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책을 읽을 자유'란 제목이 눈에 띄어 칼럼 하나를 옮겨놓는다. 이택광 교수의 '인문학 칼럼'이다.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도 언급돼 있는데, 말하자면 '철학책을 읽을 자유'는 '책을 읽을 자유'의 하위범주가 된다. 그런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봄직하다.

 

국제신문(11. 03. 30) 철학책을 읽을 자유

철학자라는 말은 멋있게 들리지만 어원을 따져보면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실 논리에 근거해서 본다면 철학자는 오늘날 결코 환영받을 수 있는 인간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자라는 존재는 말 그대로 '지(智)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남녀관계도 그렇듯이 사랑이라는 것은 과잉의 상태이다. 지에 대한 과잉의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이란 누구겠는가. 한마디로 지적 행위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철학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곧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가는 일에 급급한 평범한 사람에게 철학은 쓸데없는 고민을 만들어내는 귀찮은 행위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앎에 대한 욕망에 빠지면 세속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남들이 좋은 차를 사거나 멋진 집을 사기 위해 고심할 때 철학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에 골몰하면서 진리에 대해 알고자 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값비싼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가디언'지의 질문에 슬로베니아 출신 철학자 지젝이 '헤겔 전집'이라고 대답한 것은 그래서 단순한 위악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돈으로 40만 원가량인 전집을 자신의 소유물 중에서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이라고 말하는 이런 '심리'를 짐작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누구나 쉽게 지젝과 같은 대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얼마 전에 서평블로거 로쟈 이현우가 출간한 책은 '책을 읽을 자유'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모든 존재는 자유를 갈망하지만 이현우에게 그 자유는 무엇보다도 '책을 읽을 자유'인 것이다. 이 의미심장한 '자기주장'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국 유학 시절 소속 학과사무실 게시판에 유명 출판사의 채용공고가 자주 붙곤 했는데 지원자격에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인상 깊은 지원자격이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었다. 컴퓨터회사라면 당연히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에게 취업의 기회를 줄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런 자격규정은 사실 있으나마나한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이렇게 자격요건을 밝혀 놓은 까닭은 그만큼 '책을 읽는 것'이 의미 있는 자질이자 능력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책을 읽을 자유'는 그렇게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다. 그만큼 경제적 여유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직장인들은 업무에 쫓겨서 어렵고, 학생들은 그 못지않게 스펙 쌓는 일에 바빠서 못한다. 이런 사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업무'나 '스펙'과 관계없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철학'이라는 지를 사랑하는 특이한 행위를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철학과를 가겠다는 자식을 말리지 않을 부모가 과연 한국 사회에 얼마나 있을지 의문인 것이다.  



철학의 도시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파리에 가면 고등학생들이 두꺼운 철학책을 읽고 있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카페나 공원에서 철학과 관련한 토론이 벌어지는 일도 아주 흔하다. 이런 프랑스의 지적 풍토를 부러워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사실 이렇게 프랑스가 독일을 제치고 철학의 나라로 거듭 난 것은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필수적으로 철학을 이수해야하는 교육제도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프랑스에서 의무교육을 정상적으로 받은 사람이라면 철학에 대한 기초지식 정도는 모두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한국에서 최근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도 프랑스처럼 제도적 뒷받침과 결합한다면 일시적 유행으로 그치진 않을 것이다. 물론 한국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가 인문학을 자신의 삶에서 값어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화가 가능할 수 있겠다. 지에 대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구제'해준다는 시혜적 대책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윤리적 문제를 구성하는 중요한 철학적 화두로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각자의 삶에 하나씩 품을 수 있는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이런 제도화도 뜬금없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이런 까닭에 '철학책'을 읽을 자유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의 문제에 가까운 것이다.(이택광_경희대 영문학과 교수) 

11. 04. 02.  

