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콘래드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로저 젤라즈니 지음, 곽영미.최지원 옮김 / 시공사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내이름은 콘래드 뒤에는 짧은 단편이 있다. '프로스트와 베타'라는 심심한 제목의 단편. 방금 막 책을 덮으면서 아- 긴 한숨을 내쉬며 책을 한번 쓰다듬게 만드는 그 단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

나름대로 현학적이고 화려하고 통통튀는 문체의 로저 젤라즈니의 '내 이름은 콘래드' 에 비해 '프로스트와 베타'는 '이보다 더 건조할 수는 없다' 이다. 그도 그럴것이 인류가 멸망하고 인류가 지구를 관리하도록 만든 '솔콤' 만이 지구를 관.리. 하고 있다. 솔콤이 보안기능 장애를 겪는 와중에 만들어낸 '프로스트'는 지구의 북반구를 관리하고 '베타'는 지구의 남반구를 관리한다. 하루에 한두시간이면 모든 일을 다 해내고 남는시간에 취미로 '인간'을 연구하는 은청색의 120x120x120 입방체로 자가 발전과 수리가 가능하며, 지구상의 어떤 개체와도 동떨어진 존재로 어떤 모습으로도 변형하는 것이 가능한 프로스트에 관한 이야기다. '논리' 만으로 이해불가한 '인간'을 분석하고 솔콤에 대항하는 디브콤으로부터 함께 일할 제의를 받자, 인간에 관한 모든 자료를 넘겨받고 자신이 인간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그때는 디브콤 밑에서 일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남아있는 모든 장서와 예술품과 비디오/영화 등을 보고 인간이 되어보고자 한다.

절박하게 인간이 되고자 하는 궁금중에 가득차 있는 프로스트의 모습은 이미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가리지 않고 호기심의 노예인 인간의 모습을 이미 닮았다.

모르델이란 골동품로봇과 베타가 지배하는 남반구로 간다. 베타에게 논리적으로 분석 불능인 프로스트. 베타는 프로스트를 북반구로 추방하지만, 마지막으로 메세지를 보낸다. '왜?'

북반구를 지배하는 프로스트와 남반구를 지배하는 베타는 솔콤의 지배를 받는다. 디브콤은 솔콤이 복구불능의 상태가 되었을때 지구를 관리하고 지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로봇이다. 솔콤은 복구불능 상태가 되었을때 솔콤은 다시 완벽하게 자가회복을 하지만 디브콤은 이미 복구불능 상태인 솔콤은 지배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디브콤과 솔콤은 싸운다.

이렇게 어떻게 보며 뻔하고 불쌍하고 건조한 '프로스트'란 로봇과 그 주변로봇들의 이야기는 마지막 장( 말그대로 마지막장) 에서 갑자기 '시' 가 된다.

프로스트의 마지막 (하우스만의 시구를 인용한) 말은 정말 아름다웠다.

'내 이름은 콘래드'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SF소설에서 바라는 것을 다 충족시켜준다 . 젤러즈니 특유의 현란한 문체( 비록 번역된 것일지라도!) 에 읽는내내 즐겁다. SF 소설이 그렇듯이 무거운 주제의 무거운 미래 현실의 죽지 않는 '콘래드' 의 이야기는 미래의 '신화'를 보는 것 같다. 그리스에서 태어난 그는 미래에 보는 과거의 '신' 에 다름없다.  이미 오래전에 쓰여진 이야기이기에 설정이 귀엽게 느껴질정도로 후질때도 있지만, 시간을 뛰어넘는 책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난 야수같은 남자주인공이 좋다는 걸 깨달았다!

'내 왼쪽 뺨에는 아프리카 대륙처럼 생겨서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자줏빛 반점이 있다. 그 반점은 내가 뉴욕 관광사를 위해 구겐하임 미술관을 발굴하고 있을 때 곰팡이 핀 캔버스에 붙은 돌연변이 균에 감염되어서 생긴 것이다. 내 머리카락은 손가락 하나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눈썹 바로 위에서 자라 있다. 눈동자는 좌우의 색깔이 다르다( 사람들을 위협하고 싶을 때는 차갑고 푸른 오른쪽 눈으로 노려본다. 갈색눈은 '성실하고 정직한' 인상을 주고 싶을 때 쓴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가 짧아서 오른발에는 그만큼 굽 높은 구두를 신는다.'

