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템]어린왕자 이야기-소품함 - 어린왕자
(주)스토리템
절판


2만원 이상 무료배송이라고 해서 액자와 함께 소품함도 같이 주문했다.
어린왕자와 바오밥나무를 주문했는데 도착한 것은 코끼리....
그런데 상자에는 '바오밥나무'라고 버젓이 적혀 있다. 어쩔....;;;;

바오밥나무와 양 한마리는 알겠는데, 어린왕자와 코끼리는 무슨 상관이지? 어릴 때 읽었던 기억으로는 어린왕자 책 속에서 코끼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보아뱀이 먹은 게 코끼리였나? 아핫, 모자로 착각하게 한 그 그림에 코끼리가 나오나 보다.
소품함은 무척 작다.
순전히 장식용이지, 저걸 어떻게 실용적으로 사용할 생각은 해도 좋지만, 별로 써먹을 데는 없을 것이다.^^

바오밥나무까지 구색을 맞췄으면 무척 예뻤을 것이다. 자주색이 들어가니까 포인트도 될 것이고...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위에다 두고 한 컷 찍었다.

어린왕자의 한 구절을 읽어본다.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고 보니 알라딘이 유명한 문구에 빗대어서 알라딘의 서비스를 표현하는 이벤트에서 내가 응모했던 게 어린왕자의 유명한 구절이었다.

가령 오후 4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금요일이고(벌써 토요일로 넘어갔고)
내일은 놀토니까, 나는 오늘부터 행복해진 거지.(응?)

귀걸이 한 쌍씩 넣어봤다.
두 쌍을 넣으면 과장 보태서 넘칠 지도 모른다.^^
현재 모니터 앞에 놓았다.
자주 쓰는 귀걸이 한 쌍 씩 품은 소품함.
그저 봄날에 어울리는 예쁜 소품들이다.

뒤늦게 도착한 바오밥 나무. 색감이 가장 예쁘다.
예전에 식물원에서 바오밥나무를 본 적이 있는데 키가 작고 엄청 뚱뚱한 나무였다.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인지라 온실 안이 무척 더워서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버렸다.

셋을 한꺼번에 찍어보았다.
아, 이쁘다. 이런 자잘한 소품들이 청소할 때 제일 짲으난다고, 지난 주 토요일에 지인과 얘기를 했는데, 그래도 이런 작고 예쁜 것들에 자꾸 눈길이 간다.
예쁜 것에 약한 것은 본능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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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5-1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끼리를 보고 말이죠,
보아 구렁이라고 생각한 저는 멀까요?
그담에 든 생각은, 코끼리 위에 코끼리가 있으니 무겁겠네.. 이런거. ㅡㅡ;;

이쁘네요. 행복해진 마노아님, 즐거운 주말되세요!

마노아 2011-05-14 20:19   좋아요 0 | URL
으하하핫, 자동연상 작용이 너무 셌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어린왕자하면 보아구렁이와 코끼리는 자매품이죠. ㅎㅎㅎ
주말 잘 보냈나요? 오늘도 끝내주게 좋은 날씨 속에서 많이 걸었더니 걸으면서 졸음이 쏟아졌어요.
광합성이 과했나봐요.^^;;;

pjy 2011-05-17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小품함이군요^^; 뭔가 많이 넣어두면 마술상자속의 삐에로처럼 튀어나오는건가요?ㅋㅋㅋ

마노아 2011-05-17 21:21   좋아요 0 | URL
헤헷, 오늘 잘못 온 상품이 다시 도착해서 사진 두 장 추가했어요. 작아도 참 예뻐요.^^
 
[스토리템 1+1]어린왕자 이야기-탁상액자
(주)스토리템
절판


1+1 행사를 하고 있어서 냉큼 주문했다.
집에 와보니 한약 상자 만큼 큰 상자가 책상 위에 떡하니 놓여 있어서 놀랐다.
17인치 모니터만한 상자였다.
안에 스티로폴이 상자에 딱 맞는 크기여서 빼내면서 가루가 많이 날렸다.
이럴 때는 모아둔 거래명세서가 아주 유용하다. 줍기도 힘들고 손에 붙은 걸 버리긴 더 힘든 스티로폴을 가볍게 흡착해서 버려준다.

요렇게 생겼다. 아직 사진을 안 끼웠기 때문에 맨 앞의 비닐은 벗기지 않은 상태다.
유리일 줄 알았는데 아크릴 비닐이었다. 상품 설명을 자세히 보니 원래 아크릴이었구나.
혹성 위에 서 있는 어린 왕자는 탈부착이 가능하다.
사진이 세로 사진이라면 어린왕자의 위치를 바꾸어서 세워도 된다.
4X6 사이즈의 액자인데 여기에 끼우기 적당한 사진을 조만간 인화해야겠다.
지난 주에 날린 할인 쿠폰이 새삼 아깝구나...ㅜ.ㅜ
디테일하게 살펴보면 저게 어찌 어린왕자 얼굴이냐고 항의할 수도 있겠지만....;;;;
어린왕자라고 굳게 믿자. 저 작은 별은 어린왕자의 집이고 말고!