P.S. 최근에 '철학책을 읽을 자유'의 향유대상으로 관심을 갖게 된 철학자는 미셸 옹프레이다. <반철학사4: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인간사랑, 2010)에 이어서 <반철학사3: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인간사랑, 2011)이 출간됐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철학교사로 오래 근무한 이 철학자의 '반(反)철학사'는 전체가 6권으로 예정돼 있는데,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 이전에 <반철학사1: 고대의 현자들>, <반철학사2: 크리스트교적 쾌락주의>가 배치돼 있고,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 이후에는 <반철학사5: 사회적 행복주의>와 <반철학사6: 욕망하는 기계>(이상 가제)가 뒤를 받치게 된다. 철학적이라기보다는 미학적인 표지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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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i83 2011-04-03 04: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팬클럽이 생겼습니다.
이름은 고공비행이고, 이주일에 한번씩 모이는 느슨한 독서클럽입니다.
줄여서 '고비'인데, 이주에 한번씩 고비를 넘기고 공부하며 인생의 고비를 넘기자는 의미가 있죠.

로쟈님이 번역하신 지젝님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했네요.
아직 시작한지 하루밖에 안돼서 홈피는 없지만 우선 이렇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앗, 멤버들이 로쟈님의 친필 사인을 원하고 있어요!

로쟈 2011-04-03 08:57   좋아요 0 | URL
ㅎㅎ 팬클럽까지 거느리기엔 제가 '카리스마'가 없는데요.^^; 아무튼 '고비'들을 잘 넘기시길 바랍니다. 새로 책이 나오면 사인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폭력이란 무엇인가>를 읽다가 의문점이 생기시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몇가지 교정사항은 조만간 올려놓을 예정입니다...

난다 2011-04-03 17:49   좋아요 0 | URL
허걱~~저도 그 팬클럽에 가입해야 하는데...ㅎㅎ 우리 독토에서는 폭력이란 무엇인가 지난 주에 읽었습니다... 제가 강력히 주장해서..반응 뜨거웠지요....암튼 인문학이 사회 전반에 넘치는 그날까지...로쟈님은 저공비행.. 팬클럽은 고공비행 해주십시요...ㅎㅎ

로쟈 2011-04-03 18:21   좋아요 0 | URL
반응이 뜨거웠다고 하시니 궁금하네요. 종종 '강력히 주장'해주시길.^^

park6 2011-04-07 01:13   좋아요 0 | URL
철학도로서 댓글을 달지 아니 할 수 없는 글이군요ㅎㅎ파리가 정말 철학의 도시인가요? 그렇다면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네요~

아, 그리고 전부터 로쟈씨에게 알려드리고 싶은 정보가 있었는데요. '진단명:사이코패스'라는 책에 엉터리 정보가 실려 있습니다. 책 132쪽에 소설 롤리타에 대한 옮긴이 주가 있는데요. 완전히 엉터리 정보더라구요.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알려드려요~ㅎㅎ

로쟈 2011-04-07 10:07   좋아요 0 | URL
<진단명>은 안 갖고 있어서 '도움'은 안 되는 정보지만 참고는 하겠습니다.^^
 

아침에 읽은 기사를 연거푸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의 '명강의를 찾아서' 코너에서 읽은 전호근 교수의 연암집 강의 소개이다. 아트앤스터디에서 8주간 진행한 강의는 내일 종결되는데, 나중에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따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아직 연암집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으니 '5000년 최고의 문장'을 만나지 못한 셈이니까...   

한국일보(11. 03. 05) 전호근 경희대 교수의 '5000년 최고의 문장을 읽는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문장가는 누구일까. 대답하기 쉽지 않은 이 질문을 앞에 놓고 전호근(48) 민족의학연구원 상임연구원 겸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가 대중강의를 하고 있다. 인문학 강좌 프로그램인 아트앤스터디(www.artnstudy.com)를 통해 1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이 강의의 제목은 '5,000년 최고의 문장을 읽는다'. 이 강의에서 전호근 교수가 꼽은 우리 역사 5,000년 최고의 문장가는 연암 박지원(1737∼1805)이다. 강의는 그래서 박지원의 글을 모은 연암집에서 16편을 골라, 수강생과 함께 번역을 하고 글에 얽힌 사연을 풀어나간다. 연암집은 그 내용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가 거의 없었다.

