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사람들은 식물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어느 레스토랑이든 테이블에 자그마한 꽃이 있는데, 잘 보면 모두 인공적으로 만든 조화다. 그것도 장미나 카네이션 같은 화려한 꽃이 아니라 매우 평범한, 이름도 모를 고산식물의 이미테이션이다. 그렇게 수수한 조화를 만드는 나라는 세상이 아무리 넓다 해도 아마 아이슬란드뿐이지 않을까. 이것도 익숙해지면 제법 괜찮고, 식물이 귀한 나라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보통 다른 나라의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테이블 위 꽃병에 꽂아둔 조화를 보면 "뭐야, 이미테이션이야?" 라며 실망하겠지만, 아이슬란드에서는 오히려 조화의 씩씩함이 마음에 남았다.

 

 

 

 

 

 

 

 

 

 

 

애인은 사랑에도/할수록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 감각으로는 아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데 노력이 필요한가. 나보다 상대방을 위하게 되는 것이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당연하다. 덜 사랑하는데 노력이 필요하면 모를까. 애인이 가끔씩 하는 말들에 곱하기 10,000 정도 하면, 내가 애인 만나기 전에 했던 말들이다. 나는 내 정신적/물리적 공간이 너무나 중요하고, 가장 중요하고, 침범 당하는 것을 심하게 못견뎌 하며, 그것이 나를 이루는 정체성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애인을 만나고 나서, 사랑/연애에 대한, 인간관계에 대한 그간의 모든 생각이 백팔십도 바뀌었다.

 

그래, 내가 아무리 아이슬란드의 씩씩한 조화로 이야기를 시작해도, 결국은 애인 깔대기. 그렇지 뭐.

5시에 알람 맞추고 일어나는 애인에게 4시 58분쯤 전화하면 정말 사랑스러운 자다 깬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밤에 산책 나갔다 오는 길에 통화하면, 밤길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밀려오는 잠을 못 이겨 잠이 들고 마는 애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오늘 7월 첫째날의 목표는 삼시세끼, 밤에 세시간 이상 자기. 이므로, 아침잠이고, 낮잠이고 안 자 볼 생각이다. 밤을 꼴딱 새니깐, 아침이고 낮이고 두세시간 자는게 밤잠에 영향 얼마나 미칠까 싶긴 한데, 아.. 내가 진짜 아침에도 자고,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잘 자던 때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잠을 못 잘까. 낮에 더워서 못 움직이니깐, 밤에 낮에 못한 이것저것 하다 보면 아침이야. 라고 말하긴 했는데, 핑계지 뭐.

 

오늘 꽃시장에 가면 어젯밤에 주문 받은 목화솜과 부루니어를 사두고, 기본 화병을 좀 채워두고, 새벽에 하루키 책에서 읽은 '아이슬란드의 씩씩한 조화'를 사 볼 생각이다. 내 보기엔 충분히 화려하지만, 꽃만 화려하다 생각하면, 잎의 화려함을 못 볼 수도 있겠지. 씩식하고 화려하고 그대로 예쁜 잎을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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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독서

 

박 준

 

그림자가

먼저 달려드는

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

불을 끄지 못하는

여자가 살고

 

여자의 눈 밑에 난

작고 새카만 점에서

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

울 수도 있을

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침략과 주름과 유목과 노을의

페이지마다 침을 묻혔다

 

저녁이 되면

그 집의 불빛은

여자의 눈 밑 점처럼 돋아나고

 

새로 자란 명아주 잎들 위로

웃비가 내리다 가기도 했다

 

먼 능선 위를 나는 새들도

제 눈 속 가득 찬 물기들을

그 빛을 보며 말려갔겠다

 

책장을 덮어도

눈이 자꾸 부시던

유월이었다

 

 

 

 

 

 

 

 

 

박준 시인의 '유월의 독서'를 유월이 가기 전에 읽어줘야지. 했는데,

2016년의 반과 함께 유월이 갔다.

