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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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책을 읽기 시작한건 불과 작년이었다. 그의 '미학 오딧세이' 가 새로운 출판사에서 예쁘게 포장이 되어 나오면서야 나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때부터 알고 있던 그 책을 알게 된지 십여년만에 구입하게 된다. 저자도 자신있게 말하듯이 그 많은 이야기들이 굉장히 훌륭하게 구성되어 있는 책이다. 저자가 그렇게 얘기하면 불신감이 들고 좋아보이려다가도 미워보이는데,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만큼 잘만들어진 책이었다.

진중권이 '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고 각종 '놀이' 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책소개를 보자마자 흥미가 동하여 샀던 책이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빛깔 무지개 챕터를 가진 이 책에서는 주사위, 체스, 카드( 조커) 에서 종이접기, 정리정돈까지 온갖종류의 놀이거리에 대해 그야말로 신기하고 화려한 자료들을 동원해서 그야말로 입담 좋은 저자가 청산유수로 얘기하고 있다.

책에 나온 놀이들을 하던 시절을 그려보며, 놀이의 역사와 기원을 구경하며( 지루한 학술서 느낌 아닌 놀이의 비하인드 스토리 토크쇼같은 느낌이다.) 한바탕 잘 놀고 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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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05-11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이 책이 오래 있었는데, 님의 이 리뷰 덕택으로 나올 날이 멀지 않을 듯 합니다. ㅎㅎ

하이드 2005-05-1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런 재미없는 리뷰에! 그래도 Thanks to는 눌러주셔도 되요 . 헤헤
역시 리뷰는 읽고 그때그때 써야해요. -_-a 생각이 안나는건 아니지만, 여러권 몰아서 쓰니 글발이 안받는다고나할까뭐랄까 -_-+

클리오 2005-05-1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는 꼬옥~ ^^

하루(春) 2005-05-1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이것도 10% 할인쿠폰 주는데요? 정말, 하이드님 때문에 진중권 책이 더 읽고 싶어졌어요.

해적오리 2005-05-1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의 글을 읽고나니 전혀 관심없던 책인데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제가 사게 되면 꼭 님에게 thanks to를 눌러 드릴께요.^^
 

 

 

 

 

 

1. 마르크 레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 을 읽고 완전 감동받은 이후로 시간이 꽤 흘렀다. '너 어디 있니?' 를 산지도 오래되었지만, 처음 몇페이지를 넘기다가 팽개쳐둔 상태였다. 오늘 기분도 꿀꿀하고 왠지 감동적인 책이 땡기는 날이어서 집었는데,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로맨틱하고, 멋지고 강하고 유머감각 있고 헌신적인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나오고. 책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눈에 물을 달고 보고 있다. 책 뒤표지의 '18세기 프랑스에 알렉상드르 뒤마가 있었다면, 21세기 프랑스 대중소설은 마르크 레비가 이끌어간다' 라는 선전이 있다. 좀 오바인데, 싶었는데, 읽다보니 제발 뒤마처럼 책 팍팍 써주세요. 라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2. 존 버거. 누군가의 소개로 알게 된 작가도 아니고, 소문을 들어서 사야지 찜해놓았던 작가도 아니였다. 어쩌다가 오프라인에서 그의 책을 집었고, 그의 문장을 읽게 된 바로 그 순간이 내가 존버거에게 반하게 된 바로 그 순간이고,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도 그 순간이다. 그의 글을 읽게 되는 그 순간. 처음 읽었던 책은 열화당에서 나온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가슴' 이었다. 제목부터 시적인 이 책에서 시공간과 전우주를 누비는 그의 철학을 군더더기 없는 유려한 문장으로 접할 수 있었다. 다행히 번역된 책도 많고, 영문권 작가라 주문하기도 좋다. 그에게는 존경을 넘어선 경외감마저 느낀다. 존버거를 알게되서 난 참 행복하다.

