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영어, 내 마음의 식민지>(당대, 2007)에 관한 리뷰를 올려놓았는데, 생각난 김에(멍석이 깔린 김에) 영어 강의('외국어강의'라고도 표현하지만 99%는 '영어강의'를 가리킨다)에 관한 자료들도 모아놓는다. 대학 경쟁력 강화와 세계화를 명분으로 영어강의의 비중을 늘이는 게 대학가의 추세인데, 그것이 필요한지에서부터 얼마나 가능한지, 또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영어공용어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신 분들도 제한적인 범위에서의 공용어론, 곧 '학문어로서의 영어공용어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강의 현장의 교수 두 분과 작년 경향신문의 '대학 영어강의의 그늘'이란 타이틀의 기획기사들을 옮겨놓는다.

교수신문(07. 03. 16) 외국어로 강의하기와 한국어로 학문하기

여러 대학에서 외국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과목을 늘이고 있다. 외국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과목에 대해서는 연구보조비를 지급하고, 폐강 기준을 완화하며, 절대 평가도 허용하고, 강의 시수도 높게 인정하겠다고 하면서, 신임 교수는 반드시 1과목 이상을 외국어로 강의하도록 하고, 학생들은 반드시 외국어로 진행하는 과목을 수강하도록 강제하려고 한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 대학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설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내 대학에도 외국 유학생이 늘어나고, 우리 학생들도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전문 분야의 차원에서 외국어에 능통할 필요가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또 우수한 외국인 교수를 초빙하여 교수진 구성도 다양하게 한다면 당연히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이 개설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의 확대가 한국어가 학문의 언어로서 자리 잡아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학문 분야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학 강의실에서 쓰이는 한국어는 정상적인 한국어라 하기 어렵다는 점이 거듭 지적되어 왔다. 주요 용어는 물론 서술어조차 외국어 일변도이고 한국어는 ‘토’로만 쓰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예 강의를 외국어로만 하는 과목이 늘어난다면 한국어는 지식의 생산과 소통의 역할을 급격하게 상실하게 될 위험이 있다(*이미 의학, 공학, 자연과학 분야의 경우 한국어는 학문어로서의 위상을 거의 상실한 것 아닌가? 가령, 의학 드라마들에서 주요 용어들을 우리는 '한국어 자막'으로나 접수하듯이 말이다).

사실 근대 직전까지 우리는 한문으로 학문을 해왔고, 학문의 영역에서 한글은 기껏 경전의 번역용이었을 뿐이었다. 한글이 공용문자가 된 것은 1894년부터이며, 대학에서 학문의 언어로 자리 잡은 지는 이제 겨우 60년이 되었다. 그것도 난삽한 한자어, 번역어, 외래어 및 외국어로 점철된 한국어로 우리는 학문을 해왔던 것이다. 제대로 된 한국어로 학문을 하려는 노력도 전개되어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외국어로 전공 강의를 하도록 하니 우리 학문의 세계에 마치 제 2의 중세가 도래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지난 중세에는 한문으로 학문을 했어도 수업만은 한국어로 했는데, 이제는 수업도 외국어로 하자니 말이다. 

원효, 퇴계, 율곡 등 여러 선인들이 한문으로 세계적인 학문을 했으니 장차 우리가 외국어로 세계적인 학문을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하지만 그때의 '세계적인 학문'이 '한국 학문'이며 '한국 철학'인 것일지는 의문이다. 한국인이로서 '세계적인 학자'가 된다는 것과 '세계적인 한국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닐까?). 세계에 널리 쓰이는 언어로 학문을 하여 곧장 외국 학자들과 소통하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계화는 일원화의 방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다원화의 방향에서도 이루어진다. 지식의 창조 역시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라틴어 못지않게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가 훌륭한 학문의 언어 역할을 하듯이 한국어도 한문 못지않게 세계적인 지식을 창조하는 언어로 자리 잡아야 한다(*현재와 같은 한국어의 위상과 역량으로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이다. '우리말로학문하기모임' 도 없지는 않지만. 가령, '한국어 철학'이 현재 가능한가?). 그것을(*그것은) 학문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그러므로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개설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한국어로 창조적인 학문을 하는 일에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김종철/ 편집기획위원` 서울대) 

대학신문(07. 04. 01) 영어 강의, 우리말 강의

우리 대학도 국제화 촉진의 일환으로 영어로 하는 강의가 부쩍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 학생들의 영어능력 향상은 물론, 늘어나는 외국인 학생들이 들을 수 있게 하라는 시대적 요구에 의해서도 영어 강의는 필연의 대세로 자리잡을 것 같다. 교재와 강의 내용이 이미 영어로 잘 정리되어 있는 전공 분야에서는 그런대로 큰 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교재 개발이 잘 되지 않은 과목이나 인문 사회 예술계의 특수 전공 분야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도 있겠다.

나는 1992년 봄 학기 이래로 대학원 과목을 벌써 16년째 줄곧 영어로 강의해 왔다. 농생대 대학원 공통과목인 ‘세포생물학특강’, ‘분자유전학’, ‘유전자조작론’, ‘유전체학’을 두꺼운 원서로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바로 바꿔 가며 학생들을 위해 독파해 주었다. 범위도 많고 어렵다고 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바로 이 교재를 하버드, 엠아이티, 캠브리지 대학은 물론, 이웃 일본과 중국에서도 그리고 국내 다른 경쟁 대학에서도 사용’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자긍심과 명예를 걸고 노력해 줄 것을 호소했다.

학생들은 고맙게도 열심히 공부했고, 정말 좋은 성과를 올렸다. 학생들이 최신 논문을 읽어 발표할 때 영어로 하면 가산점을 주어 독려했다. 앞으로 국제 학술대회에 나가서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게 될 날을 생각하며 준비하라고 했다.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호응했고, 해가 갈수록 그 수와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다. 그 당시 내 영어 강의를 듣고 유학의 길에 올랐던 많은 학생이 이제는 귀국도 하여 여러 곳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영어 강의를 시작할 그 시절, 주소와 성명을 밝히지 않은 어느 암자의 수도승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한다는 것은 나라말을 버리고 민족정신을 흐리게 하는 심각한 사안이니 즉시 중단하라는 권유였다. 깊은 생각 끝에 시간을 내어 글을 썼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우물 안 개구리들을 탈출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에 불타는 나의 영어 강의는 계속되었다. 국제화로 치닫는 지구촌 시대가 지속되는 한, 대학의 영어강의는 더욱 확대 보급될 것이 분명하다. 한 사람이 3~4개 국어를 구사하는 시대도 도래할 것이다.

한편 우리말의 세계화도 크게 신장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이제 달리 깨닫고 있다. 영어로만 읽고 쓰기를 계속하는 한, 과학 기술은 우리 학생들에게는 먼 서양에서 빌려 온 동화 속 이야기 또는 수입 상품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배울 것은 배워야 하되, 과학적 사고 자체를 영어를 통해서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언제까지 얼마나 철저하게 요구할 것인가? 젊은이와 일반인이 과학과 문화를 우리말로 배우고 생각하고 쓰는 가운데, 창조적 과학과 원천 기술이 샘솟아 나오는 시대를 원한다면, 이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망상일까?(*현재로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일반에게 보급한 마틴 루터가 처했을 시대적 상황과 관념의 두터운 장벽을, 그리고 후세에 끼친 영향을 잠깐만이라도 음미해 본다면, 우리말 교재와 강의의 병행은 너무나도 작은 망상이 아닐까? 영어도 처음부터 국제어로 군림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언젠가 누군가 물줄기를 바꿀 것이면 그것이 오늘 우리들여서는 안 될까?(김병동 교수/ 농생대·식물생산과학부)

경향신문(06. 06. 27) [대학 영어강의의 그늘](上) 준비안된 부실수업

수업을 영어로만 진행하는 대학 강의들이 늘고 있다.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천차만별이고 교수들의 영어수업 역량도 떨어지면서 부실강의로 이어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글로벌화의 명분 아래 진행되는 영어강의의 그늘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1. ㄱ대의 ‘수리물리학’ 시간. 원서를 보며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지만 책을 보고 읽는 수준이었고 어려운 개념을 설명할 때는 학생도 교수도 진땀을 뺐다. 수업에 참여한 한 학생은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주요 대학들이 글로벌화 명분 아래 영어강의의 비중을 급격히 높이고 있지만 오히려 부작용만 속출하고 있다.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천차만별인 데다 일부 교수들은 영어강의를 소화할 역량이 없다. 영어에만 집착한 나머지 부실한 강의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다.

