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
걸어왔다
걷는다
말없이 걸어왔다
걷기만 하자
걷는 데만 주목하자
나는 걸었고 속도를 냈다
속도가 붙는다
걷는 건 외롭지 않다
외롭지 않게 걷는다
두 다리가 사귀듯이 걷는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슬프다
걷는다
슬픔을 삼키며 걷는다
내색하지 않는다
걸었다
걸어왔다
걷는다
한참을 걸었다
잊을 수 있을까
걷는다
이유는 없다
걷는다
구두가 닳는다
바꿔 신는다
걷는다
걸어올 때까지
걷는다
걷는 건 외롭지 않다
말없이 걷는다
꺾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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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6-22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계절엔 아침 출근길 들판을
보면 차에서 내리고 싶어요^^;
밤퇴근길은 무서버서 배고파서^^*
어제 저녁 모임 장소 이름이 골짜기를 뜻해서 정류장에서 내려
일 이분 걸은 것이 침 좋았답니다.
자갈길(신발 밑창이 얇았지요)과
좌우로 늘어선 나무에서 나오는 향과
공기가 골짜기로 들어서는 기분이었지요^^* 그 짧은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이 시를 보니 그때가
기억나 또 기분 좋아요~
화자의 심정과 관계없이.

로쟈 2018-06-22 10:11   좋아요 0 | URL
네 우리가 매일 걷지요.~
 

여름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여름이어도 되는 걸까
언제부터지?
알면서도 놀란다
놀라는 척이 아니라서 놀란다
세상에나 여름이라니
네가 언제 그렇게
여름부터라고?
그럼 이게 다 여름이란 말인가
여름 햇볕이고 여름 가발이고
여름 사냥이고 여름 열매고
네가 세상 모르던 때가 언젠데
벌써 여름이고
네가 여드름 짜던 때가 언젠데
이젠 막 나가는 건가
아무리 여름이어도 그렇지
여름밖에는 할 수 없다는 거야?
원칙이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가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고
우리가 같이 보낸 여름도 있건만
그래도 정색할 수가
네가 여름이라고 치자
네가 어떻게 여름이지?
여름이 그렇게 허술해?
여름을 사랑한 적은 있어
여름이었지
여름일 수만은 없잖아
수도 없이 지나갔어
그래도 여름이라니
세상에나 여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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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를 조이고 풀고
이야기는 그렇게 쓰는 거지
당신이 유령 이야기를 원한다면
하나도 아니고 둘
그런 걸 원한다면
나사를 한번 더 돌려야 해
한번 더 죄는 거지
아이들을 닦아세우는 거지
그건 심문의 방식
너의 잘못을 알고 있어
추궁하는 거지
나사를 죄는 거지
언제나 한번 더 죌 여지가 있지
자백은 죄면 나온다네
조르면 나오는 거야
도덕은 그렇게 조르는 거
조이고 조르는 거
나사를 죄면서 우리는 앞으로 가
닦달하면서 미래를 열어
가차없는 미래를 열어
잠깐!
아이들은 왜 저기에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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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21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량이 많지도 않은데 읽으면서 계속
뭔가 찜찜한 책들이 있는데
(이게 아닌것 같은데 하면서 책장은 넘어가고)
이책이 그랬네요.
손에 뭔가 잡히는게 없는.
제목부터 나사의 회전? 느낌도 없고~
아직 독서 내공이 많이 모질라는듯ㅜㅜ
강의를 안들으면 안되는구나란 생각이 팍팍!

로쟈 2018-06-21 23:39   좋아요 0 | URL
저도 몇년 전에 뭐라고 강의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소설이에요.^^;
 

여름날 닭 보양식으로
개구리를 잡아 먹이로 주었다
하루에도 수십 마리씩
해부하고 토막내고
나는 개구리 푸주한

개구리를 토막내며
개구리의 사랑도 끝장냈을까
땅바닥에 패대기치면
감전된 듯 부르르 떨던 뒷다리
살 떨리는 사랑이 마침내
뻣뻣하게 늘어지며 나자빠졌던가

하얀 배를가르고
칼끝으로 심장을 도려냈지
모락모락 김이 나지는 않았네
우정은 아니어도
개구리와 살을 맞댄 사이
나는 개구리 푸주한

개구리를 잊은 지 오래
나의 전직도 잊은 지 오래
아무도 내게 과거를 묻지 않는다

단지 몸이 몸뚱이로 느껴질 때
나는 개구리 아닌 개구리
패대기쳐지는 건 일도 아니다

사랑이 끝장나는 건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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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6-1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쌤! 설마 쥐, 지네, 송충이 가
차례를 기다리는 건 아니겠죠? ;;;
동생이 유전자 연구원인데, 우아하게^^ 샘플 가지고 실험하다가...가난한 연구소로 옮겨서 쥐를 직접
잡아서 세포 채취하는 일을 하는데,
ㅜㅜ 걔들 몇달간 하루 몇 차례 모이
주고 그러면 애완동물이다, 언니야...
그러며 생명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작은 화분 키우기도 망설여진다네요.
갑자기 그 생각이 나며...물론 나름
유의미한 기제이겠지만...도마뱀은 그나마 이국적인데^^
바퀴벌레 개구리에선 손가락 터치가
살금살금 ~~~


로쟈 2018-06-19 21:45   좋아요 0 | URL
그래서 이미지는 안 띄우고 있습니다.^^;

로제트50 2018-06-19 21:48   좋아요 0 | URL
>*<
 

바퀴벌레도 세대가 있다면
젊은 바퀴벌레는 바퀴벌레의 보람
다음 세대를 이끌고 갈 미래
우리가 이 고생을 하면서도
생을 포기할 수 없는 희망

바퀴벌레는 왜 바퀴벌레인가
아파트 옥상 물탱크에 숨어 있다가도
젊은 바퀴벌레가 눈앞을 가려
바퀴벌레는 다시 바퀴벌레가 된다
끼약!

바퀴벌레는 침을 삼키고
바퀴벌레는 빗자루를 피해 간다
바퀴벌레는 필사적으로 도주한다
바퀴벌레가 물려줄 수 있는 모든 것
바퀴벌레

어디서건 바퀴벌레
미국 바퀴벌레는 코크러치
러시아 바퀴벌레는 따라깐
그래도 바퀴벌레
어디서건 밟히고

어디서건 죽은 목숨

그래도 바퀴벌레에게 세대가 있다면
젊은 바퀴벌레는 바퀴벌레의 긍지
젊은 바퀴벌레는 대학도 가고
군대도 가지
바퀴벌레는 바퀴벌레를 사랑하지

요즘 뜸한 바퀴벌레
설마 박멸된 것인가
욕실에서도 부엌에서도 자취가 없다
나도 지금은 옥상에 올라가지 않는다
어디서건 포기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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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1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 바퀴벌레인가?했더니
카라마조프가의 바퀴벌레~
아닌가요?
암튼 이제 막 까라마조프가의 바퀴벌레를
넘겼네요.(이책도 참 두꺼워요~)

로쟈 2018-06-19 21:46   좋아요 0 | URL
러시아 바퀴벌레도 있지만 그냥 궁금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