사실 콘래드는 좀 더 길거나(두꺼운책 중독자), 시리즈로 (시리즈책 중독자)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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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9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5-05-1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어머,, 어머,, 지적 감사해요. ^^
그렇군요! 젤라즈니 중독자이시군요! 제가 워낙 정말 이상하고 말 안되지 않으면 번역에 신경 안(못!)쓰는 편이라서요. 역시나 별 신경 안쓰고 읽었습니다요. ^^

깍두기 2005-05-19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원서를 읽을 실력이 안되니 번역을 뭐라할 처지는 아니지만, 일단 김상훈씨 번역을 읽었기 때문에, 비교가 될 거 같아서요.
 

 

 

 

 

 





너는 문학,와인등은 아주 좋아하면서 왜 나의 성욕은 이해해주지 않는지 모르겠어
 - 잭 -
 
한 병의 포도주가 인생 그 자체죠. 포도주가 자라고 숙성하고 그리고 더 복잡해지죠 그러면 , 그러면 그 맛이 지랄맞게 죽이죠
- 마야 -
 
몬도비노의 번개에 이어 두번째 영화 번개.
아니 사실은 아무도 호응 안해준 어느 날의 영화 번개 이후 세번째 영화 번개입니다.
 
대략, 첫번째 영화번개에선 몰트에서 나홀로 쓸쓸이 삼성역! 택시를 잡아야 했고,
두번째 영화번개 몬도비노에선 저녁부터 하기로 하였으나 대략 나오기로 한 반도 안 나와주셔서 당황하며 국수 먹어주시고, (난 절때 안 잊는다. 밥 먹다가 전화받은 박모오빠, 역시, 신촌 어디매서 전화 받은 우리형, 등등)
 
그리고 세번째 번개. 두둥- 
 



치어스, 프로스트, 간빠이, 토스트, 살루드, 나즈다로비에, 아 보트르 상떼 혹은 건배.
 
몬도비노 안 보고 너무 아쉬워 했던 분들 계시죠?
이 영화도 언제 끝날지 몰라서, 맨날 체크만 하고 있다가 안 보고 그냥 넘어가시렵니까?
 
 



일시 : 3월 9일 수요일 0시 30분 ( 그러니깐 화요일 늦은 밤입니다. )



장소 : 메가박스

 

풉. 예전에 평일 0시30분에 번개하고, 평일 그 시간에 네명이나 몰려서 놀라워했던 영화. 다 보고 3시 넘어서 설렁탕 먹고 헤어졌다가 집에 들어와서 씻고 회사출근했었는데, 나도 지금 생각하니 참 징하다.

요것도 샀고

Sideways: The Shooting Script

요것두 샀었는데

DVD 나왔고나. 사야지.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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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05-14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 하이드님의 삶은 언제봐도 역동적이군요. 샘날만큼... ^^; 저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혹은 허락되어도 할 수 없을... ^^

하이드 2005-05-14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생각하면 다시 못할것 같은데 계속하니 문제입니다. -_-a

클리오 2005-05-1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 수 있을 때 하시는 것이 좋지요.. 계속 하실 수만 있다면 쭈욱~ 언젠가부터는 힘들어질지 모르잖아요.. ^^ 그러나 오늘밤, 하이드 님의 이미지가 피곤해보입니다.

하루(春) 2005-05-14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찍어두고 있었는데 잘 됐군요. Thanks to 할 곳이 생겨서... ^^
 
너 어디 있니?
마르크 레비 지음, 김운비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마르크 레비의 책은 전혀 내 취향이 아니다. 난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희망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책들에 알레르기가 있다. 이 책은 어여쁘고 아름답고 몹시도 사랑스럽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것은 거칠고 대담한 중남미 문학이다.

여기 책 속의 주인공인 수잔은 온두라스에서 남미의 거역할 수 없는 태풍과 맞서 싸우는 평화단의 멤버이다. 마르케스는 '문학과 현실에 관하여'라는 산문에서 '우리 중남미의 거대한 현실이 문학도에게 제안하는 아주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그런 현실에 적합한 단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막상 그 거대한 현실을 중남미 작가의 글에서는 미처 못 느꼈는데 여기 이 곱게 자란 프랑스 작가의 글에서 더 와닿는다.

