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하루 앞두고 날이 풀렸다. 날씨도 수험생들을 배려하다니 기특하다. 어제 아는 집의 자제도 고3이어서 우리 가족이 '합격기원' 선물 배달을 갔었다(어디에 합격하나?). 중학교때 본 아이는 어느새 나보다도 키가 더 커 있었다. 그렇듯 자라나는 게 '도덕'이라고 믿는 나로선 아이의 '도덕성'이 또한 기특했다. 물론 성적은 도덕순이 아니므로 내일 애써 분전해야 하리라. 그의 건투를 빈다.

 

 

 

 

잠깐의 외출 뒤에 집에 돌아와 내가 잡은 책은 다시 손택의 <우울한 열정>(시울, 2005)이다. 거기서도 벤야민을 다루고 있는 "토성의 영향 아래". 이미 한번 읽은 걸 찬찬히 다시 읽고 있다. 손택의 벤야민론을 정리하는 건 지난번에 폴 굿맨과 롤랑 바르트 얘기를 정리하면서 미뤄둔 일인지라 마음 한구석에 숙제로 남아 있었는데, 마저 다 읽지 못한 상태이지만 쉬엄쉬엄 진도를 빼기로 한다.

손택의 벤야민론은, 사진에 관한 책도 낸바 있는 저자답게, 벤야민 사진 몇 장에 대한 얘기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갖고 있는 Picador판의 원서 "Under the Sign of Saturn"(2002)에도 그렇고, 우리 번역서에도 이 사진들을 싣고 있지 않다. 구글에서 이미지를 따다가 대략 설명과 맞추어본다.

첫번째 사진은 손택이 본 가장 오래된 사진인데, "1927년, 그가 서른 다설 살때의 사진이다." 이어지는 묘사는 이렇다: "넓은 이마 위에 짙은 색 곱슬머리, 두툼한 아랫입술까지 덮은 콧수염. 젊고, 잘생겼다고 할 수 있을 모습이다. 머리를 숙이고 있어 재킷 속의 어깨가 바로 귀 뒤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엄지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고 나머지 손은, 둘째, 셋째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입가를 가리고 있다. 안경을 통해 보이는 내리깐 시선, 근시안의 부드럽고 몽상가 같은 시선은 사진의 왼쪽 아랫부분으로 더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65쪽)

그리고 두번째 사진. "1930년대 후반에 찍은 사진은, 이마는 거의 벗겨지지 않았음에도 젊음이나 미모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얼굴이 커졌고 상체는 육중하고 건장해 보인다. 숱 많은 콧수염과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밀어 넣은 통통한 손이 입가를 덮었다. 시선은 불투명하다. 전보다 더 내면을 향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생각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열심히 듣는 사람은 보지 않는다." 벤야민을 카프카에 대한 글에 이렇게 썼다). 등뒤에는 책이 꽂혀 있다."

세번째 사진은 "1938년 여름의 사진"으로 "1933년부터 덴마크에 망명하여 살고 있는 브레히트를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 찍은 것이다." "브레히트의 집앞에 서 있는 벤야민은 46세의 노인으로 흰 셔츠와 타이, 양복바지에 회중시계를 달고 있다. 느슨하고 비만한 몸집으로 카메라를 도전적으로 응시하고 있다."(66쪽)

네번째 사진은 "1937년의 또 다른 사진"으로 "파리 국립도서관에 있는 벤야민의 모습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두 남자가 벤야민 뒤쪽에 좀 떨어져 있는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다. 벤야민은 오른쪽 전경에 위치하는데 아마도 10여 년 동안 집필 중인 보들레르와 19세기 파리에 대한 책을 위한 메모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테이블 위에 왼손으로 책을 펼쳐 잡고 있는 책을 보고 있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사진의 오른쪽 아랫부분을 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어서 손택이 인용하고 있는 숄렘의 증언은 <한 우정의 역사>(한길사, 2002)에 나오는 내용이기도 한데, 벤야민의 절친한 친구 게르숌 숄렘은 1913년 벤야민을 처음 보았을 때를 이렇게 묘사한다. "시오니스트 청년 단체와 스물 한 살의 벤야민이 회장을 맡고 있는 자유 독일 학생 협회의 유태인 회원들의 조인트 모임이었는데, 벤야민은 <청중을 한번도 쳐다보지 않고 천장 구석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즉흥 연설을 했다. 격정적으로 열변을 토했는데, 내가 기억하기론 바로 글로 활자화해도 될 그런 연설이었다.>"(66쪽) 

이제 본론이다. 먼저 제목 '토성의 영향 아래'에 대한 해명. "프랑스인들은 벤야민을 '슬픈 사람(un triste)'이라고 불렀다. 젊은 시절 벤야민의 모습은 '심오한 슬픔(a profound sadness)'이 그의 특징인 것처럼 보였다고 썼다. 벤야민은 스스로를 우울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현대 심리학에서 붙이는 명칭을 경멸하여 전통적인 점성술적 개념을 끌어온다. <나는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가장 느리게 공전하는 별, 우회와 지연의 행성...>"

 

 

 

 

점성술에 관한 책들이 국내에 몇 권 나와 있지만, 그런 것까지 참조할 형편은 못된다. 아마도 서양 점성술에서 토성(Saturn)은 우울증적 기질을 상징하는 듯하다. 하기야, 과거엔 토성이 태양계의 가장 마지막, 외곽의 행성이었을 테니까 그렇게 간주되었을 법하다(명왕성의 영향 아래 태어난 이들은 어떻게 되나?). 그래서 요일에서도 맨마지막에 자리하고('즐거운 토요일'의 이미지는 어쩌면 그런 우울증을 상쇄하기 위한 마스크일는지도 모르겠다). '토성의 영향 아래'라고 번역돼 있지만, 우리식으론 '토성의 기운 아래' 혹은 '토성의 기를 받아'라고 새기는 게 더 이해하기 편하겠다.

"벤야민의 주된 작업, 1928년에 출간된 독일 바로크 연극에 관한 책과 완성되지 못한 <파리, 19세기의 수도>는 이 책이 우울증 이론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면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67쪽) 역자는 이런 대목들에서 복수형을 대개 단수형으로 옮기고 있는데, 한국어답긴 해도 의미의 모호성을 유발한다('이 책이'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손택이 벤야민의 주된 작업(major projects)으로 들고 있는 것은 박사학위청구논문이었던 <독일 비극의 기원>(1928)과 '파리, 19세기의 수도'를 다룬 미완의 주저 <아케이드 프로젝트>이다. 알다시피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지난번에 절반이 출간됐고, 나머지 절반도 근간 예정인 걸로 안다. <독일 비극의 기원>은 번역이 진행중인 걸로 알지만, 언제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다. 일어로는 <독일 비애극의 근원>으로 옮겨져 있다. 'Traurspiel'(비극)은 문자 그대로 '비애극(sorrow-play)', '애도극'이란 뜻이다.

벤야민 비평의 두 가지 키워드는 알레고리와 멜랑콜리(우울증)이다. 따라서 우울증적 기질에 대한 손택의 강조는 당연하며 정당하다. "벤야민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기질을 모두 자신의 주요 연구과제에 투사했으며, 그의 기질이 그의 글쓰기의 주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해서, 비평가로서 그가 다룬 대부분의 작가들에서 그가 본 것이 '우울함'이었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면서도 간과될 수 없는 부분이다. 하다못해 벤야민은 괴테에게서도 '토성적 기질'을 발견한다.

