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카프카의 웃김에 관한 몇마디 말

3년 전 페이퍼다. 데이비드 월리스도 언젠가 강의에서 읽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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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422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썩은 잎>에 대해 적었다. 분량상 지면에 실리지 못한 부분도 일부 포함시켰다...


















주간경향(21. 04. 22)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예고하는 작품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간판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표작은 <백년의 고독>(1967)이다. 마르케스 자신은 이 작품이 누린 엄청난 인기와 명성에 부담을 느끼며, 그 이후에 발표한 <족장의 가을>을 대표작으로 꼽았지만 <백년의 고독>이 갖는 문학사적 의의는 확고하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특징과 성취를 집약하는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어서다.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백년의 고독>의 탄생과정이다. 그보다 먼저 쓰인 작품들은 <백년의 고독>에 이르는 여정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첫 소설 <썩은 잎>(1955)도 마찬가지인데, 뒤이어 발표한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1958)와 함께 <백년의 고독>을 예고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썩은 잎>과 <백년의 고독>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무엇보다도 '마콘도'라는 공간적 배경이다. 마르케스의 실제 고향인 콜롬비아의 마을 아라카타카를 모델로 한 마콘도는 <백년의 고독>이 세계문학의 고전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가장 유명한 문학적 지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렇지만 실제 지명 대신에 마콘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면서 마콘도는 상징적, 신화적 의미도 획득하게 된다. 즉 마콘도는 콜롬비아의 축소판이면서, 더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것은 1982년에 마르케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수상연설문의 제목을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라고 지은 데서도 시사를 얻을 수 있다. 마르케스에게서 '백년의 고독'은 곧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의 다른 말이기도 했다.

마콘도와 라틴아메리카를 등치시킨다면 자연스레 마콘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라틴아메리카의 현대사와 비교하게 된다. 그것이 <썩은 잎>을 읽는 일차적인 독법이다. 이름이 나오지 않는 퇴역 대령(외조부)과 그의 딸 이사벨(어머니), 그리고 역시 이름이 나오지 않는 그의 손자(아이)가 번갈아가면서 화자로 등장하는 이 소설의 줄거리를 연대순으로 정돈하면, 대령의 가족이 1898년, 마콘도에 정착한 이후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은 1903년에 의사와 본당 신부가 동시에 마을에 등장한 것이다. 마콘도라는 지명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서양의 과학(의사)과 종교(신부)가 한꺼번에 마을에 유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위 서양식 근대와의 조우이면서 근대로의 전환이다.

문제는 그에 뒤이어 바나나 회사가 들어온다는 점이다. 마을의 연대기로는 1907년에 벌어진 일인데, 바나나 회사가 마을에 도착하고 철도 부설작업이 이루어지면서 근대화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당장 바나나 회사가 노동자들을 위한 진료소를 설치하면서, 그들보다 먼저 들어왔던 의사는 존재감을 상실하고 칩거한다. 그리고 점차 마을의 부패와 타락이 진행된다. '썩은 잎'은 이러한 부정적 변화의 상징이다. 바나나 회사와 함께 다른 마을의 쓰레기 인간들과 쓰레기 물건들이 마콘도로 유입되었고 마을을 오염시켰다. 그러다 1915년, 바나나 회사가 철수하게 되지만 마콘도는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한다. 썩은 잎이 모든 것을 가져왔고 또 모든 것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1918년, 마을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 군인들의 공격을 받지만, 의사는 부상당한 마을 사람들의 치료를 거부하여 분노를 산다.

그렇게 의사와 마을 사람들간의 적대관계가 형성되는데, 한편으로 의사는 위중한 병에 걸린 대령의 목숨을 구하여 그의 은인이 된다. 의사는 대령에게 자신이 죽으면 매장해줄 것을 부탁하고 1928년, 목을 매어 자살하자 대령은 마을 사람들의 반발, 그리고 새로 부임한 신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사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한다. 의사와 대령,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착종된 관계는 곧바로 라틴아메리리카의 착종적인 근대화 과정의 상징이다. 마콘도는 근대와의 조우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지만 서양과 같은 자연스런 근대적 발전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비극을 절묘하게 다룬 작품이 <백년의 고독>이라는 사실을 <썩은 잎>은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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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1960년대 한국의 문학과 정치

3년 전 페이퍼다. 강의와도 관계가 있어서 1960-70년대 한국문학과 사회에 대해서 상시적으로 관심을 두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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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신작이 나란히 나왔다.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의 하나로 나온 <문학론집>(도서출판b)과 새로 런칭된 '가라타니 고진 라이브러리'의 <세계사의 실험>(비고)이다. 





























<문학론집>에는 소세키론과 모리 오가이론, 맥베스론, 사카구치 안고론 등이 수록돼 있는데, 흥미로운 건 고진이 영문학자로서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썼다는 '<알렉산드리아 사중주'의 변증법'이 들어있다는 점이다(고진은 대학원에서 미국문학을 전공하면서 포크너를 석사논문의 주제로 다루려 했다가 최종적으로 러덜의 '사중주'를 선택했다고 한다). 로렌스 더럴의 사부작(사중주)에 대한 독서를 자극하는 평론이다(언젠가 강의에서 다뤄보려 한다).


