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레나
한지혜 지음 / 새움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의 화려함은 소설 속 주인공들의 빈궁함을 더욱 강조하는건가?

서문도 작가 소개도 없이 시작된 첫 단편 '호출''결혼식을 앞두고 옛 애인들과 관계된 물건을 정리하기로 했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사람을 잊기 위해, 그 사람과 보냈던 시간을 잊기 위해, 혹은 그 때 아팠던, 지난했던 과거를 지우기 위해, 사진을 태우고, 편지를 태운다. '자전거 타는 여자'에서도 식물인간인 아버지를 보낼 준비를 하면서 아버지와 관계된 물건을 정리하고, 태울 수 있는 것들을 태우는 장면이 나온다. 무언가를 태우면서 마음 한 구석의 재를 날려버린다는건 내게는 너무 드라마스럽고 닭살스럽다. '호출'은 내게 그런 느낌이었다.

두번째 단편인 '안녕 레나' 에서는 온라인으로 도피하는 인생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죽고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무료하고, 진학에 실패했고 ,재수를 할 형편도 아니었고, 실무 능력 따위는 배운 적 없는 인문계 고등학생이다 보니 작은 회사에 겨우 취직하지만, 내 인생이 작은 사무실에서만 정착하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우울해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뭔가 확 저질러보고 싶은 충동이 나를 들쑤신다' 그러다가 찾은 '통신'이란 '탈출구'   익명성을 무기로 매번 새로운 자신을 꾸며대는 그 곳에서의 안락함을 흔들어대는 '레나'라는 아이디의 그녀. 그리고 '숲' 이라는 아이디의 그. 그들과의 '안녕'을 끝으로 소설은 끝나지만, 궁금하다. 그 후 '나'의 삶이. 또 어떤 다른 도피처를 찾아 해메이고 있는건지. 

그 이후의 단편들도 계속 불편하다. 목소리 큰 엄마의 모습. 식물인간의 모습이거나 부재인 아버지의 모습. 갈 곳 없는 젊은이들의 모습들.  나의 이 불편함의 정체는 책을 찜찜하게 책을 덮고 책 표지의 화려한 꽃문양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뒷표지의 같은 꽃 문양에 써 있는 어느 문학평론가의 말이다.

' 하루에도 몇 번씩 뭔가 확 저지르고 싶은 청춘들의 우울을 경쾌하게 포착한 소설들. 대체적으로 '청년' 세대라고 할 수 있을 이 소설집 속의 젊은이들은, 우리 소설에 자주 등장했던 삐딱한 난동자, 엽기적인 호색한, 과격한 몽상가, 항우울성 페시키스트, 차가운 냉소주의자, '쿨 보이들'과 '럭셔리 걸' 등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어떤 인물인가, 요컨대 이 시대의 '이태백' 계열에 속하는 인물들. 그러니까 '확 저지르고 싶은' 젊음의 열망은 충만하지만, 대체적으로 경제난이 초래한 일상의 하중에 압도되어 푸릇한 미래의 희망과 출구가 봉쇄되어버린, 이 시대의 전형적인 젊음의 초상들인 것이다. '

평론가는 이와 같은 것들을 작가의 장점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똑같은 얘기를 하지만 그 반대에 서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 책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살고 있는 시대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바로전에 읽은 중남미의 마꼰도라는 마을 이야기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이런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뉴스가 아니라 소설에서 읽어야 했는데, 우울이 경쾌하게 포착되지도, 소름끼치게 사실적이지도, 와닿는 말로 포장되지도 않아서 맘에 안 드는 것이다.  한국작가들의 궁상스런 소설들을 멀리하는 것은 현실에서의 내 주위의 궁상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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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3 0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5-05-03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작가의 소설일수록, 동시대가 배경인 소설일수록 취향이 분명하게 들어나고 거기에 상황과 사적인 감정까지 개입되어 책에 푹 빠지기가 힘들어요. 조금만 좋다고 하면 귀 파닥파닥 하며 사는데, 그 재미있다던 성석제나 천운영이나 등등등 전혀 안 사고 있는거 보면 말이지요. 최근에 읽었던 한국작가 책중 정말정말정말 재미있었던건 김승옥의 '무진기행' 이었네요. 정말 멋졌는데!

하이드 2005-05-03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권해주신 책 땡기는군요. 역시 저랑 취향이 정말 통하십니다.

하이드 2005-05-03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밑에 보니 황진이도 재미있게 봤었네요.

panda78 2005-05-03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승옥 전집 말씀하시던 생각 납니다. ^^
저도 그래서 우리나라 소설은 적게 봐요. 성석제도 두 권 빌려 읽고 말았구.. 천운영도 안 봤구나..
요 며칠 사이 재미있게 본 거로는 이윤기 [하늘의 문1-3]이랑 - 특히 2권은요, 제가 전쟁소설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책 좀 더 볼까.. 싶게 만들 정도로 재미나더랍니다.
[고래]요! 음. 재미있더라구요. 흠흠.. 그 변사체 말투도 그렇고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이런 식으로 뭔가 주욱 나열하는 것도 그렇고
문체가 참 재밌었어요.

panda78 2005-05-03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황진이 관심없었는데, 재미있게 보셨다니 궁금해지네요. 새벽별 언니한테 담번에 빌려달라 그래야지. ^^
근데 정이현은 소설집 한 권 뿐인가봐요. 그거 말고는 무슨 수상작품집 같은 데 한편씩 실려있는 듯. 신작이 기다려집니다. ^^

하이드 2005-05-03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사실 읽지도 않고 별로다 하는건 반칙이긴 해요. ^^a 이윤기는 다아 좋아요. 근데 이양반것도 소설 읽은지는 디게 오래되긴 했네요.

panda78 2005-05-03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진홍글씨]이후 백만년 만에.. ;;;
근데 지금 불붙어서 쫘악- 살까 생각중입니다.
새로 에세이집도 나왔던데 그거랑 해서요. ^^

panda78 2005-05-03 0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들 다들 칭찬하시던 권지예의 폭소가 별로였던 탓에, 이젠 뭐가 재밌더라 해도 한국소설은 잘 안사게 되더라구요.;;;

2005-05-03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5-05-0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 당연하죠. 그러니깐, 같은장소 같은시대 소설에 대해서는 제 성격과 상황이 이입되어 버린다니깐요. 그래도 못 읽을뻔 하다가 읽어서 좋아요.^^ 독서는 나의 힘!

돌바람 2005-05-1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 둘러보면 '레나'라는 닉네임의 익명성과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레나와 같은 익명의 레나들이 양상되는 걸 보면 작가가 포착하고 있는 현실 공간에 줌을 맞춰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진짜 뭔가 저지르고 싶어하는, 허나 저지르지 못하는 인간군이 어디든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쭈뼛거리게 되던데, 나는.
 

 예전에 오프서점에서 이 책보고, 참 별책도 다 있다 싶었다. 마르케스라는 이름이 있는 와인 빼곤 낯선 이 길쭉한 나라에 관한 이야기. 표지도 참 후지고 후드득 넘겨봤을때도 왠지 후져보였지만, 이런 책은 많이 많이 사줘야해. 생각했던 책.

 

 

 이 책은, 글쎄 어떨까.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편이라고는 하는데, 얼마나 알찬 내용일지는 두고볼 일이다. 표지가 심상치 않기는 위의책이랑 만만치 않음.

