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부터의 편지
마크 트웨인 지음, 윤영돈 옮김 / 베가북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지구를 관찰한 사탄, 편지 형식을 빌어 기독교와 성경을 비판하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11-05-20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금세'를 '금새'로 표기하였고,
81쪽의 '노농 생산성'은 혹시 '노동 생산성'을 잘못 표기한 게 아닐까 싶다.
93쪽에는 노아의 세 아들 중 막내를 햄이라고 적었는데 '야벳' 아니던가?
93쪽에는 칭송을 받습니다를 '받ㅋ습니다'로 표기되어 있다.
 
지구로부터의 편지
마크 트웨인 지음, 윤영돈 옮김 / 베가북스 / 2005년 7월
절판


인간들은 천국을 머리 속으로 그려냈습니다. 그런데 그 천국에서, 모든 인간들이 첫손에 꼽고, 사실 우리 천사들도 최고로 치는 가장 큰 즐거움, 성교의 황홀경을 완전히 빼놓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찌는 듯한 사막에서 길을 잃고 말라 죽어가는 사람에게 구조해 준답시고 다가와서는 '원하는 건 다 줄게, 물만 빼고.'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지요. -23쪽

또 모든 사람이 하프를 켭니다. 천국에 있는 그 무수한 사람들 모두가 말입니다. 지구에서는 하프를 켤 줄 아는 사람이, 심지어 켜고 싶어하는 사람까지 합해도 천에 하나나 될까 말까 하는데도 말입니다.-28쪽

이곳 지구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증오합니다. 이 나라 저 나라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유대인을 미워합니다. 그러면서도 유대인과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천국은 숭배하고 또 가고 싶어합니다. -3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 - Pirates of the Caribbean: On Stranger Tid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어제는 원래 경복궁 야간 개장을 가는 것이 목표였지만, 지나치게 습한 날씨와 좀처럼 지지 않는 해를 원망하다가 방향을 돌려 극장으로 갔다. 시간표를 몰랐기 때문에 도착한 시간에 맞추어 볼 수 있는 영화를 고르기로 결심했다. 내가 원했던 영화는 인사이드 잡이었는데 12시 넘어서만 표가 있었다. 목요일 개봉인데 왜 이렇게 늦게 하냐고 물으니 직원이 말하길, 영화의 내용 아시죠? 그래서 그래요.-한다. 아니, 영화의 내용이 뭐 어떻기에 그 밤중에 하나? 식코 같은 영화도 멀쩡히 낮에 봤는데 말이다.  

킁, 아무튼 그리하여서 제일 많이 편성되어 있던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게 되었다. 까마득한 옛날에 1편은 보았는데, 중간에 2.3편은 보질 못해서 무척 오랜만에 만나는 잭 스패로우 선장이었다.  

 

여전히 말썽 많고 재치꾸러기인 잭 선장은 왕궁에서부터 소란을 피우고 도망을 간다. 항간에서는 누군가 자신을 사칭해 선원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자신도 없는 배를 갖고서 제 이름으로 선원을 모으는 그 양반이 누구인지 모른 채 지나갈 수는 없는 노릇! 

초반에 잭의 아버지도 잠깐 등장하는데, 전 시리즈에서도 아버지가 등장하는지 모르겠다. 페넬로페 크루즈가 맡은 안젤리카가 잭의 옛 연인으로 나오는데 앞서 2탄과 3판의 줄거리를 살펴보아도 그녀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4편에서 처음 등장하지만 원래부터 있었던 인물이라는 설정인가 보다. 어쩌면 잭의 아버지도 그런 경우일지도. 

아버지는 젊음의 샘에 대한 힌트를 주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스페인의 왕도, 영국의 왕도 모두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젊음의 샘. 그러나 정작 잭은 거기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먹기 좋은 떡이지만 그만큼 위험한 미끼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려면 젊음의 샘으로 출발해야 하는 법! 

 

바다 모습이 참 시원하다.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무인도의 바다도 참 예뻤는데, 이 사진 속의 바다도 시원하기만 하다. 온통 낡은 저 돛이 그래도 바람을 잔뜩 품고 씽씽 달린다. 검은 수염이란 캐릭터가 무척 무섭게 그려졌는데 이 인물도 원래 나왔던 인물인지 내내 궁금했다. 검을 빼들어 호령을 하면 배의 밧줄이 저절로 날아가 사람을 옭아매기까지 한다. 원래 이렇게 환타지적 성격이 있었나? 보는 내내 궁금했던 게 무척 많았다. 이 영화를 보게 될 줄 알았더라면 밀린 시리즈를 먼저 챙겨봤을 텐데 불시에 보게 된 거라서 내내 머릿 속에 물음표를 띄워야 했다.  

