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 - 영혼을 빚어낸 손길 현대 예술의 거장
제임스 로드 지음, 신길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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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좋아하는 예술가의 전기를 읽는 것은 좋아하는 작가의 전기를 읽는 것에 비해 리스크가 크다. 보르헤스였던가, 작품은 독자와 저자가 반반씩 만든다고 했다. 그 작품이 해석의 여지를, 개인의 경험이 침투할 여지를 많이 담고 있는 예술 작품의 경우, 감상자의 몫은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 한정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더욱 커진다.

전기를 읽는다는 것은 예술가에 대한, 예술가 자신도 몰랐을 것까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알게 되는 것이고, 순수한 평론자였던 '나'는 세간의 평과 그 인물에 대한 권위 있는(적어도 전기를 쓸 정도의 사랑과 열정이 있는) 자의 의견을 원하지 않더라도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자코메티의 비쩍 마른, 무중력 상태에서 노니는듯한 작품들을 보았을 때의 느낌들은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실존에 관한 지식들로 어느 정도 퇴색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런 위험성을 모두 알고도, 열렬히 짝사랑하듯, 그의 작품을 눈으로 탐하던 '나'에게,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힘들 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모습의 날때부터 예술가라고 하더라도, 그 작품을 보고 상상했던 것보다 더 낫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면에서, 그의 작품들에 투영했던 나의 환상이 깨지고, 다시 재조합 되는 것은 당여한 수순이다. 한 사람의, 아니, 한 위대한 사람의 일대기를 읽는 것은 실화 소설을 읽는 것의 배의 충격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큰책을 꽤나 오랫동안 붙잡고 읽어버렸지만, 태어나서부터, 죽을때까지 천재의 일대기를 읽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등장인물이었던 여자들, 결혼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던 아내인 아네타를 포함하여, 지하세계에 몸담았던 창녀이자 강도인 마지막 여자 카롤린까지. 자코메티라는 이전에도 없었고,이후에도 없을 브랜드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던 동생 디에고 (자코메티는 그것을 때로는 인정했고, 때로는 부인했다.) , 20세기 초 파리라는 세계의 중심에서 만난 자코메티와 동시대를 동료로서, 친구로서, 적으로서 살았던 천재들. 전기의 저자인 제임스 로드가 끝까지 시니컬한 어조를 유지하는 피카소, 자코메티가 평생 존경했던 마티스, 자코메티와의 우정으로 유명한 사르트르( 덤으로 보봐르까지), 피카소가 '가장 훌륭한 예술가에 대한 글'이라고 격찬한 장주네( 자코메티에 대한 글을 썼다.'자코메티의 아틀리에') 까지.  이 이야기속에는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도 등장하고, 당시에 여신과도 같은 존재였던 마를렌느 디트리히도 등장한다. 이렇게나 화려한 등장인물들인 것은 그 시대 그 장소였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그 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사람은 물론 자코메티인데, 많은 결점들은 물론이고, 동시에, 그의 고귀하고 공정한 영혼을 엿보면서, 생전에 그가 연옥이라 불렀던, 어린시절을 보내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어쩌면 그 자신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었던 아네타 자코메티( 자코메티는 그의 어머니와 똑같은 이름의 여자와 결혼했고, 그렇게 얘기하며, 부인 아네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가 항상 있어서, 그를 주기적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던 스위스 스템파 그 계곡에서의 장례식까지를 읽고 드디어 책의 마지막장을 덮고나니, 한마리 짐승같이 보이는, 조상에게 물려받기는 보통보다 튼튼했지만, 과음과 무지막지한 커피와 줄담배로 망가진 몸에 갖힌, 짐승의 그것처럼 나이브하나, 뛰어난 통찰과 직관과 맑은 영혼을 가졌던 천재에 대한 여운이 진하게 남는다.

그는 그의 작품과 그의 작품이 있는 공간과 꼭 닮아 있다. 그는 죽고 없지만, 그의 작품들은 세계 곳곳의 가장 유명한 미술관에서 그렇게 닮은 꼴로, 금방이라도 걸어나갈듯,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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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책을 또 한 챕터씩 읽어나가다가, 깨달았다!

나는 텔레비젼을 안 보는데,

멀티리딩을 하는 것은 텔레비젼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리고 다음 프로, 오늘은 여기까지, 그리고 또 다음 프로

지금 나는 예술채널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를
추리채널에서 앤 클리브스의 <레이븐 블랙>을
인물채널에서 <자코메티>를
문학채널에서 움베르토의 <문학강의>를
그리고 프랑스채널에서 장주네의 <카페 여주인>을  보고 있다.

