믿는 이유는 숭고한 대의 때문이 아니라 밥과 출세 때문이었다. 그는 사랑을 통해 이 진실을 발견한다. 혁명의 시간은 지독한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옌롄커는 ‘한국 독자들께 보내는 편지’에서 “(이 소설은) 저의 창작에서 그렇게 돌출된 위치를 차지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운명 때문에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놓이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한다. 인상적인 고백이다.

<화장실에 관하여>는 1980년대 중반에 등단한 예자오옌의 중·단편을 묶었다. 알려진 대로 1980년대는 중국 문학이 문화혁명의 잔해를 헤치고 도약하던 시대다. 문화혁명 이후의 소설은 혁명의 상처를 핥는 것부터 시작한다. ‘상흔 문학’과 ‘되돌아보기 문학’(반사문학)이 그것이다. 이어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과감한 형식 실험을 시도하는 ‘선봉문학’이 등장했다.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위화와 쑤퉁의 출발점도 선봉문학이다. 선봉문학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주로 개인의 일상을 냉정하게 묘사하는 ‘신사실주의’도 나타났다. 예자오옌의 소설들을 통해 신사실주의 소설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표제작 ‘화장실에 관하여’는 블랙 유머가 돋보인다. 고등학교(중학)를 졸업하고 하방해 공장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화자. 같은 공장에 양하이링이라는 어여쁜 아가씨가 들어온다. 어느 날 그녀는 동료들과 상하이 연수에 나선다. 연수 마지막날 상하이 시내를 구경하던 어여쁜 양하이링은 심한 요의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인심 나쁜 상하이에선 화장실을 찾기가 힘들다. 처음엔 말하기조차 부끄러워하던 그녀는 미친 듯 “화장실이 어딨어요, 어딨나구요!”라고 소리지르는 ‘수위’에까지 이르고 만다. 결국 그녀의 바지 한 부분에서 조금씩 물이 떨어진다.

이 사건은 양하이링에게 일생의 수치요 상처였다. 그때, 공농병 대학생(대학에 뽑힌 농민과 노동자 자녀들) 시대는 가고 대학 입시가 부활했다(1977년). 양하이링은 미친 듯 공부해 대학에 합격한다. 화자도 이 시기 그녀와 같이 공부해 대학에 들어간다. 양하이링이 대학에 간 이유가 촌뜨기에겐 소변마저 허락하지 않는 중국 대도시의 화장실 때문이었다면, 화자가 대학에 간 이유는 전혀 다른 화장실 때문이다.

중국 현대사와 화장실의 관계
문화혁명이 가장 치열했던 시절, 원래 지식인이던 화자의 부모는 우파로 몰렸다. 그들은 매일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자백서를 써야 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자신이 청소한 화장실 한 곳이 깨끗하지 못하다는 호통을 듣고 달려간다. 그런데 똥통에서 금빛 찬란하게 빛나는 달걀을 발견한다. 아버지가 막대기로 힘껏 밀자 달걀은 데굴데굴 굴러서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한 여성 간부가 일을 보다가 자신의 오줌이 달걀을 때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뛰쳐나왔다. 누군가 “해방 이전, 우리 빈민들은 배불리 먹지 못했다. 이는 계급투쟁의 새로운 방향이다!”라고 썼다. 계급의 적을 찾지는 못했으나 결국 사람들이 달걀을 조사하기 위해 맛을 보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화자가 기를 쓰고 대학에 입학한 것은 우파의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예자오옌은 화장실을 통해 문화혁명의 일상과 그 이후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이 소설집에 실린 ‘연가’는 어느 중산층 부부의 파경을 가만히 관찰하고 있고, ‘추월루’와 ‘대추나무 이야기’는 세계대전과 내전으로 점철된 역사를 개인의 삶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옌롄커의 소설 첫머리. “삶의 수많은 진실들은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허구라는 교량을 통해 우리는 진실을 발견한다. 중국 소설은 다른 질감의 고통과 절망을 보여준다. 문화혁명의 상처, 톈안먼에서 목도한 이상의 붕괴, 자본주의와 빈곤, 애국주의로 결탁한 국가와 자본, 그리고 삶. 중국 소설은 우리가 거쳐 지나간, 혹은 한 번도 도달하지 않은 역사의 대지에서 자신의 향기를 뿜고 있다. 그것을 음미하는 건 침향을 맡는 것보다 행복한 일이다.(유현산기자)

08. 05. 20.

P.S. 더불어 귀갓길 전철에서 읽은 지진 관련기사 하나도 옮겨놓는다. 32년전 탕산의 대지진과 이번 지진을 비교하면서 중국 당국의 대응 방식 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자연의 재앙은 변한 게 없지만 그간에 중국은 많이 달라졌다. 특히 원자바오 총리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현장지휘는 무릇 정치가들의 귀감이 될 만하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 것이다.

경향신문(08. 05. 19) 탕산 대지진과 원촨 대지진

1976년 7월28일 새벽 3시42분. 중국 허베이성 탕산시 일대를 규모 7.8의 강진이 강타했다. 베이징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인구 70만명의 조그만 공업도시는 단숨에 폐허로 변했다. 중국은 당시 학교마저 문을 닫았던 문화대혁명 기간 중이었다. 실권을 잡고 있던 ‘4인방’은 지진 발생 사실조차 숨겼다. 외부에 진실이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79년이었다. 지진 발생 2개월 만에 마오쩌둥이 세상을 떠났고, 덩샤오핑이 마오의 뒤를 이어 제1인자가 된 화궈펑을 제치고 실권을 잡은 뒤였다. 중국은 24만2769명이 숨지고 16만4851명이 부상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탕산 대지진이 일어난 지 32년 만인 지난 5월12일, 이번에는 쓰촨성 원촨현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규모는 7.9로 탕산 대지진을 능가했다. 탕산 대지진과 다른 점은 대낮인 오후 2시28분에 발생한 것이다. 학교마다 오후수업이 한참 진행 중이어서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또 탕산은 평지였던 반면 원촨 일대는 히말라야 지진대 옆에 자리잡고 있는 고산지대여서 구조작업이 한층 힘들었다. 구조대원들이 피해지역에 진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으니 희생자가 늘 수밖에 없었다.



탕산 대지진 때와 가장 다른 점은 중국 지도부의 적극적인 대응이다. 베이징 지질대학 출신의 원자바오 총리는 대지진 발생 1시간 만에 전용기를 타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기자는 처음에는 산간지방에서 일어난 단순한 지진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원 총리가 현장에 갔다는 것을 보고 일이 심상찮음을 알았다. 원자바오 총리는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에서 지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촨, 두장옌, 베이촨 등 재해 지역을 직접 찾아가 진두지휘했다.



지금은 수리공학과 출신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중국 국영방송인 CCTV는 지진 발생 1시간 뒤부터 24시간 재해방송에 들어가 지진 발생 1주일째인 지금까지도 계속해 인명 구조 및 복구작업 소식을 생방송으로 전하고 있다.

중국의 적극적인 정보 공개로 중국 국내에서 온정의 손길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유언비어가 나도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2003년 4월 사스 발생 당시 사실 자체를 숨겼다가 유언비어가 난무하면서 결국 사람은 사람대로 죽고, 망신은 망신대로 당했던 교훈을 제대로 살린 셈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이제는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 어려워진 측면도 있지만 말이다.

