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2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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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먼저 접한 나로서는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드라마 쪽이 훨씬 더 재밌었다. 그런데 온전히 책으로만 만난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소설의 전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보다 훨씬 재밌었다. 이야기의 무대도 더 넓어졌고,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도 보다 생기있었다. 로맨스는 줄어들었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주인공 윤희가 사형들의 도움 없이도 홀로 우뚝 서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불필요한 게 아니고, 윤희도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된 인물이었으니 그것이 주인공의 자질을 증명하는 수단은 아닐 테지만, 성균관 시절보다 더 성장한 각신으로서의 모습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빼어난 미모를 감춘 남장 여인 윤희가 성균관 시절에는 '대물'이라는 별호를 얻더니 규장각 각신이 되어서는 심지어 '변강쇠'라는 칭호마저 얻게 되었다. 여난이랄까. 어디를 가도 그녀에게 반하여 정신줄 놓는 여인네들이 있으니 운신이 보통 곤란한 게 아니다. 심지어 이번에는 임금의 여인이랄 수 있는 궁녀라니!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서 허무하게 퇴장했던 초선이 다행히 보기 좋게 부활했고 망가진 캐릭터도 잘 마무리하며 퇴장하였다. 훗날엔 진정 윤희와 같은 여자로서 우정을 나눌 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구용하와 임금 정조였다. 구용하가 맨날 비실비실 웃고 돈자랑만 해대고 여자만 밝히던 그 속성을 버린 건 아니지만, 그걸 오히려 장점으로 살려서 제 능력을 펼쳐 보인 게 흐뭇했다. 암행어사 이선준은 너무 뻔한 패이고, 암행어사 구용하는 허를 찔리는 패이니 어찌 즐겁지 않을까. 게다가 차 피하려다가 포를 만난 격을 연출한 임금의 아뿔싸! 표정을 상상하는 것도 몹시 즐거운 일이었다. 임금 앞에서도 부러 '색향'만 찾아 지나갔다는 얘기를 당당히 하는 그의 배포, 빠르게 돌아가는 잔머리는 그의 둔한 몸동작의 단점을 충분히 만회시켰다. 또 웃고 정색할 때의 표정 가름도 확실해서 의외의 카리스마도 보여주었다. 목숨 따위가 아닌 명예를 거둬간다는 얘기가 시대적 배경과 상황에 맞물려 설득력 있었다. 다만 그가 꽁꽁 감춰둔 아내의 이야기는 이번에도 포장이 벗겨지지 않아 자못 궁금하기만 하다.  

1권에서 임금은 윤희에게 어느 정도의 적개심을 보였더랬다. 이해가 간다. 굳이 그의 과거와 상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당시 조선에서 거둘 수 없는 여인에게서 보인 지나칠 정도의 재능과 장점 등은 오히려 계륵만도 못했을 것이다. 버리자니 아깝고 취할 수는 없었던 딜레마. 그렇지만 임금은 서두르지 않았다. 딱 한 번 감정이 폭발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 보여준 인간미가 오히려 그의 슬픔을 더 잘 드러내고 말았다. 성격 팍팍하고, 너무 똑똑하고 일을 많이 해서 신하를 더 피곤하게 만드는 일중독 임금이지만 더 나은 길을 모색하고자 끊임없이 애쓰는 군주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청벽서에게 한 방 먹여준 것도 시원했고 말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 책의 개그는 구용하와 임금이 거의 독차지한 듯 싶다. 문득, 그런 상상을 해봤다. 사극에서 임금의 말투가 "됐고!"라고 자르는 요즘 유행하는 말투로 점잖지 못하게 나간다면? 하핫, 진지하고 심각한 신하들의 사색이 된 얼굴 표정이 그려져서 즐겁다.  

재신의 암행어사 활동과 선준의 뒷수습 내용은 몇마디 문장으로만 정리하고 지나갔다. 용하 편에서 이야기를 길게 썼기 때문에 적당하게 보인다. 사실, 선준같은 모범생의 뒷수습은 굳이 글로 보지 않아도 될만큼의 궁금증만 주니까 그 정도로 됐다. 지나치게 FM인 그이다 보니, 아비 앞에서 드러누웠다는 말이 도리어 큰 웃음을 준다. 그래, 가끔은 그렇게 망가져야지! 

선준의 아비 정무와 재신의 아비 근수의 모습 등도 보기 좋았다. 바늘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은 꼬장꼬장한 양반들이지만 공과 사를 구별하고 있었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집도 버려주었으니...  

반다운도 한 건 했다. 키재기 편은 다음 이야기를 위한 하나의 포석일 테지만 여기서 보여준 앙큼한 행동이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청나라를 다녀오고 훌쩍 몇 년이 지나있으면 다운의 시문도 훨씬 훌륭해져 있을 것이고, 키도 보란 듯이 자라 있을 테지. 서방님의 숨이라도 가져가보고 싶어한 다운의 숨놀이가 이 책에서 가장 로맨틱한 부분이었다. 지금은 외사랑이지만 훗날엔 재신이 그 아비가 어미에게 그런 것처럼 다운을 많이 아껴줄 거란 기대를 가져본다.  

의외로 입만 열면 아부를 줄줄 늘어놓는 윤희. 가난한 집에서 가장 노릇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그녀의 근성을 비굴하지 않게 잘 보여주었다. 그런데 오른손 명필이 왼손 명필도 가능한 것일까? 뭐, 가능하다고 치자. 실제로 양손 모두 글씨 잘 쓰는 사람들이 있으니... 대단한 능력이다!  

