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 사이에
유령의 책
이름만 알고 있는 책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책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읽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히틀러의 유령이라고 적는다
히틀러는 죽어서도 죽지 않는군

그토록 유명한 독재자를
그토록 자주 만나는 콧수염을
그러나 저자로는 만나지 않겠다
불길한 투쟁

히틀러의 모델, 미국을 앞에 두고
다시 블랙어스, 암흑의 대지를 떠올리고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참호 속으로 들어가려니

다시금 그의 유령이 나타난다
망루가 아닌 식탁에서
글자들 사이에서
금지된 투쟁을 선동한다

읽으면서 부정하고
읽으면서 잊어야 하는 책
나의 투쟁
나는 나의 투쟁을 어디에 두었나

나의 서가에는 크나우스고르만 있지
나의 투쟁
여기서 붙들리다니
얼른 꿈 밖으로 나가야겠다

여기가 역사의 바깥인가
식탁에서 일어나 코드를 뺀다
존재하지 않기에
유령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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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 2018-06-17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다가 말한 마르크스 유령이 떠오르네요 칼 맑스가 공당산 선언에서 언급한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는 문장도 생각나고 히틀러는 살아있을 때도 신화가 된 인물이지만 죽어서도 더 강하게 신화가 된 인물 그것도 매우 불편하고 어두운 신화로 잊으려고 해도 지우려고 해도 유럽현대사의 히틀러라는 인물은 하나의 형체 없는 유령 처럼 지금도 곳곳에서 출몰하는 느낌 한국에서도 그 유령의 그림자가 언뜻언뜻 보일떄도 있고요 자유한국당과 그 추종세력들을 보면은 그 뿌리 깊은 어두운 유령의 그림자가 보이네요 좋은것이든 나쁜것이든 인류사에 뿌리깊게 내재한 그 파변화 되고 완전히 제거 할수 없는 잔여물이 남아서 떠돌아 다니는 느낌 그게 공산주의가 되었든 민족주의가 되었든 독재가 되었든 유토피아가 되었든~~~

로쟈 2018-06-17 20:52   좋아요 0 | URL
네, 존재론과 유령론은 분리불가능합니다.~

two0sun 2018-06-17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사이의
유령의 책들이야 워낙 많으니
그려려니~
문제는 읽은책마져도 유령의 책 코스프레를~
거기에 속는 멍충이가 되지 말아야는데.
유령 말씀하시니 헨리 제임스의 강의가 기대되네요.
유령에도 여러 유형과 급이 있지 않을까해서.

로쟈 2018-06-17 20:52   좋아요 0 | URL
모든 책은 일단 유령이죠.^^
 

돌멩이와 적조했다
오래 안 본 동창처럼
그립지 않아도 궁금하다
돌멩이를 쥐어본 적 언제던가
발로 차본 적 언제던가
우리는 차고 채이면서 친해진 사이
단단한 우정이라고 불리는 사이
이렇게 문득 생각나는 사이
조폭과 어울려 다니던 돌멩이도 있었지
마포 자루로 엉덩이를 맞다가
창문 넘어 도망친 돌멩이도 있었어
부둣가에서 무릎 꿇고 밟히던 돌멩이도
지나고 보면 다 뿔뿔히 흩어진 인연
돌멩이답게 눈물 따윈 훔치지 않아
우린 주로 굴러다닐 뿐
우리에겐 이끼가 끼지 않지
집에는 들어가지 않아
돌멩이라면 다들 이해해
때로는 돈을 떼먹기도 했지
돌멩이도 쓸 곳은 있는 거지
연탄구이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소주를 마셔본 게 언제던가
길바닥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본 게 언제던가
세상엔 별처럼 빛나는 돌멩이도 있고
어깨 처진 돌멩이도 있지
노래하는 돌멩이도 있고
복장 터지는 돌멩이도 있어
빌딩을 세운 돌멩이도 있을까
며칠 밤을 새운 돌멩이도 있어
먼저 간 돌멩이도 여럿이야
그렇다고 뭉치진 않아
이젠 몰려다니지도 않아
우린 각자가 알아서 돌멩이
바라는 건 없어
우리는 차고 또 채일 뿐
꿈 같은 거 꾸지 않아
돌멩이니까
그립지도 않아
돌멩이니까
그냥 궁금하다는 거지
오래 적조했다는 거지
이러니 돌멩이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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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나 2018-06-18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쓴 시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읽으면서 또 다시 잘 쓴 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복장 터지는 돌멩이˝, ˝먼저 간 돌멩이˝가 참으로 빛난다 싶었는데,
˝우린 각자가 알아서 돌멩이˝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연을 나눠주면 어떨지요?
그러면 더 가슴에 와닿을 것 같습니다만.....

