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 산책 5권 - 개화기편, 교육구국론에서 경술국치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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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도 나중에 아시아 연대론의 허구를 깨닫긴 했지만 러일전쟁 개시 당시만 해도 일본이 "황인종 전체를 위한 의로운 싸움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또 그는 순국 직전까지 쓰다 만 「동양평화론」에서 "일본을 머리로 한 평등한 자격의 한국․중국․일본의 연합과 백인 러시아 등으로부터의 공동 방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래서 한국식민화정책으로 황인종의 조화로운 동맹의 건설 가능성을 박탈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이"황인종과 동양 전체를 위한 일"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137쪽

김종서 "각 종교가 주장하는 신자 수를 합하면 우리 인구보다 많다는 우스개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런 현상이 단순히 숫자 부풀리기가 아니라 여전히 중층다원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 가족 안에 여러 종교 신자가 혼재하고 불교나 개신교 신자이면서도 자녀 결혼시킬 때는 사주․궁합을 보고, 택일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생활 속에서는 다른 종교를 배척하기보다는 수용하며 섞여 사는데 익숙한 것이죠."

-183쪽

이어령 "미국은 기독교 사회이지만 대통령이 아무 곳에서나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지 못하며,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정말 희한하고 행복한 나라다. 서울 시청 앞마당에서는 늘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벌어지지만, 그곳에 세워진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나 연등에 시비를 거는 이는 없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한국 특유의 ‘엇비슷 신화’의 방증이다. 우리말 가운데 ‘엇비슷하다’는 말은 세계 어느 나라 말로도 바꿀 수 없다. 굳이 설명하면 ‘엇비슷’은 어긋났는데 비슷하다거나 닮았지만 닮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말에 기독교와 불교를 엇비슷하게 보는 한국인의 의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어긋나고 비슷한 것이 하나의 단어가 된 것은 바로 한국인 특유의 포용의식의 상징이다. 우리 문화에는 21세기 다원주의를 흡수할 수 있는 여러 가치가 공존한다. 엇비슷하다는 말은 아시아적 화이부동 철학을 담고 있다."

-183쪽

조선시대엔 서울 종로2가에 있는 보신각에서 치는 종소리가 시계 역할을 했다. 종지기가 인경을 알리면 통행 금지였는데, 만일 이때 돌아다니다 걸리면 새벽 파루를 칠 때까지 꼼짝없이 붙잡혀 있어야 했다. 이때 생긴 욕 아닌 욕이 ‘경을 칠 놈’이라는데, 이 말은 바로 종치는 데 싫증이 난 종지기가 통금 위반으로 붙잡힌 사람에게 벌로써 종을 치게 했던 것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통금 위반자들은 곤장을 맞아야 했다.-187쪽

중국에서는 과거 응시자를 지역적으로 안배하여 특정 지역의 독점현상을 막았지만, 조선에서는 지역 안배를 위한 시도는 있었을망정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임시로 치러지는 비정기 과거는 지역 안배가 완전히 무시된 채 서울 거주자를 대상으로 실시되었기 때문에 서울, 혹은 서울 인근에 거주하는 세도 높은 가문이 유리했고, 응시 기회도 많았다. 이것이 특정 가문의 후예들이 대거 국가 요직에 등용된 이유다. 특정 가문, 특정 지역 독식 현상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강해졌다. 다산 정약용이 죽기 전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고 버텨야 하며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고 신신당부한 동시에 경고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260쪽

송준호 "중국이 조선과 달리 개방사회로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끝없는 이민족의 침략으로 사람이 죽고, 나라를 오랑캐에 빼앗기는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유교 경전만 가지고 세상일이 다 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거죠. 그 결과 중국은 서자 차별도 없고, 본관 제도도 없앴고, 상인 천시 사고방식도 사라졌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외부 침략에 대응을 하다 보니 개방된 것이죠. 조선은 이런 역사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나라가 망할 때까지 오로지 유교 경전에 매달린 겁니다."--267쪽

한국에서 늘 종교 간 갈등은 있어도 유혈사태로까지 나아가지 않고 여러 종교들이 제법 사이좋게 평화공존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신앙의 이유가 매우 실용적이기 때문에 종교 때문에 목숨 걸고 싸워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복룡의 다음과 같은 주장도 경청할 만하다.
"한국인에게 종교성이 높은 것은 우리의 풍토와 관련이 있다. 하천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향토애가 강하여 그것이 호국 사상으로 확대되고 끝내는 호국 신앙으로 승화되는 예는 얼마든지 있으며, 천수답을 주요 경작지로 삼고 살아가기 때문에 경천에 빠지기 쉬우며, 육식을 주로 하지 않고 채식을 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공격적이라기보다는 평화를 사랑하는 등의 민족성이 종교성을 높은 이유로 지적될 수 있다."-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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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4-27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3쪽의 신복룡의 주장이 어디가 경청할 만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천 문화권이 향토애가 강하다는 건 그런 예가 있다고 하니 일단 지나가더라도, 향토애가 호국사상으로 확대된다는 건 말하는 이의 짐작이 너무 강하게 들어간 것 처럼 들려요. 개화기에 국가라는 개념이 명확했는지 호국사상이 호국신앙으로 넘어간건지 그것도 의문이구요.
거기에 채식을 위주로 해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이 종교성이 높은 이유로 지적되는 것도 어딘지 어색해요 --;