그동안 고생한 덕구 아범 대신 다음 이야기에선 '덕구'가 등장할 터인데 용하가 왜 그를 마다하고 싶어하는지 몹시 궁금하다. 책이 나오면 그 모든 궁금증이 다 풀릴 테지. 윤희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진짜 윤식도 뭔가 제몫을 해내었으면 좋겠고, 윤희가 남자 옷을 입지 않고도 제 모습 그대로 실력을 보여도 되는 날들이 온다면 좋겠다. 비록 거기가 청나라라는, 조선을 벗어나 있다는 한계는 있을지라도 그 시절에 그만하기가 어디인가. 다음 이야기를 즐겁게 기다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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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방 2011-03-08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신과 다운...그들이 사랑하며 사는 얘기도 듣고 싶어요.ㅋ
처음엔 다운이 재신의 무뚝뚝함 때문에 마음고생 하지않을까 걱정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다운의 사랑스러움 때문에 재신이 녹아없어질 것 같더라구요..ㅎㅎ

아래에서 일곱번째 줄 후반부의 한 낱말.. 오타인거죠..?? ㅎㅎㅎㅎ

마노아 2011-03-08 20:14   좋아요 0 | URL
좀 과장된 귀여움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재신이랑 붙여놓으니 잘 어울렸어요.^^
아아, 오타는 아주 절묘한 부분에서 났군요. 냉큼 고쳤습니다. 고마워요.^^ㅎㅎㅎ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1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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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반궁의 잘금 4인방이 나란히 과거에 급제했다. 동생의 이름을 빌려 활동하던 윤희로서는 외관직을 원했지만 임금은 그들 4인을 모두 규장각에 붙들어두고 싶었다. 하지만 신하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규장각의 존재 자체도 껄끄러워 하는 그들이기에 당색을 초월한 4인을 그것도 한꺼번에 넷 씩이나 들이는 것을 찬성할 리가 없다.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을 아는 임금이 선수를 친다. 그들이 통과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신참례를 열라는 것이다. 말인즉슨, 무시무시한 신참례를 통과한다면 두말 않고 받아들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하나를 내치려면 넷 모두를 다 버리라고 하니 이선준 같은 인물을 눈독 들이는 관청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4인 모두를 접수해야 했다.  

신참례 얘기가 가장 길게 나왔기에 먼저 언급하긴 했지만 다섯 꼭지의 소제목 중 네번째 주제였다. 시작은 윤희와 이선준의 혼례일부터 시작한다. 드라마에서는 무려 이선준의 아비가 직접 윤희를 불러 아들을 부탁하는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언감생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준은 아버지에게 윤희가 곧 윤식임을 알리지 못했고, 신혼 초야는 용하와 재신의 깜짝 방문으로 치르지 못했다. 게다가 꼭꼭 숨겨두었던 동생 윤식의 얼굴까지 노출되었으니 윤희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들이 자신이 이미 여자라는 것을 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이야기에서는 '김윤식' 이름 세 글자의 주인공이면서도 지나가는 행인 정도의 비중만 보였던 윤식이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에서는 제법 대사가 늘었다. 건강도 많이 좋아져서 누이의 알바 행렬에 동참도 하고 로맨스도 싹틀 모양이다. 반갑다.  

한편 재신은 도둑장가를 간다. 본의 아니게 아버지 때문에 후다닥 치른 혼사였는데 그 신부라는 게 열네 살 어린아이였다. 반다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새신부는 열살 남짓으로 보이는 인상으로 너무 작아 '반토막'으로 불린다. 가슴 속엔 윤희를 품은 재신이 장가를 갔으니 그 속이 오죽 끓었을까. 장가간 다음 날 처음 마주친 반다운을 일하는 어린 종으로 본 그가 다운에게 보여준 선심은 참 예뻤다. 거친 야생마에 입도 저렴하기 그지 없지만 그 속의 사내 재신은 참 따스하다. 그와 판박이인 아버지는 재미날 게 없는데 형님을 잃은 충격으로 정신줄을 어느 정도 놓은 재신의 어머니 캐릭터는 참 재밌었다. 느릿한 말투에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언어기술도 갖고 있다. 너무 어린 신부를 데려다 놓은 것에 뒤늦게 재신과 아버지가 반발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열......네 살이었구나. 그래, 열네 살이었어. 어여쁠 때지. 어린애가 아니야. 나도 열네 살에 시집왔는 걸."
"대신 그때 아버지는 열세 살이었잖아요. 전 스물네 살이라고요!"
"음......, 스물다섯 살 처녀는 구할 수 없단다, 얘야."                             -195쪽

으하하하핫! 어머니 완전 멋지시다. 재신이 당할 수가 없다.

새로운 여인도 등장했다. 윤희의 글쓰는 속도가 엄청 빠르다는 얘기는 앞서서도 나왔는데 그 필체도 아름답다는 게 자주 강조된다. 그리하여 글씨에 유독 집착하는 남인 황판교의 눈에 뜨였다. 황판교의 여식 황서영은 제법 당당하고 우아한 양반댁 규수로 보인다. 자신의 궁핍한 처지를 내세워 중매를 거절하는 윤희에게 그녀의 답이 현명하다. 