 

 

 

 거의 유일하게 내가 찾을 수 있었던 내가 알고 싶은 중남미사에 관한 책.

 

 

 

 콜롬비아의 여성 정치인에 관한 이야기. 음. 재미있겠군!!!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드디어 끝냈다. 과연 끝냈다고 할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단편만 보고 열광했었는데, 정작 이 소설을 지금에야 접하다니, 너무 게을렀다.

계속 열심히 읽고 싶은 중남미 소설들이다.

그들의 역사에 너무나 무지한데, 지금에야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다니.  too late, but better than NEVER.  라고 위안해본다.

 

angelus novus님의 추천에 힘입어  추가.

 

 

 

 

 

근데, 라틴아메리카로 검색하니 꽤 많은 책이 나오는군요. ( 바보!!! 몰랐던거냐?!)

근데 막상 땡기는 책은 위의 책밖에 없군요. 일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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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lady 2005-05-02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남미 시집들도 읽어 boa요 로르까와 네루다 등등 그런데 로르까는 스페인 시인이군 ^^;

perky 2005-05-02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남미에 푹 빠지셨군요. ^^ 저도 백년의 고독을 읽은후부터 시간나는대로 중남미 책들 읽기 시작했었어요. 나중엔 여행까지 가게 되더라구요. 책들만으로는 양이 안차서, 어떤 곳인지 직접 밟고 싶어져서요..저도 기회되면 중남미 역사책들 읽어보고 싶어요. 그래야 중남미 문학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아서요. 정말이지, too late, but better than nothing입니다.

panda78 2005-05-02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으로 바예호는 어떨까요. ^^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가 궁금합니다. 중남미, 정말 언젠가 꼭 한번 가 보고 싶은 곳이에요.

urblue 2005-05-0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칠레의 모든 기록> 추천입니다. ^^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콜럼버스에서 후지모리까지>(강준만)인데, 내용이 추가된 건가 했더니 저자가 틀리군요. -_-

딸기 2005-05-02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콜럼버스에서 후지모리까지' 재밌게 읽었더랬어요. 유어블루님도 그 책 갖고 계시군요. ^^
하이드님, 마지막 책- 베탄구르, 갖고 있는데, 어째 재미없을 것 같아서 계속 안 읽고 내비두고 있어요.

einbahnstrasse 2005-05-03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번째 책은 원래
<웃으면 죽는다 :군사계엄하의 칠레 잠입기>Garcia Marquez, Gabriel, 김진욱 옮김. 서울 : 문학사상사, 1988.
으로 나왔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두 번째 책은 사기 보다는... 빌려드릴 수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한 다른 좋은 입문서로는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추천합니다.

einbahnstrasse 2005-05-03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파트리시오 구스만의 <칠레전투: 비무장 민중들의 투쟁The Battle of Chile: the struggle of an unarmed people> 3부작 비디오 역시 추천합니다. 그걸 보고 <칠레의 모든 기록>을 읽으면 훨씬 더 이해가 잘 될 듯.

하이드 2005-05-03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책만 안 샀지요. 목차가 막상 사려고 보니 별로 안 끌리더라구요.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책! 그러니깐요. 제가 원하던 책이라니깐요! 당장 장바구니로!

하이드 2005-05-03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으면 죽난다 : 군사계엄하의 칠레 잠입기] 가 원제일까요? 더 원제스럽긴 하군요. 칠레전투... 와 같은 비디오는 어디서 불 수 있을까요?

einbahnstrasse 2005-05-03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네21에서 '미래영상'을 검색하세요.
 

『백년 동안의 고독』: 신화에서 역사로, 역사에서 문학으로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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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백년 동안의 고독』이 출판된 지 올해로 35년이 흘렀으며, 국내에 소개된 지도 어언 25년이 흘렀다. 1967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20여 개국 언어로 번역, 소개되면서 이 책만큼 세계 문학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도 드물 것이다. 풍성한 내용으로 인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다는 지트릭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 다양한 계열의 작가들에게 다양한 영향을 끼친 이 작품은, 출판 당시부터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선풍을 일으키며 국내 문단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그중 특히 김성동, 조성기 등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엔 황석영의 『손님』을 통해 그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90년대의 국내 문단이 80년대의 리얼리즘적 억압에서 벗어나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며 현실도피 문학의 한 형태로서 환상문학을 표방하고 있을 때, 황석영은 그의 작품 『손님』을 통해 국내 문단에 리얼리즘과 환상문학의 병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우리들에게 가장 큰 트라우마인 내전과 분단 문제를 주술사를 등장시켜 화해시키는 황석영의 작품은 리얼리즘 문학 속에 환상이나 주술 등을 삽입시킴으로써 리얼리즘 문학의 확장을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는 바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 내려지는 평가와 똑같은 것이다.

콜롬비아의 좌파 게릴라 단체인 M-19라는 단체를 지원했다는 혐의로 정부에 의해 수배를 받고 멕시코로 망명을 떠나 82년 노벨상을 수상할 때까지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던 그는 다른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처럼 중남미의 왜곡된 정치, 사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이다. 그의 이러한 정치적 신념은 노벨상 수상 연설문인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에도 잘 나타나 있는데, 그는 이 글을 통해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 및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탈을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으며, 특히 독립 후에는 미국이 후원하는 독재자들의 강압 통치를 겪어야만 하는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의 '고독'을 온 세계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백년 동안의 고독』이 그러한 역사적, 정치적 상황을 직설적으로 고발한 소설은 아니다. 50, 60년대에 유행하던 콜롬비아의 다른 리얼리즘 소설들에 비해 그의 소설은 직설적인 고발의 강도가 다소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아픈 현실에 신화, 상징 등을 삽입하는 기법으로 콜롬비아를 벗어나 온 라틴아메리카에 일상화되어 있는 폭력의 역사를 더욱 신랄하게 비판하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폭력의 역사를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폭력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어떻게 종결되는지 즉 폭력의 근원들을 이해하고자 했다"는 앙헬 라마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그렇지만 『백년 동안의 고독』이 근본적으로 콜롬비아의 역사를 떠나있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엔 콜롬비아의 비극적 역사들이 아주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백년간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승리와 좌절의 역사인 『백년 동안의 고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20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구체적인 시간 개념이 결여된 제 1부 신화의 시대와 콜롬비아의 구체적 역사가 기술된 제 2부 역사의 시대, 그리고 그 역사적 시대를 주관적으로 재해석, 재발견해 내는 제 3부 문학의 시대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천일 전쟁>과 <바나나 농장의 파업> 사건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는 제 2부는 말 그대로 콜롬비아의 백년간의 역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보수당이 창당됨으로써 양당제가 고착화되기 시작한 1849년부터 1948년 가이탄의 암살로 촉발된 <보고타 사태>까지 정확히 100년간의 역사가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100년이라는 의미가 정확한 역사적 의미보다는 상징적, 신화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엔 필자도 동의한다. 하지만 1849년에서 1948년에 이르는 콜롬비아의 역사와 그 기간 중에 발생했던 두 번의 사회변혁운동의 중요성을 상기한다면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부엔디아 가문의 백년간의 고독이 철저히 콜롬비아의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1) 신화 시대