그러고 보니, 경청할 만하다,라고 했지 옳다고 한 건 아니네요. 엥~ 제가 괜한 소리 한 것 같아요 orz


마노아 2011-04-27 18:14   좋아요 0 | URL
농사를 짓고 살면 하늘과 땅과 물을 살펴야 하는 게 간절해지니까 그 영향으로 종교적 성향이 커지기 쉽다고 이해했어요. 채식이 평화를 사랑한다고까지 말하는 건 오버일지 몰라도 육식 위주의 식단보다는 덜 공격적일 거라고 생각해요. 어디서 그렇게 읽었던가, 들었던가... 가물가물하긴 하지만요.^^;;
아무튼 저는 한국인의 신앙이 실용적이라는 게 놀라웠어요. 이건 신앙 입장에서 덜 순수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한국적이다 라고 느끼게 되네요. ^^
 
한국 근대사 산책 5권 - 개화기편, 교육구국론에서 경술국치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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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강제병합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장인환과 전명운의 의거 장면은 비장해야 마땅하지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먼저 쏜 것은 전명운이지만 불발이었고, 장인환이 쏜 3발 중 2발은 스티븐스가, 나머지 한 발은 전명운이 맞았기 때문이다. 사건 당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이승만은 장인환과 전명운에 대한 미국 변호사의 통역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절함으로써 교민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학생 신분이며 기독교도로서 살인자를 변호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이유였다. 그래놓고는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사회에서 항일 단체를 만들다니, 참 밉상이다.

새타령에 의병투쟁의 애환이 담겨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알고 들으니 애잔하게 느껴진다. 전문을 옮기자니 너무 길구나...

허동현의 박노자 비판도 눈길을 끌었다.

“저는 사회진화론이 만연하던 19세기 말이나 지금이나 세계 어디에서도 박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차별과 착취 없이 평등이 구현된 이상 사회가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박 선생님이 갖고 있는 현실 비판의 바이어스 즉, 미래에 언젠가는 구현돼야 할 역사적 당위로서의 이상 사회를 기준으로 한 세기 전이나 현재의 우리 사회를 비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 선각자들이 개화기 당시 현존하던 국가체제 중 상대적으로 우월한 제도와 문물을 갖추고 있던 미국을 발전 모델로 본 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 탁견입니다.”

이재명 의사의 의거 실패에 대해 김구가 땅을 치고 후회한 일이 착잡하다. 그가 갖고 있던 총을 압수했는데 나중에 총 대신 칼로 거사를 실행한 이재명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애꿎은 인력거꾼만 목숨을 잃었으니 말이다. 

이어령 “미국은 기독교 사회이지만 대통령이 아무 곳에서나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지 못하며,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정말 희한하고 행복한 나라다. 서울 시청 앞마당에서는 늘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벌어지지만, 그곳에 세워진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나 연등에 시비를 거는 이는 없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한국 특유의 ‘엇비슷 신화’의 방증이다. 우리말 가운데 ‘엇비슷하다’는 말은 세계 어느 나라 말로도 바꿀 수 없다. 굳이 설명하면 ‘엇비슷’은 어긋났는데 비슷하다거나 닮았지만 닮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말에 기독교와 불교를 엇비슷하게 보는 한국인의 의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어긋나고 비슷한 것이 하나의 단어가 된 것은 바로 한국인 특유의 포용의식의 상징이다. 우리 문화에는 21세기 다원주의를 흡수할 수 있는 여러 가치가 공존한다. 엇비슷하다는 말은 아시아적 화이부동 철학을 담고 있다.” – 183쪽 
 
지극히 자연스러워서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였는데, 듣고 보니 매우 신기한 일이다. “맥주 두서너 병 주세요!”라고 말을 해도 알아서 갖다 주는 것처럼, 우리 말에서는 그런 것들이 크게 문제되지 않고 통한다. 분명하지 못하니까 단점으로 파악할 게 아니라 특유의 포용의식이라고 여기면 보다 이해가 쉬울 것이다.

