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출근하는 길에 새로운 가게가 하나 등장했다.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커피전문점이 망해나간 자리에 깨끗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프랜차이즈 떡볶이 집이었다. 공사도 제법 오래 하는 것 같더니 이 가게의 공통된 인테리어인 원목느낌에 전면이 활짝 열리는 창을 만들어 놓고 몇 칠전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이름값을 하는지 제법 손님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허나 우리 사무실과의 위치는 걸어서 10여분이기에 한번 시식이라도 하려면 퇴근길을 이용하거나 점심과 저녁시간 사이 출출한 간식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들다 보니 길가다 군것질하는 것도 용의하지 않다. 더불어 요즘은 정시에 끝나는 일상인지라 아무래도 간식타임을 가지기도 여의치가 않았다.

토요일 그 기회가 왔더랬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직원들 입맛이 좀 떨어졌는지라 매콤한 떡볶이와 그에 준하는 기타 등등 분식으로 점심을 해결하자는 의견이 일치된 후 사무실 막내를 시켜 걸어서 10분 왕복 20분 거리의 새로 오픈한 그 집에 심부름을 보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온 막내는 양손에 가득 그 집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허나 뭔가 허전하다.

봉지 속에 있어야 할 떡볶이가 보이지는 않고 어묵과 순대, 튀김만 보인다. 홈페이지 속  그 지점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니, 포장은 되었지만 미처 챙기지 못한 떡볶이가 카운터에 덩그러니 남아있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허 이런.. 떡볶이가 주 메뉴인 집에서 떡볶이를 빼먹고 포장을 보내다니. 위치상 다시 방문하여 받아오긴 좀 뭐하다 말하니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다 퇴근 때 들리시면 꼭 전액 환불해 드리겠다며 거듭 사과를 한다.

일단 아쉬운 대로 나머지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한 후 퇴근시간에 그 가게를 방문했다.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연신 죄송하다며 점심때 지불한 음식 값을 전액 환불해드린다며 금전 출납기를 연다. 이미 먹은 음식이 있기에 환불받기엔 내 입장이 좀 꺼림칙하여 그냥 돈 더 드릴 테니 떡볶이 2인분만 포장해 달라 부탁했다. 그러자 이 사장양반 그득그득 2인분에 어묵까지 포장해주며 한사코 돈을 안 받겠다고 손 사례를 친다. 그래도 오픈한지 얼마 안 돼 우왕좌왕 하다 그러신 것 같은데 이 돈 안 받으면 내가 미안하지 않냐고 했더니

“손님이 미안하시면 저흰 더 미안하잖아요. 이번엔 그냥 가시고 그냥 자주 들려주세요. 나중엔 더 맛있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하하”

어쩔 수 없이 난 떡볶이와 어묵을 양손에 가득 들고 퇴근하여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떡볶이로 저녁을 해결했다. 매콤한 떡볶이를 먹어서 그런지 심장까지 훈훈해졌다.

뱀꼬리 : 분명 대형 프랜차이즈 분식업으로 인해 지역 상인들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 집 바로 건너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나 불친절과 강매의 대명사인 또 다른 떡볶이 집은 마인드를 바꿔줘야 하지 않을까. 이제 인정만으로 장사하는 시대는 지나도 한참 지났으니까.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바람 2011-06-13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분식집까지 프렌차이즈니, 일반 분식집은 버티기 어려울거예요
그나저나 떡볶이 땡기기한 범인님 어쩌실래요. 흑
먹고파라

Mephistopheles 2011-06-14 12:28   좋아요 0 | URL
모든 프랜차이즈 분식점이 그리고 모든 일반 분식집이 다 그런건 아니지만. 우리가 일반 분식집에서 아쉬워했던 부분을 프랜차이즈 분식점에선 대부분 충족을 시켜주더군요.(메뉴, 위생, 친절함 기타등등). 아무래도 경쟁사회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겠지요...^^

떡볶이는 직접 만들어 드셔보심이 어떠실지요..^^

개인주의 2011-06-13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프랜차이즈도 주인나름이더군요.
그런데 요즘 떡볶이 빼곤 만만한 음식이 없어지고 있어요.
어흑.

