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역사 아카데미 목요강좌

푸른역사 아카데미 강좌에 대해선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아카데미의 설립 취지와 기획에 관한 인터뷰기사가 올라왔기에 한번 더 옮겨놓는다. 이 강의공간과 강좌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한겨레(11. 06. 15) 새로운 ‘역사 대중화’ 위해 학계·출판계 뭉쳤다

<대장금>을 비롯한 텔레비전 사극들의 높은 인기가 보여주듯, 역사는 대중들이 누리는 인문교양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분야로 자리잡았다. 여기에는 1990년대 중반부터 학계나 출판계에서 활발하게 펼쳤던 ‘역사 대중화’ 작업들이 큰 구실을 했다. 반면 한껏 높아진 대중의 열기에 견줘 지금 학계·출판계가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서려는 발걸음은 충분하지 못하다는 성찰도 나오고 있다. 역사 분야의 석·박사 전공자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역사 대중화를 선도해왔다고 평가받는 출판사인 푸른역사가 지난 4월부터 ‘푸른역사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시민 교육기관을 만들고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한 건물 3층에 책장과 책상, 세미나실 등 공부에 필요한 공간을 갖추고, 독서모임이나 각종 강좌를 펼치고 있다. 중소 규모 출판사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교육기관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사랑방 모임’이라는 세미나 모임을 통해 꾸준히 교류해왔던 박혜숙(사진 오른쪽) 푸른역사 대표와 푸른역사 아카데미 원장을 맡은 임기환(왼쪽) 서울교대 교수를 만나 아카데미의 취지와 발전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두 사람은 아카데미 설립의 기본적인 취지에 대해 “역사를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만남의 공간’을 제공하자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 교수는 “이미 다듬은 생각을 전달만 하는 책이나 특정 시기와 장소에만 열리는 강좌들로서는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을 모두 끌어안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기존의 출판 방식만으로는 깊고 다양해지는 대중들의 관심을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학계와 출판계 모두 새로운 시도를 위해 대중들과 직접 만나는 소통 창구를 원했다는 얘기다.

푸른역사 아카데미의 두드러진 특징은 역사적 사실의 전달에 그치지 않고, 역사를 시민교양의 한 분야로 삼아 새로운 ‘기획’을 선보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목요일마다 열리는 고정강좌다. 여기에선 노성두 박사의 미술사, 김수영 연세대 강사의 철학, ‘인터넷 서평꾼 로쟈’란 필명으로 유명한 이현우 박사의 문학, 음악칼럼니스트 정준호씨의 클래식 강좌가 열린다. 강좌마다 40~50명이 참여할 정도로 호응이 좋다고 한다.

기획강좌의 내용도 새롭다. 15일 처음 열리는 ‘논쟁-대담’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에서는 역사학자인 김영미 국민대 교수와 정치학자인 이광일씨의 발표를 중심으로, 박정희 체제와 새마을 운동에 대해 역사학자와 정치학자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 견줘볼 예정이다. 지난 13일부터 열린 기획강좌 ‘역사가가 편집자에게’ 역시 새로운 시도다. 출판시장에서는 주로 대중이 어떤 역사서를 원하는가에 눈을 맞추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연구자들이 스스로 거둔 연구 성과를 단행본으로 만들기보다는, 대중들이 읽기 편한 주제를 중심으로 기존에 나온 학계의 성과들을 엮고 짜맞추는 출판 기획이 많다. 이에 대해 아카데미는 지식 생산자인 학자들은 어떤 책이 만들어지길 원하는지에 귀를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임 교수와 함께 김기봉 교수, 한명기 교수 등이 발표자로 나서, 역사대중서는 왜 팩션과 미시사에 열광하는지, 학계에서 보는 한국사의 새로운 트렌드는 무엇인지 등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아카데미는 이런 새로운 시도들 속에서 학계와 대중, 학계와 학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매개체’ 구실을 할 것이라고 한다. 박혜숙 대표는 “현재 이른바 ‘학술진흥재단(학진) 시스템’이라 불리는 연구·글쓰기 시스템에서 나오는 결과물, 즉 논문은 대중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학계에선 대중들과의 소통을 이룰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학자인 임 교수는 “기본적으로 학자에겐 연구의 신뢰도를 검증받기 위한 시스템에 충실한 것이 우선”이라면서도 “학계와 대중 사이를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기획’ 역량이 그만큼 절실하다”고 말했다.(최원형 기자) 

11.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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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이냐 탈식민성이냐

방한중인 남미의 해방철학자 엔리케 두셀의 인터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라틴아메리카 참여민주주의의 현주소와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 그리고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정보기술 발전에 따른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눈길을 끈다.

 

경향신문(11. 06. 07) "남미 참여민주주의는 세계 정치의 새 경험”

우리 사회의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 미국과 유럽 등 서구 학문이 중심이 돼 왔다. 마찬가지로 지난 10년 동안 중도좌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변혁의 소용돌이를 겪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 철학에 대해서도 서구 중심의 편견으로 바라본 게 사실이다.

엔리케 두셀 멕시코 국립자치대학 교수(77)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해방철학’을 주창한 중남미의 대표적 학자다. 그가 고려대 문과대 주최로 열린 금호아시아나 해외석학 초청강좌와 심포지엄(1~3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의 저서인 <1492년 타자의 은폐>(그린비)가 국내에 출간된 시점이기도 하다.

지난 4일 만난 두셀 교수는 “1999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볼리바르 혁명’ 이후 중남미 정치지형이 급격하게 변했다”며 “이런 변화는 새로운 정치학을 통한 철학적 해석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변화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브라질, 볼리비아 등으로 중도좌파의 집권이 확산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민중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도이며, 세계 정치의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이다. 