올해는 78년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30주년을 맞는 해이다. 난국을 맞아 중국 전체 국민이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개혁·개방정책의 성과이다. 개혁·개방 결과 경제가 급성장했고, 국력 증강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이 과감하게 건국 이후 최대의 국난을 외부에 공개토록 한 것이다. 당장은 어렵지만 13억 중국 사람들은 ‘한 집안 식구’가 됐다. 닫고 감추는 것보다는 열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다.(홍인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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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5-20 11:52   좋아요 0 | URL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를 읽었기 때문에 참 반가운 페이퍼예요. 그런데 형광펜으로 칠하신 부분의 인용처럼 저는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던데요. 이레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옷을 벗은 채로 지내며 모든 성물을 때려부수는 장면은 꽤 인상적이었지만 말입니다.

류렌을 이겨내려고 할때, 류렌의 유혹을 이겨냈다고 믿었을 때의 우다왕에게 기다리고 있는건 류렌의 유혹에 굴복하는 것 뿐이더군요. 그 쓸쓸함과 좌절은 곧 모든 열정앞에 지워지고 말지만.

로쟈 2008-05-20 15:04   좋아요 0 | URL
벌써 읽어보셨군요.^^ 재미란 게 편차가 있으니까요. 저는 6월에나 읽어볼 참입니다...

소경 2008-05-20 23:02   좋아요 0 | URL
<인민을 위해 복무하거라>, <색계>, <화장실에 관하여> 그리고 <원자바오>도요. 다 읽고 싶네요. 얼른 레포트건 발표건 시험에서 잠시나마 해방되었으면..... 쪼금만 월급은 포틀래치처럼 책으로 불쌀라야 버려야 겠네요 ^^:

로쟈 2008-05-20 23:07   좋아요 0 | URL
우리의 가여운 월급들입니다.^^;

philocinema 2008-05-21 16:49   좋아요 0 | URL
성을 소재로 했지만 "왜설적"이기보단 "예술적" 감흥을 주는 소설 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성애"가 만인에게 강요되는 "혁명"의 당위를 뛰어넘어 버리는 바를
문학적으로 잘 표현해낸 것 같더군요.

여하튼 어제 반나절 읽는동안 오금이 저려와도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는 힘을 가진
꽤 괜찮은 소설이었습니다.

일독을 권할만 합니다.

로쟈 2008-05-21 17:03   좋아요 0 | URL
사실 제목만으로도 읽을 만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입니다.^^

섬나무 2008-05-21 22:06   좋아요 0 | URL
갑갑한 현재에서 로쟈님의 취향에 걸맞는 품격있는 위락도구로 보이네요.
모든 것을 책으로 해결하는 로쟈님!^^
출구가 아닌 것 같은 그 출구가 가장 안전한 출구 같습니다.
책에 의한 출구. 앎에 의한 출구.

로쟈 2008-05-22 00:49   좋아요 0 | URL
문을 살짝 열어보는 만큼의 '출구'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22 00:45   좋아요 0 | URL
<우상과 이성>에선 당산 지진 당시 현지 중국인들이 보여준 질서정연한 모습을 칭찬했는데 이젠 당산 지진도 이런 식으로 이번 지진과 비교하는 기사가 올라오는군요.당산에 대한 우리의<기억>역시 달라졌기 때문일까요?

로쟈 2008-05-22 00:47   좋아요 0 | URL
24만이 죽었는데, 질서정연했다는 건 넌센스 아닐까요? 그냥 망연자실 해서들 앉아있었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5-22 01:08   좋아요 0 | URL
그런 대참사였는데도 이웃을 돕는 모습에 감명 받았다고 해서 리영희 선생이 그 뒤로도 많이 인용한 사건이었어요.리 선생은 중국이 개방정책을 취한 뒤로 그런 공동체 정신이 없어졌다는 글을 쓰기도 했지요.

로쟈 2008-05-22 01:14   좋아요 0 | URL
'당산 시민을 위한 애도사' 말씀이신가요? 그 공동체 정신의 이면이 지진의 발생 사실조차 비공개로 숨긴 거라면 무엇을 애석하게 여겨야 할지 모호해지는 듯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5-22 01:32   좋아요 0 | URL
글쎄요.이제 그런 참사를 숨긴 사실에도 눈을 돌리자는 생각도 하게 되었으니 우리의 시각이 더 균형잡히게 되었다고 해야 되겠죠? 여하튼 당산 지진은 리선생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리 선생은 당산 지진 당시 언론 통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지적하지 않았죠.

로쟈 2008-05-24 14:33   좋아요 0 | URL
균형을 잡기 위한 것이긴 했지만 좌편향(이상화)도 있었지요...
 

국내외적으로 어수선하고 심신도 피로하여 좀 쉬려고 했는데, 다른 날도 아니고 5.18에 올라온 기사 하나가 눈에 밟힌다. '국민화합을 위한 특별기도회'에서 조용기 목사가 했다는 설교를 요약해주고 있는 기사다. 한국의 대형교회들 또한 광우병 만큼이나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새삼 일깨워준다(달리 종교가 아편이겠는가).

노컷뉴스(08. 05. 18) "광우병 괴담은 사탄의 계략"

조용기 원로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주최로 18일 서울 시청 앞에서 열린 '국민화합을 위한 특별기도회'에 설교자로 나서 "광우병 괴담은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기 위한 사탄의 계략"이라고 지적하고 "대통령을 믿고 따르며 기도로 지원하자"고 주장했다. 다음은 '두려움과 형벌'이란 제목으로 전한 조용기 목사의 설교 내용이다.

■ 설교 요약
성경의 '욥기'에 보면 '어느 날 두려워하고 걱정하니 재앙이 임했다'고 말한 구절이 있다. 욥은 많은 재산과 재물도 잃고 온몸에 종기도 났다. 그때 욥은 "나의 두려워하는 것이 나에게 임하고...고난만 남았구나"라고 탄식했다. 이것이 바로 도적질하는 마귀가 하는 짓이다. 마귀가 좋아하는 것은 '부정적인 상상'이다. 욥도 얼토당토않은 부정적 생각하다가 그대로 재앙이 일어났다. 마음에 무서워하고 불안해하면 그것이 생활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땐 "원수귀신아 물러가라!"라고 대적해야 한다. 바로 오늘처럼 모여 기도하며 대적해야 한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여 간구하는 것이 바로 기도인 것이다. 오늘의 여러분의 간구를 통해서 축복이 오게될 것이다. 우린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해야한다. 예수가 있으므로 희망이 있고 두려움은 없다.

한국에 '광우병 공포'가 몰아닥치고 있다. 매스컴에 의해 과장되고 있다. 광우병 공포는 가정과 생활에 공포를 일으키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공포가 들어가면 이성이 마비되고 패배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광우병 공포가 매스컴을 통해 이렇게 야단법석인가? 국민의 불안만 가속되고 있다. 한우고기까지 못 먹고 있다. 병보다 마음에 일으키는 공포가 더 무서운 것이다. 광우병 괴담은 병 자체보다 공포를 일으켜 우리를 패배시키려는 마귀의 계략인 것이다. 광우병 괴담은 또, 미국과 우리나라를 이간질하려는 정책이다. 우리는 미국과 교역하며 잘 살게 된것이다. '미국 물러가라!'고 하면 우리가 낙후될 뿐이다.

그리고, 광우병으로 공포심을 일으키려는 것은 현 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다. 이것은 국민들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이다. 민주주의 절차에 의해 대통령 뽑았으면 지켜봐줘야 한다. 이같은 배후에는 특정 방송과 신문이 편파 보도로 반미사상, 정권 무력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 방치하면 재앙이 온다. 그럼, 우린 광우병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나? 전문가와 과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뜬 소문에 의한 소문, 근거없는 괴변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된다. 제가 아는 바로는 '전문가들은 미국소 먹어서 광우병 걸릴 확률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괜찮다면 그런 줄 알아야한다. 내가 아는 미국 변호사가 '미국의 많은 한국교포가 미국 소고기를 먹었는데도 광우병 걸린 사람 하나도 없다'고 했다.

