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에서 조금 의외의 일이 벌어져 유감스럽다. 지난달에 출간된 책 한권이 외국서적을(그것도 번역된 적 있는 책을) 그대로 도용했다는 것. 따지고 보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찌하여 '원로' 과학자들이 구태여 그런 불미스런 일에 관여했는지 의문이다. 아무래도 보편화된 '불감증' 탓이 아닐까 싶다.

경향신문(07. 03. 03) 진실 배반한 과학원로들…외국책 베껴 파문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를 계기로 연구자의 표절 등 부정행위를 방지하자는 취지로 출간된 책이 외국책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2일 출판계에 따르면 올해 1월 출간된 ‘탐욕의 과학자들’(일진사 펴냄)은 전체 25%에 해당하는 84쪽을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Betrayers of the Truth)’에서 무단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책은 갈릴레오·뉴턴·다윈 등 고대 과학자에서부터 최근 과학자들까지 표절 등 부정행위 사례를 엮어 출간됐다. 머리말에는 ‘연구 진실성과 투명성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고자 출판했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이 책은 1982년 뉴욕 타임스 과학담당 기자인 윌리엄 브로드 등이 저술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의 일부를 그대로 도용했다.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은 국내에서 한차례 번역소개됐지만 별 주목을 끌지 못했다가 지난달말 미래M&B에서 재출간됐다.

Betrayers of the truth

‘프롤레마이우스의 관측 오류’를 담은 부분의 경우 ‘탐욕의 과학자들’과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이 내용이나 표현, 글의 진행이 거의 유사하다. 갈릴레오, 뉴턴, 돌턴, 다윈, 멘델 등의 부정행위를 설명하는 총 19쪽에 달하는 내용은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을 그대로 베낀 수준이다. 로버트 훅의 부정행위 사례를 담은 부분 역시 29~30쪽에 걸쳐 그대로 베꼈다. 심지어 민영기 교수가 필자로 돼 있는 ‘펄서 발견에 얽힌 사제 간의 공적 논란’은 15쪽에 걸쳐 주어·서술어·수식어의 흐름이 모두 유사하다.

당사자도 ‘무단도용’에 대해서 시인했다. 민영기 교수는 “다른 공동저자가 원서를 주면서 저작권이 이미 소멸돼 편저로 내자고 했다”며 “책이 출간된 이후 표지에 저자로 돼 있어서 출판사측에 잘못됐다고 항의했다”고 해명했다. 박택규 교수는 “편저라 하더라도 출처 표시를 하지 않은 점은 잘못”이라며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을 판권 없이 편집출판하는 관행에 대해서 잘못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인 일진사의 대응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일진사는 출간된 이후 ‘편저’라는 사실을 필자들로부터 들었으나 곧장 책을 회수하지 않았다. ‘편저’라고만 쓰인 띠지를 만들어 판매를 강행했다.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을 출판한 미래M&B측은 “책의 일부를 발췌한 것도 아니고 무더기로 베꼈으며 역사연표까지 모두 표절했다”면서 “출처를 표시하든가 번역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07. 03. 03. 

P.S. 찾아보니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은 <배신의 과학자들>(겸지사, 2002)이라고 번역된 적이 있다. 저자들이 뒤늦게 '편저'라고 밝혔다지만 그 경우에도 정식으로 발췌에 대한 저작권 위임을 받지 않았다면 위법 아닌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을 판권 없이 편집출판하는 관행에 대해서 잘못을 느끼고 있다”고 한 발언은 특히나 문제적이다. 그러한 표절/도용이 과학계의 흔한 '관행'이라는 증언도 되기 때문이다(어디 과학계뿐이겠는가). 여러모로 뒷맛이 씁쓸하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의 기사들 참조).   

표절이나 도용에 관한 문제는 아니지만 며칠 전에 읽은 한 서평도 뒷맛이 씁쓸한 건 마찬가지였다. 마샬 버만의 <현대성의 경험>(현대미학사, 1994)과 프랭크 렌트리키아의 <신비평 이후의 비평이론>(문예출판사, 1994)을 다룬 송승철 교수의 서평 '모더니즘 미학과 근대성의 역학'(<창작과 비평>, 1996년 봄호)이 문제의 서평인데, 나도 렌트리키아의 책은 출간 직후에 지방에서 사서 읽어보고(물론 다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나는 이후에 원서를 구했다) 어처구니 없는 번역을 개탄하는 편지를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써보낸 기억이 있다. 서평은 말미에서 두 번역서의 실태를 꼬집고 있는데, 특히나 문제가 되는 건 원로 영문학자가 공역자로 참여한 <신비평 이후>. 원서는 워낙에 평판이 좋은 책이지만 한국어로는 읽을 수 없게 돼 있다. 

영문학계에서 그냥 쉬쉬하고 넘어간 건 줄 알았는데, 내가 과문했다. 서평은 직설적으로 오역의 실태에 대해서 질타하고 있다. "<신비평 이후의 비평이론>은 지금까지 내가 검토해본 숱한 번역이론서 가운데 최악의 것이며, 정말 본인들 자신의 번역이라면 비평이론의 수준을 따지기 앞서 역자들의 영어교사로서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게 일단 총론이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가관이 된다.

"도대체 번역을 한 후 제대로 교정을 보았는지 의심가는 대목이 한 페이지에 평균 대여섯 군데씩 있다. 예를 들면 책의 첫 페이지에 있는 에피그라프 두 개의 번역(9면)에서부터 오류가 발견되거니와, '감사의 말' 앞부분에 있어야 할 것이 '들어가는 말' 다음으로 옮겨져 있다. 게다가 사전만 제대로 들쳐도 피할 수 있는 오역, 즉 문장의 'whether... not' 'not just' 따위를 거꾸로 해석한 부분(152면)도 부지기수여서 구체적으로 지적하기가 오히려 민망하다."

민망한 내용을 조금 옮겨오자면, "데리다를 논하면서 presence와 being을 똑같이 '존재'로 옮겼다든지 generic이 genre의 형용사임을 몰라 '일반적'으로 옮기거나 바흐찐적 술어인 sociolect(집단방언)를 '사회학강의'로 번역한 것은 차라리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discourse를 줄곧 '논술'로, discoursive를 '산만한'으로, 독일 관념론을 지칭하는 idealistic을 '이상주의적'으로, 더구나 dialect를 '변증법', pragmatist를 '실증주의자'로, fault-line을 '잘못된 선'으로, 심지어 latest를 '마지막'으로 번역한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평자로서는 이 번역이 역자들 자신의 것이라기보다는 제자들의 번역을 적당히 추려서 내놓은 것으로 믿고 싶은데, 그렇더라도 역자들의 책임이 면피되는 것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역자의 한 사람이 최근 관민합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번역원의 발기인으로 참여한 사실을 생각하면..."