두셀 교수는 “그동안 어떤 국가도 헌법에서 항구적으로 민중의 참여를 보장한 적은 없었다”며 “제도적으로 보장된 6만여개의 주민평의회가 각각의 의제를 심의하고 제안하는 베네수엘라의 모습에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차베스주의자’는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이 모델이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는 것이 아니라 시도 자체가 가치있고 깊이있게 분석할 필요가 있으며 21세기 정치철학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지금까지의 대의민주주의는 민중의 참여가 반영되지 않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모델은 주민평의회가 반대하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민중의 참여를 수렴하는 제도의 창조를 통한 또 다른 차원의 국가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평가한다.

이런 현실로부터 끌어낸 그의 해방적 정치철학은 “권력은 지배이며, 정치란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이라고 규정해 온 유럽 근대 정치철학을 부정한다. 기존 정치질서에서 배제되고 피해 입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질서와 체제 자체가 잘못됐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수단으로서 긍정적인 의미의 권력 개념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은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이나 유럽 이론이 담아내지 못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바탕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있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로 벌어진 한국의 2008년 촛불집회는 “민중의 참여가 일상적으로, 항구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제도가 없었기에 일어난 일”이다.

한편 외부에서 중남미 상황이 포퓰리즘으로 인한 새로운 독재자의 등장쯤으로 치부되는 현실에 대해 두셀 교수는 “미국이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를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목적으로 세계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중남미에 덧씌워진 ‘포퓰리즘적 복지 때문에 망했다’는 것도 편견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군부독재에 반대해 75년 멕시코로 망명한 두셀 교수는 모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불리는 후안 페론 대통령은 자립적인 산업화와 내수진작 정책을 썼지만, 이를 반대한 미국 산업부르주아들이 군부쿠데타를 지원함으로써 오늘날 빈곤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고 말한다. 군부독재 정권이 미국에서 빌린 엄청난 외채가 시민들의 몫이 됐으며, 이후 집권한 민선 정권들도 미국의 시장개방 요구를 그대로 수용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 빈곤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두셀 교수가 볼 때 99년 이후 중남미 국가들의 정책은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세계 리튬 매장량 1위인 볼리비아에서 원재료를 수출하지 않고 충전지를 만들어 팔겠다고 하면 서방국가들은 포퓰리즘이라고 얘기한다”며 “어떤 의미에서는 푸에블로(민중)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평가받는 룰라 전 대통령 역시 “82%의 지지를 받으며 임기를 마쳤다는 점에서 ‘포퓰리스트’이지만 이를 봐도 라틴아메리카가 포퓰리즘 때문에 망했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두셀 교수는 “이미 볼리바르 혁명이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예견했다”고 지적한다. “중남미 국가들이 자신들의 빈곤을 불러온 신자유주의를 더 이상 신성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지금까지 한국이 미국의 자본주의 체계를 따라서 성공했지만 미국 모델 자체가 위기에 봉착하면서 한국도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멕시코는 미국과의 FTA로 인해 재난 수준의 타격을 맞았다”면서 “미국식 자본주의에 함몰되기보다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철학을 고유한 현실과 전통으로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황경상기자) 

한겨레(11. 06. 08) "민중 참여 제도화는 자본주의 한계 넘는 혁명”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인 세계경제포럼에 대항하고 대안을 찾겠다는 취지로 2001년 첫발을 디딘 세계사회포럼은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처음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포퓰리즘 딱지를 붙이긴 하지만, ‘좌파 도미노’란 이름으로 브라질·베네수엘라·볼리비아 등에 등장한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도 주목받고 있다. 현실 속 실질적인 대안운동에 끊임없이 밑바탕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라틴아메리카 ‘탈식민주의’ 담론은 현재진행형이다.

아니발 키하노, 월터 미뇰로 등과 함께 대표적인 탈식민주의 학자이자 ‘해방철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엔리케 두셀(사진) 멕시코 메트로폴리타나 자치대 교수가 최근 고려대 문과대학,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철학연구소, 한국사회연구소 등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지난 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두셀은 “민중의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혁명”이라며 “발전된 전자 매체 등이 민중의 성숙과 참여를 확대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라틴아메리카 탈식민주의는 서구가 주도해서 만든 근대 세계가 식민지배로부터 시작됐으며, 근대성의 극복은 결국 식민성의 극복과 다름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두셀의 해방철학은 ‘정복하는 자아’로부터 나오는 서구의 근대적 사고를 뒤집어, 가부장주의의 희생양인 여성, 종속국가, 황폐화된 지구를 상속받을 미래 세대 등 억압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출발하는 것이 뼈대다.

두셀은 서구 정치사상의 주요 쟁점인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해방철학을 설명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정복과 지배로 나아간 서구적 보편주의를 비판하지만, 합리성·이성 등의 가치를 기반으로 전지구적 공동체를 끌어안을 수 있는 새로운 보편주의를 찾고자 한다. 특수주의로 흐르는 것은 그 어떤 보편적인 가치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셀은 인간은 계약 이전부터 이미 사회적인 존재인데, 자유주의는 인간을 고독하고 자유로운 원자로 먼저 상정한 뒤에 사회계약을 맺게 하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원자화된 개인으로서 전쟁 상태와도 같은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적 소유’를 뼈대로 한 자본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모든 교환을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물신숭배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셀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강조해 다른 공동체들과 소통할 수 없게 만드는 공동체주의 역시 비판한다. 공동체주의는 공동체 외부에 있는 존재에 대해 차별과 배제를 휘두르게 되며, 결국 개별적인 특수주의에 머무를 뿐 결코 보편주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에 대한 비판 속에서 두셀이 강조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성이다. 여기서 국가는 근대 부르주아 국민국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억압받고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제도를 변화시키는” 구실을 하는 존재다. 소통하지 못하는 공동체주의는 국가의 구실을 약화시키고, 자유주의는 시장주의를 내세워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킨다. 두셀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엘리트 계층이 대표를 관료적으로 떠맡는 제도”라며 “관료 시스템, 정당이 없어지고 민중이 직접 대표가 될 수 있도록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민중이란 누구인가? 두셀은 민중에게 어떠한 고정된 정체성을 부여하진 않는다. 기존 정치 시스템에서 차별받고 배제됐던 희생자들이 윤리적 가치에 따른 요구를 펼 때 그들은 민중이 된다고 봤다.

