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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광 이야기 범우문고 192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민정 옮김 / 범우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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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기쁨을 주는 책이 있다.

이 책.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 애서광 이야기'에는 자체로 하나의 수필과 같은 이상보 교수의 작품해설로 시작해서, 고서 애호 취미의 옹호추진자로 영국의 호사가며 문학자인 옥타브 유잔느(Octave Uzanne, 1852~1931) 가 쓴 단편 소설집 [애서가를 위한 이야기(Contes pour les Bibliophiles)](1895) 중 에 실렸던 '시지몬스의 유산' , 그리고 플로베르의 애서광 이야기 해설, 과 이어지는 플로베르의 '애서광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슈테판 츠바이크의 ' 보이지 않는 수집품' 이 있다.

첫번째 이야기, [시지몬스의 유산]은 애서가인 라울 규마르와 그의 가장 큰 라이벌이었다가 고인이 된 시지몬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서로간에 가장 탐나는 고서들을 소유하고 있었던 이들은 시지몬스가 죽자, 라울 규마르는 그의 수집품들을 사고자 하나, 시지몬스의 유언에 의해, 책은 절대로 판매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책에 대한 권리는 사촌 여동생 에레오노르에게로 넘어간다. 자신보다 네살이나 많고( 54) 게다가 흉측하기 그지없는 그녀와 결혼하고자 하는 라울 규마르와 고인이 된 시지몬스에게 에레오노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를 하고야 만다.

두번째 이야기 [애서광 이야기]의 해설부분에는 역사책 속의 '애서광 ( bibliomanias) 에 대한 전설같은 얘기들을 몇가지 언급하고 있다. 그 중에서 관심을 끌었던 몇개는 '나'의 독백 중 ' 책을 사랑하면서 읽고, 책을 귀여워하면서 읽고, 책과 친하게 지내면서 읽는다. 이것이 책에 대한 나의 태도다. 책은 내게 있어 둘도 없는 친구이며 선생이다. 또 둘도 없는 '마음의 위안'이며 '환희의 원천'이다. ' 그리고 미야기 현의 아라하마아리에 조쿠카셉아카마쿠라시라는 책 미치광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굉장한 부자였는데, 너무 심하게 책을 사들이는 바람에 금치산자 선고를 받기도 했다. 라는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 [애서광 이야기]는 헌책방 주인 갸코모의 이야기이다. 이 음침하고, 책밖에 모르는 남자는 역시 건너편 서점 주인 바프테스토에게 강렬한 경쟁심을 느낀다. 어느날 바프테스토의 집에 화재가 나고, 갸코모는 목숨을 걸고 원하는 책을 들고 나온다. 그야말로 책을 위해 살인도 하고, 책을 위해 목숨도 버려도 좋다는 이야기.

세번째 이야기 [보이지 않는 수집품]은 책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이야기답게 슬프고, 감동적이고, 무언가 초월해야 할 것 같은 마음가짐이 들게 하는 단편이다. 60년동안 미술품을 모아온 한 퇴역군인에 관한 이야기. 그는 말년에 시력을 잃는다. 그의 수집품들을 싸게 사볼까 간 '나'는 깊은 감동을 받고 나오며 말한다. "저는 새삼스레, 아마 괴테가 한 말 같은데 , '수집가는 행복한 인간들이다'라는 옛 격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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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1-24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로베르? 혹시 마담보바리 지은 작가인가요? '애서광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 책인데, 하이드님 글 읽어보니 재밌을거 같아요.

하이드 2005-01-24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꼭 플로베르 책인것처럼 책소개가 나와 있는데요, 안에는 세 작가의 단편 3개가 나와 있어요. 범우문고에서 나온 2800원짜리 ( 예전에 1500원 하던) 얇고 쬐끄만 문고판 책이랍니다. 저도 책 좋아하지만, 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 읽으면, 뭔가 휴식을 취한달까 위안을 얻는달까 하는 느낌이에요. 저도 책 많이 사서 '금치산자 선고 받음' 까지는 아니라도, 좀 말도 안되게 읽는 것보다 많이 사기는 하거든요. 위

panda78 2005-01-24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안 읽었지만, 츠바이크의 단편은 다른 책에 실린 걸 읽은 기억이 나네요. ^^
다른 단편도 재밌을 것 같아요.
 
