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한 독자라면 제목에서 조지 스타이너란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요즘은 어지간한 독자들이 드물어졌지만). "영미 비평계에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조지 스타이너(1929- )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이 바로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1959, 1996)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만 서른에 발표한 책이니까 20대에 쓴 것이고 거의 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고전적인 연구'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요즘은 저자가 자처하고 있는 '구비평'이라고 무시하는 연구자들도 있지만 이만한 '에세이'를 쓰는 건 드문 열정과 재능의 소산이다). 지난 1996년 예일대출판부에서 2판이 출간된 이 책이 '오늘의 책'이다.

2판의 서문 말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의 기원은 본문의 첫문장이다: "문학비평은 사랑을 빚진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Literary criticism should arise out of a debt of love.) 어떤 사랑인가? "위대한 예술작품은 폭풍처럼 우리의 마음을 휩쓸어, 지각의 문을 열어젖히고, 그 변형력으로 우리의 신념 체계에 압박을 가한다. 우리는 그 작품의 영향을 기록하고, 우리의 뒤흔들린 정신세계를 새 질서로 정비하려고 한다." 이것이 첫 단계로서 위대한 예술작품의 사랑(자극)과 그에 대한 반응이겠다.

이어지는 두번째 단계는 그러한 영향 혹은 충격을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 "의사를 전달하려는 본연의 충동에 끌려, 우리는 타인에게 우리 경험의 성질과 힘을 전해주려 한다. 그들 스스로도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싶은 것이다. 이 설득하려는 기도에서 비평이 줄 수 있는 가장 진실한 통찰이 비롯된다."(국역본, 3쪽) 그가 이 '비평적 에세이'에서 전달하고자, 혹은 설득하고자 애쓰는 '가장 진실한 통찰'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장 위대한 두 소설가"(6쪽)라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 사랑은 공유하기 어렵다(젠장, 여기서 두 문단을 날려먹고 다시 쓴다). 일단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의 국역본을 시중에서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그의 책으론 <하이데거>(지성의샘)만이 대형서점에 남아있는 정도이다). 해서 도서관에 의존하거나 헌책방을 전전해야 할 터인데, 80년대에 두 종의 번역본이 출간됐던 걸 고려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두 종의 국역본이란 건 윤지관본(종로서적, 1983)과 김석희본(심지, 1983)을 말한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윤지관본이고 1983년 초판이다(역자 또한 20대에 번역한 책이군). 이후에 두 작가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서가 별로 소개된 바도 없으므로 이 책이라도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1996년에 2판이 나온 사실에서도 알 수 있지만 묵혀두기엔 아까운 책이다.  

저자인 스타이너는 영어권 유수의 대학들에서 학위를 했지만 프랑스 태생이고 영어, 불어, 독어 '트리링구얼'이라고 한다. 스위스의 제네바 대학에서 비교문학 교수로 오래 봉직했지만 저술목록을 보면 언어와 번역의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것을 알 수 있다. 역자에 따르면 (1983년 시점에서) "스타이너의 비평 작업은 현대 문명의 패러독소 - 이 고도의 문명이 수많은 야만행위들, 예들 들어 강제수용소, 정치적 탄압, 대규모의 전쟁 등을 자행하고 있다는 -를 의식하고 여기에 대결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비평가의 역할을 현대문학이 과연 이러한 시대에 쇠퇴해가는 도덕적 지성의 힘을 고양시켜 나가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라고 본다."(310쪽) 말 그대로 '고전적인' 비평가의 임무를 상기시켜준다.  

그의 책들 가운데 <비극의 죽음>(1961), <언어와 침묵>(1967), <바벨 이후>(1975) 등이 유명한데 예전에 국내에서 쉽게 원서를 구할 수 있었던 책들이다(나도 소장하고 있다). 물론 그밖에도 최근까지 20여 권 이상의 책이 더 출간됐고, 그 중에서 내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책은 <안티고네들>(1984).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 <비극의 죽음> 등과 함께 1996년에 보급판으로 다시 출간된 이 책은 부제대로 '서구의 문학과 예술, 그리고 사상에 나타난 안티고네 전설'을 다루고 있다. <안티고네>에 대한 강의를 맡는다면 가장 먼저 참조해볼 만한 책이다.

스타이너가 '고전적인 비평가'라고 적었는데, 그 자신의 표현을 빌면 '구식 비평가'이다(2판의 부제 자체가 'An Essay in the Old Criticism'으로 돼 있다). 그가 염두에 둔 것은 30년대부터 60년대 초반까지 영미비평을 주도한 신비평(New Criticism)일 터인데, 그가 차지하고 있는 '특이한 위치'라는 건 그의 '시대를 거스르는' 비평관과 무관하지 않겠다. 그는 이렇게 적는다.

"현대비평은 조롱조이며 궤변조인 동시에, 철학적 연원과 복잡한 도구를 광범하게 파악하고 있어서, 대개 칭찬하기보다는 매장한다. 사실상, 건강한 언어, 건강한 감수성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매장되어야 할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수많은 작품이 의식을 풍부하게 하거나 생명의 원천이 되지 못하고, 용이하고 천박하며 일시적 위안을 주는 세계로 끌어들이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을 다루는 일은 서평가가 맡아야 하는 기능이지, 명상하고 재창조하는 비평가의 기술이 관여할 바는 아니다."(3-4쪽)

그렇다면, 비평가의 역할을 무엇인가? "서평가나 문학사가와는 달리, 비평가는 걸작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의 일차적 기능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는 일이 아니라 좋은 것과 최상의 것을 구별하는 일이다."(In distinction from both the reviewer and the literary historian, the critic should be concerned with masterpieces. His primary function is to distinguish not between the good and the bad, but between the good and the best.)

