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단편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3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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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에서 손님을 끄는 노력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것이 고작 이 정도 수준밖에는 되지 않았다. 악을 부추기고 낭비를 조장하는 취향이 꼭 어린애들 장난 같았다. 갑자기 그는 '방탕'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 무엇인가 유(有)를 무(無)로 만들어버리는 것 말이다. 늦은 밤 시각에 이 술집에서 저 술집으로 옮겨 다닌다는 것은 하나같이 아주 힘이 드는 일이며, 따라서 동작이 점점 느려지는 특권에 대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17쪽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지금 그 눈물은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는 입이며 눈이며 움직이고 있는 손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멀리 사라졌으며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었던 것이다. 문들은 굳게 닫혀 있었고, 해가 졌으며, 모든 시간을 견뎌내는 강철의 잿빛 아름다움 말고는 이제 아름다움은 업었다. 심지어 그가 참을 수 있었던 슬픔조차 그의 겨울꿈이 활짝 날개를 펼치던 환상의 나라, 청춘의 나라, 풍요로운 삶의 나라 뒤쪽으로 멀리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오래전에," 그는 말했다. "오래전에 나에게는 무엇인가가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없어. 이제 그건 사라져버렸어. 없어져 버렸단 말이지. 그런데도 나는 울 수가 없구나. 그것에 대해 마음 쓸 수도 없어. 이제 그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지."-89쪽

도널드는 비행기를 갈아타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부란 여러 가지를 잃어가는 기나긴 과정인 탓에 이번의 경험도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101쪽

삼십 대 초반에 이블린의 미모가 아직 망설이듯 머물러 있었다면, 얼마 뒤에는 갑자기 결심한 것처럼 완전히 그녀에게서 떠나가 버렸다. 얼굴에 희미하게 잡혀 있던 주름이 갑자기 깊어지고 급속하게 다리와 엉덩이 그리고 팔에 살이 붙었다. 미간을 찌푸리는 그녀의 버릇은 이제는 하나의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책을 읽고 있거나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또는 잠을 자고 잇을 때에는 습관적으로 그런 표정이 나타났다. 그녀의 나이가 이제 마흔여섯이 되었던 것이다.

재산이 불어나기보다는 줄어드는 가정이 그러하듯이 그녀와 해럴드도 막연한 적의를 품게 되었다. 마음이 평온할 때 두 사람은 마치 부서진 헌 의자를 바라볼 때처럼 체념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남편이 아프면 이블린은 조금 걱정했고 되도록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을 했으며, 실망한 남편과 살아야 한다는 피곤하고 침울한 속에서 명랑해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177쪽

이블린은 한 번 더 하품을 했다. 인생이라는 것은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야. 아아, 젊은 시절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179쪽

그래 갈 테면 가라, 그는 생각했다.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213쪽

"자네 주위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가 감돌고 있어. 말하자면 악(惡)의 분위기라고나 할까."
"걱정과 가난과 잠 못 이룬 밤의 분위기라네." 고든이 조금 도전적인 태도로 대꾸했다-297쪽

사랑이란 부서지기 쉬운 거야.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부서진 파편은 다시 보관할 수 있지. 입술에서 맴돌았던 말,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말, 새로운 사랑의 말, 배워 얻은 달콤한 말은 다음 애인을 위해 소중하게 보관해 둬야 해-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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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단편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3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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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생일 선물받은 피츠제럴드 단편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지만, 기대가 크면, 그 기대가 만족될지라도, 열광은 적다.
열광이 적다고 좋지 않다는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줄기차게 단편을 써냈던 그는 정작 피츠제럴드, 하면 떠오르는 '위대한 개츠비'나 '밤은 부드러워' 같은 장편에서는 흥행에 실패했고, 돈벌이를 위해 끊임없이 써낸 단편이 160여편에 달한다, 그런 그는  ' 늙은 창녀는 이제 남자를 한 번 상대하고 무려 4,000달러를 받는다' 고 자위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피츠제랄드의 단편들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전형성은 단편들을 읽는 내내 이름만 바뀌는 어여쁘고 매혹적인 여자들과, 야심만만한 남주인공들,
첫페이지에서 마지막페이지까지 계속 상류사회 부자인 사람, 혹은 부자 였다가 인생의 실패를 겪은 사람, 혹은 가난했으나 부자인 사람.

