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자'가 위험하다고 하더니 이제는 '책' 그 자체가 위험하다고 한다.
'책'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에 대한 남미적 상상력

' 1998년 봄, 블루마 레논은 소호의 어느 책방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구판본 시집을 사서, 첫번째 교차로에 이르러 막 두 번째 시를 읽으려는 순간 자동차에 치이고 말았다'

로 이 112페이지의 짧은 책은 시작한다 .
너무나 짧은 분량에 서점에 서서 후딱 읽어버리려고 했건만, 그 문장문장이 나를 사로잡는지라, 반 정도 읽고 사버리고 만다.

교차로에서 책 읽으며가다가 자동차에 치이고 말았다니.
평소 책 읽으며 걸어다니는 나로서는 등골이 오싹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얼마전에도 책 읽으면서 걷다가 죽은 비둘기 시체 밟을뻔 했으며, 사실, 지하도 계단 내려갈때는 평소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며 책을 읽는다. ( 안그래도 계단 공포증이 있는데)

'책은 인간의 운명을 뒤바꿔 놓는다. [말레이시아]의 호랑이]를 읽고 나서 먼 이방의 대학에서 문학강사가 된 사람이 있는가하면, [데미안]을 읽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힌두교에 몰두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크레타섬을 간건 축에도 못끼겠지.

'종종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언제 들춰볼지 알 수도 없는 책을 왜그리 보관하고 있느냐고. 전에 한 번 읽었을뿐 지금 내 독서취향과는 동떨어진, 그리고 몇년이 지나도 다시 펼칠일이 없을듯한, 아니 어쩌면 영영 읽지 않게 될 책들말이다.'

뜨끔. 나도..나에게 묻는다. 왜?왜?왜?

그 책들은 하나의 완성된 전체였고, 충성스러운 헌신으로 서로를 묵묵히 버텨주고 있었다.

내 책들은 서고에서 서로를 버텨주기보다는 방구석에 차곡차곡 쌓여서, 언제 자고있는 괘씸한 주인에게 무너져 압사시켜버릴까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책이 대체 몇권이나 됩니까?"
"사실 언제부터인가 헤아리길 그만두었어요. 하지만 대략 만팔천권이 될겁니다. 여기저기서 사들인 책들은 지금까지도 모두 다 기억할 수 있지요. 서가를 만드는 사람은 인생 전체를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거든요. 결코 아무 계획없이 모아 놓은 책들이 아니란 뜻입니다. "

음.. 심오하도다. 
'헤아리길 그만두었'다는 부분에서 끄덕끄덕 공감하다가 '대략 만팔천권'에서 시기와 질투하고, '서가를 만드는 사람은 인생 전체를 세우고 있다' 는 부분에서 존경하기로 맘 먹다.

이 책... 심지어

.

.

.

.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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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02-11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어제 후배한테 삥으로 뜯었어요
얄팍하긴 하지만 두근두근~

책속에 책 2006-02-1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당기는 책이네요!!

그린브라운 2006-02-11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page에 8000원은 넘해...라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기로 결정... ㅠ.ㅠ 하이드님 넘해요...

클리오 2006-02-11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하이드 님은 저랑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계단공포증까지.. ^^

모1 2006-02-1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서운 책이긴 하군요.
 
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3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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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이야기할때 극적 반전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반전이야기를 빼면 그닥 할 이야기가 없다. 고도 말할 수 있을까.

미친 살인자들이 있는 섬을 방문하는 연방보안관 테디와 처크.
무언가 심상치 않은일이 벌어지고 있는 그곳에서 사라진 죄수/환자 레이첼을 찾으며
테디는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에 대한 꿈에 시달린다.
2년전에 불에타 죽은 자신의 반쪽 돌로레스.

허리케인이 들이닥쳐 비상상태인 섬의 분위기.
실성한 살인자들이 환자복을 입고있고, 그들을 돌보는 간수들과 의사/간호사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고립감이 책을 읽는내내 으시시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잘 만들어진, 헐리우드 스릴러 한 편 보고 난 느낌.
굉장히 익숙한 결말.
그 익숙한 결말을 독자에게 와닿게 하는 설득력과 잊지 못할 책/영화를 결정짓는 '플러스 알파' 가
부족한 소설.


'뭐, 그런대로 괜찮네' 하는 정도의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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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2-11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생각보다 별로였어요, 이 책.