이 번역서와 원서는 다행히 박스보관도서가 아닌데 언젠가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 서가에 악착같이 모셔둔 탓이다('discoursive practice'를 '논술 연습'이라고 번역한 사례도 이 책에 나온다). 다행히 애써 그럴 필요는 없게 되었고, 번역자들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개정판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겠다(기대할 걸 기대해야 하나?). 개인적으론 서평자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애꿎은 영문과 대학원생들)의 (한심한) 번역이라고 믿고 싶지만 원로 영문학자께서는 이런 '옮긴이의 말'을 남기셨다.

"이 번역 작업은 학교에서의 강의와 다른 글쓰기 등으로 간간이 오랜 시간 동안 중단되기는 했지만, 약 3년에 걸친 노역(勞役)에 가까운 나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동안 많은 좌절감과 함께 오역에 대한 두려움을 적지 않게 느꼈으나, 우리는 한권의 뜻 깊은 책을 내겠다는 보다 큰 희망과 목적을 위해서 작은 고통이나 두려움은 잊어버리기로 했다."(489쪽)

그리하여 우리가 갖게 된 것이 이 '뜻 깊은' 오역서이다. 무슨 '뜻'인가? 한국 학계에 믿을 만한 원로들은 많지 않다는 것. 그리고 오역과 표절에 관한 이 오랜 '관행'은 쉽게 근절되지 않을 거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부도덕'이 정치경제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의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근간일지도 모른다는 매트릭스적 깨달음. 이게 과연 우리의 '현실'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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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3-03 22:57   좋아요 0 | URL
혹은 "(내 번역이)오역과 표절이 위험수위에 있다는 걸 알아. 그러나 번역서가 없는것 보다는 나은거 아냐?"와 같은 과소진술적(understatement) 깨달음일지도..-_-

릴케 현상 2007-03-04 00:28   좋아요 0 | URL
2006년 봄호의 송승철씨 글은 <<크리티카>>1호 소개글이군요

로쟈 2007-03-04 00:36   좋아요 0 | URL
yoonta님/ 그건 제 깨달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산책님/ 오타네요.^^; 1996년 봄호입니다.
 

얼마전 '한국SF 100주년과 러시아SF'란 페이퍼를 올린 바 있는데, 기사에서 인용한 내용 중에 카렐 차페크의 <로봇> 얘기가 있었다. 쥘 베른의 <해저여행기담>(<해저 2만리>)가 1907년에 처음 소개되었고 그 뒤를 이어 1925년에 차페크의 <로봇>이 박영희에 의해 <인조노동자>로 번역된 바 있다는 것.

1907년 ‘해저여행기담’에 이어 1908년 이해조가 역시 번안작품 ‘철세계’를 출간했다. 1925년엔 박영희가 세계 최초로 ‘로봇’이라는 말이 나타난 카렐 차페크의 작품 ‘R.U.R’를 번역한 작품을 선보였다(*차페크의 <로봇>이 그렇게 일찍 소개되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한데 이 책 또한 품절이군).

거기에 내가 붙인 코멘트는 보는 대로이다. 이광수와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그 번역과 관련한 칼럼을 읽게 됐다. 자료삼아 옮겨놓는다. 정선태 교수의 '번역으로 만난 근대' 연재 중의 한 꼭지이다.

한겨레21(04. 02. 05) 카렐 차페크, <로봇>(RUR) - 계급투쟁이 로봇에 실렸네

“갈군! 갈군! 왜 인조인간을 만들기 시작하였나? 할레마이어군! 파브리군! 왜 자네들은 자네 머리 속에 그런 많은 계획을 생각하였었단 말인가? 왜 글쎄 자네들은 그 비법의 흔적을 남겨놓지 아니하였나? 아, 하느님 ― 나의 기도 소리를 들어주십시오 ― 만일 사람을 남겨놓지 않으시려거든 인조인이나 남겨주십시오 ― 아무렇게 하더라도 인간의 그림자뿐만은 남겨주십시오! (다시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다만 잠이나 자고 싶다. (일어나서 창 앞으로 간다) 아직껏 밤이다! 저편에서 아직껏 별이 반짝이고 있구나! 이 세상에는 벌써 한 사람의 인간도 살지 않는데 저 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중략) 모든 것이 소용이 없구나. (시험관을 깨뜨려 부순다. 기계의 돌아가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린다) 기계! 또 기계로구나! (창을 연다) 인조노동자여, 기계를 정지하여다오! 너희들은 기계로부터 생명을 만들어내려고 생각하느냐?”

소수의 인간과 인조 노동자의 대결

로숨 유니버설 로봇회사의 건축주임인 알퀴스트의 절망으로 가득 찬 독백이다. 그는 이 회사의 대표인 도민, 기술담당 이사 파브리, 생리학 연구부장 갈, 로봇 심리연구소장 할레마이어와 함께 외딴 섬에서 인조인간을 대량 생산하여 세계 각 지역에 판매하던 인간들 가운데 ‘기계들’의 반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였다.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생명체를 복제하는 데 성공하고, 이 ‘영혼도 감정도 없는 인간’을 팔아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던 로숨 유니버설 로봇회사의 인간들은 그들이 만든 ‘로봇들’의 반란에 직면해 죽음으로 내몰리고 만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자 알퀴스트는 이제 인간을 제치고 인간의 지위에 오른 로봇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스스로 내동댕이쳤던 하느님과 별을 찾으며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공상과학(SF) 문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카렐 차페크(Karel Capek·1890~1938)의 희곡 <로봇>(원제는 Rossom’s Universal Robots)은 인조인간이 인간을 대신해 새로운 아담과 이브로 탄생하면서 막을 내린다.

SF소설의 효시로 알려져 있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비롯하여 올더스의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 아이라 레빈의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등 이 분야의 뛰어난 작품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초래한 음울하고도 비극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 이에 따른 인간의 진보에 낙관적인 믿음에 빠져 있을 때, 이들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이 야기할 비극적인 결말을 경고하고 나섰던 것이다.

1920년에 발표되어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체코 출신의 작가 카렐 차페크의 <로봇>도 예외가 아니다. <로봇>은 화학적 결합을 사용하여 원형질이라고 알려진 생명체를 무한 복제하는 기술을 터득한 인간들이 어떻게 인간 자신을 파괴하는가를 예고하고 있는 희곡 작품이다. 과학기술을 장악한 소수의 인간들과 그들이 만든 인조인간 로봇의 대결,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개념이 결국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버리는 ‘과학의 희극’이 <로봇>을 관통하고 있다.

