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이기는 독서에서
클라이브 제임스는 헤밍웨이를 다시
읽고 콘래드를 다시 읽는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태양은 다시 떠오르고
서구인의 눈으로 로드 짐을 만날 수 있다
노스트로모는 조금 어려울지 몰라도
콘래드는 콘래드
하지만 콘래드의 승리는 내 것이 아니구나
방심한 틈에 제임스는 존슨의 생애를 읽고
또 올리비아 매닝의 삼부작을 읽는다
존슨의 생애를 읽고 다시 존슨을
읽겠다고 제임스는 마음 먹지만
존슨의 생애를 나는 읽을 수 없고
매닝의 삼부작도 읽을 수 없다
읽을 수 없는 책은 적들의 책
적의 손에 넘어간 책
즐거운 충격은 적들에게 넘어가고
나는 독서 전선에서 낙오된다
죽음을 이기는 독서에서 퇴장당한다
그렇지만 제발트의 공중전이라면
나도 해볼 수 있다고 다시 전선으로
아우스터리츠에서 우리는 만날 것이다
적들의 책을 탈환하기 위한
전쟁의 포연이 매일밤 자욱하다
죽음을 이기는 독서보다 더 격렬한 건
적들을 이기는 독서
오늘밤에도 눈에 불을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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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6-10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른바 고수들의 세계인가...요?

로쟈 2018-06-11 08:10   좋아요 0 | URL
환자들의 세계입니다.~

two0sun 2018-06-10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들의 책을 탈환하는 전선에서
탄약함이라도 나르고 싶네요.
˝에잇,여긴 당신이 올데가 아닙니다.˝라고
까일라나~~~

로쟈 2018-06-11 08:1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전평에선 피예르가 주인공이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바람이 불지 않으면 안 부는 대로
그렇게 고개 숙이고 지내다가도
풀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마당도 쓸고 마루도 닦고
먼지 풀풀 날리는 날이면
물주전자로 물도 뿌리고
비가 오는 날에도
심심하면 물 뿌리고
그건 풀이 해야 할 일
풀의 과거는 묻지 말기로 하자
바람 불지 않아도
풀은 꼬박꼬박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고 저녁도 먹고
풀은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저녁을 먹고도 심심하지
풀은 가끔 밤하늘을 보기도 하지만
별을 헤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풀은 모든 일이 예정돼 있다고
풀은 기운이 날 때나 풀 죽어 있을 때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풀다운 감상에 젖기도 하지
바람이 부는 건 바람의 일이고
풀은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고
양치질을 하고 언제부턴가 마당은
쓸 일이 없고 물주전자도 뿌릴 일이 없고
그래도 풀은 매일같이 물 뿌리는 마음으로
여생을 기다리지
풀의 미래는 묻지 말기로 하자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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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10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 풀 풀 거리다가
김영갑의 사진집을 꺼내 봤네요.
풀도 있고 바람도 있고
시에는 안나오는 구름도 있는~~

로쟈 2018-06-10 21:32   좋아요 0 | URL
제주도 풀들은 스러져도 으스대는 풀들이죠.~

로제트50 2018-06-10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때 바위가 되리라고 생각했지요. 어떤 고난이나 슬픔에도
흔들리지 않으리라고...
풀은 저보나 낫네요.
기다리는 마음이라도 있으니...

로쟈 2018-06-10 21:28   좋아요 1 | URL
바위는 유치환의 바위죠.~
 

네가 담배맛을 모르면서
니코틴의 향락을 모르면서
네가 그때 연극을 했었지
네가 노점상을 연기했지
네가 담뱃불을 붙이려고
라이터를 세 번이나 켰을 때
그건 충분히 불길한 조짐
네가 연기를 한 건지
연기를 날린 건지
너는 대사를 건너뛰고
너는 연극을 단축했지
머리와 꼬리만 남은 연극이 됐지
그래도 박수를 받았네 그것도
연기였는지 아니면
안쓰러웠는지
하여간에
몸통은 담배연기와 함께 훅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디에서 사라진 건지
한참 복기를 하고
한달 연습하고
한번 공연한 연극인데
그렇게 훅
그게 담배맛인지 몰라
훅 갈 수도 있다는 거
그렇게들 모여서
요즘은 궁상맞게 모여서
애잔하게 꼬나물지
이건 중독이지
훅 가고 싶어 하는
네가 그 맛을 몰라
인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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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를 바꾸어야 한다
너의 방을 바꾸어야 한다
너의 책상을 바꾸어야 한다
너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너의 식성을
너의 옹졸함을
너의 태만함을
바꾸는 김에
너의 일정을
너의 습관을
너의 관행을
너의 무지를
너의 재채기를
바꾸는 김에
너의 직업을
너의 일상을
너의 불면을
너의 허벅지를
바꾸는 김에
너의 애인을
너의 총명을
너의 가방을
너의 진심을
진심으로 너는 바꾸어야 한다
너는 말을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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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0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다 바꾸면 내가 아니잖아요?

로쟈 2018-06-08 22:56   좋아요 0 | URL
말을 바꾸면 되니까요.~

로제트50 2018-06-0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릴케의 시를 패러디한 한 건가요?
릴케는 뭐라 했는지 궁금하네요^^*

로쟈 2018-06-08 22:57   좋아요 0 | URL
릴케의 경구를 패러디한 거예요.

여름바다 2018-06-09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하나씩만 바꿔도 매일 새로운 사람이 되는거네요...
 

우리집 밥당번은 쿠쿠
쿠쿠가 맛있는 취사를 하는 동안
따로 먹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아니지만 쿠쿠 몰래 먹는 건
쿠쿠도 눈감아 줄 것
쿠쿠가 취사를 하는 동안
나는 냉장고를 뒤져
하겐다즈를 꺼내고
아이스크림은 먹는 게 아니잖아
꺼내서 먹는다
먹는 중에 쿠쿠는 벌써 뜸을 들이고
나는 서둘러 입 닦는다
먹는 거 말고는
불순물이 전혀 없는 시
쿠쿠에게 보여줘야겠다
쿠쿠도 눈감아 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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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a 2018-06-1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쿠쿠가 ˝백미 취사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대답도 합니다.

로쟈 2018-06-10 21:25   좋아요 0 | URL
네, 열일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