26일 각 대학에 따르면 고려대는 전체 강의 중 30%가 영어강의이며 2010년까지 절반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2007학년도부터 5개 이상 영어전공강의를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졸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연세대도 전체 수업 중 18%가 영어로 진행되고 있다. 연세대 관계자는 “2010년까지 40% 선으로 영어강의를 늘리려 한다”며 “영어강의시 강의료를 추가 지급하는 등 인센티브를 줘 더 많은 영강이 개설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역시 2006학년도 입학생은 3과목, 2007학번은 4과목 이상 들어야 졸업할 수 있게 된다. 서울대는 2006학년 1학기 전체 교양강좌의 10%를 영어강의로 지정했다. 이중에는 한국 근현대사·한국문학 등 한국학 관련 과목도 포함됐다.

문제는 이런 영어강의의 확대가 대학본부로부터 상명하달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굳이 영어로 할 필요가 없는, 혹은 해서는 안 되는 강의를 영어강의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고려대는 한국사학과 등 역사관련학과를 ‘한국학의 세계화’를 위해 영강의무화 학과로 지정했다(*강의를 담당할 만한 교수를 끝내 구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김모씨(21)는 “영어에 없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선 결국 학생·교수 모두 한국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학생간 영어 실력차와 교수들의 영어강의능력 부족도 걸림돌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영어원서를 읽는 수준이거나 아예 영어회화수업으로 변질된 강의도 많다. 문제는 강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전공필수 과목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수강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양대 영문과 조모씨(22)는 “지난 학기에 영어강의 ‘문학과 시’를 수강했는데 영어능력 향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학생 허모씨(24·여)는 “교수님들도 영어강의를 하면 의미가 70%밖에 전달되지 않는다며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지난 3월 고려대 학보인 고대신문이 재학생 375명을 대상으로 영어강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56%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불만족의 이유로 ‘영어수준이 너무 높아 이해하기 힘들어서’가 42.5%였다. 연세대 언더우드국제학부의 모종린 학장은 “굳이 영어강의가 필요없는 곳도 많다”며 “전공별로 차별화해서 영어강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김준일·이호준·김유진기자)

경향신문(06. 06. 28) [대학 영어강의의 그늘](下) 교수들도 피해자

독일에서 10년 넘게 여성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은 김모씨(42)는 지난해 모 국립대에서 사회학과 교수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여성학에 관해서는 상당한 자신이 있던 김씨는 면접자리에서 당황했다. 면접위원들이 독일어가 아닌 영어로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다. 무사히 면접을 마치긴 했지만 임용에는 실패했다. 김씨는 “임용된 사람을 알아보니 그 학교 출신에, 영어회화가 뛰어난 사람이었다”며 “실력보다는 영어가 중요시되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유럽에서 공부한 박사들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김씨는 “사회학이나 법학은 세계적으로 독일이나 프랑스를 더 알아주지만 국내 분위기는 오직 영·미권을 우대한다”며 “같이 공부한 사람끼리 만나면 미국으로 유학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한탄한다”고 전했다. 대학들의 영어강의 확대로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뿐 아니다. ‘영어 강의능력’이 능력평가의 주요 지표가 되면서 영·미권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각광받는 반면 유럽출신 박사들은 임용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

‘영어강의 능력’ 우대는 국내 학계의 영·미 편향성이 더욱 심화되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상명대 영어교육학과 박거용 교수는 “최근 유럽에서 공부해 임용되는 교수가 거의 없을 정도로 학문의 미국 종속이 심화되고 있다”며 “영어지상주의가 불러오는 폐단”이라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이어 “학자라면 외국 학문을 우리말로 정착시켜 ‘한국적인 학문’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한데 번역없이 영어로 떠든다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했다. “영어를 잘하는 것과 강의를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상당수 대학들이 신규임용 교수들에게 영어강의를 의무화하고 있어 ‘울며 겨자먹기’로 영어강의를 진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임용된 고려대의 한 교수는 “내 전공은 실습위주 과목인데 억지로 영어로 진행하다보니 의사소통이 안돼 어려움이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나이든 교수님들이 영어강의를 안하다보니 영어강의 부담은 전부 젊은 교수들에게 지워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영어만능주의에 대한 반발기류도 나타나고 있다. 고려대 이상신 교수는 지난 3월 어윤대 총장에게 보낸 공개 질의서에서 '“교수가 되려면 대학원 과정부터 미국에서 다녀야 한다”는 발언과 학문적 능력이 검증 안된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도록 여러 학과에 요구한 점, 학문을 고려치 않고 영어강의 능력을 채용기준으로 설정한 점’ 등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지난 5월 고려대 문과대 교수회는 “문화적 정체성을 위협하고 자유로운 진리탐구 역량을 훼손하는 영어강의 전공과목 이수 의무화 방침을 거부한다”고 결의했다. 전공과목을 영어교육의 실습수단으로 여기는 발상에 대한 항의였다. 고려대도 교수회의 일부 주장을 받아들이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영어강의 확대 방침은 여전히 확고한 상황이다.

물론 세계화의 거센 파고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영어강의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고려대 화학과 최동훈 교수는 “어느 나라에서 공부하든 국제어인 영어로 소통할 일이 많기 때문에 교수들 역시 영어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세대의 한 교수는 “영어강의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대학측이 운영의 묘를 살려 학문과 영어실력 둘 다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준일·이호준·임지선기자)

경향신문(06. 06. 27) [대학 영어강의의 그늘]조기 어학연수 붐

“이왕 갈 어학연수라면 일찍 가는 게 낫죠.” 대학들이 영어강의를 확대하면서 캠퍼스 풍속도 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조기 어학연수 붐. ‘영어강의 스트레스’를 못 이긴 신입생들이 영어실력을 높이기 위해 조기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고려대 언론학부 이모씨(20)는 “친구들 절반 정도가 2학년 마치기 전 어학연수를 생각하고 있다”며 “영어 스트레스로 군입대를 서두르는 후배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재외국민 특례입학 학생들의 약진도 눈에 띠는 현상.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경험 덕분인지 의사표현이 적극적인 데다 최소한 영어강의시간에 자기 뜻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학점을 잘 받고 있다.

서강대생 박모씨(26)는 “교수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학생들은 영어회화를 잘하는 특례입학생의 학점이 더 잘 나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전공지식보다 영어로 학점이 결정되는 현실에 분개하는 사람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학원생들도 죽을 맛이다. 각종 과제와 시험 채점은 대학원 조교의 몫인데 영어강의가 늘면서 채점 스트레스가 늘었기 때문이다. 고려대 대학원생 김모씨(28)는 “문법이 틀리는 영어를 읽는 것도 괴롭지만 정확한 점수 매기기가 어려워 단어 중심으로 채점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틀이면 끝나던 채점이 일주일을 넘길 때는 정말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김준일기자)

07. 04.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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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4-07 12:46   좋아요 0 | URL
취업 인터뷰 할 때, 혹시 영어로 강의가 가능하겠냐는 질문을 많이 하시더군요. 듣는 사람의 자질과 수준의 문제 아니겠냐고 대답했는데, 별로 바람직한 대답은 아니었나봅니다 ^ ^

로쟈 2007-04-07 13:59   좋아요 0 | URL
바람직한 대답은 아마 '물론입니다!'였을 거 같네요.^^;

마늘빵 2007-04-07 14:35   좋아요 0 | URL
영어가 필요한 학문이 있고 그렇지 않은 학문이 있다 생각합니다. 필요하더라도 강의까지 하느냐, 아니면 그저 읽고 해석하는 수준이냐도 달라질 것이고요. 최근의 학부에서의 모든 강의를 영어로 하겠다는 흐름은, 본질에서 한참 벗어났다고 봅니다. 국어국문학과 교수 채용시에도 영어를 보고, 강의도 영어로 하라고 한다면 말 다 했죠. 영어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은 아주 적습니다.