Mephistopheles 2011-06-14 12:29   좋아요 0 | URL
하긴 1000원짜리 김밥도 이젠 1300~1500인 물가에다가 좀 요기가 될만한 바깥 음식도 이젠 6000원이 평균이 되버리더군요. 다 올랐는데 월급만 안오르는 세상이다 보니..^^

토토랑 2011-06-13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프랜차이즈는 혹시 아딸? 일까요?
(내용과 상관없는게 궁금한.. 토토랑 이었습니다.. 왜 그게 궁금한거지..--;;;)

Mephistopheles 2011-06-14 12:29   좋아요 0 | URL
그 프랜차이즈가 아딸이라면 태그에 ㅇㄸ이라고 썼을 껍니다..^^

산사춘 2011-06-1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떡볶이 늠 먹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떡볶이는 조폭 떡볶이랑 은평구 통나무집 떡볶이~
울 동네에도 ㄱㄷ떡볶이 생겼는데, 좀 걸어가야 해서 버텼어요.
하지만 메피님 덕분에 이제 투항해야 겠어요.

Mephistopheles 2011-06-14 12:31   좋아요 0 | URL
떡볶이는 만드는 사람마다 다 조금씩 틀린 것 같아요. 프랜차이즈도 마찬가지고요. 언제 시간되시면 선릉역 1번 출구 나오면 있는 길거리 떡볶이 한 번 드셔보세요. 먹다가 욕나와요 너무 매워서...ㅋㅋ 그래도 전 어렸을 때 동네 시장에서 팔던 밀가루 떡볶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요즘은 그런 맛을 내는 떡볶이 찾기가 힘들어요.

루쉰P 2011-06-14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정만으로 장사를 하는 시대는 한참 지난긴 했어요. ^^ 예전 저희 동네에 정말 맛있게 하는 동네 떡볶이 집이 있었는데 그 집이 없어진지 한 3년 됐거든요. 한 번 맛들인 곳이 없어져서 그런지 그 이후에는 별로 떡볶이를 먹은 기억이 없네요.
근데 태그가 더 웃겨요. '초심 잃지 마시구요.' ㅋㅋ

Mephistopheles 2011-06-15 10:06   좋아요 0 | URL
한번 맛을 들인 음식이 사라진다면 그 맛 찾기 좀 힘들긴 하죠.(아 갑자기 미스터 초밥왕같은 음식이 주제인 만화에서 주인공을 고뇌에 쌓이게 하는 추억의 맛 에피소드 생각이..ㅋㅋ)

초심은 중요해요. 언젠가 망해가는 음식점들 살려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간이 지난 후 어떻게 장사들을 하시나 봤을 때 어떤 음식점은 굉장히 불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장면이 목격되었죠. 불과 몇 달전 먹고 살기 힘들다 눈물 짓던 그 가게 주인과는 저언혀 딴판의 모습을 보이더군요..^^

마늘빵 2011-06-14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님 언급한 떡볶이 이야기와 비슷하게, 집에서 가까운 동네 마트가 있는데 여기가 불친절해요. 그런데, 조금 더 가면 이보다 큰 대형 마트가 있어요. 여긴 프랜차이즈는 아닌데 대형이고, 많이 걸으면 큰 자본의 대형 마트가 또 하나 나와요. 가급적 동네 마트 이용해주고 싶은데, 너무 불친절해서 -가격은 둘째치고- 여기 대신 두번째 큰 마트를 가려고 합니다.

Mephistopheles 2011-06-15 10:08   좋아요 0 | URL
무턱대고 재래시장을 이용하자 영세상가를 이용하자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봐요. 프랜차이즈나 대기업 마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차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데...무턱대고 온정과 인정에만 매달리기엔 요즘 소비자들이 많이 현실적이다보니요..
 