젊음의 샘에 도착해서 그 물을 마시면 되는 게 아니라 의식이 필요했다. 은잔 두 개가 필요했고, 인어의 눈물도 필요했다. 그리하여 등장한 인어가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설정이었다. 처음 인어떼가 등장했을 때 맨 처음 뱃머리에 나타난 인어가 가장 예뻤지만, 주조연급 인어는 다른 인물이었다. 

 

육지에서의 인어 모습과 물 속에서의 인어 모습, 그리고 눈물을 흘릴 때를 구별해내는 인어의 모습이 다 좋았고, 제 눈물의 가치를 아는 모습도 좋았다. 인어와 파트너가 되어준 목사님 캐릭터도 훌륭!  

아쉬운 캐릭터는 페넬로페 크루즈가 맡은 안젤리카였다. 잭은 그녀가 몹시 무서운 사람이고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내내 강조했다. 그녀에게는 뭔가 비밀이 많아 보였다. 진실을 거짓말처럼 믿게 해서 뒤통수를 칠 줄 알았던 그녀. 그래서 그녀의 진짜 정체가 무엇일까 내내 궁금했던 나로서는 기대했던 반전이 전혀 나오지 않아서 다소 싱거웠다. 뭐, 끼워 맞추자면 진실을 거짓말처러 믿게 해서 관객도 뒤통수를 맞은 셈이랄까.  

제프리 러쉬는 킹스 스피치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시 연기파 배우다.  

다른 사람의 살아온 수명과 남은 수명을 빼앗아 나의 젊음을 더 연장한다는 것은 몹시 잔인한 일이지만, 살다보면 저런 사람은 왜 저리 오래 살까 싶은 나쁜 인간도 참 많은 법이니까 그런 사람의 생명을 안타깝게 일찍 죽게 된 사람의 생명에 붙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허망한 상상도 해보았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더더욱 조명을 받는 한 인물이 유독 생각났었다. 희생자들의 생명을 잡아 먹고 오래오래 사는 것은 아닐까 엄한 생각도 들었지 뭔가.

다시 영화 속으로 돌아가자. 아무래도 오락 영화이고, 시리즈를 반복하다 보니까, 대체로 예상했던 것들이 그래도 들어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귀엽고 섹시하고 얄밉지만 밉지 않은 잭 스패로우 선장 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조니 뎁이 즐겁고, 소소한 부분에서 킥킥 웃게 만드는 설정들이 즐거웠다. 

이렇게 스케일 크고 뭔가 모험이 가득한 신나는 영화는 역시 극장에서 큰 화면과 시원한 사운드 속에서 들어야 하는 거라고 나의 선택에 만족해 했다.  

내 자리는 제일 구석이기도 했고, 엔딩까지 노래를 다 들어보고 싶어서 끝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진짜 반전은 거기에 있었다.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난 다음에 의미심장한 장면이 한 컷 나오기 때문이다. 하핫, 역시 유머러스해. 다음 편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마도 다음 편에도 안젤리카는 또 나오겠지? 조니 뎁이 앞으로도 좀 더 오래 액션 연기를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다음 편은 좀 더 빨리 나오기를!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1-05-20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벌써 보셨어요?
완결편이라는데 저도 꼭 보려구요.ㅎㅎ
낯선 조류, 제목이 끌려요.
페넬로페랑 제프리 러쉬까지~~

마노아 2011-05-20 23:13   좋아요 0 | URL
헉, 완결편이에요? 이렇게 훌륭한 시리즈가 여기서 끝이라니! 너무 안타까워요.
저는 어제부터 5편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지요..ㅜ.ㅜ

순오기 2011-05-21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조조로 보려다가 피곤해서 그냥 자버렸어요.
성주가 나오는 넷째 주말에 모두 함께 보게 될 듯해요.
잭 스패로우는 조니뎁이 아니면 절대 안될거 같죠.ㅋㅋ

마노아 2011-05-21 09:02   좋아요 0 | URL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 적격인 영화예요.
아이도 어른도 모두 즐겨볼 오락 영화인데 시리즈 끝이라고 하니 너무 섭섭해요.
조니뎁의 잭 스패로우는 최고예요.^^ㅎㅎㅎ