강의의 제목대로 연암이 과연 최고의 문장가일까. 구한말 학자 김태경은 "연암의 글에는 공자, 맹자, 소동파, 한유, 구양수의 문장이 다 녹아 있다"며 "연암이야말로 조선 최고의 문장가"라고 했다. 역사학자 김성칠, 철학자 박종홍, 북한의 국어학자 홍기문 등도 비슷한 평가를 내렸으니 강의 제목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호근 교수가 볼 때 연암의 글은 표현이 생생하고 인물 묘사가 뛰어나며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그래서 전 교수는 "글 속의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는 듯 하고 연암 자신이 마치 그 인물이 된 듯 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열녀함양박씨전병서(烈女咸陽朴氏傳幷序)의 한 단락을 보기로 든다. "가물거리는 등잔불에 제 그림자 위로하며 홀로 지내는 밤은 지새기도 어렵더라. 만약에 또 처마 끝에서 빗물이 똑똑 떨어지거나 창에 비친 달빛이 하얗게 흘러 들며 낙엽 하나가 뜰에 지고 외기러기 하늘을 울고 가며 멀리서 닭 울음도 들리지 않고 어린 종년은 세상 모르고 코를 골면 이런저런 근심으로 잠 못 이루니 이 고충을 누구에게 호소하랴. 이럴 때면 나는 이 엽전을 꺼내 굴려서 온 방을 더듬고 다니는데 둥근 것이라 잘 달아나다가도 턱진 데를 만나면 주저 않는다. 그러면 내가 찾아서 또 굴리곤 한다. 밤마다 늘상 대여섯 번을 굴리면 먼동이 트더구나."

전호근 교수는 "연암이 글 중의 과부라도 된 듯 절절한 마음을 드러냈다"며 "글을 읽으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연암의 문장은 장자에서 따온 것이 많다. 장자는, 땅이 숨쉬는 것을 바람이라 하는 식으로 스케일 큰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연암은 이런 문장 스타일을 빌리되, 거창한 것 보다는 일상의 작은 것을 표현하는데 주력한다. 연암의 이 같은 문장관은 공작관문고서(孔雀館文稿序)라는 글에서 한껏 드러난다. 그는 글에서 논어를 인용, 글은 뜻만 드러내면 그만이라고 하면서도 진실하게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볼 때 진실한 글은,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를 쓴 것이다. 거창한 이야기를 쓰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좇게 되지만 평범한 이야기를 쓰면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연암이 거지, 과부 같은 하찮은 인물을 등장시키고 코 고는 소리 등을 묘사한 것은 이런 문장관에서 비롯됐다. 이런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그는 현란하고 구체적이며 비유적으로 표현해 놀라운 글 솜씨를 발휘한다. 연암의 뛰어난 문장력을 보여주는 보기로 전 교수는 불이당기(不移堂記)라는 글을 든다. 불이라는 이름의 당(堂ㆍ조선 사대부의 가옥)에서 지내는 친구 사함을 위해 쓴 글인데, 사함이 대나무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원에 대나무가 하나도 없었던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연암에게는 고민이었던 것 같다. "사함은 성품이 대나무를 사랑한다. 아, 사함은 대나무를 아는 사람인가. 날씨가 추워진 뒤 내가 또 그대의 마루에 오르고 그대의 정원을 돌아다니면 눈 속에서 대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인가."

비록 사함의 정원에 대나무는 없지만 사함이 어려움을 겪고도 자신의 뜻을 잃지 않는다면 사함 스스로가 대나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비유의 절묘함을 보여주는 사례는 공작관문고서에서 찾을 수 있다. 시골 사람이 코를 고는 장면을 연암은 이렇게 표현했다. "코 고는 소리가 우렁차서 어떤 때는 토하는 것 같고 어떤 때는 휘파람 부는 것 같고 어떤 때는 탄식하는 것 같고 어떤 때는 우는 것 같고 어떤 때는 불을 부는 것 같고 어떤 때는 솥 안의 물이 끓는 것 같고 어떤 때는 빈 수레기 덜컹하는 것 같고 숨을 들이 쉴 때는 드르렁 하며 톱질하는 소리가 나더니 내 쉴 때는 마치 새끼 돼지가 씨근대는 소리가 났다."

