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문학기행 공식일정도 마지막 하루를 남겨놓았다. 오늘은 이스탄불 역사지구와 블루모스크, 아야 소피아(교회에서 모스크로 변신했다가 현재는 박물관), 톱카프 궁전 등을 둘러보는 역사기행이다. 문학기행으로서는 어제 진행한 오르한 파묵 투어가 마지막이었다.

이스탄불에서의 둘째날이었던 어제는 오전에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목조궁전 돌마바흐체를 둘러보고 도보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한 다음(닭날개 숯불구이가 메뉴였다) 파묵의 순수박물관을 찾았다. 골동품거리가 있는 추크르주마 골목 한쪽에 소설 <순수박물관> 속 퓌순의 집이기도 했던 순수박물관이 예상했던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사진과 영상속에서 봐왔던 터라 친숙했다).

일행 가운데 몇분은 책속에 들어있는 입장권에 스탬프를 받았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흩트려놓고자 하는 파묵의 의도가 구현되는 방식 가운데 하나. 박물관에 입장하자마자 유명한 담배꽁초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 케말이 연인(이지만 다른 이의 아내가 된) 퓌순의 집에 8년간 저녁식사를 하러 드나들면서 챙긴 담배꽁초다. 오른쪽 구석 벽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었고 그 왼쪽에는 담배를 피우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짐작에 파묵이 가장 공을 들인 오브제(사실 미술품으로 전시돼도 무방한 ‘작품‘이다).

순수박물관은 4층으로 된 목조건물인데 파묵이 소설 구상과 함께 1999년에 매입하여 소설의 내용에 맞게 박물관으로 꾸몄다고 한다. 개관은 소설을 발표(2008) 이후인 2012년. <순수박물관>은 일차적으로 주인공 케말의 연애소설이지만, 기억이란 주제를 다룬 프루스트 소설이면서 박물관 소설이고 카탈로그 소설이다. 파묵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시나리오도 썼고 전시한 물건들에 대한 카탈로그북도 썼다. 매우 이례적인 프로젝트 소설이라 할 만한데,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 발표한 첫 작품이라는 후광까지 거느리고 있다. 기대대로 기념품샵에서는 카탈로그북을 판매하고 있어서 구입했다. 600리라.

순수박물관 방문 뒤풀이로 카페에서 파묵문학의 의의와 <순수박물관>에 대해 강의했고, 이어서 저녁 자유시간을 가졌다. 언젠가 파묵 전작 강의를 해볼 수도 있겠다는 것이 파묵 투어의 소감이자 개인적인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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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새벽 시간이지만 이스탄불은 11시가 넘어 밤이 깊어간다. 일찍 호텔을 나서 아테네 공항에서 대기중이라고 적은 게 마지막이었는데, 한시간여 비행 뒤에 비행기는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시간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는 한시간반 정도 소요되는데, 그래도 생각해보면 매우 가까운 거리다(아테네와 이스탄불은 시차도 없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는 이오니아 지방으로 같은 그리스에 속했다(비잔티움에서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이스탄불에 이르는 이 도시의 역사 자체가 세계사다).

터키에 입성하면서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이스탄불 공항의 크기와 시설이다. 새건물로 보였는데 확인해보니 2018년 12월에 개항했고 당시 기준 세계최대공항이었다. 전체 인구도 그렇고 도시 인구도 그리스와 아테네의 몇배 되는 곳에 와보니 실제로 그 차이가 느껴졌다. 하기야 인구 1500만의 이스탄불은 서울을 가뿐히 앞지른다. 한강도 작지 않은 강이지만 흑해와 에게해를 잇는 보스포루스 해협에 견주기는 어렵다. 해협을 경계로 아시아와 유럽, 소위 두 대륙이 마주하는 도시 아닌가.

이 역사도시 이스탄불을 문학의 도시로 만든 공로는 오르한 파묵에게 돌려져야 하리라. 내일의 일정이 주로 파묵과 그의 작품들에 할애된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터기문학이라면 다른 작가도 더 거명될 수 있겠지만 이스탄불 문학으로 한정하면 파묵의 오른편에 설 작가가 없지 않을까. 혹 더 꼽는다면 <이스탄불의 사생아>의 작가 엘리프 샤팍 정도이지 않을까 짐작한다(책이 다시 나온다면 터키문학 강의를 꾸러볼 수 있겠다).