그들 모두는 놓고 싶지 않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지난 한부분을 끊임없이 리플레이 한다.
막상, 꼭 같은 상황, 사람이 나타났을때 환상은 깨지고, 아름다웠다고 믿었던 지난과거의희망( 이상한 말이다. 지난 과거를 미화하며 보물처럼 간직하고 살아가는 원동력)은 너무나 쉽게 바스라지고, 돌이킬 수 없음에 어느 한 부분이 뻥 뚫린다.

아홉개의 단편들 중 어느 것 하나 빼 놓을 것 없이 만족스럽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 작품 '오월제' 그리고 원서로 읽었던 '부잣집 아이' 의 여운이 길고,  '컷글라스 그릇' 은 거칠지만, 맘에 와닿는 작품. '동경의 대상' 으로만 여겨지는 여자 주인공이 이 작품에서는 깨어지고 바스라질지언정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표지에 있는 호퍼의 그림과 잘 어울리는 단편들이다. 적당히 씁쓸한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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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3-24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왜 좋다는 얘기를 이따위로밖에 못하는 걸까.

하루(春) 2006-03-24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말하든 진심은 통하게 돼있어요.

이네파벨 2006-03-24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감사.........
 

 

 

 

 

 

유난히도 넘기기 싫던 마지막 두장.
오, 브루터스, 너마저...

허무하기보다,
슬프다기보다,
당황하기보다,
화가나기보다,
짜증나기보다,

책을 탁,소리 나게 덮게 만드는 그 무엇, 그 무엇,
나는 위의 작가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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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석간
시게마쯔 키요시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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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상큼한 표지의 상큼한 제목의 저자 이름마저 상큼하도다.
열두개의 단편들도 가볍고, 통통 튀며, 그 와중에 대단한건 아니지만 뭔가 찌릿찌릿.

근래 들어 읽은 책중 누구에게라도 자신있게 '재미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는건 그만큼 이 단편집이 평범하단 얘기일지도 모른다.
사람에 대한 관찰력이 무척이나 뛰어난 작가는 작은 에피소드들을 통해 짧고 감동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발단,전개,절정, 결말이 한회에 끝나줘야 하는 착한 가족드라마.
그렇다고 신파라던가, 오버스럽다던가 그런걸 생각하면 안되고, 잔잔하지만, 찌릿한거. 코끝 찡해지는거. 그런 기분

단편에 들어가기 전 첫머리에 작가는 말한다. ' 조간 사회면과 경제면에는 오늘도 불황가 명퇴란 글자가 산재해 있다. 중잔년들의 자살 기사가 없었던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지만, 신문사가 일요일 정도는 하고 일부러 싣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세상관을 가진 작가가 좋은면들을 보려고 노력하며 쓴 글들은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미래 신문' 마냥 즐겁다.

열두개의 단편에서 여러가지 시도하는데, '카네이션' 에서는 어머니날 저녁에 같은 지하철, 같은 칸에 타게 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라던가, '오우토키의 연인'에서 다자이 오사무에 홀딱 빠져버린 주인공 이야기라던가( 그 재미있는 이야기에, 난 결국 미루던 '인간실격'을 읽었고,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을 세권이나 더 사버렸다구)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 ' 여름캠프' , 열아홉을 회상하는 서른일곱의 이야기 'september 1981' 가 있다. 그리고 가족을 버리고 딴 여자와 도망간 아빠의 암선고를 받은 두 자매 이야기 '쓸쓸하밍 쌓여' 는 섬세하고, 여운이 긴 작품이다. '철봉 하느님' 과 '초밥 주세요' 와 같은 씩씩한 단편들도 있고, '산타클로스 부탁해요' 같은 낭만적인 단편도 있다. '고토를 기다리며'는 빠지지 않는다. 이지메 이야기. '감귤계 아빠'와 '졸업홈런'은 각각 나쁜 딸년, 무정한 아빠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치유 가능하고, 회복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요일 석간이다.


오늘 뉴스에  삼십대 미혼모가 넉달된 아들을 젖병과 쥬스만 넣어 놓고 4년간 방문잠근채 방치했다는 기사가 떴다. 책을 읽으며, 그래, 아직도 희망은 있어라고 밝은 마음이 되었다가도, 애써 외면해도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리고야마는 현실은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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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3-23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가 도발적이네요. 멋있어요. 시원하고...

하이드 2006-03-2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 후..하는 이미지에요.
 