이런 연암의 글은 그가 활동하던 18세기에 매우 인기가 있었다. 그 시기 책을 읽어주는 사람, 직업적 필사가, 서점 등이 등장하면서 책의 내용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독자들은 평범한 자기네 이야기를 다룬 연암의 글에 특히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연암의 글을 모두가 환영했던 것은 아니다. 정조는 연암의 글이 글 쓰기의 기본을 흔든다고 판단하고 패관소설과 잡문의 수입을 금지하는 등 문체반정을 일으킨다. 전아한 고문으로 글을 지어야 한다고 보았던 정조가 연암의 분방한 문체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전호근 교수는 그러나 정조가 연암을 아주 미워하지는 않았으며 일종의 애증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연암의 글을 비판하면서도 그가 쓴 농서 과농소초(課農小抄)를 극찬하기도 했다. 사실 연암은 마음만 먹었으면 왕실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그는 글짓기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영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런 그에게 조정은 과거에 응하라고 권고했지만 분방한 연암은 과거시험에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장남 종의가 성균관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보려 하자 그것마저 막아 버렸다. 연암은 그의 글만큼이나 호방하고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것이다.   

"억지로 교훈 찾기보단 감정을 느끼는 게 중요"

전호근 교수는 2일 서울 마포구 민족의학연구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연암집에는 웃음과 눈물이 가득하다"고 말했다. 연암집에서 억지로 교훈을 찾기보다 인간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_연암집을 평가해달라.

"조선 사대부의 일반적인 문집은 시, 상소문, 보고서 등을 많이 실은 반면 연암집은 산문이 많다. 열하일기 같은 본격적이고 방대하면서도 자세한 여행기도 연암집에서만 볼 수 있다. 연암집은 1805년 연암이 죽은 뒤 아들 종간이 편집한 필사본을 바탕으로 1900년대에 들어서 어렵게 간행됐다. 열하일기 등 연암집의 글이 오랑캐를 찬양했다는 이유 등으로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쉽게 묶을 수 없었다."

_연암이 지향한 가치관은 무엇인가.

"18세기 조선에서는 중세의 성리학적 세계관과, 새로 들어온 근대적 세계관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런 혼란 때문인지 연암의 글 역시 부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것이 있다. 가령 1764년 지은 <초구기>에서 연암은 '명나라의 천자는 우리 임금의 임금'이라며 성리학적 사대주의를 드러냈다. 반면 열녀함양박씨전병서에서는 과부가 비참하게 살고 있으면서도 남편 따라 죽지 못했다는 이유로 열녀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또 북학의서에서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 가는 사람에게라도 물어보라고 한다. 성리학적 가치관으로 보자면 모르는 것은 도를 아는 사람에게 물어야지 행인에게 물으면 안 된다. 열녀 이야기나 행인에게라도 물어보라는 것은 성리학적 세계관을 벗어난 그의 근대지향성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

_연암에 필적할 문장가를 꼽는다면.

"연암 스스로 인정한 문장가가 있다. 그와 동시대에 살면서 함께 어울렸던 이덕무다. 두 사람은 글을 주고 받으며 문장을 가다듬었다. 이덕무의 글이 전통적인 문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자 연암이 적극 변호했다."

_연암집은 언제 접했는가.

"대학 다닐 때 연암집에 대해 알게 됐지만 강좌가 없었고 쉽게 익히기 어려웠다. 연암집이 매우 어렵다는 말을 듣고 기왕이면 어려운 것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도전했다. 대학 4학년 때와 대학원 시절 한국고전번역원 교수로 있던 한학자 이진영 선생 집으로 찾아가 연암집을 공부했다. 낯선 한자가 많은데다 내용과 관련한 고사도 찾아야 했으므로 책 읽기가 매우 힘들었다." 
 

연암집을 읽으려면 

연암의 글을 모은 연암집은 한문으로 돼 있다. 따라서 원문으로 읽으려면 한문 독해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워낙 어려운 한자가 많기 때문에 웬만한 실력으로는 쉽지 않다. 그러나 훌륭한 번역본들이 많이 나와 있어 연암 글의 매력을 접하기는 어렵지 않다.



연암집 번역본으로는 한국고전번역원과 도서출판 돌베개에서 나온 것이 유명하다. 둘 다 한학자 신호열 선생과 그의 제자인 김명호 서울대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연암집 가운데 열하일기만 따로 뽑아 별도의 번역본을 내기도 했다. 보리출판사는 북한의 리상호가 1955년 번역한 열하일기를 2004년 발행했다. 도서출판 돌베개는 2009년 김혈조 영남대 교수의 번역본을 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씨는 열하일기를 재해석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2003년 그린비출판사에서 출판했다.(박광희편집위원)
 
11.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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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6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6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담이와Anne 2011-03-09 11:40   좋아요 0 | URL
아, 연암선생님 글 참 좋군요. 참 좋아요.
 