어린왕자의 이름에 걸맞게 나의 싸아랑 공장장님 사진도 추가해 보았다.
물론 우리 보스는 '어린왕자'라는 별명을 아주 싫어하지만... ㅎㅎㅎ
반사가 잘 되어서 내 손까지 다 나오길래 방향을 틀었더니 뒤쪽 책들이 다 비친다.
저걸로 책 제목을 맞추기는 무리겠지?
보이는 책장에는 거의가 동화책만 꽂혀 있다.
어린왕자 액자에 걸맞는 각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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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5-14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입체적인 액자네요. 귀여워요~~~

마노아 2011-05-14 20:21   좋아요 0 | URL
적립금 생긴 걸로 사치를 부려보았어요. 흐뭇해요.^^

비로그인 2011-05-14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 님 이름으로 리뷰가 올라와 있어서, 클릭하면서 내용을 보기 전까지는 `이승환 옹의 액자도 나왔다니 궁금하군' 이라고 생각하며 내용을 보고는 `진짜 어린왕자로세!'하고 놀랐습니다. 당연한 건데 말이죠. 하하

마노아 2011-05-14 20:21   좋아요 0 | URL
으하하핫, Jude님의 얘기를 듣고 급! 공장장님 사진을 추가했습니다.
액자에 끼워놓을 생각을 못했는데 아주 굿 아이디어에요. Jude님 만세!!!

pjy 2011-05-17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받았던 엄청난 무게의 택배가 생각납니다--; 1+1 인지 모르고 찰리채플린북엔드세트를 샀었지요ㅋㅋㅋ

마노아 2011-05-17 21:21   좋아요 0 | URL
오, 북엔드 세트는 무척 무거울 것 같아요. 게다가 1+1이니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거의 무기였을 겁니다.ㅋㅋㅋ
 
2011 마음의 소리 Ver.1 마음의 소리 시리즈
조석 글.그림 / 이미지앤노블(코리아하우스콘텐츠) / 2011년 4월
품절


화장실에서 야금야금 보기 좋은 만화 '마음의 소리'다.
어떤 찌질한 상황에서도 항상 천사의 말을 해주는 친구의 이야기다.
중원의 사령관과 비잔티움 양식은 꽤 신선했다.
마지막 반전이 큰 웃음을 주었는데 사진을 찍지 않았다.

돈으로 다오!라는 어머니의 직설적인 한 마디.
어버이 날 많은 부모님의 마음에 울렸던 진심이 아닐까 한다. ^^

놀이동산 지옥설을 무척 재밌게 봤다.
꿈과 환상과 재미의 상징인 놀이동산을 지옥에 비유한 것도 재밌는데,
그 설명이 꽤 그럴싸하다.
'너덜너덜'한 표정의 그림이 리얼했고,
거짓말 많이 하는 타는 지옥/2층에서 1층 내려갈 때 엘리베이터 타면 타는 지옥/분리수거를 안 하면 타는 지옥의 이름 붙이기가 재밌다.
죄의 값은 살아온 세월에 비례한다며 내민 면죄부가 곧 입장권.
새치기하면 가는 지옥까지, 제목들이 하나같이 재밌다.

스피드 지옥/ 행한 죄만큼 페달을 돌려야 하는 페달지옥/엄마가 콩볶는 거 안 도와주면 가는 지옥/ 음식을 남긴 만큼 비싸게 사 먹어야 하는 영리 지옥까지....
모두가 경험해본 지옥들이다!
놀이동산 가기 좋은 계절이 왔지만 방사능 비와 황사 먼지가 야외 활동을 자꾸 발목 잡는구나.
내일은 하필 체육대회가 있다. 하아...;;;;

어릴 때 잘못하고 벌을 받은 기억들에 대한 서로의 부풀리기가 압권이다.
애매한 발음형/전장의 흉터형/쇠사슬형/긍정형/민주투사형
이 중에서 긍정형과 민주투사형이 가장 웃겼다.
표정은 어찌나 진지한지...

깡패를 만났을 때 대처방법이다.
상대방의 어깨를 잡고 다른 손으로 팔을 잡은 후,
그대로 주저앉기!
상대가 그 누구라도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된다.
아, 제일 웃겼다.
주저앉은 다음엔 어떻게 할 것인가.
웃어야 하나? ^^

예비군 훈련 가서 요즘도 팬티 훔쳐 가냐는 질문의 대답이 압권이다.
가져가서 그냥 입는 게 가장 낫다.
소장하거나 보관하면... 어휴....;;;;

학교의 맥가이버들이다.
첨단장비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다양한 부동산 매물도 존재한다.
매매불가인 그린벨트도 재밌다.
역세권 주민들의 점심시간 5초 전 그림도 무척 사실감이 느껴졌다.
어깨맨과 왕머리 뒷자리에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구친다.