조선은 시간개념의 규정을 받는 걸 거부한 나라에 가까웠다. 서양인들의 눈에는 한심하고 게으르게 비쳐졌다. 그런데 1세기도 지나지 않아서 한국은 ‘빨리빨리’의 나라가 되어버렸다. 시간에 죽고 시간에 사는 나라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역사의 풍경이다. 게다가 게으름의 극치로 입방아에 오르던 나라였지만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인들은 부지런함의 대명사다. 어떤 땅이건 억척스럽게 일구고 살았고, 어디서건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삶에 대한 만족도 지표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지만, 그만큼 지난 1세기의 우리 역사가 겪어온 시간이 벅찼다는 느낌을 받는다. 

 5권의 마무리에서는 조선은 왜 망했는가에 대한 집중 고찰이 이뤄진다.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그 논거들의 문제점도 같이 살펴보고, 종합적인 정리를 해주었다. 혹여 식민사관이라는 틀에 너무 얽매여서 정작 비판해야 할 것들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보게 했다. 쓴 소리였고, 아픈 역사이지만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이제는 정면승부할 때도 되지 않았던가. 유교적 가족주의의 양면성을 짚어준 것도 인상 깊었다. 그것이 많은 문제를 낳았지만 동시에 국가적 성공의 원동력이 된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미친 듯이 일하는 동력이 되어버린 유교적 가족주의라니. 한 가지 법칙으로 도식화할 수 없는 역사의 역동성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맞다. 그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오타 문제
105쪽 양계초는 1899년에 쓴 「한국의 근상」이라는 글에서는 한국의 위태로운 처지의 가장 원인으로 정치의 불량을 지적했다. >>>가장 큰 원인으로 
147쪽 그 청년은 스물세 살 된 이재명이었다.>>>이완용을 죽이려고 했을 당시 이재명의 나이는 20세였다.
160쪽 경술국치 1주일 전인 1910년 7월 20일>>>우리가 경술국치일이라고 말하는 날짜는 1910년 8월 29일이다.
191쪽 1872년부터 철도를 놓기 시작해 1891년에 전국 종단 노선을 완성한 일본의 철도정책의 기본은 ‘중앙집권적 성격의 강화’였다.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의 기공식은 1897년이었고 완성은 1899년이었다. 경부선이 1905년, 경의선이 1906년이었으니, 종단은 이때 가서야 가능했던 것 아닌가?
234쪽 1906년 전국의 인구는 132만 3029명으로 현재 남한 인구의 1/3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1320만 아닐까?
250쪽 임진왜란의 패배는 왜국이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 4월 14일 새벽부터 >>>4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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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4-26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나 오류가 많은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다가 포기...(ㅡㅡ;;;)

순오기 2011-04-26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저자의 이름과 출판사 이름만으로도 신뢰가 가는데 어찌 이리 오류가 많을까요?ㅜㅜ
전문가 아닌 독자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냥 넘어갈텐데...

마노아 2011-04-27 00:27   좋아요 0 | URL
위 댓글의 오류는 알라딘 오류인데, 오타 지적을 많이 해놔서 책의 오류처럼 느껴지네요.
하핫, 책도 오류 투성이긴 해요..ㅜ.ㅜ
그나마 4권보다는 줄었어요. 4권은 무척 심했답니다.
대체 편집자는 뭐했을까요. 독자보다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읽었다는 걸까요.
뭐, 그 얘긴 저자도 마찬가지네요.^^;;;

sslmo 2011-04-27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오류나 오타가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 같아요.
제가 주로 읽는 소설류는 그래도 덜 하지만,
이런 학술서를 읽다가 저래버리면 짜증이 나서 말이죠~ㅠ.ㅠ

마노아 2011-04-27 18:03   좋아요 0 | URL
오타를 만나면 마구 노여워지는데 심지어 오류도 있으면 정말 분노하게 되죠.
그럼에도 별 다섯을 주다니, 제가 참 너그러워요.(응?)
 
한국 근대사 산책 4권 - 개화기편, 러일전쟁에서 한국군 해산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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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부터 1907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시기에는 애국계몽운동이 활발히 일어났었고, 당연히 신문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꽤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므로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기에 좋을 것이다.  또 러일전쟁의 발발 전부터 전후 문제까지의 과정이 무척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정로환'과 같은 이야기는 잠깐씩 분위기를 바꿔주는 감초 역할을 해준다. 

개화기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공통된 반응으로 '호기심'을 들었는데,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고 궁금해하는 정도가 병적이다. 그것이 좋은 에너지로 분출되면 성장의 동력이 되겠지만, 선정적인 언론보도와 함께 연상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얼마 전에 서태지-이지아 사건에 대해서 배철수 씨가 남의 일에 관심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는 걸 들었을 때 참 멋있다고 여겼는데, 호기심에도 제발 분별력이 있었으면 한다.  