카렐 차페크(*왼쪽 사진)의 희곡 <로봇>이 이 땅에 처음으로 번역·소개된 것은 1925년 2월호 <개벽>을 통해서였다. 1925년을 전후하여 문단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신흥문학=계급문학의 ‘선봉장’이었던 회월 박영희(1901~?, 오른쪽 사진)가 이 작품을 <인조노동자>라는 제목으로 네번에 걸쳐 완역한다. 이른바 ‘병적 낭만주의’에 빠져 있던 박영희의 사상적 변신은 놀라울 정도인데, 1924년 이후 그는 평론과 소설 등을 통해 계급문학과 사회주의적 이념을 전파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특히 그가 엮은 ‘중요술어사전’은 네 차례 <개벽>의 부록으로 실렸으며, 이는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잉여가치설, 공산주의, 유물사관, 과격파,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 새로운 사회주의적 개념들을 비교적 체계적으로 소개한 중요한 자료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신흥사상’에 관심을 쏟고 있던 그의 눈에 카렐 차페크의 <로봇>은 어떻게 보였을까?

사회주의 이념 우회적 전파 통로

<인조노동자>라는 제목만 보아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듯이 번역자 박영희는 이 희곡을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을 그린 작품으로 보았던 듯하다. 자본가에 의해 비인간적으로 착취당하는 노동자를 ‘인조기계’, 즉 로봇으로 파악하고, 기계로 전락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취하고자 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기계에 불과했던 ‘인조노동자’들이 공포와 고통의 과정을 통과하여 자신을 지배하던 인간들을 살해하고 새로운 주권자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이야말로, 사회주의를 비롯한 ‘신흥사상’에 대한 감시자들의 검열이 더욱 촘촘해지던 상황에서, 계급사상을 우회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다시없는 통로였을 터이다.

예컨대 인조노동자의 반란을 이끈 로봇 라디우스가 ‘최후의 인간’ 알퀴스트에게 던지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역사를 보십시오. 사람의 서적을 읽어보십시오. 당신도 사람답게 살려하면 주권자와 살육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수는 번식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완전무결한 세계를, 또 없는 세계를 만들고, 남극에서 북극으로 가는 운하와 또한 새로운 화성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책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해서 우리들은 과학과 미술을 연구하였습니다. 인조노동자는 인간의 문화를 완성하였습니다.” 로봇의 인간선언, 또는 기계와 다름없던 노동자의 인간선언!

<로봇>의 번역 <인조노동자>는 더 이상 ‘SF’가 아니었다. 테크놀로지를 전유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영혼도 감각도 없는 ‘인조인간’으로 내모는 비극적 현실을 타파하라고 ‘선동’하는 팸플릿이었다. 반란의 지도자 라디우스는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서 이렇게 외친다. “전 세계 인조노동자 제군! 전 인류를 우리는 죽여버릴 것이다. 한 사람일지라도 용서함이 불가함. 각 공장, 철도, 기계, 광산과 그 외에 모든 원료를 남기고, 그 외에 것은 모두 파괴할 일. 그러고는 다 각각 노동에 돌아갈 일이다. 노동은 중지함이 불가함.”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는 저 유명한 ‘공산당선언’의 ‘선언’을 떠올릴 필요조차 없다. 인간, 즉 자본가들을 몰아내고 노동자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팸플릿의 기능을 <인조노동자>는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로봇처럼 살았던 식민지 조선인들

유니버설 로봇회사 대표 도민의 말처럼 ‘인간에게 가장 끔찍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인 것이 현실이라면,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에는 어떠한 공존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라면, 그리고 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피착취자 역시 인간임을 선언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으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1924년 일본에서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을 보았을 조선의 청년 지식인 박영희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의 소설들과 평론들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박영희는 사회주의에서 그 희망을 찾았고, 그 이념을 담은 작품으로 차렐 차펙의 <로봇>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암울한 식민지 근대를 살고 있던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자를 뜻하는 로봇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처럼 <인조노동자>와 함께 실려온 새로운 사상은 많은 ‘맑스보이’와 ‘엥겔스걸’을 낳으면서 저항의 근거지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바야흐로 러시아혁명의 성공에서 희망을 보았던 사회주의 사상이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현실을 비추는 한 줄기 빛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정선태 | 연구공간 수유 + 너머 연구원)

07. 03. 01.

 

 

 

 

P.S. 참고로, 근대/문학과 번역 등에 관련된 정선태 교수의 흥미로운 논저들은 <심연을 탐사하는 고래의 눈>(소명출판, 2003), <근대의 어둠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시선>(소명출판, 2006) 등에 갈무리돼 있다. 더불에 근대에 관한 여러 번역서들도 노작이다. 한달 정도 '큰방'에 간다면 다 읽어볼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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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3-01 14:55   좋아요 0 | URL
참. 정말;;
퍼갑니다. 식민지 시기를 전공하면 할수록, 식민지 시기 사람들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요. 내 친구 박영희, 임화, 이런 식으로 ^^; 동네 형 이광수 이런 식으로 ㅋ 어쨌든 내 친구 박영희라기 보다는, 저보다 '어린' 25살 박영희 군의 고뇌와 투쟁으로서의 문학... 안쓰럽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네요.
 

장르소설을 잘 읽지 않는지라 '앨러리 퀸(Ellery Queen)'이란 작가가 "사촌형제간인 맨프리드 리와 프레데릭 더네이의 이름을 합쳐서 만든 필명"이라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우리라면 '듀나' 같은 경우일 텐데, 그래도 필명/가명이란 티가 나는 '듀나'에 비하면 '앨러리 퀸'은 감쪽같다!). 지난달 컬처뉴스에 실렸던 한 '만담'기사를 읽으면서인데, 지난 연말에 터졌던 대필 사건들과 관련해서 읽어볼 만한 만담이기에 옮겨놓는다. 아는 사람은 다 알 만한 내용이지만 '내부자'의 진술이기에 흥미롭다. 

컬처뉴스(07. 01. 26) 무림 출도를 고민하다: 출판시장과 유령작가

깜짝 퀴즈를 하나 내보겠다. 『Y의 비극』, 『Z의 비극』 등으로 유명한 미스테리 작가의 엘러리 퀸이 사망한 해가 1971년일까 1982년일까? 성급하게 답하자면 이 퀴즈에는 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둘다 정답이며 둘다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엘러리 퀸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엘러리 퀸은 사촌형제간인 프레드릭 더네이와 맨프레드 리가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다. 그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작품의 필명으로 사용했으며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후 버나비 로스라는 또다른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공식석상에서 한 명은 엘러리 퀸을, 한 명은 버나비 로스의 행세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엘러리 퀸과 버나비 로스는 서로의 작품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 모든게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한 전략이며 일종의 ‘장난기’였다고 한다. 여하간 엘러리 퀸과 버나비 로스 뒤에 숨었있던 ‘실존인물’ 더네이와 리는 각각 1982년과 1971년에 사망했다. (이 두 사촌 형제는 공교롭게도 둘다 1905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엘러리 퀸의 사망년도는 모호한 노릇이다

제법 길게 예전에 죽은 미스테리 작가에 관한 사설을 늘어놓은 까닭은 최근에 책, 혹은 글과 저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정지영 아나운서가 번역했다고 알려졌던 『마시멜로이야기』와 화가이자 방송인인 한젬마가 썼다고 알려졌던 일련의 미술관련 책이 불러일으킨 논란이다. 이 사건들에 대한 상세한 소식들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으니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혹시라도 이 소식을 못 접하신 분들이 있다면 주요 포탈 사이트에 들어가셔서 검색창에 ‘표절’이라고 쳐보시라. 뉴스란에 뜨는 내용도 재미있지만 각종 게시판을 떠도는 말들이 더 재미있다.)