로쟈 2007-04-07 18:38   좋아요 0 | URL
경영학과나 이공계 학과처럼 아예 '영어 교재'를 사용하는 경우에 '영어강의'가 필요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적으로 그 분야의 의사소통이 '영어'로 더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영어강의'의 비율을 세계화의 척도로 삼으려는 것이죠. 그 논리에 있어서 '영어공용화론'을 그대로 답습하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기인 2007-04-07 19:28   좋아요 0 | URL
보다 바람직한 대답은 'of course~!'였을까요.. 국문학도의 입장에서, 한국어의 풍요로움이라는 방향, 한국어로 학문를 해야한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이것이 세계적으로는 궁극적으로는 다양성이라는 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고요. 이다/있다 라는 구분 등 언어와 사유에는 분명 긴밀한 끈이 있고, 인류의 입장에서 다양한 언어들이 다기하게 발전하는 것이 길게 보았을 때 좋을 것이라는 원칙에 동의합니다.
바벨탑을 세우는 것도 좋은 점은 있겠지만, 그것이 '영어'라는 데에는 일정 거부감이 드네요. 에스페란토어 같은 '국제적 인공어'를 다시 부흥할 수 있다면 각 집단의 언어와 함께 전세계 공용어 같은 것은 좋을 것 같습니디만.. 어쨌든 퍼갑니다.
한국문학사 영어로 강의하면.. 정말 암담할 것 같네요.

로쟈 2007-04-10 08:29   좋아요 0 | URL
미국 학생들에게만 '영어'로 강의하면 되지 않을까요?^^;

jalousies 2007-04-11 08:25   좋아요 0 | URL
학교를 떠난 지 10년 정도 되는데, 또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면 영어로 불어를 가르치는 날이 오겠군요. 어쩌면 그 시절에 불어과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르겠네요. 세상이 미쳐가는건지, 대학이 미쳐가는건지...
 

지난 2월에 출간된 <궁정전투의 국제화>(그린비, 2007)란 책에 대해서는 예전에 이미 리뷰를 소개한 바 있는데(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aperId=1067249) 이에 대한 읽을 만한 리뷰가 다시 눈에 띄기에 자료삼아 옮겨놓는다. 소장도서이긴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언제쯤 읽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리뷰들만 열심히 읽다 보니, 덩달아 읽은 듯한 느낌도 들고). 책은 라틴아메리카의 경우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리뷰의 필자인 이승원 연구교수는 '새로운 지식네트워크'의 형성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라고 제안한다. 고민해볼 문제이다.

교수신문(07. 04. 02) 미국 유학파와 전통적 엘리트의 힘겨루기

1917년 1월 1일 한국 근대문학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춘원 이광수가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에 <무정>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족주의자로서 제국주의에 협력했던 이광수는 구시대의 유학자들과 철저하게 단절하고 서양 학문으로 무장한 신세대 엘리트였다.



<무정>의 주인공인 경성학교 영어교사 이형식은 이광수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식민지 조선 민족의 계몽을 위해 목청을 돋웠던 이형식은 조선의 무궁한 영광과 발전을 위해 미국 ‘시카고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과연 이광수가 걸어갔던 길을 이형식도 따라 갔을까. <무정>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광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땅은 날로 아름다워 간다.” “우리의 어둡던 정신에는 날로 빛이 난다.” 이광수의 바람대로 이형식이 귀국한 식민지 조선은 과연 아름답고 빛이 났던가.

이광수의 혜안이 그야말로 글로벌했는지는 몰라도 이후 시공간을 뛰어 넘어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이형식과 같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른바 시카고 보이스다. 이들은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유학한 칠레 경제학자들의 별칭이다. 시카고 보이스는 칠레로 돌아와 전통적 엘리트들인 대지주·법률가들과 치열한 힘겨루기를 벌인다. 구시대 엘리트들은 자본과 가문으로 무장했고, 시카고 보이스는 미국산 경제학을 무기로 삼았다.

<궁정전투의 국제화>의 두 저자는 이들의 대결을 은유적으로 ‘궁정전투’라 부른다. 그러나 저자들이 단순하게 칠레 내의 정치적 헤게모니의 싸움 혹은 국가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궁정전투’로 은유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 만들어낸 지식 네트워크와 이를 기반으로 정치·경제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라틴아메리카(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의 소수 관료들과 국제적 엘리트들 사이의 ‘은밀한 동맹’이야말로 궁정전투의 본질이다.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를 사례로 미국산 지식의 국가권력화를 미시적인 차원에서 분석한 역작이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유럽대륙을 지향하는 법률의 강조에서 미국을 지향하는 경제학으로의 이동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이다. 또한 그 변동의 순간들을 미국의 전략적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궁정전투의 국제화>는 라틴아메리카에 한정하지 않고 국가권력을 둘러싼 지식투쟁의 흔적들을 국제적인 차원에서 분석한 실증적 사례 보고서이다.

저자들이 분석 대상으로 삼은 모델은 미국의 시카고학파와 그의 적자들인 시카고 보이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경제·법률 엘리트들을 비롯한 국제적 법률 엘리트들 간의 역학관계이다. 저자들이 말하는 시카고학파는 케네디 정부와 함께 형성된다. 케네디는 동부 아이비리그 출신인 케인즈학파 경제학자들을 정부의 관료로 대거 등용한다. 마침 미국 중부에 위치한 시카고대학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시카고학파가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시카고학파는 공화당의 소수 보수주의자들과 연대하면서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해 갔다.

시카고학파는 대부분 미국 이민 1세대와 2세대였다. 그들은 그동안 미국을 지배해왔던 토착 엘리트들과 경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들에겐 가문의 영광도 자본도 사회적 ‘빽’도 없었다. 하여 그들은 지적 경쟁을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지적 경쟁을 위해 동원한 학문은 수학적인 기술이었다. 수학적인 엄격성이야말로 케인즈학파를 이길 수 있는 유용한 도구였다.

이 무렵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전략을 마련한다. 1960년대는 이른바 냉전 전략 모델이 절정에 도달했던 시기였다. 포드재단, 국제개발처, 진보를 위한 동맹, 법과 발전 등의 기관과 프로그램이 가동됐다. 이런 것들은 라틴아메리카의 젊은이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미국의 해외지원 프로그램에 힘입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라틴아메리카의 젊은이들은 자연스럽게 시카고학파의 제자가 되었다.

시카고학파가 주장했던 수리경제학은 언어·문화적인 능력의 중요성을 최소화했다. 따라서 수리경제학은 미국에 있는 외국 학생들을 통합하는 데 매력적인 학문이었다. 미국인들과는 문화도 언어도 인종도 다른 라틴아메리카 유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형식이 문명의 상징을 서양의 기계문물과 영어로 파악했듯이, 라틴아메리카의 젊은이들에게는 수리경제학이 곧 세계화의 상징이었다.