광우병 괴담에는 배후가 있다. 투쟁이념을 가진 단체들이 국민을 선동하지 말아야한다. 특정 매스컴은 왜 옛날 필름 보여주고 또 보여서 불안감을 가중시키는가? 초, 중학생이 무엇을 아는가? 그들을 충동해서 밤에 벌벌떨며 나오게 한 것이 참된 이념인가? 우리는 감정을 가라앉혀야 한다. 우리가 대통령을 안믿고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대통령이 된지 석달도 안됐는데 어찌나 비난을 하는지 민망해서 볼 수가 없다. 이는 시집온 지 석달도 안된 며느리에게 왜 아들을 낳지 못하냐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1년은 보고 이야기 해야 한다.

예전 박정희 대통령이 월남전에 우리 군을 파병하기 전에 기도부탁을 해왔다. 박 대통령은 "파병을 하면 우리의 많은 젊은이가 죽을텐데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나라를 생각하면 파병해야겠고 젊은이를 생각하면 하지 말아야겠으니 마음이 아픕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이렇게 예수 믿지 않는 박정희 전 대통령도 국민을 걱정했는데, 하물며 예수 믿는 장로가 국민을 못살게 할 리가 있겠는가? 대통령을 믿고 기도로 밀어주는 여러분들이 돼야겠다.

아마 날 욕할 사람들 많을 것이다. 나는 어떤 편도 아니다. 하나님 편이다. 우리 민족의 안정을 위해 현 정부를 짓밟지 말고 협력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망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우리를 인도해주실 것이다. 오늘 주님과 대통령의 지도력을 믿고 기도하는 여러분 되길 기원한다.(조혜진 기자)

08. 05. 19.

P.S. 설교 요약을 읽으면서 한국교회의 고질인 '미국 제일주의' 혹은 '종미주의'를 다시 확인하게 되는데, 오전에 읽은 기사에도 이 문제를 지적한 것이 있어서 옮겨놓는다.

고뉴스(08. 05. 18) '종미(從美)파'가 쇠고기 파국 불렀다

쇠고기 협상은 들춰내면 들춰낼수록 그악하다. 협정문 곳곳에 독소조항이 진을 치고 있고, 그 독소조항을 들여다보면 SRM(광우병위험물질)이 그득하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가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협정을 맺은 것은 나라의 주권을 포기한 것이나 진배없다. 거기에 협상 과정에서 영문 번역이라는 치명적 실수까지 더해져 도대체 협상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이런 중대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또한 정부가 쇠고기 협상의 유일한 근거로 내세우는 OIE(국제수역사무국) 기준도 철저하게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SRM이 들어간 꼬리곰탕이나 티본스테이크, 수육(삼차신경절)을 먹을 가능성이 커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이번 쇠고기 협상은 이명박 대통령과 국무위원 그리고 청와대 내 이른바 ‘종미(從美)파’ 참모들이 주도한 작품이다. 청와대 곽승준(국정기획), 김중수(경제), 김병국(외교안보), 박재완(정무), 이주호(교육과학) 그리고 사퇴한 박미석 전 사회정책수석까지 모두 미국 박사 출신으로 이들은 한미동맹 강화를 외교·안보의 핵심가치로 여기고 있다. 국무위원들 가운데 강만수(재정경제), 이윤호(지식경제), 김성이(보건복지), 정종환(국토해양) 장관등이 대표적인 미국 유학파들로 이들은 교육·의료·환경 등 각종 정책 입안과정에서 미국식 모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1급 이상 핵심 보직자들의 절반이 해외에서 유학이나 연수를 했고, 그중에 72%가 ‘미국파’다. 특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권 핵심 멤버들은 전 정권에서 ‘동맹파’로 불리는 사람들보다 한 발 더 나가 있는 ‘종미파’ 사람들로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국제관계 뿐만 아니라 남북문제 나아가 우리의 국방과 경제적 문제도 풀어야 한다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한 마디로 ‘미국 제일주의’다.

쇠고기 협상은 미국 우선, 미국 제일주의이라는 정책의 연장선상에 비롯됐다. 지난 정부부터 수년을 끌다시피 해 온 한-미 쇠고기 협상이 협상시작 불과 일주일 만에 끝나버린 상황은 국민들에게는 놀랍기 그지없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내막을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는 출범 전부터 한미관계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쇠고기 문제를 화끈하게 풀어주려 했고 이를 총선 뒤 끝낼 공산이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국민들에게 경제살리기에 대한 높은 기대만 잔뜩 품어준 상태에서 단시간 내 가시적인 효과를 내려면 한미FTA 비준을 연내 관철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쇠고기 문제를 될 수 있는 한 빨리 끝내야 한다는 조급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검역 주권’과 ‘국민 생명권’은 도외시 됐다.

지난 8일 청와대 수석들은 이례적으로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와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익명으로 처리해 줄 것을 부탁한 이들 청와대 참모들은 “쇠고기 문제가 정치사회적으로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것에 대해 준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광우병 문제는 아예 생각지도 못했다며 “송구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측의 쇠고기 문제 해결로 미국에서 연내 한미FTA 비준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드러냈다.

그러나 퇴임을 목전에 둔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가 FTA 비준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오바마와 힐러리는 한미FTA에 반대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이런 여러 현실적 조건들을 다각적으로 계산하지 않은 채 일방적이고 단순하게 ‘모 아니면 도’식으로 접근, 사태를 그르쳤다. 주체성이 결여된 이러한 ‘대미 추종’은 쇠고기 협상과 같은 굴욕적이고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다.

과도한 ‘종미주의’는 남북관계도 틀어지게 만들었다. 정권 출범과 함께 남북대화는 단절됐고, 우리는 북한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도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러는 사이 미국은 북한과 더욱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 조만간 북핵문제가 완전히 타결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은 다음달부터 50만 톤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키로 했다. 우리는 매년 해왔던 식량 지원을 중단했는데 오히려 미국은 지원하는, 이상한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북한은 ‘통미봉남(미국과 통하고 남한은 봉쇄)’ 수순에 돌입, 미국과만 상대하면서 남한을 배제시키고 있다. 이제야 이명박 정부는 안절부절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는데 이것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쇠고기 협상의 후폭풍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듯, 1개월 앞 정세도 파악 못하는 정권의 무지와 철학의 빈곤함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무모한 대미(對美) 질주는 이웃한 중국에게도 거리감을 심어주고 있다. 현재 중국은 이명박 정권이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MD(미사일방어계획) 참여 계획 등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에 적극편입하려는 움직임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 모두 정권 핵심에 ‘자주파’가 사라짐으로써 생긴 일들이다. 자주파와 동맹파가 힘의 균형을 유지할 때 이명박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주의’도 가능하다. 이명박 정권이 쇠고기 파문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비극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김성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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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5-19 01:53   좋아요 0 | URL
한시름 놨습니다. 30개월 이상 수입분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는 순복음교회에서 처리해 줄 껍니다..^^

로쟈 2008-05-19 10:34   좋아요 0 | URL
기도로 SRM을 물리치려는지...

