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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지음, 강수정 옮김 / 열화당 / 2006년 3월
평점 :
존 버거 나이 여든에 쓴 이 글이 죽은자들과 그가 여행했던 곳곳을 돌아보는 내용의 이야기라니,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이 책이 소설이라는걸 읽는내내 망각하게 된다. 존 버거는 서로 다른 곳에 존재하는 소설과 에세이를 산자와 죽은자들을, 기억과 현재를 동시에 한 곳에 불러내는 마법사와 같다.
리스본Lisbon
제 책은 전부 어머니에 대한 거였어요. 내가 불쑥 말한다.
말도 안 돼! 어쩌면 나를 거기 네 옆에 있게 하려고 그 책들을 썼는지도 모르지. 그래, 그랬지. 하지만 세상 온갖 것에 대해 썼어도 나에 대한 건 아니었어! 네가 나에 대한 이 짧은 이야기를 쓰기까지 나는 지금껏, 네가 노인이 되어 리스본에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니까.
책은 언어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제게 언어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어요. (49pg)
리스본의 어느 광장, 5월의 끝자락, 어느 더운 날. 벤치에 앉은 노파가 우산을 지팡이 삼아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온다. 얼굴이 보이기 한참 전부터 걸음걸이를 한 눈에 알아본다. '내 어머니였다'
글을 쓰는 존이 주인공인 단편 '리스본'
존 버거는 자신의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소설 속에서 그가 머무는 도시 속에서 그는
죽은 어머니를 불러낸다. 아니 죽은 어머니가 그 앞으로 걸어온다.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그러나 어쩌면 꼭 하지 않았어도 될 이야기들을 나누고,
죽은자들의 이야기를 한다. 죽은자들의 고질병- 희망. 산 자들의 우울증과 같지.
'리스본' 도시에 관한 이야기.
리스본 어딘가에서 문득문득 나타나는 '어머니'의 이야기.
'존'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 이야기.
가장 오래된 '기억'을 공유하는 어머니 이야기.
알면서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들, 굳이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들,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들.
지금, 과거에,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