그런데 출판계에 잠시 몸담았던 박서방의 경험에 비춰보자면 이 사건들은 그리 낯설거나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들어온 원고를 면밀히 잘 검토해서 책을 만들거나 좋은 원고를 발굴해서 책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잔인한 얘기지만 출판 기획자에게 좋은 책이란 잘 팔리는 책이다. 물론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고 있다. 하지만 영세하기 짝이 없는 출판업계에서 당장 현금이 안 도는 책이란 재앙이다. 책 한두권 대박 치면 1년이 편안하게 갈 수 있지만 책 몇 권 죽 쒀버리면 당장이라도 문을 닫아야 하는 출판사들이 적지않다. 그러니 당장 현금화 할 수 있는 책을 ‘제조’해 내기 위한 경쟁에서 자유로울래야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필자 이름 정도 빌리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되버렸고 글 팔며 먹고사는 ‘고스트 라이터’ (유령필자, 실명을 밝히지 않고 출판물 집필을 대행해주는 이들) 들의 맹활약이 시작되었다. 박서방도 출판계에 있을 때 명색이 초보 기획자였지만 실상 가장 많이 했던 역할은 필자들의 글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있는 원고를 다듬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그 중에는 전직 대통령의 자서전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선거철 직전은 고스트 라이터들에게 가장 일거리가 많은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금뱃지에 눈이 먼 이들의 선거용 출판물 (자서전, 정치평론 등) 작업에 임할 때는 주의할 사항이 있다. 일단 믿을만한 경로로 들어온 일을 받아야 하며 되도록 돈을 빨리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의 결과가 안 좋을 경우에 원고를 의뢰한 자들이 얼렁뚱땅 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실제로 한번 이런 경우를 당한적이 있는데 당시 박서방의 경제상황이 극도로 불량했기 때문에 치명적인 피해로 돌아왔으며 (한동안 박서방을 몹시 괴롭렸던 소위 ‘카드돌려막기’의 원인이 되었다.) 박서방은 그 정객(인지 사기꾼인지)에게 강력한 신체적 보복을 행사하기 위해 한동안 그 인물이 출마했던 지역구 주변을 배회하곤 했었다.

얘기가 옆 길로 샜는데 지금의 고스트 라이터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겠지만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 작가의 존재는 꽤 오래됐다. 소설이 지금의 영화 만큼이나 대중적으로 인기있던 19세기에만 해도 한 명의 작가 이름으로 여러 필자가 협업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특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 대중문학의 전성기였는데 이렇게 대중문학의 인기가 급증했던 원인은 흔히 노동자 계층의 교육 수준이 올라가고 사무직 노동자 계층이 증가하면서 사회의 문맹률이 낮아졌던 것과 출판 기술 및 통신, 운송 수단이 화끈하게 개선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800년대 중반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흥밋거리를 담은 타블로이드판 형태의 ‘소설신문’(?)이 등장하게 되는데 양장본 소설책에 비해서 역시 화끈하게 싼 가격이었다고 한다.

타란티노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펄프픽션’은 바로 이런 매체에 연재되었던 대중소설들을 지칭하는 것인데 주로 다루어졌던 내용들은 황당무계한 연애담(아마도 박서방이 불타는 사춘기 시절 즐겨읽었던 ‘하이틴 로맨스’ 류의 원조리라)이나 잔인한 범죄 이야기, 환상담 등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이런 소설을 주로 썼던 작가들의 특징은 엄청나게 다작을 했다는 것인데 그래서 대부분 이런 소설은 한 작가의 이름으로 여러 명이 작업했을 것이라는 강력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본소 만화 전성기 때 유명 작가들이 사실상 만화공장장 노릇을 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렇듯 예전부터 상업 출판물에서 필자의 이름은 상표다. 실제로 그 사람이 그 글에 개입한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한 일이 아니라 그 필명이 출판시장에서 발휘하는 힘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많은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앨러리 퀸을 탄생시켰던 두 작가가 버나비 로스라는 또 다른 작가를 탄생시켰던 이유는 아마 앨러리 퀸이라는 상표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극복하고 작품의 스타일을 변화시켜야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되었던 두 개의 (혹은 서 너개의) 사건은 상표가 너무 강하게 부각되었었으며 그 상표 덕에 상품을 너무 많이 팔았던 게 사건이 일파만파 커져버린 원인이었다. 한편으로 한젬마 씨의 경우는 대외적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란 타이틀을 갖고 있었기에 당초부터 고스트 라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부담스러운 경우기도 했다. 기획출판물이란게 대개 그렇지만 그 콘텐츠에는 상표 외에는 실상 별 게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그런데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했던 상표가 좀 과하게 작용한데다 그 바람에 상품이 너무 팔려버린 것이다. 상표를 보고 샀는데 상품이 짝퉁이라면 소비자들은 열 받는 게 당연하다. 그래봐야 이런 사건이들은 들불처럼 분노를 일으켰다가도 바람처럼 잊혀져 갈 것이 뻔한 노릇이며 이미 발 빠른 기획자들은 또 다른 상표를 찾아내고 있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로 보면 그런 출판물들도 있어야 고스트 라이터들도 먹고 살 것이 아닌가라는 한심한 생각도 해 본다. 박서방도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직장생활의 스트레스 수치가 한계 이상으로 치솟을 때면 글 팔며 연명하던 고스트 라이터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긴 하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었지만 나름대로 자유분방했던 측면도 있긴 했다. 이렇게라도 자위하지 않으면 청춘의 기억이 너무 서글퍼진다.) 그래서 ‘천마신군’이나 ‘초혼객’ 같은 이름으로 무협지나 쓰며 사는게 어떨까 하는 백일몽에도 잠겨본다. 몇 년간 글을 자주 안 썼더니 글이 너무 심하게 구려져서 별로 자신이 없지만.(박서방 _ 인터넷 만담가)

07.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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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학술저널 '담비'(http://www.dambee.net/)에서 학술동향기사 한 편을 옮겨온다. '한국사회학'에 게재된 한 논문을 소개하고 있는데, 아마도 기사의 부제로 붙어 있는 '멜랑콜리와 모더니티: 문화적 모더니티의 세계감 분석'이 그 논문의 제목인 듯하다. 사회학 논문으로서는 이채로운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흥미로운 주제이고 분석이다.