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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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맘에 들지 않는다. 페이지도 안 쪽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종이질은 또 뭐하러 이리 좋담. 쓸데없이 여백도 많고, 각주는 또 왜 다 이리 뒤에 달렸담...

그 어떤 불평도 사소하다. 서경식의 책 앞에서는. '나의 서양 미술 순례'에 이어 두 번째 읽는 서경식의 책이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이제 읽을 책도 두권 밖에 안 남았는데( 청춘의 사신,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아쉬움에 소년시절 그가 읽었던 책들을 뒤적여 보고, 리스트를 만들어 본다.  

평범한 독서일기일꺼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의 서양 미술 순례'에서보다 더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그와 함께 본 미술 작품 앞에서 그랬듯이, 또 한번 그의 삶을, 그의 영혼을 엿보는 독자가 되고만다.

소년 시절의 책들에 대한 기억을 다시 되살려 적은 것만은 아니다. 책꽂이의 먼지 쌓인 책들을 몇십년전 소년의 나이일때의 책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며 그 당시의 기억을 되살렸다. '노래는 추억을 실은 마차' 라는 글을 본 적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면, 중학교 3학년때 처음 지방에 내려가서, 할 일이라곤 공부밖에 없었던 막막했던 때가 떠오르듯이. 저자는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을 보면, '절대로 울지말자' 고 주인공 마르틴 타라처럼 다짐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어머니가 글자를 읽지 못해서 급식비를 못 낸 부끄러움에 훌쩍이던 기억을 떠 올린다.  가난한 집안 형편때문이려니 하시는 선생님 앞에서, 흐르는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엄마가 글자를 못 읽는다는 부끄러운 사실은 탄로나지 않았으니 그냥 그런 걸로 해두면 되겠구니' 하고 그제야 마음을 놓았던 기억을 떠 올린다.

[그 책을 읽었던 나날의 정경은 기묘하리만치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데 반해, 이야기의 중심 내용에 대한 기억은 왠지 미덥지가 못하다.]

기억난다. 지난 여름 한참 추리소설에 빠졌을 때 몇년만의 폭염에 집에는 에어컨도 없고, 회사 들어와서 최대 슬럼프에 빠져서, 주말에 소파에 기대 누워 미스테리 소설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못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그 때 읽었던 추리 소설들을 보게 되면 당시의 막막함과 무기력함과 나른함이 떠오르는걸까?

저자의 전작에서 드문드문 나오던 가족사는, 저자의 소년 시절을 쓴 이 글에서 본격적으로 나온다. 서준식이나 서승의 어린시절에 대해 서경식의 목소리로 듣고 있노라면, 난 이미 그 사람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아픈 시절을 겪은 서경식의 가족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머리 좋은 작은 형은 '서승'이고 반항아에 탁월한 운동신경의 독서를 멀리했던 막내형은 '서준식'이다. 작은형 서승은 막내인 서경식을 지나치리만치 귀여워해서 마치 소중한 장난감인양 대했고,  막내형은 좋아하는 표현으로 가끔씩 이슥한 심야에 왕복 4-5킬로미터는 족히 되는 장거리달리기를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던 막내형이 한국에서 영어의 몸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 나에게 독서란 도락이 아닌 사명이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서재나 연구실에서 씌어진 말이 나니고, 고문이 가해지고, 때로는 '징벌'이라 부르던, 수개월 간이나 계속된 독서 금지처분을 당하던 상황에서 써 보낸 편지였다.