 

 

 

 

 

  

 

 

 

 

 

 

 

 

3, 알랭 드 보통. 입소문 듣기 전에 오프라인에서 먼저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을 사면서 알게 된 작가다. 솔직히 이 작가에 대해서는 질투가 먼저다. '여행의 기술' 에서 나는 여행을 보는 다른 눈을 얻었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에서는 '사랑론'을 들었다. 근데, 이 멋진 책이 알랭드 보통이 25세때 쓴 처녀작이라는 뒷말을 읽으면서부터 난 이 작가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삶의 철학산책은 못 구한 책이고, 표지가 예쁜 펭귄판 원서를 몇권 더 가지고 있다.

 

 

 

 

 

 

 

 

 

 

 

 

 

 

4. 가브리엘 마르께스. 중남미문학을 좋아하는데, 지명도가 높으면서 어렵지 않으면서 읽고 나면 털썩 대단해! 외치게 하는 작가. 그래봐야 난 꿈을 빌려드립니다라는 단편집과 그 외 컴필레이션에 실린 단편들, 그리고 백년의 고독! 을 읽었을 뿐이지만. 콜레라의 사랑 칠레이야기, 그리고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익사체가 책꽂이에 얌전히 들어가 있긴하다, 사실 '백년의 고독'  이 너무 대단해서 그의 다른 책 읽을 기운이 없을 지경이었다.  책읽고 카타르시스 느끼기는 처음이었다고!

 

 

 

 

 

 

 

 

 

 

 

5. 패트리샤 콘웰. 저 위의 책들은 얇게 분권으로 나와서 나홀로불매운동하고 있다. 헌책방에서 혹은 지인들께 부지런히 졸라서 예전 시공사버전으로 일곱편을 다 모았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 악의 경전' 보고 울었다. 가슴이 벅차서. 책 속의 주인공에 이렇게 감정이입을 해 본적은 처음인듯. 이제 크게 심호흡하고 아마존에서 사 놓은 unnatural exposurepoint of origin 을 읽어야겠다. 전문용어가 많아서 겁내고 있었는데,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고 하니 슬슬 시작해야겠다.

6. 그 외. 폴오스터, 무라카미 하루키, 움베르트 에코, 미셸 푸코등의 책은 꽤나 많이 나와 있어서 덜부지런한 나로서는 다 모아야겠다. 는 정도의 생각은 없지만, 생각날때마다 이름만 보고도 사는 작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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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5-1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존... 부럽습니다^^ 마르께스껄 읽으신다니 대단하십니다 ㅠ.ㅠ;;;

울보 2005-05-11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세요....

panda78 2005-05-11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크 레비, 아무래도 담번에 사야겠군요. 눈에 물을 달고 읽고 계신다니.. ^^
삶의 철학 산책은 작년까지만 해도 집근처 서점에 있었는데, 사려고 갔더니 어느 새 사라지고 없더라구요. 역시 책은 보이면 사야되요.

비로그인 2005-05-11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퍼가요. ^^

하이드 2005-05-11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좋아하는 작가들이라서 언젠가 한번 모아보고 싶었어요. ^^

하이드 2005-05-11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916665

앗,


하이드 2005-05-11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016666

잡았다.


하이드 2005-05-1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316669 요것두.

왠지 369게임이 하고싶다. -_-a


클리오 2005-05-1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흐흐흐.. 제가 방명록에 또 남긴 글 보셨어요...? ^^

클리오 2005-05-1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제 눈을 의심하겠군요.. 어떻게 님의 댓글 뒤에 달린 제 댓글이 3분이나 늦을 수 있죠? 제가 잘못보는 건가요? 허거거...

하이드 2005-05-11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 바보라서 그래요 ^^ 고민하지 마셔요.

울보 2005-05-11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내가 읽은책이 있네요,,
존버거의 행운아랑 결혼을 향하여,,,,

하이드 2005-05-11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결혼을 향하여 정말 궁금해요. 사 놓고 아껴놓고 있습니다.

로드무비 2005-05-11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잘 우시는군요.^^

하이드 2005-05-11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오늘 울고 싶은 날이라 이 책을 잡았는데요, 딱이었어요.

하이드 2005-05-1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american natives 페이퍼를 오늘에야 보았습니다. 아마존을 다 뒤져도 없어서 충격받아 있는 상태에요. 우어어어어 너무 멋진거 아닙니까?!