시카고학파가 길러낸 칠레의 시카고 보이스는 쿠데타와 함께 등장했다. 이미 그들은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형성했던 것과 유사한 정치동맹을 칠레에서 형성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973년 피노체트는 아옌데 정권을 쿠데타를 통해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았다. 피노체트는 그동안 권력의 심장부에 포진해 있었던 구엘리트 세력을 추방·살해하고 그 자리에 시카고 보이스를 등용했다. 그들은 기술적 전문성과 정치적 개입의 결합을 강조하는 용어인 테크노폴(technopols)로 찬양되었다.

시카고 보이스는 단순한 경제학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정치가였고, 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의사(擬似) 군인’이었다. 미국의 시카고학파는 자신들의 지식을 국제시장에 유통시켰으며 라틴아메리카는 이러한 지식을 수입하여 국가의 헤게모니를 미국식으로 장악해갔다. 신엘리트에 의해서 축출된 구엘리트들 역시 새로운 상징권력을 마련했다. 법률로 무장한 전통적인 엘리트들은 인권을 무기로 신엘리트들과 투쟁하였다.

그렇지만 군부의 억압적인 정치권력에 저항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쳤던 지식인들 또한 미국과 연루되어 있었다. 인권운동이나 시민운동의 주축들은 칠레와 브라질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권력을 획득하자 곧 정치계로 입문했다. 더욱이 새로운 형태의 초국가적인 NGO는 세계화를 정당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힘썼다. 그들은 사회적 폭력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정치 기술을 발명하는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사업 법률가가 되어 재계의 이익에 봉사하는 ‘고용된 총잡이’의 역할을 자임하였다.

한쪽에는 경제, 다른 한쪽에는 법률이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권력을 구성하는 핵심이었다. 미국이 생산한 법률과 경제학은 라틴아메리카에 이식되어 상징권력이자 상징자본으로 변화했다. 막스 베버의 말처럼 정치란 ‘악마적인 힘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가들이 이런 악마적인 힘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동원한 것은 미국산 지식이자 그들이 구성한 지식 네트워크였다.

이브 드잘레이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냉전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라틴아메리카의 궁정전투는 동남아시아나 한국에서도 익숙한 시나리오다. 따라서 <궁정전투의 국제화>는 한국 사회의 정치권력을 분석하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 현재 한국에는 수많은 ‘이형식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고급 기술과 지식으로 무장하여 전문기술지식을 독점하는 테크노크라트이다. 지식인은 권위를 통해 대중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 대중적이어야만 한다.



한국의 ‘궁정전투’를 분석하는 것도 물론 의미는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질문해야 할 것은 그동안 한국을 지배해 왔던 미국산 지식 네트워크에 균열을 내고 이를 재배치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 네트워크의 형성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가 아닐까. 어린 시절 해외에 살다가 장성한 뒤 일자리를 찾아 국내로 들어오는 젊은이들을 가리켜 ‘연어족’이라 부른다. 조기유학 열풍에 따라 급증하는 미래의 연어족들은 과연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까. 그들이 이 ‘궁정전투’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의 네트워크는 어떤 모습일까.(이승원 / 한양대·국어국문학)

07. 04.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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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대선 이슈 중 하나는 '3불 정책' 존폐 문제가 될 거라는 전망이 있다. 대학마다 소리 높여서 '3불' 폐지를 외치고 있는데(프레시안의 관련기사들은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section_sub.asp?s_menu=사회&s_sub_menu=교육), 그와는 반대되는 목소리도 한편에는 엄존한다(그리고 내가 보기엔 더 설득력이 있다). 서로 다른 입장들을 대조해놓고 판단할 문제이지만 한국 대학교육의 문제가 '모자란 학생들'에게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부실한 대학' 자체에 있다고 주장하는 두 개의 칼럼을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7. 04. 02) 잘난 대학이 못난 애들 탓?

어린 시절 골목길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장면. 대낮부터 소주 한잔 했는지 얼굴이 불콰하게 물든 어른이 쪼그리고 앉아 애들을 불러 세운다. “너희들, 누가 싸움 잘 해?” 애들은 서로 눈만 멀뚱거린다. 어른은 계속 경쟁심을 북돋운다. “너, 이 친구한테 이길 수 있어?” 결국 몇 명의 애들이 아무 소득도 없는 싸움을 하고, 어른은 이를 보고 즐긴다.

최근 한국의 어른 몇 분이 애들 싸움판을 ‘본격적’으로 키우자는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아 놀랍다. 할일 없는 어른이 골목길에서 심심풀이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명문대학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맨정신’으로 하는 말이다. 교육부의 ‘3불(不) 정책’을 폐지하라고 말이다. 삼불정책이란 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금지를 말하는 것이니, 상아탑의 선비들이 점잖은 말로 “똑똑한 애, 돈 많은 애들 못 뽑아 대학이 발전 못하니, 금지를 풀어 달라”는 것이다. 결국 전국의 애들 모아 놓고 “너희들 중 누가 공부 젤 잘해?” “부모님 돈 많은 사람 손들어봐!”라고 하고 싶다는 것 아닌가?

한번 따져보자. 한국 대학 신입생의 학력 수준은 세계의 어느 명문 대학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한국 초등학생의 학력은 세계 최고 수준급이고,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학력이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모두 세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학교 급별로 볼 때 가장 ‘부끄러운 성적’을 내는 곳은 대학 아니던가? 대학 들어갈 때는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었는데, 나올 때는 세계는커녕, 국내 시장에서도 별 쓸모가 없는 부실한 인간이 되어 나온다는 것이 한국의 골칫 거리 아닌가? 그런 대학이 입학생 실력 탓하고 있으니, 정말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그리고 큰 돈보따리를 들고 들어오는 학생을 못 뽑기에 대학이 발전 못한다고? 신입생의 학력문제보다는 돈문제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말에는 일정 부분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하지만 과연 선진국 대학의 재정적 측면의 경쟁력이 입학생이 들고 들어오는 돈에서 나오는 것일까? 교수들이 따오는 연구비, 그 연구결과로 취득한 지적재산권이 벌어들이는 돈, 성공한 졸업생들이 모교에 내는 기금, 총장들이 발로 뛰어 기업으로부터 끌어들인 기금 등이 모여 남다른 차이를 만드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결국 돈 버는 어른들이 대학 발전의 밑거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어른들은 왜 자꾸 ‘애들’ 싸움에 집착하는가? 경쟁이 치열한 국제사회에서 이기는 일이 중요하다면, 어른들이 잘 싸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자면 고등학생들보다 대학생들이 더 열심히 공부하고, 학생들보다 교사와 교수들이 교육과 연구 ‘시합’에서 더 치열한 경쟁을 벌려야 정상이다. 그리고 학교뿐만 아니라 다른 일터에서도 어른들이 열심히 경쟁하고, 자주 평가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어릴 때부터 죽도록(?) 공부하여 실력을 쌓아 나가도, 먼저 자리잡은 어른들이 철밥통 차지하고 앉아, “나는 열외로 하고, 너희들끼리 싸워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이미 세계에서도 가장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에겐 여행을 하고, 명작도 읽고, 남을 돕는 봉사를 하면서 자신의 앞날에 대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여유를 주어야 한다. 정말로 더 열심히 공부하고 경쟁해야 할 사람은 한국의 애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다.(류재명/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

 

한국일보(07. 03. 31) 서울대가 하버드가 못되는 이유

가끔 어디 어디 선정 세계 대학 순위라는 게 언론에 보도된다. 예를 들어 요전에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발표한 '세계 100대 글로벌 대학'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도 하고, 시사주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도 한다. 그 때마다 베이징대도 순위에 들었는데 한국 대학은 하나도 못 들었네, 200위권 밖으로 밀렸네 하는 개탄이 나온다. 유달리 등수에 집착하는 한국인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대학 순위를 새삼 거론하는 이유는 최근 서울대를 시작으로 각계에서 "정부의 3불(不) 정책이 대학 경쟁력 확보에 암초다"라는 주장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을 뽑을 때 본고사도 보이지 못하고, 지망생의 출신 고교를 등급화해서 차별대우하지도 하지 못하고, 기여입학제도 못하는 바람에 대학의 경쟁력이 가차없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대학 자율을 저해하는 규제 조치이니 누가 봐도 바람직할 것은 아니다.