문학기행을 준비하면서 파묵의 <이스탄불>과 <순수박물관>을 주력으로 배치했는데 캐리어에는 산문집 <다른 색들>까지 넣어왔다. 파묵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글모음이다. 그러고 보니 작가 파묵과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 아닐까. 파묵 선생님, 아직도 매일 10시간씩 글을 쓰시는지요? 이렇게 중얼거려도 짐짓 전달될 것만 같다.

전통 재래시장 그랜드바자르를 둘러본 다음에 저녁을 먹은 호텔 레스토랑은 아야 소피아와 블루 모스크 등 이스탄불의 명소들을 보스포루스 해협에 대한 좋은 전망과 함께 보여주었다. 여기가 이스탄불이란 실감을 가질 수 있었다. 양갈비의 맛도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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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걸우네 2023-04-0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회가 된다면 꼭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 튀르키예!! 부럽습니다~

로쟈 2023-04-17 22:56   좋아요 0 | URL
네, 한번 가보시길.~
 

어제까지 아테네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늘은 조식도 먹기 전에 공항행 픽업버스에 올랐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게이트에서 대기중. 출국검사대를 통과하는 중에 선물로 받은 올리브 샴푸가 액체류 반입금지규정에 따라 압수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제껏 겪은 일이 없어서 주의를 소홀히한 결과.

공항서점에서는 어제 고고학박물관에서 찾던 종류의 책을 구했다. <고대 그리스>라는 가이드북. 컬러회보에 캡션식 설명, 그리고 하드카바이지만 공항도서답게 적당한 가격. 샴푸를 잃어버린 보상이 되었다. 매대에는 아테네공항답게 그리스신화와 관련된 책이 가장 많았다. 물론 영어책 기준이지만 여전히 새로운 책들이 ‘결정판‘이란 문구와 함께 나오고 있다.

거기에 그리스 경제학자(이자 정치인)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책들이 눈길을 끌었다. 국내에선 <작은 자본론>만 소개됐다가 절판됐는데 소위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유럽연합체제 하에서 그리스의 정신을 대표하는 지식인. 유럽연합의 기득권을 비판한 ‘Adults in the Room‘ 같은 책도 번역되면 좋겠다.

보딩타임이 가까워졌다. 그리스에서 적은 마지막 페이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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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일정이 모두 종료되고 저녁을 먹기 전에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문학기행도 이제 중반을 넘어섰고 내일은 오전에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된다(이른 아침에 호텔을 떠날 예정). 오늘밤이 아테네에서의 마지막 밤이 되겠다.

오늘의 핵심 일정은 아테네 국립고고한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강대진의 <그랜드투어 그리스>를 예습용으로 읽었지만 실제로는 복습용으로 더 유용하다. 국립고고학박물관 소개 역시 그러하다. 신석기시대부터 미케네문명, 암흑기, 상고기, 고전기를 거쳐서 헬레니즘과 로마시대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은 유물이 전시돼 있어서 한번 둘러본 기억을 보태서 책을 읽어야 대락 그리스문명을 가늠해보게 된다.

두시간 넘게 둘러본 뒤에 기념품샵에서 적당한 안내서를 구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영어로 된 책이 많지 않은데다가 두껍고 무거운 책들이어서 구입은 포기했다. 그리스 고대 예술에 대한 책들은 파일로 갖고 있어서 그걸로 대신하려 한다(이 또한 언제 읽을 기회가 있을지 알기 어렵다).

아무튼 크레타의 고고학박물관에 이어서 아테네의 고고학박물관도 관람했으니 소위 그리스의 3대 박물관 가운데 두 곳을 찾은 것이 된다. 다리품을 판 보람이라고 해야겠다.