Phantomlady 2005-05-12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흠.. 서로의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작가가 딱 1명이 있군.. 그 자가 누군지는 서로의 즐거움을 위하여 비밀.. ^^

하이드 2005-05-12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랭 드 보통이라고 생각해. 맞지?

Phantomlady 2005-05-12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송씨 2006-03-16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알랭 드 보통 만난걸 정말 뼈저리게 기뻐하고 있었는데. 하이드씨가 추천한 다른 것도 읽고 싶은 충동이 드네요
 

그들은 더없이 불신에 찬 마중을 받았다. 트럭의 엔진 소리가 그들보다 앞질러 갔으므로 촌락의 주민들은 벌써 길가로 쏟아져나와, 커브를 돌 때마다 기어가 부서질 듯이 비명을 내지르며 느릿느릿 기어오르는 닷지를 주시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 황량한 길의 끝에서 마지막 커브를 돌려고 트럭이 잠시 주춤하는 순간, 양쪽에서 두 사내가 튀어나왔다. 그들은 문 옆의 발판을 딛고 뛰어오르더니 벌채용 칼을 안으로 휙 들이댔다. 놀란 수잔이 핸들을 틀며 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하마터면 협곡으로 곤두박질칠 뻔했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두려움도 읹은 채 수잔은 차에서 내렸다. 그녀가 험악하게 문을 열어젖히는 기세에 한 사내가 땅으로 나동그라졌다. 그녀는 양손을 옆구리에 얹고서 서슬이 퍼런 눈으로 사내를 노려보며 한바탕 욕을 퍼부었다. 사내는 얼이 빠진채 일어났다. 저 하얀 피부의 여자가 자신에게 질러대는 소리는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지만 세뇨라 블랑카가 머리끝까지 화가 뻗친 것만은 분명했던 것이다. 후안도 차에서 내렸다. 그는 훨씬 차분하게 수잔과 자신이 그들의 땅에 온 까닭을 설명했다. 잠시 웅성웅성하더니 칼을 들이댔던 촌부 한 명이 왼팔을 쳐들었다. 열 명쯤 되는 주민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형성된 그룹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토론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목소리는 격해져만 갔다. 수잔은 보다 못해 트럭의 보닛 위로 기어올라가 클랙슨을 울리라고 후안에게 지시했다. 후안은 웃으며 클랙슨을 울려댔다. 허스키한 음조의 경적 소리에 덮여 토론의 목소리들이 차츰 사그라들고 주민들은 모두 수잔 쪽으로 돌아섰다. 그녀는 짧은 스페인어를 최대한으로 구사해서 그들의 촌장으로 보이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여기에, 덮을 것, 먹을 것, 약품들을 가지고 왔어요. 당신들이 이것들을 차에서 내리는 걸 도와주지 않으면, 나는 핸드브레이크를 풀어 트럭을 골짜기에 처박고 걸어서 돌아갑니다!"

그러자 한 여자가 조용히 군중을 가르며 나왔다. 여자는 트럭의 머리 앞으로 와 서더니 성호를 그었다. 수잔이 발목을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보닛에서 내려가려고 하자, 여자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곧 옆에 있던 다른 남자도 손을 내밀었다. 수잔은 군중을 노려보듯 쳐다보며 차 뒤의 후안에게로 갔다 .주민들은 천천히 물러나면서 그녀에게 길을 터주었다. 후안이 트럭위로 뛰어올라 그녀와 함께 포장막을 벗겼다. 촌락 전체가 꼼짝도 않고 쥐둑은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수잔이 담요 한 뭉치를 꺼내서 땅 위로 던졌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들 왜 저러는 거야, 제기랄!"

 "세뇨라!" 후안이 말했다.

"당신이 가져온 것은 저들에게 너무 과분한 거예요. 저들은 당신도 뭔가를 원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기들은 받은 대가로 당신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아요."

"그럼 저들에게 말해.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짐 내리는 일을 도와주는 것뿐이라고 말야!"

"세뇨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에요."