여기 이 책에서 우리가 보게될  씩씩한 여주인공 수잔이 싸우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과 태풍이라는 괴물이다.

이야기는 전혀 내가 원하는대로 진행되어가지 않는다. 다만 작가의 처녀작인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당신은 믿을 수 없겠지만'이라는 긴 제목의 고스트로맨스 휴먼드라마의 앤딩을 생각해볼때 해피앤딩이려니 편하게 짐작해볼뿐이다.

작가는 루이라는 아들과 둘이 살고 있다. 잠자리에서 읽어주기 위해 쓴 책이 바로 작가의 처녀작이고 가장 센세이셔널한 데뷔작 중 하나가 되었다.  ' 너 어디 있니?' 라는 두번째 작품에서도 어쩌면 작가는 같은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배경에서 반복하고 있다. '신뢰'와 '사랑'

이 작품은 일단 로맨스 소설의 모양새를 띠고 있다. 어렸을적부터 모든 기억을 공유해온 필립과 수잔은 어린시절의 종지부인 고교졸업후, 서로 자기의 길을 걸어간다. 필립은 미술을 전공하러 대학으로 가고, 수잔은 온두라스를 강타한 태풍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평화단의 일원으로 온두라스라는 나라에 간다. 2년 예정으로 가지만, 자신을 필요로하는 그곳에서 필립과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사랑'보다 '희생'을 택한다.

온두라스에서의 처절함은 수잔을 점점 메마르고 황폐하게 하고 필립과 수잔은 서로를 끊임없이 보고파하며 1년에 한번씩 수잔이 워싱턴에 물품 보조를 받으러 오는 틈을 타서 공항 까페의 구석자리. 그들의 자리에서 잠깐씩 볼 뿐이다.

여기까지가 1부라면 1부이다. 소설은 전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이고 따뜻한 메세지를 전달한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진행되는 2부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책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남겨둔다.

읽는 내내 슬프고 읽고나면 마음에 안드는 결론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뜨거워져 있는걸 느낄 수 있게 한다.

사랑으로 가득하고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그들이 왜 헤어질 수 밖에 없었을까? 이 책이 그저그런 로맨스 소설이었다면 거기까지가 나의 고민이었겠지만, 이 책은 로맨스 소설의 탈을 쓴 몹시 아름다운, 가슴을 꽝꽝 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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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5-13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것 같군요.. 보관함에 담습니다..^^

하이드 2005-05-1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날개님. 이 책 참 독특하고 재미있어요. ^^

moonnight 2005-05-13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책 "내가 지금부터.."도 참 좋아했었기 때문에 주저없이 샀고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많이 슬프고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마르크 레비의 책은 이 세상에 '사랑'이 정말로 존재하고 있다고, 그건, 때로 마술같은 일도 일어나게 하는 힘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실비 2005-05-13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퍼갈게요^^
 
악의 경전
패트리샤 콘웰 / 시공사 / 1997년 11월
평점 :
품절


'악의 경전'  cause of death 는 시공사에서 번역되었던 스카페타시리즈의 마지막편이다. 물론 올해까지도 쭈욱 나오고 있는 시리즈이긴 하지만, 번역서의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왠지 대단히 마지막같은 느낌이다. 점심시간에 닭고기덮밥을 먹으면서 이 책을 보고 숟가락 놓은 후에도 마지막의 클라이막스부분에서 차마 멈추지 못해 그릇 다 치운 후에도 앉아서 다 읽고 일어났는데, 코끝이 찡하고 가슴이 벅찼다.

이제 큰 심호흡 한 번 하고 이 시간을 대비해 사 놓은 unnatural exposurepoint of origin 을 읽어야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스카페타 시리즈 중에서 가장 스케일이 크다. 사이비종교집단의 핵테러에 대항하는 스카페타의 이야기이다.