서경식에게 '독서'란 자기 단련인 동시에 휴식이었고, 가장 사랑하는 대상인 동시에 증오의 대상이기도 했다. 학교를 빠지고 책방에서 책 몇권을 머리맡에 쌓아놓고 한 권씩 읽어 나가는 것은 그의 최대의 기쁨이었다. 몸이 아프면, 혹은 꾀병을 부려서라도, 기대 누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워했다. 아플때 읽는 책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들이었다. '아프니깐..' 하면서 변명처럼 잡은 책들. 서경식은 막내형의 위의 편지를 받고 형의 그 말을 본인에 대한 가차 없는 항변의 여지가 없는 비판으로 받아들인다.

[한 순간 한 순간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엄숙한 자세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독서. 타협 없는 자기연찬으로서의 독서.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적 투쟁으로서의 독서. 그 같은 절실함이 내게는 결여돼 있었다. 꼭 읽어야 할 책을 읽지 않은 채,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시시각각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중학교 때까지는 한 반에 네댓명의 조선인들이 있는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본인이 조선인인것을 숨기고자 노력했고, 고등학교는 명문 고등학교에 시험봐서 입학했는데, 단 한명 재일조선인이었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열등감으로 차 있는 서경식의 어린 시절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난에 대해, 민족에 대해 너무 일찍 깨달아야만 했던 그에게 '책'이 있었고, 거기에서 해답을 구했다. 가끔은 그 해답을 찾기도 했다.  그는 분노하기 보다는 슬퍼하는 소년이었다.

[모두들 "어린 시절은 참으로 좋았다. 가능한 일이라면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나 역시 그 같은 마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지난 시간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하나하나 꼼꼼히 되짚어보면, 그리움이나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어린아이 나름의 슬픔과 괴로움이 마음속 저편에서 되살아온다.]

서경식의 담담하지만 묵직한 글은 생각보다 더 가슴 깊이 자욱을 남긴다. 평소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일본 시선 몇권을 골라 본다. 새삼 에리히 케스트너의 책들을 구석에서 꺼내 본다. 읽을 엄두 못내고 있었던 루쉰의 책과 프란츠 파농의 책들을 드디어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저자가 끝내 읽지 못한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오기반 재미반으로 주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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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1-1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의 사신도 있는데요. ^^;;

하이드 2005-01-18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도 있어요. 이런;;;; 고쳐야지;;

하이드 2005-01-1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쫌;; 말 안되는 것 같지만;; 판다님 제보 감사해요 ^^)/

panda78 2005-01-18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ㅡ^ 히히-
음.. 그리구 아무 관련없는 이야기지만.. 요즘 부어스틴 [창조자들 3] 을 읽고 있는데, 미스 하이드님도 좋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이드 2005-01-18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잇, 판다님은 역시 지름신의 다른 모습!

하이드 2005-01-19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끄덕.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8세부터 88세까지 읽는 동화
루이스 세뿔베다 지음 / 바다출판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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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에 집단 폐사한 검은 기름을 뒤집어쓴 갈매기때의 사진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그 갈매기에서 시작된다.

힘차게 날고 있는 은빛 날개의 갈매기때. 여섯시간여의 비행끝에, 바다에서 청어때를 발견한 우두머리 갈매기. 하강을 지시하고, 모두는 120미터 상공에서 꽂히듯이 바다로 퍼덕거리며 잠수한다.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들어가서 나올때는 한마리씩 통통한 청어를 입에 물고 있다. 그렇게 포식을 하고 있는데, "오른쪽에 비상이야. 모두 나와라" 날카로운 경고가 있다. 깊이 잠수해 있어 경고를 못들은 갈매기 켕가는 물위로 떠 오르자 자기 혼자만이 남아 있는걸 깨닫는다.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를 쭉 폈지만, 커다란 파도가 몸 전체를 덮어버렸다. 가까스로 물 위로 떠오른 켕가는 머리를 힘차게 흔들어 젖혔지만, 눈앞이 칠흘 같은 어둠에 휩싸인듯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이 앞을 볼 수 없는 것은 오염된 바닷물의 기름 탓이라는 사실을.