"그럼 간단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데?"

"평화단 완장을 두르세요. 그리고 당신이 땅에 내던진 담요 한 장을 주워서 아까 성호를 그은 여자에게로 가세요. 그 여자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세요."

수잔은 후안이 시키는 대로 여자의 등을 담요로 감싸주고 그녀의 눈을 깊이 응시하면서 스페인어로 말했다.

"나는 누군가가 오래전에 당신에게 가져왔어야 했던 것을 드리려고 왔어요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해요."

테레사는 두 팔로 수잔을 안고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남자들이 환호를 지르면서 트럭으로 몰려가 안에 든 것들을 순식간에 비워냈다. 후안과 수잔은 마을 사람들의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밤이 되자 커다란 횃불이 밝혀지고 간소한 식사가 차려졌다.

저녁이 얼마간 무르익었을 때, 어린 사내아이가 그녀의 등뒤로 다가왔다. 수잔은 아이의 존재를 느끼고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재빨리 도망쳤다. 얼마 후 아이는 다시 나타나 좀더 가까이 접근했다. 그녀가 다시 눈길을 주자 아이는 또 달아났다. 그 놀이가 몇 차례 반복되고 나서야 아이는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수잔은 말없이 아이를 쳐다보았다. 꼬질꼬질 때가 낀 얼굴이지만 흑옥처럼 까만 동공, 아름다운 두 눈을 가진 아이였다.

그녀는 손바닥을 위로 하고서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이의 눈이 그녀의 손과 얼굴 사이를 방황하더니 작은 손이 살며시 다가와 그녀의 검지손가락을 쥐었다. 아이는 입을 다물라는 신호를 했다. 그리고는 작은 팔이 그녀를 당기며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팔이 인도하는 대로 가옥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갔다. 어느 울타리 앞에서 발을 멈춘 아이는 손가락을 입에 대면서 그녀에게 소리내지 말라고 신호하고 무릎을 굽히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갈대 울타리에 난 구멍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시범을 보이듯이 구멍에 눈을 대는 시늉을 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수잔은 살며시 구멍으로 다가갔다. 이 어린 녀석이 그토록 망설인 끝에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 난 거기서 회저병으로 한쪽 다리가 썩어 죽어가는 다섯살짜리 여자애를 봤어. 홍수가 나 그들의 마을 일부가 흙탕물에 떠내려갔을 때 아이는 잘린 나무 줄기에 매달려 표류하고 있었는데, 한 사내가 실종된 딸을 찾아 미친 듯이 헤매다가 파도 위로 허우적대는 작은 팔을 발견했대. 그는 죽음에서 아이를 건져내 어린 몸뚱이를 품에 안았고, 두 사람은 암흑 속에서 그렇게 몇 킬로미터를 떠내려갔어. 감각이 마비되고 급류의 소용돌이에 끊임없이 삼켜지면서도 머리를 쳐들고 한 줌의 공기라도 마시려고 마지막 힘까지 다하다가 그들은 의식을 잃었어. 날이 밝고 사내가 깨어났을 때 그의 곁에는 아이가 누워 있었어. 둘 다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살아 있었던 거야. 그런데 놀랍게도 사내가 구한 아이는 그의 딸이 아니었어. 그 자신의 피붙이는 영영 다시 찾을 수 없었지.

밤새도록 긴 대화를 나눈 끝에 그는 우리에게 아이를 맡기는데 동의했어. 아이가 그 고달픈 여정을 견뎌낼 수 있을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산 위에 남는다 해도 그 애는 며칠을 넘기지 못할 상태였거든. 나는 한두 달 후 아이를 데리고 다시 오겠다. 트럭에 물건을 가득 싣고 반드시 다시 오겠다고 그에게 약속했어. 그는 다른 주민들의 생존을 위해 이별이라는 희생을 감수했어. 비록 내 주장이 옳았다 할지라도 그으 ㅣ눈에 비치는 내가 너무도 더럽게 느껴졌어.