작가도 학교 졸업한 지 꽤 되었을 텐데 여전히 학교 이야기들이 등장하면 재밌고 가깝게 느껴진다. 꽤 오래 연재한 것으로 아는데 아직도 소재가 남아있다니 대단하다.
두고두고 챙겨보지는 않겠지만 한 번씩 보면 괜찮은, 재밌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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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1-05-13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소리,가 책으로 나왔군요. 요즘 제게 꼭 필요한 책입니다^^
오늘 냉큼 집워와야겠어요~

마노아 2011-05-13 11:23   좋아요 0 | URL
읽고 한바탕 웃기 좋아요. 크게 웃으시면 더 좋아요.^^

pjy 2011-05-1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을거 같습니다^^ 특히 표정이~~

마노아 2011-05-13 15:24   좋아요 0 | URL
저런 표정을 따라 짓고 있는 작가의 표정을 상상해 보니 더 웃겨요.^^

루쉰P 2011-05-13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류 만화 너무 좋아요. ㅋㅋㅋ 리뷰만 읽어도 웃긴데요.

마노아 2011-05-13 15:25   좋아요 0 | URL
게임 이야기는 이해를 못하겠던데, 그것 아니어도 재밌는 게 많았어요.^^

후애(厚愛) 2011-05-13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가던 만화였어요.^^
그런데 구매포기..ㅜ.ㅜ

마노아 2011-05-13 15:25   좋아요 0 | URL
네이버 웹툰 연재중이에요. 인터넷으로 보셔도 되어요~

냐냐냐 2011-07-18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재미나게 보고있는 웹툰도 있네요...마노아님 서재 멋져요..

마노아 2011-07-18 22:48   좋아요 0 | URL
하하핫, 감사합니다.^^
 
상상목공소 - 상상력과 창의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김진송 지음 / 톨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인문에세이라고 하니까 또 마음이 달라졌다. 게다가 제목은 얼마나 멋지던가. 상상목공소. 웬지 꿈을 깎고 갈아서 멋진 무언가를 만들어낼 것 같은 기분마저 들고 말았다. 소제목은 '상상력과 창의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라고 적고 있다. 상상력과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나보다 준비를 하고 읽게 된다. 예상한 대로 역시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에서 집중하게 된다. 

인간의 사고 대부분이 언어중추를 통해서 일어나듯이 상상력 또한 대개는 언어작용에 의해 작동된다. 하지만 그 전에 언어는 상상력을 제한하는 사회적 도구다. 아이는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사물을 구분하고 대상을 구체화시킨다. 언어적 소통을 통해 타자와 자신을 분리해내는 인식이 발달하며 또 언어를 통해 사회적 교감을 이루는 법을 배워나간다. 그러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사회적 억압에 익숙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어는 사물을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사물과 현상의 여러 측면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사고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다만 하나의 축소된 개념에 갇혀버리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 21쪽  

상상력은 언어작용에 의해 작동되지만 언어는 동시에 상상력을 제한하는 사회적 도구라고 그 모순성을 지적했다. 이렇게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고 그것이 관계 속에서 스스로 충돌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예가 많이 등장했다.  인간과 벌레도 마찬가지였다. 

벌레와 인간. 그들은 한 번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둘 간의 관계는 늘 적대적이었다. 인간은 수백만 년을 벌레에게 시달려왔음에도 벌레에 대해 우월한 지위를 확신한다. 벌레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목숨을 내어주면서도 자기의 길을 포기한 적이 없다. – 146쪽  

상상력에 대한 오해도 그 범주에 속한다.  

상상력에 관한 많은 오해가 있다. 그중 가장 흔한 오해는 상상력이 동심의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오해다. 그런데 한 가지 의심스러운 현상이 있다. 일반적으로 상상력은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한다. 따라서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창의력이 더 높을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어른을 뛰어넘은 수준까지 도달한 예는 거의 없다.
사실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상상력이란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경험과 상상력은 얼핏 무관해 보인다. 오히려 현실 속에서는 경험이 적은(그래서 순수한) 사람들이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새로운 대상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이미 경험했던 대상에서 유추하여 대상의 형태와 성질 등 여러 가지 정보를 파악하게 된다.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반응은 빈약한 경험에서 비롯된 연상능력의 부족에서 비롯된 결과이기 쉽다. 경험과 사고의 부족에 기인한 엉뚱한 연상이 어른들의 눈에 기발한 상상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 172쪽


듣고 보기 그렇구나.... 라며 고개 끄덕이게 된다. 동심의 세계라고 단정지어버리는 그 상상력, 게다가 창의력의 원천이기에 더 소중하다고 여기는 상상력이 사실은 경험의 산물이라는 것은 반가우면서도 뜻밖이어서 놀랍다. 경험의 산물이라고 하면 누구든 그 상상력과 창의력의 샘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걸 느끼면서 살지는 못하고 있으니 등잔 밑이 어두운 기분이랄까. 