● 경쟁력 약한 게 삼불 탓?

그런데, 대학의 경쟁력이란 게 무엇일까? 그게 뭐길래 3불 정책이 그토록 방해가 될까? 대학의 순위를 매기는 기관들의 기준을 보는 것이 좋겠다. 요약하면 해당 학교 교수나 연구원의 논문이 권위 있는 전문지에 인용된 횟수, 외국인 교수ㆍ학생의 비율, 교수 1인당 논문인용지수, 교수 1인당 학생 비율, 도서관 장서 규모 같은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어디에도 신입생의 우수성이라는 항목은 없다.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런 정도의 우수성은 기본이므로 특별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낫다는 서울대조차 이런 순위에 별로 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3불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심하게 말해서 신입생이 우수하지 않아서이다. 그리고 국가가 3불이라는 이름으로 우수한 신입생을 뽑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하버드대 총장이나 옥스퍼드대 총장에게 해 주면 뭐라고 할까? 아마 What are you talking about?(무슨 소리요?)이라고 할 것이다.

연구비를 키우고, 우수 교수를 어떻게든 영입하고, 무능 교수와 불량 학생은 쫓아내고, 특화할 분야에 집중하고, 석ㆍ박사 과정 학생의 연구를 독려하고, 기업과의 연계를 극대화하고, 특허를 많이 내고 하는 노력에 전력투구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이제 갓 들어와서 4년 동안 키워야 겨우 써먹을까 말까 한 애기들한테 대학의 경쟁력 책임을 몽땅 갖다 씌우는 것이다. 비유가 약간 부적절하지만 솜씨 없는 목수가 연장 탓하는 격이다. 도편수나 소목장쯤 되면 연장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법이다. 하버드대생을 만드는 것은 하버드대인데 우리는 서울대생이 서울대를 만든다.

하기야 미국의 경쟁력 높은 대학들도 우수학생을 뽑는 일을 중시해서 많은 인력과 노력을 투입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우리와 다르다. 미국 대학에서 입학 전형 일을 했던 재미동포 안젤라 엄씨의 분석에 따르면 대개 하버드대에 응시한 고교 수석 졸업생의 80%가 낙방한다. 우리나라의 수능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SAT 만점자가 아이비 리그 대학 입시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숱하다. 본고사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왜 그럴까? 평범한 우수생이 아니라 특출한 학생을 뽑으려 하기 때문이다.

● 하버드와 다른 점 알아야

100점 만점 시험에서 100점과 90 몇 점은 별 차이가 없다고 보고 학생의 특출한 자질, 열정, 헌신, 성실성, 인간적 성숙도 같은 덕목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대에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부어도 하버드대처럼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교육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야 자체가 너무 협소하기 때문이다. 제 못난 것이 3불 때문이라니…. (이광일 논설위원) 

07. 04. 02.

P.S. 최근의 '3불 페지'론과 본고사 논란을 '서울대 엘리뜨들의 퇴행성 본고사주의'로, 보다 구체적으론 '70년대 서울대 출신의 노스탤지어'로 분석하는 시각도 설득력이 있다. 사회학자인 김종엽 한신대 교수의 '창비논평'이다( http://www.changbi.com/weeklyreview/content.asp?pID=106&pPageID=&pPageCnt=&pBlockID=&pBlockCnt=&pDir=&pSearch=&pSearchS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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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4-02 13:36   좋아요 0 | URL
백번 맞는 말이여요.

biosculp 2007-04-03 00:44   좋아요 0 | URL
읽다보니 생각나는게 원동연, 5차원 독서법과 학문의 9단계라는 책의 말미에 나오는 애기인데요. 한국 교육의 약점으로 성적과 실력의 괴리를 애기하더군요.
영어 성적은 높은데 실제로 영어를 잘 사용하지 못한다. 역사 성적은 높은데 역사의식이 없다. 윤리 성적은 높은데 윤리성이 결여되어 있다. 체육성적은 높으나 건강하지 않고 과학성적은 높은데 과학적 사고방식을 갖지 못한 실력없는 사람들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다 정말 웃음이 나오면 고개가 끄덕여 지던데, 요즘 초딩들 공부가 가관이거든요. 수학교육전공하시는 분이 같은 문제라도 초딩, 중딩, 고딩때 반복되지만 개념이해에 따라 풀이 방법이 다르기에 섣부른 선행은 기계적인 문제풀이만 암기할 뿐이지 창조력을 말살시켜버린다고 경고하는데 초딩들이 중딩고딩들 풀이 방법으로 문제풀이에 전력하고, 이런 애들이 어딜가나 성적은 좋게 나오고 우리나라 명문대학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되는데, 서울대 어느교수는 0.001%가 차이나도 구별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성적은 참 좋은데 실력은?
이런 웃지못할 상황이 계속 벌어질것 같군요.

로쟈 2007-04-03 15:14   좋아요 0 | URL
0.001% 차이를 식별해내는 게 교육공학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육'은 아닌 것이죠. 입시전형만 바꾸면 대학마다 숨겨진 '천재들'을 선발할 수 있다는 것인지. '공학'이란 게 워낙에 놀라운 걸 만들어내긴 하지만...
 

아침신문에서 두 가지 기사를 옮겨놓는다. 역사가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해서 제목은 '우리가 상상하는 한국사'라고 붙였다.  

경향신문(07. 03. 27) 박노자교수 “논개는 조작된 영웅…정치적 미화”

최근 경남 진주 의기사(義妓祠)에 있는 논개(論介) 영정의 복사본을 강제로 떼어낸 진주시민단체 회원 4명이 대법원으로부터 유죄를 선고 받았다. 이들은 친일 화가 이당 김은호가 영정을 그렸다는 이유로 영정을 떼어냈다. 논개를 국난 극복의 대표적인 여성 영웅, 민족의 영웅으로 인식하는 일반인의 시선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연 논개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왜장을 껴안고 죽은 것일까. 박노자 노르웨이 국립오슬로대 교수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는 논개가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껴안고 투신한 것도, 전남 장수가 고향으로 본관은 신안 주씨라는 인적 사항도 모두 후대에 조작된 것들이라고 주장한다. 박교수는 오는 31일 연세대 위당관에서 열릴 열상고전연구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임진왜란과 의기(義妓)전승-전쟁, 도덕, 여성’이란 논문을 통해 논개의 죽음에 수많은 정치적 미화가 곁들여졌다고 발표한다.



논개와 관련된 최고(最古)의 자료인 유몽인의 ‘어우야담(1621)’에는 논개가 ‘욕을 보지 않으려고 죽은’ 것으로 쓰여있다. 유몽인은 임진왜란때 광해군을 따라 진주에 갔을 당시 들은 목격담을 기록하고, 자신의 해석을 덧붙여 논개의 죽음을 ‘유교 군주의 교화를 입어 차마 나라를 버리고 적을 따르지 못하는’ 관기의 가상한 충성심으로 파악했다.

논개의 죽음에 대한 본격적인 각색은 18세기 초 진주지역 유생과 지방관료들에 의해 진행된다. 이들은 조정에 논개에 대한 봉작과 사당 건립을 요청하면서 그저 ‘왜군’으로 묘사되던 ‘강간범’을 ‘왜장’으로 승격시키고, 강간범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했던 논개를 의도적으로 왜장을 유혹해 투신해 전공을 세운 여성 의사(義士)로 그려낸다. 18세기 중반 논개를 기리는 의기사가 세워진 후에는 출신, 신분이 불분명하던 논개에게 고향과 본관이 생긴다. 또 임진왜란 당시 전훈을 세우고 순국한 의병장 최경회(1532~93)의 천첩으로 신분도 승격됐다.