모1 2006-02-11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이드 2006-02-1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 네. 분위기가 으시시하더라구요. 빨리 끝까지 읽어버려야지, 하고 부지런히 읽었어요.
브라이니님/ 아, 기대가 너무 컸던걸까요?

한솔로 2006-02-12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니스 르헤인은 이 책으로 유명해졌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스틱 리버>가 훨씬 좋았어요. 영화도 대단했고.
 
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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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670여페이지에 달하는 이 긴 소설은 지금까지 내가 접해보지 못한 종류의 소설이었다.
'네가족 몰살사건' 을 조사하는 무인칭의 화자가 사건의 진행을 르포 형식으로 되짚어 간다. 그 과정에서 사건과 그 정도의 차이를 두고 관련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 관련된 사람들. 사건에서 뻗어나가는 그 인맥의 선들이 이리저리 이어져 결국 '범인' 에게까지 가게 되면서 그 모든 방사선은 완결된다.

사회추리소설이라고도 할 수있는 이 작품에서 지은이가 공들이고 있는 것은 '부동산 경매'이다.  그 시스템의 헛점을 이용하는 법의 탈을 쓴 범법자들. 선의의 피해자, 가해자,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극단까지 가게 되는 사건이다.

사건은 벌어지고,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경과와 결말을 관련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되짚어보게 되는데, 이 작품이 흔히 말하는 페이지 터너는 아닐지라도, 실제로 사건이 진행되는 그 추이는 엄청 실감나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하룻밤 자고 나면, 책 속에는 또 다른 뉴스가 나와 경악케 하고, 또 그다음날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어, 사건이 해결되는 것을 며칠에 걸쳐, 실제 책 속에서는 몇달에 걸쳐,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보는 이 작품의 키워드는 '가족'이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넘어오면서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생기는 불협화음들. 
시간은 '흘러가는 것' 이지. 저 순간부터 이순간까지, 그리고 이순간부터 다시 시작해서... 하는 식으로 그 시대구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매스컴과 사회의 시스템은 '효율적이 되어라' 고 목소리를 높이고,
따라가고자 하나, 발목을 잡는 구시대의, 혹은 구세대의 가치관.

겉으로는 문제없이 돌아가는듯 하여도, 속을 알고 보면, 이 사회의 가장 작은 구성단위인 가족내의 엄청난 갈등들이 모이고, 모여서 멀쩡해 보.이.는. '사회'를 이루고 있다.

그 꼼꼼한 조사와 구성은 말할것도 없고, 미야베 미유키의 사람의 내면을 묘사하는 능력이 너무나 탁월하여, 읽는내내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책을 만나게 되면, 좋다. 읽어봐라. 고 말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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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9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6-02-0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라도 오타를 안내면 손구락에 가시가 돋아서요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나기 - 2004 공쿠르 단편문학상 수상작
올리비에 아당 지음, 함유선 옮김 / 샘터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나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포도주 한 병을 비웠다. 얼핏, 슬픔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라는 문장이 귀에 스쳤다.( 중략 ) 그의 모든 얘기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고, 하찮은 말 한마디에도 나는 감동을 받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나는 언제나 죽고 싶은 마음이 들고, 설명하기 힘든 극도의 허약함에 빠진다. (16pg)

아홉개의 단편은 각기 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이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로만 들린다. 몹시 지쳐빠진 어떤 사람. 그 사람은 일에도, 사람에도, 가족에도, 흘러가는 하루하루에도 온통 지쳐버리고 기력없다.
어느 한국 영화의 대사처럼  '겨울이 가면 봄이 오더라구요.' 는 없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올 것을 알지만, '인생의 겨울' 다음에 '인생의 봄'이 쉽게 와줄까?

지쳤다는건, 힘들다, 아프다, 는 것과는 다르다. 더 깊고, 우울하고, 원초적이고, 끈적끈적하며, 헤어날 수 없는 (적어도 그렇게 보이는) 상태이다. 그와 같은 '지쳐버림'은 스치고 지나갈때도 있지만, 정통으로 맞을 때는 정말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되버리고 만다.

이 책 속에서 지친 그들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지치는 일이어서,
특히나 마구 행복해지고 싶은 지금의 마음상태로는 좀 과하게 힘이 드는 일이어서,
거 참 좋지 않은 타이밍이네. 하며, 작고 얇은 회색의 책을 어렵게, 어렵게 내려 놓고 만다.

