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지식을 나눕시다

우유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토요일자 한국일보를 사들고 왔다. 가장 눈길을 끈 기사/칼럼은 이광일 논설위원이 쓴 '지식을 나눕시다'('정보'가 아니라 '지식'이다). 세계 수위를 다투는 인터넷강국이지만 우리의 인터넷은 '지식의 바다'라고 하기엔 아직 쑥스러운 수준이다. 오늘 아침에도 '마샬 버만'과 '들뢰즈의 영화론'에 관한 자료들을 좀 찾아보려다가 뭔가 그럴 듯한 게 눈에 띄지 않아 혀를 차고 있던 참이었다(물론 영어로 구글에서 검색하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그러는 사이에 미국 명문대학들에서는 자신들의 강의를 무료로 공개한다고 하고(한국의 대학은 등록금 천만원시대를 감당할 만한 강의를 제공하고 있는가?), 구글에서는 수백만권의 책을 영인해서 인터넷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새로운 지식사회로 진입해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은데, 우리의 관심이나 대처는 너무 고답적이고 너무 한가해 보인다(내용도 없는 리포트/논문들이 몇 천원씩 '거래'되는 게 '한국적 지식'이 현주소인가?). 문제의식이 좀 확산될 필요가 있다.

한국일보(07. 02. 17) 지식을 나눕시다

가히 인터넷 세상이다. 하다 못해 자기 집 전화번호가 생각이 안 나도 인터넷에 들어가 “우리 집 번호는?”하고 칠 정도다. 모든 게 인터넷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한글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별 게 없다. 거의 잡담 수준의 정보가 올라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금 깊이 있는 정보가 있겠다 싶으면 예외 없이‘전문자료’라고 해서 돈을 내고 사야 한다. 심지어 30쪽짜리 논문 한 편이 7,000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영어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온갖 지식의 세계가 펼쳐진다. 예를 들어 history(역사)를 쳐 보라. 한 두 사이트만 들어가면 세계사에 관한 개요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관심 분야에 따라 거기에 연결된 사이트를 찾아 들어가면 지역별, 시대별로 아주 전문적인 수준까지도 공부할 수 있다.

이처럼 한글 인터넷과 영어 인터넷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인터넷에 정보를 올리는 사람에 있다. 우선 지식 수준이 높아야 한다. 그 다음 그런 지식을 남에게 공짜로 제공할 만큼 헌신적이어야 한다(*위키피디아의 한국어판을 영어판과 비교해보아도 알 수 있다). 한글 인터넷이 내용 면에서 별 매력이 없는 이유는 우선 매력적인 수준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 적고, 그나마 그런 지식이라도 인터넷에 올리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은 더더구나 적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지간한 학회는 최근호를 제외하고는 학회지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그것도 디자인을 아주 멋지게 해서. 반면 우리나라 학회들 중에서 홈페이지에 제대로 정보를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니 한글을 사용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지식 수준은 영어권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매력적인 지식을 갖춘 헌신적인 사람을 단기간에 많이 키울 수는 없다. 그나마 지금과 같은 여건에서 우리의 지식 수준을 높이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돈을 내고 사게 돼 있는 각종 전문자료를 네티즌들이 무료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전문자료들은 대개 논문의 형태인데 한두 회사가 학술지를 내는 학회나 연구기관과 계약을 맺고 일반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그래 봐야 회사만 돈을 벌 뿐 학회나 연구기관은 다른 전문자료를 무료로 열람할 수 있는 권리 정도밖에는 돌아오는 것도 없다.

일반인들은 터무니없는 가격에 알량한 자료를 사거나 무슨 무슨 학회지에 실린 논문 한 편을 보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을 뒤져야 한다. 인터넷 시대에 이런 번거로움이 없다. 교육인적자원부가 1999~2005년에 실시한 두뇌한국(BK)21 사업도 그렇다. 1조 5,700억원을 들여서 나온 수많은 논문들이 인터넷에는 올라 있지 않다. 그냥 책이나 논문의 형태로 출판됐을 뿐이다. 이것만 그냥 인터넷에 올려도 지식검색에서 볼 만한 내용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국민 세금을 엄청 쏟아부어 나온 결과물을 극소수의 사람만 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낭비 중에서도 터무니없는 낭비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교육부도 좋고, 문화부도 좋고, 학술진흥재단도 좋으니 정부가 나서서 서고에서 잠자고 있는 연구물들을 인터넷으로 끌어냈으면 한다. 저자에게 최소한의 지적재산권 사용료만 지급하고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이다. 논문 한 편에서 영화나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제품 개발의 소재를 얻을 수도 있고, 전문지식을 키울 수도 있다. 이제 공부는 학생만 하는 시대가 아니다. 지식은 누구에게 들어가느냐에 따라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