그렇다고 참여에 대한 요구가 곧바로 직접 민주주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두셀은 “대의제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대의제가 민중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베네수엘라나 멕시코시티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 활동 등을 사례로 들었다. 10여년 전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제기된 민주주의 전략에 따라 헌법을 통해 주민 자치권을 강화했던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미 6만여개의 주민회의(Community Council) 기구가 만들어졌고, 이들이 예산의 결정부터 집행까지 모두 스스로 결정하고 있다고 한다. 곧 민중이 참여하는 국가가 민중을 위해 제도를 바꿔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두셀은 이런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심장부에서도 각종 비판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민중은 참여를 통해 자본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특히 두셀은 정보기술의 발전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다. “아랍 국가에서 일어난 혁명에 자극을 받아 스페인에서 대규모 군중집회가 일어날지 그 누가 알았겠느냐”며 “각종 전자 매체의 발달로 ‘전자 민주주의’까지 바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자본주의에 잘 적응했지만, 지금처럼 계속 가속페달을 밟았다가는 결국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최원형 기자) 

11.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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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방한했다고 한다. 한겨레와 중앙선데이에 동시에 인터뷰기사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 한번 읽어보기 위해서다. 개인적으론 이 '스타 페미니스트'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문체, 혹은 양파에 대하여'(2004)란 글에 적은 바 있다(<로쟈의 인문학 서재>에 들어가 있다). 차라리 '스타' 없는 페미니즘이 더 낫지 않을까란 게 내 생각이었다. 그 '스타'도 지금은 '할머니'가 됐다... 

 

한겨레(11. 05. 30) “여성이여, 위계 아닌 연계의 세상 위해 노력하라”

세계적인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77)이 23일 한국에 왔다. 2002년 이후 거의 10년 만에 <에스비에스>(SBS) ‘서울디지털포럼’ 참석차 들른 것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페미니스트 운동가이자 진보적 언론인으로 살아온 스타이넘을 지난 24일 오전 서울 광장동의 한 호텔 인터뷰룸에서 만났다. 1970년대 미국의 낙태 금지 반대 피켓시위를 벌이던 사진 속의 ‘금발 페미니스트’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옅은 색 잠자리테 선글라스에 가죽 라이더재킷, 검은 부츠컷 바지를 입은 그는 팔순을 눈앞에 둔 ‘할머니’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생기가 넘쳤다.

인터뷰는 통역 이정규씨와 페미니스트 신학자 현경 교수(미국 유니언신학대)를 사이에 두고 한시간 남짓 진행됐다. 만나본 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페미니즘의 표어를 여성운동의 전면에서 실천하면서도 자신의 유명세를 향유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위계(rank)가 아닌 연계(link)가 중요하다”고 인터뷰 동안 그는 여러번 말했다. 인터뷰 전체 내용은 이날 대화와 이화여대에서의 페미니스트 모임, 서울디지털포럼의 기조연설 내용 등을 추가해 구성했다. 



-먼저 본인이 이끌고 있는 여성미디어센터(Women’s Media Center)에 대해 설명해달라.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잘 나타나지 않고 있는 여성들의 참모습을 드러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도 각종 인터뷰 쇼에 등장하는 여성은 6%밖에 안 된다. 여전히 여성들은 구름 속에 가려 있는 존재다. 우리는 언론인들과 여성 지식인들을 교육하고 지원한다. 성차별과 인종차별적 사건 또는 선거 등을 여성의 시각에서 모니터링한다. 재단에서 기금을 모아 운영하는데, 영화배우 제인 폰다가 이사 중 한명이다. 그의 연극 한편과 영화 한편의 판권이 우리에게 기부된다.”

-중산층 여성들의 지원이 운동에 도움이 되나?
“한국에 ‘강남 좌파’라는 말이 있듯이 미국에는 ‘리무진 리버럴’이란 조어가 있다. 우파들이 진보진영을 얕잡아보고 낮추기 위해 만든 용어다. 진보진영을 위선적이라고 비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패배시키려는 술책이다. 정의를 위해 모두가 가난해야 하는 건 아니다. 소비지향적이면 안 되겠지만 의미있게 돈을 쓰는 것과 모두가 잘사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그의 아내 엘리노어는 부자이면서도 상당히 진보적이었다. 1920~30년대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침체에서 빠져나오도록 돕지 않았는가. 우리는 중산층 여자들과도 연대해야 한다. 당신도 나도 중산층 여자이다. 우리는 분리가 아니라 공통점을 봐야 한다.”

-여자들끼리의 경쟁, 적대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가부장제가 우리를 분리시키고 경쟁하게 만들고 있다. 각자 가부장제 안에서 인정받도록 부추겨진 것이다. 우리는 인종차별이 소수자들이 지배계층의 인정을 얻기 위해 서로 다투는 메커니즘이란 걸 봐왔다. 내 경우, 백인만 모여 있거나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없거나 보육시설이 없는 곳에선 강의하지 않는다. 다양성과 사소함을 인정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선택할 권리를 주고 지지해주는 것이 최선이다.”