세차게 머리를 흔들고, 필사적으로 움직여서 기름 덩어리 중심부에서 벗어나고, 잠수해서 눈가의 기름을 씻어내고, 꽁지털을 거의 다 뽑아가며, 날 수 있도록 끈적거리는 기름들을 떨쳐낸다. 마지막의 힘겨운 비행 끝에 검은 고양이 소르바스가 쉬고 있는 발코니에 불시착한다.

작가는 루이스 세뿔베다.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 이나 '지구 끝의 사람들'  등의 작품들에서 보듯이, 작가는 그린피스나 유네스코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파괴되는 환경에, 멸종되는 동식물에 대해 경고한다. 어느날 작가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인간이 자연을 훼손함으로써 빚어지는 폐해에 대해 이야기해주겠다고 약속했고 갈매기가 나오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고양이들이 나오며, 침팬지도 나오는 색다른 동화를 씀으로써 약속을 지킨다.

죽어가는 켕가는 구할 방법을 물어보려 가려는 소르바스를 잡고 세가지 약속을 한다. 알이 부화되도록 잘 품어줄것. 보호해줄것. 나는 법을 가르쳐줄것.

이 책의 앞면 삽화는 아주 예쁘다. 검은 고양이가 평화롭게 자고 있는 갈매기를 품에 안고 눈을 감고 있다. 열린 문으로 보이는 방안에서는 다른 네마리 고양이들이 뭔가를 열심히 의논하고 있다. 몇페이지 건너 있는 삽화들은 작품에 대한 몰입을 돕는다. 책을 다 읽고 이 대단한 삽화를 보기 위해, 삽화가를 찾아보고 '이억배'라는 우리 나라 사람임을 알고 무척이나 놀랐다. 이국적이고, 강렬한 삽화는 이 책과 너무도 어울렸다. 고양이 소르바스가 처음 알을 품고 잠이 든 모습이나, 고양이들이 갈매기를 묻어주고, 달밤에 송가를 부르는 모습, 하리의 전시장에서 고양이들이 모여 백과사전을 찾아보고 있는 모습등 '우와, 이건 대단하잖아' 감탄을 불러 일으키는 삽화들은 루이스 세뿔베다가 예상치 못한 이 책의 또다른 매력이다.

갈매기는 죽고, 소르바스의 고양이 친구들은 세가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마침내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침으로써 그들은 약속을 지켜낸다.

갈매기가 날고 싶어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린 고양이들은, 마침내 갈매기가 자기도 날고 싶다고 하자, 다들 기뻐서, 비행술을 가르치고자 한다. 몇번의 시도끝에 고양이들은 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되고, 결국 갈매기는 비가 오는 어느 날, 날개를 쫙 펴고 날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며 소르바스는 말한다.

" 그래요, 아기 갈매기는 이제야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 그게 뭔데?"

" 오직 날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이죠."

그렇다. 오직 날려고 노력하는 자만이 날 수 있다. 세뿔베다는 마지막으로, 망쳐져 가는 환경을 지켜보기만 해서는 아무 소용 없고, 변화시키고자 노력해야만이 깨끗한 지구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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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5-01-1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이 별다섯개를 주셨으니 보관함에 안 넣을 수가 없군요.

하이드 2005-01-17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 책 좋아요. 근데, 저 별 디게 헤퍼요.
 
말더듬이 주교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7
얼 스탠리 가드너 지음, 장백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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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는 말을 더듬지 않는다.

라는 당연한 사실에 궁금증을 느끼고, 페리 메이슨은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와 자신이 멜로이 주교라고  하며 의뢰하는  22년전의 과실치사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한다. 상대는 백만장자 은행가 렌월드 가문이다.

한시간 정도의 재미있는 시리즈물 드라마를 본 기분이다. 추리소설이 갖추어야 할 점들은 갖추고 있는 책이다. 소설의 말미에 등장하는 다음 작품에 대한 예고라고도 할 수 있는 의뢰인의 등장과 같은 장치에, 독자들은 다음 작품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사볼지도 모르겠다. 매주 보는 드라마를 기다리듯이.

페리 메이슨의 첫인상은 '거만함'이었다.

["가난한 여자를 위해 백만장자를 상대로 하여 싸워볼 마음도 있습니까?"