Kitty 2011-05-21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사님 사랑합니다 이제부터 교회 나갈까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근데 저는 엔딩 올라오자마자 휙 일어나서 나오는 바람에 맨끝 장면 놓쳤어요 ㅜㅜㅜㅜ 어떤 장면이었나요?
마노아님 비밀글로 달아주시면 감사 또 감사하겠습니다!!!! ㅜㅜ

2011-05-21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11-05-21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리비안해적 이야기하면 전 할 말이 없어요. 한 편도 본게 없거든요. 티비에서 몇 번을 해 줘도 한번도 안봤어요.
오늘 지성이는 학교 CA활동으로 영화를 보러 갔는데 바로 요거를 보러 갔지요 :)

마노아 2011-05-21 10:56   좋아요 0 | URL
오, 무스탕님도 흠뻑 빠질 만한 매력적인 잭 스패로우를 한 번도 보지 않으셨다니, 안타깝기 그지 없어요!!
지성이도 재밌게 보고 돌아올 테지요. 기왕이면 3D로 볼 걸 그랬나 지금 살짝 후회가 되고 있어요.^^;;;

Mephistopheles 2011-05-2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루즈가 저 영화를 찍을 때 임신 상태였기에....격한 액션엔 그녀의 친동생이 대역을 했다는군요..ㅋㅋ

마노아 2011-05-21 12:30   좋아요 0 | URL
크루즈가 결혼했군요! 방금 프로필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낮이가 많아서 놀랐어요.
이야, 동생도 배우였군요. 역시 메피님은 걸어다니는 영화 사전이에요.^^ㅎㅎㅎ

hnine 2011-05-21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 이 영화를 봤어야 하는데 ㅠㅠ 다린이보고 보러 가자니까 무서울 것 같다고 싫다는거 있죠.

마노아 2011-05-22 14:13   좋아요 0 | URL
아앗, 무서운 거 없는데 안타까버요!! 다린이도 좋아할 것 같은데 말이죠.^^;;;

마그 2011-05-22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요일 아침 7시에 조조보러간다고 갔다가.
너무 앞에서 아이맥스를 보니... 뇌가 흔들 _ _ ;;
잠 제대로 못자고 돌아다녀서 머리아프고 피곤했지만. 영화는 괜츈했어요.
그냥 저냥... 볼만? 게다가 아이맥스로 봤더니... 실감은 좀 나더라구요.
광고중에 트랜스포머 광고를 아이맥스로 보니..눈 돌아가겠더이다. 흐흐..
영화는 뭐. 쏘쏘 였죠? ^^

마노아 2011-05-22 21:54   좋아요 0 | URL
아이맥스는 화면이 너무 커서 뒤에서 봐야 해요. 정말 멀미 나요..ㅜ.ㅜ
저도 시작 전에 트랜스 포머 광고를 보았는데 변신 로봇의 재미를 맘껏 감상하기 위해서 3D로 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확실히 여름이 다가오니까 블록버스터가 쏟아져요. 아주 기대가 큽니다.^^
 
꿈의 포로 아크파크 1 : 기원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글 그림,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4월
절판


무척 독특한 만화다.
근미래이지만 어쩐지 더욱 퇴보한 것 같은 복고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한 가상 국가를 배경으로 ‘유머부’에 근무하는 공무원 ‘쥘리우스 코랑탱 아크파크’가 주인공이다.
자신이 관료제의 일부이지만 그 틀을 벗어나는 즉시 처벌받고, 또 관료주의에 이용당하는 비극적인 모습을 씁쓸하고 황당한 유머로 녹여낸 풍자의 수작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림은 아크파크가 등장하는 첫 장면이다.
누구 없냐고 큰 소리로 불러보는데 들려오는 대답이 수상쩍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다.
그런데 그 인물이 자꾸 입체적으로 변한다.
세상에, 게다가 바닥도 변한다. 2차원 평면에서 3차원 구로 바뀌어버리고, 그 바람에 아크파크는 멀리 멀리 떠밀려 나간다. 어디로? 설마 지구 밖으로??
이크! 꿈이었다.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잠에서 깬 아크파크.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한다. 같은 층에 사는 썰렁한 영감의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뒤로 한 채 사람들로 꽉 찬 거리를 뚫고 그가 근무하는 '유머부 청사'에 도달한다.
그리고 만화에서 찢어놓은 듯한 그림이 들어있는 우편물을 받는다. 자신이 그려져 있는 그 만화에는 '기원'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그가 사는 세상에서는 '기원'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에게 대체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