스타이넘은 1972년 페미니즘 잡지 <미즈>를 창간한 것으로 유명하다. 여성이 미혼 시절 ‘미스’로 불리다가 결혼과 함께 ‘남자의 아내’인 ‘미시즈’로 불리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사용하는 ‘미즈’라는 단어를 되살려냈다. 그는 “미즈라는 단어는 1400년대부터 1700년대까지 영어권에서 사용되다가 사라진 어휘였다”고 말했다. 가부장제가 공고해지면서 여성을 남성 가계의 일원으로 표현하게 된 역사적 사실을 들춰낸 다분히 정치적인 발견이었다.

-한국 사회의 출산율 하락에 대해 알고 있나? 여성들이 ‘출산파업’을 한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직장의 패턴이 남성을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하는 여성에겐 맞지 않는다. 기혼여성이 일자리에 맞추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여성에게 맞춰줘야 문제가 풀린다. 인식도 더 변해야 한다. 남자도 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양육할 수 있지 않나. 스웨덴이 좋은 예다. 여자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좋은 의도로 출산파업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 낳거나,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데 낳으라는 국가적 요구도 있다.
“출산은 선택이어야 한다. 가부장제는 여성의 몸을 재생산의 도구로 생각해 계급과 인종, 그리고 민족에 대한 구분을 지속해 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여성은 재생산의 필요성 때문에 몸을 착취당하는 불리함을 경험해야만 했다. 위계, 인종, 계급, 민족적 문제로 겪는 불리함을 여성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순수 혈통의 자손을 보아야 한다는 몸에 대한 통제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여자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혼제도 안으로 들어가는 측면도 있다.
“결혼으로 갖는 직장(가정)이 나쁜 직장보다 좋다는 인식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결혼이 더 나쁜 직장이 될 수도 있으니 잘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웃음) 우리는 경제적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아이를 키우고 유지하고 집안일을 하는 돌봄노동이 가진 생산적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흔히 전업주부더러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얘기하지 않나.”

-한국 사회에서도 ‘여자가 집에서 논다’고 표현한다.
“언어적으로 여성을 노예취급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해온 일들은 옛날 노예들이 하던 일이다. 일을 해도 티가 안 나고, 생산성도 없고, 경제적인 가치도 없고,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경제적 회계방식이 바뀌어 돌봄노동에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

-아이들 주위를 맴도는 ‘헬리콥터 맘’, 아이들을 무섭게 양육하는 ‘호랑이 엄마’처럼 문제적 엄마들도 있지 않나?
“야망 있고 똑똑한 여자들이 집에 갇혀 있을 때 지배적인 양상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여자들이 장소를 잘못 차지한 것이다. 자기 삶을 살지 못해서 아이더러 대신 살라고 하니까. 호랑이 아빠나 호랑이 엄마나 아이들의 본성은 장미, 피튜니아, 라일락인데 튤립, 백합으로 만들어버린다. 미국도 그렇지만 한국은 더 심한 것 같다. 다 대학 가라고 하지 않나. 나는 대학에서 배운 걸 극복하는 데만 25년이 더 걸렸는데. 우리 모두 나름 고유성이 있는 존재로 공동체 일원으로서 인정받고, 균형이 있어야 한다.”

스타이넘은 “내 최근의 관심은 사랑을 받고 안전하게 양육된다면 자존감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일상에서 위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내게 사인을 해달라고 하면 그것 자체가 위계질서를 만드는 것 같아 싫다고 했는데, 상대방이 듣는 건 거부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은 조건을 달아서 네가 사인해준다면 나도 사인을 해주겠다고 한다. 우리는 연계(link)돼 있지, 위계(rank)돼 있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시스템 구조를 붕괴시키는 건데, 일상과 언어는 대단히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1970년대만 해도 ‘근동’이나 ‘극동’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는데 역사가 달랐다면 유럽이 ‘서북아시아’로 불렸을 수도 있다. 서구가 말하는 역사는 서구 백인 남성의 역사였지, 인간의 역사가 아니었다. 잘못된 것을 치료하는 식의, 보충학습이 필요한 것이다. 사진 한장을 찍어도 다양한 계층, 나이, 인종을 포괄해 담는 실천이 중요하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사회운동을 하느라 글을 너무 쓰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87년 <미즈>는 잡지의 색깔을 바꾸지 않는 대신 경영난을 버티지 못해 남의 손에 넘어갔다. 50대에 이르러 그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고, 치료사의 도움으로 내면으로 들어갔고 평생 강연과 사회운동 때문에 어지러웠던 집을 비로소 정돈했다고 한다. 1992년에 쓴 <내부로부터의 혁명>은 그러한 인생의 전환과 맞닿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언론인으로서 당신의 글을 발견하기가 생각보다 힘든 것 같다.
“슬픈 일이다. 지난 30년 동안 길에서 일어났던 일을 쓰려고 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길 위에 있다 보니까 쓸 시간이 없는 것이 문제다. 내가 쓰려고 하는 내용은 아주 사소한 일들에 대한 것이다.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일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쇼핑몰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다면, 두려워서 개입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개입하는 건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고 아이가 알도록 일깨워주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실제로 흑인 노래 중에 <아이를 때리지 마라>는 노래가 있는데, 누가 길에서 아이를 때리는 걸 보면 이 노래를 부른다.”

그가 방한한 다음, 한국에선 미군이 몰래 파묻은 고엽제 문제가 터졌다. 때마침 북한에서 이주한 여성들이 본인들의 경험을 얘기하는 여성주의 행사에 참석한 뒤, 함께 방한한 정현경 교수가 “6자회담 테이블에 여성이 낀 적이 없었다”는 말을 하자 이렇게 덧붙였다.