웽스북스 2008-05-19 01:55   좋아요 0 | URL
심각하네요 -_-
안그래도 오늘 갔던 모임 중 한 분이 오늘 새문안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거기 장로님께서 기도하시길

사탄이 우리 아이들을 빨갱이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뭐 이런 기도를 하셨다고해서 깜짝 놀랐는데

오호 통제라입니다-_-

멜기세덱 2008-05-19 03:20   좋아요 0 | URL
그래도 사탄이 맹박이 보단 낫네요.
광우병 걸려 죽는것보단, 빨갱이 되는 게 낫지.....암.....ㅋㅋ

로쟈 2008-05-19 10:35   좋아요 0 | URL
이런 행태들 때문에 한국 교회에 대한 혐오를 지우기 어렵습니다...

마늘빵 2008-05-19 09:09   좋아요 0 | URL
어이쿠 저분은 심심할때마다 한번씩 나와서 종교집회를 여신다니까요. -_- 좀 이제 집에 들어가지.

로쟈 2008-05-19 10:33   좋아요 0 | URL
단테의 <신곡>에 보면 교황들도 다수 지옥에 가 있죠...

Arch 2008-05-19 09:15   좋아요 0 | URL
친미가 아니라 종미군요. 짜고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로쟈 2008-05-19 10:33   좋아요 0 | URL
대한민국 기득권층의 현주소 같습니다...

반딧불이 2008-05-19 10:5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저분이 MB의 늙은 불독이군요. "우린 광우병에 대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나? 전문가와 과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한다." <- 도대체 이분의 전문가와 과학자는 누군지....

stella.K 2008-05-19 11:38   좋아요 0 | URL
까깝하네요. 다윗왕을 가르쳤던 나단 선지자 같은 목사는 없는가 보네요.
장로란 이유만으로 목사가 같은 편이 되면 안되는 건데...ㅜ.ㅜ

로쟈 2008-05-20 22:40   좋아요 0 | URL
가재는 게편이죠...

리기다소나무 2008-05-19 16:44   좋아요 0 | URL
광우병괴담은 사탄의 괴략이란 말은 소를 수입하는 건 명박이니까 명박이가 하나님??
사탄이랑 맞서서 이겨라 30개월된 쇠고기먹고 명박이 이겨내삼~
30개월쇠고기먹고 명박이 이겨내삼~ 30개월쇠고기먹고 명박이 이겨내삼~

로쟈 2008-05-20 22:40   좋아요 0 | URL
할렐루야!..

섬나무 2008-05-19 18:45   좋아요 0 | URL
종교란 저렇게 천박하게 쓰려고 인간이 개발한 정치도구지요.대체 나라가 어떻게 되돌아가는 건지 모르겠어요. 6월 4일이 보궐선거라던데 투표권자들이 미친 정부에 브레이크를 걸어주기를 고대해보는데, 정말 갑갑한 현실입니다.

로쟈 2008-05-20 22:39   좋아요 0 | URL
종교의 다른 용도도 물론 있는데, 한국에서는 주로 좀 천박하게 쓰이는 것 같습니다...

나의왼발 2008-05-19 20:02   좋아요 0 | URL
조용기는 목사도 아니고 악질 종교 사기꾼입니다. 제가 총신대 신학대학원장 하셨던 분을 아는데 그 분도 조용기는 절대 기독교 목사가 아니고 종교 팔아먹는 사기꾼이라고 욕을 하시더군요. 조용기=문선명=조희성=정명석

로쟈 2008-05-20 22:39   좋아요 0 | URL
흠 그렇다면 한국에는 목사님보다 사기꾼들이 더 많은 것 같은데요...

순오기 2008-05-19 20:30   좋아요 0 | URL
흠~ 교회에 장기방학(?)중인 요즘, 오히려 하느님과 가깝다고 느낀답니다~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쓰면서도 아직은 목사나 교회를 섬길 마음이 없다지요!
기독교 목사들의 아전인수격인 성경 들이대기에 20년 교회생활에 방학을 선언했죠.
무조건적인 믿음과 기도로, 광우병이나 사탄 빨갱이가 다 물러가면 좋겠군요.^^

로쟈 2008-05-20 22:38   좋아요 0 | URL
무교회 신앙도 있다니까요...

anathema 2008-05-20 00:26   좋아요 0 | URL
조용기의 이런 발언도 한심하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조용기는 이단입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그를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의 4차원의 영성이라는 것은 사이비 종교인 신사상 운동(쓰레기 책인 론다 번의 [시크릿]이 추종하는 바로 그것)의 주장을 그대로 베낀 것입니다(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 교리적으로 이단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23년 전에 조용기의 신학이 이단임을 밝힌 책도 발행되었습니다.

로쟈 2008-05-20 22:36   좋아요 0 | URL
이 대회 자체는 한기총에서 주최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조목사가 이단이라면 한기총도 이단이 되는 걸까요?). 그의 발언은 정통/이단이라는 교리 문제 차원이 아니라 상식의 차원에서 보고 싶습니다...

군자란 2008-05-20 17:54   좋아요 0 | URL
저는 누군가를 판단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많은 손해를 준다고 생각합니다.진화생물학이나 현재 물리학관련된 책들을 읽다보면 아직까지도 사실 함부로 판단한다는 것에 많은 두려움을 느낌니다.
종교도 나름대로 현재 가장 큰 권력을 가진것도 단지 무지한 백성들의 책음으로 돌리는 것도 상당히 부담이 되고,종교도 나름대로 효용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용기 목사가 사기꾼이지는 잘 모르지만 어떤 사실을 큰그림에서 봐야지 작은 것에 집착하다보면 어느 새 진실은 없고 공허함만 남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로쟈 2008-05-20 22:34   좋아요 0 | URL
판단은 어려운 것이지만 동시에 불가피한 것이죠. 이번 발언으로 조목사의 삶 전체를 판단할 의도나 필요는 제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발언의 부적절함과 어이없음을 지적할 수는 있는 것이죠. 신자들은 다르게 생각할는지 몰라도...

anathema 2008-05-22 08:57   좋아요 0 | URL
조용기가 이단인 것은 사실이며 얼마든지 증명 가능한 것이고, 한기총이 무식해서 조용기의 정체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조용기는 상식의 차원에서 봐도 문제있는 인간이고, 기독교의 차원에서 봐도 문제있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로쟈 2008-05-23 00:25   좋아요 0 | URL
제가 보기엔 둘 사이에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기독교 차원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가 있나 보군요(하지만 당사자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이번주는 특별히 눈에 띄는 신간이 없다(나올 만한 책들이야 물론 계속 나온다). 마땅한 리뷰가 아직 안 올라온 경우도 있지만, 여하튼 덕분에 손품도 덜게 됐는데, 다만 통권 100호을 맞은 잡지 <녹색평론> 관련기사 정도는 챙겨놓는다. 내가 직접 사서 읽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되지만 꾸준히 한목소리로 '고르게 가난한 사회' '공생공락의 가난'을 우리사회의 지향점으로 주장해온 공로는 평가할 만하다. 앞으로 문제의식을 더 많이 확산/공유하는 문제가 100호 이후의 과제로 남겠다. 내가 읽은 기사는 이번주 시사IN(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03#)과 오늘자 경향신문의 기사다.