"많은 세월이 지난 뒤, 총살형 집행 대원들 앞에 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아버지에 이끌려 얼음 구경을 갔던 먼 옛날 오후를 떠올려야 했다"'라는 과거와 미래, 현재가 복합된 문장으로 모호하게 시작하는 『백년 동안의 고독』의 첫 부분은 이 작품 이해의 열쇠들을 암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시작은 종말에 내재되어 있고, 종말은 시작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순환적, 종말론적 시간관을 반영하고 있다. 그렇기에 <신화의 시대>에 대한 이해는 앞으로 전개될 <역사의 시대>에 대한 전사로서 매우 중요하다. 총 20장으로 이루어진 소설 중에서 1장에서 3장까지를 차지하고 있는 <신화의 시대>는 신화적 공간인 마콘도의 탄생과 부엔디아 가문의 시작, 그리고 외래문물인 집시와의 만남 등을 다루고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시간 개념이 모호하고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구체성이 결여된 신화적 원형을 창조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는 작중인물의 이름까지도 신화적 원형을 의식하며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의 시대>에는 마콘도에 대한 역사 서술방법과 관련된 세 가지의 중요한 상징코드가 등장한다. 첫째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라는 근친간의 결합으로 인한 부엔디아 가문의 형성과 그로 인한 몰락에 대한 암시, 그리고 마콘도의 건설을 들 수 있다. 이미 조상들에 의해 한번 저질러졌던 '원죄'와도 같은 근친상간의 죄악은 그로 인해 '돼지꼬리 달린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멸망에 대한 암시를 담고 있다. 이러한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신화는 세계의 여러 신화들 속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신화로 특히 인간의 숙명을 잘 나타내고 있는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는 가장 유명하다. 물론 성경 속에서도 아담과 이브의 탄생 또는 노아의 방주 이후에 탄생한 문명들 속에서 근친상간의 사례들이 보이지만, 부엔디아 가문의 멸망할 수밖에 없는 숙명과 관련지어 볼 때 오이디푸스 신화와의 관련성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마치 오이디푸스에게 주어졌던 가혹한 신탁과 운명이 그의 모든 것을 망쳐놓고 평생을 고통 속에 지내게 만들었듯이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근친 간에 피할 수 없는 유혹을 느끼며, 이로 인한 심리적 압박과 공포 때문에 고독 속에서 평생을 보내는 숙명을 맛보며, 끝내는 근친간의 결합으로 인해 멸망을 맞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마콘도의 건설과 관련해서도 서구신화와의 연관관계는 두드러져 보인다. 근친간의 결합과 친구의 살해 그리고 마을을 떠나는 부엔디아와 우르술라의 모습은 성서 속의 여러 인물들을 패러디한 것이며, 이렇게 건설된 마콘도의 모습은 마을이면서도 소우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전형적인 신화적 공간인 것이다.

두 번째 코드는 마콘도와 외부문명의 만남을 들 수 있다.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늘 새들이 지저귀는 행복한 영생의 마을이었던 마콘도는(23) 점차 현대문명과 그 제도의 침투를 받으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조정할 것이 하나도 없는 곳에 국가의 공무원인 조정관이 무장한 군인들을 데리고 부임하면서 마콘도의 몰락은 시작된다. 정당과 선거의 도입으로 내전이 발생하고, 미국인들이 건설한 바나나 농장은 대학살을 일으킨다. 이러한 외부문명의 도입과 제국주의의 침탈이 마콘도를 서서히 멸망시켜 나가는 과정을 기술한 것이 4장에서 16장까지의 중요 내용이다. 하지만 이미 <신화의 시대>에서 이러한 몰락에 대한 암시들이 등장한다. 마콘도에 처음 등장한 외부문명은 멜키아데스와 집시들이 소개한 과학문명이었다. 그들은 자석, 망원경, 돋보기, 얼음덩어리들을 마콘도에 소개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문명은 마콘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긍정적인 영향을 하기보다는 주민들을 타락시키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집시들의 방문 이전엔 가장 "진취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남자였던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23)"의 타락은 마콘도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예시이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그런 공동체적인 솔선수범 정신은 자석들에 관한 열병, 천문학적 계산, 물질의 변이에 대한 동경, 세상의 경이들을 알고자 하는 열망에 이끌려 이내 사그라들어 버렸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적극적이고 대담하고 깔끔했던 사람에서 아무거나 주워입고,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 우르술라가 부엌칼로 진땀을 빼며 다듬어주어야 했던, 건달 모습을 한 사내로 변해 버렸다.(24)


진보된 문명의 전파자였던 멜키아데스와는 달리, 뒤에 도착한 집시들은 단순히 "여흥을 전파하고 물건을 파는 상인들(54)"에 그친다. 진보된 문명을 받아들여 황금을 찾고 전쟁무기를 개발하려고 삶의 기반인 당나귀와 염소를 주었던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이제 유희를 위해 화폐를 지불한다. 외래문물은 그들에게 끊임없는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신화시대에 도입된 마지막 외래문물은 불면증이다. 구아히라 출신 원주민 비시따시온과 레베카가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콘도는 불면증이라는 전염병에 휩쓸리며 이로 인해 과거의 모든 기억을 상실하고 문자시대, 역사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이외에도 우르술라가 발견한 길을 통해 들어온 외부문물 등 외부와 접촉된 모든 것이 원시적인 마콘도를 점차 근대화, 도시화시켜 먼 미래에는 "마콘도가 부엔디아 가문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유리로 지은 거대한 도시가 될 것(87)"이라는 멜키아데스의 예언에 이르게 된다. "이 질병이 일단 집 안으로 들어오면 아무도 피할 수 없지요(73)"라는 비시따시온의 숙명적 절규에서 드러나는 외래문명의 폐해는 다음 역사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그렇기에 우르술라는 멜키아데스를 처음 만나자마자 그에게서 "악마의 냄새(19)"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외래문물이 가져올 폐해를 이성이나 합리적 추론 이전에 직관적으로 깨닫는 것이다.

세 번째 코드는 프란시스코에 의한 구전설화 이야기이다. 구전설화는 역사시대 이전의 민중들이 "바깥세상에서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83)" 유일한 수단이다. 온 세상을 유랑하며 노래하는 유랑시인들을 통해 그들은 먼 곳에 있는 아들의 소식을 유추하며, 심지어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83)"까지 알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구전설화는 공식적인 역사는 아니다. 권력을 가진 역사가들에 의해 왜곡되거나 재단되지 않은 순수한 민중들의 삶의 흔적이요 기록인 것이다. 후일 바나나 농장에서 대학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부의 공식역사는 이를 부인하고 왜곡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구전설화를 통해 이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렇듯 구전설화는 공식역사가 왜곡하고 감추는 민중들의 수난의 역사를 복원시키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작품 속의 많은 사건들은 서구의 텍스트들과 많은 유사성을 가지며, 그로 인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서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구전 문화적 전통을 차용함으로써 민중들에게 낯설지 않은, 친근한 환상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하듯이 콜롬비아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2) 역사 시대