순국자결한 민영환의 이야기가 놀라웠다. 혈죽 매화라니. 그것을 100년 간 보존해 온 후손이라니! 몇 해 전에 박물관에서 전시회도 가졌다는데 미리 알았더라면 다녀왔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밖에 유길준과 손병희 등등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인물들이 많았고 전반적으로 인상 깊게 읽었다.

그런데 어째 뒷권으로 갈수록 오타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24쪽
랴오둥수복론수복론이 18세기 말부터 등장했는데 >>>수복론이 두 번 겹침 

39쪽
영일동맹 직후 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한반도로 군대를 파견해 일본과 충돌을 빚게 했다. 아직은 자신이 없던 일본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38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양분해 각각 영향력을 행사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39도선 분단안을 제시해 담판은 결렬되었다.

>>>38도선이 마음에 안 든 러시아가 39도선을 제시했다는 것은 좀 말이 안 된다. 내용이 틀린 것이 아니라 설명이 부족하다. 일본이 38도선을 제시했을 때는 러시아가 부동항에 대한 집착으로 제안을 거부했지만, 다음에 일본의 영향력이 더 강화되자 아쉬운 대로 39도선을 제시한 것인데 위 문장만 보면 기준선이 뒤바뀐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96쪽
의관정재한 한국인이 뉴욕 맨하탄에 나타났을 때 미국인들이 보일 순수한 호기심과 다를 없는 정도의 것이라고 했다.>>문장 어색
 
119쪽 사진 밑 설명  
러시전쟁 와중에서 >>>러일전쟁

130쪽 첫 줄
훗날 발굴된 비밀문서들은 미국과 영국의 일본 지원이 당시 알려진 것도 훨씬 더 적극적이었다는 걸 보여주었다.>>>것보다

135쪽
이미 6일 전인 7월 19일 가쓰라-태프트 비밀협약을 맺게 한 루스벨트>>>7월 29일

163쪽
고종의 밀명을 받은 헐버트가 호놀룰루,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피츠버그를 거쳐 워싱턴에 도착한 것은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다음날인 11월 17일이었다.
>>>앞쪽에서는 줄곧 11월 18일로 기술되어 있었다. 11월 17일에 가졌던 회의가 자정을 넘어 체결되었기에 18일로 보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여겨도 통념의 17일을 떠나 16일로 기술한 것은 오타로 볼 수밖에 없다.


230쪽
신용하는 “애국계몽운동을 을사조약에 의하여 국권을 박탈당한 후 개화자강파가 중심이 되어 완전한 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전개한 민력 개발과 민족독립역량 양성운동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정의했다.>>문장 어색

239쪽
『아리랑』은 유인석 부대는 세력이 왕성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으면서도 유인석이 평민 장수 출신 김백천을 처형함으로써 파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며....>>>김백선

297쪽
박에스더의 생년을 1877년으로 기술했다.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와 위키백과는 1876년으로, 네이버 백과사전은 1879년 생으로 나온다.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1885년 홀의 도움을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올라 1886년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했다.
>>>1877년에 태어난 것이 맞다고 할지라도 유학길에 오른 나이와 대학 입학 나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박에스더가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은 1895년이고,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한 것은 1896년이다.(참고로 1886년은 이화학당 입학한 나이)

317쪽
“고종이 살아있었고 즉위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어 순종을 고종의 뒤를 있는 황제로 보기가 어렵다.”>>잇는

363족
박은식의 검속 사건 이후 신문사 정문에는 ‘일인불가입’까지 방까지 내걸었다. >>>‘일인불가입’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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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 산책 4권 - 개화기편, 러일전쟁에서 한국군 해산까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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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는 러일전쟁이 터지자 일한동맹론을 내세우면서 일본 육군성에 군자금 1만 원을 기부하는 등 일본의 지원하에 정권을 장악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용구를 통해 국내 구 동학조직을 진보회로 묶어 일본군의 군사활동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이용구는 동학농민전쟁 때 맹활약한 동학의 실력자로 최시형이 잡힐 무렵에 함께 잡혀서 사형언도까지 받았지만 탈옥해 살아남은 인물이었다.