경향신문(08. 05. 16) 독자 성원만으로 지킨 ‘공생공락의 가난’

‘고르게 가난한 사회’가 진정한 대안임을 설파해온 ‘녹색평론’이 통권 100호를 맞았다. 1991년 11월 격월간 잡지로 창간된 후 16년이 넘게 한번도 빠짐없이 나온 이 잡지가 최근 발간된 5·6월호로 100권째를 돌파한 것. 교수 임용·승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잡지에 글을 쓰려는 지식인들이 줄어드는 대신, 잡지의 수는 많지만 대부분 단명하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자본 또는 국가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독자들의 성원만으로 일궈낸 잡지 100호여서 의미가 남다르다.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녹색평론은 단순한 환경잡지가 아니다. 생태 위기의 문제가 현대인들이 단순히 환경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차원이 아니라, 근대 산업자본주의 문명이 갖는 근원적 한계에서 비롯한다는 점을 얘기해왔다. 땅과 농업, 풀뿌리 자치의 가치를 역설해온 배경에는 진정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색이 있었다. 녹색평론은 100호에서 그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김종철 발행인(전 영남대 교수)은 “녹색평론이 추구해온 ‘고르게 가난한 사회’ 혹은 ‘공생공락(共生共樂)의 가난’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생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김 발행인은 100호 서문에서 “진보진영의 근본 문제는 경제지상주의를 표방하는 지배세력에 맞서서 충분히 철저한 대안논리를 구상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라며 “그들은 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주장하지만, 사회적 공평성과 복지의 전제조건으로 성장논리를 시인해버리는 이상, 가혹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는 지배세력의 논리에 굴복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경제’를 위해 인간적 가치와 환경은 언제까지나 희생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녹색평론이 다른 잡지들과 가장 구별되는 특징은 ‘독자모임’이다. 매번 녹색평론의 맨 끝에는 경향 각지에서 14곳의 ‘독자모임’이 준비한 행사 안내가 수록돼 있다. “이번달에는 모여서 영화 ‘식코’를 같이 봅니다” “녹색평론 100호 읽고 느낌 나누기” “텃밭실습 같이 합시다” 등. 김 발행인은 “잡지를 계속 만들어내는 데 여러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매호 잡지가 나오기를 기다려주는 열성적인 독자들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녹색평론 정기독자는 5000여명이며, 서점에서도 매월 1000부 정도 꾸준히 판매된다고 한다.

녹색평론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100호 특집 대담에 참여한 독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최근 광우병 파문과 관련해 미국 관보의 내용과 정부 측 설명이 다름을 처음으로 지적한 바 있는 송기호 변호사는 “80년대 후반까지 상당히 고양돼 있었던 대중운동의 경험만 가지고는, 그나마 당시 농업이라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힘이나 지혜를 얻기가 힘들겠다는 자각이 있었다”며 “그러면서 녹색평론을 찾아 읽게 됐고 어느새 이 책이 얘기하는 목소리에 같이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해지역 녹색평론 독자모임’ 운영자인 고영남 인제대 법대 교수는 “나는 사실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독재 잔재 청산과 사회·경제적 문제 해결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점에 깔린 녹색평론을 보면서도 ‘녹색’과 ‘생태’ 이야기는 언젠가 중요한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2001년 대학에 자리잡아 지역 생활을 하면서 사회문제들의 본질을 직시하고, 개인적으로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왜 내 건강이 나빠졌는지 등에 대해 고민하다가 녹색평론을 본격적으로 읽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 몇년간 녹색평론 지면에 자유무역협정(FTA), 대운하 등 현실 고발적인 글들이 늘어나며 예전보다 감동이 덜하다는 지적도 있다. 창간호 탄생에 기여한 장길섭씨(농민·충남 홍성)는 “나는 녹색평론을 읽고 삶의 내용이 가장 크게 바뀐 경우이지만, 예전에 비해 요즘은 잘 안 읽힐 때가 많다”고 했다. 이에 김종철 발행인은 “90년대 중반 접어들며 우루과이라운드니, WTO니, IMF 사태니 하면서 세계화 강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최소한도나마 대응하려고 하다보니 초창기의 좀 낭만적인 분위기가 많이 사라진 측면이 있다”며 “초창기처럼 생태영성이나 생명과 자연 현상의 신비스러움, 종교적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 쪽으로 계속 갔더라면 지금보다 장사는 잘됐겠지만 다급한 현실에서 너무 한가한 소리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녹색평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는 100호 기념으로 출간된 세 권의 단행본을 보면 좀더 분명해진다. 김종철 발행인이 지금까지 썼던 녹색평론 서문 또는 에세이를 모은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와 ‘땅의 옹호’, 녹색평론에 실린 여러 필자들의 글을 모은 ‘녹색평론선집2’.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광우병과 조류 인플루엔자(AI), 식량가격 폭등, 부동산가격 폭등과 인간성 상실, 생태 위기, 농촌 위기 등이 녹색평론을 통해 지난 16년간 꾸준히 예언돼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녹색평론은 또한 시국강연회와 전국 순회 강연회를 마련한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과 김종철 발행인이 연사로 나서는 시국강연회는 30일 오후 6시30분 원불교 종로교당에서 열리며, 독자모임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한 전국 순회 강연은 21일 대구를 시작으로 원주(24일)와 군포(28일), 부산(6월1일), 제주(4일)를 거쳐 다음달 11일 광주로 이어진다. 특히 원주 강연은 지역운동에 투신했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14주기를 겸해서 진행된다.(손제민기자)

시사인(08. 05. 09) "공생공락하는 심플 라이프가 대안이다"

<녹색평론>의 외형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없다. 사진 없이 글만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모습도 같고, 재생지를 써서 같은 판형의 다른 책보다 가볍게 들리는 것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의 함량은 결코 가볍지 않다. 원래 지식인 잡지로 출발했지만, 지식인이나 생태주의자만 이 잡지를 읽지는 않는다. 전국에서 독자 모임이 열릴 정도로 꽤 두터운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정기구독자 5000명 남짓. 또 서점에서 1000부 정도가 소화되니까 작은 잡지치고는 꽤 성공했다. 잡지 발간이 김종철 발행인(61)의 개인 의지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일이다. 그 잡지가 올해 5·6월호로 지령 100호를 맞이했다.

김 발행인은 마흔네 살 때 영남대 교수로 있으면서 <녹색평론>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홀로, 나중에는 그를 따르는 몇몇이 참여했다. 그동안 웬델 베리나 리 호이나키, 이반 일리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등이 <녹색평론>을 통해 국내 지식 사회에 알려졌다. 천규석, 권정생, 이현주, 전우익 등 국내 생태주의 ‘은사(隱士)’들에게 가장 많은 지면을 내준 것도 <녹색평론>이다. <녹색평론>은 100호 표지 사진으로 1년 전 권정생 선생이 타계한 직후, 그가 살던 집 섬돌에 놓여 있던 고무신을 찍은 사진을 실었다.



김 발행인은 4년 전 교수직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학계와 생태운동가들에게 작은 화제였던 ‘총장 폭행사건’이 직접 원인은 아니었지만, 수개월 뒤 그는 사표를 던졌다. 사건 전말을 간략히 전하면 이렇다. 그는 당시 외국의 생태운동가와 평화주의자들을 불러 사상 강좌를 열곤 했는데, 일본의 평화학자 도다 기요시 나가사키 대학 교수를 초청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도다 씨의 “거지 같은 차림새”가 학교 측의 비위를 상하게 했던 것. 1000만원 지원을 약속했던 총장이 70만원밖에 주지 못하겠다고 하는 순간 ‘다혈질 순수파’ 김 교수가 ‘폭발’해버렸다. 그 일로 그는 3개월 감봉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몇 달 뒤 그는 미련 없이 사표를 냈다. 지금 그는 <녹색평론> 발행·편집인 역에 전념하고 있다. 5월8일 서울 사직동 녹색평론사 자료실에서 김 전 교수를 만났다.