"문학비평은 사랑을 빚진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에 이어서 확실한 밑줄긋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내가 마음에 드는 대목은 '좋은 것과 최상의 것을 구별'하는 것이 비평가의 주된 기능이라는 단언. 좋은 작가나 작품을 식별/선별하는 일은 리뷰어(서평가나 서평꾼)에게 맡기고 비평가는 오직 최고의 작품들하고만 씨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겠다(그러고 보면 정작 우리 주변에 '비평가'는 아주 드물다는 걸 알게 된다).  

스타이너 자신이 젊은 날에 쓴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평관은 아주 확고하다. 걸작의 기준에 있어서도 그렇다. "비평은 우리에게 위대한 계보의 기억과, 호머에서 밀턴까지 이어지는 고서사시(high epic)의 무쌍의 전통과 아테네, 엘리자베드조, 신고전주의 연극의 찬란함과 소설의 대가들을 환기시켜야 한다." '무쌍의 전통'은 'matchless tradition'을 옮긴 것이다. '버금하거나 견줄 만한 것이 없는 전통'이란 뜻이겠다. 특별히 그가 부각시키고 있는 계보/전통은 '서사시'와 '비극'인데, 상식적으로 알아둘 일이지만, 그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이 두 전통의 적통으로 이해하며 평가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을 호머의 작품에 비교하"는데, "조이스의 <율리시즈>보다 훨씬 엄밀한 의미에서,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는 서사 양식의 부활을 구체화하였고"(8쪽)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그의 천재는 희곡적 성격으로, 중요한 점에서 셰익스피어 이래 가장 포괄적이고 자연스런 희곡적 기질로 이해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위대한 비극 시인의 한 사람이다." 즉 톨스토이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시대의 호머(호메로스)이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셰익스피어다.

그런 맥락에서도 스타이너가 보기에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단순히 '좋은(good)' 작가가 아니다(지적한 대로 '좋은 작가들'은 리뷰어들이 다룬다). 그들은 '최고의(the best)' 작가들이다. 그는 인용하고 있는 영국 작가 E. M. 포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영국 소설가도 톨스토이만큼 위대하지는 않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은 가정적인 면이든 영웅적인 면이든, 그처럼 완벽하게 그린 사람은 없다. 또한 어떤 영국 소설가도 도스토예프스키만큼 인간의 영혼을 깊이 파헤친 사람은 없다." 스타이너는 한술 더 떠서 이러한 판단이 영문학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예 소설문학을 통틀어서 그렇다는 것이다(물론 그의 말대로 이러한 판단은 증명 불가능하다. 대신에 그는 '청력'의 문제라고 말한다. 귀 있는 자는 들어보라, 는 것이다). 참고로 포스터의 인용출처는 <소설의 제 양상(Aspects of the Novel)>(1950)이다. <소설의 이해>(문예출판사)라고 번역돼 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이제 왜 제목이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Tolstoy or Dostoevsky)"인가를 물을 차례다. 이미 서사시/비극이라는 문학사의 양대 전통에 대한 언급에서 시사된 것인지만, "그것은 대비를 통해 그들의 업적을 살피고 각각의 천재의 성격을 규정하려 하기 때문이다."(9쪽) 러시아 철학자 베르자예프를 인용하자면, "인간 영혼의 두 양식, 즉 톨스토이적인 정신과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정신을 규정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해 두 작가와 대면하는 일은 인간 영혼/정신의 두 가지 양식, 더 나아가 두 가지 상이한 세계관과 조우하는 일이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중의 택일은 실존주의자들이 앙가주망이라고 부름 직한 것을 예시하고 있다. 그 선택은 상상력을 인간의 운명, 역사적 미래, 신의 신비에 대한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두 해석 중 하나에다 위임해버리는 일이다." 다시 베르자예프의 표현을 빌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두 종류의 가정, 존재의 두 기본 개념이 서로 충돌하는 해결 없는 논쟁"의 본보기이다.  

Николай Бердяев Миросозерцание Достоевского

스타이너가 인용하고 있는 베르자예프는 불어판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신(L'esprit de Dostoievski)>(1946)인데, 국내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관>이란 타이틀로 이경식본(현대사상사, 1975), 류준수본(한양대출판부, 1982), 이종진본(범조사, 1987) 등이 나와 있었다(앞의 두 권은 영역본을 중역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이종진 역의 범조사 문고본이다). 물론 요즘은 구하기 힘든 책이 돼버렸지만. 이미지는 가장 저렴한 러시아어 문고본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관>.  

 

 

 

 

자, 이제 해야 할일은 보다 본격적으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를 읽는 것이다. 톨스토이를 읽는다면 그의 데뷔작이자 자전 3부작의 첫 작품인 <어린시절>(1852)부터 읽어야겠다. 최근 다시 나오기 시작한 새 톨스토이전집의 1권 <소년시절-청소년시절-청년시절>(작가정신, 2007)을 따르자면 '소년시절'이 될 테지만 관례적으로 '어린시절' 내지는 '유년시절'('유년시대')로 번역된 작품이다(영어로는 'The Childhood').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라면 데뷔작인 <가난한 사람들>(1846)로부터.