이 작품의 2부를 구성하고 있는 4장부터 17장까지는 콜롬비아의 역사적 사실을 아주 분명히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즉,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두 차례의 사회변혁운동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천일 전쟁(1899-1902)과 바나나 농장의 파업 사건(1928)으로 대별된다. 총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역사시대>에는 두 명의 중심인물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와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이다. 작품의 구조는 정확히 대칭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5장에서 9장까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가 선거 부정에 항의해 내전을 일으키는 내용 앞에 <신화시대>와 <역사시대>를 연결해주는 4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천일 전쟁과 바나나 농장의 파업 사건을 연결해주는 10장과 11장을 거쳐 12장에서 15장까지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와 그 동료들이 바나나 농장에서 파업을 일으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16, 17장의 고리를 통하여 <역사시대>와 마지막 <문학시대>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즉, 정확하게 대칭적인 구도를 통해서 이 작품의 중심 테마가 콜롬비아의 역사적 사실이며 <신화시대>와 <문학시대>는 그 비극적 역사의 뿌리와 재해석이란 것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시대>는 외부문물인 행정제도의 도입과 신화적 인물인 멜키아데스의 죽음,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몰락을 통해 시작된다. 조정관이 부임하는 등 행정제도가 도입되면서 마콘도는 원시문명의 자연적이고 신화적인 요소들을 점차 상실하고 근대적인 도시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부엔디아 가문의 집도 새롭게 확장되고 자동 피아노 등이 수입되면서 마콘도는 근대화되며 새로운 진리와 질서를 요구하게 된다. 이에 과거 신화시대의 진리와 질서를 담당했던 두 인물인 멜키아데스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사라져야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화시대의 진리를 담당했던 멜키아데스는 마콘도 최초의 사자(死者)가 되어 땅에 묻히고,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신의 형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신의 형상을 찾는 작업을 중단하고 난(98)" 뒤 광인(狂人)이 되어 나무에 묶인다. 혼돈의 시대에 빛을 전파해주고 바위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처럼 그도 나무에 묶인 채 인간 역사의 발전과정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반체제 인물, 비밀스런 신의 권능을 훔친 인물, 인류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벌을 받은 인물, 이러한 것들이 프로메테우스라는 거대한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는 신화소들"이라면 세상의 온갖 미스터리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싸움은 그를 프로메테우스적 신화성으로 부각시키며, 그의 죽음을 맞기 위해 저승에서 찾아오는 프루덴시오, 카타우레의 유령 등과 어울린 신성의 상징 노란색 꽃비의 하강은 그의 몰락을 더욱 신화적으로 만든다.

과도기를 거친 마콘도는 본격적으로 <역사시대>에 진입하게 된다. 전술한 바와 같이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다뤄지는 콜롬비아의 역사는 두 가지 중요한 사회변혁운동을 다루고 있다. 하나는 이상적인 자유당 시대를 건설하고자 투쟁했던 기간이며, 또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변혁운동을 꾀했던 기간이다. 콜롬비아는 1810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했지만 보야카 전투를 승리한 1819년에 이르러서야 사실상의 독립을 획득한다. 하지만 독립 이후에도 중앙집권을 주장하는 세력과 연방제를 주장하는 세력간에 끊임없는 갈등을 겪게 되며, 이는 1849년 보수당이 창당되면서 더욱 격화된다. 콜롬비아의 역사를 대별해 보면 일반적으로 독립을 선포한 1810년부터 1862년까지는 보수당 또는 보수 이데올로기가 강성했던 시기이고, 이후 약 20년(1863-1885) 동안의 자유당 낙원기(Utopia libera)와 다시 약 50년(1886-1929) 동안의 기나긴 보수당 재집권기, 그리고 15년(1930-1946) 간의 짧은 자유당 통치기를 통해 <폭력시대(La Violencia)>에 이르게 된다. 한마디로 보수당과 자유당의 끝없는 이데올로기 갈등이 벌어졌던 100년간이었던 것이다.
윌리암스에 의하면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세기 하반기를 "자유당이 진정한 자유당의 모습을 가졌을 때이며, 그렇기에 콜롬비아의 역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기간"이라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작품 속에서 이상적인 자유당 시대를 복원시키고자 노력했던 부분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의 결혼으로 시작해서 그의 자살실패로 끝을 맺는 5장에서 9장까지이다. 그는 처음에 보수당 조정관의 딸과 결혼을 함으로써 보수당적인 색채를 띠지만 그들의 선거부정과 잔혹한 통치에 염증을 느껴 자유당에 가담하고 32차례나 봉기를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그의 봉기는 모두 실패했고 17명이나 되는 아이들도 산으로 도망친 큰아들 아우렐리아노 아마도르를 제외하고 모두 살해당했다. 이는 현재 산악지방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좌파 게릴라 단체들의 혁명운동 외에는 콜롬비아에서 시도되었던 수많은 사회변혁운동이 모두 실패했음을 암시한다. 빨간색으로 표상되는 자유당의 정치인들은 처음에 "이혼 제도를 도입하고 서자도 적자와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는(149)" 등 정교분리·노예해방·토지분배·언론의 자유·공공교육의 확충·자유무역·연방제 등을 통한 자유로운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혁명의 이상이 퇴색되어 각료 몇 명과 혁명을 교환하기(216)에 이르게 된다. 이로 인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과 그 일행의 "위대한 자유당을 건설하기 위한(205)" 초기의 혁명이상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205)" 부질없는 투쟁으로 전락해 버린다. 이제 보수당과 자유당 사이에 남은 차이는 5시 미사에 참석하느냐 8시 미사에 참석하느냐 정도인 것이다. 그들은 "마콘도에 전원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206)" 아버지 세대와 똑같은 21명의 장정이 자유당 봉기에 참여했지만 원하던 평화는 얻지 못한 채 직업 정치인들과 군부에 농락만 당한 채 32차례의 전쟁에 모두 패하게 된 것이다.

100년 동안 콜롬비아 정치의 수장은 수없이 바뀌었다. 보수당에서 자유당으로, 자유당에서 다시 보수당으로, 통치권자는 수없이 교체됐지만 민중들의 수탈당하는 삶은 변화가 없었다. 마콘도에도 민중들의 봉기로 자유당 정권이 성립됐지만 아르카디오의 철권통치는 이전 보수당 정권보다 더욱 잔혹했으며, 호세 아르카디오의 착취는 정권에 상관없이 계속되었다.


몇 년이 지난 다음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부동산 소유권에 관한 사항을 검토하다가, 자기 집 마당 언덕에서부터 공동묘지를 포함하여 지평선 끝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땅이 형 호세 아르까디오 명의로 되어 있으며, 아르까디오는 마꼰도를 통치하던 십일 개월 동안 소작료뿐만 아니라 호세 아르까디오 소유지에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요금까지도 징수해 착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175)


호세 아르까디오는 몰수한 땅의 소유권을 보수파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계속해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199)