지금 우리는 산 페드로 술라에 돌아와 있어. 아이는 여전히 생사의 기로에 있고, 나 역시 녹초가 됐어. 필립, 참고로 한마디 하겠는데, 후안은 내 조수야. 그 머저리 같은 암시는 뭐야? 난 캐나다의 휴가촌에 놀러 와 있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널 안고 싶어.        

                                                                                                                                                                          수잔

...중략....

1975년 11월 며칠인지 모를 어느날, 나의 필립에게

편지를 쓴 지 벌써 여러 주일이 흘렀네. 하지만 여기서는 시간이 좀 다르게 흘러. 내가 어느 편지에선가 이야기했던 여자아이 생각나? 그애를 새아빠에게 데려다줬어. 아이의 다리는 소생시킬 수 없었어. 그래서 아빠가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몹시 걱정스러웠어. 푸에르토 코르테스의 병원으로 그애를 찾으러 갈 때 후안도 같이 갔어. 후안은 닷지의 짐칸에 밀가루 포대들을 깔아서 그애를 위한 매트리스를 만들어줬어. 병원에 도착해보니 아이는 복도 구석에서 들것에 누운 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 난 되도록 절단된 부위를 보지 않으려고 그애의 얼굴만 쳐다봤어. 존재하는 것들을 무시하고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에 집착할 까닭은 없잖아. 잘되어가는 것을 사랑하지 않고 왜 구태여 나빠지는 것에 더 무게를 두겠냐고, 안 그래?

하지만 아이가 저 무거운 핸디캡을 안고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걱정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 후안이 내 침묵의 의미를 알아채고는 내가 아이에게 말을 걸기 전에 내 귀에 속삭였어.

"아이에게 당신의 고통을 보이지 말아요, 세뇨라. 당신은 기뻐해야돼. 저애가 당신과 다른 것은 다리가 잘렸기 때문이 아니에요. 저애가 살아온 역사, 저애의 생존이 다른 거예요."

그 말이 옳았어. 우린 아이를 포대 위에 눕히고 산길로 떠났어. 돌아오는 동안 후안이 내내 그애를 보살폈지. 후안은 아이를 재미있게 해주려고, 그리고 아마도 나를 긴장에서 풀어줄셈으로 그랬겠지만, 틈만 나면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흉내내며 날 놀렸어. 닷지는 사실 나한테 너무 무거울 뿐 아니라 산길에서는 자기가 나보다 힘세다는 사실을 일 킬로미터마다 증명하려고 하거든. 7톤이나 나가는 녀석이 그걸로는 충분치 않다는듯이.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고! 후안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두 팔을 앞으로 뻗고는 똥 씹는 표정을 연달아 지어대면서 내가 커브를 틀려고 기를 쓰는 모습을 따라했고, 거기다 내 스페인어 실력으로는 무슨 소린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도 없는 코멘트까지 곁들여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댔어.

그렇게 여섯 시간쯤 달렸을 때, 내가 뒤를 돌아보다가 시동을 꺼뜨렸어. 난 욕을 하면서 주먹으로 핸들을 내리쳤어. 너도 알다시피 내 더러운 성질이 어디 가겠어? 후안에게는 놓칠 수 없는 호재였지. 그는 당장에 욕을 메들리로 엮어 뱉으면서 내 핸들이라고 여겨지는 상자곽을 두드려대는 시늉을 냈어. 그러자 여자애가 쿡 웃음을 터뜨렸어. 처음에는 어린 소녀답게 귀여운 톤으로 짧게 두 번 쿡쿡 웃었어. 제 딴에는 참은 거였지. 하지만 곧 목구멍이 터지고, 한 번 터지자 걷잡을 수가 없었어. 트럭이 온통 그애의 자지러지는 탄성으로 채워졌어. 한 아이의 웃음이 내 삶에서 느닷없이 그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난 백미러로 숨을 헐떡이는 아이를 쳐다봤어. 그 작열하는 웃음은 이미 후안에게 전염돼 있었어.