절망도, 사랑도 못하는 열정이 고갈된 지쳐버린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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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6-02-0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페이퍼 읽고 저도 이 책 샀답니다. 매우 쓸쓸해보여서, 맘에 들었어요. 맞아요. 지쳤다는 건 힘들다. 아프다. 하는 것보다 더 바닥을 치는 의미같아요. 휴일에 집에 들어앉아 한껏 우울해하며 읽고 싶네요. ^^

하이드 2006-02-09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이불 뒤집어쓰고, 커피 홀짝이며,
 
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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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철도원'을 묘사하는 가장 맘에 드는 글귀는 산케이 신문에 났던 글이다.
'철도원'에는 줄곧 눈이 내리고 있다. 혹은 문장 뒤켠에서 눈을 느낄 수 있다. 그 추위는, 인생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영화 철도원을 먼저 보고, 책을 봤다. 단편이었고, 두시간이 넘었던걸로 기억되는 감정과잉의 영화와는 사뭇 틀린 느낌이었다. 아사다 지로의 첫소설집은 참으로 대단해서, 이 사람 야쿠자가 안되고 작가가 되길 천만다행이다. 는 생각이 절로 든다.

표제작이기도 한 '철도원' 은 일본에서 그리고 '러브레터'는 한국에서 이미 '파이란'이란 영화로 만들어져서 잘 알려져 있는 원작이기도 하다. 철도원으로 자라서, 철도원으로 살다가 철도원으로 죽는 한 외곬수 남자의 이야기. 눈이 소복하게 쌓이고, 인생의 괴로움이 쌓이고, 또 눈이 쌓이고, 또 후회가 쌓이고, 눈이 쌓이고, 아쉬움과 못다한 사랑이 쌓이고...
'철도원' 이외의 삶을 생각지 않았던 정년퇴임을 앞둔 오토마츠씨는 호로마이역에서의 마지막밤에 큰 선물을 받는다.

'러브레터'는 한 양아치가 돈 받고 위장결혼해준 중국여자의 '편지'를 받으면서 굳게 딱쟁이져있던 마음을 풀어내는 이야기이다. '이곳은 모두 친절합니다. 조직 사람도 손님도 모두 친절합니다. 바다도 산도 아름답고 친절합니다. 계속 이곳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셰셰(謝謝). 그것뿐입니다. 바닷소리가 들립니다. 고로씨, 들립니까? 모두 친절합니다. 하지만 고로 씨가 제일 친절합니다. 나와 결혼해주었으니까요. 셰셰. 많이 셰셰. 안녕히 주무세요. 파이란'  타국에서 몸을 팔러왔지만, 자신의 남편이라는 그 남자의 사진과 이력을 외우며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사랑에 마지막까지 기대게 된다. 결국 그 마음은 러브레터를 통해 삼류양아치였던 그에게 전해진다.  너무 늦게.

다른 모든 단편들도 따뜻하다. 가족의 정. 사람의 정을 각각의 짧은 단편안에 감동적으로 녹여내고 있다.
단 한작품 '캬라' 만은 다른 단편들과 색을 좀 달리하는데, 그 색 또한 나는 참 좋더라. 연애소설같기도 하고, 스릴러 같기도 하고, 환상소설같기도 하고.

별다른 조사 없이 술렁술렁 쓰여졌을 것 같은 이 책은 그렇기에 더욱더  아사다 지로가 타고난 글쟁이임을 보여주고 있다.

스릴러만이 눈을 못 떼게 하는건 아니다.
이 책 역시, 짧은 호흡으로 감정의 클라이막스를 지날때까지, 눈을 못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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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2-07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은지 오래 됐다고 이걸 먼저 읽고, 철도원을 봤는지 그게 기억이 안 나네요. 하지만, 여지껏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책이에요.

한솔로 2006-02-0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사다 지로의 단편의 조밀한 센티멘탈리즘은 중독되기 쉬운 유혹이 아닐까요.

하이드 2006-02-0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독되기 쉬운이라.. 또다른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가시는군요. 한솔로님.
하루님, 장미도둑보다 이 책이 더 나은것 같아요. 따뜻한 기억으로 남고, 나중에 다시 읽어도 또 좋을 것 같아요.

한솔로 2006-02-07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의미에서의 중독성을 말씀드린 겁니다.^^
"나 오늘 울기 싫은데, 어응, 아사다지로가 나를 울려버리네" 이런 정도의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