유머 회의실에서는 한참 판결을 내리는 중이다.
유머스런 글을 읽어본 뒤 이 개그를 통과시킬 것인지 아닌지를 투표에 붙인다.
썰렁한 유머는 4배 차이로 기각되고 만다.
그리고 이따 아크바크 씨는 수상쩍은 메모를 발견한다.
내일 오후 3시까지 펴보지 말라는 메시지.
뭔가 놀라운 일이 시작될 것만 같다.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웠던 아크바크 씨는 오랜 친구이자 문제 해결사인 달랑베르 형제를 찾아간다.
'기원'이란 말이 흥미를 끌었고, 3시에 개봉하라고 했던 봉투를 혼자 여는 것이 겁났기 때문이다.

달랑베르 형제의 집은 독특하다. 가구들이 납작하고 모두 벽쪽으로 바짝 붙어 있다. 까닭은 이어서 나온다.
정확히 3시가 되어서 봉투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만화책에서 찢어놓은 듯한 종이가 나오고 자신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게다가 방금 전에 있었던 장면이 그대로 실려 있으니 모인 친구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가 우리가 할 말과 행동을 달 알고 있다고 상상해 보니 오싹해지는 기분이다.

이어지는 그림이 이 작품에서 가장 웃기고 시니컬했던 부분이다.
승강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자 재발리 유리잔과 식기, 의자를 치워야 했다.
남은 시간은 고작 18초. 그 안에 의자를 모조리 접어서 욕조 아래에 집어 넣고, 음식들을 찬장 아래로 쌓는다.
달랑베르 형제는 호흡이 착착 맞는다. 신의 솜씨로 그릇을 잡아서 차곡차곡 쌓는다.
탁자도 접고 양탄자도 둘둘 말아서 치우고 마지막으로 마루판을 해체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벽에 바짝 붙어서 떨어지지 않게 조심한다.
생활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느라 치르는 무서운 대가였다.
하루에 50~60번씩 엘리베이터가 지나가는데 그때마다 이 짓을 반복한다니 엽기적이다. 과거에는 역의 코인로커 두 칸을 빌려서 살았다는 그들이니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양반이랄까.
집에 대한 집착과 한이 유난히 많은 한국인으로서 왠지 공감이 가면서 서글퍼진다.

승강기가 지나가고 한숨을 돌리던 아크파크는 편지 안에 또 편지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번엔 과거가 아니다. 앞으로 닥칠 일을 예고하고 있다.

며칠 동안은 회피해보려고 애도 써보았지만, 결국은 기시감을 느낀 그대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기시감은 아크파크만 갖고 있는 게 아니었다.
찾아간 서점 주인도 책 속에서 이미 아크파크를 보았다는 게 아닌가.
그를 봤다는 책의 제목이 바로 '기원'이었다.
사전에도 없던 단어 기원!
운명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그가 하는 말이 책 속에 담겨 있고, 책 속의 칸에 그 속의 칸에 또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이런 기법은 종종 발견하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데이비드 위즈너의 '시간 상자'에도 나오는데 물론 시간상으로 이 만화에서 더 먼저 쓰여진 기법이긴 하다.
아크파크가 펼쳐든 책은 29쪽 뒷부분은 찢겨나가고 없었다. 그 다음은 42쪽으로 끝이다. 이 책의 마지막도 42쪽이다. 한 권 분량으로는 무척 짧지만, 엄청 공들여 그림을 그린 것을 감안한다면, 또 심오한 세계관을 생각한다면 가볍지 않은 이야기이다.

이 책을 어떻게 구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서점 주인장.
그를 찾아 문을 통과하니 나온 것은 책으로 꽉 차버린 좁은 통로다.
책냄새는 기분 좋고, 책의 바다는 황홀할 것만 같지만, 이렇게 두렵고 놀라운 상황 속에서의 책은 무덤처럼 보이지 않을까.
지금 아크파크 씨는 자신의 인생이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자신의 과거가 적혀 있는 책, 자신의 미래가 적혀 있는 책, 거기에 쓰인 대로 그대로 움직이는 자신이라니, 기괴하고 무섭다.
그 책의 다음 페이지를 열어보는 데에는 무한한 용기가 필요할 테니까.