로쟈 2018-06-18 10:04   좋아요 0 | URL
네 연가름은 나중에 손볼 기회가 있으면 하려고 합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단 새가 그렇다
새가 새라는 조건에서
날개가 날개라는 조건에서
날갯죽지가 양쪽에 있어도
닭은 날지 못하고 칠면조도 그렇다
이제 오른쪽 날개가 생겼으니
왼쪽에도 날개를 달아보자
그러고 나는가 보자
을숙도 지나 광화문 지나
판문점도 지나서
길이 보전하세로 날아가는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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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rbet 2018-06-14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는 질문이긴하지만 로자교수님은 책을 그렇게 많이 보시는 이유가 뭔가요??

로쟈 2018-06-14 22:47   좋아요 0 | URL
두 가지 이유만 들자면 (1)적들은 더 많이 읽습니다, (2)숨쉬는 이유와 같습니다.

sherbet 2018-06-14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또 하나만 더 여쭙자면 독서 슬럼프가 오실때면 어떻게 극복하시는지요

로쟈 2018-06-14 22:48   좋아요 0 | URL
건강이 슬럼프입니다. 잠을 잘 자고 잘 쉬어야 합니다.

sherbet 2018-06-1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숨쉬는 이유라면 그냥 자연스럽다는 이유??인가요?

로쟈 2018-06-15 18:51   좋아요 0 | URL
독서에도 강적은 많습니다. 그리고 독서인에게 독서는 숨쉬는 것과 같아요. 매번 이유를 물으면서 숨쉬지 않습니다.

sherbet 2018-06-1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책 같은 고도로 추상적이고 어려운 책같은건 어떻게 읽으시는지요? 헤겔 정신현상학같은건 도대체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디 이런거 읽다보면 진짜 자살하고 싶어지거든요 ㅠ

로쟈 2018-06-15 18:52   좋아요 1 | URL
그런 책은 안 읽으시면 됩니다!

NamGiKim 2018-06-1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리영희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이란 없다.

-하워드 진

둘다 좋은 명언입니다.^-^

로쟈 2018-06-15 18:52   좋아요 0 | URL
중립은 양다리를 가리키니까요.
 

불이여 나와 함께 걸어요
미열과 함께 걸을 때
수리여 나의 눈을 파먹어요
세상을 다시 보고 싶을 때
그대여 모래시계를 뒤집어요
뒤집힌 세상에서 세어 보아요
세상에 없는 그대여
나와 함께 걸어요
텅 빈 관절들의 비명과 함께
발자국을 찍어요
직립보행의 흔적을 남겨요
그대가 걸었고 내가 걸었고
그대의 부재가 걸었고 내가 다시 걸었고
불과 함께 걸으며 불의 인장을 남겨요
그리고 다시 뒤집을 거예요
다시 세어 볼 거예요
보이지 않는 눈으로 볼 거예요
세상의 멸망을 볼 거예요
나와 함께 볼 거예요
불이여 나와 함께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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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6-14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트윈픽스 맞죠? 예전에 티비시리즈로
보았죠. 컬트무비란 낯선 장르에
호기심가지고...첨엔 분위기가 제 취향이었고...그러다 스토리가 이해안되며...급기야 의리(?)로
보았던...
근데 쌤, 시가 슬퍼요...

로쟈 2018-06-14 12:48   좋아요 0 | URL
네 트윈픽스. 영화에서 제목을 갖고 왔어요.~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도스토옙스키가 말했다
출처는 없다
도스토옙스키는 말하지 않았다
어느 주머니에서 나왔는지
외투 주머니는 안쪽에도
바깥쪽에도 혹
터진 주머니가 있을 수도
우리의 일부는 고골의 외투에서
새어나갔다
러시아문학사는
주머니에서 꺼낸 문학사도 있고
새어나간 문학사도 있다
고골을 따르는 문학사도 있고
(고골거리는 문학사다)
엇나가는 문학사도 있다
(갸르릉거리는 문학사다)
그래도 자랑스럽다
아침부터 골골하면서도
고골을 떠올릴 수 있어서
러시아문학 강사는
아침부터 고골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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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