(1902년 일본으로 망명한 손병희는 반일 반외세노선을 접고 개화노선으로 전향했다. 그리고 동학교단의 젊은 청년들을 일본으로 유학시켜 새로운 문물을 배우게 했다.)
-74쪽

실제로 개화기에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의 기록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호기심이다.
-95쪽

송우혜 "승자가 패자보다 훨씬 더 막심한 상처를 입었던 이상한 전투, 여순 전투의 승리는 러일전쟁 전체의 승패를 갈랐다. 온 유럽을 떨게 한 저 위력적인 발트함대의 운명에도 막심한 영향을 미쳤다. 전투의 후일담도 유별나다. 여순 전투를 지휘했던 일본군 사령관 노기 장군의 두 아들은 모두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엄청난 사상자를 낸 것도 두고두고 그의 경력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다. 귀국 후 노기는 메이지 천황에게 사죄의 자살을 하겠다고 청했다가 자신이 죽기 전까지는 허락하지 않는다는 대꾸를 들었는데, 7년 뒤에 메이지 천황이 사망하자 노기 부부는 천황의 장례식 날 나란히 할복자살, 여순 전투의 기이한 마침표가 되었다."
여순 전렴 작전에서 러시아군의 사상자 수는 3만여 명이었던 반면, 일본군의 사상자 수는 6만여 명이었다. 사실상 일본 국민이 부른 피였다.
-115쪽

러일전쟁에서 내내 일본군을 괴롭힌 건 병사들의 질병이었다. 물로 인한 배탈과 설사로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 나갔다. 이때 만들어진 배탈․설사약은 나중에 러시아를 이기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는 이유로 ‘정로환(征露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28쪽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말라. 그분은 전쟁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끌어내었다.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도고가 말은 바로 했다. 도고의 승리는 국가의 지원뿐만 아니라 영국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영국이 당시 그들의 통제 아래 있던 홍해의 수에즈운하 통과를 불허하는 바람에 러시아의 발틱함대는 아프리카 남쪽의 희망봉을 거쳐 지구를 반 바퀴나 도는 에너지․시간 낭비를 하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129쪽

1905년 8월 8일, 러시아와 일본 양국의 협상 대표단이 미국 뉴햄프셔 주의 작은 해군기지인 포츠머스에 도착해 1년 넘게 끈 러일전쟁을 종결하기 위한 강화회담을 시작했다. 러시아군 사상자 27만 명 중 사망자 5만 명 이상, 일본군 사상자 27만 명 중 사망자 8만 6000명이라는 참혹한 통계수치가 말해주듯 양쪽 모두 지칠 대로 지친 상황이었다. 일본군 사상자는 68만 9000명이며, 이중 전사자만 14만 5000명이었다는 통계도 있다. 일본이 이 전쟁에서 지출한 직접군사비는 14억 엔으로 청일전쟁의 전비를 6배나 초과하는 비용이었고, 1903년도 군사비의 10배, 국가 예산의 5배 가까운 액수였다. 그렇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더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139쪽

을사늑약 체결 소식에 조선 백성이 분노에 떨 때 조선 주재 타국 외교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당시 한국 정부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던 나라는 모두 11개국이었고 공사를 파견한 나라는 일본․미국․영국․독일․러시아․프랑스․청국 등 7개국이었다. 이미 공사관이 폐쇄되었거나 철수한 러시아와 일본 이외의 나라들은 미국이 앞장서는 가운데 공사관을 철수시켰다. 서양 국가들 중 한국과 가장 먼저 외교 관계를 수립한 미국은 가장 먼저 국교를 단절하는 기록을 세웠다. 알렌의 후임으로 부임했던 당시 미국공사 에드윈 모건은 한국 민중이 보호조약에 반대해 철시를 하고 아우성칠 때 일본공사 하야시와 축배를 들고, 한국 정부에 고별의 인사 한마디 없이 서울을 떠났다.
-160쪽

이이화는 손병희에 대한 평가는 포폄이 엇갈려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러일전쟁 때 일본군에 군자금을 댄 일, 한일병합을 주장한 이용구를 상당기간 끌어안은 일, 돈을 민족운동 이외에 마구 쓴 일, 본부인말고도 첩을 둘씩이나 거느린 일 따위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또 최제우․최시형을 신으로 만들고, 자신도 성사와 인황씨로 추앙하게 한 것도 인간 중심의 동학을 신비주의로 변질시켰다는 입길이 따른다. 걸출한 인물에게도 흠집이 있다는 말로 호도될 수 있을까? 하지만 그의 공이 과를 덮고도 남는다는 평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194쪽

1905년 10월 경무사 신태휴는 흰옷 대신 검정 등 짙은 색 옷을 입으라는 법령을 발포했다. 강압적이었다. 흰옷 입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을 잡아 염색을 할 수밖에 없게끔 옷을 더럽히는 수법이었다. ‘흰옷금지령’의 이유는 검은 옷이 편리하고 위생적이라는 것이었지만, 아무리 봐도 그건 억지였다. 일본에서 수입된 색색의 옷감이 잘 팔리지 않았기에 나온 조치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04쪽