 

 

 

 

벤야민의 괴테론은 <친화력>에 관한 에세이가 유명한데, 종종 번역서들에서는 <선택적 친화성> 등으로 (잘못)옮겨지고 <우울한 열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영어의 'Elective Affinities'의 번역이긴 하지만, (이전에 자주 언급한 대로) 고유명사의 번역은 주의를 요하며 기존의 관행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여간에 우리의 우울증적 벤야민은 그가 읽어내는 모든 걸 블루로 채색한다. "벤야민은 프루스트의 '세상을 그 혼란상 속으로 끌어당기는 고독'을 묘사하고, 카프카도 파울 클레처럼 '본질적으로 외로웠다'고 설명하며, 로버트 발저의 '인생에서의 성공에 대한 공포'를 인용한다." 가히, 구제 불능이라 하겠다. 손택에 따르면, "삶을 이용해서 작품을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작품을 이용해서 삶을 해석할 수는 있다."(One cannot use the life to interpret the work. But one can use the work to interpret the life.) 바로 벤야민의 경우가 그렇다...

05. 11. 22.

P.S. 다른 볼일들 때문에 일단은 여기에서 끊는다. 필요 때문에 도서관에서 가서 사르트르에 관한 자료들을 좀 뒤적거려야 한다. 어젯밤에도 사르트르를 좀 뒤적이다가 고유명사 표기에 관해서 좀 어리둥절한 일이 있었는데, 가령 사르트르의 희곡 'Huis clos'(1945)에 대해서도 <유폐의 방>, <닫힌 방>, <닫힌 문>, <출구는 없다>, <출구 없는 사회> 등등으로 표기돼 있었다(영역은 'No Exit'). <유폐의 방>과 <출구 없는 사회>가 같은 작품을 지칭하는 거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 과연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려야만 하는 건지 의문이다. 

그러다 보면,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기는 건 당연한 일. 사르트르의 장편 <자유의 길>의 1권은 'L'age de raison'이고 '철들 무렵' 혹은 '철들 나이' 등으로 번역돼 있다. 한데, 래빈 여사의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동녁, 1993, <방송강의 철학사>로 다시 나왔다)에서는 영역본 제목('The age of reason' )을 옮기느라 거창하게도 '이성의 시대'라고 번역해놓았다. 이해할 만한 오역이지만, 피할 수 있는 오역이란 것도 분명하다(작품을 읽지 않았더라도 확인해볼 수는 있는 노릇이다). 참고로, 래빈 연사의 강의 철학사는 권장할 만한 책이다.  

 

 

 

 

P.S. 주말에 장진 감독의 <박수칠 때 떠나라>를 DVD로 대여해 봤는데(이 작품의 진리는 간명하다. '대한민국 검찰은 쇼'라는 것, 나머지 드라마는 그걸 떠받치기 위한 구색 맞추기일 텐데 내겐 별로 흥미롭지 않았다), 네번째 에피소드인가의 제목이 '전설(傳設)'로 돼 있었다. '전설(傳說)'이 아니라. 이건 또 무슨 장진식인가, 하며 보았지만, '전설(傳設)'과 관련된 내용은 따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오타였던 것(타이틀 목차에는 '전설(傳說)'로 돼 있었다). 이런 해프닝들이 '옥의 티'로 즐거움을 주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나는 어수룩한 '쇼'를 좋아하지 않는다(보여주는 것 없는 국내판 '쇼걸'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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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1-2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베호벤 감독
에로틱과 피의 감독이죠. 요즘은 뭘 한대요?

로쟈 2005-11-2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까지 소식이 오는 건 아니지만 저보다 바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계속 영화들을 찍고 있다니까...
 

 

 

 

 

'토성의 영향 아래(Under the Sign of Saturn)'는 작년말에 세상을 뜬 수잔 손택(1933-2004)의 신간 <우울한 열정>(시울, 2005)의 원제이면서 책에 실린 '발터 벤야민'론의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가이자 비평가이기도 한 이 전방위 지식인이 특히 빛을 발하는 것은 에세이들을 통해서인데(에세이의 한 전범을 보여준다), <토성의 영향 아래>(1980)는 <해석에 반대한다>(1966)와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1969)에 뒤이은 세번째 에세이집으로서 1972년부터 1980년까지, 그러니까 40대 중년의 손택이 쓴 에세이 7편을 묶은 책이다. 그녀는 이러한 에세이 30쪽짜리를 쓰기 위해 (믿거나 말거나) 수천 페이지를 쓴다고 하는데, 그 '열정'이 경이롭다(동시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우울한 열정>의 속표지에는 근간예정으로 손택의 또다른 에세이집과 소설들도 거명돼 있는 걸로 보아 이대로라면 조만간 '손택 전집'이라도 갖추어질 듯하다. 나는 그녀의 다른 책들을 현재는 품절된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을 제외하곤 모두 갖고 있다. 하니 나름대로 손택을 읽을 준비는 돼 있는 셈인데,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읽은 몇 편의 에세이들보다 이번 <우울한 열정>에 실려 있는 에세이들이(아직 다 읽지 않았지만) 더 편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거꾸로 읽어나가야 할 모양이다.   

책을 열면, 처음에 '조지프 브로드스키에게'란 헌사가 나온다. 두 페이지 뒤에 가서 브로드스키에 대한 역주가 나오는데, 'Joseph Brodsky'(1940-1996)는 '러시아 태생의 미국망명시인'이다. 그의 이름은 러시아어로 '이오시프 브로드스키'라고 읽으며 국내에도 그렇게 소개돼 있다. 198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러시아에서는 1990년대 이후에 소개되어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러시아 시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된다), 국내에서 브로드스키의 책들이 번역돼 나온 건 물론 그 수상을 계기로 해서이다.

예컨대 <소리없는 노래>(열린책들, 1987), <겨울결혼식>(정음사, 1987), <20세기의 역사>(문학사상사, 1987) 등의 시집과 에세이집 <하나반짜리 방에서>(고려원, 1987), 희곡인 <대리석>(한마당, 1987)까지 앞을 다투듯이 나왔던 것. 역주에서 '하나도 채 못되는(Less than one)'이란 옮겨진 것이 <하나반짜리 방에서>이며 안정효 번역이다(다른 역자에 의해 <하나도 채 못되는>(성원, 1987)이란 번역서도 나왔는데, 실물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안정효의 책과 원저를 갖고 있다). 원저(1986)가 5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인 걸 고려하면 국역본은 발췌역이겠다. 

 

 

 

 

시집이 여러 권 번역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말로 브로드스키를 읽고 감상한다는 건 먹다 남은 가시만 가지고 생선의 맛을 음미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넌센스에 가깝다(브로드스키의 성탄시 한 편에 대해서 나는 '모스크바통신'에서 자세하게 분석한 바 있다). 러시아시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일찍부터 영시에도 조예가 깊었던 브로드스키는 특히 존 던을 애송했었고, 미국 망명 이후에는 로버트 프로스트에 바치는 시들을 쓰기도 했다. 지난 2002년에는 그가 쓴 영시들이 (사후)출간되기도 해지만, 러시아시만큼 평가받는 것은 아니며 그의 본령은 역시나 러시아시이다. 하지만, 에세이스트로서 그의 명성은 언어에 구애받지 않는데, 손택과의 교분은 그런 배경하에서 이루어진 듯하다(브로드스키에 대한 에세이도 손택이 썼음 직하다. 한번 찾아봐야겠다!).  

어쨌거나 생각난 김에 브로드스키의 시 한편을 옮겨놓는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시이며, 노벨상 수상 기사와 함께 언론에 게재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겨울 물고기>. 좀 드문 일이지만, 이 시는 우리말 번역으로도 시가 된다.

겨울 물고기

물고기는 겨울에도 산다.
물고기는 산소를 마신다.
물고기는 겨울에도 헤엄을 친다.
눈으로 얼음장을 헤치며,
저기
더 깊은곳
바다처럼 깊은곳으로.
물고기들
물고기들
물고기들
물고기는 겨울에도 헤엄을 친다.
영원히 같은
물고기 방식으로.
물고기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얼음덩이속에 머리를 기대고
차디찬 물속에서
얼어붙는다.
싸늘한 두눈의
물고기들이
물고기는 언제나 말이없다.
그것은 그들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고기에 대한 시도
물고기처럼
목구멍에 걸려 얼어붙는다. 