“유엔 결의안을 보면 평화회담에는 여성이 참석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특히 남북한 대치 상황에서 남북 여성들의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군사주의가 만연한 상황이면서 동시에 성적 불평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세계 여성들은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여성이 더 도덕적이거나 덜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라, 남성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연결이 필요하다. 상호의존성이 필요한데, 그것이 해답이다. 여성과 자연으로부터 신의 개념을 분리시켜 지배하려 했던 것이 가부장의 역사다. 생명체에 신성이 존재하는 것을 여성들은 더 잘 이해하고 있다. 종교의 정치화는 반대해야 하지만 각자 개인이 힘을 내고 인류 공동의 일원으로서 위계가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부분을 어떻게 조직화해낼 수 있나?
“미국 학생운동의 성공 사례를 예로 들고 싶다. 보스턴의 한 대학에서 어느 교수가 정치적인 문제로 해직을 당했다. 학교는 학생들과 강사들의 시위를 무시했지만, 통신서비스 제공 노동자와 식당 노동자들이 함께 시위를 했더니 효과가 있었다. 통신 노동자나 식당 노동자만 시위를 했더라도 그들은 해고당했을 것이다. 힘을 합쳐야만 한다. 우리가 함께할 때 더 바꿀 수 있고, 다 바꿀 수 있다. 각각 그룹이 원하는 바를 모두 달성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시비에스 방송국에서 여성 비서들과 중역이 힘을 모아 비서들이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했더니 절반 이상이 합격했다. 기업으로서도 얼마나 많은 인재가 양성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처럼 피라미드식 위계보다 원형의 연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무슨 얘길 해주고 싶나?
“너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라. 남자가 스스로에게 주는 가장 좋은 금언이 ‘나에게 해준 만큼 상대방에게 대하라’는 것이라면, 여자는 거꾸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네가 남들에게 해주는 것만큼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를 예로 들자. 스스로 자격 있는 아이라고 느끼지 못하면 그것을 만회하려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열심히 하게 된다. 그 순간의 ‘나’를 내가 열성적으로 대하는 ‘다른 사람’의 위치에 놓아보라. 그럼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나는 명상을 하는데, 내 안에 완전히 다른 내면의 실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타고난 길이 다르니, 모두가 명상을 할 필요는 없지만, 핵심은 우리 각자가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인지를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이며 사회적 존재이므로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주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럼 자신감도 채워질 것이다. 여성운동은 결국 신념과 힘을 얻게 되는 과정이다.” (인터뷰 / 이유진 기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플레이보이클럽 위장취업 경험 폭로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1934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고 버라이어티쇼에 나가 춤을 추고, 미인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거의 독학으로 스미스대학에 입학했지만 자신이 받은 교육은 ‘죽은 백인 남자들’의 성취 외엔 없다는 최종 결론을 내리게 된다. 졸업 뒤엔 인도로 가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평화운동을 접했다.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면서 1968년 잡지 <뉴욕>의 창간에 참여했고, <에스콰이어> <뉴욕 매거진>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글을 실었다. 플레이보이 클럽의 버니걸로 위장취업해 거기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남성사회의 여성차별과 성희롱 실태를 폭로해 일약 명성을 얻었다. 1972년에는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Ms.)를 공동 창간해 15년 동안 편집장을 지냈다. 백인 중산층 페미니즘을 내세운 베티 프리던과 달리 유색인종 여성들과 연대했고, “여성 인권을 증진시켜줄 사람에게 투표하라”며 미국의 지난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흑인인 오바마보다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2010년 11월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5인’ 중 한명으로 선정됐다. 지난 27일 열린 에스비에스 서울디지털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중앙선데이(11. 05. 30) "남자 검사들, 가정 포기하고 일한다? 그렇게 못났나”

전 세계 여성운동계의 ‘왕언니’ 글로리아 스타이넘(77)은 예쁘고 유쾌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농담을 즐기며 매력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웃음엔 뼈가 있다. 스타이넘이 누군가. 1960년대부터 인종 및 남녀 차별 철폐 운동에 앞장서온 페미니즘계의 스타이자 산증인이다. 뉴욕 타임스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스럽다(Gloria Steinemesque)’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그가 1971년 공동 창간한 잡지 ‘미즈(Ms.)’는 여성을 결혼 유무에 따라 ‘미스(Miss)’와 ‘미세스(Mrs.)’로 나눴던 차별을 부숴버렸다. 오늘날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엔 니카라과에서 인도까지 각지의 남녀 팬들이 남긴 ‘당신은 내 인생의 멘토’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가득하다. SBS 주최 서울 디지털 포럼 참석차 방한한 그를 단독 인터뷰했다.

-한국의 검찰총장이 “남자 검사는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집안일을 포기하고 일하는데, 여자 검사는 애가 아프다고 하면 일을 포기하고 애를 보러 간다”고 발언했다. 
“한국의 남자 검사들이 못났다고 광고하는 발언 아닌가. 검사는 정의 구현의 선봉에 서는 존재다. 인생의 기본 터전인 가정을 등한시해야만 일을 잘할 수 있는 존재들이 과연 그 일을 잘해낼 수 있을까? 아니다. 가정을 포기하는 건 기본적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거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균형이다. 그리고 그 균형은 남녀가 함께 맞춰야 한다. 한국에선 검찰총장이 선출직인가 지명직인가?”

-대통령 지명직이다. 
“그럼 지금이라도 시민들이 탄원서를 넣어 의사 표시를 해야 하지 않겠나. 불평만 해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어떤 일에 대해 분노를 느낄 때, 그 분노를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바람직한 변화가 가능하다. ‘화’를 나 홀로 속으로 삭히면 혼자 우울증만 걸릴 뿐이다. 자신의 분노를 다른 이와 나누고 연대해야 사회 변혁은 가능하다.”