 

 

 

 

각각 <부활>과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이르는 긴 여정이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최근 새 번역본이 출간됐다).

  

 

 

 

길잡이가 될 만한 책들이 많지는 않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나란히 다루고 있는 책으로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전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자연사랑, 2001)을 들 수 있겠다. 츠바이크가 그런 타이틀의 단행본을 쓴 건 아니고 그의 <천재와 광기>(예하, 1993)에서 두 작가에 관한 대목만 따로 묶은 것이다(교열상태는 상당히 불량하다). 러시아 상징주의 작가 D. 메레지코프스키의 책도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금문, 1996)로 소개되었었지만 절판됐다. 스타이너의 표현을 빌면 "변덕스럽고 신용이 없지만, 많은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국역본 각주에는 '메레즈프스키'라고 표기돼 있는데 착오이다).

그리고 인디북에서 나온 박형규판 톨스토이 선집의 서론격인 <톨스토이>(인디북, 2004). 두툼한 책이니 사전 정도로 활용할 수 있겠다.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다룬 이사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비전비앤피, 2007)도 읽어둘 만한 고급한 에세이지만 국역본은 교열상태가 좋지 않다(게다가 러시아사와 톨스토이에 대한 무지가 너무 도드라지는 번역이다). 

한편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연구서로 모출스키의 평전과 (절판된) 바흐친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시학> 등을 제외하면 시중에 나와 있는 건 국내 전공자들의 연구서이다. 권철근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장편소설 연구>(한국외대출판부, 2006)와 조주관 교수의 <죄와 벌의 현대적 해석>(연세대출판부, 2007)이 최근에 나온 대표적인 저작들인데, 일반 독자라면 굳이 참조할 필요가 없겠지만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대학 강의'가 궁금한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여타의 많은 참고문헌들은 이런 연구서들의 부록을 참조하시길...

07. 09. 24-25.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술 2007-09-2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 쉬는데 로쟈님만 바쁘시군요. 한가위 잘 보내세요. 안타깝게도 전 어지간한 독자는 못 되는군요.

심술 2007-09-24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도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인문학이 참 깊고도 어려운 거구나 하는 건 올려 주시는 글 읽으며 깨닫고 있습니다.

로쟈 2007-09-24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페이퍼가 저에겐 '쉰다'는 의미입니다.^^; '어지간한 독자' 같은 얘기는, 아시겠지만, 좀더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죠. '인문학이 참 깊고도 어려운 거'라는 인식을 심어드렸다면 제가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인문학의 '대중화'에 한몫한다면서 이러고 있는데 말이죠...

심술 2007-09-24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망과 함께 자극과 관심,흥미도 주시니까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러시아 혁명기의 아나키스트 혁명가 보리스 사빈코프(싸빈코프)의 소설 두 권에 대해서 언젠가 페이퍼를 만든 적이 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1434756), 보다 자세한 리뷰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S1N5&rsec=&idxno=6021).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나게 해주었다. 책은 조만간 구입하든가 대출하든가 해야겠다. 곧 10월이니까...

연세대 대학원신문(제155호) 일기로 기록된 혁명의 ‘현재 시제’

시나 소설을 창작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 해도 만약 그가 늦은 밤 홀로 있는데 마침 그 날 하루 혹은 인생이 밀도 있게 다가온다면, 일기를 쓸 것이다. 하루를 인생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며 언어를 조금이라도 부릴 줄 아는 인간에게 허용된 최소한의 미적 행위랄까. 밀도 있게 다가온 일상의 어떤 순간을 망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조바심과,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더 두꺼워지고 진해질 수 있을 거라는 설렘이 교차하는 일기는, 기억의 형식이라기보다는 기록의 형식이다. 기억의 윤색과 문학적 형상화로 정제된 자서전 혹은 자전소설과 달리, 일기는 사실적 정황이 갖는 날 것의 느낌을 잃지 않는다.



사랑의 이름으로 살인하는 테러리스트의 일기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기에 러시아 아나키스트 정당인 사회혁명당의 암살단원으로, 께렌스끼 임시 정부의 국방차관으로, 백군 사령관으로 활동했으며, 롭신이란 필명으로 테러와 혁명에 대한 많은 소설과 회상록을 남긴 보리스 싸빈꼬프의 소설, 『창백한 말』(1909)과 『검은 말』(1923)은 모두 1인칭 시점의 일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자에서 일기를 쓰는 주인공은 1905년 혁명 전후의 테러리스트이고, 후자의 주인공은 1917년 혁명 이후 반(反)볼셰비끼 투쟁을 벌이는 백군 사령관이다.

저자 싸빈꼬프의 전기적인 실제 이력이 투영된 이 두 주인공은 활동하는 시기와 명분은 다르지만, 혁명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번민, 그리고 정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살육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를 공유한다. 두 작품 공히 가장 많이 언급되는 문구는 ‘살인하지 말라’는 성경의 계명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알지 못했고, 사랑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만을 이해하는’ 이 뜨거운 혁명가들에게 살인의 계명은, 지젝이 말하는 자기 지양의 법, 즉 모든 것을 금지하는 동시에 허용하는 법으로 작용한다.