 














고진의 문학론으로는 <근대문학의 종언>과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바로 떠올릴 수 있는데, 절판된 책 가운데는 <언어와 비극>도 있다(재출간되는지?).  
















<언어와 비극>에 실려 있던 '소세키의 다양성'도 이번 <문학론집>에 포함돼 있는데, 소세키의 <마음>을 주로 다룬 평론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주저 <세계사의 구조>와 그 후속작들은 여러 권 소개되었는데, 이번에 나온 <세계사의 실험>은 일본 인류학자 야나기타 구니오론이다(고진의 계산으론 세번째 야나기타 구니오론이다). 덕분에 야나기타 구니오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몇 권 주문해놓은 상태다. 




























야나기타의 책은 <일본의 민담> 등을 포함해 다섯 권의 책이 소개돼 있다. <세계사의 실험>은 2019년작인데, 고진의 건재를 확인할 수 있어서 반갑다. 팔순에 이른 평론가가 여전히 '실험'이란 말을 쓴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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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30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01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01 0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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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420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중남미문학 강의에서 멕시코 작가 후안 룰포의 <뻬드로 빠라모>를 다루면서 그에 대해 적었다. 룰포는 미겔 아스투리아스(과테말라), 알레호 카르펜티에르(쿠바)와 함께 붐세대 문학의 물꼬를 튼 작가로 평가된다. 다른 작가들은 하반기 강의에서 다룰 예정이다...


















주간경향(21. 03. 29) 화자가 죽은 후에도 계속되는 이야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으로 떠올리는 이름들이 있다. 소설가로 범위를 좁히면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와 콜롬비아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리고 페루 작가 바르가스 요사 등이다. 국적을 같이 적었지만, 스페인 식민지였던 역사 때문에 이들의 문학어는 공통적으로 스페인어다. 언어의 장벽이 없기에 스페인문학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문학 전체가 공통의 자산이다. 그렇더라도 지역적으로 낙후된 소위 제3세계에서 어떻게 세계문학의 정점을 이루는 걸작들이 나오게 됐는가는 해명될 필요가 있다.


특히 궁금한 것은 나란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르케스와 요사의 성취다(비록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카를로스 푸엔테스나 훌리오 코르타사르 등도 거장으로 꼽힌다).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소설 붐을 주도했던 ‘붐소설’의 대표 작가들이기도 하다. 보르헤스는 단편소설에만 전념했기에 붐소설 세대 작가들의 직접적인 스승으로 보기 어렵다. 그런 궁금증을 품고 있던 차에 마주한 작가가 후안 룰포다. 1917년생의 멕시코 작가로 1950년대에 대표작 2편을 발표했다. 단편집 <불타는 평원>(1953)과 짧은 장편 <뻬드로 빠라모>(1955)다. 단 2권에 불과하지만, 멕시코 현대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사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작품들이다.

일반론에 따르면 한 작가가 자기 세계를 정립하는 데 필수적인 두가지 요건은 경험과 언어다. 멕시코 혁명기에 태어난 룰포는 어린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는다. 아버지의 형제들까지도 모두 내란 중에 피살당하고 룰포는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다. 가족의 비극과 멕시코의 참담한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과 숙고가 결국 그의 창작으로 이어지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젊은시절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하고 틈틈이 습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때 룰포에게 영향을 준 것은 당대의 멕시코문학이 아니라 서구의 모더니즘 문학이었다. 1940년대까지도 찾아볼 수 없었던 실험적 시도가 그의 소설에 나타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1967)을 예고한 작품으로도 평가되는 <뻬드로 빠라모>만 하더라도 매우 낯설고 전위적인 서사적 실험을 보여준다. 70편의 서사적 조각들의 몽타주적 구성으로 돼 있는 이 소설에서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이 쉽지 않다. 당장 주인공이자 화자로 등장하는 후안 쁘레시아도가 작품의 중반쯤에서 숨을 거둔다. 화자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되는 이야기!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후안이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를 찾아 꼬말라라는 마을을 찾아가 겪는 일들이 줄거리인데, 이 마을은 이미 폐허가 됐고, 그가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죽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 역시 저세상 사람이다.


그렇지만 아들 후안의 죽음 이후에 주로 전개되는 것은 마을의 흉포한 권력자였던 아버지 뻬드로의 이야기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토지를 빼앗아 부를 축적하고 폭력과 전횡을 일삼는다. 그리고 자신이 평생 사랑했지만 마음은 얻지 못했던 여인이 죽자 마을 사람들에 대한 복수로 꼬말라를 황폐하게 만든다. 그랬던 뻬드로 빠라모도 죽어 저승으로 인도되는 것이 소설의 결말인데, 아들의 이야기보다 더 뒤에 배치됨으로써 소설에서도 어떠한 미래도 차단되는 결과를 낳는다. 멕시코의 비극적 역사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소설적 형식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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