 

나는 이 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같은 책장만 넘겼'

'책장을 덮어도 눈이 자꾸 부시던 유월'은 갔다

 

더운데 뭐, 할 수 없지. 하지만, 더우면 움직이기 힘들다. 7월을 잘 보내면, 8월이다. 8월을 잘 보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 7월을 잘 보내야 한다. 새로 시작하기 좋은 7월의 첫 날. 잠 못 자고 있지만, 6월 마지막 날 삼시 세끼는 잘 먹었다. 7월 첫 날의 목표는 삼시 세끼와 밤에 잠 세시간 이상 자기.

 

작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아빠, 엄마, 동생, 나.. 우리 가족 모두 각자가 많이 힘들었다. 나는 이전과 똑같이 별볼일 없지만,  다른 가족들, 특히나 아빠마저 힘들어하니, 불안한 마음이 생겼더랬다. 6월에 많은 것이 풀렸다. 아빠는 궤도에 올랐고, 아빠의 도움으로 엄마의 일이 풀렸고, 동생도 궤도에 올랐다. 나만 여전히 레일 밖에서 소풍 중이다. 그래도, 밝아진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마냥 방관자처럼 구경만 할 수 없는 것이, 혼자만의 소풍이 아니라 파트너가 생겼고, 이제 함께인 생활을 계획해 나가야 한다.

 

회사 다닐때는 어땠더라. 가게 할 때는 어땠더라. 가게 할 때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러니깐 하루도 못 쉬고,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 하는걸 4년여를 했는데, 그렇게 벌어서 임대료로 고이 바쳤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 다시 일을 시작하기가 겁이 난다. 매일 매일 일한다는 것을 생각만해도 심장이 쫄깃쫄깃한 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니, 즐겁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가능한 적게 일하면서 적당히 벌고, 다만, 내가 가장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을 가정해서 벌어야 한다.

현재의 나는 집안일도 안 하고, 돈도 안 벌고. 책도 안 읽고, 놀지도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잠을 많이 자는 것도 아닌..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인가 싶은 그런 것이다.

 

대학 졸업하기 전부터 취업이 되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았는데, 돈을 많이 벌 때도 있었고, 적게 벌 때도 있었다. 잘 찾아봐야지. 하지만, 여름은 더우니깐,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보낼 것이다. 책을 많이 읽고, 짐을 많이 정리해서 비우고, 꽃을 더 많이 잡으면서.

 

유월까지의 독서는 두서 없었지만, 칠월의 독서는 좀 더 집중하며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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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문득..

더 이상 미루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밥을 챙겨 먹고, 애인이 사무실 앞 복숭아 나무에서 따다 준 복숭아 하나를 먹고 컴퓨터를 켰다.

 

일단 미루고 있던 '자음과 모음 항의' 서명을 완료했다.

'게스트' 를 사고 싶었는데, 게스트 번역하신 김지현님의 트윗을 봤다.

 

자음과 모음에서 출간된 세라 워터스의 소설 <게스트>의 역자 김지현입니다. 저는 자음과 모음에서 윤정기씨를 비롯한 편집자들에게 가한 노동탄압을 규탄하며, 성소수자 여성의 독립적인 삶과 존엄성에 대해 고민한 세라 워터스의 작품이 한국 독자들에게 정당하게 소개되고 떳떳하게 향유될 기회를 잃게 된 것을 깊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윤리적 층위에서 따로 떨어져 자유롭게 존재하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음과 모음이 지금까지 내왔고 앞으로 내게 될 좋은 책들이 손색되지 않을 만큼, 직원들이 그곳에서 온당한 노동 환경을 보장받고 존엄하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공동성명()에서 요구하는 바를 자음과 모음에서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이행하지 않는 한, 저는 앞으로 해당 출판사와 그 어떤 형태의 번역 계약도 맺지 않을 것입니다.

트위터에서 팔로잉하는 대부분이 출판관계자들, 저자들, 열혈 독자이다 보니, '자음과 모음' 에 대한 글이 끝도 없이 올라온다. 자음과 모음에 관한 기사가 올라온지 몇 달이나 되었다. 사람들에게 잊혀지기를 바라며 변하지 않았다.

 

싸우고 있는 윤정기 편집자가 있고,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작가들이 있다. 손을 거들고 힘을 보태는 많은 출판관계자들이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서명을 하고, 자음과 모음의 일이 해결될때까지 '자음과 모음' 의 책을 사지 않겠다.