독서대학 르네21이 3주년을 맞는다. 청소년 독서 지원사업을 더 확대한다는 소식이다. 르네21의 신학기 인문강좌도 소개할 겸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11. 02. 11) “책 통해 빈곤 청소년에 희망 쏠 것” 

인문학 책 읽기가 유행이다. 대학생들도 읽고 회사 사장님들도 읽고 직장인들도 읽고 노숙자들도 읽는다. 하지만 무엇을 읽어야 할지, 책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를 혼자서 깨우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특히 입시에 치이는 청소년, 그중에서도 저소득층 청소년이라면 인문학에 대한 접근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인문 강좌 사업과 풀뿌리 독서 모임 활성화를 표방하며 2008년 3월 문을 연 ‘독서대학 르네21’은 올해부터 빈곤 청소년 도서 지원 등 그룹 독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대한성공회 신부인 김한승 르네21 운영위원장은 9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해까지 시범적으로 ‘희망의 인문학’ 사업을 운영해본 결과, 그룹 독서를 통해 성찰과 소통을 경험하게 된 학생들의 자아 존중감이 향상되는 성과를 이뤘다.”면서 “또한 책을 무상으로 지원해 ‘나만의 책’을 갖도록 하는 것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경험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올해부터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7개 기관 50여명의 학생들에게 모두 37권의 책을 무상 지원할 예정”이라면서 “단지 지식을 늘리는 독서가 아니라 책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삶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출 청소년 재활 쉼터, 지역 아동센터, 마을 도서관 등 빈곤 청소년을 보호하고 있는 다양한 시설에 우선 지원되며, 점차 규모를 늘리는 한편 연령대를 낮춰 저소득 가정의 아동, 영유아로 넓혀갈 예정이다.

문제는 르네21이 대한성공회와 한국출판인회의가 공동 운영하는 비영리 시민 문화교육 기관이라는 점이다. 3년 동안 수요인문강좌, 금요대중강좌 등 80개의 강좌를 통해 2000여명의 수강생을 배출했지만 연 3억원이 넘는 예산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이 적자로 돌아온다.

김 운영위원장은 “사업이 확대되어 가는 상황에 맞게 맞춤형 후원을 조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후원 방법 등은 르네21 홈페이지(www.renai21.net)를 통해 문의할 수 있다.(박록삼기자) 

11. 02. 10.  

P.S. 르네21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열리는 '인문교양교실'도 있는데, 2011년 1학기에는 인상파 회화(이택광), 러시아 문학(이현우), 그리스 비극(김기영)을 주제로 한 강의가 16주간 진행된다(http://www.renai21.net/lecture/item.php?it_id=1294633166). 내가 맡은 러시아 문학쪽은 5주간 다섯 명 작가의 대표작을 감상하는 내용이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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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0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0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erenow 2011-02-10 15:16   좋아요 0 | URL
여기 교양강좌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이만큼 적자인줄은 몰랐네요.
이번엔 로쟈님도 강사로 나오시는군요. ^ㅅ^
덕분에 더 많은 분들에게 르네21이 알려지게 되면 좀 나아지겠죠? (그랬으면...)


로쟈 2011-02-10 16:13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적자라면 오래 운영하긴 어려운 게 아닐까도 싶고요.^^;
 

제도권 바깥의 연구공간이나 지식공동체, 하면 떠올리기 쉬운 건 '수유+너머'이지만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곳이 조금 더 있는 걸로 안다.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도 그런 경우인데, 자세하게 소개해주는 기사가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특히 올해의 세미나 주제인  ‘자본·미국·한국 지식인’의 성과가 빨리 묶여서 나오길 기대해본다.

한겨레(11. 01. 07) ‘진보적 지식’ 나누는 제도 밖 연구 공간

“인도 웨스트벵골주에서는 인도 공산당이 20년째 장기 집권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개입한 공산당 대학살 이전, 전성기 때 인도네시아 공산당은 공산주의 국가들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이런 사실들에 주목하고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지식인이 과연 우리나라엔 얼마나 될까요?”