아직은 11월이고 '가을 물고기'의 목구멍은 아직 멀쩡하기에 계속 떠들어보기로 한다. 여하튼 손택이 <우울한 열정>을 브로드스키에게 헌정하고 있다는 말씀이고, 엊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나는 책에서 세편의 에세이를 읽었다. '폴 굿맨에 대하여' '토성의 영향 아래' '바르트를 추억하며'. '폴 굿맨'은 손택이 다루고 있는 인물들 가운데 내겐 가장 생소한 이름이었는데(내가 아는 '좋은 사람'은 '넬슨'밖에 없다), 그의 부고를 듣고 쓴 '폴 굿맨에 대하여'(1972)에서 그녀는 그가 자신의 '영웅'이었음을 열정적으로 고백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손택에 따르면, "D. H. 로렌스 이래로 여어를 그만큼 설득력 있고 진실하고 독창적으로 구사한 사람은 없다."(18쪽)

그런 그와 손택은 친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그녀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그를 싫어했다. 이유가 (이해할 만한) 가관인데 "그의 생전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곤 했듯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 그럴 만했던 게 "폴 굿맨은 원래 여자를 인간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나중에 그 자신이 터놓고 고백한 바대로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해서 손택의 사랑은 일방적인 짝사랑일 수밖에 없었던 것. 아무려나 이 에세이를 읽은 독자라면 '폴 굿맨'이란 이름을 쉽게 잊어먹지 못할 것이다.

 

 

 


 

'바르트를 추억하며'(1980)는 풀 굿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르트의 부고를 듣고 쓴 에세이이다. 짤막한 분량이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학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초상을 생생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그리고 바르트 정도라면 내게도 낯설지 않다. 청년시절 병약했던(폐결핵을 앓았다) 바르트가 첫 책을 출간한 것은 37살의 일이니까 우리 기준으로도 좀 늦깎이다. 하지만 "뒤늦게 출발한 뒤에는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많은 책을 썼다." 특별히 손택만의 의견이랄 건 없는데, 하여간에 "그는 무엇에 관해서든지 간에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것 같"은 지식인이었다.

 

 


 

 

젊은시절에 바르트는 지방 극단에서 연기도 하고 연극비평도 했다. 거기서 비롯된지 모르지만, 그의 아이디어들을 극적이었다(His sense of ideas was dramatugical). "프랑스의 지적 무대에 스스로를 올리면서 그는 전통적인 적에 반기를 들었다. 그것은 플로베르가 '기성관념'이라고 불렀고 '부르주아'적 감성이라고도 알려진 것, 마르크스주의자가 허위의식이라는 개념으로, 사르트르 추종자들이 '나쁜 믿음'이라고 맹렬히 비난한 것, 고전 연구로 학위를 받은 바르트는 '최근 의견'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134쪽)

 

 

  


 

플로베르의 '기성관념'(received ideas)은 <통상관념사전>(책세상, 2003)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부르주아적 감성'은 부르주아적 멘탈리티를 가리키고 마르크스주의에서의 '허의의식'이란 말 그대로 '이데올로기'를 지칭하겠다. 사르트르의 '나쁜 믿음'은 흔히 '자기 기만'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바르트의 '최근 의견'이란 건 그리스어 'doxa'의 번역으로(예전엔 '억견'이라고 번역했다) 'current opinion'이라고 병기된 걸 참조한 듯하지만 오역에 가깝다. 근거 없는 믿음을 뜻하므로 '통속적인 의견' 정도가 어떨까 싶다. 어쨌든 그러한 '우상들'에 대한 바르트의 공격은 <신화학> 혹은 <현대의 신화>(동문선, 1997)로 묶여나왔다. 

"바르트를 매혹한 것은 정신적 분류학이다"라고 손택은 진단하는데, 구조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초기 바르트의 세계가 특히 그에 해당한다. "그는 문학에 대해 말하는 행위를 통해 문학을 만들어내는, 무책임하고 장난스러운 형식주의자였다"라는 게 손택의 지적이며, 변태적인 것에 면밀한 관심을 가졌던 바르트는 "그것이 해방적이라는 낡은 시각을 갖고 있었다"라고 그녀는 꼬집는다(폴 굿맨과 마찬가지로 바르트 또한 동성애자였으며 "그와 같은 성적 취향과 유명세를 가진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상당한 성적 특권을 누렸다"). 그래도 "그가 쓴 글은 무엇이든 다 재미있다."

두 권 정도가 예외인데, "초기에 쓴 라신에 관한 논쟁적인 책." 흔히 프랑스 문학에서 신구비평 논쟁을 가져온 저작인데, <라신에 관하여>(동문선, 1998)로 국내에는 소개돼 있다. 또 한권은 "보통 책 길이의 패션 광고의 기호학에 관한 책"인데, 우리말로는 <모드의 체계>(동문선, 1998)로 번역돼 있다. "학회 회비를 내기 위해 쓴 것으로 몇 편의 거장다운 에세이를 담고 있다."라고 했는데, '학회회비를 내다'는 'to pay his academic dues'의 번역이다. 그런 관용표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드의 체계>가 바르트가 제출한 박사학위청구논문이었으므로 직역해서 (학위논문심사에는 비용이 듦으로) '학위논문 수수료를 내기 위해 쓴'이라거나 의역해서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정도의 뜻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바르트의 지적 생애에 관심있는 독자에게 궁금한 것 중 하나는 <기호학 요강>과 <모드의 체계> 같은 책을 쓰던 그가 <텍스트의 즐거움>이나 'S/Z'의 저자로 변신한 내막이다. 이에 대한 손택의 해명이 명쾌하다. "바르트의 작업은 극복되거나 부인된 슬픔에 관한 것이다. 바르트는 모든 것을 하나의 체계, 하나의 담론, 하나의 분류체계로 취급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모든 것이 체계이므로, 무엇이든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체계에 싫증을 냈다. 그의 정신은 너무 민첨하고, 야심적이고, 모험에 끌렸기 때문이다."(138쪽, 번역 일부 수정)

체계 이후에 바르트가 선택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고, 그는 자기 자신의 '위대한 작가'가 되었다. 즉, "그는 자기 자신이라는 양떼를 끄는 양치기가 되었다."(139쪽에서 '바르트가 쓴 바르트가 쓴 바르트'란 책명은 '바르트에 대한 바르트에 대한 바르트'라는 '리뷰명'으로 바뀌어야 한다.)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나 <사랑의 단상> 같은 책들은 그 대표적인 목록이다. 1977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뒤늦은 명성을 구가하던 바르트도 남모르는 욕심을 품고 있었으니 그건 그가 흠모하던 프루스트 같은(그는 프루스트를 자신의 '수프'라고 말했었다) '진짜 소설'을 써보고 싶어했다는 것. 그러나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불의의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면 혹시 모를 일이다.

 

언제나 텍스트의 즐거움을 만끽할 줄 알았던 바르트는 '정신적 방탕자'이자 '위대한 화해자'였다. 해서 "그는 비극적인 것에 대해서는 별 감정이 없었다. 그는 늘 불리한 상태에서 유리한 점을 찾았다. 현대 문화비평가들의 고정 주제 중 여럿을 그도 다루지만 종말론적인 관념은 거의 없었다... 그는 극도로 정중하고, 약간 탈세속적이고, 쾌활했다. 그는... 언제나 슬픈 빛을 띤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쾌락에 관한 그의 말 전체에 무언가 슬픔이 있다... 그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며 그의 쓰지 못한 책의 목적은, 삶을 찬미하고,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141-2쪽) 그의 '쓰지 못한 책'이란 그가 쓰려고 했던 '소설'을 말한다.