구글에서는 지금 미국 주요 대학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1900년 이전 발행 도서를 영인해 인터넷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종수만 해도 수백 만 권에 달한다. 그 방대한 자료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갈 때 어떻게 활용될지는 예측을 불허한다.(이광일 논설위원)

한겨레(07. 02. 17) 미 명문대 온라인 공짜강좌 ‘펑펑’

카리브해 연안 세인트루시아에 살고 있는 캐나다 출신 기업가 로버트 크로건은 요즘 미 아이비리그 명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무료 강의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이 대학 몇몇 강좌의 강의노트가 자신이 추진중인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업무와 폭넓게 관련된 ‘세계 개발’과 ‘기업금융’ 등의 강의도 공부하고 있다. 크로건은 “(MIT 강좌가) 내가 사회에서 배운 실무지식과 제도교육의 용어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미군 소위인 로니 매튜도 노트르담 대학의 ‘신학의 기초’ 온라인 강좌에 빠져 있다. 그는 담당 교수인 게리 앤더슨의 강의 계획과 내용, 과제에 따라 하루에 한 시간씩 성경을 읽고 있다고 <원스트리트저널>이 15일 전했다.

미국에서 강의 내용을 온라인에 무료 공개하는 대학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문턱이 높은 대학 강의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해, 이른바 ‘교육의 민주화’를 추구하겠다는 게 강좌를 공개하는 대학들의 공식적인 설명이다. 이 외에도 △대학 지원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동문 기부금을 확충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신문은 분석했다.

강좌 공개에 가장 적극적인 대학은 MIT다. 현재 1500개 강좌의 강의 노트와 교육과정을 온라인에 올려 놓고 있다. 오는 11월까지 1800개로 확대해 사실상 대학의 모든 강좌 내용을 공개할 계획이다. 노트르담대도 지난 가을부터 ‘철학개론’ 등 8개 강좌의 강의노트와 필독서 목록, 과제물 등을 온라인에 올려 놓고 있으며, 2년 안에 30강좌로 확대하기로 했다. 아이비리그의 또다른 명문 예일대도 오는 가을 학기에 ‘구약개론’과 ‘물리학의 기초’ 등 7개 학부 강좌를 영상 녹화해 공개할 계획이다.

아이팟과 같은 엠피3 플레이어와 컴퓨터로 음성 파일을 내려받는 방식인 ‘팟캐스팅(Podcasting)’을 통해 강좌를 공개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미 서부 최고 명문 스탠퍼드 대학은 지난 가을학기부터 ‘위기의 문학’, ‘역사 인물로서 예수’ 등 3강좌를 애플의 아이튠 유 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공개 강좌수를 12개로 늘릴 계획이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도 강의 공개를 위해 일부 강좌를 음성과 영상 파일로 제작하고 있다.

이런 강의 공개에는 재단 지원금도 활용되고 있다. 교육자료 공개 촉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윌리엄 플로라 휼릿 재단’은 지금까지 각 대학과 비영리 재단에 6800만달러 이상을 기증했다. 이 재단의 교육 프로그램 간부인 캐서린 캐설리는 “지식은 공공재다. 공공재는 자유롭게 공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쪽에선 잠재적인 지원자를 늘리겠다는 목적이 크다. MIT의 공개강의 이용자 조사를 보면, 대학 입학 전 이 강의 사이트를 알고 있었던 신입생의 3분의 1은 강의 내용이 대학 선택과 등록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답했다. 대학들은 강의내용 공개가 지원자를 줄일 것이라고 걱정하지는 않는다고 신문은 전했다.(강성만 기자)

07. 02. 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묵혀 놓았던 펭귄70주년한정판 시리즈를 이번달부터 읽기로 결심했다.
알랭 드 보통의 'on seeing'  (동물원에 가기로 번역되어 나온) 은 이 시리즈의 70번.이고 닉 혼비의 otherwise pandemonium( 안 그러면 대혼란) 은 이 시리즈의 3번이다.
 