노주석 "지금까지 러시아가 적극 후원한 헤이그 밀사 파견이 일본의 집요한 방해공작에 의해 무산됐다는 학설과는 달리 헤이그 밀사 사건은 대한제국과 만주, 몽골을 맞바꿔친 러시아의 냉혹한 국제외교의 부산물이었음이 증명된 것이다."유석재는 "훗날 러시아군의 장교가 된 이위종이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볼셰비키 혁명군의 편에 서서 황제를 옥좌에서 끌어내리는 데 가담한 것은, 이때 입은 배신의 상처와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했다.
-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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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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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이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는 도덕 수행평가 때문이었다. 자서전을 쓰라는 게 수행평가의 과제인데 가족을 중심으로 쓰라는 게 힌트였고, 대상에게는 장학금도 수여하겠다고 하셨다. 원성이 자자한 가운데 여울이는 자신의 가족을 돌아본다. 가족이라는 단어 두 글자가 벌써부터 한숨을 물어내게 할 만큼 여울이네 가족은 상태 불량이다. 오죽하면 제목이 불량 가족 레시피일까. 

여울이네 집은 보기 드물게 대가족이다. 그렇지만 권장할 만한 가족 구성은 절대 아니다. 일단 가장 큰 어른으로 집안일을 도맡아 하시는 여든 셋의 할머니가 계시고, 채권 추심 일을 하고 있는 아빠가 있다. 그리고 서로 엄마가 다른 세 아이가 있고 뇌경색에 걸려 몸이 불편한 삼촌까지 있다. 오빠와 언니의 엄마들은 호적에라도 올라 있지만 혼외 자식인 막내 여울이는 그마저도 되어 있지 않다. 나이트 댄서라는 직업만 알고 있을 뿐, 여울이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아무 것도 없다. 전문대에 다니는 큰오빠는 다발경화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어서 기저귀를 차고 생활해야 하고, 고3인 언니는 심각한 비만인데 만날 욕을 달고 살며 여울이와 으르렁거리기 바쁘다. 언니와 반대로 빼빼 마른 여울이는 집을 떠나 가출이 아닌 '출가'를 하는 게 지상 최대의 목표다. 이런 여울이에게 유일하게 기쁨을 주는 일은 현재로서는 코스플레 뿐이다. 옷을 장만하려면 돈이 꽤 드는 관계로 아빠의 주머니를 슬쩍슬쩍 손대는 것도 여울이를 바쁘게 하는 일 중 하나다. 

이런 조건을 갖고 있는 여울이네 집이다 보니 사연이 없을 수가 없고 사건이 없을 수도 없다. 식구가 많아서 4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보증금 2천 만원에 월100만원의 세를 겨우겨우 내고 있는 가난한 살림. 할머니는 황천 길이 멀지 않은 시점까지 손주 손녀에 병든 아들 뒤치닥꺼리를 하느라 허리를 펼 세가 없다고, 양로원에 들어가 편히 사는 사람 팔자를 노상 부러워하고 계시다. 며느리가 들어오면 허리 좀 펼까 싶었지만, 며느리들마다 자식 새끼만 안겨주고 떠나버리니 신세 한탄이 아니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불곰이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아빠는 가족을 모두 채권 추심의 무임금 알바로 쓰기만 하고, 심지어 아이들은 그 일로 학교를 결석하기까지 한다. 아무 것도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여울이가 자신의 가출을 '출가'로 명명하며 그 날만을 꿈꾸는 것이 백 번 이해가 간다. 물론, 그 가출은 여울이만 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가족들은 잦은 불화와 충돌로 서로를 할퀴다가 하나 둘 가출을 감행한다. 첫 스타트는 언니였다. 미술 공부를 하고 싶었던 언니는 아빠와 크게 싸우고는 손찌검을 당하자 다음 날 새벽에 짐을 싸들고 집을 나갔다. 재능이란 이 집에서 '불필요한 개인기'라고 명명한 여울이의 표현이 안타깝게도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다.  

언니에 이어 삼촌과 큰오빠가 같은 날 집을 떠나버렸다. 모두 아빠와 싸운 뒤다. 아빠 역시 유일하게 돈 버는 사람으로서 무거운 짐을 얹고 휘청거리는 중이었다. 서로 따뜻한 대화와 격려가 오고 가는 집이 아니었고, 그런 것이 가능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어쩌면 서로의 노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기대하는 것조차 무리수인 집이 분명 있다고 여긴다. 가난하고 궁핍한 살림살이와 엄마의 부재, 복잡한 가계도와 병마까지... 그런 집에서 따뜻한 우애와 서로에 대한 헌신과 희생을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드라마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여울이는 코스플레 행사장에서 천사 복장을 한 40대 아줌마와 알게 된다. 워낙 평균 연령대가 어린 행사장인지라 눈에 튀기도 했지만, 하필 '천사'인지라 더 부각되었을 것이다. 톨스토이를 유난히 사랑하는 이 아줌마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미하일 천사를 다음 코스플레 대상으로 이미 정해 놓았다. 그 덕분에 여울이는 톨스토이의 책을 접하게 되는데, 이 열일곱 학생이 판단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결론이 서글프다. 