 

 

대략 이런 것이 생전에 "아, 수전, 언제나 충실한 친구(Ah, Suzan. Toujours fidele.)"라고 만날 때면 그녀를 호칭했다는 바르트에게 끝까지 충실하게 남은 손택의 스케치이다. 그리고 이만한 분량으로 바르트에 대한 이보다 더 예리하면서도 정감있는 스케치를 그려낼 수 있는 이는 따로 없을 듯하다. 그런 손택과 바르트가 만나는 또다른 지점은 바로 '사진'이고 국내에서 출간된 <사진론>(현대미학사, 1994)는 두 사람의 사진론을 묶어놓은 적이 있다(번역은 신뢰할 수 없지만). 각각 따로 읽어야 할 책은 물론 <카메라 루시다>(열화당, 1998)과 <사진에 관하여>(시울, 2005)이다(*<카메라 루시다>는 <밝은 방>으로 재번역돼 나왔다).

 

 

 

 

 


 

 

 

05. 11. 15.

P.S. 분량상 벤야민론, 즉 '토성의 영향 아래'는 다른 자리에서 정리하기로 한다. 한편, 얼마전 '북데일리'란 저널에 <우울한 열정>에 관한 리뷰 기사가 실렸는데(다시 확인해보니 '얼마전'이 아니라 '오늘자' 리뷰이다), '독일 지성 벤야민이 독일어를 몰랐다?"란 제목을 달고 있다. 전반부의 내용은 이렇다.

 

지난해 12월 백혈병으로 타계한 ‘행동하는 지성’ 수전 손택(1933~2004)이 7명의 예술가에 대한 평전 <우울한 열정>(시울. 2005)을 통해 독일 유태계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왕성한 독서가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실천하는 사회운동가, 에세이스트, 소설가, 극작가, 예술평론가였던 그녀는 발터 벤야민에 대해 “그가 쓴 글은 무엇이든 다 재미있다. 쾌활하고, 빠르고, 조밀하고, 날카롭다”고 말하고 “그는 꼼꼼한 독서가였지만 왕성한 독서가는 아니었다”는 독특한 해석을 내린다. 이런 판단은 벤야민이 읽은 내용에 대해서는 대부분 자신의 글 소재로 삼거나 평론을 썼기 때문에, 쓰지 않은 것은 읽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에 근거한다.  

 

수전 손택은 “벤야민이 외국어를 몰랐고, 외국 문학은 번역된 것도 거의 읽지 않았다”고도 말한다. 독서를 하느라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독서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던 사람은 아니며, 오히려 유명세를 즐겼다는 수전 손택의 평가는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극도로 정중하고, 약간 탈세속적이고, 쾌활했다. 그는 폭력을 혐오했다. 언제나 슬픈 빛을 띤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쾌락에 관한 그의 말 전체에 무언가 슬픔이 있다”

 

짐작하겠지만, 인용문에서 주어 '벤야민'은 전부 '바르트'로 바뀌어야 한다. 무얼 읽고 쓴 리뷰인지는 모르겠지만, 엉뚱한 내용을 받아적은 듯하다. 독일 사람인데다가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벤야민이 독일어를 몰랐다?" 이런 턱도 없는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도 서평지 기자의 목이 아직 붙어 있는 건지, 나로선 그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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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6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5-11-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브로드스키의 시집들을 저는 다 갖고 있었는데, 역시나 번역본의 한계를 넘어서기가 힘들더군요. 이장욱의 <혁명과 모더니즘>에 한 장이 브로드스키의 시세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도 여건만 되면 동참하고 싶지만.^^
 

 

 

 

 

제목은 문학비평가 유종호 선생(1935- )의 최근 산문집에서 가져왔다. <내 마음의 망명지>(문학동네, 2004). 얼마전 구내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띈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고 있다. 몇몇 비평가들의 산문집을 한때 즐겨 읽었던 듯하다. 책을 읽으며 문득 그런 감각이 되살아옴을 느낀다. 일간지 지면에 실린 칼럼 등을 모은 이런 책들은 자투리 시간에 읽기에 가장 적합한데(1부에 실린 글 여러 편을 나는 한 일간지에서 이미 읽었었다), 길지 않은 글들에 박혀 있는 적절한 사유들을 해바라기씨 파내먹듯이 따라가보는 재미가 있다. 이른바 맛은 좋지만 칼로리는 낮은 책, 그래서 군것질로는 아주 유익한. 

해서 현재로선 책을 2/3쯤 읽었는데, 이미 연이어 읽을 책들의 목록도 정해두었다. 역시나 '문체의 옹호'란 글에서 저자가 은근히 추천하고 있는 책들이다. 정명환 선생의 <이성의 언어를 위하여>(현대문학, 2003)와 곽광수 선생의 <가난과 사랑의 상실을 찾아서>(작가, 2002)가 그것들이다. 나는 거기에 이 참에 읽어볼 요량으로 이미 갖고 있는 책 두 권,  유종호,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민음사, 2001)와 정명환, <문학을 생각하다>(문학과지성사, 2003)를 더 얹었다. 이 가을이 뒤늦게 풍족해진다.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은 거지만 나는 유종호 선생의 책들을 꽤나 많이 읽었다. 더러 꼼꼼하게 공들여 읽지는 않았어도 대부분의 책들이 낯설지 않은 것. 가령, 저자가 '책머리에'에서 "이번 산문집은 십오 년만에 내는 것이다."라고 했을 때, 나는 이 책이 에세이집 <함부로 쏜 화살>(문이당, 1989)에 이어지는 것이란 걸 대번에 눈치챌 수 있다. 그 책을 (이제는 십육 년전) 내가 자주 드나들던 지방도시의 한 서점에서 구해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문에 정지용의 시에서 따온 제목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다는 기억도. 문학평론가로서 내가 가장 즐겨읽은 이들은 김현, 김윤식 선생이었지만 알게 모르게 읽은 평론가도 따로 있었던 것. 이번 산문집을 읽으며 그 이유도 대충 챙겨볼 수 있었다.

지금은 과거지사가 됐지만 70-80년대 한국문학 평단을 주름잡던 이들로 주로 '문지'와 '창비' 계열의 평론가들을 꼽는다. 전자의 4인방이 김현, 김주연, 김병익, 김치수이고 그리고 후자의 양 거두가 백낙청, 염무웅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제3의 길을 내던 이들이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을 오래 역임한 김우창, 유종호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각각 몸담고 있던 잡지/출판사(=물적 토대)를 근거로 하여 한국문학의 지형도를 주도적으로 그려냈었다. 물론 각 진영의 문학적 입장/태도에는 얼마간의 차이가 있었는데, 그것을 (가장 확실하게!) 암시해주는 것은 각각 간판으로 내세운 책들이다.