패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의 스카페타만큼 감정이입이 깊이 되는 주인공은 없었다. 그녀는 냉정하고 공평하고자 노력한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굳은 신념을 밀고나가는 지극히 이성적인 인물이다. 적어도 일적으로는. 죽음과 부자연스러운 죽음에 따라오는 '악' 과 '슬픔' 따위를 언제나 주변 공기에 담고 있는 그녀는 범죄자들을 증오하고 분노하며 희생자들을 동정하고 자신의 환자로 여겨 가슴아파하며 예의를 지키고,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스카페타 시리즈가 좋은 이유는 사건의 발생과 해결보다 주인공인 '스카페타'의 흡입력이다. 결혼에 실패한 그녀. 사랑하는 사람을 어이없는 테러로 잃고 그 사람의 동료였고 유부남인 벤튼 웨슬리와 사랑에 빠지고 항상 투닥투닥하는 그녀를 사랑하는 마리노경감에게서는 가장 친한 친구, 사랑하는 애인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못말리는 동생 도로시의 딸이고 천재이고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루시 앞에서는 항상 이성적인 그녀의 모습이 무너지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와 그녀의 주변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7편에 거쳐 1편에서 고작 열살이었던 루시가 점점 자라서 FBI가 되고 동료적 입장이었던 벤튼과 마초 마리노의 이야기들이 천천히 그러나 절대 지루하지 않게, 과장되거나 통속적이지 않게, 그렇게 딱 이해할만큼으로 진행된다. 실감나는 등장인물들 덕분에 이 시리즈에 그토록 목을 메고 있나보다.

조금 길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이 책에서 스카페타와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히나 이책에서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은 정말 벅찼다. 나는 어느새 루시가 되어 그녀를 구하기 위해 로봇을 조작하고 있었고, 그녀를 죽을정도로 걱정하는 마리노가 되었다가 벤튼이 되었고, 그런 그들을 걱정하고 목숨걸고 일을 하는 스카페타가 되었다.

이 시리즈가 다른 재미있는 시리즈들에 비해 나의 마음을 잡는 이유는 매시리즈마다 꾸준히 나오는 강한 직업여성, 그것도 어느 정도 위치를 가지고 있는 강한 직업여성상들이다.  스카페타 본인도 물론 포함된다. 스카페타가 겪는 남성우월주의사회에서의 불편함들과 그에 대응하는 스카페타의 세련된 태도와 마음가짐들은 찔러서 피 한 방울 안 나올것 같은 그녀의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여리고 분노하는 그녀의 모습을 알기에 더욱 와닿는다.

일곱권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처음의 '법의관' 이겠지만 그 뒤로는 주욱 한권의 긴 책을 통해 스카페타를 엿본것만 같다.

내가 아는 시리즈중에서 '손을 놓을 수 없는' 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시리즈다. 패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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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5-1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이 아까 말씀하시던 스카페타 시리즈 마지막권이군요..^^ 결국 다 구해서 읽으신 걸 축하드립니다..^^*
이 리뷰를 읽으니 스카페타 시리즈가 정리가 되는 느낌입니다,,

panda78 2005-05-12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8권이 번역되어 나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poptrash 2005-05-12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그게, 리뷰를 읽다가 책도 물론 읽고 싶어졌지만 닭고기 덮밥이 마구마구 땡기네요; 배가 고파서 그런가. 우리 회사 근처에는 왜 그런걸 안파는걸까요;

oldhand 2005-05-1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카페타 시리즈를 섭렵하고 계시는 군요! 저는 아직 시작도 안하고 있습니다. '손을 놓을 수 없는'이라니 귀가 솔깃해 집니다.

하이드 2005-05-12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ldhand님/ 시리즈의 재미를 알게 해준 책이에요. 그리고 여자주인공, 법의관이란 직업도 독특하고요. 전문적인 얘기들이 안 지루하게 나오고 등장인물들이 생생한거 그리고 다들 누구나 그렇듯이 아픔과 열등감등이 있다는 점에서 좋았는데, 무엇보다도 대나무같은 주인공의 꼿꼿함이 인상깊었어요. 손을 놓을 수 없는!은 분명히 맞는데, 사건이 싱겁게 해결되서 별로라는 분도 계시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시리즈에요.
poptrash님 흐흐 그 닭고기 덮밥이요. 명동의 가쓰라라는 곳에서 파는 정말정말 제가 사랑하는 닭고기 덮밥인데요. 일주일에 다섯번 먹은적도 있어요. 밥풀하나 남은 것까지 싹싹 긁어먹고 나오곤 하지요.
판다님, 그러게요,저도 8권 번역본 나오면 분권이라도 살것만 같은 예감이 드네요.
날개님, 헤헤 덕분에요!
 