미하일은 세몬과 살면서 그 질문의 답을 얻는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사랑이며,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산다는 게 그 답이었다. 미하일은 지극히 종교적인 이 세 가지 답을 깨닫고 하늘로 올라간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은 욕심이며,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서 얻은 답이다. 모두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지,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한 명도 없다. – 103쪽 

사람이 사랑 때문에 산다는 명제가 오답이 아님에도, 한참 꿈과 낭만이 많을 법한 이 여고생에게 그것이 허무하게 들릴 정도라면 그 인생은 벌써부터 얼마나 고단한 것일까. 그리고 그것은 여든 셋의 할머니에게도 마찬가지다. 자식 손주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할머니는 다시금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양로원을 물색하느라 바쁘셨다. 할머니마저도 가출을 원하고 계신 것이다.  

마침내 아버지의 사업은 종말을 고했다. 집에도 압류 딱지가 붙었고, 아버지는 구속까지 되고 마신다. 아버지마저 집에서 사라지고 할머니는 부산 동생 집으로 옮기도록 결정되었다. 본의 아니게 식구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여울이의 출가가 완성되게 된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소원 성취라니, 울 수 없어서 웃어야만 할 것 같았다. 삐에로 같은 슬픈 웃음을 말이다.  

여울이는 아주 성실하고 착하거나, 또 가족에 헌신적인 그런 아이는 아니다. 또래 아이들만큼 욕심도 많고 가끔 돌출 행동도 하고 반항도 하는 평범한 아이다. 가족 구성이 원만하지도 않고 집안 살림이 편안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일찍 철들어서 안쓰런 아이도 아니었다. 허나 그런 아이도 집이 이렇게까지 해체되어 버리니 철이 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도덕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말씀하신 것처럼 위기에 처한 여울이네 가족은 이제 진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여울이는 마무리 단계에서 그런 결론을 내렸지만, 이미 가출을 감행한 다른 식구들도 똑같은 판단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규정한 언어는 달랐을지라도. 이 정도 불량 가족이라면, 애석하지만 각개격파가 필요하다. 여울이의 경우는 아직 지나치게 어리지만, 그래도 그 곁에 남기로 결심한 할머니가 계시니 완벽한 벼랑 끝은 아닌 거라고 안심해 본다. 쉽지는 않겠지만, 여울이도 언니도 자신의 꿈을 잠시 유예한 채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나갈 것이다. 삼촌 역시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미국에 가 있는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하루 24시간을 풀가동 시키며 버티고 있다.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오빠 역시 그럴 것이고, 아빠 역시 교도소에서 인생 후반부를 열심히 설계하실 것이다.  

작품은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무리하게 분홍빛 미래를 제시하지 않는다. 현실은 이만큼, 혹은 그보다 더 시궁창일 때도 얼마든지 많이 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울의 바닥을 치게끔 만들지도 않는다. 진화를 외치는 여울이의 기개를 믿게 만들어 주었으니...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다.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여울이와 비교되는 친구 류은이는 부모의 과도한 기대와 간섭으로 숨막혀 하지만, 그 갑갑증이 잘 묘사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 바람에 여울이의 서러움을 부각시키지도 못했다. 40대 나이에 코스플레에 나섰던 아줌마가 천사에 집착하는 이유가 잘 설명되지 않았고, 뭔가 사정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만 풍겼을 뿐 연결 고리가 없어서 동 떨어진 느낌을 자아냈다. 여울이의 첫사랑 세바스찬도 등장과 퇴장, 그리고 사이사이의 에피소드도 자연스럽지 않고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다. 뭔가 의욕은 앞섰지만 좋은 재료로 아주 맛깔스런 음식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청소년 소설은 언제나 반갑고 고맙다. 다양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되어주는 것 같아서. 아직은 아이의 목소리는 설익고, 할매의 목소리가 좀 더 자연스럽지만, 작가의 다음 작품에서는 분명 더 현실적이고 실감나는 목소리가 들릴 거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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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4-25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중학교 도서실에서 빌려왔어요. 리뷰는 책 읽고 나서 읽을게요~ ^^

마노아 2011-04-26 12:52   좋아요 0 | URL
위저드 베이커리가 연상되는 전개였어요. 이런 진행도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루쉰P 2011-04-26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내용이 너무 우울해서...리뷰만 읽었는데도 말이죠. ^^ 그래도 책을 읽고 쓰시는 후반부의 날카로운 평가는 저에게도 많이 도움이 됐네요.