박물관 투어 이후에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그리스의 국회의사당과 신타그마광장을 소개받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후는 휴식과 쇼핑을 위한 자유시간. 첫날 우중산책을 했던 플라카지구를 다시 둘러보았다. 아테네 도심을 꽤 걸어다녀서 어느새 친숙한 느낌도 든다. 내일 떠나면서 아쉬움을 느끼겠지만 어쩌겠는가. 만나면 또 헤어지는 법이고, 떠난 사람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기도 하느니.

슬슬 저녁을 먹으러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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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에서 묵고 있는 숙소가 뷰가 좋은 곳이라 입성 첫날부터 눈에 익혀두어었던 아크로폴리스를 어제 찾았다. 먼저 아크로폴리스박물관에서 고대 그리스의 유물들을 둘러보고 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오르기 시작(아크로가 높은 곳이란 뜻이어서 각 폴리스마다 아크로폴리스가 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가 대표적이지만. 한국에서 대학의 가장 낮은 곳의 집회광장을 아크로폴리스라고 불렀던 건 의미의 전용사례. 아고라보다 더 ‘있어 보이는‘ 어감 때문이었을까).

정상의 파르테논 신전까지 가는 길에 이미 사진으로 많이 접했던 디오니소스극장과 음악당을 볼 수 있었다. 디오니소스극장은 절반의 흔적이 남은 유적이고 음악당은 아직도 축제때 공연이 이루어지는 명소다(물론 스탠드가 개축되어서 가능한 일). 이번에 확인한 건 그리스비극의 출발점이 되는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기원전 472년)이 페르시아전쟁(기원전 499-450년)의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비극의 탄생배경이라고 여겨진다. 니체의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전쟁의 관계를 생각해봐야겠다).

당연하게도 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은 고대 그리스의 가장 크고 중대한 사건이었으며 아테네의 운명도 결정지은 전쟁이다(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낳은 전쟁이니 역사의 시원이기도 하다). 제국과 싸우면서 아테네는 제국으로 변모해가며(델로스동맹의 중심으로서의 해상제국) 이는 그리스반도의 또다른 맹주 스파르타와의 내전, 곧 펠로폰네소스전쟁(기원전 431-404년)을 낳는다.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나지만 상처뿐인 승리로서 오랜 전쟁으로 힘을 소진한 두 도시는 결국 몰락하게 된다.

가이드는 디오니소스극장이 기원전 5세기에 세워졌다고 했지만(그리스 비극의 전성기다) 강대진 박사의 책에선 전성기 이후인 기원전 4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설명한다. 아크로폴리스박물관에서 디오니소스극장에 관한 책을 구입한 터라 나중에 확인해봐야겠다(‘나중에‘ 그리스비극 3대작가의 전작 읽기도 시도해뵈야겠다).

언덕 정상의 파르테논은 지금 보기에도 아테네 최고 영광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불행한 역사의 증거이기도 하다. 오스만제국하에 있던 17세기 후반 화약창고로 쓰이던 파르테논이 베네치아군의 포격에 크게 파손된 일이 상징적이다. 기둥들이 버텨준 것만으로 기적이라고 해야할지. 아무려나 세계문화유산 1호로서 파르테논은 지금도 해마다 30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그리스 최고의 명소다. 어제 일행은 각자 1/3000만의 몫을 해낸 셈.

아크로폴리스 견학 이후 점심을 먹은 뒤의 일정은 아테네 정치와 경제의 중심부 아고라 유적과 로마시대 하드리아누스 도서관 유적을 둘러보는 일에 할애되었다. 당초 문학기행 출발전에 비 예보가 있어서 염려했는데 일정을 다 소화할 때까지 좋은 날씨가 이어졌다. 적당한 햇볕과 기온, 그늘과 바람 등. 예보는 일정 종료 후에 가진 자유시간에 한차례 소나기를 뿌리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 예보가 틀리지 않았지만 일정이 방해받지도 않았으니 일종의 윈-윈이다.

저녁식사는 호텔의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아크로폴리스의 야경과 함께 즐겼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인지, 로마에 가면 로마인처럼 행동하라는 격언에 견주어 이렇게 말해볼 수 있겠다. 아테네에선 모두가 신이 된다. 신들에 둘러싸여 하루를 지내다보니 저녁만찬이 신들의 만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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