상상력은 사회적이다. 창의적인 작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회적이라는 의미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적 발상이 뛰어난 한 개인에 의해 나타날 수 있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사회적 공간이 없다면 상상력과 창의성 또한 발휘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다. 창의성 혹은 상상력은 통념을 넘어서는 어떤 것에 대한 열린 사고를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적 규준을 넘는 새로운 사고는 사회적 규준으로 평가될 수 없거나 측정되지 않는다. – 178쪽

상상력과 창의적인 작업이 모두 사회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실현되는 사회적 공간을 무시할 수 없고, 그것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걸 뛰어넘는 상상력과 창의적인 작업이라면 외면받거나 지탄받기 쉽다. 한없이 자유로울 것 같은 두 개념이 이렇게 사회 속에서 발목이 잡힌다고 생각하니 역시 모순적이다. 

목수인 저자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온갖 다채로운 설정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나무로 작업해낸다.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사이사이의 시행착오 등도 무척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문자로 설명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는 저자의 작업들이 심드렁했다. 당신에게는 유의미한 작업이지만 그걸 책으로 한 다리 건너 문자로 읽어내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공감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완성품을 사진으로 보니 꽤 멋졌는데, 그걸 동영상으로 보니 더 근사했다. 아마 실물로 보면 나의 심드렁함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릴 테지만, 그렇지 못하는 독자는 홈페이지의 동영상으로라도 만족감을 더해보련다.  

작품 동영상 보기 

주제는 상상력과 창의성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모르던 것들에 대한 얘기가 등장할 때 글이 더 반짝반짝 빛났다. 이를테면 저자의 관찰에 의하면 봄꽃은 붉은색, 여름꽃은 흰색, 가을꽃은 보라색이 많은데 이는 주변환경과 보색을 이루기 위해서일 거라는 것이다. 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저 나무는 싱그럽고 꽃은 예쁘다고만 생각했지 꽃 색깔을 한 번도 눈여겨보지 못했다. 저자의 짐작대로 '보색'대비를 통해서 더 많이 벌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키고픈 욕망이 그렇게 발현되었을 것이라고 여긴다. 이제는 계절마다 꽃을 볼 때 그 색대비를 신경쓰며 보게 될 것이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변화가 나타나게 된 것이니 반갑고 고맙다.  

책 속에서 나방이 자신의 천적의 천적인 뱀을 닮은 몸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등장했다. 나방의 천적은 새이고, 새의 천적은 뱀이라고 나와서 또 화들짝 놀랐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땅을 기어다니는 뱀에게 잡아먹힌단 말인가! 뱀은 개구리나 먹는 줄 알았지 새까지 잡아먹다니, 갑작스럽게 뱀의 신출기묘한 능력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런 뱀을 닮은 모양새로 진화한 나방에게도 역시 박수를 보낸다. 자연의 이치란 어찌 이리 기이하고 자연스러울까! 

꽃의 섹스 이야기도 무척 흥미로웠다. 페로몬을 발산하는 꽃과, 종을 넘나드는 꽃의 섹스라니, 단어의 파격성도 그렇지만 꽃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인간으로 대입하면 이건 파격 그 이상이 아니던가! 

인간은 왜 꽃을 좋아할까. 부드럽고 하늘거리는 꽃잎의 감촉, 도발적인 색채와 매혹적인 향기, 무엇보다 형태적인 면에서 성적 자극을 일으키는 꽃에게 우리는 매력을 느낀다. 꽃향기는 곤충이 서로를 유인하는 페로몬과 닮아 있고 곤충의 페로몬은 향수의 성분과 유사하다(꽃이 향수의 재료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즉 꽃의 형태와 색채와 향기는 인간의 성적인 충동과 직접 관련이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신의 섹스에 꽃을 이용하는 데 익숙하다. – 228쪽

좀 더 재밌고 자세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차마 옮기지는 못했다. 제4장 진화와 상상력 편이라는 것만 언급해 둔다. 

물봉선과 나도송이풀과 같은 꽃들은 보기에도 너무 야하게 생겨서 차마 따서 분해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아니, 어떤 꽃이기에! 당연히 호기심이 치솟는다. 이렇게 생겼다. 

 

이 꽃이 물봉선이고, 

 

이건 나도송이풀이다. 왜 야하게 생겼다고 했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흠, 뭐지? 뭘까??? 

다시 처음 패턴으로 돌아가서 모순되고 충돌되지만 그것으로 다시 조화를 이루는 예시는 또 등장한다. 