알랭 드 보통의 인기에 힘입어 이 얇다란 책이 국내에 번역되기는 했지만, 그 외의 책들이 번역되어 나올 확률이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행여나 미친척 70권이 다 번역되어 박스에 넣어져 나온다면 모를까.
 
이 책의 판형은 기존의 펭귄판형과 같고, 단지 페이지 수가 50 - 60페이지로 무척 얇다.
가격은 1.5파운드. 우리돈으로 3,000원 정도로 서점에서는 크리스마스 카드나 엽서 진열되듯이, 매대에 끼워져 있다.
 
피버피치나 어바웃어 보이, 최근에 나온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로 잘 알려진 닉 혼비.
이 책에는 otherwise pandemonium 과 not a star 두 편의 단편이 나와있다.  첫번째 단편은 이전에 출판되었던 단편이고, 두번째 단편은 새로 소개되는 단편이다. 두 편 모두 기대치 않았던 비현실적 현실을 경험하는 평범한 1인칭 주인공들의 이야기이다.
 
엄마는 내가 기분 나뻐 있을 때면 항상 노래를 부른다. 웃기는 표정과 웃기는 제스춰로, 속으로는 좀 웃기지만, 웃긴티 내면 계속 할 것이 분명하므로, 절대 티 안낸다. 무튼, 오늘에야말로 엄마가 항상 부르는 노래의 가사대로  따라해야할 때이다.  ' i'm going to accentuate the positive and eliminate the negative. Otherwise, according to the song and my mom, pandeoenium is liable to walk upon the scene. '
 
긍정적인 것은, 내가 '섹스'를 했다는 거야. 난 열다섯살이다. 그건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무려 1년이나 앞당겨 진 거라구. 그것도 마사와.  마사는 a. she's hot. b. but not in slutty way.
 
화자인 열다섯살 소년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 시작, 이상한 중간, 그리고 해피앤딩' 혹은 스티븐 킹식으로 '시작, 이상한 중간, 퍼킹 스케어리 앤딩'  
 
시작은 위와 같고, 중간은 다음과 같다. 소년이 아주 오래된 물품을 파는 가게에서, 비디오를 사는데, 비디오에 테이프를 넣는 것을 잊고 빠르게 감기를 돌리자, 생방송 데이빗 레터맨이 빨리감긴다. 그리고 레잇래잇쇼까지, 계속 돌리니 다음날 아침뉴스까지 나온다. 허거걱.
 
앤딩은 다음과 같다. 아침 먹고 방에서, 학교 같다 와서 방에서, 자기 전에, 시간 날때마다 생방송 네트워크를 앞으로 앞으로 돌리다가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하고, 이란,이라크, 이스라엘, 러시아,,, 등등의 심상치 않은 모습이 나오고, 전국네트워크 방송은 먹통이 된다.
 
딱 6주면 세상이 망한다.
 
자, 여기서 졸라무서운 앤딩과 해피앤딩. 사이에서, 열다섯 소년은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부정적인 점을 없애버리기'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혼란'
 
닉 혼비의 단편을 접해본 적 없는데, 그의 재치와 유머감각은 여전히 독자를 킬킬거리게 만들고,
플러스, 잘 짜여진 플롯으로 단편 읽는 즐거움을 120% 느끼게 해준다. 훌륭해!훌륭해!
 
두번째 단편인 'not a star' 는 더욱더 황당하고 웃기는 이야기이다.
그의 이 두 단편의 미덕은 나같이, 혹은 내 동생, 우리 엄마같이 평버엄- 한 사람들이 겪지 않을 법한 황당한 일을 겪었을때의 반응에 대한 카타르시스이다.
 
어느날 카렌 뭐시기라는 동네수다쟁이가 우편함에 비디오테이프와 편지를 넣는다.
비디오 테이프를 본 나.는 ..... 그 비디오테이프 ' meet the fuckers'  의 표지에는... 가슴이 커다란 여자가 있고, 그 뒤에.. 아들 마크가 여자를 감싸며 여자의 젖꼭지를 가리고 있다.... 내 아들 마크가...
 