1954년 발표된 하라미요의 「분노와 고통」이라는 그림엔 이와 같은 민중들의 슬픔이 잘 드러나 있다. 대지에 누워있는 흰 옷 입은 민중의 시체를 뒤에 두고 울면서 고향 땅을 쫓겨 가는 노란 옷의 두 여인과 발가벗겨진 어린아이의 모습과 대조되는, 파란색과 빨간색의 두 마리 이리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처연하게 만든다. 민중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을 죽이며 고향 땅에서 쫓아내는 이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파란색 보수당 권력자요 빨간색 자유당 정치인들인 것이다. 노예해방·토지분배·언론의 자유·공공교육의 확충 등을 통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자유로운 이상향을 건설하려던 자유당의 이념은 어느새 퇴색한 이데올로기가 되어 그들도 보수당과 똑같이 민중들을 수탈하고 핍박하는 이리떼가 되어버린 것이다. 소설에선 이 과정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첫 번째로, 자유파 지주들의 지지를 다시 얻으려면 토지 소유권에 관한 재조사를 단념하라고 요청했다. 두 번째로, 카톨릭 교인들의 지지를 얻으려면 성직자들의 영향력에 대항하는 투쟁을 중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지막으로는, 가정의 고결함을 보존하려면 적자와 서자 사이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해 주는 법안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권을 잡기 위해서만 투쟁하고 있다는 말이군요.> 사절단이 제안서를 다 읽자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전략적인 수습책이지요. 현재 중요한 것은 전쟁의 대중적 기반을 확대하는 것이니까요. 장차 일은 나중에 재고하기로 하고요.> 사절단 가운데 한 사람이 대꾸했다.(250-251)


1902년 10월 24일 네에를란디아 휴전협정이 조인되어 자유당의 봉기는 실패로 끝난 채 막을 내렸다. 하지만 비극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휴전협정의 당사자로 이 소설에 나오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모델이 되었던 라파엘 우리베 장군이 1914년에 암살되었고, 1948년엔 가이탄이, 그리고 1966년엔 카밀로 토레스(Camilo Torres)가 뒤를 이었다. 콜롬비아에서 변혁운동을 이끌던 지도자들이 계속해서 암살된 것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 후반부의 역사는 이와 같은 20세기 변혁운동의 전개와 그 좌절을 다룬 이야기이다. 작품에서 다뤄지는 20세기 콜롬비아의 변혁운동은 사회주의 변혁운동의 특징을 갖는데,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사회당이 창설된 1919년부터 가이탄이 암살된 1948년까지를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콜롬비아에선 1919년 사회당,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20년 공산당이 창설되었으며,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갈등이요, 그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1928년 시에나가에 있는 미국인 바나나 농장 United Fruit Co.에서 자행된 노동자 학살 사건이라는 윌리암스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5장에서 9장까지 다뤄진 변혁운동이 이상적인 자유당 시대의 복원노력과 그 좌절이었다면 12장에서 15장까지는 사회주의 변혁운동과 그 좌절을 다룬 부분이다. 전자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라는 중심인물을 중심으로 서술되기에 그의 결혼으로 시작해서 그의 자살실패로 끝을 맺는 반면에, 후자는 철저히 사회와 문명의 변화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새로운 문명인 영화·축음기·전화의 도입으로 혼란을 느끼는 마콘도 주민들에서 시작해서 제국주의자들의 도래와 바나나농장의 건설 그리고 이어지는 파업과 대량학살이 그려진다. 천일 전쟁이 끝난 뒤 콜롬비아는 더욱 보수화되며 제국주의의 침탈 또한 가속화된다. 내전이 시작되던 1899년 Colombia Land Co.와 Boston Fruit Co.의 합병으로 탄생한 United Fruit Co.의 침탈은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그들은 콜롬비아의 해안지방에 수많은 바나나 농장을 건설하고 민중들을 착취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1928년 시에나가에서 자행된 학살사건으로 이미 사무디오(Cepeda Samudio) 등 많은 작가들이 소설화한 사건이다. "바나나 농장의 착취 시스템은 단순한 착취 시스템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발전과정에 적합하도록 모든 민중들을 규정하고 조건지으며 변형시킨 시스템"이었다는 앙헬 라마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라이그넬렛의 그림에서 보여지듯이 삶을 원조하던 바나나가 죽음의 상징으로 변화된 것이다.

마콘도에 바나나 농장이 건설되면서 마콘도는 죽음의 도시로 변한다. 미녀 레메디오스와 얽힌 네 명의 남자들이 차례차례 죽음을 맞이하고 그녀 또한 하늘로 승천한다. 마그니피코 비스발 대령의 형제와 그의 손자가 실수로 음료수를 쏟았다가 잔인하게 살해당하며, 부엔디아 대령의 열여섯 명의 아들들이 하나하나 살해당한다. 부엔디아 대령과 아마란타를 거쳐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에 이르기까지 마콘도는 죽음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적인 죽음들은 장차 광장에서 자행될 학살사건의 서곡에 지나지 않는다.

19세기의 역사적 중심인물이 부엔디아 대령이라면 20세기의 인물은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이다. 처음엔 보수당과 가까웠다가 자유당 봉기의 중심인물이 된 부엔디아 대령처럼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도 제국주의자들의 십장 노릇을 하다가 노무자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시위의 주동자가 된다. 노무자들이 요구한 것은 일요일 휴무 단 하나였고 이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의 첫 번째 봉기처럼 성공을 거둔다. 그의 역사는 철저히 부엔디아 대령의 길을 답습하며 이는 이번의 변혁운동 또한 숙명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암시이다. 첫 번째 시위가 성공을 거둔 뒤 그들은 두 번째 시위에 들어간다. "이번에 노무자들의 불만은 노무자 숙소의 비위생성과, 의료서비스의 기만성, 그리고 작업조건의 악랄함에 기초하고 있었다(II, 144)". 하지만 바나나 회사와 마콘도 당국 및 상급 재판소는 노무자들의 요구를 꾸며낸 이야기로 일축하고 노동자들은 대규모 파업을 전개한다. 결국 계엄령이 선포되어 군대가 공공질서유지를 담당하지만 애초부터 그들은 쟁의를 중재할 생각이 없었으며 화해를 도모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 결국 "상황이 처절한 내란으로 번질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정부는 노무자들에게 마콘도로 집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소집령에 따르면, 도의 민·군 총책임자가 쟁의를 조정하기 위해 돌아오는 금요일에 마콘도에 도착할 거라는 것이었다(II, 148)." 하지만 금요일이 되어도 총책임자는 오지 않고 마콘도의 역 앞 광장은 살육의 도가니로 변한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파업에 가담한 노무자들을 <불량배 패거리>로 규정하고, 그들을 사살할 권한을 군대에 부여하고(II, 149)"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제국주의의 착취를 정부가 지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열두시가 가까워오자, 노무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이 섞인 삼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며 역 앞 공터를 넘쳐흘러, 군대가 기관총들을 줄지어 세워놓고 가로막고 있는 옆길들로 밀려나왔다.(II, 148)


대위가 사격 개시 명령을 내렸고, 열네 개의 기관총좌들이 동시에 그의 명령에 응답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희극처럼 보였다. 숨가쁘게 울리는 총성이 들리고,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지만, 순간적으로 살아 있는 화석이 되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밀집한 군중들 사이에서는 최소한의 가벼운 반응도, 말소리 하나도, 한숨소리조차도 감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기관총들에는 폭죽탄들이 장착되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갑자기 역 한쪽에서 죽음의 비명소리 하나가 그 마법의 정적을 깨뜨렸다. <아아아악, 어머니!> 지진과 같은 힘,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숨소리, 하늘을 무너뜨리고 지축을 뒤흔드는 듯한 포효가 엄청난 폭발력과 더불어 군중 한가운데서 터져 나왔다.(II, 150-151)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는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삼천 명은 되었을 겁니다> 그가 중얼거렸다.
<뭐가요?>
<죽은 사람들 말이에요. 역 앞에 모였던 사람은 다 죽었을 겁니다> 그가 확실하다는 투로 말했다.(II, 154-155)