생태공원이나 호숫가의 구조물에도 방부목을 쓴다. 근처가 오염될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방부목을 없애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방부목을 사용한 이후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목재의 양을 엄청 줄일 수 있었다. 숲이 덜 파괴되게 하는 역할을 방부목이 톡톡히 해낸 것이다. – 242쪽  

참 아이러니하다. 방부목이 오염을 불러오지만, 그 방보목이 숲의 파괴를 동시에 막아주기도 한다는 것이...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말은 언제나 그럴듯하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자연의 양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인간의 삶의 속도는 자연의 삶의 속도마저 뒤바꾼다. 이를테면 돼지의 평균수명은 칠 년이지만 실제로 세상 모든 돼지의 평균수명을 계산해보면 칠 개월에 불과할 것이다. 도축하기에 가장 적절한 나이가 돼지의 평균수명이다.
닭이나 소, 돼지만이 아니다. 인간이 선택한 대부분의 꽃은 씨를 맺기도 전에 잘려 꽃병에 꽂힌다. 수반 위에 아름답게 장식된 꽃은 일생의 반을 빈사상태로 보낸다. 어시장의 물고기들은 운명을 스스로 마치지 못한, 자연에서 폐기된 시신들이다. – 243쪽

 
그렇다면 저자는 인간이 이 지구상에 가장 사악한 존재이고 다른 생명들을 갉아먹는 존재라고 규탄하는 것일까? 그렇게 촌스러울 리가 없다.  

자연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소비하는 현대의 삶을 조절하지 않고는 사람 사는 모순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자연과의 조화를 방해한 주범으로 지적되는 게 과학이나 물질의 발전이지만 따지고 보면 과학적인 방법 말고 인간이 자연과 조화할 수 있는 길은 쉽게 찾아질 것 같지도 않다. 이를테면 화석연료를 대치하는 새로운 에너지원은 과학적 발전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몽상에 불과하다. 이제 과학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아마 과학기술의 최종 발전 단계는 자연을 가장 적게 소비하는 방법을 찾는 길이어야 할 것이다. 그 길은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로 이어질 것인가? – 244쪽  

자연을 천천히 소비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과학의 힘을 빌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가 따라올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상력과 창의성의 역할이 클 것이다. 저자는 상상력이야말로 인간이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마련해준 신의 선물이라고 멋진 문장으로 책을 마무리 짓는다. 뭔가 판을 아주 크게 벌려놓고 마무리는 테두리 안에 끼워 맞추려고 애쓴 느낌이 다소 들지만, 상상력이 타자를 이해하기 위한 조건이라는 것에는 이의를 붙이지 않겠다. 우리에게 더 많은 상상력이 있다면 이 사회가 덜 각박해질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디자인이 무척 예쁘다. 띠지의 꽃분홍색이 책을 더 빛나게 해주는데, 띠지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바로 분리해버리니 그건 시각적으로 꽤 아쉬웠다. 사이사이 속표지의 어지러운 도면들도 분위기에 걸맞는 연출을 해주어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옥의 티는 역시 오타다. 

276쪽 마지막 줄에 불안해 견지지 못한다면>>>견디지 못한다면
296쪽 성깔 있는 목수가 몽니를 부리는 이유이라는 걸>>이유라는 걸이 맞지 않나? 문장이 어색하다.

그밖에 전반적으로 띄어쓰기 오류가 무척 많다. 그것까지 다 말하진 못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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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5-14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다른 서재에서도 봤는데
느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군요. 마노아님의 리뷰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반짝거리네요.

그런데 상상력이란 인간이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마련해준 신의 선물이라구요...
그럴 수 있겠어요. 타인의 느낌을 알고 공감하기 위해서, 또는 배신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일 수도.

마노아 2011-05-14 20:20   좋아요 0 | URL
저는 읽으면서는 좀 힘들었는데, 리뷰 쓰느라고 밑줄긋기를 연달아서 읽으니까 내용이 좀 더 정리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쓰면서 좀 더 긍정적인 느낌으로 변했어요.^^
배신하기 위해서도 상상력이 쓰일 수 있겠네요. 분명히. 우리는 좋은 쪽으로 상상력을 쓰도록 해요.^^
 
상상목공소 - 상상력과 창의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김진송 지음 / 톨 / 2011년 3월
품절


인간의 사고 대부분이 언어중추를 통해서 일어나듯이 상상력 또한 대개는 언어작용에 의해 작동된다. 하지만 그 전에 언어는 상상력을 제한하는 사회적 도구다. 아이는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사물을 구분하고 대상을 구체화시킨다. 언어적 소통을 통해 타자와 자신을 분리해내는 인식이 발달하며 또 언어를 통해 사회적 교감을 이루는 법을 배워나간다. 그러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사회적 억압에 익숙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어는 사물을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사물과 현상의 여러 측면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사고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다만 하나의 축소된 개념에 갇혀버리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과’라고 말하면 그것이 붉은 사과건 벌레 먹은 사과건 농부가 힘들여 가꾼 사과건, 그저 사과일 뿐이다. 사과라고 말하는 순간 사과가 지니고 있는 수만 가지의 다양한 측면이 사라져버리고 오직 ‘사과’라는 개념만 강요될 뿐이다. 언어는 늘 폭력적이다.