 

 

 


 

가령 '창작과 비평'의 얼굴은 아놀드 하우저의 <예술과 문학의 사회사>였으며, 내가 얼른 떠올리게 되는 '문학과지성'의 책은 김현의 <한국문학의 위상>, 혹은 김현/김주연 편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이다(80년대에 나온 이론서 <소설과 사회>나 <구조시학>은 생각만큼의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지나치게 서구문학(론) 지향적이란 비판도 들었던 문지의 경우, 확실한 외국 이론가를 거명할 수 없는 건 일견 아이러니컬하다. 거기에 대하여 '세계의 문학'  곧 민음사 진영에서 내세운 건 아우얼바하의 <미메시스>였다. 이번 산문집에 실린 '내 글이 걸어온 길'에서 그 내막을 잠시 엿볼 수 있는데, 삼십대 후반에, 그러니까 1970년대 초반에 2년간 미국유학("내 평생의 유일한 학생 생활")을 가게 된 저자가 이때 주로 접하고 읽은 이들이 벤야민, 곰브리치, 아우어르바흐, 피터 버거 등등이었다. 김우창 교수와의 공역으로 <미메시스>가 처음 나온 것이 1979년쯤인바 이 유학경험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음미해볼 만한 것은 아우얼바하(아우어르바흐)의 저작이 2차 대전의 포화를 피해 떠난 '망명지' 터키에서 씌어진 책이라는 점. 저자의 베스트셀러였던 <문학이란 무엇인가>나 <시란 무엇인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사회역사적 상상력을 강조하면서도 문학만의 독자적인 질서와 규범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유종호의 태도는 '망명문학적 태도'로 가장 잘 특징지어질 수 있다. 산문집의 제목을 정하는 데 일조한 글이 '내 정신의 망명처'인바, 거기서 저자가 '망명처'로 지목하고 있는 것은 클래식 음악(아트음악)이다. 특히 저자는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경배하는데, 한 대목을 인용하면 이렇다: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은 최근에 간행된 대화집에서 조금 별나게 피아노 협주곡 9번을 가리켜 '세계의 경이의 하나'라고 부르고 있다. 21세에 작곡한 이 작품이 모차르트 최초의 걸작이라며 덧붙인 것이다. 그러나 모차르트  자신과 그의 음악 모두가 '세계의 경이'라고 해야 마땅하리라."(116쪽) 

그러한 예찬을 배경으로 하여 정의하자면, 망명문학적 태도란 문학의 표준을 예컨대 음악에 두는 태도, 예술로서의 문학은 '음악의 상태를 지향하여야 한다'고 믿는 태도이다(예술로서 음악이 갖는 특장은 아무런 적극적 지시성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음악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바, 김종삼의 시구를 빌면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다). 비평가로서 유종호가 가장 음악적인 장르로서의 서정시에 유난히 애정을 보이는 이유는 대략 그러한 태도와 상관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그는 우리시의 가장 '눈 밝은', 아니 가장 '귀 밝은' 독자에 속한다). 사실, 그러한 태도는 한편으로 작가/비평가의 사회적 책무가 유난히 강조되어온 우리 현대사와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데, 중학교 시절부터 "소설은 김동리를 좋아하고 평론을 김동석을 좋아했던" 자신의 취향을 '자기 분열증적인 버릇'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그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좌파 비평가였던 에드먼드 윌슨의 경우를 예로 들어) "그것이 정직한 것(태도)"이다. 해서, <비순수의 선언>(1962)으로 평론가로서 첫발을 떼었지만, <문학의 즐거움>(1995)에 탐닉하기를 한순간도 그치지 않았던 것. 

그런 그에게 애로는 없었을까? 우리말에 대한 그의 예민한 감식안과 짝을 이루는 것은 주제넘는 거대담론에 대한 거부감인데, 그러한 거부감은 이론이나 학문(과학)에 대한 회의로도 이어진다(특히 그가 미심쩍어하는 것은 문학/예술에 대한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이다): "고전연구는 별개지만 문학연구가 과연 학문인가 하는 점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이다. 문체 없는 소설이나 무슨 소리인지 분명치 않은 산문을 읽지 않는다." 그의 현재: "내 삶을 정당화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때로 속이 쓰리기도 하지만 열받게 마련인 난세에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젊은 학생들과 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고 있다. 늙어가는 징조이다. 모차르트도 상전에게 발길질을 당했다는 고사를 상기하면서 삶이 안겨주는 강제를 견디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179쪽, 강조는 나의 것)  

때로 상전(=권력)에게 발길질을 당하기도 했던 게 천재 모차르트의 운명이었으며, 이 운명은 곧바로 예술로서의 문학이 처한 운명이자 비평가 유종호의 운명이기도 했다. 1980년대를 보내면서 낸 <사회역사적 상상력>(1987)의 머리말에 그가 쓴 대목: "그 어느 때보다도 글쓰기에 곤혹스러운 시기였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처지에서 민족의 좌절과 인간에 대한 믿음의 흔들림은 계속적인 충격이었다. '캄캄한 밤에도 노래는 있는가? 아무렴, 캄캄한 밤에는 어둠의 노래가 있지 않은가'라고 스스로 번안한 시구로 겨우 노여운 무력감을 달래었다."(177쪽) 그가 간혹 굴욕 속에서도, '노여운 무력감' 속에서도 삶의 강제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문학이란 '망명정부'를 현실의 정치권력과는 다른 자리에 놓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어둠의 노래'의 소속은 '어둠'이 아니라 '노래'이다). 내가 평론가 유종호를 즐겨 읽었던 것은 아무래도 이러한 과정이 그에게서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인 듯하다. 나는 잘난 선인(善人)들보다는 못나고 소심했기에 살아남은 자들을 더 신뢰하는 버릇이 있다...  

05. 11. 07.

P.S. 유종호 선생과는 30년이 넘는 연배의 차이를 갖고 있지만 나는 요즘 작가/비평가들보다 오히려 더 친숙함을 느끼는데, 그건 시대적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비슷한 독서체험의 결과인 듯싶다. 그건 내가 선생만큼 책을 많이 읽어서가 아니라 그가 읽은 책들의 상당수가 러시아 문학작품이어서이다. 유명한 번역가 콘스탄스 가넷 여사의 번역으로 영역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대학 초년생 때 읽은 걸 계기로 해서, 그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고, 연이어 체호프와 투르게네프의 거의 모든 작품을 영역으로 읽었다(요즘에 누가 그렇게 읽는가?). 황동규 선생도 유사한 고백을 한 걸로 보아 아마도 당시의 '풍습'이었을 법한데(영국작가 그레이엄 그린이나 서머셋 모옴에 대한 독서도 그렇다), 이 산문집은 애당초 투르게네프의 <첫사랑>과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고, '낭만적 망명자' 게르첸에 대한 이야기도 한 꼭지 포함하고 있다(영어명 'Herzen'을 '게르첸'이라고 러시아식으로 정확하게 읽는 이는 많지 않다).  

게르첸과 관련한 대목은 사실 전공자들을 부끄럽게 하는데, 그의 자서전이 아직 국내에는 번역/소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직접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나도 작년에 즐겨 찾았었던) '참새고지'(흔하게 부르기론 '참새언덕')에서 저자가 떠올리는 이름이 E. H. 카아의 <낭만적 망명자>를 통해서 알게 된 게르첸. 벨린스키 등과 함께 '아버지 세대'(1840년대 인텔리겐챠)의 거두인 게르첸은 <누구의 죄인가>(열린책들, 1991) 외에도 <과거와 사상>(영역본은 'My past and thought')이라는 걸작 자서전을 남기고 있다:"사상사가인 아이자이어 벌린은 정치적 교리에 매이지 않은 그의 <나의 과거와 사색>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나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등과 나란히 설 수 있는 자서전의 걸작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참으로 좋은 책이 읽히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이 책은 물론 번역되지 않았다."(54쪽) 작년에서야 비로소 방대한 분량의 원서를 모스크바에서 구했지만(나는 영역본만 갖고 있었다), 그리고 나로선 번역의 적임자도 아니지만 좀 찔리는 건 어찌할 수 없다.

한편, 게르첸은 73쪽에도 등장하는데, 그때 '지상 최고의 회고록'이라고 지칭되면서 홑따옴표가 아닌 (도서명을 나타내는) 겹낫쇠가 쓰이고 있다. 교정상의 실수일 것이다. 또다른 실수는 144쪽에서 '돈후안'의 원어를 'Don Huan'으로 잘못 병기한 것('Don Juan'이 맞다). 또 "외관과 실상이 다르다는 것을 간단없이 설파하는 폭로의 모티브에 향도되는 교양 체험에 감염된 현대인들은 모든 것을 일단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본다."(142쪽) 같이 수식어구가 너무 장황한 문장은 다른 저자들의 글에서라면 흔히 볼 수 있을지 몰라도 간명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유종호답지 않은 문장이어서 눈길을 끈다.