<녹색평론>을 창간한 이유는?
영남대 교수가 돼서 대구에 내려갔는데 처음에는 전원생활 같았다. 그런데 갈수록 개발 바람이 불더니 학교가 있는 경산과 대구 사이의 논밭이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는 걸 봤다. 참 고약하다고 생각하던 참에 독일의 마르크스주의자 출신 생태학자 루돌프 바로가 쓴 <대안>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그는 생태 위기 때문에 문명이 절멸할 것이라면서 녹색문화혁명을 주장했는데 와닿았다. 혼자 생각하다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되고 사회주의 붕괴 뒤 진보 세력이 흔들릴 때 공론의 장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창간했다.

창간사 제목이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였는데, 17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그때 첫 문장이 이랬다. ‘지금부터 20년이나 30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좀더 기다려봐야지(웃음).

위기의 징후를 느끼나?
식량문제가 심각한데 왜 우리 언론은 조용한지 모르겠다. 기후변화와 인구 증가, 농토 잠식 등으로 인해 인류의 식량문제가 점점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25%로 산업국가 중 최하 수준이다. 10년 안에 북한 같은 기아 사태가 우리한테도 닥칠 수 있다. 일본은 40% 수준인데도 2050년까지 자급률을 60%까지 올리도록 법제화하는 중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나 언론계 인사들은 아직까지 농지규제 완화나 궁리하고 있으니 답답하다. 제 자식들 데리고 여기서 오래 살 생각이 없는지도 모르지만.

<녹색평론>은 그동안 경제성장 논리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무엇이 문제인가?
자본주의 경제는 끝없는 성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한가. 선진국의 풍요 이면에는 인도나 중국 등 초저임금 노동자의 착취가 있다. 또 생산력을 높일수록 지구 자원을 계속 수탈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가능할까. 내가 볼 때 장기적으로 인류생활 전반을 고려하면서 주장을 펴는 경제학자가 없다.

경제성장은 대중의 욕망이기도 하다. 진보학자인 백낙청 교수도 김 발행인의 생각이 “잘살아보겠다는 대중의 정당한 욕구를 외면하는 것이다”라고 비판했는데.
대중의 욕구라는 게 얼마나 정당한지, 과연 적당한 경제성장이란 있는 것인지 토론이 필요하다. 백 교수에게 내 나름의 논리를 갖춰 이야기했으니까 뭔가 반론이 있겠지(그는 <창작과 비평> 봄호에 ‘민주주의, 성장논리, 농적(農的) 순환사회’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백낙청 교수의 ‘적당한 경제성장’ 주장을 비판한 바 있다).

정부나 정치인이 경제성장 논리를 거부하기는 사실상 힘든 것 아닌가?
근대 이후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치의 모범처럼 됐다. 그걸 해야 정상국가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로 인류 공통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런 체제에서는 선거 때마다 유권자에게 경제성장 약속을 안 할 수 없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인류를 자기 파멸로 이끌어갈 수 있다.

대안이 있나?

도시나 농촌, 지역과 직장에서 자치와 자급이 가능한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 협동조합운동이 내가 생각하는 대안이다. 국가는 그런 네트워크를 조정하는 사회자 같은 구실이면 된다. 산업혁명 초기부터 그런 생각이 제기됐지만, 마르크스주의가 주류 진보 담론으로 성행할 동안 죽어 있었다. 이제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

현실 가능할까? 현실 대안이 아니라면 책상물림의 공론으로 끝날 텐데.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혁명보다야 훨씬 쉽지. 대안학교 만들고, 도농 직거래 네트워크 열고, 의료생협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다.

복지국가론도 반대하나?
복지국가 또한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답은 아니다.

웬델 베리나 리 호이나키, 천규석이나 권정생 같은 생태주의 은사들의 글을 주로 소개했는데, 이게 <녹색평론>의 색깔인가?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초기에는 개인의 각성을 강조한 글이 많았다면, 요즘은 좀더 전투적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사회가 하도 어지러워서 거기에 대항하다 보니까 영성 같은 데는 좀 소홀해졌다(<녹색평론>은 최근 한반도 대운하와 한·미 FTA에 대해 반대하는 특집을 연달아 싣고 있다). 또 내 자신도 좀 변했고. 지금은 개인의 각성보다 연대나 친교, 우정 같은 데 관심이 더 간다. 이반 일리치의 사상이 영향을 미쳤다.

(서울 사직동 녹색평론사 자료실에서 책을 읽거나 사람들과 토론하는 게 그의 요즘 일과다. 이곳에서 매주 토요일 ‘이반 일리치 읽기 모임’이 열린다. 이반 일리치는 서구 문명체제의 허구를 폭로한 사회사상가. 그가 즐겨 쓰는 ‘공생공락의 가난’이라는 말도 일리치의 ‘conviviality’ 개념을 옮긴 조어다. 그는 회원들과 함께 필요한 물건을 나누어 쓰기도 하고, 몇 사람이 종자돈 수천만원을 출자해 만든 ‘일리치 은행’을 통해 이자 없는 은행을 실험하기도 한다.)

김 발행인 사상의 뿌리는 서양의 생태학인데, 대안은 두레 같은 전통에서 찾는 듯하다.
이반 일리치도 서양 중세에서 대안을 찾았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밑바닥 마을 사람들의 방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근본적으로 비슷하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선인가?
회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불가능하잖나. 그래서 ‘오래된 미래’라는 거지. 결국 세상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순환적인 패턴으로 움직인다. 봄·여름·가을·겨울, 태어나고 죽고, 내가 누군가의 밥이 되고 나를 먹은 누군가가 또 누군가의 밥이 되는 게 생태계다. 불가에 가면 공계순환제유정(空界循環濟有情; 세상은 순환함으로써 만물을 구한다는 뜻)이라는 말이 있다. 순환이 막히면 죽는다.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 농토의 4분의 1에서 표토가 상실했다고 한다. 이게 다 순환의 질서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근대라는 것은 순환 대신 직선을 지향한다. 생태계 건강을 망치면서 미친 문명이 돼버렸다. 옛날로 되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라 우리 생활을 순환 패턴으로 되돌려놓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우리 욕망을 줄여야 한다. 자발적 가난, 심플 라이프야말로 대안이다.

그는 <녹색평론>을 통해 수많은 생태주의자의 글과 삶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가 그들을 직접 만난 적은 거의 없다. 책을 읽다가 좋은 글을 발견하면 에이전시에 연락해서 허락을 맡고 번역해 게재하는 게 거의 전부다. 그는 그들을 “정신적 친구들”이라 불렀다. 그가 한국에 초청한 정신적 친구들은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쓴 더글러스 러미스나 일본의 평화운동가 오다 마코토, 생태주의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를 비롯한 몇몇이다.



그 중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녹색평론>이 발굴한 최대 스타였다. 하지만 그녀는 지난해 7월 중앙북스와 <오래된 미래>의 정식 판권 계약을 맺으면서 그와 결별했다. 그동안 녹색평론사는 노르베리-호지와 정식 계약 없이 ‘녹색 동지’의 관계를 맺어왔고, 김 발행인은 그녀의 연구소에 인세에 상당하는 기부를 해왔다. 그런 자발적 관계가 깨졌을 뿐 아니라 노르베리-호지가 일방적으로 출판사를 바꾸면서 인세 의혹까지 제기한 점 때문에 그의 상실감은 한동안 컸다.