담비(07. 02. 24) 멜랑콜리, 우울한 토성의 아이들

세계관, 인생관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다. 그런데 세계감(世界感)이라는 단어는 뭘까. 최근 문화적 모더니티를 연구하는 논문에 자주 등장하게 될 단어다. 프랑스에서 국내 사회학자로서는 드물게 영상사회학 이론을 전공하고 돌아온 김홍중 박사의 논문은 문화적 모더니티와 관련한 첨단의 인식론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그것도 매우 알기 쉽고 유려하게 인식의 깊이와 이론적 해박과 서술의 겸손함을 곁들여서 말이다. 그가 '한국사회학'  제40집 3호에 발표한 '멜랑콜리와 모더니티'는 이 '세계감'이라는 낯선 용어로 인간의 자기인식과 세계인식을 표현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그 길을 따라가 보자.

어느 날 파리의 한 유명한 신경전문의에게 환자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세기병"에 시달려 살고픈 의욕이 거의 없으며, 기분이 늘 침울하고 항상 권태롭다고 털어놓았다. 의사는 걱정말라고 다독인뒤 잠시 휴식을 취할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날을 잡아서 드뷔로의 공연을 보러가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인생이 달라보일 것이라고 말이다. 드뷔로는 19세기 프랑스 무언극 배우로 명성을 떨쳤는데, 천진하면서도 슬픈 웃음을 자아내는 현대적 광대의 원형을 창조한 배우다. 그런데 의사의 말에 대한 환자의 답이 가관이다. "하지만 선생님, 제가 바로 드뷔로입니다."

이상은 벤야민의 '파사젠베르크'의 '권태, 영겁회귀'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미하일 바흐친은 드뷔로의 선조라 할 수 있는 중세의 광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들의 신랄한 재담과 파괴적인 농담 그리고 과장된 몸짓과 가면 뒤에는, 종종 사태를 명증하게 파악하는 비판적 지성의 단초 혹은 이러한 지성의 소유자가 '어리석은' 세계에 대해서 가질 법한 깊은 상심이 은폐되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김 박사는 위의 일화에 숨은 더 심각한 것을 지적한다. 그것은 우울을 풀어주는 광대마저 우울증에 걸린 난감한 상황이다. '세기병'이라는 표현은 우울이 이제 그 외부가 존재하지 않는 사나의 세계감(感)으로서 존재하게 됐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이다.

그 어떤 것에도 진정한 삶의 활력을 느끼지 못하는 '타성의 원천'으로서의 멜랑콜리. 이것이야 말로 무사태평한 웃음 속에서 메아리치는 이 시대의 질병이며, 우리로부터 명령과 복종과 행동과 희망의 용기를 앗아간다고 키에르케고르는 지적한 바 있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세계감이 사회의 모든 부면에서 성취된 전례 없는 혁신에 대한 자신감과 낙관 위에 설립된 근대의 진보적 세계관의 필연적인 그림자라는 것.

사회적 모더니티가 국민-국가, 자본주의 그리고 시민사회를 축으로 하는 공적 제도의 영역에서 '정신 없는 전문가'와 '가슴 없는 향락자들'(막스 베버)를 만들었다면, 그것에 저항하는 문화적 모더니티는 진보하는 부르주아의 공적 세계까 엄폐한 사적 공간에서 되살아난 우울의 신 사투르누스(Saturnus)의 힘에 복속된 '토성의 아이들'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지금껏 온갖 학문들은 근대적 세계감의 가장 근본적인 차원인 이 토성적 감정의 발생과 구조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보여주지 못했다. 멜랑콜리는 대다수 문화적 산물들의 심정적 배경을 구성하는 문화해석학적 열쇠임이 점점 분명해지는데도 말이다. 김 박사는 이 지점에서 그것에 대한 체계적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으로 하이데거의 '정조'(Stimmung) 개념을 끌어온다.

역시 서구 형이상학을 탈구축한 하이데거가 1929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겨울학기 강의에서 던진 질문은 참으로 멋드러진 것이었다. 그는 여기서 "철학적 사유를 뒷받침하는 감정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이 질문은 무엇인가. 이성의 추리와 전개로 구축되는 철학의 기저에 특수한 감정의 상태가 놓여있다는 인식, 즉 로고스와 파토스의 위계를 전도시키는 시도가 담겨있다. 하이데거는 이 질문을 통해 '사유'와 '의지'에 늘 종속되어 있던 '느낌' 즉 감정의 질서를 학문적으로 복권시키고자 한 것이다.

하이데거의 가장 유명한 개념은 다자인(현존재, Da-Sein)이다. 세계-내-존재로서의 인간이 바로 그것. 세계 안에 던져진 유한자는 자신앞에 펼쳐지는 무한한 가능성과 직면하고 있는 자기형성적인 주체이다. 하이데거는 다자인을 다자인으로 만드는 것은 코지토가 아닌 정조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권태, 환희, 불안의 정조를 분석했으며, 정조란 다자인이 세계와 화음을 조정하는 과정이며 세계의 객관적인 음조와 주체의 음조가 섞이고 부딪히고 조정되어 형성되는 일종의 음역(音域)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정조가 사유보다 근원적인 체험의 양식일 때, 사유라는 상부구조는 자신의 전(前)-사유적인 하부구조로서 감정적 차원을 갖게 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그리스 철학을 가능케한 것은 '경이의 감정'이었고, 데카르트적 근대를 가능하게 한 것은 '의혹의 정조'였다. 하지만 하이데거조차 20세기의 사유를 규정하는 본원적 감정이 무엇인가에 대해선 명확하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이런 것이었다. 차갑고 냉정한 계산적 합리성에 의해 정조가 압살된 듯 보인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근대적 사유의 근원적 정조는 느낌의 불가능, 열정의 불가능, 파토스의 불가능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근대적 사유를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정조는 파토스의 분출이 아니라 그 퇴행과 은폐이며 감정의 원초적 폭발이 아닌 소멸이라고 말이다. 니체가 근대문화 일반을 데카당스라 부르며 그토록 폄하했던 이유도 "인간이 자신의 존재조건을 뛰어 넘어 초월적인 것과 소통하는 고양의 체험에 동반되던 비극적 감정이 소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세기 초엽의 인간들은 이러한 존재조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물론 모든 인간이 그런 것은 아니다. 사회적 모더니티의 지배적인 주체는 합리적 이성에 근거해 세계와 대면하고, 세계를 분절하고 측량한다. 반면 권태롭고 우울한 우울자들은 그가 대면할 세계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알지 못하고, 세계를 분절할 수 있는 경계를 상실한 이들이다. 그는 정서의 욕동을 단호하게 억제하면서 미래를 투기하지 못하고, 토성적 정조에 사로잡혀 현실원칙으로 귀환하지 못하는 욕망의 노마드다.