-‘일하는 엄마들’이 큰 화두가 됐다.
“한국에선 여성이 남성보다 육아 부담은 두 배, 가사 부담은 세 배에 달한다고 하더라. 여성이 직장과 가정이라는 두 개의 일터에서 모든 부담을 지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한국 여성들이 ‘출산 파업(baby strike)’을 하고 있는 건 당연하다. 내가 만난 한국여성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하고 열정이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괜히 그럴 이유가 없다. 여자는 하인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남녀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육아·가사)을 남자들은 못 한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그렇게 프로그램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어떤 여성은 아이를 낳은 후 육아 부담을 견딜 수 없어 한 달간 가출을 했다. 돌아와보니 남편이 아기를 아주 잘 돌보고 있더란다(웃음). 모성애가 더 강하다는 믿음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이미 나왔다.”

-남자들은 집안일을 ‘도와준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그 점부터 잘못됐다. ‘도와준다’는 건 원래 자신의 책임이 아닌데 선의로 남의 일을 해준다는 의미다.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육아와 가사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미래도 밝다.”

-한국에선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란 인식이 있었는데 많이 달라졌다.
“(웃으며) 결국 중요한 건 ‘땅’이지 않나. 먹을 것을 경작하는 곳도,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곳도 이 ‘땅’이다.”

-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도 있는데.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만들어낸 웃기지도 않는 말이다. 여성은 천성적으로 남들과 공감하길 원하고 협력을 추구하는 존재다.”

-하지만 본인에게도 ‘적’이었던 다른 여성들이 있었을 것 아닌가.
“물론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난 어려서부터 엄마를 돌보면서 어찌 보면 ‘엄마에게 엄마 노릇을 하며’ 자라왔다. 이혼한 엄마가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우울증까지 겪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여성을 돌보는 존재’라고 자신을 규정하며 자랐고, 이것이 다른 페미니스트들과도 충돌하는 경우가 있었다.”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너무 착했던 게 후회된다’고 했던데.
“지금도 그렇다. 70년대, 80년대엔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일은 잔뜩 해놓고 (미국) 민주당에 최종 결정을 맡기는 식이었다. ‘아빠에게 의지한 성실한 딸’이었던 셈이다. 좀 더 직접적인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서 대중과 호흡했으면 좋았을 거다. 하지만 차별 철폐 운동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돌처럼 단단한 차별을 없애려면 힘을 모아 조금씩 그 돌을 쪼아내는 수밖엔 없다. 때론 회의감도 들겠지만, 나를 믿어라. 변화는 온다.”

- ‘얼굴도 예쁜 페미니스트’라고 인식이 되어 있다. 플레이보이 클럽의 ‘바니걸’로 위장취업해 쓴 폭로 기사로 유명했었다. 지금도 멋진 스타일이 눈에 띈다.
“여성이 아직도 자신의 마음이나 머리가 아닌 외모로 평가받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어떤 신문사 편집국에선 나를 보고 ‘멍청한 금발머리는 필요없다’고 퇴짜를 놓은 적도 있다. 여성에게 외모는 무기이면서 한계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움이 좋다. 나 스스로를 치장하는 것도 좋아한다. 패션과 스타일은 다르다. 패션이 브랜드 중심의 세계라면 스타일을 지킨다는 건 나를 표현하는 일이니까.”

-지금도 올해가 77세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비밀이 뭔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답변이 너무 평범한가(웃음). 페미니스트들이 (남자들 관점에서지만) 못생기고 자신을 가꿀 생각은 안 하고 진지한 괴물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페미니스트로서 난 신나고 즐겁고 행복하게 일해왔다. 훌륭한 애인도 여럿 있었고, 그들은 지금 나의 친구들이기도 하다.”

-왜 페미니스트를 두려워할까.
“남성들이 찔리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복수를 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인종차별도 백인들이 ‘흑인들을 내버려두면 결국 우리를 몰아내고 억압할 것’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존재했다.”

-결혼 제도에 비판적이다가 2000년 데이비드 베일(‘다크 나이트’ 영화배우 크리스천 베일의 아버지)과 결혼해 충격을 줬다.
“난 데이비드를 ‘남편’이 아니라 ‘내가 결혼한 친구’라고 불렀다. 당시 데이비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미국 영주권이 필요했고 뇌임파종을 앓고 있었다. 결혼으로 영주권은 물론 건강보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해준 결정이었다. 그는 2003년 사망했지만 우린 서로를 존중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렸다. 물론 결혼 전에 불행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난 결혼 전에도 행복했다. 지금도 그렇고.”

-유방암 투병을 하기도 했는데.
“선고를 받는 순간 들었던 생각은 ‘지금까지의 인생, 참 좋았다’였다.”

-소원이 있다면.
“언젠가 대학 캠퍼스에서 이런 대화가 들려오는 것. 나이 지긋한 교수가 ‘옛날엔 피부의 멜라닌 색소량이라든가 타고난 성별에 의한 차별이 있었단다’라고 하면 남녀 학생 모두가 ‘에이, 그런 말도 안 되는 구석기 시대가 어디 있어요?’라며 웃는 거다. 그리고 더 이상 페미니즘이 존재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길 꿈꾼다.” (전수진기자) 

11.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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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블로그에 올라온 박노자 교수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영어논문이 일종의 사회적 '위신재'라는 걸 지적하면서 영어논문 물신주의를 꼬집고 있다. 비록 다들 알면서도 내놓고 애기하지 않는 문제의 핵심을 짚어주는 글이다. <만감일기2>가 나온다면 묶일 만하다... 