그는 본래 문학평론가였다. 하지만 <녹색평론>을 발행하면서 그는 문학 평론을 접었다. “재미가 없었다. 지금도 요즘 작가는 아니고, 일제강점기 작가나 평론가들에 대해서 다시 공부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 때는 가끔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문학을 떠난 일은 국내 문단은 물론 일본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에게까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본디 의미의 문학에 충실한 사례’로 부커상을 받은 다큐멘러리 <작은 것들의 신>을 쓴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와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을 언급했는데,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 모두 ‘문학을 그만둔’ 상태였다. 하지만 어쩌면 <녹색평론>에서 글을 쓰는 지금의 활동이 그에게는 최상의 문학 행위일 수도 있다. 영문학에서 리터러처(literature)란 원래 ‘문사철’을 포함한 문자로 된 모든 저술 활동을 뜻했다고 하니까.(안철흥기자) 

08. 05. 16.

P.S. 참고로 같이 읽을 만한 오늘자 기사. '이명박 시대'가 어떤 시대욕망(시대정신이 아니다!)에 들려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단신이다.

이데일리(08. 05. 16) 李 대통령 "한국은 저성장 안돼..여러가지 이유로"

이명박 대통령이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적절한 경제 성장을 해야 한다"며 거듭 경제성장을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6일 저녁 전국 세무서장을 청와대로 초청,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대한민국은 저성장해서는 되지가 않는다”며 “젊은이 일자리 만들어줘야 하고, 서민 잘살게 해줘야 하고..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적절한 성장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아시다시피 어려운 때로, 미국이 0.5%로 플러스 성장할지 마이너스 성장할지 알수 없고, 일본 1.5%, 유럽도 ±1%"라고 한데 이어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기업의 사기를 올리는 세무행정을 당부했다. 대통령은 “세무행정만 바뀌어도 기업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투자하고 싶다, 이런 생각 나올 것”이라고 했다. 또 “일자리와 성장, 모든 주역은 기업이며 우리(정부)는 뒤에서 지원하는 후원 부대”라며 “한때 우리는 그 분들이 조연이고 우리가 주역같이 국정을 살폈던 때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갑, 을이 바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하는 사람들이 주연이기 때문에 잘 할 수 있도록 투자를 하고 내수 진작시키고 일자리 만들어 내고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중소기업 300만 개 1사람씩만 고용하면 300만 일자리 생기고, 해고하면 300만 일자리 없어진다”며 “중소기업 특별한 배려해야 한다, 국세청이 잘하면 웬만한 중소기업 100만 개에는 1자리씩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만찬에 참석한 한상률 국세청장도 "(대통령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재정상의 어려움 때문에 지장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그러나 절대 무리한 세정은 집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김수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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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malthea의 생각
    from amalthea's me2DAY 2008-05-19 13:47 
    녹색평론 정기구독신청할까...고민중.
 
 
노이에자이트 2008-05-17 22:45   좋아요 0 | URL
오다 마코토 <전쟁인가 평화인가>녹색평론사 2004서문을 김종철 씨가 썼는데 저자와 개인적 친분도 있어서 2003년 5월 영남대에 초청했다고 나와 있더군요.그해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지라 반전평화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였답니다.2002년 겨울엔 일본의 오다 마코토 자택에도 초대를 받은 걸 보면 상당한 친분인 것 같았어요.
녹색평론사 답게 이 책도 재생지를 썼더군요.오다 상은 제가 좋아하는 평화운동가라서 만나보고 싶었는데 얼마전 저 세상으로 ...그의 친구인 하워드 진도 이제 80줄...

로쟈 2008-05-18 22:37   좋아요 0 | URL
<전쟁인가 평화인가>만 알고 있었는데 몇 권 더 소개가 되었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5-18 23:50   좋아요 0 | URL
경향신문은 녹색평론100호를 사설에서까지 다루었는데 의외로 여기선 댓글이 한가하네요.오다 상의 소설은 읽은 적이 없고 생전에 그가 우리나라 신문에 기고한 글은 봤습니다.김종철 씨는 앞으로 동아시아 근현대 사상 총서를 기획중이라니 기대가 큽니다.사이비 일본통이 아니라 일본의 녹색운동이나 평화운동에도 조예가 깊은 것 같습니다.

로쟈 2008-05-19 00:09   좋아요 0 | URL
요즘은 댓글의 절반 이상이 노이에자이트님 겁니다.^^

열매 2008-05-19 02:25   좋아요 0 | URL
흥미롭군요. '동아시아 근현대 사상 총서를 기획중'이라니요...우리나라에서 동아시아 근현대를 말하는 사람들은 BK등의 용역 연구비 타먹을 연구원뿐이라고 여겼는데, 연구비 타먹으려 싸낸 논문따위 말고 총서 내지 선집를 만들어낼 기획을 하고 있었다니 놀라우면서도 기대됩니다. 근현대가 어디서부터 어디 정도까지 포함하고 있는지 알 순 없지만 근대 메이로쿠샤부터 동아시아 3국을 아우르는 선집이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혹시 '노이에자이트'님이 알고 계신 것이 있다면 귀뜸해 주실 순 없는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5-20 02:57   좋아요 0 | URL
경향신문에 나온 인터뷰 기사에서 김종철 씨가 밝힌 포부입니다.자세한 것은 모르고요.한국이라는 일국사에 갇히지 않고 중국과 일본까지 포괄하는 동아시아사라는 더욱 넓은 시각에서 역사를 보자는 취지랍니다.
요즘 일본의 근현대사상가들에 대해선 좋은 번역이 꽤 나오던데요.다케우치 요시미 평론선,태평양 전쟁의 사상 등...특히 아시아주의자들에 대한 책들요.현양사같은 야쿠자 집단이 아닌 지적인 아시아주의자들을 다룬 책들이죠.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한 이들을 다룬 연구서들도 보세요.후지타 쇼죠,츠루미 슌스케의 책들이 번역되어 있습니다.태평양 전쟁 긍정론을 쓴 하야시 후사오의 전쟁관을 짙게 깐 소설인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태평양 전쟁>은 오래전에 번역되어 있습니다.단 헌책방에서나 구할 수 있습니다.이 소설 겁나게 재밌습니다.
학술서적이 아닌 교양서적으로는 서경식 씨가 좋아하는 다카하시 데쓰야의 저작을 권합니다.우리나라에도 꽤 지성계에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공부합시다!!!

21세기컴맹 2008-05-29 18:36   좋아요 0 | URL
자체보다 주변에 더 흥미로운 글입니다. 제목도 시사하는 바가 크군요.그 그,
그리고 퍼갑니다.
 

번역 문제에 관한 원고를 쓸 일이 있어서 관련자료들을 좀 모아놓아야 한다. 지난달 기사이지만 참고삼아 아래기사도 스크랩해놓는다.  

대학신문(08. 04. 12) '번역 선진국’을 향한 발걸음

고등학교 시절 국사와 세계사에 매력을 느껴 국사학과에 입학한 김혜진씨(가명). 그는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로도토스(Herodotos)의 『역사(Historiai)』를 사려고 서점을 찾았다. 하지만 『역사』의 유일한 완역본이 일본어 중역본일뿐더러 역사학 전공자가 번역한 것도 아니었다. 책은 무리없이 읽을 수 있었지만 원전 번역이 단 한 권도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 랑케(Leopold von Ranke)의 책을 사려고 발걸음을 옮겼다가 더욱 놀랐다. 완역된 랑케의 책이 한 권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번역출판계는 부실공사?=대한출판문화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07년 출판된 신간 중에서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23%(12,321종)에 달했다. 하지만 이 통계는 ‘납본(새로 발간된 출판물을 해당기관에 제출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데 평균적으로 출간된 책 중 73%만이 납본된다. 이를 감안하면 서점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간 번역서는 약 1만7천여 권이다. 하지만 번역서 중 대부분은 실용서나 가벼운 에세이류다. 실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부수 상위 30위권 내에서 번역서는 16종에 달했지만 『시크릿』,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마시멜로 이야기』 등 소위 고전과 거리가 먼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번역은 반역인가』의 저자 박상익 교수(우석대·사회교육학과)는 “국민의 기초교양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서양의 고전들이 번역되지 않고 있다”며 “다들 중요하다고는 말하지만 잘 팔리지 않아 출판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는 노벨상 수상자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의 대표작 『로마사』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신학대전』 등의 완역본이 없는 실정이다.