삼국지: 명장 관우 - The Lost Bladesm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삼국지연의 초반부에 원소와 조조의 대립했던 시기. 아직 세를 넓히지 못한 유비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정착을 못했을 때, 유비 휘하 걸출한 영웅이라 칭송을 받는 관운장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앙숙과도 같은 조조의 휘하에 기거했었나 보다. 그의 인품에 반한 조조는 계속해서 회유를 거듭했으나, 이(利보)다 의(義)를 따지는 관운장에게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의형이며 군주인 유비의 거취를 확인함과 더불어 자신의 곁을 떠나려는 관운장을 아쉽게 보내주는 조조와는 달리 그의 휘하 장수들은 생각이 달랐나 보다. 살려서 보내놓으면 뒤탈이 일어날 것이 뻔할 뻔자. 그리하여 관운장이 지나치는 다섯 군데의 관문을 지키는 장수들을 시켜 그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지의 관운장 에피소드 중 유명한 오관 돌파의 이야기이다. 무예가 출중한 그는 결국 막강한 조조의 장수(공수, 맹탄, 한복, 변희, 왕식, 진기)를 차례차례 격파하고 유비의 품에 성공적으로 돌아간다.

역사적 사실성의 진위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어차피 삼국지를 비롯한 모든 고대 이야기나 신화는 어느 정도 부풀려 있는 것이다 보니. 남자들 군대 다녀온 이야기보단 덜하겠지만 어느 정도 속칭 ‘뻥’이 결부된 이야기일 것이다. 사실 삼국지연의 오관문 돌파에 등장하는 조조 휘하 장수들 중에는 가상의 인물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조금은 부풀린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제대로 각색해버리는 무모함을 보여준다. 한 손엔 청룡 언월도를 꼬나 쥐고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춧빛 근엄한 얼굴을 한 기골이 장대한 무인 관우의 모습을 전면으로 내세웠으나 또 다른 인물에 눈이 간다. 



 기란 이라는 여인을 등장시켜 지금까지의 관운장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시도를 선보인다. 여인의 신분 역시 범상치 않다. 식을 올리지 않은 관계지만 자신의 의형이며 군주인 유비의 명목상 첩실이라는 설정. 그리고 그녀와 관운장은 같은 마을 동향 사람으로 관운장이 흠모해 왔던 여인이라는 배경과 이를 이용해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는 조조의 모략까지 .의례 삼국지를 배경으로 삼은 중국 영화는 정형화된 액션 무림 활극일 것이다. 란 예상을 살짝 빗겨나가며 의외의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이렇게 특화된 소소한 설정과 관운장을 열연한 견자단의 액션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이 영화의 주제를 찾게 된다.

오히려 시각적으로 자극적이지 않지만 계속 곱씹게 만들어주는 관운장을 회유하기 위해 보여주는 조조의 행동과 말.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독대는 시대가 다른 현 시기에 적용 시켜도 전혀 무리가 없는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형식과 틀을 벗어나 실리로써 민생과 나라를 다스리려는 조조와 의와 예를 중시하는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관우는 사사건건 의견대립을 일으키며 서로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칭 소인배를 칭하며 대인배의 모습을 행동으로 옮기는 조조의 모습이나 의와 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간적인 나약함까지 감내하는 관우의 모습에선 어쩌면 이상적일지도 모를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를 살짝 엿봤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마지막 관우의 장례를 치르는 조조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여운이 오래간다.

‘그는 양의 탈을 쓴 늑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의 죽음에 유비, 공명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 또한 그 수많은 양 중에 하나일 뿐.’

억지스런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양의 탈을 쓰고 관우 같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늑대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뜩 들어버렸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쉰P 2011-06-10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저도 이 영화를 봤는데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은 못 했어요. 다만 견자단의 무술에 헉! 헉! 대며 액션만 보는 만행을 저질렀으니 말이에요.
제가 삼국지로 관운장의 모습과는 조금 흡사한 듯 한데 견자단의 키가 그리 크지를 못 해서 완벽한 재현은 못 했군이란 평가만 했던 찌질한 감상 뿐이었죠. 흠...