박교수는 논개의 신격화를 당시 진주가 차지하던 사회정치적인 지위와 연결지어 설명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따르면 진주는 구례, 남원과 더불어 조선 최대의 옥토로 일컬어지던 곳. 이를 바탕으로 진주의 양반은 강력한 세력을 유지했고 조선 초기만해도 중앙으로의 진출 역시 활발했다. 진주가 고향인 남명 조식(1501~72)은 이곳에서 유가의 실천정신을 중시하며 남명학파를 이끌었다. 그러나 남명학을 이념적 지주로 삼던 광해군 정권이 인조반정(1623) 이후 몰락하고 이인좌의 난(1728)의 사상적 뿌리가 남명학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진주는 역모의 사상적 고향으로 찍혀 차별을 받기 시작했다.

박교수는 이 때문에 진주의 유생과 사대부들이 진주를 충절의 고향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논개의 신격화에 매달렸다고 설명한다.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민족주의적 요소까지 덧씌워지면서 논개가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기에 이르렀다는 것. 박교수는 논개의 행동을 민족주의, 국가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논개가 설령 국가와 임금 혹은 민족을 생각하지 않았다하더라도 자신을 지킨 행동이 폄훼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윤민용기자)

담비(07. 03. 26) 상상적인 국가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현재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신라가 당을 축출함으로써 삼국통일이 완수되며,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은 하나가 되어 단일한 민족문화와 사회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통일신라론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이런 묘사는 손진태의 '조선민족사개론'(1948)이나 '국사대요'(1949)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 시원은 1892년에 출판된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 1858~1922)의 '朝鮮史'에서 최초로 확인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윤선태 동국대 교수는 최근 나온 '신라문화' 제29집에 발표한 논문에서 "통일신라론이 왜 등장했고, 한국의 현행 국사체계 속에 어떤 과정을 거쳐 뿌리내리게 되었는가를 추적"했다.

논문에 따르면 갑오개혁 이후 역사를 소비하는 주체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기존에는 유교 지식인의 經學을 보조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했던 역사가 갑오개혁 후에는 국민을 지속적으로 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모하였다. 그 일환으로 등장한 역사교과서가 바로 1902년 金澤榮의 '동사집략'(1902)과 玄采의 '동국사략'(1906), '중등교과 동국사략'(1908) 등이다. 이들은 직접 지은 것이 아니라 하야시의 '조선사'를 거의 그대로 역술한 것들로서, 기존 연구들은 이들을 식민사관의 수용으로만 평가하였을뿐, 근대역사학의 성립과정 속에서 세밀하게 검토하지 않았다.

하야시의 '조선사'에는 '신라의 통일'이라는 항목이 별도로 설정돼 있는데, 그 서술이 현재 통용되는 통일신라론의 선구적 면모를 갖추고 있다. 전통시대의 신라정통론과 하야시의 그것은 질적으로 달랐다. 가령 조선 전기에 찬술된 '동국통감'에는 신라기를 독립시켜 다루고 있지만, 통일의 시점이 고구려가 멸망한 문무왕 8년으로 설정돼 있다. 신라기 독립의 명분도 신라가 箕子의 유풍을 간직, 계승하였고, 오륜이 돈독하다는 등 유교적 가치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야시는 당세력의 축출을 삼국통일의 시점으로 새롭게 설정했다. 바로 나당의 대립을 강조한 새로운 담론이었던 것이다. 이런 하야시의 입론은 청일전쟁 직전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윤 교수는 추적해 들어간다. 당시 분위기는 강화도사건을 계기로 체결된 1876년 '한일수호조규'의 "조선국은 自主之邦으로 일본국과 平等之權을 보유한다"는 부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서의 자주와 평등은 기본적으로 전근대 동아시아세계의 계서적 국제질서관념 속에서 청국에 대한 조선의 종속관계를 단절시켜, 조선을 전통적인 화이관 밖으로 끌어내려는 일본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윤 교수는 분석한다. 게다가 하야시가 '통일신라론'을 만들어낸 시기인 1885년부터 1893년은 일본이 조선을 둘러싼 청국과의 쟁탈전에서 패배한 시점이기도 하다.

한편, 조선의 경우를 보자. 광무개혁을 주도한 고종정권은 종래의 지역적 단위의 공동체를 넘어 국가단위의 통합이 필요했다. 이 때 하야시가 만들어놓은, 중국을 타자로 한 조선사 체계가 아주 요긴한 내러티브로 다가온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역사가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를 활용했을까. 김택영은 '동사집략'에서 "깜깜한 밤중에 갑자기 이웃집에 불난 듯 역사의 내용이 밝하졌다"라며 하야시의 임나일본부설을 적극 칭송하며 수용하였다. 그에게 근대적 국사체계에 대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택영에게 과거의 임나일본부는 현재의 조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저 하나의 사료에 불과했던 것이다.

반면, 현채의 '동국사략'은 하야시의 '조선사'를 역술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변용했다. 하야시와는 달리 단군의 개국을 확실시 하였고, 위만과 四郡은 목록에서 빼버렸다. 임나는 목차엔 그냥 두었지만, 설명은 통째로 들어냈다. 이는 그가 독자적인 조선의 민족사를 고민하였음을 말해준다. 그의 '동국사략'은 1909년 일제에 의해 판금조치가 되는 등 수난을 겪었지만, 이후 역사서들의 기준이 되었다. 현채의 이런 주체적 사관은 그가 역관 출신의 일본통으로서 일본의 근대적 변화를 몸소 겪었기 때문이라는 게 윤 교수의 분석이다. 그리고 1903년 무렵의 시간대에 양계초의 '응빙실문집'이 들어오고, 사회진화론 및 근대역사학 방법론이 널리 보급되었던 때였다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이렇게 하야시의 통일신라론은 조선의 역사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통일신라론이 명실상부한 보편적 역사진리로 각인되는 과정에는 또 다른 작용이 있었다. 바로 1902년 이래 미술사학자 세키노 타다시 등이 경주지역 발굴이 그것이다. 그 유명한 석굴암이 이 시기 발굴된 것이다. 산기슭에 묻혀있던 하나의 토굴에 불과했던 석굴암은 타다시를 비롯해 야나기 무네요시 등에 의해 "동양의 종교와 예술의 귀결"이라는 평을 받았다. 나카무라 료헤이는 "석굴암이야말로 신라 예술의 정수를 모은 것이다. 아니, 조선만이 아니라 地上美의 전당이다"라고까지 말했다. 

석굴암과 불국사 등 신라의 예술은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독일의 미론가 안드레아 에카르트는 "경주의 석굴암이 동양문화의 가장 중요한 기념비임은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당연히 이런 언설들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일본의 관변학자 세키노와 민예의 창시자 야나기가 건립해놓은 '신라'라는 박물관에 매혹된 관람객이자 학도로서 그 박물관 견학의 결과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당 세력을 몰아낸 이후 신라사가 황금문명을 이룬다고 기술한 황의돈의 '신편조선역사'(1923), 감상적이고 慕古主義적인 단재사학을 배격함과 동시에 식민사관도 아울러 비판한 안확이 신라의 외세 이용과 삼국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조선문명사'(1923), 신라의 정신과 문화를 바탕으로 이른바 '朝鮮心'을 이끌어내는 문일평의 '掌篇新羅史'(1935, '조광'), "광대한 영토와 인민을 상실하긴 했지만, 신라통일로 그나마 민족 모체의 결정을 보게 되었으며 빈번했던 종족 내부의 상투적 비극이 정지되었다"고 말한 손진태의 '조선민족사개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윤 교수는 "신라를 지나 고려 이후 미술의 쇠퇴, 조선문화의 쇠퇴 등은 현실적인 제국과 식민구조를 정당화하는 기조로 작용했다. 신라문화는 일본 고대문화의 아류로서 존재한 것이지, 별도의 독립된 학문영역은 아니었다"라고 지적한다.