‘살인하지 말라…….’ 이 말이 또다시 나의 뇌리를 스친다. 누가 그런 말을 한 걸까? 왜……? 왜 연약한 영혼에게 그처럼 힘겨운, 실천하기 어려운 계명을 남긴 걸까?(『검은 말』 중에서)

“바냐, 그럼 ‘살인하지 말라’는?”
“없어, 조지. 살인하게.”
“자네가 그런 말을 하나?”
“그래, 내가 그렇게 말하네. 살인하게, 다른 사람들이 살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살인하게,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 사랑이 세상을 밝히도록.”
“그건 신성모독이네, 바냐.”
“나도 알아. 그럼 ‘살인하지 말라’는 신성모독이 아닌가?”(『창백한 말』 중에서)



‘열린 국면’, ‘날 것’으로서의 혁명

혁명을 ‘생성 중인’ 역사적 상황, 그 어떤 헤게모니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한 ‘중간적 국면’이 열린 단락으로 이해한다면, 혁명의 시제는 ‘현재’일 것이다, ‘일기’는 바로 그런 ‘시간이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버린 순간’을 포착하는 현재 시제의 장르이다. 일기는 과거의 시간을 전유하여 현재의 현존으로 과거를 채움으로써 현재와 과거를 직접적으로 결부시킨다. 이는 혁명가들이 역사를 파악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주의, 인민주의, 애국주의, 반볼셰비즘을 넘나들며 당의 강령에 쉽게 매몰되지 않아 동지들에게조차 늘 경계의 대상이 됐던 싸빈꼬프의 궁극적인 투쟁 목표는, 구세력뿐만 아니라 볼셰비끼의 독재에서도 해방된 ‘제 3의 러시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떤 헤게모니에 의해서도 전유되지 않은 혁명의 ‘열린 국면’, 즉 혁명의 ‘현재 시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그의 이상주의적 열망은, 이 두 소설의 주인공들이 일기로 기록하는 혼돈으로서의 혁명(상징적 기표로 다 설명될 수 없는 ‘날 것’으로서의 혁명)에도 투영돼 있다.

물론 그가 지켜내려던 혁명의 ‘열린 국면’은 실정적인 이데올로기적 기획, 즉 볼셰비끼의 독재에 의해 곧 닫히게 되었고, 싸빈꼬프는 러시아 혁명 역사의 승자가 아닌 패자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새롭게 도래한 이 ‘현재’를 경험한 이들의 숭고한 열망은 그것이 결국 실패한 몸짓으로 끝났다 해도, 혁명 이후의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유효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원래부터 주어져 있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현재의 토대가, 사실은 인공적이고 우연적인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전유의 결과는 아닌가 라고. 우리가 현실적인 것으로서 조우하는 현재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묻는 이 질문은 그저 우연히 한번 만나 단순한 가치판단으로 봉합해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삶의 여러 맥락과 감정의 여러 파고에서 반복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근본적 차원의 질문이다.

혁명은 단순히 불합리한 현실의 전복이 아니라, 현실의 토대 자체가 우연적이고 인위적인 봉합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하는 폭력적인 하나의 행위/사건이다. 『창백한 말』과 『검은 말』의 일기 형식을 통해 싸빈꼬프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바로, 모든 이데올로기적인 봉합에 저항하는 날 것으로서의 혁명, 즉 해석이나 통합이 아닌 변혁을 가져오는 행위/사건으로서의 혁명이 아닐까.(김윤하 / 비교문학 박사과정)

07. 09. 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랜만에 개봉되는 러시아영화 소식을 빠뜨릴 수 없어서 옮겨놓는다. 지난 2005년 러시아 최고 흥행작 <제9중대>가 문제의 영화이다. 아마도 창고에서 자고 있다가 지난번 아프간 인질사태 때문에 배급업자들의 관심을 끌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블록버스터이긴 하나 기본 수준 이상의 작품성을 갖춘 영화로 평가되고 있으므로 한번쯤 관람해보시는 것도 좋겠다(사실 그래야 더 많은 러시아 영화가 소개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고려를 무시할 수 없기도 하고).

세계일보(07. 09. 15) ''명분없는 전쟁''의 허구 고발… 제9중대

13일 개봉한 ‘제9중대’는 인생의 농익은 즐거움과 성숙의 단계를 맛보지 못한 채 아프가니스탄의 바위산 중턱에서 죽어간 옛 소련의 젊은이들이 최후까지 함께했던 전장의 표정을 건조하리만치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도 전쟁으로 말미암아 파괴되는 인간들의 모습을 사실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꿈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이들이 피의 전장을 뒹굴어야 하는 이유는 국가의 명분 없는 전쟁 때문이라고 고발한다.

그동안 우리의 ‘눈맛’을 길들여온 할리우드의 전쟁영화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익숙한 미군 병사 대신 다소 낯선 생김새의 소련군인들이 주인공이다. 총과 군복이 다르고 육중한 헬기의 모습도 영화 속에서 흔히 보아오던 것과 상이하다.