다만 조조 같은 인물이 현대에 재평가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 조금 불만이에요. 관우, 유비라고 하는 이상주의자가 조조라는 현실주의자에게 패배했다는 것이 삼국지에 대한 저의 가장 큰 불만이거든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요. ^^

Mephistopheles 2011-06-11 21:49   좋아요 0 | URL
그런데 말이죠 루쉰님..만약. 유비가 삼국을 통일하고 패권을 차지한 후 자기 생각대로 정치를 펼쳤다면....후세에 그를 칭하길 이상주의자...라고 했을까요. 이상과 현실은 반어법 같은 느낌을 받지만 사실 크게 다르진 않을 껍니다. 영화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조조와 관우가 생각은 틀려도 목적은 같으니까요..^^

루쉰P 2011-06-12 09:58   좋아요 0 | URL
흠..그렇군요. 하기사 조조와 관우의 대화를 집중해서 듣지를 못 했으니 말이죠. 유비가 삼국을 통일한다면 이란 생각은 못 해본 것 같아요. 역시나 권력을 잡으면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아..정말 너무 어려운 인생살이...

moonnight 2011-06-10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운장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에 비해, 견자단은 실망스러워서 -_-; 영화 안 봤어요.
삼국지 등장인물 중에 관운장이 제일 멋진데. (라는 아주 얄팍한 감상;)

Mephistopheles 2011-06-11 17:45   좋아요 0 | URL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골이 장대한 그 관우와는 거리가 있습니다만. 견자단이라는 배우가 단순히 몸만 쓰는 액션배우라는 이미지는 사실 많이 벗어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재미있지만 나름 관우의 인간적인 고뇌에 대한 내면연기를 뛰어나게 했습니다..^^

BRINY 2011-06-11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에 동의요~
조조 역의 배우도 좋았지만('송가황조''붉은 수수밭'등에 출연하신 유명배우시더군요. 그 배우가 구사하는 중국어의 울림이 멋졌습니다), 이 영화 보고 조조와 그 한나라 황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Mephistopheles 2011-06-11 17:47   좋아요 0 | URL
이 양반 꽤 유명하여 칸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적도 있다고 하더군요. 조조라는 인물에 대해 여러가지 평가가 나오지만, 이 영화에서 어쩌면 조조라는 인물의 극단적인 순기능에 대해서 많은 모습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어쩌면 덩 샤오핑이 주창했던 '흑묘백묘'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마립간 2011-06-11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지 못했으나 영화평이 영화를 압도할 것 같아 영화를 보기가 두렵군요. ; 정몽주와 이방원이 연상되기도

Mephistopheles 2011-06-11 17:49   좋아요 0 | URL
제 영화평은 사실 허접이고요. 그리 큰 영향을 주진 못할 것 같습니다..^^ 정몽주와 이방원. 비슷한 분위기에요. 하여가와 단심가. 근데 역사적인 인물을 액면 그대로 평가하긴 좀 뭐하지만 영화 속에서 조조는 꽤 대인배로 근사하게 나옵니다.

산사춘 2011-06-13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벽대전도 글코 요샌 유비보다 조조가 더 입체적이신가 보아요.
멋진 배우들만 맡네요.

Mephistopheles 2011-06-14 12:3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요즘 중국영화의 내용을 슬쩍 삐딱하게 보면 조금은 노골적인 '중화사상'이 짙게 깔려 있기도 해요. 억지일진 모르겠지만 항일적 이미지가 강한 영춘권 계승장 엽문이나 가공의 인물인 정무문의 진진 같은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모습,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절대 개봉할리 없는 중국 공산당 대놓고 선전한 영화 '건당위업' 같은 영화를 보면 그 성격이 좀 짙죠..^^

어저면 유비보다 조조가 그들 입맛에 맞는 인물일지도 모르고요.
 


1. 원래 계획은 이번 연휴 때 어디 서울 인근 펜션을 예약하고 잘 놀다 오려 했으나....계획대로 되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의 특성상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 불가능하진 않으나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에 따라 틀려진다. 요즘 가끔 등장하는 진상 ‘갑’사무실은 이번 연휴에도 어김없이 진상 짓을 펼치셨기에 연휴 3일 동안 이틀 출근했다. 그리하여 2박 3일 어디 놀러갈 일정은 물거품이 돼 버렸고 대신 서울 일주를 하기에 이르렀다.