그의 문장들은 튀거나 화려하지 않기에 독자를 전혀 놀라게 하지 않지만(물론 꽤 오래전에 도서관에서 초판을 빌려다 읽은 <비순수의 선언>은 20대 신참 비평가의 문장으로선 너무 정연하여 나를 기죽인 바 있다) 제 몫의 쓰임을 충실히 수행한다. 주제넘는(오버하는!) 것들에 대한 혐오는 그에게서 특징적이지만, 저자는 문장에 있어서도 '오버'를 경계한다. 그것이 그의 온건한 균형감각을 이룬다. 그 균형감각은 따로 현실감각이기도 하다. 앞에 인용한 대목에서 "내 삶을 정당화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저자는 토로하기도 했는데, 작년에 그가 낸 책 <나의 해방 전후>(민음사, 2004)는 그러한 '정당화'의 시도로 여겨진다.  

      

 

      

 

'내 삶의 소롯길에서'란 글에서 임화의 시집 <현해탄>을 건네주었던 소년시절의 한 친구를 회상하며 그가 내리는 결론: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의 하나는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참으로 진실 육박적으로 상상하는 일이 아닌가 하고 나는 요즘 생각하고 있다... 그 점 상상의 나래를 펴서 살아보지 않은 과거를 적는 것은 문자 그대로 창작이요 왜곡이지 재현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 점 우리는 모두 살아온 과거를 될수록 정직하게 기록해둘 의무가 있다고 생각된다. 해방전후를 다룬 대부분의 소설이나 실록이 내게는 모두 황당한 '창작'으로 여겨진다."(166쪽) <나의 해방전후>가 나오게 된 소이연이겠다. 더불어, (육박적)'진실'은 유종호 비평의 또다른 축이다. 그의 비평은 시(=즐거움)와 진실 사이에 있다.    

책에는 난생 처음으로 저자가 경험한 '한가하고 자유로운 방학'(막내딸이 머물고 있던 미국의 엠즈라는 대학촌 체류기)의 부산물로 얻은 시 한편이 소개돼 있는데(127-8쪽), 제목이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이다. 알고 보니, 작년에 나온 시집의 표제시이다. 6연으로 된 시의 5연은 이렇다.

시끌시끌 막가는 아침의 나라에서/ 시새워 죽을 쑤는 동강난 산하(山河)에서 
터벅터벅 육십 년/ 무슨 반딧불을 보자고/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 숨가뻐온 것인가

서산이는 서산나귀로서 청노새처럼 사람들의 짐이나 나르는 짐승이라 한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시란 다른 무엇보다도 그런 '서산이'와 '청노새'의 삶을 위로하고 ('알게 뭐냐며')초극하는 '반딧불이'에 다름 아니겠다. 그리고 그것의 다른 이름이 '내 마음의 망명지'일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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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5-11-08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열 권 정도 쌓아두면 그걸로 풍족한 가을이지요. 그런데, 행복나침반님은 행복을 찾으시는 건가요, 찾아다주시는 건가요?..
 

지난번 읽기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거기에 덧붙이려다가 자리를 따로 마련했는데, 분량이 짧게 끝나면 도로 갖다 붙일 작정이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님이 추천한 만델바움(A. Mandelbaum)의 영역본(Everyman's Library, 1995)과 함께 <미메시스>의 저자 아우얼바하(E. Auerbach; '아우어바흐'로도 표기)의 <단테: 세속 세계의 시인>(시카고대출판부, 1961/1974; 독어본은 1929)도 대출했다. 영역된 <단테>는 195쪽이며 분량으로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책이다. <신곡>을 읽으며, 혹은 읽고 나서 내가 읽고픈 책인지라 미리 대출해놓은 것. 

 

 

 

 

아우얼바하(1892-1957)가 <미메시스>를 출간한 것이 1946년이므로(영역본은 1953년에 나온다) 그가 37세에 출간한 <단테>는 그의 초기 저작이라고 할 만하다. 내가 특별히 이 책을 기억하게 된 것은 작년 러시아 체류 시절에 러시아어본이 출간됐기 때문이다. <미메시스>의 저자라는 것 말고는 저자에 관한 특별한 지식이 없었던 나로선 비교적 얇은 분량의 '단테론'에 여러 차례 손이 갔다. 하지만 끝내 구입하지는 않았는데, 재정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어차피 영역본으로 읽으면 되리라는 판단과 아직 <신곡>도 읽지 않았다는 사정이 거기에 보태어졌다. 그건 러시아어본 <미메시스>에도 똑같이 적용이 됐는데(나는 국역본과 영역본을 갖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무리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크게 미련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지난 1999년 한 학술지에 아우얼바하 특집이 마련되었었고(특별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런 특집은 2003년에도 있었다. 그건 이유가 없지 않은데, <미메시스>(영역본) 출간 50주년 기념으로 <미메시스>(프린스턴대출판부, 2003)가 재출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관해서는 E. 사이드나 T. 이글턴 같은 쟁쟁한 비평가들이 새로운 서평을 씀으로써 아우얼바하의 업적을 기렸다(사이드의 글은 계간 <세계의 문학>에 이글턴의 글은 북매거진 <텍스트>에 각각 번역/소개되었다). 내게 더 흥미로웠던 건 이글턴의 시각이었는데, 그는 동시대 이론가들이었던 바흐친, 루카치와 아우얼바하를 비교하면서 이렇게 지적한다: "루카치에게 현실주의가 부르주아적인 것이었다면, 아우어바흐에게 그것은 서민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우어바흐는, 루카치의 역사주의와 바흐찐의 성상파괴주의가 혼합되는 흥미로운 교차점이다."(지주형 역) 이들의 계열체는 이렇다: 루카치(부르주아)-아우얼바하(서민)-바흐친(민중)

 

 

 

 

잠시 우회했는데, 여하튼 단테와 <신곡>에 대한 관심이 작년부터 무르익었었다는 개인적인 사정 얘기이다. 말이 나온 김에 그런 개인 사정을 조금 더 늘어놓자면, <신곡>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중2 때이다. 학교에서 공부 라이벌이었던 한 친구가(이 친구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는데, 지금은 변호사가 돼 있다) 어느날 세로 읽기로 된 <신곡>을 들고 다녔던 것. 200쪽 정도의 분량이었으니까 지금 생각에 좀 조잡한 다이제스트판이었던 듯싶은데(당시에 따로 뭐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이름을 꿰고 있지만 정작 읽지는 않은 '고전'을 옆구리에 끼고 다닌다는 게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같은 책을 사서 (끼고 다니지는 않고) 책꽂이에 꽂아두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해설만 읽었던 모양으로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전설적인 사랑 이야기를 나는 이후에 (여러 미팅 자리에서) 여러 번 욹어먹은 기억이 있다. 가령,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말이야... 너무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너무 멀리 떨어질 수도 없어서... 진정한 사랑이란 아마도...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본론이란 특별한 게 아니고 지난번 "우리네 인생길 반고비에서" 읽기를 약간 보충하고자 할 따름. 내가 새롭게 동원하고자 하는 건 서두에서 언급한 만델바움의 번역과 허인 옮김으로 돼 있는 '단떼'의 <신곡>(학원출판공사, 1996)이다. '학원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인 이 책을 나는 몇 년 전 헌책방에서 2,000원을 주고 샀다. 2단 조판의 본문이 376쪽이므로 다이제스트는 아니지만 번역본 서지나 역자에 대한 소개 등이 누락돼 있어 신빙성 있는 번역인지는 좀 의심스럽다. 하여간에 이 번역본에서 지난번에 읽은 첫 9행을, 비교를 위해서 한형곤 역과 같이 옮겨보면 이렇다. 만델바움의 영역도 나란히 옮겨놓겠다.