할리우드 전쟁영화 공식과는 달리 하나의 영웅 또는 특정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고 훈련소에서부터 전장까지 전 부대원들이 겪는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춘다. 삶과 죽음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밟고 있는 극단의 상황, 그곳에서 꽃피운 전우애, 그리고 희생을 강요받은 작은 개인들의 비운을 영화는 씁쓸히 낭독하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9년째인 1988년. 징집에 응한 청년들이 하나둘씩 기차역에 모여든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어느 겨울밤 화가를 꿈꾸는 예술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교생실습생, 결혼식을 치른 지 하루 만에 소집되어 온 새신랑, 어린 딸을 둔 가장은 각각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고 훈련소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전쟁은 이들의 꿈과 희망을 모조리 앗아간다. 지독한 훈련을 거치는 동안 순수한 교사 지망생의 몸은 어느새 살인병기로 바뀌어 간다. 예술가의 손은 이제 붓보다 총이 익숙해졌고, 현실주의자 류타예프는 생존 방법을 부지런히 체득해 나간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았던 9중대 대원들은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고, 모두가 한몸처럼 아끼는 게 살아남는 법이란 걸 깨닫게 된다. 그러나 9중대의 가장 큰 비극은 주둔지가 본 부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그래서 전쟁이 끝나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지 못하고, 고지를 사수하다 무자헤딘의 12차례에 걸친 전면 공격에 전멸해간다.

온통 붉은 빛이 감도는 아프가니스탄의 바위산이 이국적이며 바위에 뚫린 구멍 등 지형지물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무자헤딘의 전술이 인상적이다. 영화엔 잔인하고 치열한 전투 장면은 없지만, 명분 없는 전쟁의 허구와 반전의 당위성이 잘 녹아들어 있다. 감독은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키며 극을 끌어가는 재주를 부린다. 제작비 83억원이 들어간 러시아 블록버스터. ‘전쟁과 평화’의 감독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아들인 표도르 감독의 데뷔작이다.(김신성 기자)

07. 09. 17.

P.S. 감독 표도르 본다르추크는 말미에 언급된 대로 세르게이 본다르추크(1920-1994)의 아들인데, 1967년생이니까 러시아판 대작 <전쟁과 평화>를 한창 찍을 때 태어난 셈이다(세르게이는 주인공 피에르 베주호프 역을 맡기도 했다). 표도르는 이제 보니 러시아 TV에서 자주 보던 얼굴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쟈 2007-09-17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에서는 사실 반전영화라기보다는 '애국주의' 영화로 수용된 감이 있는데 여하튼 편식은 좋은 게 아닌지라 러시아 영화들도 많이 보셨으면 좋겠네요...
 

주말에 경향신문에 실린 해외칼럼을 읽고서야 주중에 러시아 총리가 교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론의 표현으론 푸틴의 '내각 물갈이'인데, 알다시피 내년 봄 대선을 염두에 둔 '포석'인지라 빅뉴스가 아닐 수 없다. 새로 임명된 Zubkov(주브코프, 주프코프, 줍코프, 주코프) 총리가 대선에 참여할 뜻이 있음을 내비치면서 포스트-푸틴에 대한 전망은 다시 혼전 국면으로 접어든 듯하다(인명 표기가 제각각으로 혼란스러운 것은 새로 바뀐 러시아어 표기법이 익숙한 예전의 표기법과 충돌하고 있어서이다). 국내 언론의 관련기사와 함께 니나 흐루시초바의 논평을 원문과 함께 옮겨놓는다(데일리 타임즈에 실린 원문은 http://www.dailytimes.com.pk/default.asp?page=2007%5C09%5C15%5Cstory_15-9-2007_pg3_3). 필자가 '흐르시쵸바'라고 돼 있지만 기사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흐루시초프'의 손녀이기도 하므로 '흐루시초바'가 맞는 표기이겠다.

한겨레(07. 09. 14) 주코프, ‘총리’ 이어 이참에 ‘대권’까지?

러시아의 차기 대권 후보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분석됐던 빅토르 주코프(사진) 총리 지명자가 13일(현지시각) 대권 도전 의사를 내비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에 따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후계자 구도에 주코프 지명자가 새 변수로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제1부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제프 제1부총리가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로 꼽혔다.

주코프는 이날 두마(하원) 정당 지도자들과 면담 뒤 대선에 참여할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업적을 쌓는다면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전했다. 드미프리 페스코프 크레믈(크렘린) 대변인은 “주코프 지명자가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말의 뉘앙스를 잘 살펴야 할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모스크바타임스> <러시아투데이> 등 현지 언론들은 1999~2000년 초 사이 푸틴의 크레믈 입성 과정과 비교하면서 주코프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점점 무게를 두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우선 그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전문관료’ 출신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지만, 푸틴도 엇비슷했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99년 8월 푸틴을 총리로 임명할 당시, 푸틴은 국가안보위원회(KGB) 출신의 전문관료였다.

또 주코프의 대중적 인지도가 낮지만 푸틴 대통령도 잘 알려진 얼굴이 아니었다. 정치 분석가인 오르로프는 “푸틴이 공개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아울러 깐깐한 금융감시자라는 평판을 갖고 있는 그가 반부패 운동을 펼친다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주코프의 대선 출마를 점치는 전문가들은 푸틴의 ‘2012년 컴백 시나리오’를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주코프가 65살로 고령이고 연임을 노릴만한 정치적 야망이 없는 인물인 점을 고려해 푸틴이 4년짜리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이용인 기자)

조선일보(07. 09. 14) 푸틴 후계자 누구냐

블라디미르 푸틴(Putin)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12일 새 총리로 지명된 빅토르 주브코프(Zubkov)가 차기 대권 도전을 시사해 파장이 일고 있다. 13일 아침 국가두마(하원) 의원들과의 상견례로 활동을 시작한 주브코프 지명자는 내년 대통령 선거 출마 여부와 관련, “총리로서 성공한다면 그런(대선 출마) 시나리오를 배제하지 않겠다”며 대권 욕심을 내비쳤다.