번역된 책들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번역된 책을 표절해 재번역인 것처럼 출판하는 중복출판, 대리번역 문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영미문학연구회에서 번역평가사업단을 구성해 출판된 영미문학 번역서를 검토한 결과 표절본이 48%에 육박했다.

오역 역시 큰 문제다. 지난 2005년 이재호 명예교수(성균관대·영어영문학과)는 번역가이자 소설가로 활동 중인 이윤기씨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신화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오역”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오역 논쟁’으로 이어져 학계와 대중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지금도 각종 번역서의 오역문제가 인터넷카페 ‘비평고원’이나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출판사의 피드백은 잘 이뤄지고 있지 않다. 저작권이 살아있는 경우에는 오역이 발견되고 학자들의 수정의지가 있어도 수정하거나 재번역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척박한 번역계 현실=현재 전문 번역가들은 대부분 번역가 이외의 직업을 갖고 있다. 번역료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번역가들은 원고료를 인세 혹은 매절의 형식으로 받는다. 역자인세는 평균적으로 판매가의 5%정도다. 1만원 짜리 책 한 권을 몇 개월에 걸쳐 번역해도 1천권이 팔려야 50만원을 받는 셈이다. 물론 1천권이 팔리기 위해 몇 년이나 걸리는 책들은 허다하다. 매절은 원고지 1매당 일정액을 받는 형식인데 매당 3~4천원 정도가 일반적인 액수다. 출판사와 역자는 책의 성격에 따라서 둘 중 한가지 방식을 혹은 둘을 결합한 방식을 협의해서 선택한다. 그러나 소수의 ‘스타 번역가’들을 제외한다면 번역료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부당한 대우는 번역이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는 번역가들이 다른 일을 병행할 수밖에 없어 번역에 투자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으로 이어져 번역의 질은 더 저하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번역학회 총무이사 최희섭 교수(전주대·영미언어문화전공)는 “번역가를 일종의 창작자로 대우하는 외국과는 달리 한국 출판시장에서 번역가는 창작자에 종속된 것으로 평가받는다”며 “‘번역 선진국’으로 평가되는 일본에서는 번역가들이 번역료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당 분야의 지식을 갖춘 편집진을 보유하지 못한 출판사도 좋은 번역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이런 출판사들은 교정·교열 이상의 편집이 힘들다. 이제이북스 전응주 대표는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번역한 원고와 원문을 대조해가며 검토할 수 있는 편집진을 갖춘 출판사가 적다”며 “그만한 능력이 있는 인재들은 출판계보다 수입이 더 많은 분야를 선호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나 둘 싹트는 대안들=관계자들은 번역시장의 각종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번역비평 문화의 활성화’를 꼽았다.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다빈치 코드』는 공론화된 번역비평이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낸 사례로 평가받는다. 『다빈치 코드』의 번역비평은 학계가 아닌 대중으로부터 시작됐다. 웹상에서 원문과 번역본을 비교하며 오역을 지적하는 누리꾼들이 하나 둘 모였고 급기야는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누리꾼들도 있었다. 이에 출판사인 베텔스만코리아는 “흐름에 영향을 줄 만큼 심각한 오역은 아니었다”면서도 25쇄부터 외국소설 전문 번역가의 감수를 거친 개역판을 출간했다.

지난해 한국번역비평학회는 번역시장에서 전문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번역비평』 창간호를 발간했다. 회장 황현산 교수(고려대·불어불문학과)는 학회 창립 학술대회에서 “공개적·객관적으로 번역을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학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번역에 대한 학계의 인식도 차츰 나아지고 있다. 교육부(현재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5월 발표한 「인문학 진흥 기본계획」에서 “논문형 작품만 학위논문으로 인정해온 관행을 바꿔 동서양 고전을 번역하더라도 박사논문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학술진흥재단이나 대학에서도 번역을 연구실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학술진흥재단 인문학지원팀 정혁씨는 “사업에 따라 다르지만 번역서가 저서와 같은 대우를 받는 분야도 있다”며 “오는 7월에 신청을 받기 시작하는 ‘명저번역지원’ 사업 등을 통해 학술기반을 구축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이진환기자)

08. 0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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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5-1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여년 전 나온 김용옥<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우리나라도 번역을 연구실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제 그렇게 되나보군요.하지만 제대로 되려면 대학원생들 시켜 찢어쓰기 번역하고 교수이름만 붙여 책내는 관행이 없어져야 한다고 봅니다.이는 우리나라 특유의 더러운 위계질서가 없어져야만 가능하죠.저는 대학원을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 박노자 씨 책에서 보고 깜짝 놀랐어요.조폭의 위계질서 같다는...
그리고 삼성문화문고에서 레오폴드 폰 랑케<젊은이를 위한 세계사>번역본이 있는데 역자해설이 전혀 없어서 완역인지 발췌역인지는 모르겠네요.

로쟈 2008-05-15 23:58   좋아요 0 | URL
대학원을 안 가셨다니 의외인데요. 저는 역사학쪽으로 박사학위라도 하신 걸로 알았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16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웬 박사? 그냥 독학했습니다.앞으로도 대학원 갈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저는 이병철 씨 최대의 공헌은 수출이 아니라 삼성문화 문고를 만든 거라고 생각합니다(특히 이 책이 진중문고로 군대로 들어간 것은 정말 잘된 일이었습니다).좋은 책들이 꽤 많죠.국한문 혼용과 세로줄 문고의 추억...지금도 헌책방에서 몇 권 씩 구합니다.
문화 강국은 좋은 사전과 좋은 번역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아...그리고 도서관 사서의 자질도 빼놓을 수 없죠.

로쟈 2008-05-16 00:35   좋아요 0 | URL
(삼중당문고가 아닌) 삼성문화문고가 키워낸 인재시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5-16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중당 문고도 좋아해요.20년 전부터 가로줄로 나오더군요.거기는 문학쪽이 많고 인문사회 쪽은 삼성문화문고가 많죠.두 문고에 모두 신세지고 있습니다.지금도...그리고 을유,박영사,탐구당에서 나온 문고본도...이젠 헌책방에서나 가끔 만나지만요...
장정일 씨에겐 삼중당 문고라는 시도 있더군요.

로쟈 2008-05-17 00:01   좋아요 0 | URL
유명한 시죠.^^

여울 2008-05-16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쉽더군요. 새로운 흐름에 대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로 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념도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날림번역을 하는 일들. 번역자에게도 독자에게도 모두 좋지 않은 길로 접어드는 것 같아요. 공동번역도, 번역문화와 생계해결도...논의가 활성화되면 좋겠다 싶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로쟈 2008-05-17 00:01   좋아요 0 | URL
상황이 반전되면 좋겠는데, 좀더 지켜봐야겠습니다...

구미웅 2008-06-04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진환입니다.

가끔 로쟈님 서재에 오는데 늘 도움 많이 받습니다.

로쟈 2008-06-04 18:18   좋아요 0 | URL
지금 확인하신 걸 보면 아주 가끔 들르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