"사람이 궁핍한 것보다는 처지가 궁핍한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253쪽 

임금의 모험도 즐거웠다. 신참례 때 궐을 내질러 가야 하는 4인방을 위해 직접 버선발로 길안내도 하고 담을 넘어야 하는 재신에게 어깨도 빌려준다. 그러나 그런 그도 윤희를 보는 속내가 곱지 않다. 여인을 믿지 못하는 본심이 안타깝지만, 그것이 주인공 윤희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깝다. 결국엔 왕조차도 그녀의 진가를 인정하고 말리라는 것을 의심치는 않지만... 

4인방의 캐릭터들도 여전히 뚜렷했다. 똥냄새 나는 거름더미 곁에서 백성을 생각하며 묵묵히 밥을 먹자고 얘기하는 선준의 마음가짐도 좋고, 아무리 긴박한 상황이라도 제가 대신 위험해지겠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 구용하의 캐릭터도 한결같아서 좋다. 약삭빠른 인물이지만 그 빠르게 돌아가는 머리를 제때에 활용할 줄 아는 것도 반갑다. 모두가 자신의 성격을 잘 살려서 매력을 두배로 발산시키고 있다.  

직접적으로 내세우진 않았지만 은연중 문체반정과 호락논쟁까지도 등장했다. 작가의 이야기 얽고 엮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시대 배경이지만 주인공들로 인해 그 시대가 더 빛나 보인다.  

자, 다음 편에서는 홍벽서를 까무러치게 만든 청벽서의 활약을 좀 더 지켜봐야겠다. 어떤 인물일지 몹시 궁금하다. 소문으로는 청나라 사신 이야기를 쓰고 있다던데 정말인지 모르겠다. 이번 이야기에서 청 사신이 4인방에게 몹시 호감을 가져버렸으니 청나라 사신으로 간다고 해도 이야기에 전혀 무리가 없겠다. 이래저래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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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쟁이 2011-03-0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고스란히 꽃혀 있으나, 잘 안읽혀요.. 한번 읽어볼까요? ㅎㅎㅎ

마노아 2011-03-08 20:14   좋아요 0 | URL
저는 두번 읽을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읽는 동안은 무척 즐거웠어요.
특히 2권 읽을 때는 수영장에서도 내내 생각이 나서 빨리 읽고 싶어 혼났답니다.^^
 
일제 강점기 - 식민 통치기의 한민족 수난과 저항의 기억 눈빛아카이브 한국근현대사 2
박도 엮음 / 눈빛 / 2010년 8월
품절


삼일절날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글밥이 많아서 덮기까지 오래 걸렸다. 주로 사진이 많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기록에도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전작 '지울 수 없는 이미지'와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제목처럼 일제 강점기를 다루고 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의 시간을 정치,행정/사회,경제/문화,생활로 나누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주요 사건들을 날짜별로 기록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해당 시기에 찍힌 여러 사진들을 실었다.

1915년의 사진이다. 조선총독부는 한일합방 5주년을 기념하고자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51일간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를 열었다. 이 행사를 위해 근정전과 교태전, 경회루 등이 진열장으로 변신했다. 그러고도 공간이 부족하자 나머지 건물도 헐어 4만여 점의 출품작을 진열했다. 철거한 경복궁 구조물은 민간에게 불하되어 별장, 요정, 일본 불교사원, 일본인 부호의 저택 자재로 팔려나갔다. 조선물산공진회는 고무신바람, 호롱불바람, 눈깔사탕바람, 화투바람 등을 불러 일으켰다.

화려한 볼거리들은 식민 통치의 성과를 과시하고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선전한 대표적인 제국주의 이벤트였다. 이런 식의 관제 이벤트는 100년이 지나고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비교하기에는 약하지만 요즘 서울 시내 곳곳에서 보여지는 서울시 표창장을 볼 때마다 아주 불편하다. 어휴...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주변에 저만한 위용을 자랑하는 건물이 없으니 더 위압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경복궁의 일부를 헐어내고 1916년 착공하여 꼬박 10년 뒤인 1926년 완공되었다. 해방 후 한국 정부의 청사(중앙청)로 사용되다가 나중에 국립중앙박물관 건물로 사용되었다. 1995년 김영삼 정부 때 철거되었고 청사 윗부분 돔만이 현재 천안 독립기념관에 보존되어 있다.

어린이의 풍차바지 사진이다. 1920년대 서울의 명소 엽서인데 한 선비와 아이들이 성균관 명륜당 뜰에서 놀고 있는 장면이다.
풍차바지는 아기가 스스로 용변을 가릴 수 있을 때까지 남녀 구분 없이 입히던 유아복인데 남자의 바지와 비슷하다 뒤가 터진 것이 특징이다.

영친왕 이은과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결혼사진이다. 1920년 4월 28일
이방자 여사는 일본 황족으로 일본 이름은 나시모토 노미야다.
혼인 이듬해 아들 이진을 얻었으나 다음 해 고국을 방문했을 때 병으로 잃게 되었다.

이 시기 사진들을 보면 오늘날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형이 얼마나 서구화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느낀다. 영친왕도 그렇지만 사진 속 인물들이 대개 키는 작고 얼굴은 지나치게 크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그래도 그때는 모두가 그런 편이었으니 그걸로 스트레스 받는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활 쏘는 부녀자들의 모습이다.
멋있다. 포스가 느껴진다.
평범한 집안은 아닐 것 같다.
1920년대의 모습.