지금까지는 주브코프가 내년 5월 푸틴 대통령 퇴임까지 성공적 정권교체를 위한 ‘관리자’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부패와의 전쟁 등 국정과제를 마무리해야 하는 푸틴 대통령에게 재정감시국장 출신 주브코프가 총리에 적임이라는 평가 때문이다. 정치분석가 예브게니 나도르신은 “조세전문가인 주브코프는 푸틴의 권력 이양을 위한 실무형 총리”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푸틴 후계자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1999년 8월 옐친 정부 당시 연방보안국장이던 푸틴 대통령이 총리로 임명되고 12월 대통령 후보가 됐던 경험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푸틴과 주브코프 지명자의 친분이다. 1991~93년 푸틴이 상트페테르부르크시 대외관계위원장이었을 때 주브코프는 부위원장이었지만 사제(師弟)지간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주브코프는 푸틴을 러시아어 존칭 ‘비(Βы·귀하)’ 대신 ‘티(Τы·너)’라고 부를 만큼, 실세라는 것이다.

러시아 정국에 주브코프 변수가 등장하면서 아직 베일에 싸인 푸틴 대통령의 후계구도는 한층 불투명해졌다는 지적이다. ‘빅(Big)2’인 세르게이 이바노프(Ivanov)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Medvedev) 등 두 명의 제1부총리가 지지율 30%대로 앞서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Peskov) 크렘린 대변인이 8월 말 후계 가능성을 지목한 세르게이 미로노프(Mironov) 상원의장, 보리스 그리즐로프(Gryzlov) 하원의장 등 두 명의 의회 수장(首長)도 후보다. 여기에 주브코프와 야쿠닌(Yakunin) 철도공사 사장 등이 뒤를 쫓는 형국이다.(권경복 특파원)

경향신문(07. 09. 15) [해외칼럼]크렘린의 의자 빼앗기 게임

그 시기가 다시 왔다. ‘의자 빼앗기 게임’처럼 총리가 바뀌면서 러시아의 예비 선거철이 시작됐다. 가장 마지막에 총리직에 앉는 사람이 아마도 러시아의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다. 보리스 옐친은 대통령 임기가 끝나갈 때 적어도 6명의 총리를 갈아 치웠다. 러시아의 새로운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뿐 아니라, 옐친 패밀리와 재임기간 동안 그가 축적한 재산의 안전을 보장할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 가장 마지막에 총리직에 앉은 사람은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이제는 푸틴의 차례다. 미하일 프랏코프 총리를 해임시키고 재임 기간 내내 자신에게 봉사했던 내각을 해산시켰다. 12월에 열리는 국회의원 선거와 내년 3월의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1999년 옐친은 FSB(옛 KGB)의 수장으로 무명이었던 푸틴을 선택했다. 푸틴도 옐친과 마찬가지로 빅토르 주프코프 연방 재정감시국장을 총리로 끌어 올렸다.

이런 유사성에도 두 사람의 선택에 숨어있는 이유는 달라 보인다. 옐친이 푸틴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전직 KGB 스파이였지만 심장은 민주주의자라는 믿음이 바탕이 됐다. 푸틴은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민주 시장인 아타톨리 쇼브차크 밑에서 일했다.

KGB는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푸틴이 베레조프스키를 국제적 악인으로 만들고, 미디어 모스트 그룹 회장이었던 블라디미르 구신스키를 추방하고, 석유 재벌인 미하일 호도로코프스키를 감옥에 집어 넣었을 때 옐친과 베레조프스키를 빼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푸틴이 총리직을 놓고 벌이는 게임은 누가 대통령이 돼도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 아니다. 그는 크렘린을 떠나면 추방되거나 무덤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스탈린이 죽은 레닌을 격하시켰고,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을 비난했다. 브레즈네프는 흐루시초프를 자신의 별장으로 추방했다. 고르바초프는 체르넨코를 매장했다. 유독 옐친만 달랐다. 옐친은 고르바초프를 싫어했지만 점잖게 대했다. 물론 푸틴도 은퇴한 옐친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푸틴은 단순히 옐친을 무시했다.

주프코프의 지명 전에 언론은 푸틴의 대통령직을 승계할 차기 총리로 유력한 대선후보로 꼽히는 세르게이 이바노프 현 부총리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강력한 대통령으로 남기를 바라는 푸틴이 이바노프를 임명했다면 권력은 이미 누수가 시작될 것이다. 프랏코프는 사임 이유를 밝히며 이 문제를 제대로 짚었다. 주프코프를 임명한 것은 계속해서 러시아의 절대권력을 쥐고 싶은 푸틴의 의중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주프코프의 전직인 연방 재정감시국장직은 필요하면 제2의 베레조프스키 등을 탄생시키며 잠재적인 모든 적들과 경쟁자를 감시할 수 있는 정보라는 재산을 끌어올 수 있게 해준다. 유일한 관심은 주프코프나 다른 총리가 성공적으로 ‘차르(황제) 대통령’을 그의 경쟁자들이 행했던 것처럼 실각시키는 데 성공할지 여부다.(니나 흐르시쵸바 / 뉴욕 뉴스쿨 국제관계학)

Kremlin Musical Chairs

It’s that time again - Russia’s pre-election season when prime ministers are changed as in a game of musical chairs.The last one seated, it is supposed, will become Russia’s next president.