  

한겨레(11. 05 13) ‘영어논문’이라는 물신과 ‘강남족 태평성대’

고고학이나 고대사 연구에서 ‘위신재’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위신재는 통치자의 위상을 나타내는, 그러나 실용성이 별로 없는 사치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여러분이 고등학교 국사 수업에서 들으셨을 것 같은 ‘세형동검’은 국가 형성 직전 시대의 전형적인 추장층의 위신재이었습니다. 통치자의 성격이 바뀌는 데에 따라서 위신재의 모양도 당연히 바뀝니다. 계급사회가 발달할수록 통치자에게 내재화돼 있는 문화자본의 축약적 표현물이 위신재 노릇을 하는 경우들이 빈번해집니다. 대표적으로는 조선시대 문민 통치자들의 한시나 사군자 그림은 그랬습니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통치계층들이 일단 분화되고 다양해졌기에, 그들에게는 꼭 획일적인 위신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고급관료나 기업임원의 위신을 골프 솜씨가 잘 나타내겠지만, ‘일부’ 명문대 교수는 골프를 안 치거나 못 칠 수도 있습니다. 명문대든 어디든 간에 일단 교수가 되어서 중·고위층 관료나 대기업 임원들이 속한 ‘주류’ (즉, 중산층 상층부)에 편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골프보다 더 중요한 위신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소위 ‘SSCI 영어논문’입니다. (이를 우리말로 옮기면 ‘사회과학 인용색인’ 정도가 됩니다. 단, 한국의 ‘명문대 교수’들은 이미 한국어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훌륭하게 ‘미국현지화’된 까닭에 ‘SSCI’라는 이름이 더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세검과 금관(金冠), 한시, 사군자그림이나 일본강점기의 웅변대회에서의 일본어 연설 등 한반도적 위신재의 전통을 이어, 이 ‘SSCI 영어논문’은 이제 대한민국 학자 사회에서 하나의 물신(物神)이 된 셈입니다. 마당쇠의 피땀을 빨아 마당쇠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한시를 지었던 양반들처럼, ‘명문대’ 울타리 안에 있는 이들은 ‘인문한국’과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서민들이 낸 혈세를 받아내, 그 혈세로 정상적인 국민은 읽을 수도 없고 읽을 가치도 별로 없는 글들을 생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온고지신(溫故知新), 즉 과거의 모든 부조리와 폐단의 정신을 이어받아 또 새로운 정신병적인 유행을 열심히 만들어내는 셈입니다.

과거 폐단 이어받아 새로운 폐단 만들기 
한 가지 오해를 미리 막고자 합니다. 지구 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영어로 학문적인 글을 써서 해외 학술지에 게재해 외국 동료가 볼 수 있도록 하는 일 자체는 그 어떤 범죄행위도 아니고 학자, 즉 지식노동자가 해야 하는 노동행위 중 하나입니다. 한시를 예쁘게 짓는 것 자체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문예창작활동인 것처럼 말이죠. 저만 해도 영어로 논문을 꾸준히 써왔습니다. 저로서는 국내 국사학계의 논문작성 기준에 일부러 맞추는 것보다는 그게 더 쉽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노동행위의 일종을 물신화(物神化)하느냐는 것이죠. 한시 이외에도 기(記)부터 제문(祭文)까지 수많은 장르가 있었듯이 지식노동자의 일에도 수많은 종류의 작업들이 있습니다. 학술강연, 대중강연, 일반수업, 지도학생상담, 대중학술서, 일반학술서, 고전번역서…. 남들의 혈세로 살 수밖에 없는 인문학자가 대중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나 글 등으로 이들에게 진 빚을 갚는 것도 아주 고귀한 일일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종류의 작업들이 대중과의 소통 방법이라면 논문은 동료와의 소통 방법입니다.

둘 중 어느 쪽이 어려울까요? 원고 1매당 투입되는 시간으로 봐서는 후자는 더 시간집약적 작업이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열정이 필요하고, 특히 강연의 경우 일종의 ‘무대 기술’과 준비된 내공, 많은 고민도 필요하기 때문에 난이도를 가리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요? 저 같은 사람들을 먹여살리는 대중들과의 소통도 서로 지식을 나누면서 더불어살이해야 하는 동료와의 소통도 포기할 수 없으니 뚜렷한 우열은 없습니다. 하지만, 귀족화되어버린 한국의 ‘학자 사회’에서는 논문 이외의 그 어떤 장르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며, 논문 중에서도 ‘영어논문’을 최고로 칩니다. 소통할 동료가 어느 언어권에 속해있는지, 해당 언어를 얼마나 잘 구사하는지에 따라서 더 고귀하고 덜 고귀한 분들을 가리는 모양입니다.

미시마 유키오 주제 논문도 영어로 써야 인정받아  
진정한 의미의 ‘실용’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대민행정을 맡아야 할 관료들에게 한시 작성이나 맹자 해석을 요구했던 과거제처럼 아주 비실용적인 일입니다. 예컨대 미시마 유키오(三島 由紀夫)를 연구하는 학자가, 미시마 연구의 주류인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관련 논문을 써야 할 합리적인 이유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일본어로 논문을 써도 소통해야 할 동료, 즉 (당연히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하는) 전세계 미시마 연구자들이 다 읽을 수 있을 터인데 말입니다. 아니면, (거의 다 한국어를 읽을 줄 아는) 한국학 연구를 직업으로 삼는 학자가 아니면 아무도 관심이 없을 <황성신문>의 유교관(儒敎觀)에 대한 논문을 영어로 써야 할 합리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영어가 편한 구미인들이 본인이 편한 대로 영어로 논문을 쓴다면 이해할 수 있지만, 죽을 만큼 영어가 불편한 사람들까지 본업인 연구사업을 다 제쳐놓고 영어 학술논문 작성법을 익히느라 근무시간을 다 보내고 결국 읽기가 너무나 불편한 딱딱하고 인위적인 영어로 몇 쪽을 쓰느라고 수개월을 낭비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실용’입니까?