절대 비디오를 볼 수는 없다. 고 생각했지만, 결국 보게 된다. 아들은 뭐, 내가 보기엔 잘생겼지만, 영화배우처럼 생긴것도 아닌데, 연기를 잘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비디오를 보고 알게 되었다. 왜 내가 지금까지 몰랐지? 아들의 페니스는... 내가 본 중 가장 크다.( 그렇다고 내가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그것은,, 비현실적이고, 무슨 특수효과 같았다. 그것은 그러니깐, 마크의 일부분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컸다.
 
이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폭소에 폭소에 폭소다.
남편인 데이빗이 들어와 데이빗과의 대화
마크가 들어와서 마크와의 대화.
 
나는 엄마를 만나서 의논하기로 한다. 여기서 또 엄마와의 대화.
그리고, 망할 카렌에게의 통쾌한 복수.까지.
 
이런게 퍼킹해피앤딩.인게지.
 
유머감각은 둘째치고, 역시나 플롯의 미덕. 작가는 아무나 되는게 아니다. 닉 혼비 만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여대제 마리 테레지아의 딸이었고, 프랑스의 루이 16세에게 시집와 프랑스의 어머니가 되었어야했다. 그러나 그녀는 왕인 남편을 무시하고 귀족사회를 쥐락펴락하며 사치와 향락을 일삼다가 프랑스 혁명에 의해 단두대에서 참수형을 당한다. 프랑스에 가면 그 화려하다는 베르사이유궁이 있고, 마리 앙투아네트의 트리아농성이 있다.

이 여인과 이 여인을 둘러싸고 미친듯이 굴러가던 역사의 수레바퀴를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조명했다. 워낙에 드라마틱한 그의 글은 오스트리아의 딸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 그야말로 펜대가 빛을 뿜고 종이 위를 날아가듯이 현란한 비유와 묘사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이 여인네의 시작과 결말을 모두 알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은 독자를 18세기 프랑스에서 유례없는 사치와 쾌락의 현장으로, 미친 혁명의 돌풍이 부는 바로 그 곳으로 끄잡고 들어간다. 500여페이지가 넘는 힘든 독서였다.

츠바이크의 전기들들은 그 인물들에 대한 열광적인 연서도 아니고, 날카로운 비판서도 아니다. 그녀에 대한 이 책의 어조는 '안타까움'이지 않을까. 모든 퇴폐와 악은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시작된듯하지만, 수 많은 갈림길에서 항상 잘못된 결정을 내렸던, 아니 그보다 더 나쁘게 결정 자체를 내리지 못했던 루이 16세에 의해 혁명은 완성되었고, 왕과 왕비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했다.

'진실이란 대개 그렇듯이 중용에 가까이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권주의의 위대한 성녀도 아니었고, 혁명의 "매춘부"도 아니었으며, 중간적인 성격에 유난히 영리하지도 유난히 어리석지도 않으며, 불도 얼음도 아니고, 특별히 선을 베풀 힘도 없을뿐더러 악을 행할 의사 또한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인일 뿐이었다. (중략) 그렇지만 평범한 혹은 아주 나약한 천성의 인물이 엄청난 운명의 수렁에 빠져들었을 때, 또 무시무시한 개인적인 책임에 몰릴 때에도 비극은 발생한다. 필자는 이런 형태의 비극을 보다 인간적인, 보다 통절한 비극으로 생각한다. '

이 책에서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직선적인 성격의 그녀. 사치와 쾌락을 쫓을 수 밖에 없었던 성적 억눌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들의 공적이 되어, 새로운 국민의회 세력의 좋은 먹이감이 되어 중상모략과 모욕, 사형선고에 이르기까지, 점점 의연함을 찾아가고, 강인한 왕비로 거듭나는 모습들을 츠바이크의 유려하다 못해 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글로 생생하게 접한다.

'지루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 던 그녀는 어머니가 되면서, 진정한 사랑 페르센을 만나면서( 이 이야기는 좀 더 뒤에 나온다) 철 없는 왕비가 아니라, 평범하지만 가장 완벽한 모습의 지고한 존재인 '어머니'와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 의 모습으로 거듭난다. 수 많은 시련과 고통은 그녀의 피에 흐르는 합스부르크왕가의 고고함을 깨웠고, 그녀를 자식에 대한 연인에 대한 사랑과 왕족으로서의 자부심으로 세상 전체에 맞서게 한다.  