이 시기 라디오 한 대 값은 쌀 열 가마니보다 더 비쌌다고 한다. 라디오 방송은 1926년에 시작되었는데 개국 무렵의 라디오 수신기 등록 대수는 1,440대였고 이중 일본인이 1,165대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무렵 두산그룹 창업자 박승직이 만든 박가분은 국내 최초 관허 화장품으로 하루에 무려 5만 갑이 팔려나갈 정도로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사진 속 부녀자들도 박가분을 사용했을 것 같다.

1926년에 아사히카와 신문에 게재된 사진이다.
홋카이도 나카가와의 한국인 토목노동자들인데 온몸의 상처가 끔찍하다.
도망가거나 반항을 하면 담금질을 당했다.
혼이 나간 듯한 얼굴들이다.

1930년대 말에는 축구와 권투 열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합법적으로 일본인을 두들켜 팰 수 있었으니 말이다.

반도의 무희 최승희
1926년 숙명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에게 배웠다.
세계 10대 무용가의 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을 정도였으니 그녀가 누린 영광은 어마어마했으리라.
하지만 친일 행적으로 그 이름은 빛을 바래고 말았다.

노출이 심한 사진보다 고구려의 사냥꾼 모습으로 분한 사진이 더 눈길을 사로잡는다. 네번째 사진은 콜롬비아 축음기 광고모델 사진이다.

1930년대에 여성 교육가 박인덕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남편에게 위자료를 주고 이혼하여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중간중간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인물들의 녹취록이 실려 있고 뒤쪽으로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 징용된 할아버지들의 증언도 실려 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 대부분이다. 처참한 기억을 갖고 병든 몸으로 일생을 사신 분들이 한 마디 사과를 받지 못하고 한을 갖고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 더 마음이 미어진다. 강제 이주 당해서 고향을 등지고 가족과 생이별 하신 분들도 여전히 동토의 당에서 한을 품고 계시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로 가고 있는가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가야 할 길이 참 멀고 할 일이 참으로 많은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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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05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읽고 싶네요.
너무 흥미로와요.

저는여, 친일 행적에 대해서 읽을 때마다, 만일 저 시대에 태어난 천재라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 라는
물음 앞에서 굉장히 답답해져버려요. 아마... 일본에 항복하지 않는 이라면, 자신의 재능을 결국 묻어버려야했겠죠.
슬퍼요. 이 문제는 좀 더 공부를 하고, 생각해봐야할거 같아요.
마노아님은 국사를 저보다 잘 아시니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무척 혼란스럽거든요.
꼭 읽어봐야겠네요... 이 책.

마노아 2011-03-05 15:51   좋아요 0 | URL
영화 '타인의 삶'이 생각나요. 예술을 버릴 수가 없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밀고했다가 죄책감에 자살해 버린 그 여자가요.
저 시대에 태어나 살았다면 나는 이랬을 거다란 장담은 못하겠어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친일을 한 인물들을 옹호할 수 없는 건 목숨 걸고 싸워 지켜낸 사람들도 분명 있기 때문이지요. 사진이 많고 두꺼운 책이라 비싸서 저는 도서관을 이용했어요. 근현대사 관련 책들을 읽을 때는 늘 갑갑함에 몸서리쳐져요. 어휴...

순오기 2011-03-06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제강점기를 아픔없이 보기는 어렵겠죠~~~~~~ ㅠㅠ

마노아 2011-03-06 15:03   좋아요 0 | URL
무감각하게 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야겠죠? ㅜ.ㅜ

로드무비 2011-03-09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륜당 뜰의 저 나무는 낯이 익은데요.
정기용 건축가가 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본 기억이...

마노아님 결혼사진인가 싶어 달려왔습니다.
흥미로운 페이퍼들이 보입니다.^^

마노아 2011-03-09 00:45   좋아요 0 | URL
와, 유명한 사진인가봐요. 저는 처음 보았어요.^^
아아, 그나저나 사진 속 신혜양같은 새색시가 저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정말 푸릇푸릇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옆에는 무려 이승환! (>_<)
 
훈데르트바서 2010 한국전시 (대도록)
마로니에북스 편집부 엮음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훈데르트바서 전시회를 다녀왔다. 예상보다 많은 작품이 와 있었고, 건축모형도 많이 있어서 뜻밖이었다. 혼자서 한 바퀴를 돌고, 도슨트를 들으면서 다시 한 바퀴를 돌고,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것 몇 점만 더 보고서 나왔다. 다리가 아팠지만 뿌듯해서 견딜만 했고 미리 물품보관함에 가방 맡기고 들어가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리뿐 아니라 어깨마저 아팠으면 더 고되었을 거다.  

훈데르트바서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와 함께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다. 본명은 스토바사. 스토바사의 뜻은 저수지처럼 고인 물. 스무살이 되었을 때 그는 이름을 훈데르트바서로 바꾼다. 러시아어와 슬로바니아어로 스토가 100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성을 보다 시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32세에는 일본에서 한 해 동안 체류하는데 그때 자신의 이름을 프리데라이히로 바꾼다. 프리데는 '평화'이고 라이히는 '왕국'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가 자신의 배에 붙인 '레겐탁(비 오는 날)'을 자신의 이름으로 사용한다. 비오는 날을 유독 사랑했던,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을 꿈꾼 친자연인 예술가가 등장한 것이다.  