2. 언제나 그렇지만 남대문 시장은 활기차다. 조그마한 매장 한 귀퉁이에서 한 끼를 해결하는 상인들의 모습도 불편하기 보단 활기차 보인다. 가지가지 진기한 물건을 구경하는 소비자들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끌려 나온 어린 아이들은 울상의 현장이 돼 버린다.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이런저런 물건을 하나하나 구입하며 봉다리 봉다리 들고 다니다 보니 점심식사 시간이 다가온다. 집에서 늦게 아침을 먹고 출발 하였기에 밥 생각은 없었지만, 시장판은 반이 밥판이 되버린다. 특히 자주 가는 지하수입상가 계단 아래 있는 국수집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국수 한 그릇을 먹겠다고 기다리고 있다.

3. 인사동을 가기 위해 거쳤던 서울광장은 꽤 시끄러웠다. 안에서 무얼 하는지는 인파들 때문에 보이지 않았으나,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거칠고 쉰 목소리를 통해 집회의 성격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길가에 줄지어 늘어선 xx고엽제 피해자, xx지역 해병 전우회가 새겨진 봉고차를 보고 오늘이 현충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광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연령대 역시 어떤 내용의 집회인지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4. 서울광장을 거쳐 빙글빙글 돌다 겨우 주차장을 찾아 주차하고 나니 종각에 위치한 종로타워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렸다. 여기 주차비가 겁나 비싼 건 아닌가 걱정이 앞섰으나 지하 2층에 위치한 대형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면 주말이나 공휴일엔 3시간 무료 주차 도장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종로타워를 나와 인사동까지 정겹게 이어진 구불구불 골목길을 통해 인사동에 진입했다.

공휴일 차 없는 인사동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이리저리 구경하며 주니어에겐 떡처럼 늘어난다는 터키식 아이스크림을 하나 앵기고(이때쯤이며 걷는 게 지겹다고 짜증을 내기에 미끼를 하나 던져주면 조용해진다.) 한글과 영어를 섞어 아들 이름으로 도장하나를 맞춰줬다. 왔다 갔다 하며 마님껜 목걸이 하나. 버글버글 인파들로 넘치는 쌈지길을 한 바퀴 돌고 오는 길에 팽이하나를 노점상에서 구입했다. 

이제 조만간 인사동에 자리 잡고 있는 길거리 노점상은 사라진다고 한다. 도로정비와 주변상인들의 피해 등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충안은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 보고 싶다. 오늘도 인사동 입구엔 용역으로 보이는 인파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무언가를 들고 있다. ‘종로구는 절대 무리하고 강압적인 노점상 정리계획을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곤 하지만 현실은 글쎄다.

5. 인사동 끝자락에서 길을 건너면 존재하는 북촌마을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너무 많이 걸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춤추는인생. 2011-06-07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한가운데를여행하셨네요. 그동네는늘북적이고 복잡해서 이제
잘안가져요. 주차문제. 정말개선할게넘많죠 인사동은. 아예될곳두없
구요. 더운데 고생하셨네요 ^^

Mephistopheles 2011-06-08 09:31   좋아요 0 | URL
인사동 자체에 차를 들여 놓지 않는 건 좋다고 봐요. 근데 워낙 좁은 땅덩어리에 차와 인간이 너무 많은 SEOUL인지라...^^

루쉰P 2011-06-07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흠. 저도 일요일 종각의 영풍문고를 돌아다녔는데 혹시나 마주쳤을지 모르네요. 아 로맨틱해~~

서울은 구경하기에는 너무 복잡하죠. 그래도 틈틈히 선물을 공수하시며 가족들을 달래셨다니 너무 대단하세요. 전 여유가 부족한지 구경은 커녕 제 볼일만 빠르게 마치고 인파들 속으로 사라지죠. 마치 인기인 것 처럼요. 그러나 그 누구도 저를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

Mephistopheles 2011-06-08 09:32   좋아요 0 | URL
어쩌죠 루쉰님 그 로맨틱한 분위기를 확 깨버리자면. 전 월요일날..현충일이죠..^^ 그때 그곳을 지나쳤으니까..루쉰님과 전 마주칠 일은 아마 24시간 후에나 가능했을 껍니다. 24시간이 참 짧은 시간 같은데도 그 시간에 잭 바우어가 테러리스트 수백명 때려잡는 시간이라면 꽤 긴 시간이기도 하고요..^^

루쉰P 2011-06-08 11:46   좋아요 0 | URL
푸악~~웃다가 토 할뻔했어요. ㅋ

saint236 2011-06-0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상 갑에 의해 이틀동안 노동을 강요당한 을은 평안하신지요?