그녀의 조력자였던 귀족들, 결국 파멸을 초래한 당사자이고, 오랜 세월 그녀의 무시를 받아왔으나 그래도 돌이켜보면 그녀에게 잘 대해줬던 루이 16세.
프랑스 혁명은 필연이었고, 운명이었다. 왕으로서 왕비로서 그들의 역할은 각각의 평범하지만 극적인 성격들로 인하여 서로의 약점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으며 결국은 프랑스의 왕권을 바닥까지 떨어뜨리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우연들과 악의들, 공포들이 모이고 모여, 왕과 왕비를 조롱거리로 만들고 목을 치게 했는지, 책을 읽다보면 놀랄 지경이다.

그녀를 보는 모두를 자기 편으로 만들었던 사랑스러운 열여섯의 소녀는
그 품위와 발랄함과 나긋함으로 감옥에서조차 그의 조력자와 하인과 친구를 만들었으나,
한 번 쏘아진 혁명의 화살은 그녀의 목을 요구했다.

재산을, 친구를, 왕비의 지위를, 남편인 왕을, 그리고 자식까지 빼앗기고, 그녀의 권위와 자존심마저 혁명의 도시에서 걸레가 되어버린 마지막 길. 그녀에게 죽음은 안식이었다. 사형선고는 이 세상과 이별하라는 선고가 아니라, 루이16세를 만나러 가라는 선고.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의연하게 잘 대답하고, 잘 죽는 것이다. 서른몇살의 나이에 백발이 되어버린 그녀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남은 모든 힘을 모아 의연하고 강한 모습만을 보여준다.

마리 앙투아네트 마지막 가는 길. 아래는 다비드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을 스케치한 것이다. 다비드에 대한 츠바이크의 묘사가 흥미롭다. ' 생오노레 가 한모퉁이, 요즘 카페 드 라 레장스가 있는 곳에 한 남자가 손에 연필을 들고, 종이를 든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가 바로 가장 비열한 인물이며, 또한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였던 루이 다비드였다. ( 중략) 그는 종의 근성과 비겁함이 천성이기는 했지만, 뛰어난 눈과 정확한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단숨에 종이에다 형장으로 가는 왕비의 모습을 그렸는데 놀랄만큼 뛰어난 스케치였다. '


'입은 거만하게 다물고, 속으로 외치고 있는 사람처럼, 눈은 냉담하고 손을 뒤로 묶인 채 마치 왕좌에라도 앉아 있는 것처럼 죄수 호송마차에 꼿꼿이 앉아 있는 여자를, 돌처럼 굳은 얼굴 윤곽에는 말할 수 없는 경멸이 흘러내리고, 솟아오른 가슴에는 흔들리지 않는 결심이 엿보였다. 인내는 고집으로 변하고 고통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힘이 되어 이 괴로운 인간에게 무시무시한 위엄을 주었다. 증오심조차도 훌륭한 태도로 죄수 호송마차의 굴욕까지 극복하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품위를 이 종이 위에서 배제시킬 수는 없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07-02-17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사마천 2007-02-17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볼만한 책이네요. 리스트에 올리겠습니다. 와인병에 빠져서 푹 지내시는 줄 알았는데 독서도 꾸준히 ^^

하이드 2007-02-17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와인, 책, 반신욕이 이즈음의 화두에요. 츠바이크의 책 중 만족하지 않은 책이 없지만, 이 책처럼 호흡 길면서도 시종일관 급박한 책은 처음이네요. 몰랐던 여러 에피소드들과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압권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에 비해 훨씬 현란한 글솜씨도( 단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눈에 띄였습니다.

비연님, 책 두껍고, 커서 (보통 책들 23줄, 이 책은 한페이지에 28줄이나 되어서, 며칠을 붙들고 있었네요 )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환상리얼리즘으로 유명한 주제 사라마구. 이 책에서 그의 상상력은 무섭고 치떨린다.
어느날 교차로 파란불을 기다리던 맨 앞줄의 차에서 비명이 들린다.
' 앞이 온통 하얘.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  지나가던 이가 그의 차를 운전해서 그를 집에 데려다주고, 그는 막상 차를 훔친다. 맨 처음으로 눈이 먼 자는 병원에 간다. 그의 상황을 응급으로 본 간호사와 백내장걸린 노인, 검은 색안경 쓴 여인, 사팔뜨기 소년은 갑자기 눈이 먼 그에게 먼저 진찰을 받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씩 눈이 멀어간다.