 메이슨이 오만한 표정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의뢰자를 위해서라면 악마라도 상대합니다." ]

그런 나의 인상은 뒤에 가서 더욱 더 굳혀졌다.

["블래너 사건에는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있어. 뭔가 시적(詩的) 인 정의를 느끼게 하지. 가슴을 죄는 듯한 인생의 드라마적 요소를 남김없이 갖추고 있다고. 지금 나는 반드시 마지막까지 싸우겠다는 기분은 아니야. 다만 내가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기능을 그 시적 정의를 지키기 위해 쓸 작정이야."]

페리 메이슨의 투사 같은 성격이나, 그것을 겉으로 다 드러내는 모습이나, 그의 애인인 비서 델라 스트리트를 거리낌없이 위험으로 내몰아 미끼로 삼는 장면이나, 그런 그를 위해서라면, 감옥에 들어가는 것도 불사하는 비서 델라나 조금씩 조금씩 거슬리는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별로 거리끼거나 한것은 아니 것이, 얼 스탠리 가드너의 이 작품은 '시간죽이기' 용 추리 소설이라는 것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레밍턴 스틸'이나 '제시카의 추리극장' 같은 시리즈물을 볼 때, 우리는 사건 그 자체나 그 사건에 얽혀 있는 인물들의 비극이나 심리 보다는 우리의 주인공이 어떻게 사건을 해결하고, 어떻게 궁지에서 빠져나오나에 관심을 가진다.

페리 메이슨 시리즈도 그와 같다고 생각된다. 주인공이 좀 잘난체 한다고 해서( 그것 역시 그의 매력이지만) 우리는 그 주인공에 포커스를 맞추어 사건을 보게 된다. 매력적인 주인공과 흥미로운 조연들 . 예쁘장한 여비서와 투박한 사립탐정 폴 드레이크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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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
이윤기 지음 / 동아일보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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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사람들은 왜 고향부터 묻는지, 왜 출신학교부터 묻는지, 섬기는 종교부터 묻는지, 나이부터 묻는지 나는 그 까닭이 여간 궁금하지 않다. 어째서 상대에게서 자신과의 '동류항'을 찾아내려 하는지, 찾아내지 못하면, 다시 말해서 동류 의식을 느낄 수 없으면 견딜 수 없이 쓸쓸해 하닌지, 어째서 동류항을 찾아내고 그 안으로 들어가 동아리가 되면 아늑한 평화를 느끼는지,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이 어째서 우습게 보이는지, 어째서 '불출'로 따돌리고 싶어지는지, 그 까닭이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다.-227쪽

1453년 오스만 터키 군을 이끌고 지금의 이스탄불을 장악한 술탄 마흐메드는 아야 소피아를 파괴하지 않았다. 술탄 마흐메드는 대성당 옆에 회교 사원식 첨탑을 세우게 하고 그 대성당을 회교 사원으로 쓰게 했을 뿐 파괴한 것이 아니었다. 아야 소피아에는 성직자들이 문맹에 가까운 동방 교회의 신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그려 놓은 무수한 모자이크 벽화가 있었다. 그러나 술탄 마흐메드는 그 벽화를 훼손하지 않았다. 그 위에 회를 칠했을 뿐이다. 내가 찾아간 아야 소피아에서는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1964년부터 시작된 회칠을 뜯어내고 고생창연한 기독교의 벽화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그러니까 회교도들은 기독교 교회의 벽화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 그 위에 회칠을 한 다음, 500년 동안 자기네 사원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아야 소피아의 , 성모자상이 올려다 보이는 돔을 두고 '장엄한 광경( Awe- Inspiring Generosity) ' 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내눈에 보인 것은 오스만 터키의 회교가 지닌 '장엄한 아량( Awe-Inspiring Generosity)' 이었다. 회칠이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고대의 벽화를 보면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오스만 터키 제국의 저 놀랄 만큼 관대한 문화적 유연성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제국을 경영할 역량을 가진 자들의 도량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종교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비극적 인식에서 나온 것인가?-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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