-우리네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 있었다. (한형곤)
-인생의 중반기에서/ 올바른 길을 벗어난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컴컴한 숲속에 있었다.(허인)
-When I had jouneyed half of our life's way,/ I found myself within a shadowed forest,/ for I had lost the path that does not stray.(만델바움)

-아, 거칠고 사납던 이 숲이/ 어떠했노라 말하기가 너무 힘겨워/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한형곤) 
-그 가열하고도 황량한, 준엄한 숲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입에 담는 것조차 괴롭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허인)
-Ah, it is hard to speak of what it was,/ that savage forest, dense and difficult, which even in recall renews my fear:(만델바움)

-죽음 못지 않게 씁쓸했기에/ 나 거기서 깨달은 선을 말하기 위하여/ 거기서 본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리라.(한형곤)
-그 괴로움이란 진정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거기서 만난 행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거기서 목격한 두세 가지 일을 우선 이야기할까 한다.(허인)
-so bitter - death is hardly more severe!/ But to retell the good discovered there,/ I'll also tell the other things I saw.(만델바움)

1, 2연의 번역은 지난번 읽기를 수정할 사항이 없다. 3연에서 역시나 'the good'의 번역이 문제인데, '선을 깨닫다'(한형곤)나 '선을 만나다'(박상진)란 표현이 어색하다는 건 여기서도 변함없다. 다만 허인 역에서는 '행복'이 지옥와 연옥의 안내자로 등장하는 베르길리우스와의 만남을 뜻한다는 주석을 달고 있다. 박상진 역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이 두 행을 "그러나 나는 거기서 귀중한 선(善)을 만났으니, 내가 만난 선을 보여주려면 거기서 본 다른 모든 것들도 말해야 하리라"라고 옮겼을 법하다. 박상진 역은 만델바움의 영역과도 걔 중 가장 잘 맞아떨어진다. 과연 그 '선' 혹은 '행복'이 베르길리우스와의 만남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더 읽어봐야겠다. 참고로, <신곡>을 읽으면서 반드시 참조해야 할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도서출판숲, 2004)는 천병희 선생이 정역본이 작년에 나왔다(이래저래 <신곡> 읽기를 피해갈 구멍이 없는 셈!).

 

 

 

 

이상을 종합하여, 나의 '독단'에 따라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번역 작업은 때로 작곡과 유사하다).   

-우리네 인생길 반고비에/ 가야할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속을 헤맸었네.
-아, 얼마나 아득하고 거친 곳이었는가/ 말로 다 이를 데 없고/ 생각만으로도 두려워라.
-죽음도 그보단 덜 쓰라릴 것이나,/ 거기서 나 은총을 마주했으니/ 이제 이 모든 걸 이야기하리라.

05. 10. 26. 

P.S. 아주 짧은 분량은 아니군... 마지막 연에서 '은총을 마주했으니'가 '신의 은총'이 아닌 '베르길리우스와의 만남'을 직접적으로 암시한다면, '은혜/은인을 만났으니'라고 옮기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이런 게 나대로의 읽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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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5-10-27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잘 읽었어요.

로쟈 2005-10-27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려에 감사를...

2005-10-27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5-10-28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칼라일 읽기 프로젝트를 저도 구경하면 안될까요?^^

쿠자누스 2005-11-05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번역본을 출간하시면 어떨지요 ? 주문 예약을 하겠습니다.

로쟈 2005-11-06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번역본이라니요? 턱도 없는 말씀이고, 저는 고전을 제 식으로 읽고 즐길 뿐입니다. 조만간 박상진 교수의 <신곡> 새 번역본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런 걸 기다리는 설렘을 누리면서...

2008-12-05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생길 반고비에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신곡(La Divina Commedia)>을 읽는다. 단테가 얘기한 반고비는 ("인생은 기껏해야 70년"이란 성서 시편의 구절을 기준으로 하여) 35세이지만, 그리고 그 나이라면 나로선 몇 년전에 (일없이)통과해 왔지만, 얼추 반고비로 간주하여(평균수명이 좀 늘어나기도 했으니 혹 여든까지 살 수도 있지 않은가?) 이 '신성한 코미디'를 한번 읽어볼 계획이다. 이런 계획을 더 일찍 실행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 개정된 완역본 <신곡>과 관련서들이 얼굴을 내민 게 바로 얼마전이기 때문이다.

 

 

 

 

 

 

 

 

 

해서 <신곡>을 읽기 위해 내가 갖추어 놓은 책은 한형곤 교수의 완역본 <신곡>(서해문집, 2005), 박상진 교수가 (산문으로)풀어쓴 <신곡>(서해문집, 2005), 그리고 김운찬 교수의 해설서 <신곡>(살림, 2005)이다. 거기에 덧붙여 도서관에서 영역본 <신곡>(J. Ciardi 옮김, New American Library, 2003)을 대출했고, 작년에 구해온 러시아어본 <신곡>(악트출판사, 2002)을 펼쳐놓고 있다(605쪽의 러시아어본은 '새 책'인데 헌책방에서 3,400원에 산 것이다. 그런 게 애서가의 '지극한' 즐거움이다). 그리고 읽을 줄 모르는 이탈리아어(단테는 피렌체 방언으로 썼다고 하며 그게 '단테 덕분에' 표준어로 성장했다고 한다)를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 띄워놓았다. 계획상으로 이 읽기는 이번 겨울까지 계속될 것이며, 간간이 읽기의 흔적들을 이런 자리에 남겨놓도록 하겠다. 오늘은 시작하는 의미로 '지옥편'의 첫 아홉 행을 읽는다.

 

먼저 원문은 이런 모양으로 돼 있다(왼쪽의 숫자는 칸토(Canto)와 행수를 표시한다. 시에서 '칸토'란 소설의 '장(章)', 혹은 'chapter'에 해당하는 용어인데, 현대 시인들 가운데서는 T. S. 엘리엇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E. 파운드의 시집 <칸토스(Cantos)>(문학과지성사, 1992)가 유명하다. '시편들' 정도의 뜻이 될까? <신곡>의 우리말 번역에서는 '곡'이라고 옮기는바, '1.1'은 제1곡의 제1행이란 뜻이다.

 

1.1 Nel mezzo del cammin di nostra vita
1.2 mi ritrovai per una selva oscura
1.3 ché la diritta via era smarrita.

1.4   Ahi quanto a dir qual era è cosa dura
1.5 esta selva selvaggia e aspra e forte
1.6 che nel pensier rinova la paura!

1.7   Tant'è amara che poco è più morte;
1.8 ma per trattar del ben ch'i' vi trovai,
1.9 dirò de l'altre cose ch'i' v'ho scorte.

 

<신곡>의 형식은 알다시피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3부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은 33편의 곡(노래)으로 돼 있다(단테는 '3'이란 숫자에 유달리 집착했다고). 김운찬 교수의 해설을 참조하면, 각각의 시행은 11음절로 돼 있으며, 세 개의 행이 하나의 단락을 이루는 3행 연구(聯句)로 구성돼 있다. 거기서 1, 3행이 각운을 이루고 있는바, aba, bcb, cdc...하는 식으로 운이 맞추어져 있는 것. 예컨대, 인용한 대목에서 굵은 글씨로 표기한 각 연구의 1, 3행 마지막 단어들이 각운을 맞추고 있는 단어들이다. 33편의 각 곡은 115-160행 사이의 행들로 구성돼 있으며(가장 많이 활용되는 길이는 139행과 142행이라고), 맨마지막에는 3행 연구 다음에 1행이 덧붙여진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해서 <신곡> 전체는 1만 4,233행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이 첫 9행은 그러니까 지옥에서 천국에 이르는 방대한 여정의 첫 세 걸음인 셈이다. 나는 3행 연구를 편의상 '연'이라고 부르겠다. 해서, 1연부터 살펴보면, 우리말 번역은 이렇게 돼 있다. 