-21쪽

따라서 언어는 이미 인식의 제약을 전제하고 있다. 어쩌면 상상력은 언어가 제거해버린 대상의 다의성을 되살려내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언어작용일지도 모른다. ‘인식된 모든 것은 상투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우리가 이미 언어가 지니고 있는 관념의 상투성에 쉽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언어에 포획되기 이전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사물과 현상 그리고 생각 그 자체의 본질에 접근할 때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며 바로 이 과정이 창의성의 핵심이 된다. 그것은 종종 직관적인 이미지 언어를 통해 극복되기도 한다. 언어를 포함한 모든 고정관념에 매몰되지 않을 때 상상력이 시작되는 것이다.

-22쪽

상상력은 모든 언어들이 지니고 있는 한계를 메워주는 가장 간단한 수단이자 유일한 방법이며 또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인식의 원리이기도 하다. 언어가 간접적이며 시간적이고 구조적이라면 이미지는 직접적이며 즉흥적이고 공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미흡한 글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글에 이미지의 요소를 집어넣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흡하고 비어 있는 이미지의 공간을 글쓰는 이의 상상과 독자의 상상으로 채우는 순간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글을 즐겁게 읽는 까닭이다. 반대로 서사가 빠진 이미지에 이야기를 집어넣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지가 지니고 있는 언어를 최대한 확장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언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우리가 그림을 보는 이유다. 이미지든 텍스트든 각각의 언어들은 결정적인 결핍의 요소를 갖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상상의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진다.

-23쪽

아마 톱니바퀴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시계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고 시계가 없었다면 인간이 시간을 제어할 수 있다는 착각도 없었을 것이다. 시간을 제어할 수 없음에도 인간은 시계를 통해 시간을 장악했다. 시계가 만들어진 이후 인간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 인간들이 시간의 속도와 전쟁을 벌이며 과학과 기술 혁신에 가속도를 붙였고 사람들은 물질문명을 구가했다. 대신 시간을 뺏기 위한 전쟁이 일상 곳곳에서 벌어졌다.

-38쪽

이미지와 이야기들은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존재한다. 그건 틀림없다. 아무리 뒤죽박죽인 이야기도 스스로 흘러가기 위해 어딘가에 달라붙어 있어야 한다.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생각 위에 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공간의 한 귀퉁이와 시간의 축에 걸쳐 있는 무엇이어야 한다. 이야기가 우연히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은 ‘공기 중에 떠도는 생각의 입자가 몸속으로 들어왔다’는 말처럼 터무니없다.

-58쪽

세상의 모든 물질들은 이야기를 위해 존재한다. 아니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어내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종이 위에 새긴 글씨건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이건 컴퓨터 속에서 깜빡이는 빛이건 어딘가에 달라붙어 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그런 건 아니다. 더 많은 이야기들은 공기 중에 흩어져 사라지고 만다. 그 이야기들은 때가 되면 다시 그 어디엔가 달라붙어 살아 있는 이야기로 되돌아올 것이다.
시공간이 사라지고 나면 모든 이미지와 이야기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들의 이야기가 망각의 입자로 사라지지 않는 한, 이야기들은, 이미지들은 언제나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59쪽

기계들이 줄지어 일하는 공장을 시찰하기 좋아하는 권력형 인간들이 그토록 기계에 집착했던 이유는 일사불란한 기계야말로 그 어느 아날로그의 유물보다 파시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기계적 생산방식에서 파시즘을 떠올리는 게 단지 연상만은 아니다. 산업화 이후 대량복제 시대의 유물은 기계뿐 아니라 일상을 조직하는 사회구조에 더 많이 남아 있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계적 인간이 탄생한 계기는 방직공장에 늘어서 있는 기계들이 만들어주었음이 틀림없다.

-78쪽

아이를 낳고 아이가 점점 자라면 우리는 가장 먼저 인형을 품에 안겨준다. 아이는 인형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한다. 나와 다른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존재를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학습한다. 하지만 어쩌면 아이들이 인형놀이를 하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타인의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권력욕일지 모른다.

-84쪽

기계는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이었다.

-90쪽

반복은 어쩌면 인간에게 주어진 아니면 인간에게 조건 지워진 물질을 구성하는 절대원칙일지도 모른다. 알에서 애벌레를 거쳐 번데기로 변하고 탈피와 우화를 거쳐 성충이 되는 벌레, 씨앗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다시 씨를 맺는 식물,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 다시 아이를 낳고 죽는 동물들은 수억 년을 거쳐 똑같은 반복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므로 반복은 생명의 조건이다.

-96쪽

벌레와 인간. 그들은 한 번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둘 간의 관계는 늘 적대적이었다. 인간은 수백만 년을 벌레에게 시달려왔음에도 벌레에 대해 우월한 지위를 확신한다. 벌레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목숨을 내어주면서도 자기의 길을 포기한 적이 없다.