이건 학술과도 실용과도 아무 관계없는 행위입니다. 한시 작성 능력은 조선시대 고급사회로의 ‘통문’이었듯이, 한국 사회귀족의 언어인 영어로 (‘이공계 전공자’가 아닌) 사회지도층 구성원이 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한국 학계 ‘주류’로 들어와도 좋다는 일종의 ‘출입증’인 셈이죠. 차라리 ‘신분증’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태생적으로 ‘신분’이 좋은 사람에게는 이 신분증의 획득은 훨씬 쉬울 것입니다. 출신성분이 좋은 강남족들은 아예 일찍 도미 유학 가서 내면까지 ‘황민화’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대체로 한국어로 작성한 뒤에 사람이나 사서 얼마든지 ‘퍼펙트 영어’로 옮기게 할 수도 있습니다.

대중과의 소통은 뒷전으로 
그러면 출신성분도 나쁘고, 영어권 국가로 떠날 비행기삯도 학비도 없고, 그렇다고 대필자나 대역자(代譯者)를 고용할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맞습니다. 대중과의 소통도 공부도 연구도 다 깨끗이 잊은 채, 오로지 영어의 완벽한 구사와 ‘SSCI 학술지’ 심사자들의 기호에 대한 심층적 연구에 몰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몰입해봐야 상당수는 계속 밀리고 밀리겠지만,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영어논문’에 몰입하는 분위기가 유지되기만 해도 권력을 쥔 사람들의 주된 목적은 달성된 것입니다. 대중들에게 ‘정신병원’이나 ‘강제노동수용소’와 같은 재벌왕국에서 ‘저항의 길’을 가르칠 수도 있는 ‘지식분자’들이 대중과 무관한 일에 매달려 있어야만 ‘강남족들의 태평성대’가 위협받지 않을테니까요.

영어논문들을 수천 개 단위로 작성해 휴대폰처럼 마구 수출해도, 점차 일본과 같은 침체의 길로 가다가 중대 위기를 맞이할 대한민국을 절대로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쓸모없는 짓에 매달려야 하는 수많은 국내 동료 분들, 정말로 적극적으로 동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들이야말로 저보다도 이 문제에 대해 훨씬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계시리라고 믿고 싶습니다.(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11. 0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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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jpolitics 2011-05-18 08:29   좋아요 0 | URL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SSCI라는 단어를 적어도 미국에 와서는 들어본 적이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제 기억이 맞다면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학과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저널 에디터십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구요.. 괜찮은 저널에 발표되면 굉장히 좋아하는 수준이고, peered review journal에 실리면, 좋아라 하는 것 같은데...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SSCI가 모든 것의 기준인 것 같더군요.

로쟈 2011-05-18 08:38   좋아요 0 | URL
한국사회 내부의 차별화를 위한 것이니, 미국에서 어떻다든가 하는 건 중요하지 않은 것이죠...

2011-05-20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1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용히 보내긴 했지만 엊그제는 '세계 책의 날'이었다. 같은 날 세상을 떠난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를 기념하여 국제연합이 지정한 '세계 책의 날' 날짜가 4월 23일이다. 해럴드 블룸의 새책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을유문화사, 2011)이 나온 김에 블룸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다가 '세계 책의 날'과 관련한 재작년 기사를 읽게 돼 뒤늦게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9. 04. 23) [어제의 오늘]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사망 

1616년 4월23일 세계 문학계의 큰 별 두 개가 나란히 졌다.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스페인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다. 52년간 세상을 살다간 셰익스피어는 38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를 남겼다. 그는 2만1000여개의 단어를 사용했으며, 1800개가량의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 중 상당수는 아직까지 영어권에서 사용되고 있다. 훌륭한 작가라도 2000개 남짓한 어휘를 구사하는 것이 보통이다. 셰익스피어는 초창기엔 희극에 집중하다가 <햄릿> 이후 비극도 써냈다. 희극과 비극 모두에서 인류가 사랑하는 위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는 셰익스피어밖에 없다.

세르반테스는 셰익스피어보다 17년 먼저 태어났다. 젊은 시절의 세르반테스는 전장에 나가 공을 세웠으나 왕실은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전투 중 다쳐 평생 왼손을 사용하지 못했고 투르크군에 붙잡혀 5년간 노예생활을 하기도 했다.  

세르반테스의 명성은 주로 걸작 <돈키호테>에서 나왔다. 당시 유행하던 기사도 문학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했던 <돈키호테>는 이상적 인물 돈키호테와 현실적 인물 산초 판자의 우스꽝스러운 모험담을 그렸다. 후대의 평자들은 <돈키호테>를 최초의 근대 소설로 평가한다.

동시대 인물이었던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서로를 알고 있었을까. 세르반테스는 셰익스피어를 몰랐지만, 셰익스피어는 말년에 <돈키호테> 번역본을 읽었다고 미국의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전한다. 아울러 블룸은 두 작가가 없었다면 스탕달, 투르게네프, 허먼 멜빌, 마크 트웨인, 도스토예프스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그들이 창조한 상반되는 캐릭터로도 오래 기억된다. 숙부에 의해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햄릿은 우유부단한 인간형의 대명사다. 반면 비쩍 마른 말을 타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기사 돈키호테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인간을 일컫는다.

글로서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캐릭터를 창조할 수 있다는 건 신비한 일이다. 그렇게 창조된 인물이 400년 후 사람들의 머리에도 하나의 전형으로 살아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국제연합은 두 천재의 사망일을 세계 책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백승찬기자) 

11. 04. 25.  

P.S.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창조해낸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햄릿과 돈키호테는 기사에서처럼 여러 모로 비교가 되는데, 그런 비교를 선구적으로 보여준 작가가 투르게네프이다. '햄릿과 돈키호테'(1860)란 문학강연을 통해서 '사색가형 인간 vs 행동가형 인간'이란 이분법을 제시한 이가 바로 그다. 이 유명한 강연문은 예전에 세계수필선 종류의 책에 번역/수록돼 있었는데,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이만한 강연문도 지금의 독자들이 읽을 수 없다는 게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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