지금 막 도착한 프로그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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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원도로시 2007-08-27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리밀리건 리뷰좀 기다려 봐도 될까요?

하이드 2007-08-27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있는 녀석들 하나라도 끝나면, 시작해 볼까요? ^^
다중인격 소재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떨까 궁금해요. 꽤 두껍다는;;

비연 2007-08-27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콜드블러드...인상에 많이 남은 책이었는데요..^^ 님의 리뷰 기대하고 있을께요~

하이드 2007-08-28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꺼운 책은 맘 잡고 읽어야해서 맘의 준비가 필요해요. ㅋㅋ
 

 

 

 

 

 

지금 내가 골고루 번갈아 읽고 있는 책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강의> 이전에는 <피와 눈의 나라 러시아 미술>이 있었고,
<레이븐 블랙> 이전에는 <꽃밥>이 있었다.

<자코메티>는 도대체 얼마나 오래 잡고 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미의 역사>는 <자코메티>보다는 덜되었으나, 오래 붙잡고 있을 각오로 반년여만에 비닐을 뜯은 책이다.

<카페 여주인>은 아마도 읽으려고 꺼내 놓은 것이 아닌것 같은데, 어느 순간 보니, 읽고 있더라.

워낙에 두세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번엔 내가 생각해도 좀 심했다싶다.
그렇다고 내용이 헷갈리거나 할 일은 없다. 아니, 재미있는(?) 우연을 발견하고, 혼자 즐거워하기도 한다.

<미의 역사>와 <문학강의> 둘다 에코의 책인데, 한두챕터씩 읽는 와중에 <미의 역사>의 '비례와 조화로서의 미' 와 <문학 강의>의 '발루아의 안개'에서 꽉 막혔다. 무지한 내머리를 탓하는 대신, 폭염과 애꿎은 에코 할아버지를 탓하다, 폭염이 물러가고 밤이 내려앉아, 마음이 좀 나아진 무렵에는, 이해하길 포기하고, 다 읽고 다시 읽을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나갔다.<미의 역사>는 뒤로 갈 수록 나아지리라 생각하지만, 끊임없이 인용되는 플라톤을 비롯한 고대 철학가들의 글들과 피타고라스로 시작한 비례 이야기는, 음악의 비례 이야기에서 그야말로 두 손을 들어버렸다. <문학 강의>에서 '발루아의 안개'는 네르발의 <실비>라는 단편을 해부하고, 분석하고, 재결합하고, 다시 쪼개고, 뭐, 그런 내용인데, <실비>라는 작품이 생소할뿐더러, 문학작품 쪼개고 분석하는 일에 익숙지 않은지라, 네르발의<불의 딸들>을 보관함에 담아 두는 것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읽어내려갔다. 다행히, 두 책 다, 그 다음 챕터는 재미있는 부분인데, <미의 역사>에서는 '중세의 빛과 색채' 이야기가, <문학 강의>에서는 '와일드 : 아포리즘과 역설' 이 나온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금 풀어진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는데,

<미의 역사>의 '중세의 빛과 색채' 들어가는 말에 강력한 데자부.
<문학 강의>에서 이전에 읽었던 '<천국 편>읽기' (단테의 신곡중 '천국') 에 순서와 조사만 조금씩 바뀌고 똑같은 말이 있었다. <문학 강의>의 그것은 신곡 700주년을 기념하여 기고한 글이었었다. 무튼, 그런 소소한 발견에 즐거워하며, 남은 책들을 읽고 있다.

<자코메티>와 <미의 역사>가 끝나면, 좀 줄여나가서, 두-세권 정도의 멀티리딩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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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8-28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봤는데, 텔레비젼 미니시리즈 보는거랑 비슷해요 ^^
 
꽃밥 - 제133회 나오키상 수상작
슈카와 미나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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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인 <꽃밥>을 포함한 여섯개의 중단편이 모여 있다. '현대의 기담을 소재로 하여 향수를 자극하는 새로운 형태의 설화'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 답게, 이야기의 배경은 오사카 어느 곳, 개발과 옛것들이 함께 공존하던 그 때를 갖가지 기담들을 소재로 잘 엮어 내었다.