근원적인 내적 결핍감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파편들을 끊임없이 섭취하고 내면화하는 일종의 복합적인 식인증적 주체와 조응하는 멜랑콜리의 세계, 이것은 하나의 '기호학적 폐허'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물신으로 구성된 파편적이고 환몽적인 세계와 식인증적 주체의 변증법적 관계를 더 들여다보면 놀라운 역설이 발견된다. 토성적 정조의 근본적 징후인 '식인증'은 어떻게 보면 '우울증적 전략'이라 부를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

피에르 페디다(Pierre Fedida)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심화시키면서 "멜랑콜리는 대상의 상실에 따른 퇴행적 반응이라기보다, 오히려 상실된 대상을 살아있게 만드는 몽환적인(또는 환각적인) 능력"이라고 말한다. 김 박사는 이걸 좀더 명료하게 요약한다. 토성적 정조는 무언가의 상실로부터 비롯된  결과가 아니라, 사실은 상실을 인식하고 상실을 문제시하게 만드는 조건이라는 사실. 무언가를 상실해서 우울한 게 아니라, 우울하기 때문에 상실을 인지하고 상실을 회복하기 위해서 세계내의 기호들을 삼킨다는 것이다. 우울자는 그가 단 한번도 소유해 본적이 없는 '그것'의 상실을 연기(演技)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것'의 회복을 끝없이 '연기'(延期)한다고 말한다.

사실 우울자에게, 진정한 소유의 대상은 바로 상실감 그 자체이다. 이 대목에서 아감벤은 "식인증이란 이처럼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상실된 것으로서' 나타나게 하고, 재현할 수 없는 것이 '재현불가능한 것으로서 표상되게 하며,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알레고리적으로' 접근가능하게 해주는 토성적 정조의 전략"이라고 해석한다. 이는 사회적 모더니티가 빠른 속도로 일소해버린 초월적 가치들과 대상들, 즉 사유의 타자들을 문화적 모더니티의 영역에서 생존시키려는 일종의 전략이라고 김 박사는 부언한다. 신은 죽었지만 '죽은 신'은 하나의 형식으로 살아남고, 예술도 죽었지만 '죽은 예술'은 하나의 이상으로 남는다. 마찬가지로 소멸한 총체성은 가능성의 범주로서 살아남고 이들 앞에서 우리는 우울하다.

초월적 가치를 아직도 신앙하는 자는 우울하지 않다. 또한 이들이 완벽하게 소멸되었다고 믿는 자 역시 우울할 수 없다. 우울자는 그 중간에 머물면서 '소멸됨으로써 살아 있는 어떤 것'을 끝없이 추구한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시인이 바로 보들레르이다. 릴케 같은 이도 '두이노의 비가'에서 그것을 잘 알고 있다. "영웅은 존속한다. 영웅의 추락은 단지 존재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했으니 말이다.

김 박사는 결론에서 "근대적 로고스의 타자를 '사유될 수 없는 것으로서' 사유의 형식 안으로 포섭하는 문화적 모더니티의 심연적 성찰성의 근저에는, 하이데거가 권태라고 불렀던 근대적 형이상학의 근본 정조, 즉 토성적 정조가 있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패기만만한 진보주의자들과는 달리, 어둡고 우울하지만 한층 더 심오한 정신적 역설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리뷰팀)

07. 02. 25.

 

 

 

 

P.S.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이데거의 1929/30년 겨울학기 강의는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 세계-유한성-고독>(까치, 2001)로 번역돼 있다. '우울증'이란 주제와 관련하여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책은 크리스테바의 <검은 태양>(동문선, 2004)인데 기억에 딱히 '모더니티'를 특화시켜서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페디다의 <우울증의 유익>도 소개되면 좋겠다.

마침 '모더니티'와 관련해서 요즘 읽고 있는 책들은 앙리 르페브르의 <모더니티 입문>(동문선, 1999), 앙리 메쇼닉의 <모데르니테, 모데르니테>(동문선, 1999), 그리고 에른스트 벨러의 <아이러니와 모더니티 담론>(동문선, 2005) 등이다. 물론 모더니티 관련서들은 이보다 훨씬 많다(적어도 20여 권의 목록이 꾸려질 수 있다). 개인적으론 미술 관련서로 칼리니스쿠의 <모더니티의 다섯 얼굴>(시각과언어, 1998)까지 챙겼으면 하지만 아마도 박스에 들어가 있는 듯싶다(이 책은 일종의 사전이다). 그 다섯 얼굴에 모더니티의 주된 정조로서 '우울한 표정'을 더 보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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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25 10:48   좋아요 0 | URL
이런 사이트도 있군요. 즐찾에 넣어놔야겠어요.

싸이런스 2007-02-25 12:24   좋아요 0 | URL
"근대적 사유를 규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정조는 파토스의 분출이 아니라 그 퇴행과 은폐이며 감정의 원초적 폭발이 아닌 소멸이라고 말이다" 감정이 소멸되면 인간은 판단할 수 있는 능력마저 불구화 되기 때문에 살아가기 어렵게 된다는 이론(Damasio, Antonio)을 생각한다면, 소멸이라기보다는 apathy의 정조가 아닐까요.

로쟈 2007-02-25 12:39   좋아요 0 | URL
아프님/ 일주일에 한번 정도 들어가보시면 됩니다.^^
싸이런스님/ 사실 분출구가 없는 건 아닌데요. 스포츠나 카니발 같은 걸 보면. 문제는 그러한 '폭발'이 '근대적 사유'에는 은폐/소멸돼 있다는 것이고, 말씀대로 그때의 '소멸'은 냉담과도 대치될 수 있을 거 같습니다(논문은 안 읽어봤기 때문에 맥락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포커 페이스 같은. 다른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논문이라는 담론'의 형식이 요구하는 게 바로 apathy이죠...

싸이런스 2007-02-25 14:17   좋아요 0 | URL
그래서 논문 읽는게 글케 지루하나보군요. ㅠ.ㅠ

주니다 2007-02-25 20:31   좋아요 0 | URL
P.S.에서 언급하신 동문선의 책들 번역 상태는 어떠한지요? 멜랑콜리와 모더니티는 흥미롭고도 계발적인 주제인 듯 하네요. 이 주제와 관련된 로쟈님의 페이퍼를 기대하겠습니다.^^

로쟈 2007-02-25 20:45   좋아요 0 | URL
저는 페디다의 책이 재미있을 거 같습니다. 르페브르의 책은 영역본을 곧 구할 생각이구요, 메쇼닉의 책은 일부만 복사했습니다(영역본이 없어서요). 일견 번역이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검은 태양>은 원저나 영역본과 같이 읽어야 하구요, 벨러의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칼리니스쿠의 책은 읽을 만하지 않았나 싶은데 오래전 기억이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2007-02-26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26 12:25   좋아요 0 | URL
**님/ 감사.^^ 인문서가 잘 안 나간다는 건 거의 '기본조건'인지라 이유가 안 될 거 같구요, 책은 '고집'으로 내야 할 거 같습니다. '그 사장님'처럼 고집만 있어도 문제이긴 하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도올 김용옥의 '영어로 읽는 도올의 요한복음 강의'가 이런저런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시끄러운 건 개신교계(한국기독교총연합회)인데 동아일보와 한겨레에서 두 가지 유형의 반응을 다룬 기사가 게재되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에 실린 김경재 교수와의 인터뷰기사는 읽어볼 만하다(일단 '동네 개가 짓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동아일보(07. 02. 22) 개신교계 '도올 딜레마'

도올 김용옥(사진) 세명대 석좌교수의 EBS 외국어학습 사이트 ‘영어로 읽는 도올의 요한복음’ 강의를 둘러싸고 개신교계가 고민에 빠졌다. 강력히 대응하기도 그렇고 아예 무시하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개신교계는 표면적으로 ‘무대응’ 방침을 밝히면서도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렇다고 김 교수의 강의에 대한 체계적이고 신학적인 반론이 나오지도 않는다.