 

이것은 정리정돈 놀이.



Wehrli , Ursus

Kunst aufraumen

 

사고 싶은 책!이 생겼다. amazon.de에서! 다음번에 주문할 책!

[진중권의 놀이와 예술]<15·끝>정리정돈 놀이

《해묵은 싸움이다. 어머니는 도대체 어수선한 것을 참지 못한다. 어린 시절 방에 플라스틱 모델을 늘어놓으면, 가차 없이 빗자루로 쓸어 상자에 털어 넣곤 하셨다.

이 과정에서 불쌍한 나의 병사들은 중상을 입기도 하고, 때로는 행방불명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없어진 놈들은 가끔 쓰레기통 속에서 내 눈에 띄어 극적으로 구조되기도 했다.

내게는 그것들이 예술적으로 연출한 전투장면의 미장센이지만, 어머니에게 그것은 기동을 불편하게 하는 거추장스러움일 뿐이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전공이 미학이라서 그런지 글 한 번 쓰려면 미학, 철학, 미술사에 각종 화집 등 온갖 책들을 바닥에 늘어놓게 된다. 남들에게는 혼란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나는 그 카오스 속에서도 어떤 질서를 본다.


그 혼란스런 책들의 배열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나는 작업하는 데 큰 애로를 겪는다. 하물며 잠시 방을 비웠다가 돌아와서 그 모든 책들이 다시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것을 볼 때의 낭패감이란.》

● 어지럽히기와 치우기, 그 해묵은 전쟁

재미있지 않은가? 내게 질서인 것이 어머니에게는 엔트로피(무질서) 상태이고, 어머니에게 질서인 것이 내게는 엔트로피 상태다. 질서를 향한 열망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이되, 무엇을 질서로 보느냐는 사람마다 달라진다. 아니, 이것은 개인적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역할의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때문에 늘어놓고, 치우고, 다시 늘어놓고, 다시 치우는 실랑이는 영원히 계속된다. 하긴, 그게 또한 자연이 돌아가는 원리가 아닌가.

이 싸움이 내 대에서 끝나는 줄 알았다. 웬걸, 아들과 어머니의 게임은 이제 손자와 할머니의 게임이 되었다. 이제 할머니가 된 어머니는 네 살 먹은 내 아들놈과 그 해묵은 싸움을 반복하고 있다. “야, 이게 사람 사는 방구석이냐?” 할머니의 눈에 손자놈이 밥 먹고 하는 짓이라곤 실내 질서를 파괴하는 것뿐이다. “으앙, 할머니가 다 망가뜨렸어.” 손자의 눈에 할머니가 집에서 하는 일이란 오직 예술작품을 파괴하는 반달리즘뿐이다.

자석으로 된 블록이 있다. 그것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 방바닥에 어지럽게 늘어놓는 것은 꼬마의 ‘놀이’다. 그것을 뜯어서 케이스 안에 다시 차곡차곡 집어넣는 것은 할머니의 ‘일.’ 행여 케이스에서 빈 자리가 생길세라 할머니는 없어진 블록을 찾아 탁자와 소파 밑까지 훑는다. 누군가에게 재미있는 ‘놀이’인 것이 다른 이에게는 번거로운 ‘일’이 된다. 한 사람은 재미있고, 다른 사람은 번거롭고, 이 얼마나 불평등한가? 혹시 어머니를 위한 놀이는 없을까?

● 예술작품을 정리 정돈하는 화가

우르주스 베얼리라는 사람이 있다. 코미디언, 엔터테이너, 디자이너를 겸한 스위스 태생의 예술가다. 최근에 그가 하는 놀이가 어딘지 어머니의 일을 닮았다. 먼저 그림①을 보라. 누구나 다 알다시피 아를르에 살던 시절 빈센트 반 고흐의 침실이다. 작업을 할 때의 내 방만큼이나 화가의 방도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베얼리는 이를 참을 수 없었다. 어지러운 방을 말끔하게 치웠다. 의자와 탁자, 그리고 액자는 침대 위로 올리고, 그 밖의 잡다한 물건들은 침대 아래 감추었다. 무엇을 어디에 감추었을까. 찾아보라.