 

 왼쪽 그림은 훈데르트바서가 16세에 그린 '나무집과 전나무가 있는 동네길'이다. 그의 이름에 떠오르는 창문이 많고 다채로운 원색의 그림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보이는 그대로 표현된 집이 훈데르트바서 특유의 개성을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하긴, 이때는 무척 어렸으니까 본인의 스타일은 좀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오른쪽 그림은 1951년에 그린 주교좌 대성당이다. 모로코 현지의 붉은 토양으로 직접 물감을 만들어서 그렸는데(훈데르트바서는 물감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곤 했다) 이때 본 녹색 지붕이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의 건축물의 옥상은 항상 푸른 나무와 잔디 등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이때 마주친 시각적 인상이 그에게 지붕 위 숲의 아이디어를 주었던 것이다.

 

 초록빛 들판 파란호수 금빛도로/은빛의 비가 내리는 눈 쌓인 집/무한함의 클로즈업/블루 블루스 

훈데르트바서는 '나선'에 집착했다. 그에게 나선은 태양이고 집은 달이었다. 이젤을 사용하지 않던 훈데르트바서는 탁자에 캔버스를 수평으로 놓고 중앙을 중심으로 돌리며 작업을 했다. 그야말로 나선의 생활화랄까. 때로 이런 나선 그림은 어디가 위인지 구분하기 힘들게 만드는데 정형을 파괴하고 규격을 싫어하는 그의 성미를 제대로 반영하곤 했다. 또 이런 수평적 그리기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양새의 그림을 많이 낳았다. 정면만 보고 살던 사람으로서 신선한 발상이다.

 

노란집들-함께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아프다  

가장 훈데르트바서다운 그림이라고 하겠다. 보색 대비가 찬란하니 아름답건만 가장 슬플 때에 그린 그림이라고 해서 놀라웠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건축과 사랑을 섞으면 노란 탕파 창문이 달린 종이로 만든 집이 나온다. 모든 창문에는 파란 눈물이 있다. 작품 속 빨간 탑은 빈 서부역에 위치해 있으며 그녀가 살았던 곳에서 가깝다. 나의 점성술사 플라튼스타이너는 내가 슬픈 사랑을 하고 있을 때 특히 더욱 많은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이 지나가면 나는 다시는 그때의 감정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피부  

훈데르트바서는 의복을 제2의 피부라고 했고 집을 제3의 피부라고 명명했다. 직선을 싫어했던 그의 건물과 그림들은 곡선과 완만한 선을 이루고 있고 조금은 삐뚤삐뚤하지만 자연스러운 그 모습이 친근감을 더해준다. 그의 스케치를 닮은, 그의 이름을 내세운 아파트를 보자.  



그림 속의 그 집이 실제로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한데, 직접 들어가서 살면 까무러치는 것은 아닐까. 부자는 입주할 수 없다는 저 아파트, 직접 가서 보고 싶다. 관광객 때문에 입주자들은 몸살을 앓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집을 나가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선망 어린 시선의 귀찮음도 뿌듯함으로 극복할 수 있을 듯. 

창문에 대한 권리. 모든 사람은 자신의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어 자신의 세 번째 피부를 재창조하고 개조할 권리가 있다. 팔이 닿는 만큼 자기 집의 창문과 외벽을 개조해 갇혀 있는 이웃들로부터 자신을 구별시켜 멀리서도 모든 사람들이 '저 곳에는 자유로운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작은길/30일 간의 팩스 페인팅 

오른쪽 그림은 훈데르트바서가 뉴질랜드에 있을 때 30일 동안 매일 타이프 용지에 그린 펜화 한 장씩을 친구에게 팩스로 보냈던 그림이다. 가로 6장에 세로 5장씩 정렬된 이 그림은 다른 종이에 옮겨져서 수채, 아크릴, 템페라, 오일, 래커, 금속 등을 이용하여 재탄생되었다. 처음엔 팩스로 보낸 그림은 컬러가 아닐 텐데 어떻게 완성했나 싶었는데 2차 작업이 진행된 것이었다.(당연한 것을 고민했구나...) 다음 전개될 부분을 계획하지 않고 손 가는 대로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작업이건만 재밌는 그림이 탄생했다. 마치 어린이가 그린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바로 그 점이 훈테드트바서가 집중한 부분이었다. 어린이들이 꿈꾸는 것들을 현실로 승화시키는 작업이 그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스무살 시절의 자화상을 보면 꽤 훈남이었건만, 세월은 그를 대머리상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윗머리의 부족한 부분은 수염에 대한 집착으로 변모했다. ^^ 

그의 양말이 재밌어서 찍어봤다. 양말도 직접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아래 그림은 알파벳조각난 일몰이다. 

전시장에는 그의 그림과 판화와 건축 모형, 시계 등등 다양한 것들이 있었는데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실크 스크린' 작품들이었다. 멀리서 시선을 맞추며 가까이 다가가면 각도에 따라 반짝이는 부분이 변한다. '무지개 물고기'에 등장하는 그런 홀로그램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종이책의 안타까운 부분은 그 영롱한 빛을 재현시켜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시장 입구에는 이 반짝거림을 재현해낸 엽서를 팔고 있었는데 무려 5천원이었다. 집에 대도록이 있었던 나는 미련없이 나와버렸는데 도록을 보고 나니 엽서 생각이 간절하다. 번번이 전시회 갈 때마다 나중에 사지 뭐~하고 돌아나와서 후회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닌데 이번에도 또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전화로 문의해 보니 거기서밖에는 살 수 없고 전시기간이 끝나면 팔지 않는단다. 아씨, 그 먼 데까지 또 가야 하는가....ㅜ.ㅜ 

참, 알파벳은 지붕에 있다. 모두 찾았겠지만... 한글 지붕이어도 아주 멋질 것 같다.