Mephistopheles 2011-06-08 09:33   좋아요 0 | URL
평안까지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줄리아의 눈 - Julia's Ey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난 눈이 많이 나쁘다. 그것이 선천적이던 후천적이던 이 눈으로 인해 많은 불편을 겪어오고 있다. 학창시절 구기운동을 하다 공을 맞고 박살낸 안경도 꽤 많고 이런저런 물리적 충격으로 소실한 안경 또한 제법 많다. 딱 하나 눈이 나빠 유리하게 작용했던 건. 병무청에 가서 신검 받을 때 군의관의 검사 후 ‘당신 눈은 장식이구만. 제 2 국민역!’ 이 말을 들었을 때 빼곤 시력 때문에 좋았던 기억은 거의 전무하다. 이러니 안경을 벗으면 사물이 뿌옇게 잔상을 남기며 투시된다. 안경을 벗고 마주치는 선남선녀들이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로 보이는 이유는 다 내 시력 때문이다.

그래도 난 그나마 뿌옇게 라도 사물을 볼 수 있지만, 깜깜하게 어떤 빛도 스며들지 않는 시각적 이미지를 가진다면 어떨까.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갑자기 일어난 정전에도 주변 사물의 위치를 파악 못해 그 잠시 동안 우왕좌왕 허둥대는 일반인들에게 시력을 잃은 사람들의 맘을 알 순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이런 공포와 소실에 대해 직관적 표현방법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선천적 시력장애가 아닌 갑작스럽게 시력이 서서히 잃어가고 결국엔 깜깜한 어둠 속에 가라앉아 버리는 시간의 순차적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서 살인마 코드와 스릴러를 첨가하고 길예르모 델 토로만의 묵직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깔아주면 제법 완성도를 보여주는 영화가 만들어진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 또한 수많은 소실을 보여준다. 시력을 잃어가는 줄리아를 중심으로 믿음을 점차 잃어가던 그의 남편 이삭,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잃은 주변 이웃들, 정상적인 애정방식을 소실한 살인마 이반까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무언가를 잃어가는 중이거나 이미 잃어버린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부조화가 인물들 간의 충돌로 진행되어간다.

표현방식 자체만으론 만족스런 결과 치를 내놓았으나 스릴러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범인의 존재는 중반 이후 밋밋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아쉬움을 남겨준다. 그리고 복잡한 인간사에서 거울 속에 비춰지는 눈동자 속 광활한 우주로 끝을 맺는 엔딩은 좀 뜬금없어 보인다.  



모든 면에서 오드리 헵번의 ‘어두워질 때까지(1967년)’를 넘어서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겨준다. 화려한 토핑은 만족스러웠으나 도우가 그에 못 미칠 땐 제 아무리 이탈리아 햇살아래서 먹는 피자일지라도 완벽한 맛을 선사하진 못할 것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쉰P 2011-06-02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 영화는 다락방님이 최고의 몸매를 지닌 여 주인공이 극 칭찬한 영화이군요. 그나저나 안경을 벗으시면 모두 브래드 피트로 보이신다고 하시니 제가 한 번 안경을 벗으셨을 때 등장하고 싶군요. 완전 의욕 댕껴~~

도우가 문제군요. ㅋ

다락방 2011-06-02 17:43   좋아요 0 | URL
기억력 좋은 루쉰님. 네, 그 영화가 맞습니다. ㅎㅎ

Mephistopheles 2011-06-03 10:56   좋아요 0 | URL
벨렐 루에다..라고 스페인 배우더군요..연식이..1965년...우리나이로 40중반....이신데...몸매 정말 출중하십니다..^^

근데 제가 여간해선 안경을 안벗는다는...ㅋㅋㅋ
 


‘저보다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을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남들에게는 지나간 1승일지도  모르겠지만 부모님과 동생들과 저에겐 감동을 주는 1승이라고 생각합니다.’