다음 ②번 그림은 피터 브뢰겔의 작품이다. 알 듯 모를 듯 온통 해괴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묘사가 이렇게 초현실주의적인 것은, 네덜란드의 속담들을 글자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란다. 가령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라는 속담을 글자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 보라.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는가. 실제로 어린 시절 이 속담을 처음 듣고 머리 속으로 배보다 더 큰 배꼽의 영상을 띄워놓고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 한 장의 그림에 무려 100가지 속담이 들어있다고 한다. 마을광장이 그야말로 장바닥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베얼리가 장내 정리를 맡고 나섰다. 그러자 마을광장이 썰렁해졌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은가. 민방위 훈련 때 공습경보가 울리면 우리의 거리도 저렇게 변한다. 그리고 사람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에 갔는가. 이들은 한 무더기로 따로 모셨다. 어린 시절, 어머니도 나의 플라스틱 병정들을 저렇게 무더기로 일괄 처리해 버리곤 하셨다.

● 노동이 유희가 되는 세상

베얼리의 이런 작업은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의 ‘종달새의 노래’ 같은 추상성이 강한 작품이라고 예외가 없다. ‘종달새의 노래’는 제목과 달리 정작 종달새의 모습은 찾을 수 없는 기하학적 무늬로 구성된 작품이다. 베얼리는 그림을 구성하는 기하학 무늬를 해체한 뒤 형태와 색깔별로 분류해 가지런히 쌓아올린다. 마치 블록으로 만든 조형물을 해체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미로의 그림이 우리 아이가 블록을 가지고 연출한 마루바닥의 광경을 닮았다면 베얼리의 그림은 우리 어머니가 케이스 속에 깔끔히 치워놓은 블록들의 모습을 닮았다.

“예술을 정리한다.” 기발하지 않은가. (우리 어머니도 혹시 방을 정리하는 것을 ‘놀이’로 즐기고 계실까) 베얼리는 겨울이 시작되던 어느 날 아침, 빵을 사러 가다가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렇게 정리해 놓은 것이 이제까지 책 두 권 분량. 하지만 앞으로 그의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수백 년 동안 예술가들이 작품이라고 어질러놓은 것이 어디 한 둘인가. 그 모든 것을 다 정리하려면 인생을 온전히 바쳐도 모자랄 터. 앞으로 심심할 틈은 없겠다.

울타리에 페인트를 칠하는 ‘일’을 재치 있게 ‘놀이’로 바꿔놓은 톰 소여를 생각해 보라. ‘일’과 ‘놀이’에 뚜렷한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공간을 정돈하는 ‘일’도 이렇게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다. 하긴, 노동이 유희가 되는 게 바로 칼 마르크스가 꿈꾸던 이상사회가 아니었던가. 그 사회로 가기 위해 혁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항상은 아니더라도 아주 가끔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 노동이 유희가 되는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다.


진중권 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정리정돈 사진 몇개 더 추가



풉.


멋져요! 우르주스 아저씨!




 그러니깐 요 책의 마지막 챕터인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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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5-05-11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녕 진중권이 이렇게 재미있게 글을 썼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하이드님이 가장 재미있는 구절만 발췌하셨단 말씀입니까. 하여간 한참 낄낄거렸다는.. ^^ (갑자기 맘이 급해져 이상한 영어 글들을 뽑고 있다가, 님 글에 마음이 풀렸습니다. 님의 영어 실력을 다운로드 받고 싶은 밤입니다~ 아으....)

하이드 2005-05-11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재미있어요!! ^^

einbahnstrasse 2005-05-12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름대로의 질서를 늘 파괴당하고 사는 저는 공감을 뛰어넘었습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에 대한 정리정돈이 기대되는군요.ㅎㅎㅎ

하이드 2005-05-12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Garden of Earthly Delights (center panel)

Garden of Earthly Delights
Right wing, "Hell"


네 정말이지. 몹시 정리하고 싶네요. ^^a



einbahnstrasse 2005-05-12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그림을 보기 위해 프라도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진지 어언 10여년째..;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