다시 또 책의 시작 부분처럼 누구 없냐고 외치는 아크파크 씨. 꿈 속 상황이 비슷하게 재현되는 중이다.
그리고 나타난 남자는 아크파크라는 사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책 속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역시 무시무시한 책이다.
안내 받은 연구소에는 똑같이 가까머리를 하고 있는 인물들이 만화를 그리고 있다.
그곳에서 아크파크 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이차원 세계와는 다른 삼차원 세계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여기서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상황이 연출된다.
창조자에 의해 찢겨나갈 수 있는 그들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창조자가 만들 수 있는 구멍을 정말로 보여준다.
작품의 연결 내용과 그림이 정확히 일치해서 책장을 펼치기 전까지는 책의 한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비교하기 위해서 뚫린 종이 너머로 키보드가 보이게 사진을 찍었다.
재밌게도, 뒷장에서도 뚫린 종이가 내용의 연결과 그림의 연출에 전혀 방해를 하지 않는다.
기막힌 설정이다. 작가는 아마도 천재였나보다.

그리고 아크파크 씨에게 전달된 또 다른 메시지.
43쪽의 비밀을 말하고 있건만 책은 42쪽이 끝이다.
43쪽이 궁금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다음 권을 읽어야 한다.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방법이 세련되었다.
마치 부조리극 연극을 보는 느낌으로 진행이 되는데 난해하면서 이해할 만하고, 이해하면서도 궁금하게 만든다.
과연 아크파크 씨는 자신의 기원을 제대로 찾아갈지 기대가 된다.
그에게 이런 혼란을 던진 최종 결정자가 분명 저 끝에 있지 않을까.
끝까지 같이 가보자.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스탕 2011-05-1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을 찾아 읽는 마노아님도 천재에요!!
전 이런 책은 있는줄도 모르고 눈 앞에 있어도 일단 그림체에 경기가 일어 읽지 못할것 같아요;;;
근데 리뷰를 보니 참 호기심돋는 책이네요.
근미래인데 퇴보한듯한 분위기는 어쩐지 미야자키 하야오 할배의 작품들 같아요.

마노아 2011-05-19 08:50   좋아요 0 | URL
소개 받은 책이니 천재라는 칭찬은 과하십니다.^^ㅎㅎㅎ
그래픽 노블이 색감 대비가 강렬하고 글씨가 작고 많아서 읽는데 좀 어려웠는데 이 책은 그 점에 있어서는 좀 시원시원한 편이에요. 일단 짧고요.ㅋㅋㅋ
퇴보된 근미래에 미야자키 하야오는 정말 잘 어울려요.
저는 바사라가 떠올랐답니다.^^

네꼬 2011-05-18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을 찾아 읽는 마노아님도 천재에요!! 라고 나도 말하려고 했는데.
마노아님은 정말 (여전히) 대단. (사진 넣어가면서도 어쩜 이렇게 쓸 말을 다 써요? 신기.)

마노아 2011-05-19 08:51   좋아요 0 | URL
이젠 사진이 없으면 할 말이 뭐였는지를 잊어먹는 것 같아요.
이것도 퇴보된 근미래일까요..;;;;;;

차좋아 2011-05-19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암의 대비가 이렇게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다니 멋져요. 인물들이 분명히 살아나는 느낌이네요.
부조리한 연극 한편 보고 싶었는데.... 이걸로 대신해야 겠어요^^

마노아 2011-05-19 12:47   좋아요 0 | URL
흑과 백만으로 이렇게 멋진 시각 효과를 준다는 것이 신기해요.
저도 부조리극을 보는 느낌이었답니다. 남은 시리즈 네 권도 기대 만빵이에요.^^

루쉰P 2011-05-19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카프카와 조지 오웰이 섞인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이런 책 정말 정말 좋아하는데!! 마노아님 천재에 한 표더!

근데 또 프로필 사진 바뀌셨삼...ㅋ

마노아 2011-05-20 12:42   좋아요 0 | URL
주인공 이름을 거꾸로 하면 카프카가 되어요. 대단한 설정이에요.ㅎㅎㅎ
프로필 사진은 저의 바탕화면 사진과 동일합니다.
얼마든지 바꾸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컬러링이 전화 건 사람을 짜증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나름 자제하는 중이에요.^^ㅎㅎㅎ

굿바이 2011-05-20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훠~ 이거 바로 접수합니다. 아무래도 전집으로 사야겠어요. 주말이 신나지겠는걸요 :)

마노아 2011-05-20 16:43   좋아요 0 | URL
야금야금 먹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즐거운 주말을 이미 맡아 놓으셨네요.^^
 
