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밥당번은 쿠쿠
쿠쿠가 맛있는 취사를 하는 동안
따로 먹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아니지만 쿠쿠 몰래 먹는 건
쿠쿠도 눈감아 줄 것
쿠쿠가 취사를 하는 동안
나는 냉장고를 뒤져
하겐다즈를 꺼내고
아이스크림은 먹는 게 아니잖아
꺼내서 먹는다
먹는 중에 쿠쿠는 벌써 뜸을 들이고
나는 서둘러 입 닦는다
먹는 거 말고는
불순물이 전혀 없는 시
쿠쿠에게 보여줘야겠다
쿠쿠도 눈감아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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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a 2018-06-1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쿠쿠가 ˝백미 취사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대답도 합니다.

로쟈 2018-06-10 21:25   좋아요 0 | URL
네, 열일하지요.^^
 

우주에는 암흑물질
존재하지만 관측되지 않는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는
암흑물질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암흑물질이 문학에도 있다면
암흑문학
근대문학의 짝으로
근대 암흑문학
근대시의 짝으로
근대 암흑시
근대 작가의 짝으로
근대 암흑작가
존재하지 않는 문학사로
근대 암흑문학사
쓰이지 않은 문학의 연대기
살아보지 않은 삶의 생생한 묘사
가지 않은 길의 여정
겪어보지 못한 경험의 리얼리즘
나는 세계 암흑문학사에 관심이 있지
세계문학이 놓친 문학
지구문학이 배신한 문학
암흑문학의 셰익스피어와
암흑문학의 괴테를 찾지
암흑문학의 톨스토이
혹은 톨스토이의 암흑문학
톨스토이에게 가능했던
하지만 톨스토이가 쓰지 않은 문학
톨스토이를 읽으며
톨스토이의 암흑문학을 읽지
어둠의 힘은 암흑의 힘
암흑문학의 힘을 나는 믿지
문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뿌리네
보이지 않는 빛의 영광
암흑문학을 찾아서
나는 오늘도 눈을 감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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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06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구문학이 배신한 문학이라고 읽는 순간
뜨끔
지구문학의 배신에 일조하진 않았나?
독자로서.

로쟈 2018-06-06 18:34   좋아요 0 | URL
배신한 문학은 많지요. 배신의 역사, 지식인의 배신, 민중의 배신 등등이 그렇듯이.~

어흥이 2018-06-06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흑문학?이 확연히 드러나길... 많아지길... 그렇담 좀 더 나은 세상 속에서... 아마도? anyway... ^^: ㅠ

로쟈 2018-06-07 07:44   좋아요 0 | URL
드러나는 게 가능한지는 두고봐야할 거 같아요. 보이지 않기에 암흑문학인지라.~
 

저 햇빛에 대응하라
조치를 취하라
누구 맘대로 한낮인가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라
뜨거운 맛을 보여줘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낯뜨거움에는 낯뜨거움으로
보란듯이 대응하라
선제적으로 타격하라
낯 뜨거워지기 전에 낯뜨거움을 시전하라
저 햇빛의 오만을 좌시하지 않겠다
눈부심을 방관하지 않겠다
한낮에 흐르는 눈물을 잊지 않겠다
오늘의 복수를 내일로 미루지 않겠다
오라, 허공을 향한 주먹질
코피 전술이란 이런 것
조만간 면상이 붉어질 테니
우리의 대응에 자비란 없다
우리는 난초가 아니기에
우리는 물 먹은 벙어리가 아니기에
우리의 가지는 튼튼하고
잎새는 잘 무장돼 있다
게다가 이동한다
우리는 수시로 이동한다
걸어서도 이동하고 버스로도
이동한다 집안에서도
이동한다
우리는 만만찮다
우리는 연신내에도 살고
개봉동에도 산다
우리는 자체발광이다
누구 맘대로 햇빛인가
햇빛의 타격인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안 되고야 말 것이다
여기 뜨악한 맛을 보아라
충분히 맛보아라
저녁까지 기다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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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어제의 구도가 아니다
배치도 다르고 엑스트라도 다르다
오늘의 전철 씬
그러고 보니 나도 엑스트라군
대사가 없다
입 다물고 스마트폰에 열중한다
열심히 문자를 보내는 표정으로
시를 적는다 오늘의
할당량을 채운다
이제 겨우 복역 2개월차
만기 출소는 꿈꾸지 않는다
특별대사면은 혹 모르겠다
다행히 수용소는 아주 넓다
무제한 데이터서비스처럼
이동반경도 무제한
해저터널이 있다면 남미도 갈 수 있다
모스크바에서 안부를 묻는다
뮌헨에서도 문자가 온다
병원도 오갈 수 있다
단지 시를 써야 할 뿐이다
다들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재소자들의 특징이다
그림시도 있고 노래시도 있고
포르노시도 있다
형량은 다르다
장르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다
각자 복역중이다
다들 모르는 척 시선을 돌린다
나도 전과를 숨긴다
예전에 써봤다고 진술했다
멍청이!
나는 두 배를 써야 한다
전철에서도 쓴다
안약 넣고도 쓴다
무작정 쓴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컷! 이제 다음 장면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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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0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역2개월차 ㅎㅎ
교도관에게 미운털 박히지 마시고
용문신 재소자들도 잘 피해다니시고
부디 모범수로 조기출소 하시길~~
(사진속 지하철은 어디? 이쁘네요
시도 되고 연애도 될듯한 지하철~)

로쟈 2018-06-06 15:49   좋아요 0 | URL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지하철이랍니다.~
 

장미의 계절이라는 장미들의 피케팅
누가 장미파이고 비장미파인가
누가 들장미파이고 백장미파인가
이 계절의 입장권을 확인한다
여름을 간과한 자들이 입구에서 저지당한다
여기는 장미구역
장미 아닌 것들은 다 숙일 것
지금은 정치의 계절이 아니라 장미의 계절
장미들의 기세등등한 기세를 보라
아파트단지마다 장미들의 대오를 보라
장미들의 들끓는 붉은 함성을 보라
저들은 압구정파이기도 하지
근방에서 유명하다네
언젠가 노숙자라고 봉변을 당할 뻔했네
지금 집이 없는 자들은 피해 가야지
장미 가시에 찔리기 전에 이 구역을 벗어나야지
서둘러 지하철입구 계단을 내려간다
오늘은 에스컬레이터도 수리중
그래도 나는 가뿐하게 도망중
장미들이 순발력 없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충정로에서 한숨 돌리네
누구처럼 장미의 시인이 아닌 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그 많던 철쭉은 어디로 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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