많은 지식인들이 대학, 연구소, 국가기관 등 이른바 공식적인 ‘지식의 체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제도를 벗어나 ‘대안적인 지식 운동’을 펼치고자 하는 지식인들 역시 자본이나 미디어의 영향에서는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어떤 지식이 어떻게 생산되느냐는 항상 체제의 요구에 따라가기 마련이다. 체제는 또 전문 지식인에게 권력을 주는 방식으로 지식 생산의 위계적 질서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낸다.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삼아 독립적인 연구 공간을 표방하는 세미나 네트워크 ‘새움’(seumnet.com)은 이러한 지식 생산의 체제를 거부하는 곳이다.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욕구가 커짐에 따라 그동안 대중이 모여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아카데미나 연구 공동체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설립 취지와 운영 방식을 볼 때 새움만큼 급진적인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4일 서울 합정동 새움 세미나실에서 만난 새움 회원 한형식(43), 유승민(34)씨는 인터뷰 내내 “우리는 각각 한 명의 회원일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자신들의 말이 마치 새움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까 우려한 탓이다. 새움에는 대표나 상근자, 실무자 등이 따로 없다. 또 회원에 대한 자격조건도 따로 없다. “전문적 지식인에서부터 일반 대중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으며, 오직 참여와 공감만이 회원이 되는 최소한의 자격조건”이라고 한다. 강좌와 세미나 등 모든 활동은 무료로 이뤄지며, 오직 회원들의 자발적인 분담 노력만으로 재정을 충당한다. 세미나실 청소나 도서 정리, 문단속 등 모든 크고 작은 일들도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다. 새움의 유일한 의사결정 기구는 한 달에 한 번, 회원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운영위원회뿐이다.

새움이 만들어진 초창기부터 회원으로 활동해 온 한형식씨는 “대안적인 지식을 만들어내려면, 대안적인 삶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존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권력과 자본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결코 대안적인 지식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새움의 시초는 8~9년 전 연세대에서 학생들이 만들었던 정치철학 세미나라고 한다. 그 뒤 유승민씨와 같은 정치경제학 전공자들이 합류하면서 공부의 영역이 확장됐고, 점차 지금과 같은 틀이 만들어졌다. 새움이라는 이름을 단 지는 올해로 5년째라고 한다.

자발적인 회비로 굴러가는 곳에서 안정된 생활의 근거를 찾기란 불가능할 터. 그동안 새움을 거쳐간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대학과 같은 제도 안으로 편입하기도 했다. 그래도 대학생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꾸준히 새움을 찾아온다고 한다. 유승민씨는 “고등학생 자녀를 둔 중년의 여성 회원이 꾸준히 ‘<자본론> 강독’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며 “(새움의 운영이)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으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현재 강좌·세미나에 참여하는 인원은 70~80여명. 지난해에는 ‘새움총서’ 시리즈의 첫 책으로 한형식씨의 <맑스주의 역사강의>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런 정체성 때문이겠지만, 새움에서 이뤄지는 세미나 주제들은 대부분 제도권 학계에서 주목하지 않는 것들이다. ‘아시아 저항운동’, ‘라틴아메리카 사상’ 등의 주제가 눈에 띈다. 한씨는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자’는 것이 우리의 모토”라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것이 그 첫번째고, 학계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서구 담론이 아니라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서 발전해나간 마르크스주의를 연구 주제로 삼는 것이 두번째다. 국가와 자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제도권 학계가 주목하지 않는 지점이 되레 새로운 대안의 싹을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씨는 “우리의 현실을 정확히 짚기 위해서는, 서구의 주류 담론을 붙들고 있지 말고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맥락에 처했던 지역에서 일어났던 움직임들을 포착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움의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는 올해 처음 시작하는 ‘자본·미국·한국 지식인’ 세미나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 지식이 생산되고 유포되는 과정에서 어떤 계획과 제도들, 그리고 정치경제적 힘이 작용했는가”를 문제의식으로 삼고 있다. 곧 오늘날 한국 지식인 사회가 형성된 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작업이다. 한씨와 유씨는 “지식에 대한 권위를 물려받아온 제도권 학계에선 절대 손댈 수 없는 주제”라며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연구의 결과들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 거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엔 새움의 역량이 아직 미비한 것이 아닐지? 독립적 연구 공간으로서 이제 미약하나마 자리를 다졌다고 보는 새움 회원들은, 앞으로 다른 단체 및 개별 연구자들과의 연계와 협력을 통해 콘텐츠를 더욱 확대해나갈 계획을 짜고 있다. 비록 새움에 직접 참여하진 않더라도, “지식은 조건 없이 나눠야 한다”는 명제를 부정할 연구자들은 없을 것이란 기대다.(최원형 기자) 