설희 6
강경옥 글.그림 / 팝툰 / 2011년 5월
장바구니담기


팝툰 연재에서 다음 웹툰 연재로 갈아탄 이후로 매주 화요일마다 꼬박꼬박 챙겨봤는데도 불구하고, 단행본으로 다시 보니 또 새롭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 몹쓸 기억력이라니...ㅜ.ㅜ

주인공 설희와 세라는 생일이 같다. 그것도 10월 31일로 할로윈 데이.
미국에서 온 설희는 생일 파티를 열자며 잔뜩 흥분되어 있었고 할로윈 답게 분장도 하자고 한다.
늘 멈칫거리고 주저하곤 했던 세라는 가볍게 머리도끼 정도만 골라보는데, 이 머리띠 참 마음에 든다. 섬뜩하긴 한데 할로윈 데이라면 제대로 기분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갖고 있는 거라곤 귀여운 악마 머리띠 뿐인데 저런 건 어디 가야 살 수 있으려나...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지금 모습 그대로 계속 살고 있는 설희가 전하는 뱀파이어 같은 불사신 이야기는 뜨끔했다. 그녀가 말한대로 우리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게 되는 뱀파이어 등은 모두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인간처럼 분노하고, 인간처럼 사랑에 빠지고, 또 인간처럼 실수를 한다. 권태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 권태를 깨워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그 범주를 못 벗어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지만, 설희가 하는 얘기들은 늘 뭔가 뼈가 있기 마련이어서 그림자 짙은 그림고 함께 보면 오싹할 때가 있다.

머리 도끼 머리띠가 아니라 고양이 복장으로 낙점되었다.
그나마 세라는 겉옷이라도 걸쳤지만 설희는 캣우면 그 자체.
저런 옷을 소화하려면 보통 날씬하지 않고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일!
급 부러움이 몰려오면서 갑자기 막 기분이 나빠지려고 한다...;;;;;

한편 세이는 설희에 대한 찝찝한 기분 속에 잠들었다가 다시 또 전생의 꿈을 꾸고 말았다.
설희는 자살하고 싶어하던 아라시와도 함께 죽어줄 용의가 있던 사람이었다.
뭔가 불공평하다. 본인은 죽어도 죽지 않으니 얼마든지 그 정도의 부탁은 들어줄 수가 있는 법. 하지만 보통의 다른 사람들은 두 번의 기회가 없다. 그러니까 '부탁'이란 이름 하에 쉽게 승낙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래 살아온 연장자로서 그 정도의 배려는 해줬으면... 물론, 아라시는 지금도 살아있지만...

이사오고 7년 만에 화실 정리를 하셨다고 한다.
그나마 작업의 디지털화로 가능하셨다고 하는데, 그래서 화실이 깨끗해 보였구나.
요새도 전통 기법을 고수하며 수작업으로만 만화를 그리는 작가분이 계신지 궁금하다.
또 디지털로 바꾸신 분들은 옛 작화가 더 그립지는 않으신지 또 궁금하다.
그런데 물어볼 데가 없구나...
내일 아침이면 설희의 다음 업데이트를 볼 수 있다.
그것 때문에 오늘이 월요일 밤이고 내일이 화요일이라는 걸 몇 번이나 확인했다. 덕분에 화요일의 시작이 즐겁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벌 2011-05-17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행본을 샀어요. 개인적으로 강경옥은 좋아하는 작가라서. 학상시절에 현재진행형 ing 보면서 가슴 떨렸을 때가 있었는데.... ㅠㅠ

마노아 2011-05-17 21:19   좋아요 0 | URL
강경옥 작가님 작품은 마땅히 사서 소장해야 해요. ^^
저도 현재진행형 ing 참 좋아했어요. 어린왕자가 더 각별해진 것은 그 작품 때문일 거예요.
그치만 영원한 레전드는 별빛속에죠. 아, 레디온...ㅜ.ㅜ

마노아 2011-05-18 11:15   좋아요 0 | URL
가만, 어린왕자는 17세의 나래이션이었던가... 급 헷갈리네요..ㅜ.ㅜ

2011-05-17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7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5-18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경옥 씨가 아직도 작품을 하는군요.... 반가운걸요.
지금은 나이도 꽤 되셨을건데. 예전에 엄청나게 미쳐살았던 그때가 생각나는군요.
월간지 기다리며 두근댔는데.... 별빛속에 보면서.

마노아 2011-05-18 11:15   좋아요 0 | URL
르네상스 보던 시절이 그리워요. 90년대는 순정만화의 황금기였는데 말이죠.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주셔서 참 감사해요.
통 소식이 없는 다른 작가분들도 참 그립네요.ㅜㅜ