<꽃밥>은 전생을 기억하는 여자아이와 오빠의 이야기이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 기뻐하던 아빠를 따라 알지도 못한채 병원 복도에서 함께 큰 소리로 만세를 불렀던 오빠는 애어른 같은 여동생의 전생의 탐험에 동생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따라나선다. '오빠란 세상에서 가장 손해가 막심한 역할이'라고 중얼거리는 오빠와 동생의 전생의 가족들 이야기는 참 따뜻하다.  두번째 단편인 <도까비의 밤> 역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가져다주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회사가 망해서 오사카로 온 나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 형제를 만난다. 그 한국인 가족은 알게 모르게 이웃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데, 형제중 아픈 동생인 정호와 당시 가장 인기있던 '괴수' 시리즈를 통해 친구가 된다. 도까비(도깨비)라는 한국설화와 아이 귀신, 그리고 어린 최고 인기였던 '괴수' 시리즈라는 소재는 향수를 자극하는 현대의 기담에 꼭 들어맞는다. 이 두 단편이 따뜻하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였다면, 세번째 단편인 <요정생물>은 다리 밑에서 마법사가 만들었다는 해파리 같은 모양의 요정생물을 사게 된 여자아이의 성장이야기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이야기였다.

<참 묘한 세상>은 어른 코미디에 가깝고, <오쿠린 바>와 <얼음 나비>는 우리나라에서 듣는 도시 기담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이야기 될듯한 이야기들이다.  

<꽃밥>을 제외한 모든 단편이 각각의 이유로 소외와 따돌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얼음 나비>에서 따돌림을 받는 주인공은 왜 따돌림을 받는지 끝까지 안나와서 궁금증이 일게 한다. 그리고 모든 단편들의 배경은 오사카이고,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진짜로 있었을 수도 있고, 기막힌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어린 아이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들, 어른이 되어서도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그런 이야기들이기에 이 작품집이 맘에 드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세대의 향수를 자극한 도시기담이 나온다면, 홍콩할머니와 빨간 마스크 정도이지 않을까?( 물론,이 기담들 역시 일본에서 건너 왔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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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행복 2007-08-27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특하다는 느낌이 오네요. 과연 제 정서와도 맞을지는...
허나 내공 높으신 하이드님의 마음에 드신다니 음.
-저는 스스로도 알고 있긴 한데 너무 뭐랄까 실제적이랄까? 그래요. 딱 떨어지는 이미지를 좋아하고요. 나이가 들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하이드 2007-08-28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요정생물> 빼고는 그다지 하드코어거나 한 건 아니니깐, 괜찮지 않을까요?
 

시베리아의 어느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미하일 브루벨은 어릴적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준엄한 규칙보다는 문학, 철학, 예술을 가르치고자 하는 아버지의 밑에서 그의 미술 공부를 지원 받을 수 있었다. 어린시절 형제 자매의 죽음은 트라우마로 남았고,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등 생의 굴곡을 넘고 넘어 자살로 마감한 천재화가. 그의 그림은 그가 태어난 곳만큼이나 서늘하다.


                                                                                           'sitting demon' 앉아 있는 악마


브루벨은 악마 연작 시리즈로 유명한데, 러시아의 시인 레르몬트프의 시와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이다.
인간의 여자를 사랑한 악마. 여자는 악마를 무서워하면서도 사랑해 악마와 결혼하나, 그 다음날 시체가 된다는 슬픈 이야기.
중성적인 얼굴에 뾰족한 귀. 노을지는 하늘과 화려한 꽃을 배경으로 손에 깍지를 끼고 하염없이 앉아 있는 악마에게
우리는 두려움보다는 연민의 페이소스를 느끼게 된다.


                                                                                 Demon fallen 추락한 악마

고통받고 상처받은 후에 버려진 악마. 연작 시리즈중 마지막 작품이다. 부자연스럽게 목이 꺾인 악마는 이카루스 이후에 하늘에서 추락한 또 하나의 존재이다.  온통 폭풍우와 태풍의 격렬한 감정 속에 팽개쳐진 악마의 얼굴은 차라리 고요하다.

악마 시리즈 외의 다른 그림들을 보면, 역시 처연하다


Princess Volchova  


                                                                                                라일락Lilac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중 3막 '마르게리테의 정원'을 테마로 제작하였다. 스산한 밤의 라일락꽃(화가 자신이 좋아한 꽃이기도 했다.) 밤의 소녀의 모습은 밤, 그 자체이다.


                                                                                Swan Princess 백조공주

이주헌의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의 표지그림이기도 하다. 림스키 코르사키프의오페라 <황제 술탄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마법에 걸린 아름다운 백조공주를 구한 왕비와 왕자의 이야기이다.


                                                                                               red flowers

그의 그림의 개성은 허구 속의 인물화에서뿐만 아니라 정물화에서도 빛난다. 온통 검은 벽에 하얗고 빨간 꽃과 잎은 
어딘지 모르게 마법에 걸렸을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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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8-25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은 클릭하면, 크게 보임.

2007-08-25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