As the end of his rule approached, Boris Yeltsin went through at least a half-dozen prime ministers, looking for the one who would ensure the security not only of Russia’s new democracy and market economy, but also of his "family" and the wealth that it had accumulated during his rule.The last man seated then was, of course, Vladimir Putin.

Now it is Putin’s turn to call the tune, dismissing Mikhail Fradkov and dissolving the government that had served him throughout his second term in order to prepare for the parliamentary elections looming in December and the presidential ballot in March 2008.In 1999, Yeltsin picked Putin, who was then the little-known head of the FSB (formerly the KGB).Putin chose to elevate the equally mysterious Victor Zubkov, head of the Federal Financial Monitoring Service (also known as the "finance espionage" agency).

Despite that similarity, the reasoning behind these choices appears to be somewhat different.Yeltsin’s choice of Putin - encouraged, ironically, by Boris Berezovsky, the prominent Russian oligarch and Yeltsin advisor who is now exiled in London as Putin’s mortal enemy - was based on his belief that the quiet apparatchik, even if a former KGB spy, was a democrat at heart.After all, Putin had been a proteg? of Anatoly Sobchak, the liberal mayor of St.Petersburg as communism collapsed.

A security services insider, Putin was seen as well placed to protect Yeltsin and his oligarchic allies.Indeed, Berezovsky intended to continue ruling the country from behind the scenes, first as Yeltsin’s health failed in the final months of his presidency, and then by controlling the successor he had helped to choose.

In Russia, however, the KGB is famous for turning the tables in any struggle with the Kremlin apparat.So no one but Yeltsin and Berezovsky was surprised when Putin, their supposed marionette, began pulling the strings.And pull them he did, turning Berezovsky into an international villain, exiling former media mogul Vladimir Gusinsky, jailing the oil magnate Mikhail Khodorkovsky, and eventually imposing a new authoritarian regime behind the fa?ade of Yeltsin’s democratic institutions.

Putin’s own game of prime ministerial "musical chairs" does not reflect a desire to secure for himself a quiet position behind the scenes while someone else rules, for he knows all too well that the path from the Kremlin leads only to inner exile and the grave.Stalin replaced the dying Lenin, Khrushchev denounced Stalin, Brezhnev banished Khrushchev to his dacha, and Gorbachev buried Chernenko.

Only Yeltsin did things differently.He disliked his predecessor, Mikhail Gorbachev, as much his predecessors disliked their predecessors.But all the same he treated Gorbachev in a more decent manner because Yeltsin fundamentally believed in democracy.So he left Gorbachev a private life that could also be lived in public.Putin, of course, did not accost the retired Yeltsin, but he didn’t have to.He simply ignored him while reversing his achievements in building a free Russia.

Before Zubkov’s nomination, reports swirled that the next prime minister would become Putin’s presidential successor, with Sergei Ivanov, a current deputy prime minister, dubbed the most likely candidate.But Ivanov, who is perceived as "strong," would provide unwelcome competition to Putin, who, after all, remains a "strong" president.Had he anointed Ivanov now, Putin’s power would already begin seeping away.

The outgoing Fradkov, surprisingly, put the matter best when he explained why he had resigned: with elections approaching, Putin needed a free hand.So Zubkov’s nomination allows Putin to continue to keep his cards - and thus ultimate power in Russia - close to his chest.

Of course, Zubkov will continue Fradkov’s "Yes, whatever you say Mr.President" management style.Moreover, his former position as head of the Federal Financial Monitoring Service will allow him to draw on a wealth of information to keep tabs on all possible enemies and competitors, perhaps turning them into new model Berezovsky’s, Gusinsky’s and Khodorkovsky’s, if necessary.

The only question now is whether Zubkov, or his successor, will eventually succeed in turning Czar Vladimir into the same sort of non-person that Putin’s rivals have become.

07. 09. 17.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심술 2007-09-17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Zubkov. 실재 러시아말소리에 가장 가깝게 한국말로 표기하면 어떻게 되나요?

로쟈 2007-09-1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줍코프'일 겁니다. 뭐 이것도 더 들어가면 '줍꼬프'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테지만...
 

러시아 제일의 갑부가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라는 것 정도는 퀴즈문제에 나올 만한 상식이다. 하지만 두번째는? 여기부터는 '상식밖'일 텐데, 나도 아래의 기사를 읽으며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올렉 데리파스카(1968- )이고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기업이라는 루살의 '오너'이다. 얼마전 GM 지분을 5% 인수한 것과도 관련해서 뉴스에 오르내린 적이 있는데, 이 '잘 나가는' 올리가르흐에 대한 자세한 기사가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러시아의 올리가르히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091634 참조).