-146쪽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말하는 것처럼, 애벌레는 아름다운 나비가 되기 위해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며 인내하는 추한 존재이기만 한 것일까? 만일 어느 인간이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깨달은 인생의 진리만 가지고 그가 살아왔던 나머지 모든 인생이 불완전하고 하찮은 삶이었을 뿐이라고 한다면 그게 옳은 일일까?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어라 노력한 어떤 사람에게 성공 이전의 삶이 불행하고 보잘것없는 삶이었다고 마음대로 떠벌린다면 그것만큼 터무니없는 말이 또 있을까? 매미가 되지 못한 굼벵이를 불쌍하게 바라보려는 시각은 결과만을 따지는 버릇에서 비롯된 어설픈 비유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165쪽

고도의 지능을 가진 인간들은 자신의 본질을 사물이나 눈앞의 대상에 전이시키는 데 능숙하다. 이를테면 하찮은 자신을 보고 벌레 같다는 비유를 함으로써 아무런 잘못도 없는 벌레를 하찮게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다.

-166쪽

상상력에 관한 많은 오해가 있다. 그중 가장 흔한 오해는 상상력이 동심의 세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오해다. 그런데 한 가지 의심스러운 현상이 있다. 일반적으로 상상력은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한다. 따라서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창의력이 더 높을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어른을 뛰어넘은 수준까지 도달한 예는 거의 없다.
사실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상상력이란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경험과 상상력은 얼핏 무관해 보인다. 오히려 현실 속에서는 경험이 적은(그래서 순수한) 사람들이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새로운 대상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이미 경험했던 대상에서 유추하여 대상의 형태와 성질 등 여러 가지 정보를 파악하게 된다.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반응은 빈약한 경험에서 비롯된 연상능력의 부족에서 비롯된 결과이기 쉽다. 경험과 사고의 부족에 기인한 엉뚱한 연상이 어른들의 눈에 기발한 상상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172쪽

어른들은 스스로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세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미처 경험하지 못한 세계가 눈앞에 등장했을 때도 그 세계를 자신이 알고 있는 경험의 세계에 밀어 넣어 버린다. 늑대가 눈앞에 등장하면 음험하고 사나운 동물이며 여우가 나타나면 교활한 동물이어야 한다. 그럴 때 사나운 늑대와 교활한 여우는 ‘사실’이 아니라 ‘논리’적 실재이다. 어른들의 일상은 이렇게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설명이 가능한 영역으로 채워져 있어야 한다. 만일 자신이 구축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세계에 아주 작은 균열이라도 보이면 그들은 기겁을 하며 그것을 또 다른 논리로 메우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 자신이 구축한 세계 속에서 마치 고치 속에 들어가 있는 누에처럼 편안하고 안정된 세계가 완성되었다고 느끼며 만족한다.
-176쪽

사람들은 현실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어른들은 경험을 통하여 그 자신이 현실에서 밀려났을 때의 공포를 체험한 사람들이다. 그런 경험은 낯선 세계에 들어가기를 주저하도록 만들며,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게 만든다. 그들이 어쩌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조차 애써 그것을 외면하게 되는 이유이다.
그들은 상상의 세계는 아이들의 세계이며 ‘동심’의 세계이기 때문에 자신과 같은 ‘이성’의 세계 속에 사는 어른들이 그곳을 기웃거리는 것은 유치한 행위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결국 그는 영원히 그 세계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데 추호의 의심도 가지지 않는다.
-176쪽

상상의 세계는 일상의 모든 부분에 걸쳐 있으며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영역에서 작용하는 세계이다. 현실적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작동해 왔고 또 작동되어야 하는 공간인 것이다.
상상과 현실은 구분되어 있거나 단절된, 서로 다른 공간이 아니라 뒤섞여 있는 동일한 공간이다. 상상은 무수히 많은 경험과 사고의 틈 속에 존재하며 그 틈 속에서 인간의 인식을 무한히 넓히는 자유로운 공간이다. 따라서 상상력이 필요한 것은 아이들보다 어른들이다. 일상의 경험 속에 매몰되어 상투성의 늪에 빠져 있을 때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177쪽

최근 상상력과 창의성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단지 그럴 뿐이다. 상상력과 창의성은 그 자체의 중요성 때문이 아니라 생산성과 효율성이란 경제적 효과를 위한 사회적 필요에 의해 자주 거론된다. 이때 창의성은 개인의 사회적 성공과 목표 성취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 혹은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자질과 덕목으로 취급된다.
물론 상상력은 사회적이다. 창의적인 작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사회적이라는 의미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적 발상이 뛰어난 한 개인에 의해 나타날 수 있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사회적 공간이 없다면 상상력과 창의성 또한 발휘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다. 창의성 혹은 상상력은 통념을 넘어서는 어떤 것에 대한 열린 사고를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적 규준을 넘는 새로운 사고는 사회적 규준으로 평가될 수 없거나 측정되지 않는다.
-178쪽