어쩌면 이날 나는 우리 부모의 무덤가에서 네가 나를 안아줬을 때보다도 더 격렬한 오열을 터뜨렸는지도 몰라. 차이가 있다면 이날은 내가 속으로 울었다는 거야. 거대한 생의 기쁨, 희망이 용솟음치는 순간이었어. 난 그들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어. 걷잡을 수 없는 웃음 속에서 후안이 내게 미소짓는게 보였어. 언어의 장벽은 간단히 무너졌지..

(중략)

롤란드는 저 아래 계곡에서 트럭이 구불구불한 산길로 진입할 때부터 그것을 알아봤다. 그는 당장 일손을 멈추고 바위에 앉아서는 다섯 시간 동안 굼뜨게 올라오는 트럭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장장 13주 동안이나 기다려온 터였다. 그는 혼자서 묻고 또 물었다. 아이가 살아 있을까, 저 하늘에 나는 새는 혹시 그애의 죽음을 알리는 게 아닐까, 아니 어쩌면 히망의 소식을 물고 날아왔는지도 모르지. 날짜가 지나면 지날수록 그에게는 주변의 가장 단순한 사물까지도 점점 더 의미심장한 징후로 보였으므로 그는 순간의 기분에 따라 비관적인 또는 낙관적인 징조를 읽는 의식에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한 구비를 돌 때마다 수잔은 허스키한 클랙슨 소리를 세 번 울렸다. 롤란드에게 그것은 좋은 징조였다. 긴 경적소리는 최악을 알리는 것이야. 짧은 세번은 희소식을 전하는 게 틀림없어. 그는 빠른 손놀림으로 밤색 팔라디네스 갑을 풀었다. 이 담배는 그가 한나절 내내 피운 도라도스보다 훨씬 비싼 것이었다. 보통땐 저녁식사 후 하루에 한 개비밖에는 뽑아들지 않을 정도로 아끼는 담배를 입에 물고서 그는 성냥을 그었다. 한 모금 깊이 빨았다. 이어서 그는 흙냄새와 소나무 향이 밴 축축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다시 끝이 빨갛게 타들어가도록 담배를 빨았다. 오늘 오후에는 이 팔라디네스 한 갑이 다 비워지리라. 초조해하지 말자. 저들은 해가 떨어질 무렵에나 고개를 넘을 테니까.

산골의 농부들은 죄다 마을 어귀로 나와 길 양편에 늘어서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트럭에 뛰어올라 칼을 들이대지 않았다. 수잔이 속도를 늦추자 그들은 차 주위로 몰려왔다. 수잔은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려, 자신을 주시하는 시선들 하나하나를 당당히 받으면서 좌우로 그들을 둘러봤다. 후안도 땅을 울리며 두 발로 뛰어내려서는 짐짓 의연함을 보이려는 자세로 그녀 뒤에 버티고 섰다. 롤란도가 그녀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피우던 꽁초를 휙 내던졌다.

수잔은 심호흡을 하고 닷지를 빙 돌아 뒤쪽으로갔다. 군중의 시선도 일제히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롤란도의 얼굴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안혹 있었다. 수잔이 힘차게 포장막을 젖히고 후안과 함께 트럭 아래로 판자를 내리자 그들이 데려온 작은 소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이는 한쪽 다리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두 팔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남자를 향해 활짝 벌어졌다. 롤란도는 트럭 위로 올라가 아이를 안아올렸다. 그가 아이의 귀에 대고 몇 마디 소곤대자 아이가 웃었다. 그는 아이를 트럭에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무릎을 굽혀 키를 낮추고 아이를 부축했다. 몇 초간 침묵 속에서 지켜보던 군중이 저마다 공중으로 모자를 던지며 하늘을 찌를듯이 함성을 내질렀다. 수잔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너무도 허약하게 느껴지는 이 순간의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후안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이거 놔."그녀가 말했지만 그는 더 꽉 잡으면서 "고마워"하고 말했다.

롤란도가 아이를 한 여자에게 맡기고 수잔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수잔의 얼굴로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치켜올리고는 우렁차게 후안을 행해 무렁ㅆ다.

"이 여자 이름이 뭐요?"

후안은 그 위압적인 체구의 사내를 잠시 훑어보다가 대답했다.

"저 아래 계곡에서는 모두 세뇨라 블랑카라고 부르지요."