아무튼 식민지시기를 통틀어 역사, 문학, 종교, 미술 등 통일신라론의 개진은 다방면에 걸쳐 이뤄졌다. 그것은 한국인의 지적, 상상적 능력이 전면적으로 동원된 작업이었고, 후대 한국의 정치실험과 문화 건설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윤 교수는 결론에서 "통일신라의 발명과 확립은 문화와 민족의 지위가 사라져버렸던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이 기획할 수 있었던 상상적인 국가이야기의 시작으로서, 간과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라고 평한다.(리뷰팀)

07. 0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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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문제제기를 기화로 하여 한국 기독교와 관련된 글들을 몇 차례 옮겨오고 몇 마디 덧붙이기도 했다. 그가 출간한 <기독교 성서의 이해>(통나무, 2007)도 출간되자 마자 사두긴 했는데 아직 펼쳐볼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경향신문에 그 책에 대한 차분한 리뷰가 게재되었기에 옮겨놓는다. 미리 읽어둘 만하다.

경향신문(07. 03. 24) ‘보수 교리’ 뒤엎은 ‘도발적 비판’

도올 김용옥은 최근 ‘기독교 성서의 이해’와 ‘요한복음 강해’라는 두 권의 저서를 동시에 출간함으로써 한국 그리스도교계에 충격적인 화두를 던졌다. 삼위일체와 동정녀 탄생의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적 예수의 신성(神性)성 문제 등과 관련해 정통적인 한국 보수 신학계와 교회가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올은 “콘스탄티누스(313년) 이후의 역사는 ‘성서주의’의 본연으로부터 너무 이탈되어 있다.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가 아니라, 황제교화된 다른 차원의 기독교 발자취”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성서주의’는 ‘교권주의’와 대비되는 말이다. 그는 삼위일체 교리 논쟁도 ‘교권주의’의 산물로 파악한다. 그래서 삼위일체를 부정하다가 이단으로 지목된 아리우스를 황제교화된 교회의 권위로 부당하게 축출된 하나의 희생양이라고 본다.

이에 대해 보수적 신학자인 이국헌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된 존재(니케아 신조)이며, 그 분은 완전한 인간이시다(칼케돈 신경)”라는 정통주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도올은 오히려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보다 반대파 아리우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정통적 삼위일체론의 교권적 해석을 거부한다.

도올은 또 “복음서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아버지(파테르)와 아들(휘오스)’이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개념은 예수의 자기 이해 속에서 일차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며, 가부장적 유대인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쓰였던 토속적 개념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신적 존재”라기보다는 “자비의 품”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버지를 존재론적으로 해석하고 증명하려던 일체의 시도를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도올은 유일신론에 대해서도 다르게 해석한다. 예수 이전의 유대교 전통에서도 하나님은 유일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외의 다른 신들을 ‘참신’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성서 기자들의 입장으로 보면 어떨까. 도올은 “마르시온이 구약을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정당한 일이다”라면서 구약성서와의 단절의 정당성을 부추기고 있다. 그의 지적대로 신약성서가 구약성서의 율법적 정신을 대치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이 더이상 편협한 유대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주적 하나님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성서의 창세기가 지니는 다양한 메타포와 예언서들이 외치는 정의와 공의는 시대를 막론하고 신자들에게 언제든지 효력을 발생한다.

도올이 말하는 ‘낭송문화로서의 복음서’는 여전히 문학적 효과 이상을 던져주지 못한다. ‘죽음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도 심청전의 문맥에서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청의 죽음과 연꽃에서의 부활은 “어린 도올의 통곡을 자아내는 ‘역사적 사실’이고”, 그렇게 ‘믿는’ 자에게는 감동이 크며 기쁜 소식으로서의 복음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또 다른 의미의 “역사적 사실”이 된다. 예컨대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의 확충이라는 점과 그리스도 복음의 독특성이 다른 문맥 속에서 보편적 이야기로 세속화되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그는 또 동정녀 탄생을 우리나라의 시조설화인 난생설화와 비교하고, 마태가 이사야서 7장14절을 인용하여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보는 것은 그릇된 인용이라고 비판한다. “순결한 처녀로서의 마리아 이미지는 근본적으로 난센스”라면서 예수의 동정녀 탄생도 은근히 부정하는 눈초리다.

이 책에서 도올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요한복음과 로고스 기독론’이다. 로고스는 ‘말씀’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이는 ‘나의 말씀’이 내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과 나의 말씀은 하나로 통한다. 이러한 논리를 확대해서 도올은 로고스의 화신으로서의 아인슈타인을 언급한다. 범인이 접하기 어려운 상대성이론의 수리적 사유를 영감으로 구성해 내었는데 그것이 로고스다. 그 로고스가 아인슈타인이라는 역사적 인물로서 육화되어 나타났다. 이를 극단화시켜보면 ‘과학적 진리의 구조’를 띠고 발언되는 모든 견해는 로고스의 기능을 가지게 되며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은 로고스의 화신이 된다. 따라서 붓다도 ‘연기(緣起)’적 사실을 말한 것 하나만으로도 로고스의 화신이 되는 것이 아닐까.

도올의 일부 주장은 실상 진보주의적 신학자들이 이미 개진해왔던 내용이다. 이러한 책이 만일 서양에서 발행되었다면 그다지 관심을 끌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계몽주의 이후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로부터 무수히 나왔다. 유독 한국에서 반론이 거센 까닭은 그만큼 한국 그리스도교가 보수적인 색채가 짙다는 뜻도 되겠지만 진보적인 해석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까닭도 있다.

성서는 언제나 누구에게든 열려 있는 책이기에 다양한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한 해석과 주장들을 감정적으로 혹은 교리적으로 다투는 식으로 대해서는 안될 것이며, 성숙하고 열린 자세로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본다. 본서의 출간을 기화로 한국 기독교계에 진보와 보수간의 건전한 대화의 신학적 풍토를 기대해 본다.(이명권|코리안아쉬람대표·종교학박사)

07. 03. 25.

P.S. 마지막 문단의 멘트, 곧 "이러한 책이 만일 서양에서 발행되었다면 그다지 관심을 끌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계몽주의 이후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로부터 무수히 나왔다." 같은 진술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식적인 주장을 상식으로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과 지적/정서적 성숙이다. 그럴 때 아래와 같은 박노자의 '만감' 또한 '상식'(공통감각!)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한국의 교육문제에 대한 박노자의 지적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지만 종교문제에 대한 그의 '외부자적 시선'에는 많은 부분 공감한다. 제기한 문제가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는 '지각'을 갖고 있는 걸 보면 그의 마음상태도 거의 한국인이 다 된 듯하다). 