11.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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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6 2011-01-07 19:57   좋아요 0 | URL
아니 이렇게 좋은 정보가...

감사합니다~ㅎㅎ

로쟈 2011-01-08 09:17   좋아요 0 | URL
흠, 새로운 정보는 아닌데요.^^;

롯데명품위즐 2011-01-07 21:05   좋아요 0 | URL
1. 10 (월) 19:00에 <맑스주의 역사> 강좌가 있습니다.
1. 13 (목) 19:00에 <맑스 경제학 입문> 강좌가 있습니다.
맑스 엥겔스 저작 읽기 세미나는 2. 7 (월)에 있고요
<경제는 왜 위기에 빠지는가> 세미나는 1. 11 (화) 19:00 입니다.
<자본, 미국, 한국 지식인> 세미나는 1. 13 (목) 19:00 시작입니다.
seumnet.com입니다.
그냥 참고하시라고요;;;

로쟈 2011-01-08 09:18   좋아요 0 | URL
네, 홈피에 일정이 나오더군요.^^

자꾸때리다 2011-01-07 23:52   좋아요 0 | URL
여기에 노홍철 형님 노성철 님도 활동하시던데...

로쟈 2011-01-08 09:18   좋아요 0 | URL
자꾸때리다님도?^^

자꾸때리다 2011-01-08 20:08   좋아요 0 | URL
아뇨 그냥 몇 번 가보기만 했어요.

starover 2011-01-13 09:00   좋아요 0 | URL
그린비 오픈캐스트를 통해 들어가셨는데...... 혹시 이 서재랑 그린비랑 무슨 관련이 있나요?

로쟈 2011-01-13 10:15   좋아요 0 | URL
관련은 없고, 그린비에서 링크를 해놓은가 보네요...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아이의 방학 날이지만, 크리스마스와 방학 모두 내겐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아서 그냥 '원고의 날'로 삼고 있다. 그렇다고 편하게 원고만 쓰는 날은 아니고 아이가 감기에 걸린 탓에 '봉사의 날'도 겸하고 있다. 가끔씩 들여다보는 뉴스기사들 가운데, 계간 <진보평론>(겨울호)의 '노동, 노동해방 다시 보기'를 소개하는 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될 듯싶어서다. 요지는 진정한 노동해방을 위해서라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10. 12. 24)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진짜 노동해방이다 

쌍용자동차의 대량해고, 현대·기아차 및 지엠(GM)대우차의 비정규직 투쟁, 현대차 노사의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논란 등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 나타났던 주요 노동현안들은, 현재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변화와 이에 따라 노동이 처하게 된 객관적 조건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그 함의는 각각 구조적인 대량실업, 노동의 양극화, 실질 소득의 감소 등이다. 이렇게 변화한 조건들 속에서 노동운동은 여전히 ‘노동해방’을 말할 수 있을까? 



계간지 <진보평론> 겨울호는 ‘노동, 노동해방 다시 보기’라는 제목의 특집을 통해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던졌다. 편집위원인 이성백(사진) 서울시립대 교수는 ‘노동해방 이념의 재구성’이라는 글에서 “노동해방은 자본으로부터의 해방일 뿐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며 노동해방 이념을 재구성하기 위한 시도를 펼쳤다.