롤란도는 이제 의기충천한 걸음으로 후안에게 가더니 묵직한 두 손을 그의 어깨에 얹었다. 깊은 골이 파인 촌사내의 눈가에 잔주름이 잡히면서 입이 헤벌쭉 벌어지더니, 듬듬성 빠진 이가 드러나며 거대한 미소가 피어났다.

"도나 블랑카!('도나'는 고귀한 여성에게 붙이는 존칭-옮긴이) 이 롤란도 알바레즈는 앞으로 그녀를 이렇게 부를거요!"

그가 외쳤다.

롤란도는 후안을 끌고 마을로 들어가는 돌길을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늘밤 그들은 코가 삐뚤어지게 구아호(온두라스의 대중적인 술- 옮긴이) 를 마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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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그로밋 > 언젠가 우리 어머니한테 일어난 일이 생각난다네...
왜 쓰는가?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품절


"자네가 보내 준 글 말인데...." 그가 문득 생각난것처럼 말했다.
"그 글을 읽으면, 언젠가 우리 어머니한테 일어난 일이 생각난다네. 하루는 길거리에서 웬 낯선 사람이 어머니에게 다가오더니, 사뭇 상냥하고 우아한 어조로 어머니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칭찬했지. 어머니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도 없었고, 머리카락이 다른 부위보다 특히 돋보인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네. 하지만 그 낯선 사람의 칭찬 덕분에 어머니는 그날 온종일 거울 앞에 앉아서 머리를 매만지고 치장하고 감탄하면서 시간을 보냈지. 자네 글도 나한테 꼭 그런 역할을 해주었어. 나는 오후 내내 거울 앞에 서서 나 자신을 찬탄했다네."-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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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일상의 여백 - 마라톤, 고양이 그리고 여행과 책 읽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오래간만에 하루키의 책을 샀다.그의 소설은 엉뚱하고, 진지하고, 허무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의 잡담들이다. 내가 읽고 싶어 하는 것은 '그' 다. 하루키라는 사람을 읽는 것이 내게는 가장 재미있는 일이다. 일상의 여백의 부제는 -마라톤, 고양이 그리고 여행과 책읽기이다. 작가가 좋아하는 네가지. 여기에 몇가지 더 포함시킨다면 맥주와 재즈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루키의 잡담은 관찰에서 나온다. 자신을 관찰하기, 주변을 관찰하기, 사람을 관찰하기, 고양이를 관찰하기. 등등등.

 범인들보다 약간 더 호기심 많고 약간 더 글 잘 쓸 뿐인 하루키의 책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을때 '나도 이정도는 쓰겠다'며 팔걷어붙인 사람들이 많았고,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당연히 쉽지 않았고, 하루키만큼 쓰는 작가들도 안나타났으며, 하루키는 여전히 그 이름으로 부동의 베스트셀러이다. 

이제 나이 조금 더 들어서 다시 읽게되었는데, 하루키라는, 근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작가의 여백있는 일상은 많이 부럽다.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 그의 아내가 찍어준 사진들이 조그맣게 여백을 채우고 있는 이 책은 참 예쁘기도하다.

하루키가 일상에서 건져내는 것들이 나의 지루한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도 활력을 가져다 준다. 하루키의 이책에서 재미를 느꼈던만큼의 여백이 내 일상에 밀려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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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05-11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를 몇 년 전 읽은 후 안 읽었는데, 다음에 하루키책을 또 읽게 된다면, 이걸 읽고 싶네요.

poptrash 2005-05-12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소소한 글들, 좋아요. 이 책은 안읽어봤는데, 읽어보고 싶네요. 새 장편 소설은 언제쯤 번역이 될런지.

하이드 2005-05-12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새 장편소설이 있나보죠? 이번에 하루키를 읽고 싶다는 맘이 오랜만에 들어서 그 많은 책들!중에서 열심히 골랐는데, 이 책 아주 맘에 듭니다. '슬픈 외국어'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2부격인 책이에요. 하루키가 외국생활 하면서 느낀 소소한 점들. 더 정돈되고 더 부럽고 그렇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