 

 성 바바라 성당 정면외부에서 바라본 나선형 창문, 그리고 내부에서 바라본 나선형 창문이다.  

전시장에는 모형만 와 있는데 모형도 오스트리아에서 직접 옷 것이고, 모형을 감싸고 있는 유리 프레임도 '둥근' 형태다. 직선을 거부하는 훈데르트바서답다. 자신의 그림을 자식처럼 아꼈던 그는 그림이 팔리고 나서도 구입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주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집이 건조하면 가습기도 꼭 틀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는 후문! 

전시장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그림들이 벽에 착! 달라붙어 있지 않고 약간 거리를 두고 걸려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훈데르트바서의 주장이 적용된 경우라고 한다.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그림들을 대했던 것이다. 나 좀 봐주세요!라고 얼굴을 들이미는 느낌을 준다. 꼼꼼한 사람 같으니!

 

건축치료사로도 불렸던 그는 새로 짓는 건물 말고도 리모델링을 통해서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1892년에 세워진 소넷 가구 공장이 100여 년 뒤엔 이런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던 그는 재활용품을 활용하여 내부를 장삭하였고, 이런 건설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의 가족을 초대해서 그들의 가장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자부심을 심어주었다고 한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놀이공원으로 착각할 모양새다. 최신식 배기가스 정화 기술을 가졌을 뿐아니라 무려 6만 가구에 난방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쓰레기를 줄일 수는 있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중요한 참고가 될 터이다. 우리 동네는 절대 안 돼!라고 손만 흔들 게 아니라 이런 전환이 우리의 삶을 더 멋지게 만들어 줄 것이다.

 

 블루마우 온천 마을-롤링 힐 

그가 지은 건축물들의 옥상은 늘 숲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멀리서 바라본 전경은 저것이 온천 마을과 호텔이라고 알아보기 힘들 것 같다. 자연과 예술의 조화를 꾀한 그는 언덕을 언덕 그대로 살렸고, 칼로 자른 듯한 직선 없이도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특히 창문 사랑이 남달랐던 그에 의해 객실이 250개 규모 정도인데 창문은 2000여 개가 넘는다고 한다.

 

 발켄부르크의 무지개 나선 

어제 보았던 모형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물이다. 비온 뒤 잠깐 볼 수 있고, 금세 사라지는 그 오묘한 무지개가 내 눈앞에 저렇게 찬란히 빛나고 있다면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옥상에서 지상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계단없이 진행 가능하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장애나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의 가족을 위한 집이라고 했는데 그 목적성에 충실하면서 예술성도 놓치지 않았다. 아름답다.

3월 15일까지 이어지는 전시회를 혹 갈 수 없다면, 도록으로 만나는 것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이 되겠다. 아무렴 직접 오스트리아에서 보는 것에 견줄까마는 그게 힘든 사람으로서는 이렇게 만나는 것도 반갑다. 다른 도록들에 비해 관련 인사들의 지루한 인삿말이 적고 훈데르트바서의 육성을 많이 들려주어서 고맙다. 전시장의 설명도 도록의 설명과 동일한 것이다. 대여 도슨트의 목소리는 무려 '지진희'의 녹음이라는데 그걸 못 들은 게 살짝 아쉽다.^^ 그런 식의 재능기부가 참 아름답다. 훈데르트바서도 자신의 일생을 재능기부로 바친 사람으로 보인다. 무료 봉사도 많이 했고, 기금 마련을 위한 작품 제작도 많았다. 삶과 이상을 일치시켜갔던 그 궤적이 놀랍고 대단하다. 알아갈수록 더 반할 것만 같다.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1000피스 퍼즐이 갖고 싶다. 검색해봤는데 못 찾았다. 머그컵 세트는 발견했는데 무척 비쌌다. 눈으로만 감상해봤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엽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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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3-05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죠... 훈데르트바서 전시회!
그런데 엽서가 너무 비싸고 사놓고 버려둘까봐, 저는 책갈피를 샀답니다.
물품보관함! 저도 이용하고팠는데, 제가 갔을 때는 꽉 차 있었어요. 흑.

담주 월요일 다시 한번 날아가려구요. 대도록을 알라딘에서 샀더니, 공짜표 한장 같이 왔거든요. ^^

마노아 2011-03-05 15:48   좋아요 0 | URL
저도 물품보관함 꽉 차서 2층 이용했어요. 2층 보관함은 많이 남았더라고요.^^
우왕, 한 번 더 가시는군요. 저도 대도록에 들어있던 티켓으로 다녀왔어요.
엽서 때문에 한 번 더 갈지도 몰라요.ㅋㅋㅋ

순오기 2011-03-06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시회에 가보기 어려운 지방댁을 위한 상세한 설명 고마워요~~~~~ ^^
그림도 멋지지만 건축물이 주는 아름다움과 독창성도 대단하네요!!