정부에서는 이를 '백색의 악惡' 전염병으로 보고 그들을 정신병원에 격리시키고 군대를 배치한다.
전염자( 눈먼자)와 보균자로 나뉘어졌던 그들은 점차 하나가 된다. 눈이 멀게 된다.

전 세계는 눈이 멀게 된다. 단 한 사람, 의사의 아내만이 남편을 위해 눈이 먼척 병원으로 쫓아들어와 헌신과 희생으로 눈먼자들을 돌보고자한다. 그녀는 이 세상에 '눈이 멀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눈을 통해 당연히 가지고 있었던 것. 을 박탈당하고 격리되어 있는 와중에  드러나는 인간의 흉측한 성질들을 목도하게 된다.

그들은 눈만 먼 것이 아니다. 음식이 없고, 밖으로는 군인들의 총부리에 의해 격리되고, 안에서는 총을 가진 눈먼 깡패에 의해 시달림을 당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최소한의 가치를 시험당할때 눈 먼자들 내부의 인간성은 눈을 감고 외면하고 굴종한다.

마침내 군인들까지 다 눈이 멀어 수용소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때
그들은 바깥 세상마저 눈 멀게 되었음을 알고, 어떻게던간에 삶을 유지하고 있는 '유령'같은 무리들을 만난다.

이 책은 '도시우화'다. 이야기책 속에서만 일어나야하는 인간성의 시험.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 내가 눈 감지 않게 하소서( 눈 뜬 장님이 되지 않게 하소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07-02-12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우화일듯.... 재밌을 것 같군요.

moonnight 2007-02-13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한 책이죠. ㅠㅠ; 읽는 내내 어찌나 무섭고 두근거리던지. ;;
 
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 효형출판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기를 즐겨 읽는다.
이 여행기를 읽는 것은 참 힘들었다. 읽는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책 따윈 왜 쓴단 말인가.

1999년 5월. 은퇴한 정치부 기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중국 시안에서 끝나는실크로드를  '걸어서' 4년에 걸쳐 여행하고자 한다.
예순두살의 나이. 1만 2천킬로미터.라는 숫자는 안락한 거실에서 자판 두드리고 있는 나에게는 전혀 가늠되지 않는 미지의 숫자.이다.

엄청난 거리를, 게다가 위험분쟁지역을, 노인이,  걸어서 횡단한다고 하니 도대체 무슨일인가 싶다.
왜 매번 더 멀리, 더 멀리 가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모르겠다.고 한다.
고집, 집착이란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몸이 아파서, 혹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혹은 어쩔 수 없는 주위의 강권으로 차를 탔을 때, 그는 그가 쓰러졌던, 혹은 강도를 만났던, 혹은 군인에게 끌려갔던 그 지점. 그가 마지막으로 발 디뎠던 그 곳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다. 실크로드의 그 길을 한발짝 한발짝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집쟁이 영감 같으니라고.

그가 직면하게 될 위험은 '보행자들에게 치명적으로 위험한 터키의 운전자들, 도둑들, 매복해 있는 P
KK( 쿠르드 노동자당) 소속의 무장대원들, 터키 동부의 무시무시한 목양견 캉갈 등'
이다.

이 책은 좀 더 심각한 책이다. 혹은 이 책은 심각한 책이 아니다.
그를 사로 잡는 것은 실크로드시절 대상들의 발걸음을 좇는 것이다. '인샬라' 모든 것이 알라의 뜻. 막상 터키의 그들은 대상들의 흔적(숙소) 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할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알라의 뜻.

이슬람교. 터키 시골시골에서 만나는 그들에게 있어서, 여행자를 환대하고 돌보는 것은 의무이고 기쁨이고 자랑이다.  그가 겪은 어려움들.은 내가 안락한 곳에 늘어져서 손에 땀 쥐고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급박하고 생사를 오가는 것이다. 가장 낙관적인 마음으로, 마라톤하이. 아니 '보행자(걷는 자의)하이' 를 겪으며 그 순간순간을 눈에 담는 은퇴한 기자 베르나르 올리비에.

'왜 걷는가' 에 대한 답을 그는 계속 찾고 있다.( 혹은 이미 찾았다) 그는 한발짝한발짝 길을 밟으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원한다. 라고 생각한다.

여행기를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하곤 한다.  이 책은 그것보다는 더 진지한 마음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하나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건, 이 책을 읽는 것은 그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 더. 터키는 아직도 EU 에 들지 못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