김 교수는 이번 강의에서 “구약성경은 유대인들의 민족신인 야훼가 유대인들이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믿는 조건으로 애급의 식민에서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주겠다고 유대인만을 대상으로 한 계약”이라며 구약의 폐기를 주장했다. 그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구약의 모세를 믿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성황당을 믿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는 ‘성경무오류설’에 대해서도 “한글 성경에서조차 틀린 데가 많다. 한자도 틀린 것이 적지 않고, 예수의 족보도 세어 보라. 한 대가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이용규 목사는 20일 “김 교수의 가치 없는 주장에 일일이 답할 생각이 없다”면서도 “구약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과 신학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도올은 실력 있는 철학자지만 철학자가 자기 영역을 벗어나 신학을 철학으로 해석하는 것은 교만”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회장은 “예컨대 모세를 주몽과 비교하는 것은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한기총 총무 최희범 목사도 “도올의 강의는 교회를 훼손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음모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예장통합)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김 교수의 강의 자체를 무시하는 분위기다. 김 교수의 성경 해석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 자체가 긁어 부스럼이라는 속내로 보인다.

예장통합 사무총장 조성기 목사는 “설득력 없는 한 개인의 해프닝에 반응할 이유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김 교수의 성경 해석이 어디에 근거를 뒀는지 모르겠다”며 “김 교수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해석이 기발한 착상일지는 모르지만 누구도 공감하기 어려운 기행일 뿐”이라고 말했다. KNCC 총무 권오성 목사는 “동네 개가 짖는다고 ‘왜 그러느냐’고 물을 필요가 있는가”라며 “터무니없는 내용에 흥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어느 동네인지는 모르겠으나 도올이 '개' 수준이라면 최고 석학의 할애비들만 모여사는 동네인 듯하다). 그는 “김 교수의 말 한마디 때문에 2000년 역사 속에서 고백해 내려온 교회의 진리가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한겨레(07. 02. 22) 교계 정치참여는 강자에 동조하는 것 구약폐기론은 잘못”

우리나라 기독교 신학계의 대표적 지성인 김경재(67) 한신대 명예교수가 지난 21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최근 도올 김용옥 교수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논쟁에 대해 입을 열었다. 최근의 논쟁은 김 교수가 〈교육방송〉 인터넷 요한복음 강의와 〈한겨레〉 인터뷰 등을 통해 보수 교계의 정치참여 행태를 비판하고, 성서적으로는 구약 폐기를 주장하면서 촉발됐다. 이에 한기총은 “교회 매도 음모”라며 도올의 주장을 맞받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기독교의 정치참여를 경계하되, 최근 보수 교계의 정치참여 행태를 “하나님을 빙자하며 강자에게만 동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도올이 제기한 구약 폐기론에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보수 기독교계가 시시콜콜한 것을 시비삼지 말고, 큰 틀에서 한국 기독교의 생명력을 살려 한국 기독교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크게 기여하는 종교로 거듭나게 하려는 (도올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개방적 성찰’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지 않고 “현재의 모습을 고수하겠다면 결국 한국 기독교도 죽고, 한민족도 불행해지고, 세상에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문일답이다.

-도올은 기독교인들이 거대한 압력단체를 만들려 한다며 기독교의 정치 참여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는 진보 쪽이 70~80년대에 참여한 것은 로맨스고 우리가 하면 불륜이냐고 반박하기도 한다.

=70~80년대엔 약자들을 아무도 대변하지 않았다.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런 비상한 상황이 끝나면 종교인들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자의든 타의든 논공행상에 참여했다. 그것은 옳지 못하다. 또 우파들은 안보를 위해 한-미 동맹이나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등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며 강자에게만 동조하고 있다. 이것은 특정 이데올로기이지 성서의 정신이 아니다.

-도올이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구약의 야훼는 수없이 사람을 죽이고, 질투하고 화낸다. 예수가 신약에서 ‘아버지’라고 한 분과 구약의 야훼가 같은 분인가. 이런 질문이 신학계에서 있어 왔는가?

=당연히 있었다. 도올이 질타하는 것은 오직 유대민족만을 위해 타민족을 죽이는 부족신 개념에 대한 맹신일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예언자들은 ‘야훼는 그런 분이 아니’라고 수없이 얘기했다. 자식 열둘 가진 부모가 있다고 치자. 정상적인 부모라면 가진 것도 없고, 장애를 가진 자식에게 가장 마음이 쓰이게 마련이다.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애급의 노예로 끌려가 그토록 고초를 받을 때 그들을 긍휼히 여긴 것이다. 그들만이 특별해서가 아닌 것이다.

-그래도 신의 편벽한 모습이 성서에 비침으로써 반목과 전쟁의 역사를 부채질한 것이 아닌가?

=구약도 솔로몬과 다윗 등 왕권이 성립된 뒤 편집된 것이다. 제왕 전승이 자리를 잡으면서 그런 제왕적 모습을 부각시켰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도 야훼의 전지전능성, 제왕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게 현실 아닌가?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도 야훼야말로 진짜 신이니, 환웅, 환인, 제석신,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등 다른 신을 모두 쫓아내고 이 땅을 야훼가 제패하는 것처럼 묘사한 게 사실이다. 한국 기독교가 하나님의 종교로서 선교 사명을 갖고 있다는 정치 메시아니즘도 구약을 밑바닥에 깔고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것으로, 그런 잘못된 신관(神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야훼는 어떤 신인가?

=야훼는 제왕적 신이 아니다. 야훼란 말의 뿌리를 추적해 보면 ‘긍휼히 여기는 모성적 고통, 산고의 진통에 동참하는 이’다. 한반도의 초기 백성들이 교리적 도그마가 아니라 아무런 선입관 없이 성경을 읽다 보니 어렴풋이 그런 어머니 같은 하나님이 느껴져서 마음속으로 공감해 이를 주체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은 것이다.

-제왕처럼 하늘 위에 앉아 지배하는 하나님이 아니란 말인가?