마노아 2011-03-06 15:03   좋아요 0 | URL
그야말로 전방위 종합예술인이에요. 연설문도 아주 훌륭하더라고요.^^
 
블랙 스완 - Black Sw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며칠 전에 종영된 드라마 '드림 하이'에서 송삼동은 그런 얘기를 한다. 최고의 자리에 서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그만큼 외로운 일일 거라고. 아마도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또 동의할 것이다. 그 외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최고가 되고 싶다고... 

  

여기, 그 최고의 자리에 서고 싶어하는 인물이 있다. 성실한 발레리나인 니나.  그녀는 하루종일 발레만 생각하고 발레 꿈을 꾸고, 발레를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간다. 동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를 떨 때도 니나는 늘 혼자였다. 몸을 풀어주고 어떻게 하면 더 춤을 잘 출 것인지만 고민한다. 소심하고 순종적이고 착해보이는 니나는, 그래서 새로 올릴 무대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의 역할엔 어울리지만 '흑조'의 역할을 함께 소화해내기는 무리로 보였다. 단장 역시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고 니나를 배역에서 떨어뜨리지만 어느 순간 니나가 보인 배역에 대한 집착과 그로 인한 공격성에 흑조로서의 가능성을 기대하며 주인공 자리에 발탁한다.

 

니나는 신이 났다. 최고로 행복했다. 그 행복한 순간을 엄마와 함께 나눴다. 엄마 역시 발레리나였었고, 니나를 임신하면서 발레를 그만두기는 했지만 발레에 대한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다. 딸의 아침부터 저녁까지를 돌봐주고 몸 상태를 체크하고 힘이 들때 용기를 북돋아주는 그런 멋진 엄마였다.  

주인공 자리를 거머쥐었지만 니나의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늘 순종적인 모습만을 보여왔던 니나로서는 거칠고 반항적인,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흑조의 연기가 나오질 않았던 것이다. 경험해 보지 못했고 상상해 보지 못했던 그 세계는 니나의 현실에서 지극히 멀었다.  

 

왕년의 프리마돈나로서 이제는 은퇴의 길을 걷게 된 선배 베스의 모습은 니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 한때 청춘스타의 대명사였던 위노나 라이더를 영화를 보는 동안은 알아보지 못했다. 뒤늦게 자막으로 확인한 뒤 그게 위노나였단 말인가! 충격 한 방. 위노나 라이더는 배역에 딱 어울리는 모습으로 분했다. 훌륭한 배우라면 자신을 통해서 퇴락한 스타의 이미지라도 제대로 보여줘야 했겠지. 그것이 현실처럼 아플지라도... 

불안과 초조에 휩싸인 니나는 자꾸 제 몸에 상처를 낸다. 그리고는 그 상처가 자신에 의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동료 릴리는 자유분방한 여자로 니나와는 정반대의 성격. 자신의 대타 배역을 맡고 있는 그녀가 제 자리를 빼앗아갈 것 같아 니나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공포에 휩싸인다.   

연출이 훌륭했던 것은 순간순간 니나에게 엄습해 오는 검은 그림자의 모습을 니나의 모습으로 투영했다는 것이다. 백조이면서 흑조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니나에게 극복해야 할 또 다른 인물은 바로 자기 자신!

영화가 스릴러라는 것을 알고 보았지만, 이 영화는 스릴러라고만 부르기엔 부족하고, 거의 호러 수준의 공포감을 보여준다. 우아하고 아름답기만 하던 클래식 선율도 어느 순간 숨을 죄어오는 압박으로 변신하고 백조와 흑조의 완벽한 일체감을 보여준 나탈리 포트만의 신들린 연기도 관객에게 어마어마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영화를 다 보고 일어설 때는 목이 뻣뻣해져 있을 정도로...

 

워낙에 왜소한 체구에 말라깽이긴 했지만 발레리나로 분하기 위해서 무지막지한 연습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역을 쓰긴 쓴 것인가 싶을 만큼 발레 연기가 자연스러웠는데 내가 발끝으로 서 있다고 착각할 만큼 아찔함을 많이 느꼈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도 거머쥐고 연기 인생의 큰 획을 그은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사실 조금 걱정스러웠다. 이렇게 강렬한 배역을 소화하고 나면 정신과 치료를 같이 받아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이은주가 죽었을 때 그녀가 맡았던 심상찮던 배역들에 대한 얘기가 많았었다. 알아서 잘 하겠지만, 이런 우려가 들만큼 작품의 배역이 흡인력 있고 그 이상으로 무서웠다.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를 감당해 내고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되는 걸 테지만, 혹 그로 인해 피폐해지는 영혼으로 천재들이 단명해 왔던 것은 아닐까 상상해봤다. 악마와 거래를 해서라도 성취하고 싶은 예술적 열망과 광기는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무섭게 다가온다. 평범한 사람의 상식 선에서는 버거운 금단의 열매다. 

