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마는 누구의 이름인가
누구의 이름도 아닌 쿠마
쿠마는 그렇쿠마에서 떼어낸 말
그렇쿠마는 그렇구마에서
그렇구마는 그렇구나에서 온 말
본적이 그렇구나인 쿠마
하지만 집 나온 쿠마
오갈 데 없는 쿠마
국적도 없고 소속도 없는 쿠마
집 없는 개가 있다면
그런 개 같쿠마 쿠마
노숙자 같은 쿠마
난민 같은 쿠마
이름도 아니면서
그렇게 불리는 쿠마
쿠마라고 부르니 안쓰러운 쿠마
발바닥 티눈 같은 쿠마
쓸데없는 쿠마
쓸데없어서 미안한 쿠마
쿠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누구의 이름도 아닌 쿠마
사랑도 아닌 쿠마
그래도 마음 쓰이는 쿠마
결국은 이렇게
시로 적게 되는 쿠마
더는 해줄 게 없는 쿠마
정녕 그렇쿠마 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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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연은 비가역적이니
오면 가지만 가면 오지 않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따지면 다시 올 거라고만
영원히 다시 올 거라고
되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무엇으로 되돌아오는가
한 잎의 속삭임으로 오는가
한낮의 소나기로 오는가
구름 되어 오는가
바람 되어 오는가
이런 날은 미세먼지로 오는가
무슨 시력으로 알아보는가
팻말이라도 들고 있지 않다면
그게 남세스러운 인연이라면
그게 속상한 인연이라면
인연도 생각이 많아
오면 가고 가면 오지 않는 거지
그런 생각이면
못 다한 인연도 속 깊은 인연이지
인연이 아니어도 애틋한 인연이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인연도
다시 올 거라고 속삭이는 인연도
한바탕 소나기와 같은 것
맹렬하게 쏟아지다가
멋쩍게 입 다문다
생각하면
그렇게 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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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6-29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좋네요~

로쟈 2018-06-29 23:51   좋아요 0 | URL
^^
 

한 손가락으로 시를 쓰듯
한 눈을 감고 쓴다
이 정도는 써준다는 식으로
시를 쓰느라 눈이 시리다는 핑계로
핑계 아닌 핑계로
설마 시를 쓰다 실명하겠느냐만은
실없는 시라면 또 모르는 일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쓴다고 쓰는 시라면
누구를 위한 시인가
그럼 쓰지 않는다고 쓰는가
그렇다, 이건 시가 아닌 시
시가 아니라고 쓰는 시를
나는 눈이 시려 한 눈을 감고서
시라고 쓴다
어차피 그대가 읽지 않는다면
누가 읽어도 상관 없는 일
누가 읽지 않아도 상관 없는 일
시만 그렇지도 않다
시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 것
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한 손가락으로 시를 쓰거나
시를 쓰지 않거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예정이니
나는 두 눈을 모두 감았다 뜰 예정이니
한 눈으로 시를 쓰는 건
한눈파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쓴다면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것
어느 날 두 눈을 감고도 쓰리라
누가 읽어도 상관없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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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27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어느 대목이
저남자에게 저런 표정을 짓게 했던걸까요?

로쟈 2018-06-28 09:54   좋아요 0 | URL
페이지를보니 앞부분 같은데요. 뒤로가면 쓰러질듯.~

로제트50 2018-06-2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핑계로든, 저 핑계로든 시 쓰기는
시인의 숙명이겠지요. 그 고독은 외로움과는 다른 능동적인 선택이겠지요.

로쟈 2018-06-28 09:55   좋아요 0 | URL
^^
 

낮에도 조개를 먹었지만
벌교꼬막의 마음은 나도 모른다
바지락칼국수에 홍합짬뽕은 먹었어도
그건 바지락이고 홍합이고
네가 꼬막을 알 리 없다
꼬막을 먹어봤다 쳐도
벌교꼬막은 아니었으니
벌교는 가본 적도 없으니
먹어본 적도 없으니
속마음을 알 리 없다
그게 하동에 재첩국이 있다면
벌교엔 꼬막이 있는 것이지
인연이 없으면 마음을 어찌 알리
네가 꼬막도 모르면
벌교의 마음을 어찌 알리
꼬막정식도 맛보지 못하고
꼬막무침에 꼬막전과 꼬막탕수육까지
네가 벌교꼬막도 알지 못하면서
네가 식욕이 없다고
네가 벌교도 가보지 않고서
역사를 읽었다고
굳이 아현동 벌교꼬막을 지나쳤다고
트집을 잡는 게 아니다
꼬막과의 오랜 인연을 생각해보라
꼬막은 벌교꼬막이라는데
네가 내 마음을 몰라줄 수가 없다
이런 비 오는 날에는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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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척추가 없어도
곧게 서 있구나
비바람에 흔들려주면 그만
흔들릴 마음이 없어
표정도 없구나
나무는 무심하구나
무심이 극락이지
내색하지 않지만
나무는 극락에 있지
척추가 없으니 뇌도 없는 거지
뇌는 움직이는 동물에게나
까불대거나
깝작대거나
뇌는 움직일 때 쓰는 거지
나무가 되거나 바위가 된다면
신경이 필요 없고 뇌가 필요 없고
무심한 지경에 이르니
가만히 앉아
무심코 나무를 바라보다가
나무는 극락에 있다고 적는다
나는 이 손가락 때문에
극락에 들지 못한다
또 자리를 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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