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 - Art 020
마쓰오 바쇼 외 지음, 가츠시카 호쿠사이 외 그림, 김향 옮기고 엮음 / 다빈치 / 2006년 3월
절판


포토리뷰를 하려고 사진찍은 이 책
어젯밤 꿈에도 나왔다.
하이쿠, 우키요에, 에도 시절을 모르신다면,

하이쿠 : 5.7.5 의 음수율을 지닌 17자로 된 일본의 짧은 정형시로 함축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다.

우키요에 : 에1765년 이후 에도시대 막내릴때까지 인기 끌었던 다색판화

에도 시대: 일본 역사상 유례 없는 평화. 안정된 가치 속에 예술발전.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추종 세력과의 싸움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둠.이때부터 메이지 유신까지 태평성대.

이 핑크표지가 꿈에 나왔는데
표지의 펄감있는 여인의 표지를 벗기면
빠딱빠딱한 연핑크의 클로즈업 여인네 표지가 나온다.

이 책은 '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에 관한 책

* 사족- 지난번에 나왔던 '우키요에의 美' 는 글이 너무 많아 좀 지겨웠으나, 이 책은 같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 그림책!)

떠나보실까요?

9 하이쿠란 무엇인가
17 에도시대의 미술

에서 나처럼 너무 지식 없는 사람을 위해 그나마 자세히 스무장 정도에 걸쳐 간단히 에도시대와 우키요에, 하이쿠에, 에도시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고 있다. 최소한의 지식. 이라고나 할까.

어느 장을 펼쳐도, 본문은 말할것도 없고, 설명들어가는 부분에도 꽃이 잔뜩 피어있다.
개인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었던 '에도 시대의 미술' 설명이었다.

'봄' , '여름' , '가을' , '겨울'의 사계로 구성된것도 참 맘에 든다.

꽃그늘 아래선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 _ 잇사

먹고 누워서 소가 된들 어떠리, 복사꽃 피었네
- 부손-

한 페이지에는 하이쿠가 다음페이지는 여러장에 걸쳐서 우키요에가 나온다. 기가막히게 잘 맞는 우키요에들 보고 있으면, 나도 하이쿠가 절로... 까지는 아니라도, 무튼 잘 맞는다!

일본어 원문과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도 음수율을 느낄 수 있도록 음을 한글로 달아 놓았다.
구우데 네테 우시니 나라바야 모모노 하나
5.7.5

흰 팔꿈치 괴고 선승이 조는구나, 초저녁 봄날 _부손

* 봄입니다. 열심히 좁시다.

여름 소낙비에 홀로 밖을 바라보는 여인이로구나 _기카쿠

화려한 다색판화들 사이에 간간히 끼어있는 담담하고 여백있는 그림들은 눈길을 잡는다. 아주 그냥 꽈악.

서늘하여라, 종을 떠나는 기나긴 여운_ 부손

종을 떠나는 기나긴 여운이 서늘하단다. 캬-
'여름'편에 나온 그림들이 맘에 들었다. 예쁘고 신기한 종류들의 파란색들. 물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 그림이 유난히 많은 계절.
이 그림 특히 맘에 든다.

나도 옆에 가서 무심히 배난간에 기대어 물끄러미 있고프다.

도둑이 남겨두고 갔구나, 창에 걸린 달 _료칸

아래에는 피천득님의 '꽃씨와 도둑' 이란 시도 있다.

그림은 한페이지안에 갇혀있지 않는다.

나팔꽃이여, 그 중 한 송이 깊디 깊은 심연의 빛깔 _ 부손

위의 하이쿠에 이어지는 다음장의 '강아지와 나팔꽃'

겨울...

둘이서 보았던 눈, 올해도 그렇게 내리었을까 _ 바쇼

뒤에는 작가들 소개와 참고문헌이 나와있다.
역시나 도움된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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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브라운 2006-03-22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벌써 사셨군요 ^^

해적오리 2006-03-22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질렀어요.
포토리뷰 보니 더 기다려지네요.

하루(春) 2006-03-22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정말 예쁘다... 황홀해요.

Mephistopheles 2006-03-22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끊었다...라는 페이퍼가 언제 날짜였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3=3=3
그래도 책은 이쁘네요..^^

하이드 2006-03-22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끊었다고 한 후 안 샀당께요~ 확인해보삼~
이거 3월초에 나온 책이라구요.
하루님, 책이 참 예뻐요. 판형도 크고, 안의 우키요에들과 하이쿠가 정말 절묘합니다.

히피드림~ 2006-03-31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잖아도 어떤 책인지 궁금했었는데, 꼼꼼하고 친절한 포토리뷰네요. 이 책 보관함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