영화 속에서 니나의 엄마가 참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따스하고 힘이 되어주는 엄마였었는데 어느 순간 그 엄마가 무섭게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꿈의 경지에 딸이 대신 서주길 바라는 대리 심리와, 자신이 가지 못했던 그 정상의 자리에 딸이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권정생 선생님의 '한티재 하늘'에서 보면 아들을 낳지 못했던 엄마가 딸이 아들을 낳자 부럽다 못해 몹시 배아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니나의 엄마는 나이를 먹고 아기를 가지면서 발레를 그만두었지만, 어쩌면 그걸 핑계삼아 자신의 한계를 감췄을지도 모르겠다. 너 때문에 내가 희생되었다. 너를 위해 나는 헌신해왔다!라는 주문으로 딸을 압박해오지 않았을까?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점점 망가져가는 니나를 걱정하는 마음도 진심이고, 니나가 무대에 서는 것을 막고 싶은 마음도 진심이 아니었을까. 배우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엄마 역을 맡은 분의 연기도 탁월하게 훌륭했다. 정말, 무서웠다.

단장 역을 맡은 뱅상 카셀도 훌륭했다. 모니카 벨루치가 겹쳐보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주어진 배역의 얼굴에 딱 맞는 옷을 입었더랬다. 적당히 느끼하고, 탐욕스럽고, 그러나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한, 그래서 더 밉고 고약한 단장 역할 말이다. 

나의 공주님 소리를 듣는 순간 힘이 빠졌다. 완벽을 재현해 보였고, 완벽함을 온 몸으로 느꼈지만 그래서 진정 행복해졌을지... 

포스터도 훌륭하다. 강렬한 눈빛과 균열이 가버린 얼굴에서 쪼개진 니나의 영혼이 보인다. 백조와 흑조의 완벽한 일치. 나탈리 포트만, 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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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3-03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나가 처음 백조에만 어울릴 수 있었던 건 전 엄마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는 수시로 니나에게 '착한 딸' 이라고 하잖아요. 그 말은 니나에게 압박이 되었을거에요. 나는 착한 사람이다, 착한 딸이다, 착한 여자다, 착하게 행동해야 한다, 는 식으로 말이죠. 만약 예쁜 딸이라고 했다면 니나의 흑조는 조금더 빨리 세상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했어요. 어릴때부터 그렇게 키워져서 니나는 자신 안에 갇혀있었고 또 엄마 안에 갇혀있었죠. 저는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란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그래서, 잘 해내기가 결코 쉽지 않으리라고도 생각하구요.

마노아 2011-03-03 13:1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부모의 역할이 참 커요. 게다가 니나는 극 속에서 아빠가 등장하질 않아서 엄마의 절대적 영향 하에 컸을 거라고 짐작해요. 치명적으로 아름답고 치명적으로 무서운 영화였어요. 흑조의 피날레 무대에서 그림자의 무시무시한 날개도 압도적이었고요.
저 간밤에 다락방님 꿈 꿨어요.
다락방님이 따라쟁이님 만나러 프랑스에 갔는데 저도 그 다음주에 프랑스로 만나러 가겠다고 꿈에서 그랬어요.ㅎㅎㅎ

다락방 2011-03-03 14:11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마노아님. 내가 예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요, 마노아님 내 꿈 너무 자주 꾸는거 아니에요? 응? 좀 자제해봐요! 하하하하하

마노아 2011-03-03 22:0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예요. 다락방님이 내 안에 있어요.ㅋㅋㅋ

따라쟁이 2011-03-0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봅니다. 물론 이렇게 멋진 리뷰를 쓸 자신은 없지만.

마노아 2011-03-03 13:17   좋아요 0 | URL
재밌게 보고 오셔요~ 좀 무섭지만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해요.
간밤 꿈에 따라쟁이님이 나타났어요. 무려 프랑스에 가 계시더만요! ^^ㅎㅎㅎ

따라쟁이 2011-03-04 09:25   좋아요 0 | URL
저는 무려. 마노아님의 꿈에 간거죠 ㅎㅎㅎ

마노아 2011-03-04 10:13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게다가 부지런히 프랑스도 가 계셨습니다.ㅎㅎㅎ

무스탕 2011-03-03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내일! 봅니다. 물론 이렇게 멋진 리뷰를 쓸 자신은 없지만.

재밌게 보고 올게요~ 좀 무섭다 하셨지만 잘 만든 영화라 믿습니다.
간밤 꿈에 전 나타지 않았던가요? 저도 무려 프랑스에 가 있었으면.. ^^ㅎㅎㅎ

마노아 2011-03-03 22:05   좋아요 0 | URL
헤헷, 무스탕님표 리뷰도 기다릴게요~
제가 꿈에서라도 무스탕님을 유럽 여행을 보내드려야 할 텐데요. 노력해 보겠음돠!!ㅎㅎㅎ

토토랑 2011-03-04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보고 싶군요 >.< 리뷰보고나니 완전 땡기네요

마노아 2011-03-04 23:21   좋아요 0 | URL
헤헷, 보고 오셔요~ 괜찮은 영화였어요.^^

순오기 2011-03-06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거 봤어요~ 한번 더 보고 싶을만큼 혹했어요.

마노아 2011-03-06 15:02   좋아요 0 | URL
스릴러 좋아하시는 순오기님의 레이더를 피해갈 수 없어요. 무섭진 않았나요? ^^

순오기 2011-03-06 19:55   좋아요 0 | URL
마지막 릴리와의 한판 승부는 정말 무섭던걸요~~~~~ 결국 자기 자신이었지만...

마노아 2011-03-07 00:40   좋아요 0 | URL
엄마도 순간순간 무섭고, 나탈리가 분한 도발적인 흑조도 무섭고, 어휴... 좋았는데 두번 볼 자신이 없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