격한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낮은 저음에 침착한 목소리를 들려줬던 두산 베어스의 백넘버 59 서동환 투수의 인터뷰 내용 중 한 부분이다. 



2005년 기대주로 입단하였으나 제구력 난조와 두 차례의 수술로 어쩌면 그는 선수생활은 접었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런 그가 어제 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인천 문학구장에서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와이번스(1위팀)를 맞아 5이닝 3안타 1실점 3삼진의 호투를 펼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데뷔 후 첫 선발승이다.

그가 선발투수로 등장한 이유도 드라마틱하다. 팀 내 2선발로 올해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에이스 김선우의 컨디션 난조로 땜방성이 강한 등장이었고 많은 기대를 받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상황. 더불어 경기 중 쏟아 붓는 빗줄기로 강우취소(야구는 5회 말까지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후문제로 경기가 취소되면 노게임 선언)의 갈림길에도 서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그가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귀중한 1승을 추가했다.

잔인한 5월이라고 해야 할까. 전력과 평가에서 우승후보 1순위인 베어스는 5월 승부에서 죽을 쑤며 6위로 내려앉아 있다. 타선은 집단최면이라도 걸렸는지 물 방망이로 전락했고 선발 투수진은 1,2선발 말고는 계속 두들겨 맞기 일쑤였다. 2위였던 4월 성적에서 한 달 만에 초고속으로 내리꽂는 포크볼마냥 팀 성적은 바닥을 처 버렸다. (임태훈 선수의 스캔들 이야기는 논외로 하고 싶다.) 이런 처참한 분위기에서 서동환이라는 선수는 어쩌면 선수 개인에게나 팀에게 있어서 희망을 안겨줬다.

고작 1승. 이제 겨우 한게임 선발등판. 어쩌면 그는 다음 경기에서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 패전투수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기 후 그가 보여줬던 인터뷰 내용에선 그가 얼마나 단단하고 깊은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어 보였다.

수술 후 재활기간동안 야구를 밖에서 많이 보다 보니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수많은 자기 개발서 보다 어제 멋진 경기와 더불어 감동스런 인터뷰를 남겨 준 그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서동환 선수의 선발승을 축하하며 앞으로 아프지 말고 오래 오래 선수생활을 이어가길 기원한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1-06-01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1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1-06-01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 경기를 보지는 못했지만 아침신문에서 기사를 읽었어요. 와, 감동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메피님이 다시 한 번 짚어주시네요. 역시, 감동입니다. ^^

Mephistopheles 2011-06-02 00:40   좋아요 0 | URL
전 사무실에서 야근하면서 가슴 조리며 경기 봤거든요. 경기 끝나고 그날의 MVP 인터뷰를 하는데...인터뷰를 처음하는 선수치고 너무 말을 조리있고 침착하게 잘하는 겁니다. 거기다 목소리도 참 좋고요. 몸으로 모든 걸 보여주는 직업군이지만 저렇게 조리있게 말하는 거 보면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더군요.

2011-06-01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2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11-06-01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감동이었죠..^^ 앞으로 더 진가를 발휘하는 투수가 되길~

Mephistopheles 2011-06-02 00:45   좋아요 0 | URL
비가 쏟아져 잠시 경기 중단 되었을 때 덕아웃에서 기도하며 제발 경기가 속행되길 바라는 모습이 잡히더군요. 그리고 경기를 다시 진행할 때 정말 기쁜 표정으로 오케이 오케이 하면서 뛰어나오는 모습까지.. 암튼 성적에 기복이 있겠지만 부상 없이 오래오래 선수생활 했으면 좋겠습니다.

비연 2011-06-0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태그에 완전, 초완전 동감임다! 꽝꽝꽝!!!

Mephistopheles 2011-06-02 00:47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하는 팀이라 직접 말하긴 뭐하지만. 참 끈적끈적하고 뚝심있죠. 그런 스타일이 좋습니다. 팀마다 다 각기 분위기가 존재하는데 선수들 보면 베어스 분위기는 꽤 좋은 것 같습니다. 그것도 적응 못하면 말짱 황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