=섬김과 봉사를 통해 정의와 평등을 이루는 분이다. 일제나 미국 극우주의자들처럼 침략하고 세상을 제패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견강부회하며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메시아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신관이다.

-도올이 예수와 한반도 초기 올곧은 기독교인들의 정신을 회복하자는 것이라면, 보수 기독교가 왜 이처럼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신관이 중요하다. 신관이 바뀌지 않으면 기독교가 바뀌지 않고 세상이 바뀌지 못한다. 그래서 도올의 <요한복음 강해>로 인해 기존의 신관과 교권이 흔들리는 데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교회를 파괴하려는 음모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정치적 우파들과 결속하는 것에 대한 방해라고 여긴다. 약자와 함께하고 그들을 섬김으로써 예수의 사랑을 실현하려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정치적 메시아주의’를 통해 세상적 힘을 갖기를 원한다. 그래서 젊은 지성인들이 도올의 강의를 듣고 깨어나서 ‘정치적 메시아주의’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한기총 이용규 회장과 최희범 총무는 기자들과 만나 ‘철학자가 성서를 해석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철학과 신학은 같지 않다. 그러나 지성과 이성을 배제한 신학은 없다. 초자연적 신을 얘기하는 보수적 신학도 교리들을 보면 대단히 논리와 합리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신이나 구원도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계시적 진리다, 영이다, 신앙이다’라며 신성의 보자기로 감싸는 ‘경계 침해의 논리’는 교권 보호를 위해 상대를 침묵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카르 바르트는 “신학도 인간이 하는 학문적 시도”라고 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계시된 신학이란 없다는 얘기다.

-그들은 ‘신앙은 신앙의 눈으로 봐야 열리지 지식과 과학으로는 안 된다’고도 주장했다.

=‘신앙=반지성주의’로 몰고 가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인가. 그것은 몽매주의다. 상당수 기독교 지도자들은 신도들을 그런 교권주의와 권위로 다스려 전근대적 복종의 미덕만을 강조해 오면서 무지한 맹신이 진짜 신앙인 양 호도했다.

-기독교에서 도올의 주장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는가?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 한다. 낡은 부대는 신축성과 유연성이 없어서 새로운 것을 담아내기 어렵다. 담으면 터져버려서 술도 상하고 부대도 상한다. 한국 기독교는 과연 어떤 부대인가.



구약폐기론 반대이유
김경재 교수는 “어떤 맥락인지 들어봐야 하겠지만 구약을 폐기하라고 했다면 이는 잘못”이라며 도올의 구약폐기론엔 반대를 분명히 했다. 그리스철학에 뿌리를 둔 헬레니즘과 히브리사상이 만나면서 신약의 정신세계가 형성됐는데, 구약을 제거해버리면 도올이 소중히 여기는 인간 평등과 존엄성 등을 담은 헤브라이즘이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예수 이후 최고의 인물로 꼽히는 사도 바울도 히브리사람이긴 하지만 헬레니즘적 배경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아 용어와 내용에 두 요소가 함께 포함돼 있다고 한다.

그는 “구약을 빼면 율법주의에선 자유로울지 몰라도 기독교답게 하는 (헤브라이즘) 정신이 약해져버린다”고 경계했다. 그는 또 “구약과 신약은 서로를 비춰주는 빛”이라고 했다. 또 “기독교가 이스라엘에서 탄생했는데, 그 뿌리를 제거해버리면 기독교가 천박해진다”고 주장했다.

김경재 교수가 본 도올
김경재 명예교수는 김재준·함석헌·서남동·문익환·안병무·강원용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가르쳤던 한신대에서 신학대학원장과 학술원장을 지냈고, 강원용 목사에 이어 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도 맡았다. 상당수 종교인들과 신학자들이 이성보다는 감정을 드러내 도올에 대해 비판하는 것과 달리 김 교수는 도올에 대해 “물건!”이라며 웃었다. 한신대 재직 시절 후배들의 총장 추대를 거절한 채 기숙사 사감을 자처해 정년을 맞은 뒤 서울 신촌 이화여대 후문 ‘김옥길 기념관’ 지하의 ‘삭개오작은교회’에서 매주 일요일 소박한 목회를 하기도 하는 그다운 ‘폭’이었다.

김 교수는 특히 도올의 용기를 높게 평가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더구나 그의 집안이 속한 예수교장로회의 중도 및 중도 우파적 사상 계보로 볼 때 도올에겐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았다. 그는 또 “노자와 불교, 유교, 천도교, 원불교, 서양철학 등을 섭렵한 도올이 <요한복음 강해>에서 ‘초월적 인격신’을 믿는다고 신앙 고백을 한 것을 보고 놀랐다”며 “기독교에선 어떤 교리를 믿어야 정통이 아니라, 그런 신앙을 ‘정통’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한국 개신교 120년 역사에서 도올만큼 ‘준비된 지성’도 흔치 않다”며 “서양 선교사들의 말을 그대로 답습한 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던 유영모, 함석헌 선생의 맥이 도올에까지 가 닿았다”고 평했다. 김 교수는 “루터와 칼뱅도 성서 해석을 바로 함으로써 새로운 기독교를 열었다”며 도올이 한국 기독교의 루터와 칼뱅이 될 수 있다고 점쳤다.

그러면서 그는 “도올은 <요한복음 강해>에서 자신의 독특한 신관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성서와 예수의 정신으로 돌아가고, 어느 한 집단만이 아니라 한민족 전체, 전 세계, 전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했던 한반도 초기 기독교인들의 마음으로 돌아가자고 촉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조연현 기자)

07. 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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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22 21:25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

antitheme 2007-02-22 21:31   좋아요 0 | URL
도올의 이번 문제제기가 나름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몇몇 언론의 인터뷰를 봤을 때 우려가 되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파편적인 인터뷰 글이 아니라 그의 글과 강의를 통해 평가해 보고 싶네요.

sommer 2007-02-22 23:07   좋아요 0 | URL
도올선생의 기독교에 대한 '해석'은 상당히 '위상학'적이고 그래서 충분히 '정치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침묵과 유사하게 한국의 기독교는 '신학/교리(해석)'에 모른 척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외면은 그러한 해석이 곧 '자기 부정'으로 귀결되고 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기인하고 있을 테지요. 여태 '믿는 척'해 왔는데, '네가 믿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당혹감, 그걸 묻는 자에 대한 부정...

도톰 2007-02-23 16:07   좋아요 0 | URL
영어로 강의를 하는 것은 민감한 사안에 대한 도올의 꾀로 보이기도 합니다.

로쟈 2007-02-24 00:05   좋아요 0 | URL
antitheme님. 기회는 어렵지 않게 마련하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약간의 비용이 들긴 하지만...
suture님/ 적어도 신학과 신앙은 구별했으면 싶어요. 목사님들이...
kaosmapak님/ 사정이 그렇지만도 않은 게 요한복음에 대한 도올의 언급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이 참에 겸사겸사 칼을 뽑아든 것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