 

조선일보(07. 09. 01) '포스트 푸틴’ 대비책? 영국行 엑소더스 논란 

크렘린의 지지를 업고 혜성처럼 떠오른 ‘러시아의 철강왕’ 올레그 데리파스카(Oleg Deripaska·39)가 이번에는 영국으로의 ‘엑소더스’(exodus·대탈출) 논란에 휩싸였다. 혹시 모를 권력의 변덕과 포스트 푸틴 체제에 대한 방어책으로 자산 전체를 영국으로 옮기려 한다는 것이다.

데리파스카는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기업 루살(RUSAL)의 오너(owner)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에 이은 러시아 2위 갑부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외손녀의 남편으로, 푸틴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인물로 유명하다. 소치 공항을 통째로 인수해 대대적인 재건축에 나서며 러시아의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런 데리파스카가 때아닌 논란에 휩싸인 것은 런던 고급 주택가 벨그라비아(Belgravia)에 일찌감치 사놓은 저택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개인적으로’ 인수해온 유럽 기업들 지분에, 올해 말로 점쳐지는 루살의 런던증권거래소 상장이 가장 유력한 증거로 제시된다. 루살은 기업공개(IPO)에 성공할 경우 90억 달러의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까지는 데리파스카가 굳이 러시아를 탈출하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는 여전히 푸틴이 가장 신임하는 올리가르히(Oligarchy·러시아 신흥재벌)다. 또 그는 전직 오너가 탈세 혐의로 재판 중인 석유기업 루스네프트(Russneft)의 유력한 인수자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크렘린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영국인 거부가 될 수 있다는 건 달콤한 유혹임에 틀림없다. 그 역시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등 걸출한 올리가르히들의 몰락을 눈앞에서 지켜봐 왔다(*아래는 철창의 호도르코프스키. 유코스그룹의 회장이었던 그는 러시아 최대의 갑부였다).

성공적으로 서방 미디어의 보호막 안에 들어선 아브라모비치의 선례도 있다. 포스트 푸틴 체제는 언젠가 다가올 현실이고, 푸틴 아래서 누렸던 특혜는 다음 정권에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데리파스카는 자신의 엑소더스에 대한 세간의 의혹을 일축한다. 그는 루살의 기업공개를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주주들이라며 “나는 부끄러운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다. 역사가 나를 심판할 것이다”라고 공언하고 있다.

데리파스카는 1990년대 러시아 알루미늄 산업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알루미늄 전쟁’의 최후 생존자라 할 수 있다. 권력과 마피아가 동원된 이 혈투에서 알루미늄 업자들은 기습과 암살을 주고받았고, 살해된 사람은 수십 명에 이른다.



모스크바대에서 양자물리학을 전공하던 데리파스카는 1992년 국유 재산 민영화의 격동기에 시장 경제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알루미늄 매매 시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당시 알루미늄 산업을 장악하고 있던 유대계 금속기업 트랜스월드그룹(TWG)의 러시아 대리인 미하일 체르노이와의 만남이었다.

체르노이는, 이재에 밝고 수완을 갖춘 푸른 눈의 이 청년을 알아봤고, 시베리아 남동부 사얀스크(Sayansk)의 알루미늄 공장 사장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데리파스카는 훨씬 큰 야망을 갖고 있었다. 데리파스카는 1998년 트랜스월드그룹의 뒤를 봐주던 정치인의 실각과 체르노이 형제 간 불화로 회사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비밀스러운 증자를 추진했고, 결국 사얀스크 공장의 경영권을 빼앗았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트랜스월드그룹의 오랜 독점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알루미늄 업자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애국심을 이용한 선전도 곁들였다.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에 대한 강탈은 이미 충분하다”며 세금 감면 혜택을 받고 있던 트랜스월드그룹을 공격한 것이다. 자신은 3년 내에 주식을 공개하고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1999년 크렘린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트랜스월드그룹이 세금 감면을 받기 위해 고위관료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고 발표하며 그간의 특혜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데리파스카는 타격을 입은 트랜스월드그룹이 주춤하는 사이 공장들을 인수하며 세력을 넓혀 나갔고, 결국 알루미늄 기업 연합인 루살 회장에 오를 수 있었다.

흑해 연안 크라스노다르(Krasnodar) 지방의 전통 마을에서 태어난 데리파스카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와 친척들 집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는 “삶의 어려움은 재앙이 아니다. 홍수가 있으면 뛰쳐 나가서 맞서면 된다”는 말로 당시 생활을 표현했다. 후에 데리파스카는 정략결혼에 예기치 않은 행운을 더해 수직 신분상승을 이루게 된다.



2001년 2월 데리파스카는 옐친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발렌틴 유마셰프의 딸과 결혼했다. 그런데 8개월 뒤 장인 유마셰프가 옐친 전 대통령의 딸인 여장부 타티야나와 재혼했다. 데리파스카는 하루 아침에 옐친 가문의 일원이 된 것이다. 데리파스카는 푸틴에 대해 “러시아의 대통령은 나라 전체를 이끄는 최고 관리자이다. 그는 똑똑하고, 적절하고, 그의 권위는 한계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푸틴은 그런 그에게 “국가에 이바지한 경제인”이라고 화답한다. 언제까지 이런 관계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데리파스카는 몰락한 올리가르히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성적인 행동보다 룰렛 게임에 돈을 걸던 무능력한 무리는 제거됐다. 죽거나 아니면 노동 캠프에 가거나.” 데리파스카의 엑소더스를 둘러싼 논란은 서방 언론들의 푸틴 공격과 맞물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선정민 기자) 

07. 09. 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