 

아래 서명 링크입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1OQDfSGoRuqa__-dfPwtUCnC68I4riAOAWIgbJouXu1c/viewform?c=0&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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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음과 모음 출판사는 계속 이러네...
    from 시간의 흐름, 그 속의 책 2016-06-30 13:41 
    자꾸 이런식으로 나오니, 그 출판사에서 나온 것 중에 내가 산 책이 뭐가 있는 지 뒤져 보게 된다. ㅜ 하나도 없기를 바랐는데, 불행히도 몇 권 된다는 걸 이제 알았네. 사사키 아타루의 책은 여기서만 나오는 듯. 아쉽다. 버릴 수는 없으니 일단은 두고. 이 정도의 부당한 행위를 하면서 잘도 책을 찍어내는 게 신기한 회사이다. 이전에도 계속 비슷한 문제들이 있어왔던 걸로 아는데, 계속 그대로 기조 유지. 오. 놀라운 곳!
 
 
잠자냥 2016-06-3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음과 모음 출판사 책을 한 번도 산 적이 없다는 게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에 처음 <게스트>살까 싶었는데 그만둬야겠습니다. -_- 저런 출판사는 책을 그냥 돈으로 보는 거겠죠.... 에효.

하이드 2016-07-01 01:18   좋아요 0 | URL
좋은 책 많이 있고 ㅡㅜ 앞으로 사고 싶은 책들도 많은데, 저런 오너 아래서 책 만들주고 있는 모든 관계자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olivia 2016-07-01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부당함을 뛰어넘을 큰 힘이 되길 바라며 저도 서명하고 왔어요.
이게 이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네요;;

하이드 2016-07-01 16:47   좋아요 0 | URL
사과했다고 신문에 났는데, 윤정기 편집장은 신문 보고 알았다고 하구요...
 

 

 

현대미술이란 뭘까요?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게 해주고,공존할 수 있게 해주는 힌트(도구)' 

저는 현대미술의 에반젤리스트가 되어 컬렉션의 장벽을 조금이라도 낮춰보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을 소장하고 감상하는 건 남녀관계나 부부 사이와도 비슷하다. 경쟁자를 물리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 즉 컬렉션에 추가한 뒤에도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구사마 야요이 <무한그물>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와글와글하며 작품 속을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초록색 배경 위에 노란색 원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는 마치 피처럼 보이는 새빨간..

 

 

아티스트는 작품의 가격을 매길 때 기본적으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따져본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재료비를 들였는지, 작품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에 따라 가격을 산출한다.

"아티스트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간다."

작품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첫 작품의 가치가 계속 이어지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단순히 시장 가치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며, 작품을 구입한 사람이 오랜 시간 질리지 않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매력이 포함된다.

 자급자족이 이루어지던 먼 옛날, 마을 공동체는 새 집이 필요한 구성원을 도와 집짓기에 발 벗고 나섰다. 드림하우스도 마찬가지다. 인터넷으로 물리적 거리를 줄여,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아티스트 친구들의 힘을 빌려 만든 집인 것이다. 내게 '나만의 컬렉션'을 위한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이고, '돈'(만)이 아니라 열정이며, 그 무엇보다 중요한 비결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할 것이다.

 

 

  월급쟁이가 아니겠지. 뭐가 더 있겠지. 했는데, 정말 월급쟁이였다.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샐러리맨이 현대미술 컬렉터가 되다니 대단하다. '열정'과 '끈기', '집중'과 '선택' 의 과정과 결과일까. 컬렉션 중 가장 비싼 작품은 구사마 야요이의 <무한그물>이다. 그를 현대미술 컬렉터의 길로 이끈 작가도 구사마 야요이였고, 저자가 자신의 연봉을 웃도는 작품을 산 것도 처음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생각도 해보지 못할법한, 혹은 생각에 그칠 일들을 실행해 나간다.

현재진행형인 결말은 자신이 좋아하는 현대 미술 아티스트들과 자신의 집을 만드는 '드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집을 짓는 것은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있어! 해서 돈을 마련해서.. 자신의 집을 갤러리처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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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솔뫼 작가의 <머리부터 천천히>

 표지 일러스트 Raphaëlle Martin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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