박노자글방(07. 03. 14) 유사 성행위와 유사 신앙 행위

유럽 같으면 조금 더 대담하게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한국 같으면 "이미지 클럽/대딸방에서 아르바이트한다"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여성이 거의 없을 듯합니다. 대체로 이와 같은 일이 "부끄러운 직업"으로 인식되지요. 물론 실제로는 성매매 정도로는 아니지만 일단 성적 이미지를 상품화시키고 남성의 일방적인 만족을 전제로 하는 직업인 만큼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고 또 심신상의 피로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기에 별로 "자랑"스러워할 것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도 과연 다른 직종에 비해 그렇게 "부끄럽게"만 생각해야 하나요? 솔직한 말씀으로는, 저는 "마사지 클럽 아가씨"보다 상당수의 성직자들이 훨씬 더 부끄러운 직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사지클럽에 오는 손님도 한 시간 동안의 "플레이"를 "사랑"으로 착각할 일이 없지만 서빙하는 여성도 굳이 "사랑" 따위를 연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지 않습니까? "클럽"에서 이루어지는 행위가 일시적인 만족을 주되 본격적으로 외로움과 같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대체물"이라는 것을, 양쪽에서 다 알고 솔직하게 하는 것이지요. "유사 성행위"와 남녀간의 진짜 사랑 사이의 거리란 거의 천문학적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컨대 대다수의 교회에서 설교되어지는 이야기나 행해지는 행위와,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 사랑"의 사이의 거리도 거의 같을 것입니다. "우리 종파"가 아닌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느니 진정한 영적 생활을 못한다느니 하는 이야기와, 차별과 배제가 없는 하나님의 평등한 사랑을, 사실 같은 차원에서 논하기조차 어렵지요. 그리고 만법의 연기를 깨닫고 팔정도를 통해 사생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는 불교의 원래 논리와, "49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거의 메꿀 수 없는 갭이 벌어져 있는 것이지요. 대다수의 교회나 사찰에서 "신앙"이라고 포장하여 파는 것은, 마사지클럽에서의 "유사 행위"와 다를 바 없는 진정한 신앙의 "대체품" 내지 그 수준에도 못미치는 신앙적 "짝퉁 상품"입니다.

그런데 마사지클럽 아가씨가 자신의 손을 움직이는 것이 돈이 아닌 사랑이라고 거짓말 하지 않는 것과 달리, 수많은 목사님 분들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전달한다"고 큰 소리를 치지 않습니까? 이 분들이 차라리 이미지클럽에 가서 거기에서 진솔함과 겸손함을 배웠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 분들께서 "부자가 낙원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씀을 충실히 따라 가난은 몰라도 적어도 국내 도시 근로자의 한달 평균 소득인 1,600.000-1,700.000원 정도로 자신들의 소득과 소비를 조절했으면 그나마 "하나님"과의 진정한 연결고리가 보였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과연 많습니까? 그리고 교회에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었다면 지금의 교회가 "사학법"을 갖고 떠드는 대신에 아이들의 인성을 파괴하는 성적, 등수 없애기 운동 정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교회"/"사찰"이라는 제도상에 이야기되어지고 실행되어질 수 있는 "신앙"과 진정한 신앙의 차이는, 말그대로 이미지클럽과 이도령과 성춘향의 첫날밤의 차이 정도지요. 그러면서도 저 분들은 이 사실을 꾸준히 부인하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직자들이 "사회적 어른"의 대접을 받는 이와 같은 사회에서는 "대딸방"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정말로 부끄러워하실 것은 없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한 가지 반론이 가능해요. 대형 교회에 가서 일주일에 한 번 "성령"을 받아보고 미쳐보는 것이, 마약복용이나 알콜 중독, 인터넷상에 이효리 팬클럽하는 일 등 또 다른 종류의 "자기 물화"보다 낫지 않느냐는 반론이지요. 맞습니다. 비툴어진 사회에서 비툴어진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필요하다면 안방 극장과 술보담 교회가 더 나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물론 거기에 다니다가 아주 광신으로 안나가는 한에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위안"과 진정한 의미의 "신앙" 사이의 차이를 좀 인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위안"이야 교회에서도 사찰에서도 휴게텔에서도 다 가능하지만 "신앙"이라는 것은 어딜 가나 뭘 하나하고 무관하게 자기 안에서의 거짓을 불태우고 자기 바깥에서의 거짓을 적어도 "거짓"이라고 정확하게 부를 수 밖에 없는 아주 특별한 마음상태입니다. 그런데 그걸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그런 민감한 문제(다 알지만 대놓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가 어젯밤 MBC 시사프로그램 '뉴스후'에서도 다루어졌다. 나는 예고편만 보았을 뿐인데, '한국인'으로서의 감각에 따르면 기독교계의 상당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이었다(한기총에서는 이미 방송취소를 요구한 바 있다). 관련기사는 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8340§ion=sc4 참조. 방송 내용의 개략적인 내용은 아래의 뉴스엔 기사에 정리돼 있다.

MBC 시사프로그램 ‘뉴스 후’가 국내 대형 교회들의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을 방송한다. 이에 따라 기독교계의 큰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뉴스 후’는 ‘목사님, 우리 목사님’이라는 제목으로 대형 교회의 세습, 부당한 부의 축적 등에 대해 취재한 내용을 24일 오후 10시50분 방송한다.

취재진에 따르면 K교회 김모 목사는 공금횡령 혐의로 지난해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교단 법정은 ‘기소유예’의 면죄부를 안겼고, 김 목사는 아들을 자신의 후임자로 내세웠다. 김 목사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회장 부정당선자금과 당선 사례금 2억3,000여 만원과 부인 명의 별장 건축비 3억1,000만원, 미국 유학 중이던 큰 사위 생활비 2억원 등 총 30여억원의 교회 공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또 지난 1998년 100% S교회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한 기업체는 이 교회 당회장인 목사의 장남 조씨가 취임했으며 조씨는 수익 부서들을 개인소유회사로 넘기는 방법으로 2년 만에 재벌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조씨는 모두 200여 억원을 탈세하고 횡령한 혐의로 지난 2005년 1월 50억원의 벌금형이 확정됐음에도 벌금을 한푼도 내지 않고 해외로 도피, 현재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취재진은 밝혔다. 조씨는 ‘뉴스 후’ 취재 결과 일본 도쿄의 부자 동네에 살면서 도쿄 소재 S교회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취재과정에서 또 S교회는 미래에 교회 시설을 확충하겠다는 명분으로 경기도 파주에 땅 3만평을 장로들의 명의로 집중적으로 사들였으며 이 가운데 2만여 평이 교회 소유가 아닌 조 목사 개인 소유로 드러났다고 취재진은 전했다. 취재진은 또 “매입 당시 땅값은 평당 1만원이었으나 지금은 최대 60만원까지 급등했다”고 덧붙였다.

취재진은 “조 목사가 교회 돈으로 자신의 부동산 자산을 늘린 것 아니냐는 의혹을 S교회 측에 제기했으나 교회 측은 토지법상 농지를 교회 재단 명의로 살 수 없어 장로들의 이름으로 매입한 뒤 조 목사 개인 소유로 바꿨다고 해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회측 주장과 달리 농지뿐 아니라 교회 재단 명의로 소유할 수 있는 일반 땅들도 조목사 개인 소유로 바뀐 사실도 드러났다”고 설명했다.(김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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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ournelle 2007-03-25 13:37   좋아요 0 | URL
저도 기독교인이지만 어제 본 <뉴스 후>는 한편으로는 저를 매우 부끄럽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통쾌했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러운 것은 작금의 기독교 세력들이 쌓아놓은 부끄러운 신앙적 찌꺼기들과 직접 대면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였고, 통쾌했다는 것은 그런 껍떼기와 같은 부분을 있는 그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이 대리적으로 비판한 것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 것을 의미하겠지요. 이래나 저래나 제 얼굴에 침 뱉기는 마찬가지네요. ㅠ.ㅠ

로쟈 2007-03-25 13:48   좋아요 0 | URL
기독교인시라니 뜻밖인데요.^^

yoonta 2007-03-25 17:17   좋아요 0 | URL
유대교의 유일신전통은 더 길게는 이집트의 아톤신 숭배와 연결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 황실에서 자랐다는 것은 성서에서도 나오는것이고 때문에 아톤신숭배의 영향이 유대교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는 설이죠. 도올의 로고스기독론에 의한 구약의 폐기나 유일신적 전통의 부정은 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로고스기독론의 바탕이 되는 그리스의 헬레니즘도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말이죠. 결국은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것인데. ㅋ

로쟈 2007-03-25 20:33   좋아요 0 | URL
그 대목에선 사실 고진의 모세론에 더 공감하는 편입니다. 구약 자체 안에도 민족종교와 세계종교적 계기가 혼재돼 있다는.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보지만, 의견이야 다양할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