모든 사회가 꽃에 대해 문화적으로 동일한 태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역사학자인 잭 구디의 말로는 아프리카에서는 꽃을 거의 사용하지도 않고 꽃에 부여된 상징성도 희박하다고 한다. 숲에 꽃이 널려 있어도 아름다운 여인에게 꽃을 따다 바치는 총각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꽃을 심미적 용도로 사용하는 데는 경제적 계층화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아프리카 부족 사회에는 유한계급이 없었고 소비경제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꽃을 즐기고 꽃을 나누는 인간의 행위는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학습된 것이라는 말이다. 가난한 어미에게는 장미 한 송이보다 옥수수 한 포대가 더 아름답고 감동적이듯이 꽃에 대한 선호와 상징은 사회문화적으로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212쪽

인간은 왜 꽃을 좋아할까. 부드럽고 하늘거리는 꽃잎의 감촉, 도발적인 색채와 매혹적인 향기, 무엇보다 형태적인 면에서 성적 자극을 일으키는 꽃에게 우리는 매력을 느낀다. 꽃향기는 곤충이 서로를 유인하는 페로몬과 닮아 있고 곤충의 페로몬은 향수의 성분과 유사하다(꽃이 향수의 재료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즉 꽃의 형태와 색채와 향기는 인간의 성적인 충동과 직접 관련이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신의 섹스에 꽃을 이용하는 데 익숙하다.

-228쪽

생태공원이나 호숫가의 구조물에도 방부목을 쓴다. 근처가 오염될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방부목을 없애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방부목을 사용한 이후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목재의 양을 엄청 줄일 수 있었다. 숲이 덜 파괴되게 하는 역할을 방부목이 톡톡히 해낸 것이다.

-242쪽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말은 언제나 그럴듯하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자연의 양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인간의 삶의 속도는 자연의 삶의 속도마저 뒤바꾼다. 이를테면 돼지의 평균수명은 칠 년이지만 실제로 세상 모든 돼지의 평균수명을 계산해보면 칠 개월에 불과할 것이다. 도축하기에 가장 적절한 나이가 돼지의 평균수명이다.
닭이나 소, 돼지만이 아니다. 인간이 선택한 대부분의 꽃은 씨를 맺기도 전에 잘려 꽃병에 꽂힌다. 수반 위에 아름답게 장식된 꽃은 일생의 반을 빈사상태로 보낸다. 어시장의 물고기들은 운명을 스스로 마치지 못한, 자연에서 폐기된 시신들이다.
-243쪽

인간의 삶을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다. 소수자의 현명한 선택은 자연의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연을 천천히 낭비하자는 것. 자연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소비하는 현대의 삶을 조절하지 않고는 사람 사는 모순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자연과의 조화를 방해한 주범으로 지적되는 게 과학이나 물질의 발전이지만 따지고 보면 과학적인 방법 말고 인간이 자연과 조화할 수 있는 길은 쉽게 찾아질 것 같지도 않다. 이를테면 화석연료를 대치하는 새로운 에너지원은 과학적 발전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몽상에 불과하다. 이제 과학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 되었다. 아마 과학기술의 최종 발전 단계는 자연을 가장 적게 소비하는 방법을 찾는 길이어야 할 것이다. 그 길은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로 이어질 것인가?

-244쪽

현대인은 배움에 중독된 동물이다. 배움에 관한 수만 가지의 좋은 말들을 다 제쳐두고 거칠게 표현하자면, 배움이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심리적 위안을 얻기 위한 것이거나 무엇을 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무엇인가를 배우지 않으면 불안해 견디지 못한다면 당신은 틀림없이 학습중독증 환자다.

-276쪽

창작이든 작업이든 일에 대한 두려움이 배움의 장으로 이끈다. 그러나 배움보다 더 앞서야 할 것은 생각이다. 스스로의 생각으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남에게 배워서도 알지 못한다. 꼭 무언가를 체계적으로 배워야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일의 필요성이 덜 하거나 일을 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는 사람이기 쉽다.

-277쪽

진실에 대한 오해나 오류가 인간에게 숱한 성공과 실패, 희망과 비극을 가져다주었지만 사실 진실이나 오류 그 자체가 문제되었던 적은 거의 없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그 반대의 경우가 그렇듯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문제는 오류나 오해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확신 혹은 진리를 전유하려는 다툼이다. 그것은 진실과는 또 다른 인간의 문화이자 생태이자 행동양식이다.

-305쪽

자연의 물질과 현상, 생물의 본능과 생태 그리고 인간의 느낌과 감각 그리고 경험의 언어들은 언어 이전의 언어이자 지식 이전의 지식이다. 자연의 현상이나 생태적 본능 혹은 감각의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과정에서 열리는 상상의 세계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의 가능성일 것이다. 그럴 때 상상력이란 인간이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마련해준 신의 선물이 될 것이다.
-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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