 

우리네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 있었다. (한형곤, 42쪽)

 

시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 행가름은 돼 있지만, 원시처럼 운율(특히 각운)을 맞추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우리 완역본의 경우엔 3행연구의 연 구분을 따로 해주고 있지 않다(그랬다면, 현재 968쪽인 번역본의 쪽수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더 불어났을 것이다). 일종의 절충식인 것. 참고로 영역본에서 1연을 옮기면 이렇다.

 

Midway in our life's journey, I went astray
from the straight road and woke to find myself 
alone in a dark wood. How shall I say

 

1, 3행의 마지막 단어를 굵을 글씨로 표기한 것은 각운을 맞추고 있는 단어들이기 때문이다. 이건 러시아어본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굴절어에 속하는 같은 인구(印歐)어일 경우에 시 번역은 시로서의 형식적 조건을 맞추어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내용상 약간의 변형을 감수하더라도). 반면에 교착어인 한국어로는 그런 형식미를 충족시켜주기 어렵다. 해서, 박상진 교수가 산문으로 풀어쓴 문장, "인생의 반평생을 지냈을 무렵, 나는 바른길에서 벗어나 어두운 숲속에 들어서게 되었다."를 그냥 행가름만 해주면 한형곤 교수의 번역과 별 차이가 나지 않게 된다. 

 

인생의 반평생을 지냈을 무렵, 
나는 바른 길에서 벗어나 
어두운 숲속에 들어섰다.(박상진, 14쪽)

 

혹은 같은 대목의 다른 번역:

 

우리 인생길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에 처해 있었다.(김운찬, 59쪽)

 

다시 말해서 <신곡>의 시로서의 묘미는 대개의 시 번역에서와 마찬가지로 국역본에서는 음미하기 어렵다. 해서, 우리가 따라가볼 수 있는 것은 그저 대략적인 줄거리이고 여정일 따름. 원문의 'mezzo'(많이 보던 단어이다!), 영역의 'midway'에 해당하는 것이 우리말의 '반 고비'인데, '고비'란 '막다른 때나 상황'을 가리키는 고유어이고 '반 고비'는 인생의 전환점, 30대 중반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비교적 제한적인)쓰임새를 갖고 있다. 이 경우에는 '반평생'이나 '한가운데에서'보다는 '반 고비'란 말이 시적이다. 참고로, 작고한 평론가 김현이 30대 중반에 쓴 기행문집에 <반고비 나그네 길에>가 있었다.

 

 

 

 

 

 

 

 

 

1연의 내용을 간추리자면, 인생길 반고비에서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에서 정신이 들었다는 것. 그런 상황에 처해서 놀라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는 게 2연의 (당연한)내용일 테다.

 

아, 거칠고 사납던 이 숲이   
어떠했노라 말하기가 너무 힘겨워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산문적으로 조금 풀면, "그 숲이 얼마나 거칠고 무서웠던지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절로 솟아난다."(박상진) 그렇다면, 이러한 회상을 늘어놓고 있는 화자-단테는 그러한 경험/여정이 완료된 상태(=현재)에 놓여 있다. 요컨대, 어두운 숲에서의 두렵고도 굉장한 경험을 이제 말해보겠노라는 것. 왜? 그 이유가 3연이다.

 

죽음 못지 않게 씁쓸했기에   
나 거기서 깨달은 선을 말하기 위하여
거기서 본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리라.

 

다시 풀면, "죽음도 그보다는 더 무섭지 않으리라. 그러나 나는 거기서 귀중한 선(善)을 만났으니, 내가 만난 선을 보여주려면 거기서 본 다른 모든 것들도 말해야 하리라." 다른 번역들을 참조하건대, (한형곤 역에서의) '죽음 못지 않게'라는 동등비교보다는 (박상진 역에서의) '죽음보다 더'라는 우등비교가 더 타당한 듯하다(문맥의 논리상으로도 그렇다). 비교의 대상은 물론 '숲'과 '죽음'이다. 그리고 내가 좀 어색하게 생각하는 것은 '선'이란 번역어인데, 짐작에는 원문의 'ben'(원형은 'bene'라고 한다)을 옮긴 게 아닌가 싶다(불어의 'bien'을 연상케 하는데, 영어의 'good'에 해당한다). 참고로, 이 3연의 영역은 이렇다.

 

Death could scarce be more bitter than that place!    
But since it came to good, I will recount 
all that I found revealed there by God's grace.  

 

'선(善)' 이란 뜻 외에 불어 bien이나 영어의 good, 그리고 러시아어의 blago(영어의 'good' 혹은'grace') 모두가 공유하는 뜻은 '행복'이나 '은총'이며, 기독교적 문맥에서는 '선'보다 '은총'이 더 적합한 번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화자인 단테는 어두운 숲과 거기서의 경험이 죽음보다도 더 두렵고 씁쓸했지만(그걸로 끝이라면 더 얘기할 것도 없다), 거기서 '은총'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제 모든 걸 얘기하겠노라는 것(recount, 즉, 하나씩 되새김질하면서). "거기서 본 다른 것들"도 문맥상 "거기서 본 모든 걸들"로 이해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물론 나는 <신곡>에서 내가 읽은 모든 걸 늘어놓은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 '거기서 읽은 몇몇 대목들' 정도를 앞으로 따라가볼 작정일 뿐. 왜? 벌써 인생길의 반고비를 지나(쳐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테를 따라서 한번쯤 지옥과 천국을 오락가락 해보는 편이 마땅하다... 

 

05.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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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5-10-2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은 점심을 드시고 와서 나머지 글을 쓰시겠지만 일단 추천부터 해 두렵니다.
미리 보지 않아도 나쁜 글이 아닐 거라는 걸 아니까요. 흐흐.

로즈마리 2005-10-25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손 대고 싶은데...이럴 때 이탈리아어로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

로쟈 2005-10-25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천국은 장담할 수 없구요, 지옥 정도는 같이 가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2005-10-25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5-10-25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Mandelbaum의 영역본도 도서관에는 있는데, 제가 어떤 번역본이 더 나은가에 대한 정보는 안 갖고 있었습니다. 추천해 주시니까 그 책도 참조하겠습니다. 뭐, 저로선 <신곡>을 읽기 위해 이탈리아어를 배울 생각까지는 안 갖고 있습니다(도스토예프스키를 읽기 위해서 러시아어를 배우겠다는 게 쉬운 결심이 아니듯이). 다만, 스페인어권 시를 읽을 때 원문을 낭송해보곤 했었는데, 그런 방식 정도를 흉내 내볼 수 있겠네요(이탈리아어도 대충 철자대로 발음하는 거 맞지요?^^)...

산손 2006-06-0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북 리플 답니다 ;; 저는 최민순 신부 번역을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한뉘 나그냇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 잃고 헤매이던 나 컴컴한 숲 속에 서 있었노라/아으 호젓이 덧거칠고 억센 이 수풀 그생각조차 새삼 몸서리 쳐지거든 아으 이를 들어 말함이 얼마나 대견한고!/죽음 보다 못지않게 쓰거운 일이 었어도 내 거기서 얻어본 행복을 아뢰려로니 게서 익히 보아둔 또 다른것들도 나는 얘기하리라'. 읽기 편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영어로 번역이 미심쩍은 거 살펴보면 최민순 신부님이 더 맞더라구요(불어, 스페인어 번역과 일치하죠). 영어번역은 워낙 여러 시도가 있었는지라 ;; 이탈리아어랑 대조하면서 보시려면 Singleton 아저씨의 산문 번역(이탈-영어)을 참고하시면 될 거에요. 주석본도 같이. 이탈리아어 낭송은 www.ilnarratore.com에 단테 검색하시면 Canto I 낭송한 게 있습니다. 이상 뒷북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