그의 문제제기는 ‘노동은 신성하다’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한다. 노동 신성성은 서구 시민사회에서 “노동을 강제하기 위한 동원의 이데올로기”로 주로 쓰여 왔다. 카를 마르크스도 “노동은 본질적으로 자기실현 활동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질적인 규정에서 소외돼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해, 마르크스주의자들 역시 노동 신성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 교수는 “자유의 왕국은 실제로는 필요와 외적 합목적성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한다.(…) 노동시간의 단축이 기본조건이다”라는 <자본론>의 구절 속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끌어낸다. 그는 마르크스의 노동 개념을 생존 유지를 위한 ‘노동’과 인간의 전인적 자기실현을 위한 ‘생활향유활동’으로 나눠서 풀이하고, “노동 신성성의 이데올로기를 떨쳐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 신성성은 왜 부정되어야 하는가? 20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축적체제가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제레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지적했듯, 급속한 정보화는 인간의 노동력을 점차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구조적 대량실업이 발생하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의 노동 유연화는 노동형태를 바꿔 다양한 패턴의 착취 구조를 만든다. 그 속에서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은 갈수록 감소한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현상이 대량실업, 비정규직, 사회적 빈곤 등이다. 



이 교수는 “사회적 총노동시간의 축소가 다수의 노동자들을 일자리로부터 몰아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곧 일자리에 목맬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정규직 또는 취업의 문 앞에 줄세우는 신자유주의적 해결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 바로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는 노동 신성성의 이데올로기다. 이 교수는 “21세기 코뮌주의의 이상적 목표는 사적 소유가 철폐된 가운데 적은 시간 일하고 남는 시간은 생명향유활동에 쓰는 것”이라며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운동의 핵심 과제라고 주장한다. 곧 노동해방의 이념이 자본으로부터의 해방뿐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득을 노동으로부터 분리해 모두에게 보장하자는 ‘기본소득론’과도 연결된다. 



박영균 편집위원 역시 ‘노동의 신화와 노동의 종말, 그리고 문화혁명’에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한다. 그는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물리적-비물리적 네트워크를 통해 공장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생산력에 참여하고 있는데, 자본은 자신의 교환체계에 들어온 부문만 노동으로서 가치를 매기고 있는 모순을 짚었다. 때문에 그는 “노동운동이 임금협상이나 노동조건 개선 투쟁에 멈춰선 안 된다”며 “노동으로부터 해방을 통해 자본과 임노동의 계열화 속에서 배제되는 다수의 잉여인구들을 반자본의 저항적 주체로 형성하는 정치적 전략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자본주의적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문화혁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일자리에서 밀려난 빈곤층, 각종 비정규부문 노동자를 노동운동의 주체로 세우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강연자 편집실장은 ‘주40시간 법정노동시간 단축 투쟁과 노동운동의 과제’를 통해 노동시간 단축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짚었다. 그는 주40시간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 유연화의 전통적 형태인 초과근로가 높은 범위로 허용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더 받기 위해 더 일하는’ 방식의 임금구조가 만들어져, 결국 실노동시간도 줄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유연화에 따른 노동자 내부의 격차만 확대됐다는 것이다. 그는 “초과근로에 의거한 임금에서 벗어나, 법정노동시간만큼 일해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노총 표준생계비를 상회하는 노동자들의 초과근로 수당을 포기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규직 중심의 전통적인 노동운동 현장에서도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고민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최원형 기자) 

10.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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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2-24 15:10   좋아요 0 | URL
저런 방학 첫날 감기에 걸렸군요ㅠㅠ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낼 만반의 계획을 다 짜놨을 텐데... 그래도 아빠가 보살펴주니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겠네요.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서 신나는 방학을 보낼 수 있기를...
그나저나 갑자기 산타클로스가 돼서 원고 쓰시는 로쟈님이 떠오릅니다 ㅋㅋ
추위에 감기 조심하시구요^^

로쟈 2010-12-24 18:35   좋아요 0 | URL
'자상한 아빠'로 오해받겠습니다. 주로 재우고 있으니 보살핀 건 없구요.^^; 주사까지 맞고 와서 다행히 열은 떨어졌습니다. 원고는 내나 쓸 '준비'만 하고 있고요.^^;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하시길! 아주 추운 크리스마스가 될 거라지만요...

자꾸때리다 2010-12-24 22:36   좋아요 0 | URL
예수님은 솔로였는데 왜 커플들이 크리스마스에 염장을 지르는 건가요? 아흑.

로쟈 2010-12-25 11:08   좋아요 0 | URL
예수님은 궁시렁거리지 않았죠...

2010-12-24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5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