프로필 사진 바뀌셨어요. 누가 보면 마노아님 남자인 줄 알거에요. ㅋㅋㅋ

마노아 2011-04-26 12:53   좋아요 0 | URL
무척 우울한 내용이지만 그걸 발랄하게 전개시키긴 했어요. 다만 그걸 모두 버무린 힘은 좀 약했고요.^^

아아, 저 사진을 못 알아보면 너무 슬플 거예요. 울 공장장님이 이렇게 찬밥이 되어가다니...ㅜ.ㅜ

버벌 2011-04-26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꼬네집에 놀러올래?" 보셨어요? 전혀 다른 내용의 소설인데. 왜 이 리뷰를 읽고 "머꼬.."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네요. ㅡㅡ;;;;;; (참 이상하다) 오랫만에 서점에 나가봐야겠어요. 요즘 계속 인터넷으로만 구입을 해서. 나가서 불량가족도 찾아보고 올게요 ^^ 관심이 없었는데.리뷰보니 급 보고파져서. 리뷰 읽는 걸 중단해야 할까봐요. 락방님도 그렇고 마노아님도 그렇고. 여기저기 기웃 기웃 리뷰를 읽으면 죄다 보고 싶어져요. 이번달 카드값에 월급은 벌써 바닥을 쳤는데. 더 내려갈 곳도 없는데 어쩌란 말인지 모르겠어요. ㅠㅠ

마노아 2011-04-26 12:54   좋아요 0 | URL
머꼬네집에 놀러올래는 처음 들어본 책이에요. 제목이 무척 재밌어요.
불량 가족하니까 조반니 과레스끼의 까칠한 가족도 떠오르긴 해요. 분위기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요.
알라딘 서재질은 책지름신을 늘 동반하곤 해요.
이건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에요. 훌쩍...ㅜ.ㅜ

버벌 2011-04-26 21:08   좋아요 0 | URL
안 보셨으면 보세요. 처음 직장 들어왔을때니 근 9~10년 된것 같네요. 보험 설계사분이 보험 들라면서 자신의 책 빌려줬었어요. 기대안하고 읽었는데 기억에 많이 남는게... 재미있게 있었어요. ^^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오랫만에 머꼬네도. 까칠한 가족은.. ㅎㅎㅎㅎㅎ 읽다가 웃다가 했는데 지금까지 완독은 못 했어요. 한번 손을 놓으니 이어 읽기가 쉽지 않네요.

마노아 2011-04-27 00:26   좋아요 0 | URL
전 머꼬가 외국 이름인가 했더니 우리나라 작가님 책이었네요.
하핫, 다시 읽어보니 우리말인 것을요.^^ㅎㅎㅎ
추천해 주셨으니 기회 되면 읽어볼게요. 어떤 책인지 저도 궁금해졌어요.
저도 읽다가 중단된 책은 다시 읽기가 힘들더라고요. 결국은 처음부터 읽게 되고요.
그렇게 해서 중단된 저의 로마인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5권까지 읽었는데 1권부터 다시 읽어야 기억날 것 같아요..ㅜ.ㅜ

버벌 2011-04-27 02:11   좋아요 0 | URL
뒷 권이 안나와서 본의아니게 읽기가 중단된 경우도 있잖아요. 얼음과 불의 노래가 그쪽인데... 새로 나올때마다 그 두꺼운 책들을 1부 부터 읽어야 합니다. 5부가 나온다는 소리가 언제부터 들렸는데 아직도인지. 1부부터 읽을 각오를 하고 있으니 제발 좀 나왔으면 좋겠어요. 마노아님. 마틴옹에게 여행좀 그만 다니고 글 좀 써달라 소원을 빌어주세요. 저는 순수함을 잃어버려서 마음이 바르지 못해 기도가 안 먹힐거에요 ㅠㅠ

마노아 2011-04-27 18:08   좋아요 0 | URL
으하하핫, 어제 브론테님 서재였던가, 암튼 스티븐 킹 서문이 생각나요. 어느 80되신 할머니가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결말만 살짝 얘기해달라고....ㅎㅎㅎ
저 이번에 일본에서 지진 났을 때 사랑하는 그 많은 만화가들 생각이 났어요.
결말을 모를 수도 있겠단 생각에 조바심마저..^^;;;

sslmo 2011-04-26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자의 목소리가 실패인가 보네요.
재능이 '불필요한 개인기'라고 하다니, 여울이 어찌보면 맹랑한걸요.
근데 여울이를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왜죠?^^

마노아 2011-04-26 12:55   좋아요 0 | URL
바른 표현을 쓰려는 의도에 어떤 부분은 뉴스를 보는 느낌이 나고, 반면 욕쟁이 언니를 표현할 때는 욕을 위한 욕처럼 들리고 그 사람의 목소리로 들리지 않았어요. 할머니의 입담은 자연스러웠는데 말이지요.
불필요한 개인기는 참 착잡했어요. 우리 같이 여울이를 응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