삼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희생당했음에도 마콘도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학살이 자행된 뒤에 나온 정부의 공식 발표 어디에서도 마콘도에 대한 애도나 죄책감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사실을 왜곡하고 감추기에 급급했다. "정부가 사용 가능한 모든 매스컴을 총 동원해 전국적으로 수천 번이나 되풀이해 유포한 공식 발표는 결국,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고, 만족한 노무자들은 모두 가족을 찾아 돌아갔으며 바나나 회사는 비가 그칠 때까지 작업을 중단한다는 내용을 믿게(II, 157)" 만드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들은 아무런 의미 없는 희생자들이요 잊혀진 존재들이었다. 정부의 공식발표에 의하면 "마콘도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현재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긴 살기 좋은 마을(II, 157)"이니까.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1914년엔 라파엘 우리베 장군이, 1948년엔 가이탄이, 그리고 1966년엔 카밀로 토레스 신부가 암살당하는 등 콜롬비아의 변혁운동을 이끌던 지도자들은 계속 죽어갔다.

사실 시에나가에서 학살이 벌어졌을 때인 1928년만 해도 이 사건은 대단히 중요했었다. 야당 정치인인 가이탄이 현장을 방문, 조사해서 그 만행을 국회에서 고발했고, 이로 인해 정부는 매우 난처해졌으며, 가이탄은 민중들의 정치지도자로 부상했다. 시에나가에서 벌어진 학살사건에서 살해당한 사망자 숫자가 13명에 불과함에도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굳이 3,000명으로 과장한 것은 이 사건과 48년 <보고타 사태>의 연관관계를 암시하기 위한 것이다. 정확히 20년 뒤에 또 다른 대량학살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12장에서부터 17장까지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는 바나나 농장의 학살사건은 단순한 한 지역의 비극이 아니라 20세기 전반기 내내 콜롬비아 전 지역에서 벌어진 사회주의 변혁운동들의 시도와 그 좌절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 마콘도의 상처를 씻어내는 데는 4년 11개월 이틀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는 아물고 핏빛 기억들은 순화될 테니까. 그리고 시간은 사건 자체가 아닌 사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원인과 결과들을 고민해보게 도와줄 테니까. 그러나 현실 속에선 이 사건들을 작품화하는데 4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작품화는 역사의 당사자가 아닌 제 삼자의 관점과 해석이 필요했다. 18장에서 20장까지 이어지는 『백년 동안의 고독』의 마지막 부분은 이러한 작품화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3) 문학 시대

<신화시대>의 중심인물이 호세 아르카디오이며, <천일전쟁>의 중심인물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고, <바나나 농장>의 중심인물이 호세 아르카디오 세군도라면, 마지막 <문학시대>의 당사자는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다. 그는 부엔디아 가문의 딸과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라는 바나나 농장 노동자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엄밀한 의미에서 부엔디아 가문의 사람은 아니다. 그는 조그마한 방에 틀어박혀 멜키아데스가 남긴 양피지를 해석하는데 한평생을 바치는 전형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갖는다. 하지만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양피지 문서를 해석하기 위해선 조그만 방을 벗어나서 거리로 나가 세상과 접촉해야만 한다. 이러한 세상과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바로 카탈루냐 출신의 현인이 있는 서점이다.


아우렐리아노는 매일 오후,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친구가 된 네 토론자들과 계속해서 모였는데, 그들 이름은 각각 알바로, 헤르만, 알폰소, 가브리엘이었다. 책 속의 현실에 틀어박혀 있던 그와 같은 남자에게, 오후 여섯시에 책가게에서 시작되어 동틀 무렵 사창가에서 끝나고 했던 그 시끌벅적한 모임은 하나의 계시였다.(II, 265)


그런데 서점에서 토론하는 아우렐리아노의 모습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자전적인 모습과 매우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바로 젊은 날 함께 문학토론을 즐겨했던 <바랑키야 그룹>이 그것으로, 이 그룹엔 약 10여 명의 청년들이 참여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람들이 알폰소 푸엔마요르와 알바로 세페다 사무디오, 헤르만 바르가스, 그리고 가르시아 마르케스 본인이다. 바로 『백년 동안의 고독』 19장에 등장하는 알바로와 헤르만, 알폰소, 가브리엘이 그들인 것이다. 이 그룹의 리더는 스페인 내전 이후에 콜롬비아에 정착했던 카탈란 출신의 라몬 비니예스로 소설 속에서도 정확히 카탈란 출신의 현인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사실들과 연관지어 보면 마콘도는 어느새 바랑키야로 변화되며, 아우렐리아노의 역사에 대한 해석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개인적 경험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18장에서 20장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부분의 중심인물인 아우렐리아노가 수행하는 행위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멜키아데스에 의해 남겨진 양피지 문서를 해석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그의 이모인 아마란타 우르술라와의 사랑이다. 양피지 문서에 대한 해석 행위는 『백년 동안의 고독』에 대한 해석과 똑같은 행위이며, 그에 대한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해석은 가문의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인해 근친상간이 이루어지며, 이로 인해 마콘도는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비극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툴리아 데 드로스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에 의하면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이해하기 위해선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상징 코드인 '근친상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작품 속에선 항상 '사랑에 대한 욕망'과 '근친상간'에 대한 공포가 함께 드러나 있는데, 그와 연관된 상징이 바로 물고기와 이구아나이다. 물고기는 부엔디아 대령이 끊임없이 작업하는 수동적인 에로틱 행위이며, 이구아나는 여성들이 두려워하는 근친상간의 징표이다. 즉, 물고기와 이구아나는 근친상간에 대한 끝없는 욕망과 두려움, 그리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만들어내는 신화소들인 것이다.

우르술라가 죽고 아마란타 우르술라가 마콘도에 돌아오면서 근친상간의 신화는 완성된다.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타 우르술라는 사랑을 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II, 288)"가 되고, 그러한 완성된 사랑의 결실로 돼지꼬리를 달고 있는 아우렐리아노를 출산한다.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난 아이는 새로운 신화의 시작이요 새로운 문화의 시작인 것이다. 오토 랭크(Otto Rank)에 의하면 근친상간의 신화는 창조적 충동의 신화이다. 파괴를 두려워하지 않고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 창조적 충동이 있었기에 인류는 생존할 수 있었고 항상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부엔디아 대령이 서른 두 번의 전투에서 패배한 것도, 삼천 명의 노동자들이 학살당한 것도, 그래서 결국 백 년 동안 콜롬비아의 역사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도 모두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란따 우르술라는, 몸집이 크다는 점에서는 부엔디아 가문의 자손이며, 호세 아르까디오처럼 튼튼한 데다 고집이 세고, 아우렐리아노의 똑바로 뜬, 통찰력 있는 눈을 지니고 있으며, 한 세기 만에 사랑에 의해 잉태되었던 유일한 아이였기 때문에 가문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그 해로운 악습과 숙명적인 고독으로부터 가문을 정화시키기로 예정되어 있는 그 아이를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완전히 식인종을 닮았네요. 이름은 로드리고라 할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아니오. 아우렐리아노라 부를 건데, 그러면 서른두 번의 전투를 이길 거요> 남편이 반대하고 나섰다.(II, 298-299)


백년만에 사랑에 의해 태어났기에 그는 가문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그 해로운 악습과 숙명적인 고독으로부터 가문을 정화시키기로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리 부엔디아 가문의 숙명적인 이름인 아우렐리아노를 다시 사용할 지라도 그는 서른 두 번의 전투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가슴 아픈 건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가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는(II, 288)" 것이다.


나가며

지금까지 우리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신화시대>, <역사시대>, <문학시대>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고찰해 보았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비롯한 붐세대 작가들의 가장 큰 공헌은 그들이 그들의 신화를 재발견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신화는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잉카문명의 변방지역이요 정복기 스페인의 부왕청이 있었던 콜롬비아에서 그들의 신화를 재현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손쉬운 방법으로 해결해 냈다. 신화소는 서구의 신화들에서 차용해 오는 대신 그것들을 기술하는 방법으로 구술 문화적 전통을 사용함으로써 그들 나름의 정체성을 비교적 잘 표현해 낸 것이다. 어차피 신화란 제한된 수의 카드를 가지고 하는 놀이가 아니던가? 질베르 뒤랑에 의하면 신화는 항상 재귀하는 것이다. 새로운 신화가 있다고 믿는 것은 피상적인 환상일 뿐이다. 서구의 편협한 합리주의 사상과 감수성의 지평에 신화를 되돌려 놓음으로써 고갈위기에 빠진 서구문학에 새로운 가능성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또한 역사적 사건을 기술하는 방법에서도 직접적인 고발의 형태를 취하기보다는 보편적인 상징과 과장, 신화들을 차용해서 그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원인과 결과 등을 천착함으로써, 콜롬비아만의 지엽적인 문제가 아닌 인류의 보편적 문제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합리주의 시대에서는 감히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생자(生者)와 사자(死者)의 공존 등과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에 섞어 넣음으로써 리얼리즘 문학과 환상문학의 경계를 무너뜨린 점 또한 주목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문학시대>엔 자신의 경험을 작품 속에 투영함으로써 자신의 시각과 의도를 분명히 밝히려 한 점 또한 주목된다. 돼지꼬리 달린 아이의 탄생을 마콘도의 숙명적 멸망과 결부시키기보다는 새로운 신화, 새로운 문명의 탄생에 대한 작가의 갈망으로 이해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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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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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종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 특히 프랑스인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동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에게는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책꽂이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밀란 쿤데라-

굳이 밀란쿤데라의 말이 아닐지라도, 이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백년동안의 부엔디아 집안의 이야기는 너무나 대단해서, 최고 작가인 마르케스가 23년동안 고민하고  이 소설을 세상에 내보였다고 하는데 23년까지는 아니라도 오래 고민하고 흡수하고 리뷰를 쓰는 것이 허접한 리뷰를 피하는 길이긴 하겠지만, 두번째 읽고, 두번째 리뷰, 세번 읽고 세번째 리뷰를 쓸것을 자신과 약속하고, '백년의 고독'과의 첫만남에 대해 주절거려 본다.

이 책을 읽기는 쉽지가 않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장면이나 헷갈리는 장면이 나와도 안 찾아보고 일단 그냥 읽어내려가는 나에게는 마지막까지도 이 사람은 누구더라? 하는 인물이 몇 있었다.

그러나 읽고 나면, 특히나 강렬한 마지막 열장정도를 읽고 나면, 그 사람이 누군지 몰랐던건 그리 중요하지 않아진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로 시작하는 부엔디아 집안의 흥망은 결국 한가지 이야기다. 중간정도 읽을때까지만해도, 되풀이 되는 이름과 되풀이 되는 이야기에 여기서 끝나도 하나도 안 이상하겠다며 페이지를 끈기있게 넘기기도 했지만,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그 모든 이야기가 이 결론을 향하여 치달았구나.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머리를 쾅 친다.

옮긴이의 말처럼 '백년의 고독' 을 '백년의 근친상간의 이야기' 로 바꾸어 놔도 될 정도로 이 이야기는 근친상간으로 시작해서 근친상간을 끝난다. 등장인물들의 고독도 근친상간이라는 비도덕에서 오는 고뇌에서 온다.  정녕 그렇다. 이 '근친상간'모티브에는 외부세계(서양세계)와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비확실한 근본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굴절된 역사와 현재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이 책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라틴 아메리카의, 그 중에서도 콜롬비아의 역사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책에 나온 굵직굵직한 사건들( 19세기 말에 일어났던 천일전쟁과 바나나 농장 파업사건)과 인물들은 실존인물들과도 실제 사건들과도 겹친다.

이 책은 역시 호세 아르까디오의 성격을 지닌 아들들과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의 성격을 지닌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문의 긴 역사를 통해 똑같은 이름들을 집요하게 되풀이해 씀으로써 확실해 보이는 결론들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내성적이었지만 머리가 뛰어난 반면에, 호세 아르까디오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충동적이며 담이 컸으나 어떤 비극적인 운세를 지니고 있었다. '

1982년 노벨 문학상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수없이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은 이 소설을 한 번 읽고 어떻다 말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위에 썼듯이 라틴아메리카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이 책을 보는 것은 많은 것을 놓치고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듯이) 하지만, 이런저런 숨은뜻과 배경지식에 대한 무지에도 불구하고, 그 텍스트만으로도 다시 접하기 힘든 충분히 처절하게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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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5-02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말 마지막이 압권이었어요. 맨 마지막 장을 읽고났을때야 비로소 '백년동안의 고독'이라는 책 제목이 확실히 이해됐었죠. 솔직히 저는 이 책을 상당히 어렵게 읽었었는데요. 워낙 어렸을 때 읽었고, 특히 마술적 사술주의 기법이란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보니 이해하기 무척 어려웠던 것 같아요. (2번 읽다 포기했고, 3번째 시도만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다 읽고나서 뿌듯함과 허무함, 황홀감이 마구 교차했던 책이었어요.

하이드 2005-05-02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어요. 맞어요. 마지막장! 저도 어렸을 때 접하고 지금 또 나이 들어서 접하고, 나중에 또 접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정말 대단하단 말 밖에 안 나와요.

해적오리 2005-05-05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요. 저도 읽어보고 싶은데 번역본 어디게 좋은가요?

하이드 2005-05-06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민음사꺼밖에 안 읽어봐서요. 근데, 대체로 민음사께 믿음직 한것 같아요. ^^
 

62. 너새네이얼 웨스트 ' 메뚜기의 하루'

 두번째로 읽은 웨스트의 중편. 처음 '미스론리하트' 보다는 덜 충격적이었지만, 역시 웨스트. 웨스트 소설의 힘은 읽고 나서 그 여운이다. 미스론리하트에서 그랬듯이 수 많은 은유들로 읽는 동안 머리가 복잡스럽기는 하지만,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아 대단했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다. 그.러.면.서.도. 재미있기까지 하니, 네편밖에 없는 이 요절한 작가의 책은 평생토록 되새겨 읽을 수 있는 책이다.

 

 

63. 아니 프랑수아 ' 책과 바람난 여자'

 간만에 사자마자 읽은 책에 관한 아주우- 재미있는 신간. 저자의 30년간 출판교정가로서의 경험과 개인적으로 집착, 사랑, 애증의 관계인 '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록, 책에 관한 이 무수한 에피소드들에 공감하며 포복절도하며 동병상련한다.

우헤헤

 

 

64.  어슐러 K. 르 귄 '어스시의 마법사'

 끝나버린 반지의 제왕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주는 재미있는 소설을 만났다.  어느새 절판되어 속을 끓였지만, 판다님께 한권, 을지서적 리브로를 달달달달 볶아서 한권, 그리고 아직 절판되지 않은 3권까지 다 구할 수 있었다.

 '반지의 제왕' 같은 지루하고 힘든 선과 악의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책.

 

65. 볼테르 ' 낙천주의자 캉디드'

 철학 소설( 철학 동화) 인 이 책은 첫째로 재미있고, 둘째로 라이프니츠의 낙천주의에 대해 알게 해줬고, 그 낙천주의에 대한 볼테르의 생각도 볼 수 있다.

 아는만큼 본다고, 철저한 목적소설로 씌어졌다는 이 책에 무지한 나는 세뇌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이리 저리 머리 굴리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66. 다치바나 다카시 ' 청춘표류'

 다치바나 다카시를 좋아하지만, 이런류의 인터뷰책은 별로 안 좋아한다. 얇고 작고 비싼 하드커버 신간들. 아무튼. 무슨 바람이 불어 이 책을 샀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었긴 했다.

 단 작가의 '일류주의' 세계최고, 최초만을 일등가치로 여기는 점은 ( 물론 나도 그러긴 하지만) 왠지, 저자가 얘기하는 '청춘을 불살라라' , '실수하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다' 와 같은 보편적인 진리에는 좀 멀어보인다. 책 속의 젊음들은 물론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짜릿한 성공'을 맛본 이들이다. 사실, 좀 고까웠던 책이다.

 

67.  패트리샤 콘웰 '카인의 아들'

 지금까지의 스카페타 시리즈중에선 가장 평범하고 스카페타특유의 매력이 덜 드러난 소설이었다. 그래도 난 이미 이 시리즈를 좋아해버리고 말았기에, 좋다.

 

 

 

68. 앙브루아즈 볼라르 ' 파리의 화상 볼라르'

 재미없어 보이는 표지에 재미있어 보이는 책소개. 그래서 외려 의심이 갔던 책이지만, 꽤나 흥미로웠던 책이다. 미술팬들에게 최고로 인기있는 프랑스 낭만주의의 그때 그곳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들이 훌륭한 도판과 적절한 글들로 긴장을 잃지 않는다.

 

 

69. 에두아르도 바리오스 ' 사랑에 미친 꼬마'

 이런 점들이 나를 라틴문학에 끌어당긴다. 항상 새로운 점. 항상 낯선점. 아기자기 예쁘지도 않고, 교훈적이지도 않은 이 동화.

동화긴 동화인데, 잔인한 장면 하나 없이도 잔인하고, 뭔가 쥐어뜯는 그런 동화다.

 

 

70. 에드 맥베인 ' 10 플러스 1'

 솔직히 별로였다. 정말 좋아하는 스카페타 시리즈도 이번달에 읽은건 에잉? 했고, 더 더 좋아하는 에드 맥베인의 '10 플러스 1' 도 기대에 못 미쳤다.

 똑 같은 얘기. 뭐, 어떤 개떡같은 소설이라도 난 에드 맥베인의 책은 무조건 좋다.

 패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보다 훨씬 더 편애하는 작가.

 

71. 고품격 유머

 태고적의 저질적인 유머에서 벗어나고자 이와 같은 기획의 이와 같은 책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 슬쩍 반발짝 정도만 앞서가고 있어서, 태고로부터 백만걸음 해온 독자와 사회를 전혀 못따라오는 기분나뿐 유머들의 집합이다.

 

 

 

72. 실비나 오캄포 ' 천국과 지옥에 관한 보고서'

 번역도 의심되고, 알 수 없는 말이 너무 많아서 호흡을 맞추기가 힘들었던 간만에 당황스런 중남미 소설.

완전 못알아먹겠는 부분과 완전 맘에 드는 부분이 동시에 있어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다 라고 리뷰 제목에 썼었다.

 

 

73. 함정임 '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 '

 무덤 리뷰. 유럽의 무덤들을 순례하며 쓴 책이다.

저자의  감정이 그릇을 넘쳐흐르는지라, 책 읽는데 감정이입하기 힘들었지만,

 기획의도가 멋졌고, 어쨌든 문학을 전공하고 미술에 조예가 있는 작가의 지식이 곳곳에 드러나서, 나의 유럽여행을 좌절하게 만든 책이다.

 

74. 다이앤 애커먼 ' 감각의 박물학'

 올해의 책. 말이 필요 없다. 일단 읽어보면.

 이번달에 책 많이 못 읽었는데, 이 책 딱 한권만 읽었다고 하더라도 후회가 없는 한달이다.

 

 

75. G. K. 체스터튼 '브라운 신부의 지혜'

 히히 나는 브라운 신부가 좋다. 플랑보도 좋고. 근데,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고, 뒷권으로 갈수록 힘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다음권을 읽어야될지 고민이긴 하다.

엄숙하고, 장엄하고, 코믹하고, 의표를 찌르는 브라운 신부 시리즈!

 

 

76. 마르그리트 뒤라스 ' 모데라토 칸타빌레'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 모데라토 칸타빌레'

 저자의 얘기를 안 할 수 없고, 제목 얘기를 안할 수 없다.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표지의 사진과 같고, 서서 마시는 커피와 같이 강렬한 이미지로 남은 소설.

77. 에프라임 키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남편'

 오래간만에 읽은 에프라임 키숀의 책.

역시나 유쾌깔깔의 책이다!

 

 

이번달에는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이지 황홀한 독서경험이였다. 그리고 좋아하는 시리즈인 스카페타87분서 시리즈가 의외로 별로여서 김빠지기도 했다. 브라운 신부는 여전히 재미있었다. 너세네이얼 웨스트의 책을 읽은걸 얘기하지 않을 수 없고, 좀 부담스런 작가인 볼테르의 재미있는 책 ' 캉디드'를 읽었던것도 좋은 독서경험. 아니 프랑수와의 ' 책과 바람난 여자' 도 휴식같은 독서경험이었고, 반지의 제왕의 공백을 매울 '어스시의 마법사'를 읽었다. 읽는동안은 힘들었지만, 어쨌든 결론은 선의 승리인 그래서 더욱더 반지의 제왕을 떠올리게 한다. 파리의 화상 '볼라르' 도 꽤나 특이한 책으로 기억이 남는다.  남미소설을 꾸준히 읽었다는 것도 나 자신에게 칭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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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2005-05-02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십니다...+_+ 제가 1년에 읽을까 말까한 분량을 다 읽으셨다닝..
박수 보내요~~짝짝짝

빨간사과 2005-05-29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스트를 보면서 전혀 모르는 책들 사이에서 당황하다가 익숙한 작자의 이름을 보았습니다.ㅠㅡㅠ패트리샤 콘웰... 어제 법의관을 다 읽었거든요.보고 반해버렸는데...위의 책은 제가 읽지도 못한거네요. 빨리 읽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